80화. 웨이트
1이닝에 1점씩 실점하는 투수의 평균 자책점은 정확하게 9.
이미 최악이지만 그 보더라인을 넘겨버린다면 정말, 프로의 타이틀을 떼버려야 한다.
그게 본인에게도, 팀에게도, 팬들에게도, 서로 이득일 테니까.
근데 그러긴 싫었다. 난 계속 야구를 해야 하고, 또 하고 싶었다.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거라면 모두 해봤다.
디셉션을 추가해 보겠답시고 은근슬쩍 다리를 조금 더 높이 들고 던져본다거나, 각 구종의 그립을 슬쩍 비껴 잡아본다거나.
막연한 파트인 볼 배합 편에서는 아예 직구만 10구 연속으로 던지든, 커브를 4개 연속으로 던지든, 평범하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연속극까지 찍어보았다.
“아, 집에 가고 싶다.”
일단 최근 동성전 이후 좋아는 지고 있다. 평균 자책점이 조금씩, 조금씩 내려오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으니까.
부족해.
하지만 이걸론 부족하다. 내 위상을 되찾기에도, 그리고 우리 팀에 조금 더 도움이 되기 위해서도.
멘탈을 시원하게 바닥에 내려두고 벤치에 앉았다. 오른손에 잡혀있는 공은 도통 벗어나지를 못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어떻게 하면 다시 좋았던 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
끼익―
“어흐…….”
녹슨 초록색 문짝이 열리고 모습을 드러낸 이는 웃통을 벗고 있었다. 탄탄한 체구 위에 과하게 흘린 땀들이 주륵주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축축함이 불편함의 기준을 넘어서자 수건을 이리저리 문질러 대는 모습은,
“악!”
보기 참 그랬다.
“왜?”
“뭐 하는 거예요, 선배. 더러운 거 저리 치워요!”
“아, 말이 너무 심하네.”
지호랑 규진이 형이랑 넷이서 같이 술 한번 먹은 이후 은구 선배와는 꽤 거리가 가까워졌다.
사적인 이야기도 많이 나누며 서로 필요하다 싶은 것을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자주 선물하는 정도까지 발전했다.
“뭐 하다가 왔어요?”
“러닝 좀 뛰다 왔지. 이제 슬슬 덥네.”
5월께를 넘긴 낮의 날씨는 슬슬 손목까지 덮는 긴 소매를 불편하게 여겼다.
땀!
답답함은 더위와 연결되고, 더위는 필시 땀을 부른다. 운동선수로서 절대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가 바로 땀.
이 땀을 얼마만큼 잘 제어하느냐도 분명 프로 운동선수의 역량 중 하나일 것이다.
땀으로 축축해진 웃자락을 대충 어깨에 걸친 은구 선배의 상반신을 슬쩍 구경했다.
떡 벌어진 어깨, 단단해 보이는 가슴팍, 자기주장이 철저한 6개의 복근.
“좀 쉬어가면서 해요.”
“쉬긴. 이제 웨이트하러 가야 되는데.”
“지금요?”
“가볍게만. 하드하게는 나도 못 해.”
웨이트라…….
흘끈,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덩치도 크고 근육도 있는 편이지만 은구 선배처럼 와! 조각 같은 몸매! 소리는 빈말로도 나오기 힘든 비루한 육신.
“나도 같이 가요.”
“엥?”
“왜, 나도 웨이트 할 수 있지.”
“좀 뜬금없어서 그렇지. 지금 갈 건데 괜찮아?”
“좋죠. 원래 이런 거 맘 먹었을 때 바로 찍먹해야 돼.”
그렇게 웨이트 2인조 결성. 선배를 따라 구장 안에 마련된 웨이트실로 이동했다.
유리로 된 문 너머 삐까뻔쩍한 머신들이 켜켜이 연속되는 장면을 보자니 있지도 않은 쇳독이 일어날 것 같았다.
