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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불펜생활-119화 (119/190)

119화. 너의 결혼식

“와…사람 많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결혼식장, 그 안에서도 특히나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한 웨딩홀이 있었다.

“그러게요. 사람 되게 많네요.”

방송국의 기자, 혹은 스포츠 뉴스의 기자들도 몇몇 보였고 아주 얼굴이 익숙한 이들도 꽤나 많이 보였다.

상당한 인파에 어물쩡거리며 지나다니는 사람들 피해주기만을 몇 번,

“아, 저쪽인가봐요.”

옆에 있던 민영 씨가 가리킨 곳으로 얼른 향해갔다. 안내 데스크엔 축의금을 받는 신랑 신부측의 지인들이 앉아있었고, 그 옆엔…….

“세상에.”

꼬마 신랑이 정장을 멋지게 차려 입고 있었다. 어울리는듯, 또 어울리지 않는 모습에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혀엉!”

“어, 왔냐.”

오늘 주인공 중 한 명, 규진이형.

규진이형은 오늘 있을 큰 사건에 대한 기분을 감추지 않고 모두 드러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결혼식인데.

성큼성큼 다가가 오늘의 신랑의 손을 붙잡고 함께 기뻐했다.

“와, 우리 나이 많이 먹었다 형, 그치?”

“미친놈인가봐. 옆에는? 여자친구 분?”

“아, 어. 민영 씨야. 민영 씨, 여기 규진이형은 아시죠?”

“네네! 알죠!”

민영 씨는 얼른 다가와 규진이형과도 약소하게 악수를 나누었다. 근데 이 두 사람이 같이 서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음…….

“왜, 너 또 뭔 생각하는데.”

“형, 우유 많이 먹자.”

“미친새끼야.”

이건 힐 신고 온 민영 씨가 잘못했다.

“다른 애들은?”

“먼저 온 애들도 있고, 조금 있다 올 것 같은 애들도 있고.”

확실히, 결혼식 당일의 신랑은 어지간히 바쁜 게 맞다. 나랑 대화를 나누면서도 시선은 계속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걸 보니.

오늘 손님은 나뿐이 아니기에, 다른 사람들과도 편히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적당히 인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비켜주었다.

아, 물론 축의금도 빼놓지 않고.

식권 두 장을 받아 나 하나, 그리고 민영 씨 한 장 나눠가진 뒤 미리 자리를 잡아두기 위해 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여, 한울이.”

“어, 형!”

“한울이형!”

식장 안으로 들어가니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도 꽤나 많이 보였다. 한 명 한 명, 모두 인사를 나누었다.

프로선수, 프로 진출에 실패한 동기, 프로 진출했다가 일찍 은퇴한 선배 등등.

“한울 씨는 참 사람이 좋은 것 같아요.”

“네?”

한 테이블과 인사를 마치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려고 하자, 뒤에서 민영 씨가 뜬금없는 소리를 내놨다.

그에 나도 당연히 뒤를 쳐다보게 되었다.

“지금까지 한울 씨랑 인사 나눴던 분들, 다 한울 씨한테 좋은 기억 밖에 없는 거 같아요.”

“그야….”

내가 딱히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그냥 적만 만들지 말자, 그렇게 살아왔을 뿐이지.

하지만 그 생활양식을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표면적으로는 민영 씨가 설명한 것과 맞아떨어지기는 한다.

“그래도 그게 어렵잖아요? 사람이 어떻게, 살면서 적 하나를 안 만들고 살아요. 그게 더 이상한 거죠.”

그래서 그걸 내 방식대로 풀어서 설명하니, 민영 씨 또한 민영 씨 나름의 화법을 가지고 설명해주었다.

“왔냐.”

“언제 왔냐?”

“한 10분 전?”

“여, 명규 하이.”

“어, 하…이…뒤에는…누구시냐?”

“여기, 여자친구. 민영 씨.”

