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김한울은 그런 투수다
[김형철의 돌직구 - 타자들, 언제까지 김한울에게 당하기만 할텐가?]
야구는 반복의 스포츠라는 말.
야구를 사랑하는 필자도 그렇고 이 잡담을 읽어주는 독자들도 그렇고 이제는 지겹게도 들어왔을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야구는 재밌다. 그리고 그게 너무 신기하다.
매년 똑같은 팀들이 매년 똑같은 구장에서, 거의 바뀌지 않은 선수들이 똑같은 경기를 치를뿐인데도 왜 이렇게 재미있을까.
근데 그렇게도 좋아하는 야구 경기를 매일 중계하며 관찰을 하다 보니 한 가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왜 타자들은 자꾸 김한울한테 당하기만 하는 거지?
물론 필자도 타자 출신으로서 당연히 이해한다.
포심 패스트볼의 구위는 두말할 것 없이 좋다. 구종도 정말 다양한데 구종 하나하나의 완성도 또한 뛰어나다.
여기까지만 해도 타자 입장에선 머리가 아파질텐데, 김한울의 진짜 무기는 이런 것들 ‘따위’가 아니다.
(성운 호크스 김성훈에게 바깥쪽 꽉 찬 직구로 카운트를 잡는 세 장의 움짤을 ‘겹친’ 움짤)
바로 위의 짧은 동영상을 보자. 어떻게 보이는가?
눈치가 빠른 독자라면 알겠지만, 위의 영상은 놀랍게도 한 경기에서 한 타자에게 던진 세 번의 투구를 오버랩시킨 GIF 파일이다.
위 GIF 파일에서 놀라운 점이 세 가지가 있다. 하나하나 뜯어봤을 때, 우선 가장 놀라운 건 김한울의 딜리버리.
무려 세 개의 공을 연속으로 던지는 데에 있어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일정하다. 김한울이 좋은 제구를 가진 이유엔 분명 이 딜리버리의 영향도 클 것이다.
두 번째로 놀라운 점은 이렇게 세 번의 투구의 결과값이 모두 똑같다는 점이다.
우타자인 김성훈의 바깥쪽, 아주 꽉 차는 곳에 포심 패스트볼 세 개를 던져 루킹 카운트 세 개로 승부를 끝내버렸다.
마지막으로 놀라운 점은, 이 세 번의 결과값은 모두 루킹 스트라이크지만 데이터값을 보자면 스트라이크보단 볼에 가까운 구역들이라는 것이다.
(김한울의 스트라이크 존 피칭 로케이션 분석표. 하얀색 네모보다 살짝 빠진 곳도 스트라이크 콜을 꽤나 많이 받아냈다.)
위의 표는 올 시즌 김한울의 투구 분석표다. 보면 알 거다. ‘볼’이지만 스트라이크 판정을 ‘뺏어낸’ 전적이 아주 많다.
유독 김한울과 상대하는 타자들이 볼 판정에 불만을 갖고 심판에게 화를 내는 건 절대 기분 탓이 아니다.
이럴 때 타자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볼로 보이니까 배트를 내지 않았을 뿐, 타자의 잘못은 없다.
하지만 잘못이 없다는 게 그 결과값에 대한 면죄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김한울의 스트라이크 존 피칭 로케이션 분석표. 위의 분석표와 비슷한 구도지만 찍힌 점들의 개수가 훨씬 많다.)
위쪽에 있는 분석표가 2020시즌에 국한된다면 이번 분석표는 17시즌 이후 김한울의 투구 분석표다.
독자들은 위의 분석표와 아래의 분석표를 보고 차이점이 느껴지는가?
큰 차이를 못 느낀다면 필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눈치챈 독자들도 슬슬 있을 것이다.
맞다. 김한울은 성적이 좋아지기 전에도 제구만큼은 리그에서 가장 좋은 선수로 유명했다.
