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평화로운 불펜생활-148화 (148/190)

148화. 2km

직구 스탯 100. 그리고 구위는 최상.

이 시너지는 대체 어디까지 통하는가. 아니, 어디부터 시작되는가.

뻥!

“어우….”

뻐엉!

“어으!”

뻥!

“아우, 좀 살살해요.”

“살살하고 있는데.”

“이게 뭔 살살이예요? 미트 터질라는구만.”

“살살 던지니까 살살이지. 미트 바꿔, 바꿀 때 된 거 아냐?”

뻘소리하는 건영이에게 뻘소리로 대답하곤 캐치볼 감각을 이어갔다.

툭, 툭.

내 딴엔 가볍게 던지지만,

뻥! 펑!

건영이 미트는 계속해서 끔찍한 소릴 냈다.

“라스트!”

“에이!”

펑!

경기 전, 최상급의 구위를 조금이라도 빨리 체험하고 싶다는 마음에 건영이를 끌어다 캐치볼한 건 아주 잘한 일인 것 같다.

“…좋은데?”

과장 조금 보태서, 정말로 공이 떠오르는 것 같은 느낌!

“방금 뭐 던지신 거예요?”

“뭐긴. 맨날 던지던 직구 던졌지.”

“와, 직구가 뭐 그래요?”

“어떻디?”

“살벌하던데요?”

던진 나보다는 아무래도 받는 건영이가 제일 크게 느꼈지 않을까 싶다.

캐치볼을 마치고 내 쪽으로 다가온 건영이는 이게 뭐지, 이건 뭐지, 계속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 구위를 칭찬했다.

“규학이한테 하나 약속한 게 있거든. 내가 160km는 못 던지더라도 170km 같은 직구는 던져주겠다고.”

“아니 근데, 진짜로 이 정도 구위에 150 후반대 나오면 170 같이 느껴지겠는데요?”

현재 KBO리그에서 가장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 라고 하면 몇몇 떠오르는 투수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혁준이랑 비교하면 어때?”

바로 우리 팀의 혁준이.

선발투수, 거기다 좌완투수인데도 공식기록으로 최고구속 159km를 찍은 녀석이다.

허구한 날 그런 공을 받는 건영이니 나름 객관적인 비교가 가능하지 않을까.

“음…혁준이형은 공이 빠른 건 맞는데, 막 공이 이렇게 막, 주우우욱 밀려들어오는 느낌은 아니라 살짝 말리거든요. 한울이형 공이랑은 느낌이 아예 다른 직구라 비교가 좀 애매해요.”

너무 객관적이네.

“그리고 제가 170을 받아본 적은 없어서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 감으로 전력투구하면 진짜로 170 같이 느껴지지 않을까요?”

적당히 객관적이네.

‘구속’과 ‘구위’는 별개의 개념이다. 아니, ‘구속’이 ‘구위’의 하위개념이라고 보는 게 조금 더 정확하겠지.

현실에선 그렇지만 아무래도 스탯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게임 특성상 구위와 구속은 분명하게 나뉘어져있다.

실제로 내 구위가 조금씩 상승했을 때도 구속은 거의 오르지 않았다. 회전수라든지 묵직함이라든지, 그런 개념이 달라졌지.

아마 이 부분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확률이 매우 크다.

“아…2km가 아쉽네.”

평균적으로 154km에서 156km 정도. 정말 악을 쓰고 던진다면 157km에서 158km 정도.

어디서 2km만 더 끌어올 수 있다면 억지로 끼워 맞추고 맞춰 160km 한 번 찍어볼 수 있을텐데.

아쉬움이 매우 크게 느껴졌지만 당장에 이 빈자리를 어디서 채울 수 있을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스탯? 구속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포심 스탯을 100까지 찍어버린 마당에 더 올릴 껀덕지가 없다.

피지컬? 요즘도 틈틈이 웨이트와 튜빙 등을 병행하며 몸을 굴리고 있지만 수확은 없어 보인다.

투구폼? 오히려 이 부분은 잘못 건드렸다가 작살날 수 있기에 손 대는 것 자체가 너무 무섭다.

대체 이 2km를 어디서 끌어온단 말인가.

한 번 진득하게 꽂혀버린 생각은 영 사라지지 않았다.

경기가 시작하고 나서도, 팀이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을 때도, 또 그러다가 결국 승리를 확정지었을 때도.

“아, 모르겠네.”

왜, 그런 거 있잖아. 생각이 날 것 같은데 안 날 때 나는 짜증.

점점 선명해지는 짜증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와 옷도 채 갈아입지 않고 무작정 컴퓨터를 켰다.

분명 이 시스템의 직접적인 모체가 되는 풀카운트라면, 어딘가 힌트가 있지 않을까.

* * *

“하아아암….”

어제 늦게 자서 그런가, 고척구장에 도착하자마자 하품을 뿜뿜 뿜어냈다.

늦게 잔 이유?

뭐긴, 새벽 내내 게임 분석하느라 늦게 잤지.

“어젯밤에 뭘 했는데 죽을 상이야.”

