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공동
저기 맞은 편에 있는 박해진조차도 ‘발전’이라는 단어는 절대 사양하지 않을 것이다.
아까 오후에 윤성 씨가 나에게 했던 말은 애석하게도 사실로 판명이 나는 흐름이었다.
따악-!
“와….”
적군인데, 어떤 의미로 보면 세상에서 제일 나쁜 새끼인데,
“…저걸 어떻게 쳤대?”
보고 있자면 순수한 감탄이 나온다. 나만 그런가, 싶어서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팀원들 또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듯 했다.
아니지, 이러면 안 되지.
짝짝짝!
“아, 준혁이 좋아, 계속 던져!!”
“준혁이 볼 좋다, 좋아!!”
“가자가자, 드가자!!”
원하 챌린저스의 3선발, 우리 배준혁 군은 잘던졌다. 정말 잘던졌어.
1-2 카운트에서 존 아래로 살짝 떨어지는 슬라이더는 웬만한 타자들이라면 분명 헛스윙, 어떻게 맞춰봐야 땅볼이 나왔을테니까.
근데 그걸 또 어떻게든, 박해진은 있는 힘껏 퍼올려 잠실구장의 중앙 펜스를 넘겨버렸다.
멘탈.
나와 멘탈을 주제로 나눈 이야기로 한 보따리는 만들 수 있는 우리 준혁이는 멍청히 서있지 않았다.
짝짝짝!
“준혁이 괜찮아, 괜찮아!”
0 대 0, 6회 초 투 아웃 상황에서 투런포 하나를 얻어맞은 준혁이는 우리 덕아웃을 향해 눈을 돌려 나를 찾고 있었다.
짝짝짝짝!!
그래, 나 여깄다.
눈이 마주치자 나는 더욱 격렬하게 박수를 쳐댔다.
끄덕.
내 웃는 낯을 확인한 준혁이는 뭔가를 결심했는지, 고개를 한 번 끄덕거리고선 다시 와인드업을 잡았다.
이후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에 대한 복습. 사인을 교환하고 왼다리를 뒤로 살짝 뺀 뒤,
뻥!
던지는 것.
“스트라잌!”
좋은 공을 던졌다면 그 투수의 팀은 당연히,
짝짝짝!
“좋다, 너무 좋아요 준혁이이!!”
“준혁이형, 날 가져요!!”
난리가 난다.
단순히 스트라이크만 잡아도 이 정도인데
빵!
“스트라잌, 아웃!”
만약 아웃카운트를 잡고, 또 그 이닝을 끝냈다면 어떨까.
짝짝짝짝!
“와아악, 우리 준혁이 왔어!!”
“배준혁! 배준혁! 배준혁!”
투런포를 얻어맞았다는 사실은 이미 까마득하게 잊혀진 뒤다.
아무래도 실점을 하기는 했기에 셀카 세리머니까지는 못 하지만, 다들 두 팔을 머리 위로 들고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좋아했다.
실점해놓고 좋아하는 팀이 어디 있겠냐 묻겠지만, 여기있다. 그 원동력은 지지 않을 거란 믿음 비스무리한 것에서 나왔다.
2 대 0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지지 않기 위해 팀은 무엇을 해야하느냐, 또 팀원들은 무엇을 믿어야 하느냐.
따악-!
“갔다아아, 우리도 갔다아아!!”
“유훈! 유훈! 유훈!”
뭐긴. 우리 타자들도 할 수 있다는 뭐 그런 거지.
바로 다음 공격인 6회 말, 똑같은 투런포지만 훈이는 박해진의 투런포보다 일견 더욱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홈런을 쳐냈다.
동점을 만들어준 팀원들에 대한 예의를 아는 우리 준혁이 또한 7회 초를 세 타자로 막아낸 뒤 덕아웃으로 돌아왔다.
아쉽게도 7회 말 공격에서 점수를 더 내지는 못 했지만 괜찮아.
Your love is a wildcard, Folding is the hard part―
와아아악-!!
김한울! 김한울! 김한울!
일단 내가 막아줄게. 뒤에서 또 점수 내주겠지. 그렇게 해서,
“읍!”
퍼엉-!
“아이, 나이스볼!”
