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안 아프게
“음. 다행이네요. 크게 문제는 없어요. 그냥 멍 살짝 들고 말 정도?”
“아이고야….”
가슴께를 타고 내려가는 트레이너님의 오른손과 반대 방향으로 깊은 안도의 숨이 향했다.
“거기다가 오른손 투수니까 더더욱이 다행이죠. 왼손 한 번 주먹쥐어봐요.”
“예…뭐.”
“아프세요?”
“아뇨? 딱히.”
“그럼 됐어요. 찜질 정도만 해주시면서 관리만 잘해주시면 되고. 실금 같은 것도 아니니까 트레이너님도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이상없습니다, 땅땅땅.
의사 선생님은 그렇게 결론을 내리셨다.
“아우…놀랐잖아요, 한울 씨.”
“저라고 안 놀랐겠어요, 허허.”
“진짜 다행이네요.”
“그래도 의사분 말씀대로 생각해야죠. 오른손 안 맞은 게 어디며, 얼굴 안 맞은 게 어디예요.”
“그건 진짜 다행이네요. 오른손이야 둘째치고 얼굴에 그대로 맞았으면….”
배트에 반사된 타구가 시야를 가득 메우던 장면은 지금 생각을 다시 해도 아찔했다.
아웃 카운트를 위해서, 더블 플레이를 위해서, 뭐. 다 필요없고 정말 살려고. 생존본능이라는 것이 날 살렸다.
“…이 세상에 없겠죠.”
발갛게 부어오른 왼손바닥을 내려보며 이야기했다.
“그래도 등판에 문제가 있는 부위도 아니고. 당장 내일에라도 뛸 수 있으니까 괜찮아요.”
“알죠. 아는데….”
트레이너님이 자동차의 왼쪽을 깜빡이게 했다. 잠시의 대기 후 반짝이는 불빛을 따라 두 사람의 어깨선이 틀어졌다.
“내가 왜 트레이너 했는지 알아요?”
“모르죠, 나야.”
“내가 고등학교 때, 헤드샷 맞았거든.”
“아….”
“한 대 맞고나니까 타석에 들어서는 게 무섭더라구요. 트라우마라고 하죠, 그거. 서있기만 했는데, 투수는 발을 들지도 않았는데.”
이번엔 헬멧이 아니라 얼굴에 맞을 것 같은 공포심, 그거.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곤 왼쪽으로 틀어졌던 핸들의 중심선을 맞춰냈다.
“안 그래도 유리몸이었거든. 뻑하면 어디 부러지고, 뻑하면 어디 근육 나가고. 이때다 싶어서 그만 뒀지.”
“그만 두고는요?”
“할 게 있나. 고2까지 야구했던 놈이 뭘 알아요. 공부는 안 했고, 아는 건 야구 이론 뿐이고. 근데 내가 하나 더 아는 게 있었죠.”
“다쳤을 때 어떻게 하는지?”
“그치, 그거지. 유리몸이랬잖아요. 내가 경기를 뛰어야 된다, 뭐 성공해야한다 그 이전에. 그 이전에 사람이라면 그렇잖아, 아픈 거 싫은 거.”
아파 본 사람만 안다. 그 직관적인 고통.
“아, 이거다. 아니지, 이거 밖에 없다. 아닌가? 이거라도 하자. 그렇게 이쪽 공부 시작해서 지금까지 왔지.”
“그래도 성공하셨네요.”
“어떤 의미로 보면요.”
외제 브랜드의 고급 세단.
지금 내가 타고 있는 차가 성공의 한 부분을 상징했다.
“근데 아쉬움…도 많죠.”
“선수를 못 했으니까.”
“당연하죠.”
“사회인도 못 뛰어요?”
“아직도 타석은 못 들어가니까. 딴에 선출이랍시고 투수도 못 뛰고. 어쩌다 캐치볼이나 하는 정도죠.”
그는 껄껄 웃으며 자동차의 미션을 알파벳 P를 향해 드르륵 밀어올렸다.
“그러니까 다치지 마요. 다치는 선수들 보면 내 마음이 더 아파.”
끄르륵!
사이드까지 채우며 그가 웃었다. 진심 가득한 걱정에 나도 미소가 지어졌다.
“안 아파야죠.”
* * *
왼손바닥의 통증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투구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물론, 오른손 투수라고 해서 왼손을 전혀 활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기에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었지만,
“하아아앜!!”
띠링-!
