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데뷔
최약체로 꼽히지만 방심은 할 수 없는 호주.
수많은 메이저리거를 배출한 캐나다.
자타가 공인하는 아마추어 최강 쿠바.
세 나라와 같이 C조에 묶인 대한민국은 11월 6일, 호주를 상대로 조별리그 첫 경기를 가지게 되었다.
장소는 동성 호넷츠의 홈구장인 고척구장. 잠실구장만큼은 아니지만, 해외의 구장보다야 당연히 훨씬 편하다.
와아아아-!
대-한민국! 대-한민국!
팬들은 특정된 팀, 특정된 선수를 응원하는 게 아니었다. 같은 국가에 소속된 모두를 향해 손을 펼치고 있었다.
“와….”
감히 한국시리즈, 혹은 며칠 전 치렀던 평가전 뒤에 ‘따위’라는 단어를 붙여도 될 법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애국가를 조용히 따라부르고, 호주 선수들과 가볍게 인사한 뒤 덕아웃으로 돌아올 때까지도 쓸데없는 긴장감이 유지되었다.
조금이라도 편해지기 위해 약간 오버하는 모습을 보였다. 원하 챌린저스 소속일 때보다 더 크게 박수치고 더 크게 소리쳤다.
그런 것 치고 결과는 좀…허무하게 끝났지.
현진이가 6이닝 동안 안타 하나만 맞으며 삼진 10개를 잡아내고, 비스코의 특급 불펜진 두 명이 나머지를 깔끔하게 막아내고.
투수들이 열일할 동안 타선도 일찌감치 점수를 벌려나가며 빠르게 승기를 잡아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캐나다와의 두 번째 경기. 이번 경기 또한 투수진들은 열일을 했다.
선발로 나선 혁준이가 7이닝 동안 무실점으로 막아냈고 상수의 이강민, 성운의 이송인이 각각 1이닝씩 막아내었다.
타선 또한 딱 필요한 점수만 뽑아내며 대회 2연승.
그리고 또 다음 날, 이번엔 C조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쿠바를 만나서는 7 대 0이라는 가장 압도적인 스코어로 조별리그 전승을 확정지었다.
나한테 체인지업을 배워간 KP의 임재혁은 무려 7이닝 동안 쿠바의 강타선을 아주 멋지게 잘 막아냈다.
한성의 언더핸드 불펜인 손석민이 1이닝을 깔끔하게 막고 동성의 박창우가 나머지 1이닝을 마무리했다.
“음….”
조별리그 세 경기 동안 내가 한 일은 꿔다놓은 보릿자루 마냥 덕아웃만 뜨끈하게 데피는 것이었다.
“이게 국가대표냐.”
“감독님 말씀 있잖아요. 형은 진짜 중요한 상황에서 쓸 거라고.”
중요한 상황이라…….
물론 대표팀에서 아직까지 경기에 출전을 못 한 건 나 뿐만은 아니다. 야수에서도 몇 명 있고 투수쪽에서도 몇 명 있다.
이해하지. 이해하는데 그냥…….
“좀이 쑤셔서 그렇지.”
“그렇기야 한데….”
혁준이의 위로를 받으며 공항 게이트를 빠져나왔다. 겨울이 아닌 가을에 해외에 나가는 게 꽤나 어색했다.
캐리어를 돌돌 끌며 주변을 살폈다. 이미 친했거나 여기 와서 꽤 친해진 사람들끼리 짝을 맞춰 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같은 팀 출신인 현진이와 박창우.
국가대표 테이블 세터 우석이와 성현이.
데면데면했지만 여기와서 정말 많이 친해진 게 보이는 국가대표 포수 두 명.
그리고 내 옆에는,
“그래도 이번 경기에는 형 나가지 않을까요?”
“미국?”
“슈퍼 라운드 첫 경기니까, 아무래도 더 중요하잖아요?”
혁준이.
야구 경력이야 얘보다 내가 한참 위지만, 국대 경력만 놓고보자면 아득한 선배님 되신다.
역시, 경력에서 나오는 통찰력이라는 건 무시를 못 하는 걸까.
3 대 0으로 이기고 있던 6회 초,
“한울아, 7회에 나갈 거야.”
“네? 아, 네.”
드디어 출격 대기 명령이 떨어졌다. 침을 한 번 삼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우….”
몇 번 덕아웃에서 직관했다고 좀 편하게 움직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프로 통산 첫 등판 때보다 더욱 직각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불펜에 도착했다.
고척구장과 같이 지하로 도착하니 이미 몇몇 투수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몸을 풀고 있었다.
“여어, 한울이.”
“와씨, 뭔데 떨려요.”
“긴장하지 말고. 그냥 똑같아, 평소처럼 하면 돼.”
“후우….”
국대 경험이 풍부한 비스코의 안치현이 나를 안정시켜주었다. 후하후하, 계속 심호흡하며 긴장을 풀어보려 했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후우…직구.”
