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평화로운 불펜생활-114화 (114/190)

114화. 삐끗

다른 나라 마운드에서 다른 나라 선수들을 상대로 공을 던지는 경험. 심지어는 아주 잘던졌다면 어떨까.

말해서 뭐할까, 아주 좋아 죽지.

[한울 씨 멋있어요오!!]

[오빠 나 죽어어!!]

[토끼가 ‘화이팅’ 패널을 흔드는 이모티콘]

미국전이 있고 다음 날, 민영 씨의 제보에 의하면 한국 내에서 프리미어12 대회에 대한 관심이 매우 뜨겁다고 한다.

그 중 민영 씨가 중점적으로 보도한 내용은 바로 나에 대한 것.

[벌써부터 이야기가 많아요]

[국가대표 불펜 에이스 얻었다고 아주 좋아해요!]

[토끼가 ‘멋있다!’ 패널을 들고 흔드는 이모티콘]

물론 이 대화는 순전히 민영 씨의 개인적인 의견이 다수 포함된 내용이고…….

살짝 필터링을 거친 뒤 내가 받아들인 내용은 대한민국 팀에 대한 이야기.

조별리그부터 대회 4연승!

팬들은 이 기세를 쭉 이어 슈퍼라운드를 제패하고, 또 메달 결정전에서도 금메달을 손에 얻길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따악-!

“…아이고야.”

대만을 맞이해 선발로 나선 상수의 박동일이 시작부터 삐걱거리더니 3과 1/3이닝 동안 무려 4실점을 해버렸다.

급하게 마운드에 오른 신진철이 4회를 매조짓고, 5회에는 내가 나서서 1이닝을 깔끔하게 막았다.

이후 어찌어찌 흘러가다 7회, 상수의 이강민이 쓰리런을 허용하며 투수진의 실점은 총 7점.

이렇게나 화끈했던 투수진들과 다르게 타선은…….

“스윙, 아웃!”

0점.

무기력하게 셧아웃 당하며 7 대 0의 완패를 인정해야 했다.

“어…가자.”

“예, 선배님.”

아무래도 눈치가 보일 수 밖에 없다. 팀원들, 그리고 팀 코칭 스태프 분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조심 움직이며 숙소에 도착했다.

짐을 풀고 침대에 가만히 앉아있자니 현진이가 맞은 편 침대에 앉았다.

“분위기가 갑자기 확 가라앉네.”

“어쩔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의 포스트시즌도 마찬가지고, 하물며 정규시즌 때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렇기야 한데 뭔가 좀 더….”

좀 더…좀 더…….

현진이는 내가 적당한 단어를 찾을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사람 미치게하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

착! 소리 나게 양손을 무릎 위에 얹어두니 녀석이 빙그레 웃었다.

“그나저나 머리아프게 됐네, 진짜.”

많은 사람들, 그리고 많은 팀들이 참가하는 대회의 궁금적인 목적은 당연히 마지막 게임에서 승리하여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

하지만 오늘, 대만에게 패배하며 금메달이고 자시고, 결승전에 진출할 수 있냐 없냐까지 몰려버렸다.

“남은 게임이 멕시코랑 일본…아이고야.”

현재까지 모든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며 승승장구 중인 멕시코, 그리고 대한민국보다 한 수 위로 평가받는 일본.

이 상황에서 자력으로 결승 진출을 확정짓기 위해 필요한 승리는 두 번.

3일 뒤 치러질 멕시코전에는 KP의 재혁이가, 그리고 그 다음 날 진행될 일본전에는 현진이가 출격을 대기하고 있다.

“재혁이가 잘하겠지?”

‘제 걱정은 안 해주십니까?”

“너야 뭐…알아서 잘하겠지.”

힝.

다소 무신경한 말투에 현진이의 표정이 보기 좋게 변했다.

“으.”

고개를 옆으로 치워내니 시야가 한결 편-안해졌다.

“그래서…앞으로 3일 동안 우리는 뭘 하면 되냐.”

