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안녕하세요
사람이 긴장하면 나오는 현상은 어떤 게 있을까.
동공이 급격하게 흔들린다거나, 둘 곳을 못 찾은 손이 계속해서 탁탁탁 테이블을 때린다거나.
“너무 긴장하진 말구요.”
“그, 그래도….”
…지금 내가 그러고 있다.
“만난 적도 있고, 이야기도 많이 나눴고. 긴장할 게 있어요?”
“뵌 적도 있고, 이야기 나눈 적이야 있죠. 있는데 오늘 만나는 이유라는 게 좀, 그, 평소랑은 다른 이유잖아요.”
“근데 아버지는 이미 사실상 확정으로 생각하셨던데요?”
“아으….”
“따님을 주십쇼! 이런 생각하지 마시구, 그냥 통보한다는 생각은 어때요?”
“그렇게 말하는 민영 씨도 막상 저희 부모님 만나면 긴장 엄청 하실 거잖아요.”
“그…!”
민영 씨에게 멋대가리 없는 프로포즈를 하고 일주일.
서울 모처 고오오오급스러운 일식집에 민영 씨와 나란히 앉아 민영 씨의 부모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민영 씨가 이야기한대로 뵌 적 있지. 나를 또 좋게 봐주시지. 민영 씨 부모님께서도 사실상 오케이 사인을 몇 번 주셨지.
그치만 막상 실전 날이 다가오니 긴장이 되는 건 어떻게 막을 수가 없었다.
오늘은 단순히 인사를 드리는 게 아니라,
“민영 씨 성격엔 그렇게 말씀하실 거 같은데요. 어머님, 아버님! 한울 씨를 허락해주세요!”
조만간 우리는 결혼을 할테니 이에 대한 허락을 해달라 부탁을 하는 자리니까.
“그리고, 저나 되니까 그냥 이 정도로 있지. 민영 씨는 막상 당일 되면 손도 벌벌벌 떨고 그러지 않을까요.”
“…….”
“괜찮아요, 우리 엄마는 그런 거 보면 민영 씨 되게 귀엽다고 생각할….”
짝!
“악!”
“못 됐어, 아주 그냥!”
등짝 한 대 얻어맞은 덕분에 그래도 긴장이 꽤나 풀린 기분이다.
실실실 웃으며 민영 씨와 장난을 좀 치고 있자니,
“아, 오셨다.”
멋드러지게 차려입으신 민영 씨 아버님과 귀티나게 차려입으신 민영 씨 어머님이 등장하셨다.
풀렸던 긴장은 다시금 찾아와 내 몸을 뻣뻣하게 만들었고, 덕분에 다소 딱딱하게 허리를 숙이게 되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어, 한울이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예. 덕분에 잘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내미시는 오른손을 공손하게 받아두니,
“내가 뭘 한 게 있다고 내 덕이야. 다 한울이가 잘해서 잘 있는 거지.”
탁탁!
내 오른손을 정답게 쳐주시며 나를 진정시켜주셨다.
“앉으시죠. 어머님도 오랜만에 뵙습니다.”
“네, 반가워요.”
1차적인 인사 완료.
식기라든지 물컵의 경우는 이미 세팅을 완벽하게 해두었다. 덕분에 편하게 앉아서 이야기 좀 나누다가 식사를 하면 되겠지.
좀 먹다가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슬슬 본론을 꺼내자. 아마 100%에 가깝게 허락이 떨어는 지겠다만, 그렇기에 더더욱 좋은 모습을 드려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멋진 사위, 좋은 사위의 모습을 보여드리자. 하나뿐인 딸내미를 맡겨도 안심이 될 모습을 보여드리자.
“그래, 이제 슬슬 결혼하려고?”
“예?”
그 다짐은 단 한 마디에 깨져버렸다.
멀뚱히, 아버님을 쳐다보다가 혹시 민영 씨가 먼저 얘기한 건가 싶어 민영 씨를 쳐다봤다.
“아…아빠?”
하지만 민영 씨의 반응을 보니 그건 아닌 것 같고.
다시 아버님을 쳐다보며 다음으로 하실 말씀을 기다렸다.
“너무 뻔해도 뻔하지, 내가 부른 것도 아니고 민영이랑 한울이가 불러서 나온 자린데. 이런 데도 이런 데고.”
“아…그….”
“해, 결혼. 나야 감사하지, 이런 딸내미 데려가준다고 하면 내가 더 감사….”
짝!
“이런 자리에서 무슨 그런 말을 해요.”
“아니, 당신도 그렇잖아. 민영이 빨리 집 좀 나가면 좋겠다고 그렇게, 그렇게 얘기를….”
짝!
“윽!”
음. 민영 씨 손이 매운 건 어머님을 닮아서구나.
“미안해요, 이 사람이 아직도 영 철이 덜 들어서….”
“아, 아닙니다.”
호호호, 어머님께선 교양 넘치는 웃음을 지으시며 대화의 주도권을 순식간에 가져가버리셨다.
“둘이서 만난 지 얼마나 됐죠?”
