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평화로운 불펜생활-146화 (146/190)

146화. 구위

올스타 불펜투수 부문 팬 투표 1위.

양가 부모님들께 결혼 허가.

소속 팀은 리그에서 1위 유지.

한 가지만 해도 엄청나게 좋은 일들인데, 무려 세 가지가 동시에 겹치며 항상 즐거운 나날을 이어가게 되었다.

확실히 올해는 되는 해다. 올해는 정말로 쏟아부을 수 있는 모든 걸 내다부어야 한다.

“가자아악!!”

“진형이 날려버려어!!”

나뿐만 아니라 다른 팀원들도 느끼는 모양이다.

미친 듯이 소리치고, 손바닥이 빨갛게 되도록 박수치고, 얼굴에 경련이 일 정도로 웃고.

따악-!

“돌아, 돌아아!!”

“투투! 세컨 가!!”

그렇게 외치다보면 행복해지리라.

홈에서 KP 스타즈를 맞아 초반부터 확실하게 승기를 부여잡았다.

때리고, 때린 데 또 때리고, 한 번 더 때리고.

그렇게 KP 팬들이 울상을 지을 때쯤 원하의 공격이 끝나고, 원하의 공격이 끝날 때쯤 전광판은 7 대 1을 알리고 있었다.

이게 고작 3회 말이 끝났을 때 벌어진 일.

처음엔 당구공만하게 구르던 스노우볼은 조금만 지나면 집채만큼 커져 이내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져도 잘 져야한다, 라는 논리에 따라 KP 스타즈는 라인업에서 주전급 대신 백업, 2군급 선수들을 대거 기용했다.

그럼 우린 당연히,

퍼엉-!

“스타아앜-!!”

낼름 받아먹는다.

경기 종료와 함께 파울 라인 앞에 서서 팬들에게 허리 숙여 감사 인사를 보낸다.

즐겁게 박수치며 하루의 종료를 자축한 뒤 화목하게 내일을 기약하며 집에 갈 준비를 한다.

그리곤 차에 타서 상수 타이거즈의 경기 결과를 확인하는 게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징하다.”

원하 챌린저스 승리. 상수 타이거즈 승리.

“징한 놈들….”

민영 씨한테 프로포즈했던 날, 그때까지만 해도 상수랑 세 경기차가 아니었나 싶은데 어느덧 두 경기차까지 다시 쫓기고 있다.

우리가 이기면 쟤네도 이기고. 우리가 지면 쟤네도 지고. 살짝 벗어나나 싶으면 미친듯이 또 따라오고.

작년 시즌 후반부터 이어온 싱크로나이즈는 사람 미치게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벌써 다음 주면 올스타 브레이크인데, 이 며칠짜리 휴식이 페넌트레이스에 어떻게 작용할런지 모르겠다.

“상수랑 경기가 또 언제지.”

아마 타팀과 깨짝깨짝거리며 승 하나씩 쌓는 것보단 상수와 사생결단을 내는 게 더 확실한 방법이 아닐까.

일정상 다음 상수 시리즈는 올스타전이 끝나고 직후.

“일단….”

당장에 할 수 있는 것. 아니, 목표로 두어야 하는 것.

올스타 브레이크 직전까지 남은 5경기를 모두 이기는 것. 상수 걔네가 뭐 어떻게 되든 신경쓰지 말고, 우리는 우리 할 거 하는 것.

“이기겠지.”

기껏 이렇게 달리고 있는데, 마지막에 가서 고꾸라질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아마 규진이형이 들었다면 플래그 좀 그만 꽂으라고 타박 좀 듣겠다만, 아니.

“이길 거야.”

이긴다.

감, 촉, 필, 등등 뭐 그런 것들. 더불어 내가 올해 계속 타고 있는 흐름들.

그리고,

“…스탯.”

제구 - 최상

구위 - 상

체력 - 중

포심 - 98

커브 – 88

슬라 - 85

스플 - 86

체인 - 86

싱커 - 85

특성

해탈 - 어떤 타구, 상황에도 그러려니 합니다.

