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어디 갔냐
“형형. 요즘 웨이트 안 하세요?”
“싫어.”
“네?”
“싫어.”
“그….”
“싫다고.”
“…….”
땀내나는 구역으로 나를 끌고 가려는 혁준이의 애절한 구애를 뿌리치고 가만히 덕아웃 한 구역에 앉았다.
“예…뭐. 전 갔다 올게요.”
“싫어.”
“뭐가요, 또.”
“여기 있어.”
“저 웨이트 한다니까요?”
“…나 심심해.”
“…….”
프로야구에 데뷔하고 올해로 13년째.
내가 다른 팀에 소속된 적이 없어서 다른 팀들이 어떤 식으로 굴러가는지,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지에 대해 자세히는 모른다.
그러나 나름 연차가 쌓였기 때문에 이쪽저쪽에서 흘러들어온 상식 같은 건 꽤나 많은 편이다.
어느 팀은 이런 상황에 어떤 훈련을 한다더라. 또 어느 팀은 어느 훈련만큼은 무조건적으로 진행을 해야 한다더라.
그 상식들을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조합하며 멋대로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아, 역시 나는 원하에 오길 진짜 잘했구나.
“…그래서, 뭐, 뭐 하고 놀아드릴까요? 어르신.”
“허허, 혁준아. 이 어르신은 혁준이가 가져다주는 커피가 한 잔 마시고 싶구나.”
“와! 피디님! 방금 혹시 찍었어요? 찍었지?!”
“와! 찍었어요!”
“아니….”
진짜, 다른 7개 구단 어느 곳에서도 느낄 수가 없는 후리함이 가득하거든. 난 이게 너무 좋아.
덕분에 우리 팀만이 가질 수 있는 이 독특한 분위기라든지, 친근한 분위기라든지. 다 좋아.
“안 그래도 이번에 미튜브 올라갈 거 있잖아요? 그거 제목을 요리킹 조리킹 부조리킹으로 하려고 했는데요, 이거 인트로로 써야겠다.”
“완벽하네요.”
“…….”
이것들이…….
“가, 가라고. 웨이트를 하든 니 맘대로 해, 가.”
“형은요?”
“나? 하던대로 해야지. 튜빙 좀 땡기고 스트레칭 정도?”
“형도 웨이트 좀 하지.”
“싫어. 힘 빠져서. 오프 때 하는 것만 해도 충분해.”
우리가 이 후리함을 가질 수 있는 요소는 선수들의 성격에서 우러나오는 점도 있기야 하지만, 그것보다 조금 더 근본적인 면이 한 가지 있다.
바로 방목형 구단이라는 점.
튜빙 밴드를 땡기든 아니면 러닝을 뛰든, 심지어는 훈련 자체를 그냥 하든 말든.
프론트나 전력 분석실에서 제시하는 가이드 라인이 존재하고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가이드 라인일뿐, 강요는 절대 하지 않는다.
무책임?
훈련의 과정이 100% 훈련의 결과로 대입되는 건 아니지만, 1%의 환율이라도 건질 수가 있다면 훈련에 매달려야 하는 것이 야구선수의 본분.
하지만 이런 훈련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강요하지 않는다라…….
그 스크립트만 떼어놓고 보자면 손가락질받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 뒷장에 함께 쓰여진 서약서도 함께 챙겨볼 필요가 있다.
쉬든 놀든 훈련하든, 니네 알아서 해. 대신에 뒤처지면 나도 책임 안 진다.
무책임한 거 맞지. 하지만 그건 의무를 다하지 않고 실속만 빼먹으려는 작자들의 변명일 뿐이다.
“그럼 전 웨이트하러 가볼게요.”
“고생하고.”
“네!”
혁준이는 본인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체단실쪽으로 먼저 갔다.
덕분에 다소 심심한 내 옆에 남은 건…….
“…뭐요.”
요 쪼물딱이 하나.
“진짜 그렇게 쓸 거예요?”
“뭐가요?”