“아, 안녕하세요!”

“아시죠, 얘네들? 우석이랑 명규.”

“네네, 알죠!”

“…….”

“…….”

우석이랑 명규는 지들끼리 의기투합하더니 나에 대해 욕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물론 악의 같은 건 느껴지지 않…….

“니가 제일 나쁜 새끼야.”

“진짜, 우리랑 안 놀아줄 때부터 알아봤어.”

느껴지지 않…….

“어디 가서 우리 친구라고 하지 마라.”

“진짜, 넌 양안고의 수치야.”

않…….

“우리끼리 놀자.”

“그래, 우리끼리면 됐어.”

….

“…경배는? 현진이도 아직 안 오고?”

“현진이는 화장실 갔고. 경배는 금방 온…아, 현진이 왔네.”

“왔냐아.”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

아, 제발.

현진이는 나를 보자마자 또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어머.”

우석이나 명규는 익숙해서 그러려니 하지만, 옆에서 지켜보던 민영 씨는 처음 보는 광경에 꽤나 놀란 모습을 보였다.

“…신경쓰지 마세요, 원래 이런 애라.”

“그렇습니다. 저는 원래부터 선배님을 존경하고, 또 친애하며 동경해왔….”

“그만해!”

“…….”

머리가 아파지는 와중에도, 민영 씨는 호호홋 웃으며 즐거워했다.

“옆에 분은 형수님 되시는 분입니까?”

“아, 형수….”

형수…라고 해야되나?

“…….”

“…….”

잠시, 나와 민영 씨 사이에 시선이 오갔다.

“어…뭐. 형수님이지, 너한텐.”

에라, 모르겠다.

“잘부탁드립니다.”

“네, 그…저도 잘부탁드려요.”

민영 씨가 허둥지둥하는 사이,

“어이, 다 와있었나.”

“경배 오랜만이다.”

“얼굴 좋아보이네.”

“아, 그라제.”

경배도 도착.

“야, 미안하다. 결혼식 못 가서.”

“돼따. 니 바쁜 거 아는데. 난중에 니 결혼할 때 가서 보믄 되지. 옆에가 제수씨가.”

“아, 어.”

“아이고, 반갑습니다. 임마가 쪼매 모자른 아라서, 제수씨가 좀 마-이 봐야함다.”

“네, 네에….”

“여기, 경배라고. 우리 고등학교 때 저랑 규진이형 공 받아줬던 포수예요. 옆에 제수씨도 처음 뵙겠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경배, 그리고 경배의 아내 분까지 합석하며 양안고 패밀리 완성.

조용하면서도 시끌벅적한 식장 안에서 명규와 현진이가, 그리고 우석이와 경배가 대화를 나누는 게 보였다.

경배의 아내 분은 꽤나 적극적인 성격이신지 경배랑 우석이 사이의 대화에 대담하게 참여하는 모양새.

그 안에서 민영 씨는 어딘가 동떨어진 채로, 티가 크게 나지는 않지만 멋쩍어하는 모습이 보였다.

어떻게 좀 안정을 시켜주고는 싶었지만, 어떤 말로 안정을 시켜주면 좋을지 고르는 게 꽤나 힘들었다.

하여…….

“에?”

말보다는 그냥 손을 움직여 민영 씨의 손을 잡았다. 움찔거리며 놀란 민영 씨가 내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눈을 동그랗게 만들었다.

“…….”

“…….”

시선이 마주치고, 서로가 서로의 온기를 느끼게 되자 민영 씨는 얼굴에서 당황이라는 감정을 점점 누수시켰다.

그만큼 비게 된 자리는 편안, 혹은 포근이라는 단어들이 대체되고, 나 또한 그 표정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민영 씨.”

“네.”

“…그, 되게 설레발인 건 아는데요.”

“네?”

“우리도 언젠가는 저렇게, 여기저기 같이 다니고 막 그러겠죠.”