“저희…연애는 10개월 정도 했습니다. 그 전부터 연애는 아니더라도 연애 비슷하게 만나긴 했구요.”
“얼마나?”
“거의 2년 정도. 요즘말로 썸탄다고들 하죠, 그렇게 지내다가…네, 제가 먼저 만나자고 얘기했습니다.”
“제가 먼저 얘기하지 않았어요?”
“말은 그렇긴 한데 그때 그 주제 꺼낸 건 저였으니까요.”
딸내미의 연애 썰을 듣는 게 그렇게 재미있을까.
“우리 민영이 어디가 그렇게 좋았어요?”
“예? 그….”
예비 장모님께선 잔망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곤란하게 하셨다.
“저기, 저를 되게 좋아해주고 그…애정이 느껴져서….”
“당신은 또 뭘 그런 소릴 해. 둘이서 좋아하니까 어련히 만나겠지.”
“여보는 조용히 좀 해봐요, 한울 씨 얘기 듣는데.”
“에이….”
실례합니다.
내가 계속 곤란해하고 있을 때, 마침 전채요리가 나온 덕에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었다.
지금까지가 과거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지금부터 나올 이야기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
결혼 날짜는 대충 언제쯤을 생각하고 있는지.
집은 대충 어디쯤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식장은 따로 생각해둔 데가 있는지.
그리고…….
“그럼 상견례도 생각해야 될텐데. 생각해둔 바 있나?”
양가 부모님들의 만남.
“혹시 아버님 편하실 때는 언제쯤이신지….”
“우리는 아무때나 상관없지. 정말 아무때나 상관없으니까, 한울이 부모님들 먼저 여쭤봐봐.”
“아…네. 그럼 다음주에 저희 부모님이랑 얘기해보고 전달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민영 씨 부모님에게 허락을 받고…….
* * *
또 한 번 일주일 뒤 월요일.
덜덜덜덜더럳러
“…….”
러덜더럳러덜더럳
“…민영 씨.”
“네, 네?!”
“긴장하지 말고.”
“그럼요! 긴장은요, 무슨 제가 긴장을 그러세요!”
뭔 소리야.
“긴장 많이 하신 거 같은데….”
“아뇨! 긴장 하나도 안 했는데요!”
어디 한 군데 정착하지 못 하는 눈동자.
덜덜덜 떨리는 두 손.
안쓰럽게 굳어진 미소.
민영 씨는 우리 엄마랑 아빠와 만날 기대를 아주 전신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저번주, 민영 씨 부모님과 만나 허락을 구했던 식당이 일식집이라면 오늘 우리 부모님과 만날 곳은 우리 집.
두 명만 있어서 꽉 차보일 집에 무려 네 명이 같이 있자니 꽤나 복작스러워질 것 같지만, 그것도 그것대로 아주 좋지.
“근데…이걸로 괜찮을까요? 좀 더 준비했어야 하나 싶은데….”
“음….”
갈비찜. 잡채. 전 종류 몇 가지. 기타 밑반찬. 미역국.
“코다리찜도 있으면 좋았을텐데…아, 고등어구이도 좋겠다.”
“아뇨, 괜찮아요. 여기서 더 추가하면 이거 상 무너져요.”
계속 불안함에 떠는 민영 씨를 달래고 또 달랬다.
“그래도 처음 뵙는 건데 할 수 있는 건 다 보여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괜찮아요. 원체 미니멀하게 사는 분들이다보니까. 오히려 그런 거 부담스러워 하세요.”
“그치만….”
“걱정마시….”
띵똥―
“…고, 그냥 평소에 하시던 대로 하시면 돼요.”
“네, 네에….”
스윽스윽―
민영 씨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준 뒤 현관문으로 향했다. 도어락의 버튼을 누르고 현관문을 열자,
“들어와요.”
“여기가 아들네 집이냐.”
“그치. 얼른 들어와요.”
아주 오랜만에 보는 엄마와 아빠가 보였다.
몇 년 전 봤을 때보다 조금씩 나이를 드신 게 티는 나지만, 그래도 사람 자체는 조금도 변하질 않았다.
아빠는 흐뭇-하게 웃고 있고, 엄마는 어딘가 츤츤대며 집안을 둘러보고.
어디 혼자 사는 아들놈 집구석이 개판 나있지는 않은가 둘러보던 엄마의 레이더 속에 민영 씨가 잡혔다.
“아, 안녕하세요!”
눈이 마주치자마자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인사한 민영 씨의 긴 머리카락이 공중에 휙 휘날렸다.
“아이고, 반가워요. 한울이 엄마예요.”
엄마?
“한울이 때문에 고생이 많아요. 아이고, 예쁘네. 어디 저 놈 자식이 이렇게 참한 여인네를 데려왔나.”
…엄마?
“이거 아가씨가 한 거예요?”
“아, 네.”
“아이고, 진짜 저 놈 자식이 어디서 이런 사람을 데려왔나 싶네. 고마워요, 어떻게 저런 놈이랑 결혼할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네.”
엄마…….