불편 - 상대하는 타자가 타석에서 투수를 보면 어딘가 불편하게 만듭니다.

편안 - 본인을 보는 이들이 편안함을 느낍니다.

집중 – 집중할 수 있는 대상의 수가 늘어납니다.

어느덧 100에 가까워진 직구와 미약하게나마 성장한 커브와 체인지업 스탯.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이긴다.”

이길 수 있다고. 아니, 이긴다고.

* * *

KBO 리그에서 가장 잘치는 타자가 누구일까, 라는 팀을 질문한다면 100이면 100 박해진을 지목할 거다.

그럼 약간 틀어서, KBO 리그에서 가장 잘치는 ‘팀’은 어딜까, 라는 질문을 한다면 100이면 100 KP 스타즈를 지목할 거다.

개인 타율이 아닌 팀 타율 3할. 이 어마무시한 팀은 정말,

딱-!

“어우….”

따악-!

딱―

살벌하게 때린다.

그나마 규진이형의 구위, 원하 챌린저스의 수비진 덕분에 점수를 최소화하고 있을 뿐이지,

따악-!

“아이고…갔다.”

가능하면 이 점수만큼은 안 주고 싶은데, 싶은 점수까지 가져가버린다.

정말로 타격에 영혼을 걸었다는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닌 팀.

“규진이형, 나이스, 고생했어.”

“아오, 그걸 맞네.”

“까비까비!”

“은비까비!”

“아이, 미친놈아!”

규진이형은 7이닝 동안 5실점을 하고 내려왔다.

실점만 놓고 보자면 꽤 많은 실점인 건 맞다만 경기 내용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아쉬운 건 7회 초에 맞은 쓰리런 하나가 아쉬울뿐.

“괜찮아, 이기고 있으니까. 일단 추가점 계속 내자.”

“예!”

“점수 내자, 분위기 이어가자!”

근데 5점을 내주고도 이기고 있다?

틱―

“아악, 빠졌어, 빠졌어어!”

“뛰어, 쓰리! 쓰리 봐아!!”

타격 몰빵.

겉으로 보기에 화끈하고 화려해 보일지라도 그 이면을 들여다본다면 타격 말곤 아무것도 안 되는 뜻이다.

한 팀을 기준으로 삼을 때 타격을 제외하고 나머지 요소가 무엇이 있을까. 대표적으로 투수, 수비, 주루.

뭐…주루야 그렇다 치고.

따악-!

“들어와! 성현이 들어와악!!”

“승주 세컨! 세컨까지 뛰어어!!”

투수는 약하다. 제구는 썩 좋지 않으며 피안타와 피홈런을 양산해낸다.

틱!

“아, 또 빠졌다!”

“승주 쓰, 아니 홈!!”

“승주 형 홈 보고 뛰어어어!!”

수비는 더 약하다. 공을 잡냐 못 잡냐도 문제지만 그 다음, 포지셔닝이나 릴레이에서도 많은 약점을 드러낸다.

촤악-!

“쎄이잎!”

담장 맞고 튀어나온 공을 우익수가 한 번 더듬고, 그리고 중계 플레이 중이던 유격수가 공을 놓치고, 마지막으로 포수가 홈에서 공을 놓치고.

한 번의 플레이에서 무려 세 번의 삽질이 나온 덕에 승주는 집을 나가자마자 바로 돌아오는 진기록을 세웠다.

기록상으로 인사이드 더 파크 호텔을 세우진 못 했지만, 인사이드 더 파크 모텔 정도는 세웠다고 해도 될 플레이.

“야아아악!”

“나이쓰으!!”

“야, 찰칵찰칵!”

찰칵!

모텔 하나 세운 승주가 우리들을 불러모아선 셀카 한 장을 찍었다.

이거 내가 제안했을 땐 제일 극혐하던 새끼가 저러는 꼴을 보니 뭔가 정신이 나간 것처럼 느껴지긴 한다만 뭐, 결과만 좋았음 됐지.