그런 선수가 구위와 구속을 얻게 되니 성적에 날개를 달았을 뿐, 타자들은 어느새 투수의 가장 본질적인 면을 잊어버린 것 같다.
타자들은 왜 이걸 스트라이크로 잡아주냐고 심판에게 화를 낼 것이 아니라 그 공을 쳐야한다. 어떤 의미로 보면 심판 또한 피해자니까.
쳐서 안타를 만들어낼 자신이 없다면 어떻게든 계속 건드려서 김한울의 체력을 최대한 빼놔야 한다. 그래야 하루라도 김한울을 보는 날이 적어질 테니까.
김한울이 성적에 날개를 단 지가 올해로 벌써 4년째다. 더 이상 김한울의 제구를 타자들의 면죄부로 쳐주기엔 시간이 꽤나 지났다.
항상 김한울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고 한다.
내가 해야 할 것들 중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김한울은 그런 투수다. 본인이 해야 할 것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고 또 정확하게 이행할 줄 아는 투수다.
이제는 타자들 또한 본인들이 해야 할 것은 정확하게 인지하고 또 그것을 정확하게 이행해야 할 때다.
diel****
결국 한울존이라는 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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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di****
제구 좋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저 정도일 줄은 몰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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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kzm****
아니 근데 저 정도면 심판들도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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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아,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어이구, 한울이.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그럼요. 선배님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내가 해준 게 없는데 뭘 내 덕분에 잘 지낸대.”
“그냥 선배님과 같은 하늘 아래에 있다는 것만으로 제겐 너무나도 큰 힘이 되는 것 같….”
“헛소리하지 말고.”
“옙.”
경기 시작 전, 원하 챌린저스의 레전드이자 야구계의 대선배님이신 김수찬 선배님께서 잠실구장에 방문하셨다.
MBS 방송국에서 독설 해설로 유명한 선배님이 오늘 중계가 예정되어있는 팀을 방문하는 것 자체는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다.
“그럼 오늘 좀 잘 부탁해.”
“어우, 제가 드릴 말씀이죠.”
하지만 그 방문 목적이 다른 데에 있는 게 아니라 ‘나’에게 있다고 하면 다소 특별하게 느껴진다.
선배님께서 나를 찾아오신 이유는 인터뷰 때문.
사전에 이야기가 된 부분이었기 때문에 나도 크게 당황하지 않고 김수찬 선배님 옆에 다소곳하게 앉아 카메라를 바라볼 수 있었다.
“준비됐어? 어어, 그래.”
크흠흠!
“아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일전에 말씀드렸던대로 원하 챌린저스의 김한울 선수와 한 번 이야기를 나눠볼까합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우선 팬분들께 한 마디 먼저 부탁드릴까요?”
“안녕하십니까. 원하 챌린저스 김한울입니다. 반갑습니다.”
인터뷰 같은 걸 꽤 해봐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냥 나이를 좀 먹어서 그런 건지.
사람이 아닌 카메라 렌즈를 보고 고개를 꾸벅 숙이는 것도 이제는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에에…일단 김한울 선수는 이 부분을 안 짚을 수가 없어요. 올 시즌 본인 성적 알죠?”
“예. 알죠.”
“그럼 한 번 얘기해줄래요?”
“어어…제 입으로 하기가 좀….”
“왜, 부끄러운 성적도 아닌데.”
“그….”
“그냥 내가 할까요?”
“예에…좀 부탁드립니다.”
“올 시즌 김한울 선수 성적이 아주 좋죠. 현재까지 19이닝 던졌는데요, 탈삼진은 32개, 볼넷은 하나도 없고. 피안타도 네 개밖에 안 돼요?”
“예….”
“이것도 대단한데, 무엇보다 대단한 게 올 시즌 아직까지 평균자책점이 0이에요. 승계주자를 홈으로 보낸 적도 단 한 번도 없구요, 아직까지.”
“…예.”