“요리킹 조리킹 뭐? 그거.”
“네. 진짠데.”
“그거 미튜브에 써도 되는 거예요?”
“그럼요. 욕설도 아닌데.”
“내 이미지는.”
“그 이미지 누가 만들었는데.”
“…….”
…나네?
“에씨.”
거칠게 한 번 분노를 표출해주고,
“어디 가요?”
“부조리하러요. 왜요.”
“찍어야징.”
“…….”
후배들의 안위를 살펴보기 위해 덕아웃을 벗어났다.
원래대로 팀의 계획이 흘러갔다면 오늘 선발투수는 팀의 3선발인 준혁이가 맡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괜찮냐?”
“좀….”
“좀 살살 좀 하지 좀 그랬냐 좀.”
“그러게요.”
“봐봐.”
그저께 캐치볼 하다가 생긴 검지 손가락의 물집이 생각보다 심각하단다.
준혁이의 오른손을 거의 뺏다시피 하며 검지 손가락의 상태를 살폈다.
“으.”
보는 내 손가락이 더 아프게 느껴질 정도로 상태가 영 좋지 못하다.
“트레이너님은 뭐라고 하시든? 감독님은?”
“그래도 회복은 빠른 편이라…등판 한 번만 넘어가면 될 것 같아요.”
“그래…모처럼 쉬는 건데 괜히 뭐 해보겠답시고 나대지 말고.”
“그래도 그….”
“쉬라면 쉬어.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쉬냐.”
“마음이 좀 불안한 거 있잖아요. 쉬란다고 쉬어도 되나 싶은 그런….”
“쉬어도 되니까 쉬라 그러지. 지금 우리 여유 많잖아.”
26승 12패.
원하 챌린저스는 아예 기세를 타고 벌써부터 아예 독주 체제를 정립했다. 2위 상수 타이거즈와의 게임차도 어느새 2게임 반차까지 벌어졌으니까.
“괜히 너 지금 생쇼 하다가 더 크게 다치면 그게 더 손해야. 쉬라면 쉬어.”
“네에….”
사실 현재의 시즌 1위라는 기록은 원래의 계획에서 꽤 벗어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시즌 중후반까지는 2, 3위 정도를 유지하다가 막판에 팍 치고 나가는 계획.
의도치 않게 시즌 초반부터 1위를 독주하는 모양새가 되긴 했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좋다고 할 수 있다.
처음부터 죽자살자 덤벼들면서 쟁취한 1위가 아니라, 정신 차리고 보니 1위네? 같은 느낌이 강하니까.
툭툭―
“정 움직이고 싶으면 손가락에 드레싱 같은 거 하고 코어만 좀 만져줘.”
“아, 네.”
“그럼 쉬고.”
“네.”
어딘가 침울해져 있는 준혁이의 어깨를 몇 번 두드려준 후 불펜으로 향했다. 상태가 이런 준혁이를 대신할 오늘의 선발투수가 몸을 푸는 모습을 구경 한 번 해볼까, 싶어서.
“그러고 보니까 오늘 선발이 서성원 선수죠?”
“일단은 그렇게 됐네요. 성원이 정도면 믿을 만하지.”
불펜으로 향하는 길, 뒤에서 따라오던 은서 씨는 오늘의 선발투수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간단하게 성원이에 대해 설명을 해달라거나, 혹은 성원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등의 이야기.
이것도 미튜브 영상에 나가려나?
성원이에 대해 좋게 평가할 예정이지만, 미튜브라는 이유로 그런 포장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성원이 좋죠. 진짜 좋지.”
굳이 그러지 않아도 좋은 게 사실이니까.
“직구도 무난하고, 변화구도 꽤 있지. 걔가 직구랑 슬라이더 커브에…포크볼 던지던가?”
“그럴 거예요.”
“고졸 1년차인 거 생각하면 진짜 좋은 거지. 변화구들 하나하나가 어설픈 게 없거든. 다 잘 던져.”
