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평화로운 불펜생활-88화 (88/190)

88화. 경쟁

원하 챌린저스 이명진, 복사근 손상으로 10일 결근 확정 [단독]

상수 타이거즈를 맹렬히 추격하던 원하 챌린저스가 암초와 만나도 말았다. 고정 1번타자이자 주전 유격수를 맡고 있는 이명진이 복사근 손상을 입은 것.

어제 동성 호넷츠와의 원정경기 7회초 공격, 스코어링 포지션에 두 주자를 두고 친 타격과정에서 근육에 손상을 입고 말았다.

팀 관계자는 그렇게 심한 부상은 아니고 약 일주일 정도면 완전 회복이 되는 부상이지만, 회복 이후를 대비해 열흘 정도 2군으로 내려 충분히 쉬게 할 요량이라 밝혔다.

현재 이명진의 대체재로 가장 확률이 높은 것은 팀의 백업 내야수로 기용되고 있는 박헌희와 김기범.

풀타임 시즌의 박헌희는 홈런 약 10개, 2루타는 약 20개 정도의 갭히팅을 기대할 수 있는 타자지만 수비에서 많은 부족함을 드러내고 있다.

반면 김기범은 내야 모든 포지션에서 평균 이상의 수비력과 리그에서 가장 빠른 발을 가지고 있지만 타격에서 매우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헌희와 김기범의 장점만을 합친 이명진의 자리가 무려 열흘이나 공백이 된다는 것은 상수 타이거즈와 1위 경쟁을 잇고 있는 원하로선 매우 뼈아플 예정이다.

전반적으로 나이가 어린 주전 선수들 대부분이 완성형이라 일컬어지는 반면, 뎁스는 리그에서 최하위권에 그치는 평가를 받고 있는 원하 챌린저스.

슬슬 FA 폭탄이 터지기 직전이다. 어찌보면 원하 챌린저스의 플랜 B를 미리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 * *

명진이가 이탈함으로 우리 팀은 두 가지 측면의 수정 사항을 거쳐야했다. 하나는 수비 포지션, 하나는 배팅 라인업.

게임에서 가장 먼저 타석에 들어서며 팀의 첨병 역할을 해야하는 1번타자. 단순히 발 빠르다고 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수비에서 가장 많은 타구가 향하고, 또 가장 어려운 타구가 많이 가는 유격수 포지션. 단순히 수비 잘한다고 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따악-!

딱-!

따악―

시합 전 연습 배팅. 헌희는 배팅 케이지에서 열심히 타구를 쏘아내며 본인의 무력을 시위했다.

타구들의 속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담장을 넘어가는 타구의 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라이너성의 타구들이 참, 저거 맞으면 죽겠다 싶은 속도로 날아가고 있었다.

단순히 힘만 좋은 게 아니라, 어려운 코스라든지 속도의 변화라든지, 변칙적인 상황에서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곧잘 대처하는 커버 능력까지.

기범이는…….

띡―

칙!

미안하다. 차마 친구라도 이건 커버쳐주기가 좀 어렵구나.

나라에 따라 다르다고 들었지만, 우리나라 같은 경우 배팅볼의 정의는 간단하다.

기 살리기.

진짜 치라고 줄테니까, 빵빵 쳐서 그 감을 경기 때도 이어가라, 그런 의미.

근데…….

딱―

“2땅.”

아, 물론 모든 타격의 결과가 안 좋은 건 아니다. 얘도 프론데, 좋은 타격으로 좋은 타구를 날린 횟수도 많다.

단지, 헌희에 비해 현저하게 덜할 뿐.

이후 수비에 대한 테스트가 시작됐다. 둘 다 내야쪽을 지향하고 있기에, 또 명진이의 공백을 채울 목적이 있기에 유격수 쪽에서 펑고 시작.

“헌희야, 바운드 맞춰야지.”

“발이 카만 있음 안 된다. 살짝 옆에서, 보고 너가 맞춰 들어가야지.”

“손, 손. 내리고 있어라. 위에서 내려가면 절대 속도 못 따라간다.”

딱!