[편-안]
- 편-안하게 1이닝 3탈삼진을 기록하세요 (1/1)
- 보상 - 변화구 +2
제구 - 최상
구위 - 상
체력 - 중
포심 - 71
커브 – 62+2=64
슬라 - 56+2=58
스플 - 56+2=58
체인 - 58+2=60
싱커 - 58+2=60
특성
해탈 - 어떤 타구, 상황에도 그러려니 합니다.
불편 - 상대하는 타자가 타석에서 투수를 보면 어딘가 불편하게 만듭니다.
편안 - 본인을 보는 이들이 편안함을 느낍니다.
집중 – 집중할 수 있는 대상의 수가 늘어납니다.
이닝을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데엔 크게 무리가 없었다.
“손은 괜찮아요?”
“네네. 괜찮죠.”
글러브를 벗어내고 곳곳이 퍼렇게 올라온 손바닥을 보여주었다. 누르면 당연히 아프지만, 반대로 말해 놔두면 아프지 않다.
“이거 대고 있어요.”
“아이, 감사.”
트레이너님이 건네는 얼음 주머니를 왼손바닥에 올려두었다. 그러고 가만히 앉아있자니 도를 닦는 수행자라도 된 모습이 완성됐다.
“트레이너님.”
“네네.”
“밴드를 한 단계 위에 거를 쓸까, 고민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튜빙?”
“네.”
“음….”
어제 함께 병원을 다녀 온 이래 트레이너님과는 어딘가 부쩍 친해진 느낌이 든다.
“별로?”
하여 부담없이 질문과 답변이 오갈 다리가 마련되었다.
“그냥 원래 꺼 써요?”
“네. 그럴 거면 웨이트를 하는 게 낫지.”
“웨이트도 생각은 해봤는데 흠….”
“타자나 선발이 아니니까. 좀 애매하긴 하죠. 한울 씨가 그렇게 막, 웨이트를 열심히 해 온 선수도 아니고.”
“그렇죠…은구 선배는 대체 왜 그런 거지. 무리가 안 가나?”
“최은구 선수는 아무래도 옛날부터 그래왔으니까요. 본인 루틴인 셈인 거고, 그건.”
흠.
불만족스러운 탄식이 비강을 통해 삐져나왔다.
“그래서 그런지, 한울 씨는 보면 진짜 신기하다니까.”
“저요?”
“아니, 웨이트를 빡시게 하는 것도 아니야, 런닝을 빡시게 뛰는 것도 아니야. 그렇다고 오프 때 뭐 딱히 하는 것도 아니야.”
“…….”
갑자기 팩트로 공격을 하시면…….
“근데 구속은 계속 올라간단 말이지. 솔직하게 좀 말해줘요, 뭘 한 거예요?”
아, 그, 시스템이라는 게 있는데요, 이거 한 번 각성해서 스탯을 올리면 구속이 계속 올라요.
“그….”
…라고 말하면 미친놈 소릴 듣겠지.
“제가 그래도 근력 같은 건 좋은 편이잖아요.”
“그치. 팀 내에서도 상위권이죠. 사실, 지금 한울 씨 피지컬만으로만 보자면, 지금보다 더 나오는 게 정상이기는 해요.”
“피지컬이라….”
키는 188cm. 몸무게는 근육이 살짝 붙어서 109kg.
운동선수라는 점을 감안해도 분명 거대한 체구임은 분명하다. 프로 처음 왔을 시절의 감독님이 메이저리거 타령한 게 헛소리는 아닌 셈이지.
“물론 메카닉도. 어디 러싱나는 구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삐그덕대는 것도 아니고. 몸 전체 다 쓰는데 왜 그렇게 구속이 안 나왔을까….”
“그건 저도, 아직도 궁금해요.”
따악-!
꽤나 잘 맞은 성현이의 타구. 문학구장의 구석탱이를 넘겼다. 추정 비거리는 대략 110m 쯤 나오지 않을까.
예에에에!!
강성현! 강성현!
“롱팩 던지면 110m까지 던졌잖아요, 옛날에 구속 안 나올 때도.”
“그랬죠.”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방금의 홈런과 비슷한 숫자가 언급되었다.
“어딘가 잘못된 노선을 타고 있다가…좋은 쪽으로 확 틀어버린 게 좋은 영향을 끼친 게 아닐까요.”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으니, 되는대로 지껄인다.
“혁준이 따라했다 했죠?”
“네.”
“정확하게 어떤 모습을요?”
“왜…혁준이 보면, 시원시원하잖아요.”
“통쾌하죠.”
경험에 빗대어 꾸며낸 이야기는 허구에 속할지라도, 분명 진실은 함유되어있다.
