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반드시 잡는다
성문이가 때려낸 공은 그리 잘 뻗지는 못 했다.
순간 타구 각도를 보고 넘어가나 싶은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내야를 넘어가는 순간 급격하게 속도를 줄였다.
“…고!”
그러나 3루에서 신호탄을 쏠 명분은 충분하다.
3루에 묶여있던 성훈이형은 3루 주루코치님의 신호를 밟고 다시 한 번 이를 악 물었다.
“홈!! 숏 왼쪽으로, 왼쪽 붙어어!!”
점수를 막기 위한 상대 포수의 외침. 처절함의 농도가 짙어질 수록 주자와 홈 사이의 거리는 조금씩 줄어든다.
어깨가 그리 강하지 않은 민종현이 있는 힘껏 던져봐야 송구의 방향만 틀어질 뿐이다.
포수의 빠른 상황판단 하에 왼쪽으로 걸음을 옮긴 신태범이 홈으로 바로 릴레이를 이어던졌다.
촤악-!
거의 비슷한 타이밍.
덕아웃 쪽에선 정확하게 판단하기가 어렵다. 심판도 마찬가지인지 쉽게 판정을 내리지 못 하고 있다.
“…아웃!”
와아아아아-!!!
상수의 홈. 당연히 본인들에게 유리한 판정이 나오면 집안이 떠들썩해지기 마련이다. 그에 우리는 기가 죽는 게 당연하고.
- 원하 챌린저스의 요청으로 홈에서의 아웃 판정에 대한 비디오 판독을 실시합니다.
하지만 성훈이형, 그리고 심판과 비슷한 위치에서 해당 장면을 캡쳐한 성현이가 동시에 네모를 그린다.
덕아웃에서도 승산이 있다 판단했는지, 곧장 감독님이 뛰쳐나와 심판진에게도 비슷한 모션을 취했다.
빰, 빰. 빠바밤. 빰, 빰. 빠바밤―
괜히 분위기를 잡는 음악소리가 구장을 채웠다. 전광판엔 ‘비디오 판독중….’ 이런 멘트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 세잎인데!”
“세이프 맞아. 맞을 거야.”
“난 좀 애매한데….”
“이 새끼 반역자다, 죽여!”
합의 판정에 대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 덕아웃 내부에서도 여러 의견들이 갈렸다.
세이프를 확신하는 사람, 조심스럽게 아웃을 예상하는 사람.
감정의 골이 깊어진 두 진영 사이에서 저렴한 표현들이 나올 무렵,
우우우우우-!!
홈 팬들이 커다란 야유를 쏟아낸다. 그와는 정반대로,
“야아아악!!”
“이성훈! 이성훈!”
“전성문! 전성문! 전성무운!!”
무수한 악수가 다시 한 번 쏟아지는 우리 덕아웃.
이 경기, 더 나아가 이 시리즈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건 우리 팀만이 아니었다.
선발투수 성상진이 실점을 허용하자마자 반대쪽 불펜에서 필승조 중 한 명인 김신우가 뛰어올라오고 있었다.
필승조.
필승, 반드시 이긴다는 일념은 꼭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만 지껄여야 하는 단어가 아니었다.
뒤집을 각이 보일 때. 혹은 그런 각이 전혀 보이지 않아도 그런 분위기를 풍겨야 할 때.
지금 상수의 상황이 그랬다.
“성현이 거르나?”
“거르지 않을까.”
성현이는 열심히 때리고, 때린 데 또 때려서 최근 일주일간 타율 5할을 기록하고 있다. 반면 기성이는 살짝 가라앉았는지 1할 중반의 타율.
마지막에 삐끗해버린 릴레이와 판정 탓에 1루주자가 2루까지 진출한 상황이기도 하다.
날고 기는 2번타자를 거르지 않는 배터리는 바보고, 그러다 또 적시타를 허용하는 배터리는 병신이다.
성현이가 타석에 들어서며 잠시 중단되었던 경기가 재개될 준비를 마쳤다. 구심이 플레이 콜을 외치고, 김신우는 2루의 병천이를 확인한 뒤,
“스타이잌!”
대뜸 몸쪽의 직구를 던져버린다.
“안 걸러?”
“그럼 땡큐지!”
“한 점 더 가자아악!!”
초구 때보다 2구째를 준비하는 배트의 움직임이 조금 거칠어졌다. 가볍게, 가볍게 통통 움직이던 배트가 상하좌우로 퉁, 퉁 박자를 맞춘다.
타이밍.
준비 동작에서 저렇게 배트를 움직이는 모습은 투수와의 박자를 맞춰보는 메트로놈이 된다.
퉁, 퉁, 퉁, 따악-!
3/4 박자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 결과도 좋아야 하겠지만,
와아아아-!!
중견수의 다이빙은 내달리던 타자주자의 다리를 멈춰세워버렸다.
덕아웃으로 다시 돌아오는 성현이는 으아아아악!! 하는 괴성을 지르며 아쉬워했다. 머리를 감싸쥐는 두 손 위에 위로의 뜻이 담긴 타인의 손들이 얹어졌다.
