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과감하게
시작부터 대뜸 존의 한가운데를 꽂아버리는 투수가 과연 존재할까.
아니, 시작부터 대뜸 존의 한가운데를 던지고 싶어 하는, 또 그래서 던지는 투수가 존재할까.
“읍!”
퍼엉-!
그리고 그렇게 던져놓고 그 다음 공 또한 한가운데를 꽂아버리고 싶어 하는, 또 그래서 그렇게 던지는 투수가 존재할까.
글쎄, 나는 충분히 있을 법하다 생각했지만, 박연호의 입장에선 아니었나보다.
“스트라이-크, 투!”
보통 타자가 판정이나 상황에 의아함을 느끼면 심판을 쳐다보지 포수를 쳐다보지는 않거든.
표현 그대로, 눈 뜬 상태에서 스트라이크 두 개를 먹어버린 타자는 그제야 제대로 된 타격 스탠스를 취했다.
무릎을 조금 더 굽히고, 스트라이드를 조금 더 벌려두고, 배트를 조금 더 살랑거리고.
다음 공은 어떻게든 쳐낸다, 쳐서 나가지는 못해도 어떻게든 버틴다.
버텨?
“이것도 버틸런지요.”
그렇다면 버티려고 할 수록 추하게 나자빠지는 꼴을 만들어주자.
어떻게?
“읍!”
앞서 던졌던 공들과 거의 비슷하게 속여넘길 수 있을 법한 공으로.
부웅-! 털퍽!
“스윙, 아웃!”
그래, 체인지업이다. 직구와 가장 같은 회전을 가지고 있기에 가장 직구처럼 보일 수 있는 공.
또 동시에, 직구‘만’ 생각하고 있다면 절대로 타이밍을 맞춰낼 수 없는 공.
박연호는 내가 원했던대로 제자리에서 나자빠지는 헛스윙을 보이고선 얼른 제 덕아웃으로 숨어들어갔다.
1번타자, 조!! 홍!! 규!!
다음으로 등장하는 1번타자. 직전 타자의 대결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봤을 조홍규에겐,
“읏!”
초구부터 존의 바깥쪽 낮은 곳으로 떨어지는 커브를 던져버렸다.
앞서 박연호와의 대결에서 직구로 카운트를 잡아갔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모양인지, 조홍규는 초구부터 자신 있게 방망이를 휘둘렀다.
딱-!
“파울, 파울!”
하지만 150km 언저리의 직구를 상정해둔 뒤 맞이하는 110km 커브는 느려도 너무 느리다.
끝까지 보고 제대로 휘둘렀다면 아마 홈런이 되었음에 부족함이 없었을 스윙.
아마 타자는 지금 아깝다는 감정을 가장 강하게 느끼고 있겠지. 다음 공은 끝까지 본다, 끝까지 보고 친다, 그렇게 생각하겠지.
“끅!”
붕-!
그러시던가.
다시 149km 직구, 조홍규는 어떤 의미로 보자면 직전의 박연호보다 더 어설픈 스윙으로 또 하나의 카운트를 헌납했다.
자, 타자는 과연 스트라이크 두 개에 대한 타임 라인을 중요시하고 있을까, 아니면 스트라이크 두 개를 먹었다는 사실 자체를 중히 보고 있을까.
이건 살짝 고민이 되는데.
규학이의 사인을 골라내는 척하며 조홍규의 움직임을 살폈다.
두 마디 정도 짧게 잡던 배트를 더욱 짧게 잡고, 스텝이나 레그킥을 거의 하지 않겠다는 듯 스트라이드를 한 발 정도 더 벌린 스탠스.
후자다.
현재의 카운트가 어떻게 생겼는지보다는 이 카운트로 인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더 큰 고민을 갖고 있다 판단했다.
“말고…말고…오케.”
그렇다면 타이밍이나 로케이션으로 따질 문제는 아니다.
궤도. 혹은 움직임.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슬라이더 사인이 나오자 고개를 한 번 끄덕거렸다.
“후우….”
그냥 어떻게든 삼진을 잡아라, 아니면 무실점을 해라 같은 단순한 퀘스트가 아닌 ‘볼’을 허용하면 안 되는 한 단계 위의 퀘스트 내용.
이 전제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이번 공은 상당한 집중력을 요했다.
와인드업에 들어가기 전에도, 와인드업에 들어간 후에도 몇 번씩이고 심호흡을 한 뒤,
“끗!”
존의 정가운데를 향해 슬라이더를 던져냈다. 오른쪽 면이 강하게 긁힌 공은 어느 순간 팡! 하는 효과음이 들리는 것처럼 조홍규의 바깥쪽으로 튕겨 나갔다.
빵-!
일단 존 안으로 들어오는 것처럼 보이는 출발에 조홍규가 배트를 움찔거리긴 했지만, 마지막은 볼로 판단했는지 급하게 배트를 거뒀다.
“스트라이-크, 아웃!”
참 감사하게도 말이지.