또 이기겠지.
띠링-!
[기록되지 않는 호투]
- 1이닝 무실점하세요 (0/1)
- 보상 - 포심 +2
헌철이의 머리 위에 떠있는 퀘스트 내용을 확인하고 로진백을 뒤로 슥 던졌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시스템, 스탯에 대한 모티브는 분명 내가 즐겨했던 야구게임 ‘풀카운트’가 틀림없다.
그렇다면 스탯당 맥시멈은 100.
“플레이!”
아마 올해 안으로 만렙 찍지 않을까. 만렙 찍으면 정말로, 진정한 의미로 리그를 지배하는 불펜투수가 되지 않을까.
“읍!”
퍼엉-!
“스윙-.”
던지고 전광판을 흘끔 보니 150km. 빨간색으로 표기되는 수치에 절로 고개가 끄떡여졌다.
몸쪽 애매한 높이의 직구로 헛스윙을 따냈다면 이번엔 바깥쪽 걸치는 슬라이더를 한 번 던져보자.
예전에야 애물단지에 지나지 않았지만 어느덧 리그에서 손꼽히는 구종으로 평가받는 이 슬라이더라면 충분히,
뻥!
“스윙, 스윙!”
또 한 번 헛스윙을 따낼 수 있을 거야.
존을 살짝 벗어나는 슬라이더에 헌철이의 배트가 움찔거렸지만, 그 자리에서 구심이 헌철이의 배트를 가리키며 헛스윙을 인정했다.
헌철이 본인도 인정하는지 이렇다 할 리액션없이 바로 내 결정구를 맞을 준비를 했다.
원하 출신 프리미어12 포수는 상수 출신 프리미어12 포수를 스플리터로 잡자 이야기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론 직구를 던지고 싶었지만, 괜찮아. 될 것 같네.
글러브에 묶여있는 양손이 머리 위로 넘어가는 동안 오른손의 다섯 손가락이 모두 각자의 임무를 받고 꼼지락거렸다.
가슴께에서 머리 뒤로 넘어가는 그 짧은 순간, 그 사이에 변신을 마친 스플리터 그립은,
“읍!”
투닥-!
“스윙, 스윙!”
땅바닥에 처박히는 스플리터로 환전되어 타자의 헛스윙을 이끌어냈다.
바운드된 공이 그리 멀리 튀지는 않았기에 규학이는 얼른 공을 집어다가 헌철이를 태그하고 1루쪽으로 라운딩을 돌렸다.
7번타자, 유격수 신태범.
다음 타자가 등장을 하든 말든, 나는 그쪽에는 신경쓰지 않고 구심을 향해 공을 들어보였다.
내가 볼보이쪽으로 공을 던지고, 또 내가 구심으로부터 새 공을 받는 사이 붕 뜬 타자가 멋쩍어하는 게 느껴졌지만 전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애초에 투수의 멘탈을 논할 때 기본 중의 기본이 이거거든. 지 할 거 하는 거. 그리고 그걸,
“읍!”
딱-!
“파울-.”
계속 하는 거.
부디 이것 또한 준혁이가 보고 배웠으면 좋겠는데.
카운트를 잡기 위해 던졌던 커브가 살짝 위험하게 들어갔다. 로진이 덜 발렸나, 싶어 글러브를 벗고 다시 로진을 처발처발했다.
좋아.
직전 공에 장타를 맞을 뻔했지만 신경쓰지 않는 것 또한 투수의 할 일이다.
보통은 무서워하거든.
와, 나한테 타이밍 맞았네? 다음 공에 치면 어떡하지? 맞으면 어떡하지?
실제로 준혁이가 나한테 이런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다. 난 그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읍!”
따악-!
맞으면 어때.
촤악-!
웬만하면 뒤에서 잡아줄 건데.
“명진이 바로 쏴!”
“읏흥!”
삼유간으로 빠지려고 하는 타구를 멋지게 다이빙 스탑으로 잡아낸 명진이는 지 성격만큼 이상한 소릴 내며 1루로 있는 힘껏 공을 때렸다.
빵!
“아웃!”
기성이가 팔을 쭉 뻗어 송구를 잡아냈다. 좋은 송구와 좋은 포구를 이뤄낸 두 내야수들에겐,
짝짝짝!