“힘쇼.”
“엉야.”
규진이형이 공언했던 7회까지 남은 2이닝.
“스타아앜-!!”
오늘의 선발투수는 본인이 내걸었던 공약을 완벽하게 지켜냈다.
7이닝 동안 무실점. 보낸 주자라고는 7회말, 안타를 치고 나간 선두타자.
“…한울이, 준비하자.”
“네!”
총 107개의 투구수를 기록한 스타팅 피처에게 모두가 두 손을 머리 위로 들며 경의를 표했다.
“아, 하지 말라고!”
는 무슨, 그냥 키 작다고 놀리는 거다.
“건영아!”
“예에!”
7회말이 시작되자마자 고동욱이 안타를 치고나갔지만, 바로 다음 타자로부터 병살을 뺏어내며 3번타순에서 수비가 끝났다.
“…또 만나겠네.”
그렇다면 8회말, 시작하자마자 만나게 될 녀석은 바로 그 놈, 박해진. 맨날 처맞기만 하다가 드디어 한 방을 먹인 기억은 절대 잊을 수가 없다.
“뭐라 그랬더라….”
저희도 그리 만만히 자리를 내드리진 않을 겁니다.
“나쁜 새끼.”
작년 시상식 때 벌어졌던 귀여운 신경전이 생각났다. 저절로 공을 쥔 오른손에 까득, 하고 힘이 들어갔다.
뻥!
“아이, 좋아요!”
공을 때리는 오른손의 감각이 생경하다. 과하게 들어간 힘 때문일까,
뻥!
“미트 찢어져어어억!!”
한 번 해보니까, 알겠더라구요.
언제였지. 혁준이가 그딴 소릴 지껄였던 게. 작년 미디어데이였던가.
비록 원하고 원하던 삼진은 아니었지만, 박해진으로부터 아웃 카운트를 뺏어낸 경험은 팩트다.
통산 상대 타율이 ‘1’에서 그 아래로 떨어졌음은 나에게 이유있는 자신감을 전달했다.
뻐엉-!
“어우, 형 조만간 150km 나오는 거 아냐, 어어?!”
나오겠지. 난 아직도 성장하고 있으니까. 계속 성장할테니까.
“후우….”
잠시 완급조절이 필요하다 느껴져 투구를 멈췄다.
육신보다는 멘탈에 대한 완급조절.
“한울아, 나가자.”
“예예.”
뻥!
“아 형니임! 힘쇼오오어!!”
불펜포수의 우렁찬 화이팅은 울렁이는 멘탈 위에 뚜껑을 덮는 것과 같았다.
내게 제일 익숙한 마운드를 정반대 방향으로 오르고 있었다. 어색함의 극치.
뻥!
하지만 막상 오르고 나면 그런 건 사라진다.
뻥!
우리가 입고 있는 남색의 옷가지도,
뻥!
“아이, 좋아좋아!”
규학이가 차고 있는 하얀색의 포수장비도,
뻐엉―
“진짜 좋다! 조금 살살해도 돼요!”
상수보다 위에 위치하게 될 우리팀의 이름도,
뻥-!
“굿볼, 굿굿!”
저기, 천천히 걸어들어오는 박해진도.
플레이!
“후우….”
고개를 살짝 올린 뒤 크게 숨을 내쉬었다.
띠링-!
[반드시 잡는다!]
- 중요한 시합, 1이닝 무실점하세요! (0/1)
- 보상 - 변화구 +2
- 특별 보상!
- 퀘스트 달성 시 랜덤 특성 획득!
“후!”
하늘에 떠있는 하얀색 텍스트를 끝으로 호흡을 마무리한다. 그러면 시야에 보이는 박해진. 그리고 규학이.
제 왼편의 타자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본 포수가 결재를 요청한다.
뻥!
“스타이잌-!”
147km짜리 몸쪽 직구, 컨펌.
나는 빠르게 다음 의견안을 재촉했다.
몸쪽 직구, 바깥쪽 커브의 기획안이 올라왔지만 모두 까고 높은 직구에 대한 기획안을 채택했다.
뻐엉-!
“볼, 하이볼-.”
살짝 힘이 들어갔나, 예상지점보다 공 두 개 정도 높이 날아가며 볼이 되어버렸다.
던지자마자 확인했던 박해진의 움직임을 다시금 되새김질했다.
조금의 미동도 없이, 눈알의 움직임만으로 구역을 파악하는 모습은 진짜, 치가 떨렸다.
좀, 대충 휘둘러주면 어디 덧나…….
“끅!”
…냐!
뻥―
“스타아아잌!”
직구보다도 암스피드를 높여서 때려던진 커브는 이전보다 훨씬 예리한 각도를 그리며 바깥쪽 아래에 꽂혔다.
어때, 좀 놀랐냐?
무표정을 디폴트로 두고, 거기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 박해진의 눈썹이 약하게 꿈틀거리는 게 보인다.
“후!”
하나의 볼 카운트, 그리고 두 개의 스트라이크 카운트.
일단 유리한 카운트를 만들었지만 마음을 놓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박해진한테 처맞는 카운트라는 게 항상 내가 유리했을 때거든.