촤악―

“지금은 출발이 늦엇지이?”

헌희는 수비에서 많은 약점을 드러냈다. 평범한 땅볼을 불규칙 바운드로 잡아낸다던가, 조금만 빨리 발을 움직이면 잡을 걸 몸을 날려가며 따라가고, 결국엔 놓친다던가.

확실하게 헌희 쪽으로 기울던 천칭은 은근슬쩍 기범이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그렇지. 손 조금만 빨리 움직이자, 기범이.”

“송구 쪼금만 편하게 하자. 그렇게 잘 잡았으면, 굳이 세게 안 던져도 돼.”

“아, 좋다.”

딱!

착!

“아이, 나이수!”

김관희 수비코치님이 살짝 잘못 친, 안타성에 가까운 타구를 다이빙 스탑으로 막아낸 뒤 멋진 송구.

공격과 수비, 그 중 수비에 조금 더 롤이 부여된 유격수라고 해도 타순에 들어가야 한다. 지명수비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감독님의 머리는 꽤나 아플 것으로 예상된다.

* * *

하루 쉬고 화요일, 잠실구장. 비스코와의 3연전이 시작되기 전, 원하의 라인업이 발표됐다.

아, 결론부터 말하자면 명진이의 공백 첫 날은 헌희의 방망이가 조금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스타팅 라인업에서 기범이의 이름 대신 헌희의 이름이 먼저 들어갔으니까.

고작 사람 한 명이 새로 추가된 것을 위해 꽤나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수비 쪽에선 성훈이형이 유격수로 들어가고, 헌희가 3루에 들어갔다.

타순 또한, 헌희의 타격 성향이 1번 쪽에는 어울리지 않는고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유훈, 강성현, 박헌희, 박진형, 윤승주, 남기성, 문규학, 이성훈, 전성문의 타순.

새로 추가된 라인드라이브 타자를 3번에 박아놓기 위한 변화였다. 맨 뒤에 있던 훈이를 맨 앞으로 땡겨오고, 발 빠르고 뒤로 잘 이어주는 7번타자를 맨 뒤로 후진배치.

타격에 조금 눈을 뜬 규학이는 한 계단 내려왔고, 살짝 부침을 겪는 기성이와 수비의 비중이 조금 더 부가된 성훈이형을 각각 6번과 8번에 두며 부담을 줄인다.

“어색하네.”

1회초 수비가 끝난 뒤, 가장 먼저 타격 장비를 차고 타석으로 향하는 훈이를 보며 중얼거렸다.

3번타자, 박!! 헌!! 희이!!!

훈이는 무려 공 9개를 던지게 한 뒤 실책으로 출루. 다음으로 나선 성현이가 몸에 맞는 공으로 또 출루.

아웃카운트 하나도 없이 주자가 둘이나 있는 장면. 박헌희라는 선수를 무려 3번자리에 꽂아준 그 이유를, 앞으로도 그렇게 해야 할 명분을 헌희 본인이 증명해야한다.

첫 타자부터 많은 공, 실책, 몸에 맞는 공.

수비 시작부터 좋지 않은 것들만 연속된 비스코는 1회부터 타임을 부르며 투수코치가 올라와 배터리를 독려했다.

때문에 생각이라는 걸 정리할 보너스 시간을 얻은 헌희는 배트를 무식하게 휘두르며 본인의 상태를 점검했다.

부웅―

부웅―

격한 스윙으로 살짝 흐트러진 헬멧을 다시 고쳐쓴 뒤 우리 덕아웃을 흘끔 보고 타석으로.

뻥!

“하잌-”

149km의 빠른 공, 구심이 우리를 검지 손가락으로 쿡 찌르며 들어왔음을 알렸다.

오늘은 임호택의 변화구가 전반적으로 잘 안 먹히는 날이다. 훈이가 무려 공 9개를 던지게 하며 확인했고, 성현이가 커브를 몸에 맞아가며까지 재차 확인했다.

그럼 뭘 던지겠어.

딱-!

직구지.

“갔…!”