“아우, 좋아, 수비 좋아아악!”
찬사를 아낄 수가 없다. 찬사를 아끼는 것 자체가 죄악이다.
멋진 호수비를 보여준 명진이에게서 라운딩이 끝이 났다. 명진이는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 내가 있는 곳까지 달려와선,
“한울이형, 가자악!”
소리를 한 번 친 뒤 자기 자리로 되돌아갔다.
정신이 나간 게 확실하다, 그렇게 생각하며 피식 웃고 있을 때,
8번타자, 우익수 박명기.
이번 이닝 마지막 타자로 예고된 박명기가 타석에 나타났다.
공을 뽀득뽀득 닦아낸 뒤 플레이트를 밟고, 규학이의 사인을 살폈다. 초구로 원하는 건 오늘 아직 던지지 않은 싱커.
좋겠다, 싶어서 고개를 끄덕이곤,
“끅!”
바깥쪽 절묘한 위치로 걸칠 수 있도록 싱커를 내던졌다.
뻐엉-!
“스트라잌-!”
우선 첫 카운트를 하나 벌어낸 뒤,
“어이쿠!”
키보다 살짝 높게 떠오른 규학이의 반구를 약한 점프로 받아내고 다시 플레이트를 밟았다.
아웃 카운트도 여유가 있고, 볼 카운트도 조금은 여유가 있는 상황에서 규학이는 낚시를 한 번 해보자 권유하고 있었다.
규학아, 넌 어떤 포수가 되고 싶냐?
저요? 전…….
“읍!”
사람을 낚는, 타자를 낚는 포수요.
뻥!
“스윙-!”
타팀 팬들에겐 나쁜 포수라 불려도 할 말이 없을 규학이지만, 괜찮아. 그건 극찬이거든.
조금 전 헌철이와는 다르게 아예 시원하게 헛스윙을 돌려버린 박명기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린 뒤 다시 제 루틴을 실행하기 시작했다.
바깥쪽 걸치는 싱커와 바깥쪽에서 도망가는 슬라이더로 2스트라이크를 선점한 투수는 무엇을 던지고 싶어할까.
배트를 빙빙 돌리는 박명기의 눈에는 그런 글자들이 써있었다.
박명기는 여기서 한 가지 중대한 단어를 빼먹은 모양이다.
“읍!”
다른 포수들이라면 어떤 공을 요구하고, 또 다른 투수들이라면 어떤 공을 던지고 싶어할까.
다른.
왜 나를 다른 투수, 왜 규학이를 다른 포수와 같다고 생각하셨습니까.
퍼엉-!
“스트라이잌, 아웃!”
바깥쪽에서 두 번 놀았으니, 몸쪽 한 번 깊숙하게 찔러주는 것이 이 바닥의 예의 아니겠습니까, 선생님.
짝-!
“쌰아악!”
정말 딱 원하던 위치에 공을 꽂아넣었을 때, 그리고 그 공이 카운트로 잡혔을 때의 쾌감이란.
띠링-!
[기록되지 않는 호투]
- 1이닝 무실점하세요 (1/1)
- 보상 - 포심 +2
제구 - 최상
구위 - 상
체력 - 중
포심 - 87+2=89
커브 – 83
슬라 - 82
스플 - 83
체인 - 83
싱커 - 82
특성
해탈 - 어떤 타구, 상황에도 그러려니 합니다.
불편 - 상대하는 타자가 타석에서 투수를 보면 어딘가 불편하게 만듭니다.
편안 - 본인을 보는 이들이 편안함을 느낍니다.
집중 – 집중할 수 있는 대상의 수가 늘어납니다.
어느 새 직구는 90에 가까워져가고, 변화구들 또한 80대 중반에 다다라가고.
벌써 이만해도 KBO에선 적수를 찾아볼 수가 없는 정도의 스탯이지 않을까.
짝짝짝!
“점수 내자, 점수 내자!”
8회 초를 깔끔하게 막은 뒤 맞이하게 되는 8회 말 공격은 아쉽게도 세 타자로 또 한 번 이닝이 교체되어야 했다.