“그렇게 좀 해보고 싶었어요.”
내가 내세울 수 있는 건 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제구력 하나. 진전이 없는 다른 부분을 키우는 것이 아닌, 내 강점을 더욱 공고히하려 했다.
“하긴. 제구만 좋아선…요즘 시대에서 살아남긴 어렵죠.”
그게 패착이었고.
“은퇴하면 코치할 거예요?”
“에이, 또 이상한 소리 하신다.”
“한울 씨 코치하길 바라는 선수 많은 거 알죠?”
“다 나쁜 새끼들이야.”
피식 웃는 동안에 가장 먼저 유력하게 떠오르는 용의자를 노려봤다. 살기가 느껴졌는지 혁준이가 움찔거리더니 뒤를 돌아봤다.
“최신 트렌드 관리법 있어요?”
“관리법? 어디 관리하고 싶은데요?”
“허리 쪽에요.”
“요즘 허리 아파요?”
“전엔 안 그랬는데, 요즘에 연투하면 허리가 좀 뻐근해요.”
“결혼도 안 했는데 벌써 그러면 어떡해.”
에이, 그러지마.
“일단 플랭크가 제일 무난하죠?”
“배에만 좋은 거 아니예요?”
“코어 전반적으로 다 효과는 있으니까. 괜히 막, 이거 알죠? 상반신만 까딱까딱하는 거.”
“아…그거. 알아요.”
“그런 거 하지마요. 더 안 좋아. 그리고…런지하면서 옆으로 틀어주는 것도 좋고.”
“음…오. 그거 좋네요.”
그 외에 여러가지 자세들을 추천받았다. 직접 자리에서 일어나 시범까지 보여주시기도 하고.
까먹을까봐 주변에 나부끼는 메모장까지 가져와서 열심히 적었다.
더 잘던지려고? 아니, 안 아프려고.
“그렇다고 너무 과하게 하지는 마요. 무리하면 더 안 좋다는 건 한울 씨도 알잖아요.”
“알죠, 알죠. 뼈저리게 알지.”
이기적인 말인 건 안다. 프로가 잘던지는 게 목표가 아닌, 안 아픈 게 목표라니.
“한울 씨 다치면 안 돼요. 다른 선수들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한울 씨만큼 안정적인 투수가 없는 건 맞잖아요.”
하지만 지금의 내 위치를 생각하자면 오히려 그게 맞다. 아프지 않게 오래 가는 게 정답이고 정론이다.
이미 잘하고 있다. 시즌 초반의 고꾸라졌던 시기가 있었지만, 평균으로 수렴한 지금은 다시 그 누구보다 잘나가는 불펜투수다.
내가 아프지 않는 것이 바로 불펜진의 위상과 직관된다. 내가 아프지 않아야 다른 불펜들에게 누가 되지 않는다.
“슨배임, 힘쇼오어어!!”
짝짝짝-!
팀 동료, 그 중에서도 같은 포지션을 가진 이들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예의.
이것만 지킨다면 우리는 언제까지고 강팀을 유지할 수 있다.
* * *
“어으, 피곤해.”
일요일, 오후에 시작된 경기는 자연스럽게 저녁이 되기 전 끝이 난다. 필수적인 마무리 단계를 여럿 거친 뒤 집에 오면 대충 7시 반.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배달 앱의 메뉴들을 노려보며 생각에 잠겼다.
제육볶음, 부대찌개, 치킨, 깐풍기, 볶음…….
Your love is a wildcard―
“아잇, 씻팔. 깜짝이야.”
군침을 흘리며 멍청히 쳐다보던 핸드폰에서 갑작스럽게 커다란 벨소리가 터졌다. 커다란 몸뚱이를 움찔거릴 정도로 놀란 후에야 발신인의 정체를 찾아냈다.
“네. 민영 씨.”
- 안녕하세요! 오늘 경기 잘 봤어요. 아…오늘 상수 졌던데, 아쉽네요. 이겼으면 또 공동 1위인데…….
“어쩔 수 없죠, 뭐. 비스코 불펜이 강하긴 하니까요.”
- 아우, 한울 씨가 등판할 수 있었으면 됐는데! 감독님은 왜 자꾸 한울 씨를 땡겨쓰는 거예요?
꺄르륵.
- 퇴근은 하신 거죠?
“네네. 방금 집에 와서 씻었어요.”
- 식사는요?
“밥…은 아직요. 이제 뭐 먹을까 생각하고 있었죠.”