8회 초 공격이 끝났을 때까지 우리 타선이 만든 점수는 9점.

“한울아, 9회 나가보자. 컨디션 좀 보게.”

“아, 네.”

최근 며칠간 흐름이 계속 이렇다. 압살하고, 압박하고, 압도하고. 초장부터 상대 기를 박살내놓고 게임을 진행하다보니 경기 후반엔 아주 널널하다.

덕분에 빨리 경기에 나가고, 또 빨리 스탯을 채우고 싶은 내 맘은 그냥 나만 가지고 있는 게 되었고.

아, 빨리 직구 스탯 100 좀 찍고 싶은데.

“건영아아.”

“예!”

항상 고생해주는 우리 건영이를 부른 뒤 천천히 캐치볼을 시작했다. 평소 던지던 폼과 아주 똑같이, 조금도 다르지 않게.

펑!

“어우, 볼 좋다!”

“전이랑 비교하면 어때?”

“좋긴 한데요. 더 무겁기도 하기도 한데, 가끔씩 좀 날려요.”

“날려? 아, 확인.”

다만 다른 게 있다면 요즘 연습하고 있는 것 하나, 더 무겁고 강력한 직구를 던지는 것.

평균적으로 154km 정도, 조금 더 악 쓴다면 157km 정도는 때릴 수 있다면 그것 하나만으로 엄청난 투수가 맞지만 뭔가…….

“아…좀, 이거면 될 거 같은데.”

뭔가, 그런 거 있잖아. 좀 더 뭔가 더 할 수 있을 거 같은 거.

지금의 내가 딱 그런 상태다. 단순 구속이 뭐 어쩌고 저쩌고 하는 그런 게 아니라, 여기서 한 단계 더 올라갈 수 있는 무언가가 느껴지는데 보이지는 않는 상태.

“이렇게 잡아야 되나.”

평소 던지던 직구 그립은 널리 알려져있는 포심 그립과 별반 다르지 않다. 실밥을 가로질러 잡고, 손가락의 너비는 1cm 정도.

다만 요즘 연습하고 있는 직구는 여기서 벌리고 있던 검지와 중지를 아싸리 붙여버리는 것.

회전축 중앙에 더 많은 힘이 들어갈 수 있도록, 직접적으로 공의 정중앙을 때리기 위한 비책이지.

효과는 꽤 좋다. 플라시보 효과인지는 모르겠다만 2~3km 언저리 정도 빠르게 나오는 것 같고, 공도 더 무거운 것 같고.

근데 문제가 하나 있다면…….

“직구!”

“헤이!”

팟!

힘을 줄 수 있는 지점이 좁아진만큼, 거기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그대로 공이 빠져버린다는 것.

“아우, 썅!”

“형형, 힘 빼고 힘 빼고!”

공에 불필요한 회전이 들어가버린다든지, 제대로 때리지 못 한다든지, 잘못 때려서 커터나 싱커성으로 깎여버린다든지.

“형, 천천히 해봐요!”

건영이 또한 나를 오래 봐왔던만큼 나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다.

내가 지금 생각이 어지간히 많다는 것도,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살짝 짜증이 났다는 것도, 실마리가 영 보이지 않아 답답해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형! 하나씩 해보자, 하나씩요!”

“아…오케, 오케.”

건영이는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피칭이 아닌 캐치볼을 주문하며 한 걸음씩 뗄 것을 요구했다.

나도 이 호의를 받아들여,

뻥!

“어, 방금! 방금처럼 와야돼요!”

천천히, 흐름을 타보기로 했다.

천천히,

퍼엉!

“그렇지이!”

천천히.

퍼엉-!

“그치그치, 이거지이!”

“건영아, 앉아봐봐.”

“옙!”

감이 살짝 왔다 싶어 건영이를 자리에 앉힌 뒤 다시 한 번 피칭을 해보기로 했다.