동점 상황을 유지한 채 맞이하게 된 9회 초 수비는,
“선배, 보여줘, 보여줘!!”
“최은구! 최은구! 최은구!”
우리 은구 선배가 담당하게 되었다.
이기고 있는 상황도 아니고, 동점 상황에서 낼 수 있는 불펜 카드로는 안정성에서 아무래도 떨어진다 볼 수 있다.
차라리 김한울이 한 이닝 더 던지는 게 낫지 않아? 다른 팀도 아니고 상수랑 하는 게임인데?
혹자들은 아직까지도 그렇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뻐엉-!
“스트라이잌, 아웃!”
뻐엉-!
“스윙, 아웃!”
띡!
“마이, 마, 마아아악!”
명진이의 괴성과 함께 이닝을 깔끔하게 마무리시키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글쎄, 그런 소릴 지껄이는 건 그냥 헤이터들의 쌉소리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아, 은구 선배 나이스요!”
“가자가자, 계속 가자!!”
“점수 내자, 끝내자!!”
9회 말, 선두 타자로 나선 건 규학이. 그리고 상수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필승조 중 한 명인 장형선.
뻐엉-!
“스트라잌-!”
규학이는 초구부터 강력하게 들어오는 직구를 빤히 바라보서도 크게 개의치 않아했다.
치면 되지, 뭐 이런 표정.
치면 되지, 다른 타자들 입장에서 듣자면 코웃음이 날 정도로 어이가 없을 개소리지만,
딱-!
“나이쓰으!!”
“가자가자, 규학이 가자악!!”
친다. 쳐낸다.
1루를 밟은 뒤 대주자 기범이와 교체된 규학이는 빠르게 우리 덕아웃으로 달려와선,
“찰칵!”
“아이, 찰칵!!”
셀카 세리머니를 한 번 마친 뒤 본인의 다음 타자인 훈이의 타석을 함께 지켜보기 시작했다.
아까, 박해진의 투런포에 똑같은 투런포로 맞대응했던 훈이. 우리팀에서 타격적인 부분에선 가장 최하위권에 속한 타자지만,
딱-!
“파울, 파울!”
훈이 또한. 올해는 다르다.
“타이밍 좋아아악, 계속 쳐어!!”
“굿 뱃, 스윙 좋아악!!”
훈이도 어느새 내년 시즌을 마치게 되면 FA 자격을 얻게 되는 고참급의 선수다. 그 긴 기간 동안 타석에서는 이렇다 할 믿음을 부여해주지는 못 한 게 사실.
하지만,
뻐엉-!
“볼-.”
다소 성급함이 보였던 모습은 이제 없다. 차분하게 타이밍을 맞춰내고, 차분하게 지켜본 뒤,
따악-!
차분하게 때려내고,
“와! 와아! 와아악!!”
“가, 갔어어!!”
차분하게 경기를 끝내버린다.
와아아아악-!!!
유훈! 유훈! 유훈!
원하 챌린저스의 팬들이 뭐라고 하든 훈이는 들리지 않는 모양새였다. 얼른얼른 베이스들을 돌아낸 뒤 홈을 찍고 덕아웃으로 달려와선,
“야야야야야!!!”
“아아아악!!”
“찰칵이다, 이 새끼야아악!!”
팀원들한테 열심히 두들겨 맞았다.
“이여얼, 유훈!”
“멋있었냐?”
“X발, X나 멋있어어어!!”
웬만하면 욕 안 하려고 하는데, 투런포 두 개로 팀의 4점을 혼자 책임진 타자와의 대화에선 아무래도 참을 수가 없다.
“됐냐! 우리 1위냐! 또 1위 맞냐!”
페넌트레이스의 전체 일정을 따지고 보면 이제 겨우 10%를 살짝 넘겼을 뿐이다.
그럼에도 원하의 선수들은,
“맞지, 우리 1위지!”
“야, 찍어! 찰칵 찍어어!!”
‘공동 1위’라는 타이틀에서 ‘공동’이라는 두 글자를 떼어낸 것에 대해 너무나도 큰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그 희열은 세리머니에서도 아주 잘 나타났지.
훈이가 우리 선수단을 등진 채 들어올린 왼손, 모두가 그 왼손에 집중하고 있었다.
찰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