구심이 시원한 목소리와 함께 주먹을 휘갈기는 모습을 보곤 미련 없이 몸을 뒤로 돌렸다.
로진을 찹찹 충전하며 내야수들이 라운딩하는 걸 기다렸다가,
“어…볼 좋다.”
성훈이형이 던져주는 공을 받아냈는데…….
“네? 아, 네.”
왜 저런대.
항상 당당하고 할 말 다 하는 성격의 성훈이형이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그 이유는 생각보다 빠르게 확인할 수 있었다.
“빠졌잖아요!”
“들어왔다니까?”
“아니, 미트가 여기 있었는데 그게 어떻게 들어가요!”
“들어갔다고!”
아이구야.
바깥쪽 걸치는 슬라이더에 루킹 삼진 판정을 받은 조홍규가 어지간히 빡이 쳤는지, 심판에게 바락바락 들이대며 불만을 표출하고 있었다.
일단 경기가 중단되었기에 나도 마운드 뒤에 서서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뭘 보는데, 빠졌다니까요!”
“들어갔다고! 네가 심판이야?!”
저거 좀 심각한데.
상황은 점점 과열되어가고 있었다.
결국 심판은 조홍규에게 퇴장을 명령하고, 이에 불복종한 상대팀 감독님까지 자리에서 뛰쳐나와서 다시 화를 내기 시작하며 2라운드가 시작됐다.
“음….”
제구가 특출나게 좋은 나, 그리고 프레이밍이 특출나게 좋은 규학이로 이루어진 배터리에게 이런 상황은 꽤나 익숙했다.
잘못한 거 하나도 없는데 벌 서고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되나.
직접적으로 따져보자면 이 사태의 원인은 나, 간접적인 원인은 규학이. 또 간접적인 피해자는 심판이고 직접적인 피해자는 타자가 되겠지.
원인 제공?
이런 현상을 만들어낸 원인이 나라는 점은 절대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피해자가 발생했다는 사실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나는 계속해서 피해자를 양산해갈 생각이다.
그게 내 일이니까.
상대편의 감독님이 상대편 코치님들의 손에 이끌려 나가는 걸 확인한 심판은 손가락을 나를 가리켰다.
“플레이!”
심판도 사람이고, 사람이니까 흥분이라는 걸 쉽게 지우기는 어려울 테고. 아마 지금 심판에게 기계 같은 판정을 기대하긴 어렵지 않을까.
세 번째 타자로 등장한 김성주에게 던지려 했던 초구는 지금까지의 흐름을 이어가도록 바깥쪽에 걸치는 직구를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심판이 짓고 있는 표정을 보니,
‘AI 심판이 내가 된다!’
아무래도 계획을 좀 수정해야 할 것 같다.
로케이션, 무브먼트, 벨로시티.
투수의 세 가지 요소 중 제구에 관한 부분만 완전히 잊어버리고 공의 움직임과 구속에만 온전하게 집중했다.
“으윽!”
부웅-!
“스윙-.”
평소 1cm 정도 벌리던 검지와 중지를 아예 붙이고 손목에 있는 힘껏 때린 직구는 분명 훨씬 강력한 회전과 구속을 낳았을 거다.
내가 기계가 아니라 회전수나 수직 무브먼트까진 모르겠다만,
153km
전광판에 빨간색으로 표시된 구속은 내 생각에 대한 분명한 편린이 되었다.
“후우-.”
정말 있는 힘껏 던지느라 타자가 어떤 식으로 헛스윙을 했는지까지는 모르겠다만,
“…내 오늘 진짜 직구 90 찍는다.”
다시 한번 직구 사인을 내는 규학이를 보아하니 아주 볼만한 스윙이 나왔던 것 같다.
힘.
규학이는 타자가 그런 어설프고 꼴사나운 스윙을 한 이유를 내 쪽에서 찾아낸 것 같다.
“으윽!”
부웅―
“스위잉-.”
바로 이 힘 있는 직구.
이번엔 152km가 나왔다는 알림을 확인하고 이번 이닝을 어떻게 마무리 지을까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여기서 체인지업이나 슬라이더를 던져보는 것도 분명 좋은 선택이겠지만,
검지 손가락 하나. 팔꿈치, 글러브, 어깨.
그것보다는 지금의 흐름을 유지하는 것이 훨씬 좋은 생각이 아닐까.
“후우우.….”
온몸의 긴장을 추우욱 풀어내기 위해 폐에 있던 숨을 모두 뱉어냈다.
천천히, 머리 뒤를 넘어갔던 양손이 얼굴 앞을 스쳐 지나가고 왼쪽 무릎을 끌어올려졌다.
전신의 힘은 모두 풀어진 상태지만 유일하게 살을 맞대고 있는 오른손 검지와 중지에만 약간의 힘이 들어갔다.
붙여서 잡은 만큼 조금이라도 각도를 어긋나게 던져버리면 정말 대형사고가 나버릴 수도 있으니까.
“…우윽!”