“뭐 좀 분석하느라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게임을 한 게 아니다. 분석한 거다.

“뭔 뜬금없이 분석이야, 너 답지 않게.”

“내 이미지가 대체 어떻길래 뭐 그런 소릴 해.”

“그냥 야구선수 하는 김에 투수하는 놈.”

“…….”

규진이형은 대체 날 어떤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는 걸까.

“하아암, 됐고. 경기 준비나 잘하셔.”

헛소리를 치워낸 손가락으로 눈가에 맺힌 눈물 자국을 스윽 닦아냈다. 얼핏 봐도 피곤함이 느껴질 몰골이지만 정신은 생각보다 말짱했다.

“아으…퀘스트.”

띠링-!

[승부욕]

- 1이닝 무실점하세요. (0/1)

- 보상 - 특성 ‘승부’ 획득

어제 분석 결과가 아주 괜찮았거든.

새벽 늦게까지 현실 속의 내 스탯창과 게임 속의 스탯창을 비교하며 과연 어떻게 모자란 2km를 채울 수 있을지 고민했다.

우선 실질적으로 구속을 나타내는 스탯인 포심 스탯을 올리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육성, 아이템, 특성.

해당 스탯을 많이 써서 빨리 키우거나, 해당 스탯 버프가 붙어있는 아이템을 장착시키거나, 아니면 특정 상황에서 발동되는 특성의 도움을 받거나.

하지만 스탯은 이미 최대치인 100을 찍었고, 아이템 장착과 관련된 실험은 이미 실패한 전적이 있다.

따라서 내가 이번에 파고든 건 바로 마지막으로 남은 희망, 특성.

주자가 스코어링 포지션에 있으면 타자의 파워가 올라간다거나, 삼진을 잡아내면 다음 타자를 상대할 때 구속이 올라간다거나.

직관적으로 잘 설명되어있는 게임 속의 특성들이라면, 명확하게 딱딱 내가 원하는 스탯을 올려줄 수 있지 않을까?

처음엔 특성을 추가하자, 라는 간단한 시작이었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머리가 복잡해져갔다.

어떤 특성을 추가하는 게 좋을지, 좋은 특성을 어디서 뽑을지, 과연 내 캐릭터에 접목시킨다 한들 현실의 내 스탯에 적용이 될지.

어떤 특성들이 있는지에 대해선 풀카운트 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이나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주르륵 정리했다.

그리고 게임 내 상점에서 특성 뽑기 상자에서 내가 원하는 특성이 나올 때까지 뽑고, 뽑고, 또 뽑았지.

내가 가장 원했던 특성 ‘승부’를 뽑기까지 투자한 돈이 약 100만원.

X발.

그리고 거기에 약간의 캐시를 추가해 내 캐릭터에 접목시키고 컴퓨터를 끄자 새롭게 퀘스트 하나를 받아냈다.

다 좋다. 다 좋아.

무슨 특성을 뽑을지도 정했고, 얼마가 들든 내가 원하는 특성도 뽑았고, 내 캐릭터에 적용도 시켰고, 또 관련 퀘스트도 받았어.

좋아, 좋은데.

“하아… 근데 이거, 좀 불안한데.”

해탈, 불편, 편안, 집중.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 특성들이 마음에 꽤 걸렸다.

게임 ‘풀카운트’에는 존재하지 않고 내가 가진 시스템에만 있는 특성들. 심지어는 해당 내용들까지 어딘가 정신 나간 것 같은 특성들.

그러려니 한다느니, 불편해한다느니, 편안함을 느낀다느니, 집중이 잘된다느니.

어제 뽑은 특성 ‘승부’의 원래 내용은 이렇다. 이기고 있을 때 구원 등판 시 포심 +5.

“한울이, 7회 올라간다.”

“아, 예!”

그런 불안함을 가지고 경기에 집중하기를 몇 시간, 해당 특성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고,

퍼엉-!

“스트라잌, 아웃!”

띠링-!

[승부욕]

- 1이닝 무실점하세요. (1/1)

- 보상 - 특성 ‘승부’ 획득

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천천히, 이닝을 마치고 덕아웃으로 돌아가며 새로 갱신될 스탯창을 기다렸다.

제구 - 최상

구위 - 최상

체력 - 중

포심 - 100

커브 – 88

슬라 - 85

스플 - 86

체인 - 86

싱커 - 85

특성

해탈 - 어떤 타구, 상황에도 그러려니 합니다.

불편 - 상대하는 타자가 타석에서 투수를 보면 어딘가 불편하게 만듭니다.

편안 - 본인을 보는 이들이 편안함을 느낍니다.

집중 – 집중할 수 있는 대상의 수가 늘어납니다.

승부 - 이기고 싶을 때 포심이 +5 됩니다.

“…….”

예?

* * *

“오늘은 또 뭐 했다고 피곤해.”

“아니…좀 생각할 게 있어서.”

“하긴, 결혼 생각하면 할 거 많지.”

아니…그거 때문은 아닌데.

“상견례는 했냐?”

“다음 주 월요일에.”

“괜히 분위기 좀 화기애애하게 하겠답시고 쌉소리만 안 하면 돼.”