바깥쪽으로 보이는 직구를 굳이 힘들이지 않고 결대로 밀어쳐서 멀리 보냈다. 타격 자세보다 과격한 결과물은 아쉽게도 담장 직전에서 잡히고 말았다.

우익수 플라이 아웃, 기록지에는 그렇게 적히겠지만 결과가 그럴 뿐, 과정은 절대 나쁘지 않았다.

리드를 잡던 성현이는 다시 1루로 돌아갔지만, 훈이는 태그업으로 쉽게 3루에 안착.

딱-!

덕분에, 이어지는 진형이의 적시타로 쉽게 한 점을 먼저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전통적으로 불펜이 강한 비스코다. 그런 비스코를 상대하며 승리를 가져오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

딱!

“갔다아악!!”

“허니허니야!!”

리드를 잡고 있을 것.

아직까지도 부족함이 많지만, 꽤나 성장을 한 우리팀 타선으로도 비스코의 불펜은 뚫기가 힘들다.

이길 생각을 갖고 있다면, 비스코의 불펜진이 가동되기 전 먼저 점수를 내고, 그 리드를 유지해야 한다.

안타를 치거나 점수를 내는 것보다 ‘무언가 보여주어야 한다’라는 임무를 받은 헌희는 그 조건을 아주 멋지게 만족시켰다.

규진이형이 연속 안타로 2점을 내주며 역전 당한 3회초.

첫 타석의 좋은 타격감을 이어 두 번째 타석, 잠실구장의 중앙 펜스를 살짝 넘기는 투런포를 쳐내며 다시 한 번 우리쪽으로 리드를 가져왔다.

“예에에에!”

“허니허니, 이 꿀 같은 새끼!”

“달달하십니까아악!!”

“당뇨병 걸리겠다!!”

헌희는 마음껏, 본인이 펼칠 수 있는 기량을 모두 펼쳐보였다.

“아….”

수비에서도.

여유 가득하게 잡아낼 수 있는 땅볼을 더듬고 더듬어 간담을 쫄리게하며 아웃을 잡아낸다던가.

더블 플레이를 위해 2루로 토스한 공이 생각보다 높은 위치로 날아가 결과적으론 카운트를 하나밖에 잡지 못 한다든가.

실책으로 기록만 되지 않을 뿐이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실책성 플레이로 기록할만한 플레이들이 몇 개 보였다.

그런 와중,

띠링-!

[수비 불안]

- 3루수 땅볼을 2개 이상 잡아내세요 (0/2)

- 보상 - 슬라이더 +2, 스플리터 +2

나에게 당도한 퀘스트.

“아이고야….”

5 대 2.

꽤나 여유가 있는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라 연습투구를 마치고 로진을 듬뿍 발랐다. 규학이의 2루 송구 이후는 언제나와 같은 내야수들의 라운딩.

마지막으로 공을 받았던 헌희의 머리 위에 텍스트가 떠있었다.

“왜 그러세요?”

“헌희야.”

“네.”

“…잘하자.”

“예에!”

아니, 말고. 수비 잘하자고.

무조건적으로 3루수쪽에 타구가 향하도록 하는 것도 어려운데, 또 그걸 헌희가 처리해주어야 한다.

“아이고 두야….”

지끈거리는 것 같은 머리를 흘려내고 선두타자를 확인했다. 비스코 러너즈에서 포수를 맡고 있는 강용.

어떻게 이어간다.

손 안에서 뒹굴거리는 공을 꽉 잡고 허리를 살짝 낮췄다. 규학이의 손가락을 계속 움직이게하며 몇 초 정도의 시간을 벌었다.

이제부터, 3루수 땅볼을 위한 여정이 시작될 거다. 모든 스탠스와 구종은 내 오른쪽을 향한다.

빵―

“하잌-.”

일단 바깥쪽 낮은 구역의 슬라이더부터. 초구는 지켜볼 확률이 높을 거란 확실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혹시라도,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한 보험책이었다.

다음은?

뻥!