“개인적인 관리나 휴식 정도면 괜찮습니다. 아무래도 당장 경기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이 중요하다보니, 훈련까지 관여하지는 않는 편입니다.”

뜻 모를 불안감에 턱만 괴고 있자 현진이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를 안정시켰다.

“일단 주무시는 게 어떻습니까. 피곤하지 않으십니까?”

“지금까지 2이닝 밖에 안 던졌는데 피곤할 게 있냐.”

아주 중요한 경기에만 내보낼 거다.

뾰루퉁하게 대꾸하면서 감독님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계속해서 상수 타이거즈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고 있는 김석주 감독님의 말씀이라면 믿어야지.

믿어야 하는데…….

“괜히 욕먹지 않을까, 싶어서 그래.”

“어떤 게 말입니까?”

“내가 빛나고 싶다, 활약하고 싶다, 그런 생각은 없어. 그렇다고 해서 묻어가는 것도 좋지는 않잖아.”

어렴풋하게 짐작되었던 내 속마음을 정리해서 이야기했다. 희미한 명도 아래 흐뭇하게 미소 짓는 현진이가 보였다.

“괜찮습니다. 이번 대회도 선배님의 활약 덕에 우승하게 될 겁니다.”

반농반진에 가까운 격려에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편한 밤 되십쇼.”

“그래, 잘자라.”

* * *

대만전과 멕시코전 사이에 껴있는 이틀을 알뜰하게 쓰기 위해 꽤나 노력했다.

매일 밥보다 더욱 우선적으로 챙기는 튜빙.

튜빙을 하게 되면 무조건적으로 따라오는 스트레칭.

그리고 맞이하게 될 상대팀에 대한 분석.

금요일, 저녁에 있을 멕시코전을 대비하기 위해 글러브를 손에 끼웠을 무렵,

“대만 졌다.”

“엉?”

선수단 구석에서부터 아주 희망적인 소식 하나가 들려왔다.

“이렇게 되면….”

자력으로 결승으로 진출하기 위해선 남은 슈퍼라운드 두 경기를 모두 이겨야만 했는데, 한 경기만 이기면 된다.

“오늘은 좀 편해지겠네.”

야구는 멘탈게임이다, 누구나 흔하게 지껄이는 말의 본질을 일반인들은 조금 다르게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100의 실력을 가진 이가 120의 실력을 뽐내도록 돕는 게 멘탈이 아니다.

100의 실력을 가진 이가 50 밖에 내지 못 하게 하는 것이 멘탈인 것이다.

즉,

따악-!

부담의 수위를 낮춘 채 경기에 임한 선수들은 온전하게 본인의 실력을 모두 내보일 수 있었다.

“돌아! 계속 돌아아!!”

“해진이 달려어어!!”

2점을 먼저 허용한 뒤 맞은 5회 말 공격, 대한민국의 실력에 행운, 그리고 상대편의 실책들까지 더해져 대거 7점을 우선적으로 뽑아냈다.

팡! 팡! 팡!

스펀지를 함축한 덕아웃 펜스를 손바닥으로 내려치는 이유는 감추지 못 한 흥분에 있었다.

“규학이 나이쓰으!”

“나이쓰 뺏!!”

1루를 밟은 규학이가 가까이에 있는 우리 덕아웃을 향해 소리쳤다. 단번에 우리 덕아웃의 분위기는 하늘을 향해 올라갔다.

7 대 3.

5회 말, 7점의 빅 이닝을 필두로 하여 승리를 확정지은 대한민국은 이번 대회 결승 진출을 확정지었다.

* * *

대한민국과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뗄레야 뗄 수가 없는 나라, 일본.

일본이라는 나라를 보며 부럽다고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있다. 바로 야구를 야구도(野球道)라 일컬으며 국기(國技)로까지 취급한다는 점.

내가 야구선수라서 그런 점을 부러워한다고 지적한다면 글쎄, 나 또한 틀린 말은 아니라도 고개를 끄덕거리겠지.

내 입장이 그러하다면, 통상적인 한국 사람들이 일본을 바라보는 감정은 어떠할까?