자존감과 자존심은 높지만 어디 가서 뻗대는 성격이 되지는 못 하는고로, 이런 상황은 좀 민망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자니,
“그냥 본인이 얘기할 걸, 하고 있죠?”
“…예에.”
김수찬 선배님께서 껄껄 웃으셨다.
“올 시즌 성적이 아주 좋아요? 이제는 시즌 초반도 아니거든요.”
“그쵸, 벌써 6월이니까…시즌 초반은 아니죠.”
“이제 슬슬 시즌 중반에 접근하고 있죠, 그쵸. 근데 김한울 선수는 이럴 때까지 이렇게나 좋은 성적을 내고 있구요.”
선배님, 제발…….
“오늘 질문 내용은 사실 간단해요. 뭐랄까…이번 시즌부터 김한울 선수의 투구 스타일이 조금 바뀐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거든요.”
“아, 네.”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을 좀 듣고 싶어서요.”
투구 스타일이라…….
답변에 대한 생각으로 인해 오디오가 잠시 비는 시간 동안 선배님께선 잠시 추임새를 넣으셨다.
“2017시즌부터 작년 시즌까지면 3년이죠. 3년 동안 김한울 선수는 정교한 제구를 바탕으로 구석구석 찔러들어가는 느낌이 강했거든요.”
“아, 그쵸. 그랬죠.”
“때문에 그 점을 역이용해서 0-2 카운트에서 그냥 찔러넣어버린다던가, 아니면 3-0 카운트에서 오히려 볼을 던져서 헛스윙을 유도한다던가.”
그랬…지?
“근데 이번 시즌에 들어와서는 좀 뭐라고 해야되나…좀 미안한 표현이긴 한데, 약간 생각없이 던지는…?”
“아이고야….”
“이게 표현이 좀 그래서 그렇지 전혀 그런 의미는 아니고.”
“예예, 그럼요. 알죠, 알죠.”
“물론 코너 구석구석을 정확하게 때리는 제구도 여전하긴 한데…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뭐냐면, 김한울 선수 투구 스타일이 어딘가 틀이 깨진 것 같은?”
“아.”
그런 의미라면 맞지.
“그러니까, 타자들 입장에서는 말이죠? 내가 타자여도 와, 여기서 왜 이걸 던지지? 이런 생각이 들 것 같은 볼배합이 많단 말이죠.”
“말씀 듣고 생각해보니까 그렇네요.”
“이게 다른 투수라면 포수나 벤치의 의도라고 생각하겠는데, 김한울 선수는 다르잖아요?”
“그쵸. 다르죠.”
“어떤 때는 포수가 내는 사인보다 본인이 내는 사인이 더 많을 정도라고 얘기한 적도 있으니까요, 그쵸?”
살짝 막연하게 느껴지던 답변이 선배님의 첨언 덕에 확실히 정리되었다.
“선배님 말씀대로 틀 같은 게 약간 깨진 것 같네요.”
“틀이라고 하면 어떤 틀을 이야기하는 거죠?”
“투수라고 하면 어떻게 던진다, 내지는 어떻게 던져야 한다, 이런 틀 같은 게 있잖아요.”
“그쵸. 기본적으로 한가운데에 실투가 나면 안 되고, 높은 공은 가능하면 지양해야하고, 그런 몇몇 가지가 있죠.”
“근데 그런 걸 생각을 하지 않고 던지기 시작했어요.”
“한가운데 던져도 된다? 높은 데다가 던져도 된다?”
“좀 추가 설명이 필요할 것 같긴 한데, 네. 답부터 하자면, 네.”
“그럼 그 추가 설명 좀 해줄까요?”
쭈욱 이야기를 해오며 머릿속에 정리가 된 상태기 때문에 말을 하는 데에 거침이 없었다.
“그, 정확하게 언젠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한데요. 선배님 혹시 전에 기억하세요? 그 왜, 저한테 가장 중요한 투수 지표는 뭐냐고 여쭤보셨던 거요.”
“아아, 기억하지. 그때 평균자책점이라 했잖아요.”