와인드업을 잡기 전, 천천히 내가 던질 곳을 노려본다. 우타자 바깥쪽에 앉은 건영이가 댄 미트를 확인하고 왼발, 그리고 양손으로 머리뒤로 넘기…는데…….

띠링-!

[투구의 첫걸음, 제구]

- 포수가 원하는 곳에 투구하세요. (0/10)

- 보상 - 포심 +2

“…와.”

추억 하나를 강제 소환하는 퀘스트가 나타났다.

보상 내용만 조금 달라졌을뿐, 퀘스트의 이름도 그렇고 퀘스트의 내용도 그렇고 모두 처음 이 시스템과 만났을 때와 똑같다.

“혀엉!”

그리고, 이 퀘스트를 보고 멍때리는 날 부르는 건영이 목소리도 그렇고,

“아, 아냐, 미안.”

그에 대한 내 대답도 그렇고.

“정신 나갈 것 같네, 진짜.”

덕분에 짜증이 확 가셨다. 오히려 상쾌한 기분이 가득하게 느껴졌다.

“직구!”

“아이, 직구!”

퍼엉-!

띠링-!

[투구의 첫걸음, 제구]

- 포수가 원하는 곳에 투구하세요. (1/10)

- 보상 - 포심 +2

“어우, 형 제구 진짜 좋다. 감이 진짜 좋아, 바로바로 오잖아요!”

강화 직구는 건영이가 미트를 대고 있던 곳에 정확히 도착했다. 그에 따라 놀람과 경이를 나타내는 건영이를 보면 내 맘도 즐거워지는 건 덤.

퀘스트 보상을 얻고 싶다는 일념에서 나온 집중력인지, 아니면 건영이가 퍼다준 응원과 격려 덕분인지는 모르지만,

띠링-!

[투구의 첫걸음, 제구]

- 포수가 원하는 곳에 투구하세요. (6/10)

- 보상 - 포심 +2

퀘스트의 내용은 빠르게 채워져갔다.

딜리버리에 대한 템포는 그대로 놔두되 언제 등판하러 올라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인터벌에 대한 템포를 최대한으로 줄인 덕이었다.

빠르게, 그리고 천천히.

커피에 샷 추가해서 연하게 해달라는 개소리는 분명 여기서 실현되고 있었다.

퍼엉-!

“나이쓰으!!”

띠링-!

[투구의 첫걸음, 제구]

- 포수가 원하는 곳에 투구하세요. (10/10)

- 보상 - 포심 +2

제구 - 최상

구위 - 상

체력 - 중

포심 - 98+2=100

커브 – 88

슬라 - 85

스플 - 86

체인 - 86

싱커 - 85

특성

해탈 - 어떤 타구, 상황에도 그러려니 합니다.

불편 - 상대하는 타자가 타석에서 투수를 보면 어딘가 불편하게 만듭니다.

편안 - 본인을 보는 이들이 편안함을 느낍니다.

집중 – 집중할 수 있는 대상의 수가 늘어납니다.

“와….”

드디어, 드디어 직구 100을 찍었다.

현실에선 로진이나 이런저런 장비들로 스탯 뻥튀기가 안 된다는 게 그저 아쉬울 따름.

그래도 그런 건 필요없다.

“한울이, 올라가자.”

“예!”

그것보다 더욱 값진 자신감이라는 걸 얻었거든.

Your love is a wildcard, Folding is the hard part―

와아아악-!!

김한울! 김한울! 김한울!

직구 100.

129km짜리 직구로, 스탯 24짜리 직구로 빌빌거리던 내가 이렇게까지 성장했다는 게 새삼 믿겨지지가 않는다.

띠링-!

[구위]

- 포심 패스트볼만 던져서 1이닝 3삼진을 잡아내세요 (0/3)

- 보상 - 구위 +1

더구나, 여기서 한 단계 더 성장할 껀덕지가 남아있다는 것도 믿겨지지가 않는다.

“다 뒤졌다.”

딱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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