고개는 민영 씨를 향하고 있지만, 그 안에 시선은 경배 커플쪽을 향하고 있었다. 내 눈길을 따라 같은 커플을 본 민영 씨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

딱히 대답을 바라고 한 소리는 아니고. 그냥 내 맘 전하는 게 최우선적인 과제였으니까.

어느 정도 민영 씨가 안정됐다고 생각하자, 꽉 잡았던 민영 씨의 손에서 힘을 조금 뺐다. 하지만 잡고 있다는 사실은 여전하다.

“…네. 언젠간, 같이…다니겠죠.”

“…….”

인파에 파묻혀 작은 목소리가 되긴 했지만, 분명하게 들린 목소리를 따라 다시 고개를 돌리니 목소리의 주인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슥…슥…….

“에헤헤….”

말없이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보기 좋게 발그레 붉힌 얼굴로 웃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 * *

규진이형은 무사히 유부남이 되었다. 우리가 밥 먹을 동안 폐백을 마친 뒤 식당으로 내려와 인사를 한 번 더 한 뒤, 떠났다.

좋아보이더라.

“너넨? 어떡할래?”

덕분에 따로 떨어져나온 우리 양안고 패밀리들은 이후의 갈곳을 정해야했다.

근데 이게 남정네들만 있다면 모르겠다만…….

“아, 우린 먼저 간다. 집사람 집 함 가야된다.”

아내, 혹은 여자친구가 대동된 사람이 둘이나 있는 이상 한 번에 우루루 몰려다니기엔 좀 이상하지.

“경배 고생하고. 또 연락하고.”

“드가라. 프리미어12인지 뭔지, 잘했다, 마.”

“새끼.”

경배와 한 번 손을 짝! 마주친 뒤 서로의 어깨를 부딪히며 우정을 확인했다.

한 커플이 손을 흔들며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남은 건 커플 하나, 그리고 남정네 셋.

“너넨?”

“우린 좀 있다가 술이나 한 잔 하고 갈까 싶네.”

“고생했다. 또 보자.”

“어이, 들어가라.”

너네는? 이라는 단어부터 애초에 너희와 갈라지겠다는 의사표명이다. 뭐, 애들도 아닌데. 지들끼리 알아서 잘 놀겠지.

그렇게 친구 둘과 후배 하나를 보낸 뒤, 나와 민영 씨는 내 차에 다시 탔다.

“한울 씨, 한울 씨.”

“네?”

“에헤헤, 손!”

타자마자 민영 씨는 본인의 양손을 겹쳐 내게 내밀었다. 그에 나도 무언가 홀린듯 작은 손 위에 내 오른손을 올렸다.

“헤헤….”

좋다고 웃는 모습을 보니,

“바로 들어가기는 좀 그렇고…카페나 갈까요?”

“네!”

나도 좋다.

네비에 찍혀있는 민영 씨의 집 주소는 그대로 둔 자동차가 천천히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분위기는 꽤나 좋다. 아니, 아주 좋다. 며칠 전, 우리 집에 민영 씨가 한 번 방문하고나서부터인가,

“한울 씨, 한울 씨!”

“네네?”

“이거, 이거 봐봐요.”

“뭔데….”

쪽―

“…요?”

어딘가 리미트가 해제된 느낌.

신호에 잠깐 걸린 사이 민영 씨의 목소리에 따른 내 움직임은 모두 민영 씨의 철저한 계산 하에 있던 것들이었다.

따끔함까지 느껴지는 내 볼을 스윽, 쓰다듬다 보니 잔망스럽게 웃는 민영 씨의 얼굴이 보였다.

“…….”

뭐랄까, 빡친다.

“민영 씨.”

“네?”

“…….”

턱!

“어…한울 씨?”

거침없이 두 손이 움직여 민영 씨의 볼따구를 잡았다. 방황하는 시선에서 당황이 느껴져 꽤나 통쾌했지만,

쪽―

“…….”