“그때 대답이랑 약간 이어지는 답일텐데요, 그때 제가 그런 식으로 말씀드렸거든요. 9회말 투아웃 한 점 차에서도 난 여차하면 볼넷을 줄 수도 있다.”
“맞아요. 그 얘기도 기억해요.”
“근데 사실 타자들은 기본적으로 그런 생각을 깔고 들어오잖아요. 볼넷을 주고 싶어하는 투수는 없을 거라고.”
“당연하죠. 기본적으로는 다 스트라이크로 들어온다고 생각하지.”
“네, 그거죠. 그런 느낌이 좀 더 확장된 것 같아요.”
뭔 소리야?
선배님의 얼굴에 그런 표정이 써있었지만 당연한 반응이라 생각했다. 아직 추가로 붙여야 할 설명서는 많이 남아있다.
“마찬가지로, 타자가 기본적으로 깔고 오는 생각이 있잖아요. 투수가 절대 실투만큼은 던지기 싫어할 거다, 이런 거.”
“당연하죠.”
“음…그 점을 노리고 들어가게 되는? 그런 걸로 설명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물론 퀘스트의 영향도 있는 건 사실이다.
땅볼을 잡아라, 삼진을 잡아라, 어떤 구종만 던져라, 하물며 최근에는 볼을 아예 허용하지 말라는 퀘스트도 있었지.
다들 어려운 퀘스트였다. 일견 말도 안 되는 퀘스트기도 했고.
하지만 이런 퀘스트들을 내가 실행할 수 있었던 이유, 그리고 성공으로 마침표를 찍을 수 있던 이유는 분명 존재했다.
“그렇다고 정말로 한가운데를 노리고 들어가는 건 너무 위험하지 않아요? 그래도 상대 타자도 프로고, 냉정하게 김한울 선수가 170km를 던지는 것도 아닌데요.”
“인식이라는 게 무섭잖아요. 김한울은 어떤 타자다, 분명 이렇게 던질 거고 또 이렇게는 던지지 않을 거다, 이런 이미지요.”
“김한울이니까 여기로 던지겠지? 김한울이니까 이런 여기만큼은 던지지 않겠지?”
“그거죠.”
바로 지난 3년 동안 내가 쌓아왔던 이미지.
기본적인 ‘틀’은 놔두되, 결정적인 순간에서 그 틀을 깨뜨리는 게 아니라 그 틀을 뜀틀 삼아 아예 넘어가버리는 피칭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등판할 때마다 컨셉을 하나 정해두고 가요.”
“등판에 대한 컨셉?”
“네. 오늘은 땅볼을 잡자, 오늘은 커브를 많이 던지자, 오늘은 뭐 하이 패스트볼을 던지자. 이런 컨셉이요.”
“이야….”
“전 오히려 제가 불펜 투수기 때문에 더 잘 먹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선발이면 하루에 길게 던지기 때문에 언젠가 한 번은 읽힐 수도 있잖아요?”
“근데 불펜이니까, 또 매 경기 다르게 컨셉을 잡으니까?”
“그렇죠.”
“근데 그러려면 레퍼토리가 굉장히 많아야 할텐데요.”
“레퍼토리야 뭐, 넘치죠.”
150km를 상회하는 구위좋은 직구. 모든 방향으로 휘는 완성도 높은 변화구들. 이 모든 작전을 가능케 하는 완벽한 제구력.
이것들로 만들어낼 수 있는 조합의 가짓수는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그럼 앞으로도 컨셉이 많이 남았다는 의미로 생각해도 되나요?”
“그럼요.”
“오호, 자신있는 발언 좋아요.”
자신감.
카메라를 바라보며 치켜든 따봉은 단순히 이 영상을 보는 사람들에게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었다.
저어기, 상대 덕아웃에서 배트를 붕붕 휘두르는 박해진에게도 분명 전달되었을 거다.
“이번 시즌, 기대하셔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