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존경
퍼엉-!
한국시리즈 5차전, 원하 챌린저스의 마지막 타자는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하는 변화구를 멀뚱히 구경했다.
“스트라아앜-!”
결과는 루킹 삼진.
오른쪽 어깨와 맞닿은 얼음들이 감성적인쪽으로 향하려는 기분을 일깨웠다.
“가자.”
승패승패패.
2차전을 제외한다면 모든 경기에서 1이닝씩을 투구했지만, 내가 받은 성적표는 홀드 두 개가 전부였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
다 잘했다. 투수, 타자, 수비, 주루, 작전, 모두. 다만 결과가 좋지 않았을뿐.
결과가 모든 것인 프로가 지껄인다면 자기합리화에 지나지 않을 것을 알지만, 그래도 어떡해. 팩트인데.
“하아….”
차의 시동을 걸어놓고 멍하니 있었다. 헤드레스트에 걸친 머리의 무게가 평소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띵―
“…뭐야.”
이제 슬슬 가야지, 할 때 도착한 문자 하나. 보낸 이를 확인하니 현진이.
[고생하셨습니다.]
정말 뜬금없다는 감정을 가득히 느끼며 답장을 보냈다.
[고맙다.]
간단하게 답변을 보내고 차량의 사이드 브레이크를 내리자,
띵―
한 번 더 문자가 왔다.
[잠깐 전화 가능하십니까?]
따로 뭔가 할 말이 있는 건지, 현진이는 전화까지 원하고 있었다. 문자를 띄운 상태에서 화면을 몇 번 터치하니,
-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다소 시끄러운 주변 풍경 속에 파묻힌 무뚝뚝한 목소리가 자동차 안을 메웠다.
“어. 무슨 일 있어? 갑자기 웬 전화야.”
- 그냥…….
“그냥.”
- …그냥 선배님 목소리 좀 듣고 싶었습니다.
스크립트만 따고 보면 거의 매크로에 가까운 대사. 이젠 아주 대사만 봐도 머릿속에서 현진이의 목소리가 자동재생될 지경이다.
“뭔 일 있냐?”
하지만 분명하게 억양이 달랐고, 따라서 확실히 녀석의 감정이 느껴졌다.
- 무슨 일이 있는 것까지는 아닙니다.
“놀랐네. 목소리까지 축 처져선.”
- 이제 집에 가십니까?
“가야지. 가서 쉬고…쉬어야지.”
달칵, 삐이이이―
기어봉의 버튼을 누른 채 한 칸만 아래로 당기자 매립 네비게이션 대신 자동차 뒷부분의 풍경이 재생됐다.
- 식사는 안 하십니까?
이게 목적이었구만, 귀여운 새끼.
마음을 푸근하게 만드는 후배놈이 떠오르자 하강했던 기분의 조종간이 뒤로 당겨졌다.
“해야지. 너 나와있지?”
- 예. 맞습니다.
“밥이나 먹자. 어디냐?”
- 선배님 뒤에 있습니다.
“뭐?”
뒤.
단 한 글자에 시선은 무의식적으로 오른쪽 아래로 향하게 되었다. 자동차 후방카메라를 통해 잘생긴 얼굴 하나가 보인다.
“…….”
기어코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아찔한 모습에 얼른 기어봉을 위로 올렸다.
“…타.”
- 예. 감사합니다.
몇 초 뒤, 조수석의 문이 열렸다. 존경하는 선배님의 차를 또 탄다는 게 기쁜지, 무뚝뚝한 표정이라는 성벽에 여러군데 금이 가있다.
“…있잖아.”
“예, 선배님.”
“넌 정말 미친놈인 것 같아.”
“칭찬으로 생각하겠습니다.”
아아아악!!
“후우….”
심호흡으로 멘탈을 다스리곤 어디 갈만한 식당의 존재를 물어보았다. 그것까지 준비했는지 본인의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이번에도 예약해놨냐?”
“예.”
“그래…가자….”
빠질 사람은 전부 다 빠진 밤의 서울 도로를 10분 정도 달려 꽤나 그럴 듯 해보이는 중식당에 도착했다.