“직구아!”
뻐엉-!
근데 참 신기하지, 야구선수라는 게.
“커브.”
“카브으!”
팡!
“슬라!”
“쓰라이다악!”
뻥-!
공을 잡은 순간부터 긴장의 수위는 눈에 띄게 낮아져갔다.
평소처럼.
안치현의 조언처럼 점점 ‘평소’의 모습을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읍!”
뻐엉-!
“아이, 나이쓰뽈이야아악!”
투수의 기를 살려주는 포수의 괴성도 꾸욱, 긴장을 눌러주는 요소 중 하나였다.
“가자.”
야구공이 손에서 떨어지자마자 다시 긴장감이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불펜에서 빠져나와 마운드까지 언제, 어떻게 도착했는지도 모르겠다.
버억, 버억―
지금 내 긴장을 풀어주는 건 스파이크가 플레이트를 긁는 소리와 손에 있는 야구공,
“에이, 가자아아!”
그리고 홈플레이트 뒤에서 나를 맞아주는 헌철이.
띠링-!
[국가대표 데뷔전]
- 1이닝 무실점하세요. (0/1)
- 보상 - 전구종 +1
여기에 퀘스트까지 추가되어 정말 평소와 같은 그림이 완성되어버리니 한결 편-안해진 기분으로 연습투구를 마칠 수 있었다.
“플레이!”
내가 불펜에 갔던 사이 한 점을 허용하여 두 점차로 좁혀진 가운데 맞게 된 7회 초. 미국의 타순은 3번 클린업부터.
“세상 참.”
내가 해외의 마운드에서 해외의 선수를 상대로 투구를 하는 날이 올 줄이야.
적절한 긴장감으로 약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나를 흘끔 본 헌철이가 본인의 오른쪽에 서있는 타자를 살폈다.
자국 선수도 아니야, 그렇다고 해외의 정말 유명한 선수도 아니야.
정보를 찾는답시고 찾아보긴 했지만 정말 제대로 된 정보를 찾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기보다는,
“읍!”
내 강점을 이용하자.
뻐엉-!
“스또오라이-!”
바깥쪽, 정말정말 애매한 곳에 던진 공은 일본인 특유의 묘한 발음으로 콜을 받았다. 바로 공을 받아든 뒤 거의 인터벌 없이 다음 공을 던졌다.
뻐엉-!
“스또오라이이-!”
방금 전 직구보다 반 개 정도 빠지는 공. 타자는 심판을 노려보지만 심판은 ‘뭐?’ 하는 눈빛으로 받아쳤다.
저기다가 체인지업 던지면 되게 재밌겠다.
내가 생각했던 바는 헌철이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었다. 마음이 통했다는 부분에서 씨익 미소가 지어졌다.
투수가 짓는 미소에 빡쳤는지, 미국인 타자의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가는 게 보였다.
“흡!”
부웅-!
“스위잉, 아우웃!”
와따, 힘은 진짜 작살나네.
비록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는 냈지만, 스윙하는 폼을 보아하니 간담이 서늘하게 느껴졌다.
속으로 잠깐 감탄한 뒤 라운딩이 끝난 1루쪽으로 몸을 틀었다.
따봉!
“…새끼.”
박해진이 앙증맞게 엄지 손가락 하나를 선사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표정은 또 무표정인 게 어이가 없어 피식 웃고 다시 공을 받았다.
다음으로 등장한 타자는 근육질의 팔뚝을 자랑하며 우타석에 등장했다. 흘끔, 미국의 4번타자를 보고 헌철이는 슬로우 훅을 요구했다.
“끅!”
중지를 타고 빠진 공이 탑스핀으로 회전하며 높게 떴다. 거의 제 눈높이까지 떠올랐던 공을 본 타자는,
빵-!
그저 이 공이 볼이기를, 제발 볼로 판정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스또오라이-!”
하지만 어림도 없지.
세계적인 수준에서 150km에 간당간당한 내 직구, 그리고 해당 구위 자체는 그렇게 큰 메리트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으로 승부를 봐야 하느냐,
뻥-!
“스또오라이이-!”
제구, 그리고 변화구.
바깥쪽 절묘하게 걸치는 슬라이더를 구경한 타자는 직전 타자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고, 심판 또한 직전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공을 뽀득뽀득 닦으며 다음 공에 대한 계산을 해봤다. 0-2의 카운트를 잡아둔 지금, KBO가 아닌 미국인 타자를 상대한다면,
퍼엉-!
“보오올-.”
스플리터지.
하지만 곧장 스플리터를 던지지 않고 설계를 위해 살짝 높은 곳으로 직구 하나를 던져놨다.
시작부터 높은 곳으로 향하는 직구를 본 타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볼 하나를 골라냈지만,
“읍!”
촥!
“아우웃!”