관용어처럼 쓰이는 문구 중 아주 적당한 표현 한 가지가 있지, 가위바위보조차도 절대 지면 안 된다.

만약 우리가 사무라이 재팬이라는 팀명을 가진 이들에게 진다면 한국인들은 우리를 가리켜 어떤 말을 할까.

“어우….”

생각만해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그렇다면, 나 개인이라는 아주 작은 시선이나 대한민국이라는 아주 큰 시선이 아닌, ‘팀 코리아’라는 중간 규모의 시선으로 일본을 본다면 어떨까.

타격적인 측면에서 우리나라와 비교해보자면…우리나라가 살짝 우위가 아닐까. 살짝.

주루는 아무래도 일본의 우위가 점쳐진다. 대한민국 배팅 엔트리가 전반적으로 뛰는 야구보다는 치는 야구를 선호하는 탓이 크다.

남은 건 투수.

퍼엉-!

“스츄우-라잌, 아웃!”

그리고 수비.

딱―

“파스또!”

빵-!

“아웃!”

잘한다. 확실히 잘하긴 잘한다.

오늘 일본의 선발투수인 후지사키 케이스케. 꽤나 마른 몸으로 150km를 상회하는 강한 직구를 뻥뻥 던져내며 한국 타선을 막아내고 있었다.

구위가 좋은 직구로 카운트를 몰아넣었다면,

부웅―

“스윙, 아웃-.”

여지없이 땅바닥에 처박히는 포크볼을 던져 삼진이라는 글자를 완성시킨다.

이닝이 종료되자 옆에 앉아있던 현진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힘내라고 박수를 짝짝 치자,

“감사합니다, 선배님 덕분에 잘 던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 제발. 그냥 가, 제발.

굳이 나를 향해 90도로 허리를 숙인 뒤 덕아웃을 나섰다.

현진이가 연습투구를 진행할 동안 경기의 현황을 정리했다. 다섯 번의 공격, 그리고 네 번의 수비를 거치며 양팀이 뽑아낸 점수는 0점.

4이닝 동안 그 누구도 1루를 밟지 못 한 일본보다 5이닝 동안 안타를 하나라도 쳐낸 우리팀에게 판정승을 내려도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자마자,

따악-!

“…아.”

선두타자로 나선 일본의 4번타자가 곧장 홈런을 때려냈다.

와아아악-!!

이케루!!(됐다아아!!)

얏타조!!(해냈다아!!)

여기, 도쿄돔은 사무라이 재팬의 홈구장.

어떤 의미로 보자면 고작 1점, 고작 솔로 홈런 하나일 뿐인데도 일본인들은 제자리에서 방방방 뛰며 좋아했다. 얼싸안으며 기뻐했다.

홈런타자는 불끈 쥔 주먹을 머리 위로 올린 채 2루 베이스를 통과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는 투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현진에게서 눈을 떼어내고 옆자리로 눈을 돌렸다.

“…혁준아.”

“네?”

“안 떨리냐?”

“저야 뭐….”

내일, 결승전 선발로 예고가 되어있는 혁준이는 4번타자가 홈플레이트를 찍는 모습을 보고도 별 감흥이 없어보였다.

“여기는 딱히 별 감흥이 없어서요.”

“쉽든?”

“이상하게 제 공은 못 치더라구요.”

“왜긴.”

잘하니까 못치겠지.

실제로 국가대표에서 혁준이의 역할은 일본 담당 일진이다. 통산 일본과 세 번 상대하며 18이닝 동안 평균자책점은 딱 1.

만약 어제 대만이 미국에게 승리했다면, 오늘의 선발은 저기 있는 현진이가 아닌 여기 있는 혁준이가 되었겠지.

그래, 까놓고 말해보자.

어차피 결승 진출을 확정지은 상황에서, 객관적으로 판단한다면 오늘 이 게임은 가비지 게임에 포함시켜도 무리가 없다.

하지만 그 가비지 게임의 내면이라는 게, 가위바위보조차 지면 안 되는 팀과의 승부라면 어떻게 반응해야할까.