현진이가 본인의 이름을 대고 자리에 위치하자 기본적인 식기들이 세팅되어있었다.
“진짜 뭔 일 있는 건 아니고?”
“예. 정말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고, 선배님이랑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었습니다.”
“이야기?”
“예.”
아직 아무런 식재료도 보이지 않는 식탁 위를 쳐다보며 현진이의 대사를 기다렸다.
“상수와 상대해보니 어떠십니까.”
“세더라.”
초장부터 헛헛한 웃음이 나오는 질문이었다.
“진짜 세더라. 우리가 약한 건 아닌데…아 모르겠다. 우리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
“예. 원하도 정말 잘하고 있습니다.”
“그치. 선발, 불펜 다 잘해주고 있고, 점수도 필요할 때 내주고. 수비는 두말할 것도 없고.”
“근데 상수는 뭐랄까…잘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어, 맞아. 딱 그거야. 잘해. 진짜, 개잘해. 잘하는데 뭘 잘하는지는 모르겠다고 해야하나.”
생각해보면 우리 원하보다도 상수에 대한 적개심이 강한 건 바로 눈 앞의 현진이일 거다.
최근 5년 동안 몇 번이지, 세 번인가 네 번인가 모두 상수에게 졌다. 다.
“야, 팁 좀 줘 봐라.”
“지기만 했는데 따로 팁이랄 게 있겠습니까.”
“그래도, 계속 상대하면서 느낀 점이 있을 거 아냐.”
“음….”
물과 차가 나왔다.
식기들이 세팅되었다.
요리가 나왔다.
꽤나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현진이는 섣부르게 기분을 표현하지 않았다.
“선배님.”
“엉?”
그러다보니 떨어져버린 집중력은 나에 대한 호칭을 뜬금없게 느끼도록 했다.
“미천한 실력이지만, 제가 국가대표를 여러번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어디 가서 미천한 어쩌고 하지 마라. 돌 맞는다.”
“아닙니다. 아직도 부족함이 많습니다.”
겸손이 아닌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 소름이 돋는다.
“그래서.”
“그러다보니 느낀 점이 하나가 있습니다.”
“뭔데.”
“해진이가 너무 존재감이 큽니다.”
결국 박해진이냐…….
“시즌으로 보자면 투수보단 타자가 훨씬 중요한 존재입니다.”
“당연하지.”
“하지만 한 게임으로 보자면, 절대 타자가 투수보다 중요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도 당연하지.”
“근데…해진이는 그걸 뛰어넘은 느낌입니다.”
“에휴….”
일단 쟤를 무너뜨려야돼.
언젠가 성현이가 했던 말이 오버랩되자 느껴지는 건 답답함 뿐이었다.
최종 보스를 눈 앞에 두고, 와 저걸 어떻게 이기냐…같은 느낌.
“그치만 전 선배님을 믿고 있습니다.”
“얘기가 왜 그렇게 흘러가는데.”
“타자쪽에 해진이가 있다면, 불펜에는 선배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내가 불펜계의 박해진이라도 된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
“아닙니다.”
실실거리며 던진 질문에 녀석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 이상이십니다.”
그리고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그 꼬라지를 한심하게 바라보자 현진이도 추가적인 대사의 필요성을 느꼈는지 곧장 다음을 이야기했다.
“선배님.”
“엉.”
“제가 왜 선배님을 존경하는지 아십니까.”
“…딱히?”
생각해보니 딱히.
존경한다, 존경한다 말만 들었지 자세한 사유까지는 들은 적이 없는 것 같다.
“엘리트 시절, 선배님께선 정말 완벽한 투수셨습니다.”
“완벽은 아니….”
“구속만 빼고 말입니다.”
“…….”
이런 개새…….
“비단 투수에게 요구되는 요소라는 건 단순히 구속, 제구, 변화구 뿐만은 아니지 않습니까.”
“당연하지. 수비, 견제, 수싸움, 체력 등등등등. 많지.”
“맞습니다.”
누구나가 뻔히 하고 싶은 말을 하려는 건 아닐테고…….