너무 강하게 던졌는지 고개가 옆으로 홱 돌아가버렸다. 때문에 공이 어디로 갔는지, 타자는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퍼엉-!
분명하게 들리는 미트의 포구음과,
“스윙, 아웃!”
이닝이 종료되었다는 심판의 외침만큼은 굳이 그곳을 보지 않아도 귀로 듣는 것이 가능했다.
띠링-!
[과감성]
- 스트라이크만 던져 1이닝 무실점하세요. (단, 파울과 타격은 스트라이크로 인정) (1/1)
- 보상 - 포심 +2
제구 - 최상
구위 - 상
체력 - 중
포심 - 89+2=91
커브 – 85
슬라 - 82
스플 - 83
체인 - 83
싱커 - 84
특성
해탈 - 어떤 타구, 상황에도 그러려니 합니다.
불편 - 상대하는 타자가 타석에서 투수를 보면 어딘가 불편하게 만듭니다.
편안 - 본인을 보는 이들이 편안함을 느낍니다.
집중 – 집중할 수 있는 대상의 수가 늘어납니다.
짜악!
“얏쌰아아악!”
기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왼손에 낀 글러브를 후려치며 기뻐했다.
“아 잘한다, 잘한다!”
“형님 찰칵이요!”
“아, 찰칵이요!”
덕아웃으로 돌아가는 길, 덕아웃에서 기다리던 팀원들의 반응이 생각보다 훨씬 화끈하다.
“형, 멋있어어억!!”
“대박, 이걸 또 보네.”
게다가 함께 그라운드에서 수비를 맡았던 선수들의 반응 또한 화끈하다.
뭔데.
기쁜 건 알겠지만, 호들갑이 정상수치를 아득하게 뛰어넘은 모습들을 보니 의아함이 느껴진다.
덕아웃으로 돌아와 모자를 벗고 자리에 앉자 기범이가 다가와서 어깨를 툭 밀었다.
“여어어, 한울이 개멋있어어.”
“내가 좀 잘생겼지.”
“아, 그건 좀.”
이 새끼가.
“전에 너 했을 때도 이건 뭐지, 했는데 이걸 또 하네. 이거 두 번 기록한 거 너밖에 없지 않냐?”
그러니까 뭘?
혼자서 떠드는 기범이를 멀뚱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런 내 표정이 맥이 탁 풀렸는지 기범이의 표정도 함께 뚱해졌다.
“설마 싶긴 한데, 모른다고 하면 너 진짜 멍청이.”
“미안하다. 멍청이 해야 될 것 같다.”
“실망이 좀 큰데.”
“그건 유감.”
간단한 티키타카 이후 기범이가 사실을 알려주었다.
“1이닝 9구 3삼진이요, 아저씨.”
“아…아?”
기범이의 말을 듣고 방금 등판의 내용을 한 번 복기해보았다.
박연호한테 직구 루킹, 직구 루킹, 체인지업 헛스윙, 삼진 아웃.
조홍규한테 커브 파울, 직구 헛스윙, 슬라이더 루킹, 삼진 아웃.
김성주한테 직구 헛스윙 세 개로 삼진 아웃.
“아…. 아!”
“멍청이.”
새삼 엄청난 기록을 내고, 또 그 기록이 통산 두 번째 기록이라는 것까지 생각해내지 못할 정도로 나는 바보였던 것인가!
“아니지. 그만큼 내가 어엄처엉 집중하고 있었단 소리지.”
아니, 그런 식으로 나를 폄훼하기보다는 어떻게든 그 상황을 잘 포장해냈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기도 하고.
“지랄 노.”
“진짠데.”
“근데 첫 번째는 올스타전 때 냈던 기록인데 그게 정식 기록으로 되나?”
“안 될걸? 뭐, 그래도 어때. 통산 기록 따지는 것도 아니고 역대 기록 논하는 건데. 의미만 통하면 됐지.”
“하긴. 그렇지.”
이렇게 기범이를 시작으로, 팀원들이 한 번씩 돌아가며 대기록 작성에 대한 축하를 건네왔다.
석민 선배, 지호, 성현이, 규학이, 등등.
그러다가 이번에 축하를 위해 다가온 이는 바로 승진이.
“선배님, 대단하십니다.”
“아우, 아냐. 운이 많이 좋았지.”
적당한 겸손으로 승진이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아닙니다!”
“엉?”
하지만 이 겸손의 어딘가가 승진이 마음에 영 들지 않았는가보다.
“절대 운 같은 게 아닙니다, 모두 선배님의 대단한 실력 때문에 그런 대기록이 나온 거라고 생각합니다.”
“…….”
왜, 왜 승진이한테서 현진이의 모습이 보이는 걸까.
“어어…고마워.”
“저도 선배님처럼 대단한 불펜 투수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지도 편달 부탁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인 뒤 돌아가는 승진이를 보면서 생각했다.
“…X됐다, 현진이 같은 놈이 이젠 같은 팀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