“볼-”

신경을 바깥쪽으로 두게 하자, 라는 의식은 바깥쪽에 직구를 던지도록 했다. 노리지 않았다면, 또한 노려도 3루수 쪽으로 갈 확률은 낮았기에 일부러 볼로.

슬쩍, 눈이 헌희 쪽으로 향했다.

제자리에서 퉁퉁퉁 뛰며 한 번 올라온 열이 제멋대로 기화하지 않게 노력하고 있었다.

믿는다.

다시 허리를 낮추고 사인을 확인했다. 이번에도 바깥쪽 직구 사인. 나와는 생각이 다르게 규학이는 내 오른쪽으로 공을 보낼 생각이 없어보였다.

이게 정상이지. 정상인데…….

뻥!

“보올-.”

내 마음은 그쪽으로 향하지 않았다.

다음 사인 또한, 딱히 원하는 공이 나오지 않자 또한 내쪽에서 움직이게 되었다.

새끼손가락 쪽의 손가락 세 개를 펴고 이곳저곳을 터치했다. 내 의도를 확신하지는 못 하지만, 규학이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뭐, 역의 역을 노려보자, 그런 걸로 생각하겠지.

글러브 안에서 교체된 그립은 내가 보내기 위해 폈던 사인의 손가락의 모양과 얼추 비슷했다.

엄지 손가락 바깥쪽에 검지가 삐져나오는 괴랄한 그립을 잡고 던진 공은 강용의 몸쪽으로 향했다.

말이 몸쪽이지, 객관적으로 보자면 살짝 애매하게 제구된 직구.

띡―

…처럼 보이는 체인지업.

바깥쪽에 모든 신경이 쏠려있다 갑작스레 몸쪽 공을 맞게 된 타자는 급하게 배트를 방출했다.

그게 패인이었다. 완벽한 채비를 마치지도 못 하고 급하게 출발한 배트가 적정 구역에 도착해도 상대방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스쳐지나가버린 적정 구역의 한참 앞에서, 어설픈 스윙으로 건드린 공은 데굴데굴 굴러서 3루와 유격수 사이로 향했다.

타구가 그리 빠르지는 않았기에 유격수보다는 3루수가 잡아야 하는 공. 노렸던 내용보다 살짝 유격수쪽으로 치우친 결과가 나오긴 했지만,

띠링-!

[수비 불안]

- 3루수 땅볼을 2개 이상 잡아내세요 (1/2)

- 보상 - 슬라이더 +2, 스플리터 +2

그래도 원하던 결과를 하나 얻어내기는 했다.

3루수라면 응당 처리해야 할 수비였지만,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글러브의 손가락이 이리저리 휘둘릴 정도로 세게 박수를 치고 다시 플레이트를 밟았다.

다음으로 타석에 들어선 이는 1번타자, 이영호. 규학이쪽에서 별다른 조정이 없자 플레이트에서 발을 뺐다.

헌희를 조금 앞으로.

간단한 얼라인먼트를 마치고 다시 사인을 확인했다. 이번엔 초구부터 몸쪽을 요구했다. 조금 전, 헌희의 수비를 보고 어딘가 확신 아닌 확신이 생긴 모양.

뻥!

“하잌-.”

초구는 깊숙하게 직구를 던지며 스트라이크 하나를 받아냈다. 다음으로는 싱커가 좋지 않을까.

싱커.

규학이와 마음이 통했다. 몸쪽에 싱커를 던져서, 또 한 번 같은 방향으로 타구를 보내보자, 라는 공동체 의식이 생겼다.

두 손가락 끝에만 느껴졌던 실밥이 감촉은 곧장 두 손가락 전체에 느껴지도록 변경되었다.

손가락들을 만족스럽게 채우는 감촉에 만족하며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직구와 크게 다르지 않도록 던지는 공은 끝자락에 가서, 슬쩍 가라앉고 있었다.

…어?

이제서야 슬슬 보여야 할 배트의 머리가 벌써 보인다. 아니, 배트의 모든 부분이 다 보인다.

이영호는 배트의 목을 조르며, 굳이 본인이 공을 때려낼 생각이 없음을 표현했다.

띡―

“아!”

여기서 기습번트라니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