“긴장하지는 말고, 우리 나쁜 사람들은 아니니까. 앞으로 오래 볼 사람들인데, 벌써부터 그래 긴장하면 우야노.”
아빠도 민영 씨를 달래며 맞은 편에 앉았다.
“앉아요, 여기 주인이 먼저 앉아야지.”
“아, 네!”
“니도 앉아라.”
여기 주인은 전데요, 엄마.
“이름이 어떻게 된다고요?”
“김민영입니다.”
“나이는 한울이보다 하나 많고.”
“네!”
“지금 따로 일 하고 있고?”
“네네.”
“아이고, 힘들겠네.”
“아, 아니예요. 예전엔 일하는 게 싫었다가도 지금은 한울 씨 만나려고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아이고, 참하네.”
엄마와 아빠가 각고의 노력을 다한 결과 민영 씨가 가지고 있던 긴장은 확 녹아내려갔다.
언제나와 같은 미소가 가득한 얼굴.
진정한 듯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손.
평소와 같이 부드럽게 울리는 목소리.
자신감을 되찾고 또박또박 이야기하는 모습은 예비 시부모들 마음에 화악 불을 지펴버렸다.
“여기 며늘애기 부모님이랑은 만났댔지?”
며, 며늘애기…….
본인의 호칭에 부끄러움과 만족감을 동시에 느낀 민영 씨가 엄마가 한 말을 반복했다.
“아, 어. 저번주에 먼저 만나서 말씀드렸지.”
“그쪽에선 뭐라고 하시더나?”
“민영 씨 부모님도 허락은 해주셨고…식 날짜나 식장 같은 거 생각했냐, 이런 거 여쭤보셨고.”
“상견례는? 언제가 좋다 하시더나?”
“당신들께선 아무때나 괜찮다고 하셔서. 엄마랑 아빠랑 편한 시간대에 당신들께서 맞추시겠대.”
“그으래?”
“그러면 한울이 너 조만간 올스타전 아이가.”
나와 엄마 사이에 아빠도 참전하여 이야기가 진행됐다.
“아, 맞지.”
“그때 잠깐 쉬잖아.”
“잠깐 쉬는 날 껴있지. 그럼 그때로 말씀드릴까?”
“그래, 그 언저리로 말씀드려라. 맘 같아선 그냥 내일이라도 뵙자 하고 싶은데, 그건 아무래도 거기 분들한테도 실례고.”
“난 내일 시합이예요, 어무이.”
“넌 필요없다. 여기 민영이만 있으면 되지.”
엄마…….
맘 같아선 당장 내일에라도 상견례를 하고 싶다는 건 약간 비약이고, 실상은 맘 같아선 당장 내일에라도 식을 치렀으면 하는 게 진실된 마음이겠지.
이런 대화의 흐름에서 알 수 있듯 엄마랑 아빠는 민영 씨를 아주 맘에 들어했다.
긴장이 완벽히 풀려 본인을 열심히 홍보하는 민영 씨를 보면서도 나도 다행이라 느꼈다.
다른 일도 아니고 한 가정과 또 다른 한 가정이 만나 평생을 함께할텐데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얼마나 힘들겠어.
그런 의미로,
“이건 어떻게 했어요?”
“갈비찜이요? 어머님 입맛에 맞으세요?”
“그러게, 나중에 만드는 것 좀 한울이 통해서 알려줘요. 집에 가서 한 번 해먹어 봐야겠네.”
“네네, 물론이죠! 아후, 다행이네요. 어머님이랑 아버님 입맛에 안 맞으면 어떡하나 정말 고민 많았거든요.”
“뭘 그런 걸로 고민을 해요, 우리 위해서 해줬다는 것만으로도 고맙지. 우리 민영이가 해준 거면 라면이래도 맛나게 먹었어요.”
자연스럽게 티키타카가 오가는 예비 시댁과 예비 며느리를 보는 예비 신랑도 푸근하게 식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민영이가 우리 집 며늘애기가 되면 참 좋을 거예요. 우리도 좋은 사람이 와서 좋지만, 민영이한테도 좋거든.”
“그럼요! 저도 좋죠!”
“아이, 그런 상징적인 의미 말고. 물론 좋은 것도 좋은 거긴 한데 실질적으로 민영이한테도 좋을 거란 거지.”
“네?”
지금부터 엄마가 할 얘기는 아무래도 내가 어째서 지금의 성격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한 한 가지 힌트가 되지 않을까.
“아들이라곤 얘 하나에 우리도 빚 없고. 그리고 우리 집안은 제사 같은 것도 없어. 종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
“그리고 둘이서 알아서 잘 살믄 우리가 신경도 안 쓰고. 아마 귀찮아서 신혼집에도 많이 가지도 않을 거고.”
“아….”
“그러니까, 한울이랑만 잘 살면 돼요.”
엄마의 말을 듣고 민영 씨는 스윽 나를 쳐다봤다. 입에 젓가락 끝을 물곤 잔망스럽게 웃더니 엄마랑 아빠 보이지 않도록 왼손으로 내 손 위에 자기 손을 올렸다.
“그럼요. 잘 살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