가만히 녀석이 탕수육 하나를 집어먹는 걸 기다렸다.
“하지만 선배님께서 방금 말씀하신 것들 중 가장 중요한 것, 그리고 선배님의 가장 강력한 무기 하나를 빼먹으셨습니다.”
“뭔데?”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멘탈을 갖고 계시지 않습니까.”
“멘탈이라….”
문득, 이 시스템을 알게 되고 처음으로 배정받은 특성의 이름을 떠올렸다.
“…센 편이긴 하지.”
“단순히 세다 약하다의 정도가 아닙니다.”
“그러면?”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투수로써 선배님의 멘탈은 그 누구도 넘볼 수 없습니다.”
약간의 과장이 섞여있긴 하지만 당사자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부분이긴 했다.
“선배님께서 3학년 때 기억하십니까.”
“3학년 때 언제?”
“아마 대통령배 때로 기억합니다.”
“아, 그때. 기억나지, 당연히.”
12년 전의 여름이 기억의 선상에 오르자 아련함과 뿌듯함을 동시에 느꼈다.
“당시 양안 고등학교는 정말이지, 최강이지 않았습니까.”
“그치. 진짜 엄청 셌지.”
투수진에서는 나, 타선에선 우석이를 위시한 양안고는 정말 최강이었다.
그래, 눈 앞의 현진이와 상수의 박해진이 한 팀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딱 적당한 비유가 되지 않을까.
그 중 나, 김한울이라는 투수는 정말…정말 대단했지.
이미 지역구가 아닌 전국구로 유명했던 고등학생 김한울의 힘은 단순히 한 경기 한 경기에서 그치는 게 아니었다.
야, 저기가 김한울이 있는 양안고야?
야, 쟤가 김한울이야?
1학년 때부터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2학년 땐 이미 고등학교 수준을 제패했다 평가받았다.
이미 초고교급으로 인정받던 3학년은 정말 무적이었다. 지고 싶어도 질 수가 없었다.
“그러나 준우승에 그치고 말입니다.”
대통령배 결승 빼고.
“…그치.”
헛헛한 웃음이 다시 한 번 흘러나왔다.
0점. 지이이인짜 어쩌다가 1점.
실점 자체를 허락하지 않던 내가 7실점으로 무너졌던 유일한 경기. 하지만 자책점은 단 한 점도 없던 경기.
“그게 왜? 막말로 그때 결승은 뭐 딱히. 내가 대단할 것도 없었는데. 처맞아도 계속 던지는 게 멋있어보이든?”
“아닙니다. 아, 물론 그것도 멋있긴 했습니다만,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 그 다음입니다.”
“그 다음?”
“예. 봉황대기 첫 경기에서 노히트노런 포함해 대회 내내 평균자책점 0점. 우승의 절대적인 일등공신 아니십니까.”
“다 옛날 얘기지 뭐.”
그때 내가 좀 대단하긴 했지.
“단순히 성적만을 논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첫 경기 노히트노런말입니다.”
“노히터가 뭐…대단하긴 하지.”
“저 같았으면 절대 그러지 못 했을 겁니다.”
“뭐…운이 좋긴 했지.”
“아닙니다.”
“그럼 뭐.”
“아무렇지 않아하는 모습. 전 절대 따라하지 못 합니다.”
면들이 사라진 짜장 소스만을 뒤적거리던 젓가락이 멈췄다.
“멘탈 좋다는 말을 참 길게도 하네.”
“이렇게 말씀드리지 않으면 선배님께선 그냥 그러려니하고 넘기시지 않습니까.”
이 새끼, 확실히 나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단순히 내 멘탈 칭찬하고자 하는 건 아닐테고.”
“그 멘탈이 선배님만의 것이 아님을 아십니까.”
“뭔 소리야?”
“선배님의 그 강력한 멘탈은 선배님 뿐 아니라, 선배님과 함께하는 이들에게까지 전달됩니다.”
“음….”
잘 이해가 안 되는데.
“대통령배 결승에서 진 직후 상황이 기억나십니까.”
“아니?”