“제구는요? 제구의 한 축을 담당하는 김한울 선수의 평도 한번 듣고 싶은데요.”
“제구…그냥 나쁘지는 않은 정도? 무난한 정도죠?”
“그럼 서성원 선수에 대해 한마디로 표현하면?”
“한 마디로?”
140km 중반대의 구속, 세 구종의 변화구와 나쁘지 않은 제구.
아직 보완해야 할 점이야 많지만, 지금 당장에 가지고 있는 실링도 그렇고 실질적으로 내고 있는 실적도 그렇고.
이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올해 신인왕 성원이가 따지 않을까?”
신인왕급.
“오호…기대해봐도 돼요?”
“시즌 후반까지 볼 필요야 있긴 한데. 근데…지금 성원이만큼 좋은 신인 친구들이 없지 않아요?”
올 시즌 성원이 성적이 아마…15이닝 정도에 평균자책점은 1점대 후반이던가.
아직은 타자들이 익숙하지가 않아서 당해주는 느낌이 강하긴 하다. 점차 시간이 지나며 얻어맞는 날도 많아지기야 하겠지.
하지만 2점대도 필요 없고, 3점대 초반만 기록해도 신인왕 정도는 여유롭게 따낼 수 있지 않을까.
“그거야…그렇죠.”
“혹시 성원이 던지는 거 본 적 있어요?”
“게임 때 던지는 거야 꽤 봤죠. 근데 바로 옆에서 보는 건 오늘이 처음인 거 같네요.”
“한 번 봐봐. 내가 왜 그렇게 자신 있게 얘기하는지 알 거야.”
끼익―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불펜의 문을 열었다.
성원이의 그 잘생긴 얼굴, 시원시원한 투구, 빵빵 터지는 미트 소리와 건영이의 시끄러운 파이팅.
이 모든 것이 가득해야 할 불펜은,
“…뭔데.”
왜 조용하냐.
“안녕하심까!”
“어 안녕….”
벤치에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던 건영이는 내 등장을 눈치채고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고개를 숙여왔다.
적당히 인사를 받아주고 불펜의 현재 상황을 살폈다.
“야, 건영아.”
“예!”
“왜 너밖에 없냐?”
“저요?”
“오늘 성원이 등판 날 아니야?”
“맞죠.”
“아니 뭐 성원이도 없고 코치님도 안 계시고. 둘이 다른 데서 몸 풀고 온대?”
“아뇨?”
“그럼.”
“코치님은 코치진분들 모이는 것 때문에 조금 이따가 온다 하셨어요.”
“성원이는?”
“성원 씨는 화장실이요.”
“아….”
그제서야 이해가 되는 상황에 고개를 끄덕거린 뒤 건영이의 옆자리에 앉았다.
“카메라 잠깐 내려놔요. 찍을 거 없잖아.”
“없긴요. 김한울 선수가 건영 씨한테 부조리하는 거 기대하고 있는데요.”
“되도 않는 쌉소리 하지 말고.”
“이제는 미튜브 PD한테도 부조리하는 거예요?”
“그거 뇌절이라니까.”
힘들게 은서 씨를 내 옆자리에 쉬게 하고, 세 명이서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중에 꽤나 건설적인 이야기도 나왔지. 대표적으론 나중에 미튜브 컨텐츠 짤 때 불펜포수 애들 얘기 좀 진지하게 찍어달라, 그런 얘기.
“에이, 제가 좋아서 하는 건데요.”
“좋아서 하는 거랑 고생하는 거랑은 다른 얘기야.”
“허허….”
“그러고 보니까 한울 씨가 불펜포수분들한테 밥도 자주 사주신다면서요?”
“네네! 다른 투수분들도 잘 챙겨주시긴 하는데 한울 형님이 진짜 많이 챙겨주세요.”
“아이 뭐 그런 얘길 하고 있냐.”
낯 간지럽게.
손을 휘휘 저으며 사람 얼굴 벌게지게 만드는 이야기를 치워냈다. 그럼에도 이 둘은 내 얼굴에 자꾸 금칠을 해준다.