- 아, 저 지금 건대 근처거든요! 해서…저녁 안 드셨으면 같이 저녁 먹을까 해서…그, 연락 드렸어요.
“아!”
콜.
“저야 좋죠! 지금 바로 가면 되나요?”
- 네네! 천천히 오세요! 오실 곳은 문자로 남겨드릴게요.
“네네.”
통화 종료. 그리고…….
두다다다―
얼굴로 향하는 배덕현의 타구를 막았을 때도 이렇게까지 내 순발력이 터지지는 않았을 거다.
핸드폰을 적당히 내팽개치고 빠르게 옷장을 열었다. 뭐 입지, 뭘 입어야 되지, 잠시 고민하다가 일단 집히는 걸 꺼내입었다.
거울 앞에 서서 왁스로 머리를 슥슥, 만져주면 준비는 완료.
“됐어.”
탁, 탁탁.
집 안의 불을 끈 뒤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다. 얼른 차 문을 열고 비집고 들어가서 시동을 걸었다.
“여긴 어디래.”
문자에 적혀있는 장소로 네비를 찍은 뒤 천천히 움직였다. 과속은 하지 않고, 규정 속도 아슬아슬하게까지 높은 속도를 유지했다.
잠시 후, 목적지가 있습니다.
“…엉?”
오질나게 사람 많은 건대의 한 구역. 뜬금없이 도착을 알린 네비는 생명을 다하고 길 안내를 종료해버렸다.
하는 수 없이 스티어링 휠에 붙어있는 통화 버튼을 눌러 민영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네. 거의 다 온 것 같은데요. 어디로 가야되나요?”
- 혹시 차 가지고 오셨어요?
“네.”
- 그러면…근처까지 오신 거죠? 보시면 세겹…뭐더라? 잠시만요!
우당탕, 그으으윽! 팍, 팍!
…뭔데.
- 세겹살이라고 식당있어요! 보이시려나, 주변에 뭐 있어요?
“주변에…아.”
오른쪽 귓가에 핸드폰을 고정시키고 빠르게 저어지는 길다란 머리카락이 보인다.
“민영 씨 보여요. 바로 갈게요.”
- 저 보여요? 네네!
뚝.
전화를 끊고 조심스럽게 식당으로 향했다.
내일 출근들 안 하시나.
조금만 삐끗해도 보험사를 불러야 할 공간을 천천히 움직였다. 꽤나 시간이 걸릴텐데도, 민영 씨는 식당에 들어갈 생각을 않는다. 식당 앞에 서서 나를 기다려준다.
먼저 들어가있지, 날 더운데.
비상등을 켜고 차를 주차했다. 후진 기어를 넣었는데도 차의 바로 뒤를 걸어다니는 사람들 탓에 삐이이익- 하는 경고음에 귀가 아플 지경.
“오셨어요?”
“먼저 들어가 계시지….”
“헤헤.”
차에서 내리자마자 민영 씨가 홉 점프로 다가왔다.
“들어가요! 여기 맛있대요.”
“네네.”
천천히, 식당 안으로 진입해 민영 씨가 잡아둔 자리에 착석했다. 이미 세팅이 되어있는 물과 수저. 알맞게 달궈진 불판.
익숙하게 집게를 집어들고 고기를 올렸다.
“고생하셨어요, 오늘 경기도 있으셨는데. 아예 제가 한울 씨 집 근처로 가는 게 나았으려나요?”
“아뇨아뇨. 집에서 먼 것도 아닌데요.”
인사치레로 대충 뱉은 말도 아닌데, 감동을 먹고 울먹인다. 대체 포인트가 어디일까.
그리고 민영 씨가 부르면 빨리 와야죠.
다음으로 내뱉으려고 했던 말까지 들으면 오열을 하는 게 아닐까.
“근데 건대 쪽엔 무슨 일로 계셨던 거예요?”
“네? 아, 그…저기….”
“말씀하시기 어려우면 딱히 안 해주셔도 되구요.”
“아뇨, 그런 건 아닌데….”
“친구라도 만나셨어요?”
“친구요? 네! 네, 친구랑 만나가지구, 오랜만에 만나가지구, 오랜만에 만나서 그…점심에 만났거든요. 점심에 만났는데….”
고장난 부위가 어디일까.
꼼지락거리는 손가락을 보니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드세요. 익었어요.”
“네에…감사합니다아….”
큰 산 하나 넘었다는 표정으로, 민영 씨는 힘겹게 젓가락을 집어들었다. 나도 그 모습을 보고 손에 달린 무기를 젓가락으로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