여기가 익숙한 은구 선배는 거침없이 문을 열어제꼈다. 땀내의 향연은 날 미칠 것 같이 만들었다.
후! 후!
으아아…악!
철그럭!
땡그랑!
“뭐 하고 있어, 들어와.”
“쇳독 생길 거 같은데.”
살려줘.
“안 생겨, 빨리 와.”
“사실 제가 쇠를 만지면 큰일 나는 병이 있어서.”
“헛소리하지 마, 인마.”
엉엉 울면서 가기 싫다고 고개를 저었지만, 내 의지 따위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근육질의 선배 손에 팔목을 단단히 부여 잡힌 채 끌려갔다.
주사 맞기 싫어 우는 어린아이도 이런 꼬라지는 아닐 텐데.
“…하아.”
저 사람이 왜 여기에?
먼저 와서 단련을 진행 중이었던 선수들은 여기서 볼 거라 생각도 못 한 인물이 나타나자 놀라워했다.
혹은 재밌어했다. 아니면 기대를 품는 이도 보였다.
헬린이구나. 좋은 먹잇감이다.
땀내들 때문에 분명 평균보다 더워야 할 공간에서, 나는 이유 모를 서늘함을 느끼고 있었다.
“형, 무슨 일이에요?”
나를 신기하게 보던 이들 중 한 명은 혁준이였다.
그 강력한 직구와 피지컬은 역시, 꾸준한 웨이트 덕이었던 건가. 그렇다면 나도 의욕이 생긴다.
“아니… 좀. 그냥 한번 와봤는데.”
“한울이도 웨이트 좀 해보고 싶대서.”
“오.”
혁준이는 반색하며 짝짝짝짝, 박수를 쳤다.
불펜에서 전천후로 구르며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는 형님인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까지 기대하는 녀석은 변태새끼가 틀림없다.
“그래서… 뭐부터 하면 돼요?”
“하체부터 할까?”
“그쵸? 하체부터 조지… 시작하는 게 좋죠?”
악마들이 분명하다.
“그럼 뭐… 스쿼트해야 돼요?”
“스쿼트도 좋기는 한데. 투수는 런지가 더 좋지.”
“워킹 런지로 가는 게 낫겠죠?”
“초심자니까 아무래도.”
헬창 둘은 20kg짜리 봉 끝에 맨홀 뚜껑들을 끼우기 시작했다.
“잠깐만, 조, 조금만 껴요.”
“아냐, 너 근육이면 이 정도는 빼야 돼.”
“아니이!”
“형 힘세잖아요. 이거 얼마 안 돼요.”
“괜찮아, 할 수 있어.”
“…….”
둘셋, 읏차!
기다란 봉 양 끝에 달려 있는 쇳덩이를 보고 있자니 진짜 집에 가고 싶어졌다.
아무리 두 명이서 나눠 들고 있다고는 하지만, 저 무거운 것들 머리 높이까지 들고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슬슬 징그러움까지 느껴졌다.
“뭐 해, 빨리 와.”
“형, 무거워요.”
“아… 예.”
덕분에 팔자에도 없는 웨이트가 시작됐다.
“크악……!”
지긋하게 나를 내리누르는 중력을 이겨내야 한다.
힘겹게 왼발을 제자리에. 한숨을 후우, 쉬고 이번엔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으옥……!”
어디 싸움이라도 거나하게 행해지는 소리가 딱히 원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재생되었다. 다리도 다린데, 목 뒤가 없어질 것 같다.
“이거… 몇 번짜리예요……!”
“여덟 번.”
“X발!”
이제 한 번.
“몇 세트짜린데…요!”
“3세트는 해야지.”
“X발!”
어렵사리 1세트 완료.
바벨을 대충 뒤로 내던지고 곧장 주저앉았다. 탱탱 불어나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다리를 부여잡고 있자니 절로 엉엉, 하고 울음이 튀어나왔다.