아까 부조리 어쩌고 할 때는 언제고.
멋쩍음에 빨리 주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 싶었다. 빠르게 다른 얘기를 꺼낼 게 없나, 싶다가 한 가지 주제를 찾아냈다.
“…근데 있잖아.”
찾아놓고 보니 생각보다 꽤 심각한 사안이기도 했다.
“네?”
“성원이 얘는 왜 안 오냐?”
“어…그러게…요?”
음…….
“건영아. 얘 나랑 은서 씨 여기 오기 얼마 전에 화장실 간 거야?”
“한…10분?”
세 명이서 앉아 이야기를 시작한 지가 대충 15분. 먼저 성원이가 떠난 시간을 합하면 25분.
화장실이 그렇게 막 멀리 있는 것도 아닌데 이 정도로 시간이 걸리는 걸 생각한다면 뭐…….
“배가 많이 아픈가?”
“긴장 많이 한 것처럼 보이긴 했어요.”
“아…그런 건가보네.”
“그거 같아요. 전에 성원 씨 등판 때도 이랬거든요.”
“아이고야. 애는 애구나.”
“그게 뭔데요?”
나랑 건영이만 아는 얘길 하고 있자 은서 씨가 이야기 속으로 잠깐 뛰어들었다. 이에 나는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과민성 대장 증후군.”
“네?”
“과민성 대장 증후군 같다구요.”
“그게 뭔데요?”
“…….”
후배 이미지 좀 살려주려 했건만, 눈치가 왜 이리 없으신가.
“너무 긴장해서 배 아픈 거 있잖아요. 그거 같다고.”
“아….”
풀어서 설명을 해주니 그제서야 은서 씨도 고개를 끄덕거린다.
“귀엽네요, 긴장해서 배가 아프다니. 어리긴 하네.”
“하긴, 은서 씨도 이젠 나이 꽤 먹었죠. 내년에 은서 씨도 서른이죠?”
“야!”
“니보단 나이 많거든!”
그렇게 은서 씨랑 티격태격하고 있자니,
끼익―
“아, 죄송합니다!”
성원이가 다시 불펜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아까 불펜을 떠날 때는 보이지 않았던 나랑 은서 씨가 보이자 성원이는 다시,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내 쪽으로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와, 역시 부조리.”
“시꺼. 성원이 배는 괜찮냐?”
“예! 괜찮습니다!”
걱정을 한 스푼 건네니 성원이는 잘생긴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잘생겼네.
“조금 서둘러라, 성원아. 등판까지 시간 얼마 없다.”
“예!”
다시 스트레칭하고 캐치볼하고 하면 실질적으로 세션에 몸을 맞출 시간은 고작 몇 분밖에 되지 않을 것 같다.
성원이도 그걸 아는지 많은 부분을 생략하고 최대한 피칭쪽에 비중을 두고 몸을 풀기 시작했다.
뻐엉-!
“어우…좋네.”
은서 씨가 다시 카메라를 들고, 또 코치님도 불펜으로 다시 복귀하시고, 성원이의 피칭을 구경하려는 팀원들도 모이고.
그렇게 다시 불펜은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했다.
“성원아.”
“예, 코치님!”
“성원이 너는 선발 지향이잖아.”
“아, 네. 맞습니다.”
“그러면 여기서부터 막, 그렇게 때리면 안 돼. 세션은 세션이야. 지금 네가 어떤 감을 가지고 있는지, 그것만 알면 된다고.”
“예!”
“천천히 해. 서두르지는 말고.”
“예!”
성원이는 1선발, 승진이는 마무리.
두 신인 투수들에 대한 장래는 어느 정도 가닥이 잡혀가는 모양새다.
뻐엉-!
“아이, 성원 씨 좋다, 좋아!”
우타자의 바깥쪽에 정확히 꽂아 넣는 성원이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두 친구들의 장래가 절대 헛된 장래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짝짝짝!
“이야, 성원이 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