고르고, 고르고, 고르고 또 골라도 적당한 타개책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답답함에 오른발을 옆으로 비껴내버렸다.
우우우우―
왜 빨리 승부하지 않냐고, 왜 빨리 처맞지 않냐고 홈 팬들이 발광한다.
내 알 바야.
무시하고 로진을 집어들었다. 로진백 안의 가루가 뽀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쥐어짜고나서야 오른손의 상태가 맘에 들었다.
스플리터? 체인지업? 슬라이더?
“아니지.”
직구. 직구가 던지고 싶어. 지금이라면 진짜 제대로 던질 수 있을 것 같은데.
메세지는 검지 손가락을 타고 18.44m 앞으로 날아갔다.
“후우….”
와인드업 자세에서 허리춤이 미세하게 앞뒤로 반동했다. 머리가 숙여진 덕분에 길게 호흡을 내뱉기도 편했다.
“흐으….”
왼무릎이 가슴께를 스치고 오른쪽으로 향했다. 자연스럽게 비어버린 왼쪽 골반은 포수에게, 그리고 타자에게 훤히 보일 거다.
“으…악!”
최대한 무릎의, 골반의, 어깨선의 열림을 막았다. 내가 가진 모든 힘을 쏟아부을 준비를 마치고,
따악-!
던져낸 공은 빠르게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박해진이 1루쪽으로 설설 뛰어가는 바람에 내 시야에선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래, 맨날 내가 홈런 맞았을 때와 같은 구도. 난 맞은 충격으로 가만히 서있고, 홈런의 감을 느낀 박해진은 천천히 뛰어가고.
하지만 그 구도와 아주 다른 한 가지가 있었다. 한 번 느껴 본 적이 있는 차이점이기도 하고.
“아웃-”
내 오른쪽에서, 내 뒤편을 바라보고 있을 3루심의 아웃 콜을 듣고 나서야 몸을 돌렸다.
담장 앞에서 타구를 잡은 훈이가 천천히 뛰어와 내야로 공을 던지는 모습이 보였다.
“한울이 볼 좋네!”
“내가 좀 잘생겼지!”
“아 그건 좀.”
자신감.
뻥!
“스타이잌!”
박해진을 또 잡아냈다, 단 한 마디의 말은 자연스럽게 내 정신능력의 한 부분을 상향시키고 있었다.
투닥―
“스윙, 스윙!”
향상된 멘탈은 당연히 육체에도 좋은 영향을 끼친다.
뻥-!
“스윙, 아웃-.”
던지면서도 느낀다. 계속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있다는 게. 하지만,
띡―
“파울-.”
좋은 느낌이다. 어깨에만 힘이 들어가는 게 아니라 다리에도, 배에도, 팔에도 힘이 더욱 증폭된다.
뻥―
“스타이이잌!”
볼 없이 스트라이크만 두 개를 잡은 타석. 규학이를 쳐다보는 내 얼굴에 환한 미소가 걸려져있다는 걸 그 누구보다 내가 제일 짙게 느끼고 있다.
검지와 중지를 벌린 채 다가온 사인과 비슷한 손 모양으로 그립을 잡았다. 웃느라 맞닿은 윗니와 아랫니 덕에,
“끅!”
스플리터를 던지는 악력엔 아주 극치를 찍었다.
투닥―
“스윙, 스윙-.”
몸쪽에서 미묘하게 더 깊이 꺾이며 떨어지는 스플리터에 헛스윙을 한 헌철이가 뒤를 슬쩍 쳐다보곤 뛰기 시작했다.
블로킹이 조금 애매했는지 공이 살짝 옆으로 흘러나갔지만 재빨리 주워서 던진다면 1루에서 아웃을 잡기엔 충분했다.
“아웃-.”
바로 지금처럼.
띠링-!
[반드시 잡는다!]
- 중요한 시합, 1이닝 무실점하세요! (1/1)
- 보상 - 변화구 +2
- 특별 퀘스트 성공! 랜덤 특성 획득! 상태창에서 확인하세요!
제구 - 최상
구위 - 상
체력 - 중
포심 - 71
커브 - 59+2=61
슬라 - 53+2=55
스플 - 53+2=55
체인 - 55+2=57
싱커 - 55+2=57
특성
해탈 - 어떤 타구, 상황에도 그러려니 합니다.
불편 - 상대하는 타자가 타석에서 투수를 보면 어딘가 불편하게 만듭니다.
편안 - 본인을 보는 이들이 편안함을 느낍니다.
랜덤 특성 획득! 해제 시 특성 1개를 랜덤으로 획득합니다.
“나이쓰 피쳐어어!”
“이어가, 이어가!”
“점수 더 내애!”
덕아웃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둥글게 말아진 손가락이 펴질 생각을 않았다. 기쁨과 후련함, 그 두 가지가 옅어져서야 주먹이 펴졌다.
“가자, 점수 더 내자아아악!!”
기쁜 기록 하나를 남긴 날, 우리 팀은 상수 타이거즈를 잡아내며 경기 차를 1게임 차로 줄여내는 데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