퍼엉-!

“아, 피처, 뽈 좋아아악!!”

“에에에이!!”

비록 결승전보다는 중요도가 떨어진다고 한들, 지게 된다면 목숨을 내놓을 각오를 해야하는 경기로 변모해버리는 것이다.

뻐엉-!

“스츄우-라잌, 아웃!”

7번타자를 루킹 삼진으로 잡아낸 뒤 덕아웃으로 돌아오는 현진이를 맞아 기립박수를 보냈다.

그렇게 사랑하고 존경하고 경외하고 동경하고 애정하는 선배님께서 직접 행차해 박수를 주고 있는데도,

“…….”

현진이는 어딘가 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글러브를 벗어내는 모양새도, 모자를 벗는 모습도 평소와 다르게 짜증이 가득 묻어있었다.

분위기를 읽은 내가 혁준이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옆으로 비켜날 것을 종용했다.

“…현진이형 저러는 거 저 처음 봐요.”

“나도 처음 보는데.”

“가서 물어볼까요?”

“눈치 없이 건들지 말고, 냅둬.”

“네에….”

잠시의 휴식시간을 가진 뒤, 원하의 성현이, KP의 김기윤, 상수의 박해진이 나설 차례가 되었다.

강타자들의 연속이 예고된 6회 초는 우리의 기대를 크게 반영시키지 못 했다.

아니, 타격감만을 보자면 기대에 부응하기는 했지.

성현이의 타구는 잘맞았지만 유격수 직선타, 김기윤이 볼넷으로 걸어나갔지만 박해진이,

따악-!

“빠졌…!”

“아!”

“뭔데!”

여기서 병살타를 쳐버린다.

“…저게 잡혀?”

“뭔데. 아니, 뭔데. 진짜 뭔데, 저거.”

현재 2루수를 전담하고 있는 김기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수비와 관련된 모든 것이 압도당하고 있었다. 완벽하게.

막상 병살타구를 친 박해진은 크게 미련이 없는듯, 곧장 우리 덕아웃으로 돌아와 6회 말 수비에 대한 준비를 시작했다.

짝짝짝-!

“아, 막으면 돼! 현진이도 힘 내고!”

“가자가자아!!”

전반적으로 침체되어있는 분위기 아래, 지랄과 염병으로 덕아웃을 끌어올리고 있는 건 나와 혁준이 뿐이었다.

그래도 우리 둘 덕분인지, 다른 팀원들도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같은 나라 사람들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현진이가 스트라이크를 넣으면 모두가 기뻐했고, 볼로 판정되면 모두가 아쉬워했다.

이런 분위기를 흐뭇한 표정으로 느끼고 있을 때,

톡톡―

“한울이, 7회 나갈 거야.”

“예? 아, 네.”

감독님은 지금의 상황이 중요한 상황이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형, 우리 존재 화이탕이예요.”

“화이탕 같은 소리 하네.”

혁준이의 반응을 넘어 불펜으로 향해갔다. 딴에 한 번 가 본 적이 있다고 가는 길을 헤매지는 않았다.

“아우…오늘은 좀 빡시게 던져야지, 진짜.”

퍼엉-!

어차피 내가 올라갈 때가 된다면 위쪽에서부터 알아서 연락이 올 거다. 나는 그때까지,

“읍!”

뻐엉-!

“쑈케에에에엑!!”

사무라이들의 칼을 뽀갤 준비를 마치면 된다.

내가 몇 번 타자부터 상대하게 될지 아직 정해지지는 않았다만, 막상 어떤 타자를 만나든 괜찮을 것 같다.

다른 국가들과는 다르게, 아무래도 일본의 경우는 상대 선수들에 대한 정보들이 정말 가득했다.

“한울이, 올라가자.”

덕분이라고 해야할까,

띠링-!

[대-한민국!]

- 1이닝 무실점하세요 (0/1)

- 보상 - 전구종 +1

마운드를 밟자 보이는 텍스트 내용이 한결 가볍게 보였다.

“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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