“날 대체 어떤 놈으로 생각하는 거야….”

어제 등판을 6이닝 무실점으로 깔끔하게 막아낸 규진이형은 오늘도 역시 쌉소리를 지껄이며 내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다.

아니…….

“하아….”

안 그래도 심란했던 마음을 더욱 심란하게 만들었지.

그 주체는 당연히 새롭게 추가된 특성 ‘승부’ 때문이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고 해야할지, 기대에서 한참이나 벗어났다고 해야할지.

이기고 싶을 때 직구 스탯이 5 추가된다는, 내 생애 가장 엽기적인 특성은 어제 퇴근하고 나서 지금까지 내 머리통을 쿡쿡 찔러왔다.

“한울이, 8회 올라가자.”

“예에에….”

이기고 싶을 때? 아니, 이기기 싫을 때가 있나?

단순하게 생각하면 이렇다. 나는 항상 이기고 싶으니까 모든 순간순간마다 포심 +5의 버프를 받는 투수다, 라고.

근데 과연 이 정신 나간 스탯창이 그걸 곧이곧대로 실행해줄까. 분명 어딘가 함정이 있을 텐데, 도저히 모르겠다.

심란한 마음을 안고 마운드에 올라 천천히 연습투구를 진행했다.

공 하나 던지고 전광판 구경하고. 직구 하나 던지고 구속 확인하고.

투구 과정에 새로운 루틴 하나를 추가한 뒤 동성 호넷츠의 6, 7, 8 하위 타순을 맞았다.

조상욱은 직구, 커브로 유격수 땅볼.

김현설은 싱커, 직구, 체인지업, 직구로 좌익수 뜬공.

장동운은 직구, 직구, 직구로 삼진.

오늘 던진 투구 중 유일하게 직구를 던졌을 때만 인터벌이 엄청 길었다. 이유야 당연하게도 구속을 확인하겠다는 이유에서.

“안 되잖아, 뭔데.”

근데 아니더라. 직구 스탯 5가 추가됐다는 느낌은 정말 요만큼도 들지 않더라.

스탯 3당 구속 1km를 잡았을 때, 스탯 5면 거진 2km에 근접한다.

2km?

당연히 고작 2km라 이야기할 수 있고, 또 오차범위 안에 드는 수준 아니냐 물어볼 수 있다.

근데 말야.

“뭐가 안 돼요?”

“아니…구속 때문에.”

“구속 왜? 오늘 잘 나오던데요? 오늘도 158km 찍었던데요.”

1부터 100 중에 정확하게 84를 찍는 건 매우 어렵다. 하지만 100에 최대한 가까운 수치를 찍는 건 매우 간단하다.

그냥 있는 힘껏 제일 위를 가리키면 되는 거니까.

“…그 왜, 며칠 전에 기억하지. 구속이 어쩌고, 2km가 어쩌고 했던 거.”

“아아, 네. 기억하죠.”

“그걸 좀 메꿀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 같았단 말야.”

이닝 잘 막고 불펜에 돌아와서 꼬장을 부리자 내 멘탈을 달래주겠다는 목적으로 건영이가 다가왔다.

잘됐다 싶어 그대로 건영이를 이야기 상대 삼아 푸념을 주르륵 늘어놨다.

“형이 생각한 방법이 뭐였는데요?”

“그건….”

게임 속 내 캐릭터한테 포심 +5 짜리 특성을 붙이면 현실의 나한테도 그게 따라오는 거.

“그…허리, 허리를 좀 더 조지면 되지 않을까 싶었거든.”

“아, 코어요.”

“그래, 코어. 원래 구속은 코어에서 나오는 거잖아.”

“그렇죠.”

적당히 잘 둘러댔다. 그리고 적당히 이런저런 주제를 나누며 난 이제 괜찮다 어필했다.

“…야, 건영아.”

“예!”

“넌 그 뭐냐, 이기고 싶다는 게 뭐라고 생각하냐?”

“이기고 싶다는 거요? 그게 뭐예요?”

그리고 주제가 어느 정도 소강되자 원래의 목적을 슬금슬금 꺼냈다.

“좀 뜬금없는데요.”

“알긴 아는데. 그냥 갑자기 생각나서 그래.”

“이기고 싶다는 거야, 그거 당연하죠. 말 그대로 이기고 싶다는 거.”

“이기고 싶다는 거….”

아씨.

건영이 이후로도 이런저런 사람들을 향해 마이크를 들이대며 인터뷰를 신청했다.

이기고 싶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혹시 아십니까?!

다짜고짜 마이크를 들이대는 기자는 누구나가 싫어한다.

내가 어떻게 알아요?

정말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따라서 양질의 대답은 구하기가 매우 힘들다.

고씀다!

고생하셨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아아악!

경기가 마무리되고 하나 둘씩 덕아웃을 떠날 때까지.

“이기고 싶다라….”

덕아웃에 가장 늦게까지 남아 텅 빈 경기장을 둘러보며 가장 적합한 대답을 떠올려보려 노력했다.

노력했는데. 노력은 해봤는데…….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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