“양안고의 모든 선수들이 울고 있었습니다. 분에 못 이겨 욕설을 크게 뱉는 선수도 있었습니다.”
“아. 아아, 기억나지.”
경기장의 감정을 그곳에서 마무리하지 못 했던 동기 하나는 결국 경기장 밖에서 사고를 친 후 제명당하기도 했다.
“근데 유일하게, 선배님만이 웃고 계셨습니다. 선배님만이 유일하게 모든 선수들을 다독이셨습니다.”
“어…그랬나?”
“선배님께서 노히트노런을 기록하셨을 때, 선수들은 본인의 120% 이상을 보였습니다. 타석에서도, 수비에서도.”
“아, 그건 기억 나. 인생에서 못 잊는 경험이니까.”
공중부양하는 외야수, 날아다니는 내야수, 춤추는 배트, 집채만하게 보였던 포수.
“감히 말씀드리자면, 이번 한국시리즈도 역시 상수가 우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면전에서 넌 질 거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만약 이 시점이 시리즈 개막 전이라면 진짜, 한 대 치기라도 했을텐데,
“그럴 가능성이 크지.”
다섯 번의 대결을 마친 입장에선 그냥 뼈아픈 팩트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딴에 자존심이랍시고 ‘맞지’가 아닌 ‘가능성’을 논한 것도 참 웃기긴 하다.
“만약에 제가 선배님의 입장이라면 말입니다. 내년의 전 아마 의욕을 잃어버릴 것 같습니다.”
“근데 너, 지금까지 상수한테 많이 졌잖아. 한국시리즈 갈 때마다 잘했잖아.”
“이것도 몇 년이고 몇 번이고 경험하고나니 그저 익숙해졌을뿐입니다.”
“그게 좋은 거지.”
“전 저 하나 간수하기도 힘듭니다. 하지만 선배님께선 다르십니다.”
묘한 미소를 지으며 현진이의 다음 대사를 기다렸다.
“선배님께선 아마, 유일하게 박수를 치며 괜찮다고, 내년에 이기면 될 거라고 소리치실 분이십니다.”
아쉽게 졌을 때. 중요한 경기에서 졌을 때. 모두가 무너졌을 때.
현진이가 말한 건 최근 몇 년 동안 원하의 굵직한 경기의 결말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을 때의 내 모습과 같았다.
“근데 어쩌다가 박해진 얘기가 여기까지 왔냐.”
“그 이전에 상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습니까.”
아, 그랬지.
“원하 대 상수라는 개념으로 보자면, 올해는 상수가 이길 확률이 크지만 내년엔 원하가 우승할 겁니다.”
“너 그런 말 해도 되냐?”
“물론 다른 데 가면 동성이 우승할 거라고 이야기해야지 싶긴 합니다.”
보기 드물게 현진이는 옅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원하 대 상수 말고. 나랑 박해진, 개인 대 개인의 개념으로 보면 어떻게 생각하는데.”
“재작년에 선배님께서 말씀하셨던 꿈은 아직도 여전하십니까.”
“응. 난 아직도 걔한테 삼진 잡아보고 싶어.”
조금의 망설임조차 존재하지 않는 대답을 내밀었다.
“그건 당장 내일 모레라도 가능하실 겁니다.”
“넌 박해진한테 강한 편이잖아.”
“상대 전적으로 따지면 그렇긴 합니다.”
“넌 박해진 만나면 무슨 생각으로 던지냐?”
“최근 컨디션이 좋다면 이번 타석부터 좋지 않겠지. 최근 컨디션이 좋지 않다면 이번 타석도 안 좋겠지.”
언젠가 내가 현진이에게 해주었던 말.
“굳이 해진이뿐 아니라, 만나게 되는 모든 타자들의 얼굴을 보면 가장 먼저 하는 생각입니다.”
“…재밌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아주 옛날에 해주었던 말을 들은 후배놈은 10년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도 생활 모토로 삼고 있었다.
“지금 선배님께선 그때 제게 해주셨던 말씀을 간직하고 계십니까.”
“…….”
나는 묘한 미소만 남긴 채, 마땅한 대답을 남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