짝! 짝!
“자자, 2세트 가즈아아.”
“가즈아앗!”
선배 가즈아앗!
가즈앗!!
어느샌가 헬창들이 주변에 모였다.
짝짝짝!
무섭게 박수까지 치며 헬린이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내 몸을 위해서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이곳에서 도망칠 자신이 없었기에 억지로 봉을 잡았다.
분명 힘내라는 뜻으로 응원의 미소를 짓고 있는 걸 텐데, 나에게는 괴로워하는 시민을 보며 즐거워하는 악마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아오오…옥!”
2세트 시작. 왼발을 앞으로, 제자리로. 오른발을 앞으로, 제자리로. 휴식이 큰 도움이 되었다. 2세트까지는 할만했다.
“학!”
3세트 시작. 왼발을 앞으로, 오른발을 앞으로.
“와흑…….”
3세트는 확실히 빡셌다. 서있던 자리에서 주저앉는 것조차 나에게는 사치였다. 그대로 쓰러져 다시 한번 다리를 부여잡고 엉엉 울었다.
띠링―!
[런지 세트]
- 워킹 런지, 사이드 런지, 백워드 런지를 3세트씩 완료하세요. (1/3)
- 보상 ― 포심 +5
아니, 이건 너무 하잖아.
“워, 워킹 런지했으니까. 사이드런지 해야지.”
“뭐야, 진짜로 계속할 생각이었어?”
“안 그랬으면 안 왔죠.”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한다. 퀘스트까지 뜬 이상, 그 퀘스트의 보상이 너무나도 달달한 이상 포기할 수가 없다.
딴에 운동선수라는 타이틀을 쥐고 있던 마지막 자존심인지, 당장이라도 숨질 것 같이 느껴졌던 다리는 생각보다는 금방 회복되었다.
괜히 트레이닝장 안을 한 바퀴, 두 바퀴 휘휘 돌며 진정시켰다.
둘셋, 읏차아!
다시 한번 두 사람의 도움을 받아 쇳덩어리를 목에 걸쳤다.
오지게 하기 싫었다.
그래도 해야지, 해야지, 혼자서 그리 중얼거리면서 이번에는 잔뜩 멀어져 있는 양발 중 왼쪽으로 중심을 옮겼다.
“왁!”
곧바로 후회. 내가 왜 그랬을까.
“으흐……!”
허벅지에 힘을 주고 일어섰다. 세 번의 심호흡을 하고 오른쪽으로. 다시 왼쪽으로, 다시 오른쪽으로.
계속 이 짓거리를 하고 있자니 어느샌가, 무아지경의 경지에 접어들고 말았다.
나는 하기 싫은데, 내 다리는 제멋대로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내 다리지만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사이드 런지를 마치고 백워드 런지까지, 다리가 자기 멋대로 휘청거리기를 한 시간,
띠링―!
[런지 세트]
- 워킹 런지, 사이드 런지, 백워드 런지를 3세트씩 완료하세요. (3/3)
- 보상 ― 포심 +5
제구 ― 최상
구위 ― 중
체력 ― 중
포심 ― 62+5=67
커브 ― 55
슬라 ― 43
스플 ― 44
체인 ― 51
싱커 ― 51
특성
해탈 ― 어떤 타구, 상황에도 그러려니 합니다.
불편 ― 상대하는 타자가 타석에서 투수를 보면 어딘가 불편하게 만듭니다.
편안 ― 본인을 보는 이들이 편안함을 느낍니다.
결국 퀘스트를 완성시키고야 말았다.
내가 대견하게 느껴지고,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막 그래야 되는데, 전혀.
오늘따라 유난히 생각이 나는 엄마 밥 생각에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이야, 고생했다. 첫날부터 빡시게 하네.”
“형… 진짜 다급했나 보네요.”
두 사람의 웨이트 트레이닝 선배들로부터 칭찬이 나왔다. 내일 또 오자, 다음에 또 오자, 그런 여운이 가득한 말에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엉엉, 엄마 보고 싶어.