“메롱.”

여기까지는 완성해줘야지.

“…….”

“…….”

그렇게 잠시, 서로가 서로의 눈을 마주보며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웃음기는 살짝 톤다운 된 상황에서, 서로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

빠앙-!

“아.”

…지기엔 여기는 도로 위였다.

얼른 정신을 차리고 빠르게 주변을 살핀 뒤 엑셀을 밟았다.

“크흠.”

그치, 이 다음은 어색함 정도는 왔다갔다 해줘야 국룰이지.

각자의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 할 순둥이들은,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자동차의 기어가 P로 정박될 때까지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 했다.

“그…내리죠.”

“네에….”

일단 차에서 내린 뒤, 민영 씨 집 근처에 온다면 자주 들렀던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는 꽤나 낯익게 된 사장님께 각자가 마실 것을 주문하고 분위기 좋은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보니까…당분간은 푹 쉬시는 거죠?”

“그렇죠. 쉬고…아니, 어떻게 보면 쉬는 게 쉬는 게 아니긴 한데, 쉬는 거긴 하네요.”

아무것도 안 한다, 그것만 보면 쉬는 게 맞긴 하지. 하지만 그에 따른 결과물을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는 게 쉬는 거라 볼 수 있을까.

“푹, 진짜 푹 쉬세요. 올시즌 진짜 고생하셨잖아요. 정규시즌도 그렇고, 한국시리즈에 거기다 곧바로 프리미어12까지 나가고. 거기다가, 대회 끝나고 이런저런 행사까지 다니시고.”

“좀 후반에 몰려있었긴 했죠.”

“거기다가 재작년 후반에 좀 많이 던지셨잖아요?”

“네? 아, 네.”

야구를 꽤나 좋아하는 수준을 넘어 어느새 야구선수의 여자친구라는 포지션까지 잡게 된 민영 씨는 꽤나 전문적인 분석을 시작했다.

“올시즌 초에 조금 부진했던 게 그 이유도 없지는 않을 것 같거든요. 어떻게 보면 올시즌이랑 내년도 관계가 좀 비슷해보이기도 하고.”

“흐음….”

“관리 잘하셔야 돼요.”

“잘해야죠.”

“아시죠? 한울 씨가 이야기했던 3년, 내년이 마지막이예요.”

“아…그러네.”

17시즌 준플레이오프 때 생각없이 질렀던 3년의 기한. 어느덧 그 3년의 마지막 기회가 눈 앞으로 다가왔다.

이게 아예 어림도 없이 느껴진다면 좋게좋게 타일러서 넘어가겠는데, 한 단계씩 매년 발전하면서 당장 올해는 그 직전까지 당도한 모습을 보였다 생각하니…….

“흐음….”

여기서 포기 선언을 해버린다면 그게 더 쪽팔릴 것 같다.

“한울 씨.”

괜한 상념에 잠겨있다가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올렸다. 괜한 쌉소리로 인해 혼이라도 날 줄 알았건만, 민영 씨는 푸근하게 미소짓고 있었다.

“네.”

“우승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거 아시죠?”

“네?”

전혀 모르겠다.

“우승하면…좋죠, 당연히 좋죠. 좋은데 그것보다, 한울 씨도 그렇고 원하 선수들도 그렇고. 모두 안 다쳤으면 좋겠어요.”

“…….”

다치지 않는 것.

프로 선수를 기준으로 잡자면 가장 우선적으로 배제해야 하면서도, 또 그 이전에 사람이기에 최우선적으로 생각해야하는 모순점.

“아무도 안 다치고 우승할 거예요.”

“좋네요, 그거.”

내 손에 강한 압력이 느껴졌다. 조금도 아프지도 않고 오히려 기분이 좋은 압박감.

“히히….”

어딘가 바보 같이 웃는 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워 나도 그저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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