바로 다음 공, 떨어지는 스플리터에 살벌한 헛스윙을 선보이며 다시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본인을 스쳐지나가는 4번타자에게 조언을 한 마디 들은듯한 5번타자는 우타석에 서서 꽤나 요란한 루틴을 보여주었다.
저게 뭐여.
귀 옆에서 과도하게 흔들리는 배트의 움직임을 보고 와, 저거 제대로 반응할 수는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뭐다? 제일 빠른 공이지.
몸쪽 높은 구역에 직구를 던지겠다고 예고한 뒤,
“끅!”
있는 힘껏 공을 때렸다.
타자가 가장 빨리 반응해야 하는 곳으로 날아가는 공, 그리고 제대로 준비되지 못 한 타자의 자세를 보고 생각했다.
따악-!
이게 뭐시여.
뭐랄까, 힘도 힘이고 기술도 기술이고, 제대로 된 스윙으로 걷어낸 공이 좌측 폴대 옆을 빠져나갔다.
치자마자 타자는 파울이라는 걸 느꼈는지 타구에는 신경쓰지 않고 다음 투구에 대해 준비하는 모습이었다.
그러자 오히려 당황이라는 걸 느낀쪽은 나, 그리고 포수였다.
헌철이는 지금까지보다 살짝 길게 생각을 마친 뒤 바깥쪽으로 도망가는 슬라이더를 주문했다.
뻥!
“보올!”
예상보다 조금 더 빠져나가는 공에 배트를 움찔거리긴 했지만 잘 참아내며 볼 판정을 받고,
뻐엉―
“보올-.”
다음으로 던진 몸쪽 싱커는 손 쉽게 골라내며 카운트가 역전되었다.
“으흠.”
손에 잡힌 로진백과 함께 머리통을 쥐어짰다.
무얼 던져야 할까, 뭘 던져야 카운트를 하나 더 뺏을 수 있을까.
잠시 고민한 뒤, 세 개의 투구로 모인 조각을 얼기설기 묶어보았다.
몸쪽 높은 직구는 제대로 때렸다.
바깥쪽 슬라이더에는 애매한 반응을 보였다.
몸쪽 싱커는 간단하게 파훼해버렸다.
“…바깥쪽이네.”
어차피 외국인이라 알아듣지도 못 할 거, 주둥이는 대놓고 바깥쪽을 이야기했다.
검지 손가락으로 글러브와 팔꿈치를 건드린 다음 모자챙을 툭 쳤다. 사인이 제대로 전달됐는지 헌철이가 바깥쪽 싱커 사인을 냈다.
“윽!”
뻐엉-!
“스토오라이이-!”
맞네.
멀리서부터 싱커가 점점 다가오는 게 눈에 뻔히 보일텐데, 타자는 움찔거리기만 할 뿐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못 했다.
이쯤이면 헌철이도 알겠지.
2-2. 결정구를 던져야 하는 상황에서 가장 좋은 공을 선별하기 시작했다.
여러가지 구종들 중 간택된 공은 바깥쪽의 직구. 아주, 아주아주 간당간당한 곳으로.
“후우….”
집중. 또 집중.
cm 단위를 왔다갔다 해야하는 작금의 상황을 위해 신중하게 심호흡을 골랐다.
내가 바라보는 위치는 딱, 정확하게 헌철이가 대고 있는 미트의 볼집.
“후우…웁!”
볼 두 개를 가지고 있지만 스트라이크 또한 두 개를 가지고 있는 타자는 어쩔 수 없이 반응을 보였다.
뻐엉-!
아주 절묘한 위치, 평범하게 잡는다면 뻔히 볼 판정을 받을 곳이지만,
부웅-!
“스위잉, 아우웃!”
딱히 그럴 필요도 없었다.
띠링-!
[국가대표 데뷔전]
- 1이닝 무실점하세요. (1/1)
- 보상 - 전구종 +1
제구 - 최상
구위 - 상
체력 - 중
포심 - 84+1=85
커브 – 80+1=81
슬라 - 79+1=80
스플 - 78+1=79
체인 - 80+1=81
싱커 - 79+1=80
특성
해탈 - 어떤 타구, 상황에도 그러려니 합니다.
불편 - 상대하는 타자가 타석에서 투수를 보면 어딘가 불편하게 만듭니다.
편안 - 본인을 보는 이들이 편안함을 느낍니다.
집중 – 집중할 수 있는 대상의 수가 늘어납니다.
“형 나이스볼!”
“어우, 한울이 볼 좋네!”
천천히 덕아웃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나보다 빨리 덕아웃으로 향하는 이들이 한 마디씩을 거들었다.
하나하나 손을 마주하며 분위기를 맞춰주다보니, 나보다 먼저 덕아웃에 도착해놓고 1루미트를 내미는 녀석이 보였다.
“나이스볼입니다.”
꽤나 깜찍한 모습에 피식 웃고선 나도 엄지 손가락을 척! 들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