“이제 슬슬 가자.”
“어, 어딜 가는데?!”
“씻고 슬슬 게임 준비해야죠.”
“아, 난 또…….”
뭐 더 하는 줄 알고 기겁을 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주변엔 우리 셋 말고는 그 아무도 없었다.
오늘도 쇠질 잘했다, 만족스럽다 껄껄거리는 두 사람을 따라가야지,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기.”
아니, 일어나려고 했다.
“응?”
“…소, 손 잡아 줘.”
갓 태어난 망아지도 이렇게까지 부들부들거리지는 않을 텐데.
망아지보다도 못한 두 다리는 내 독립을 부정했다.
“으.”
“극혐하지 마.”
“으!”
“나도 싫어요!”
양손에 각기 다른 남정네들의 손을 부여잡으니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후들후들, 진도 5.3 정도의 흔들림은 정상적인 걸음걸이를 계속해서 방해했다.
저게 뭐야.
두 사람의 부축을 받는 꼬라지는 참, 내가 생각해도 웃겼다.
주변 사람들이 우리를, 특히 나를 보는 시선의 의미는 그 누구보다도 제대로 알 것 같았다.
겨우겨우 불펜에 도착해 의자에 앉았다.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떠난 혁준이와는 다르게 더러운 거 치우듯 으! 하며 은구 선배는 얼른 도망가버렸다.
“아오, 다리야…….”
불펜 쪽에 앉아 있는 모습은 평소 내가 경기 전 대기하던 모습과 거의 비슷했다.
뭔 일 있냐?
하지만 토닥토닥, 다리를 두들겨대는 모습을 보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한마디씩 했다.
“한울이, 8회 나가자.”
“아, 네.”
경기가 시작되고 계속해서 다리를 풀어주기만 했다. 스트레칭과 마사지를 쉬지를 않았다.
폼 롤러라는 신문물은 경악스럽기까지 했다. 요즘 과학 기술은 정말 대단하구나.
뻥!
“어우, 웨이트 빡시게 하셨나 보네.”
미트에 꽂히는 직구의 위력이 예사롭지가 않다. 지금 당장, 그 누구보다도 깊게 체감하고 있을 건영이가 그렇게 이야기하는 거다. 틀림없다.
뻥!
단순한 몸풀기인데도 느낌이 좋았다. 확실히 좋아졌다는 게 느껴진다.
‘포심 +5’의 위력이란 정말이지…….
뻥!
최고다!
“한울이, 올라가자.”
“아, 네.”
후들거림을 강제로 숨기고 마운드로 설설 향했다. 언제나처럼 울려 퍼지는 내 등장곡.
하지만 옛날과 같은 환호는 존재하지 않는다. 편차를 생각한다면 오히려 16시즌 때보다 더한 고요함이었다.
실망감.
언제나 그 자리에서 그 모습 그대로 있을 거라 생각했던 이가 이렇게 망가진 대가였다. 묵묵히 주머니 속에 챙기고 플레이트를 밟았다.
연습 투구의 가장 처음은 직구.
뻥!
살살 점프하며 하체를 풀어주었다. 반구 되어 돌아오는 공과 놀라서 땡그래진 규학이의 눈알이 비슷하게 보인다.
기분이 좋아져 또 한 번 직구를 던졌다.
뻥!
조금 무성의하게 던진 공은 크게 빠져나갔다. 집중, 다리에 집중을 해야겠다.
100%가 아닌 다리로 평소의 딜리버리를 이행하기엔 후유증이 확실했다.
집중, 집중력 가득한 투구가 이번 등판의 컨셉이다.
띠링―!
[집중력]
- 집중하는 투구로 1이닝 무실점하세요. (0/1)
- 보상 ― 슬라이더 +2
봐봐, 퀘스트도 똑같은 얘기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