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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불펜생활-149화 (149/190)

149화. 상견례

“그….”

음…….

“저기….”

아…….

“…….”

고급 한식당. 그 안에 있는 고급스러운 방 하나. 그 방 안에 있는 사람 여섯.

“…예. 그렇습니다.”

“뭐가 그런데?”

“아니, 그….”

이 중 불편해하는 사람은 나 하나…밖에 없는 거 같은데.

“허허, 한울이가 긴장을 많이 했는가 봅니다.”

“그러게요, 얘가 이런 애가 아닌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요.”

장인어른 되실 분께서 내 모습을 설명해주시고, 우리 엄마가 적당히 받아주었다.

하하호호.

상견례 자리는 아주 화목했다. 민영 씨 가족도, 우리 가족도.

근데 그 중 딱 한 명,

“한울이도 식사해, 얼른. 배고플 텐데.”

“예? 아, 예!”

나 하나만 긴장으로 인해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잘해야지, 라는 마음은 일단 기본적으로 깔고 있다. 당연하지, 우리 엄마 아빠한테 잘해야하는 건 기본이고, 장인 장모 되실 분들한테도 당연히 잘해야지.

하지만 내가 긴장하고 있는 이유는 그 다음 문제에 있었다. 어찌보면 아무것도 아니고, 어찌보면 단순한 문제긴 한데…….

“그럼 날짜는 언제쯤이 괜찮다고 생각하세요?”

“저희끼리 얘기해서 의미가 있나요. 아이들이 원하는 날짜에 저희가 맞춰줘야겠죠.”

“아, 그러네요. 민영이 너는 아무때나 상관없잖아, 다른 일도 아니고 결혼인데. 회사는 알아서 양해해줄 거고.”

“네. 저보다는 한울 씨 일정에 맞추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러네요. 아무래도 야구하는 거 때문에 일정이 꼬일 수도 있으니까요. 한울이 넌 언제가 좋냐?”

의도치 않게 여기, 나 빼고 다섯 분의 주목이 자꾸 나한테 쏠리고 있거든.

우리 엄마, 우리 아빠, 민영 씨 아버님, 민영 씨 어머님, 그리고 민영 씨.

시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자연스럽게 다섯 명의 눈동자가 뻘쭘하게 앉아있는 내 쪽으로 향했다.

“그…일단은 그…시즌 기본적으로 끝내구요. 지금 원하가 성적이 괜찮다보니까 한국시리즈는 몰라도 포스트시즌은 무난하게 올라갈 것 같아서요. 일단…한국시리즈 예정보다 조금 뒤면 좋지 않을까요.”

두서없는 표정으로 내 생각을 설파하니 다행히 다섯 분 모두 간단하게 고개를 끄덕여주셨다.

하지만 가만 생각하던 아버님께서 한 가지 의문 사항을 말씀하셨다.

“근데 무난하게 포스트시즌까지 올라갈 건 알겠는데 말야. 한국시리즈는 모르면 안 되지.”

“예?”

“올라가야지. 아니, 이겨야지.”

“아….”

단호한 아버님 표정 옆에,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거리는 민영 씨.

“…예, 그…한국시리즈 일정까지 생각하고 좀 여유 생각하면 12월 중순쯤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12월 중순이면….”

“괜찮네요.”

“그렇네요, 괜찮네요.”

착착 날짜가 잡히고,

“신혼집은 생각해봤니?”

“아, 예. 일단 지금 사는 집에서 민영 씨랑 1년 정도 있다가 구해서 이사갈 생각입니다.”

“굳이? 전세 때문에 그런가?”

“예. 계약이 내년까지는 남아있어서요.”

“전세금 생각하지 말고 그냥 나와서 따로 살어, 그 정도는 우리들 선에서 충분히 해결해줄 수 있어.”

“괜찮아요, 아버지. 제가 먼저 그러자고 한 거예요.”

“아니, 그래도….”

“애들이 그러고 싶다잖아요, 여보.”

착착 신혼집에 대한 갈피도 정해지고,

“식장이나 그런 건? 알아보고 있고?”

“아, 어. 친구 중에 그쪽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어서 부탁 좀 했어.”

“식장 말고도 준비할 거 많잖아, 청첩장이라든지 신혼여행이라든지.”

“예, 말씀하신 부분에서 종사하는 지인들도 있어서 그쪽으로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한울이가 확실히, 사람이 좋아서요. 사돈들께서 정말 잘 키우셨어요, 어떻게 이렇게 예의바른지, 말 폼새 하나하나에서 다 느껴진다니까요.”

“아이구, 저희가 키웠나요. 스무살 되자마자 집 나가서 혼자 컸는데요.”

“어, 엄마 제발….”

그 외 부수적인 이야기들도 착착 진행되고,

“그럼 이야기는 오늘 나온대로 진행하는 걸로 하고, 앞으로 남은 건 해당 일까지 기다리는 것밖에 없네요.”

“예, 저희가 지방 사는 게 좀 아쉽네요. 이렇게 이야기가 잘 통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허허.”

“아이고, 사돈께서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저희가 더 감사합니다. 자주자주 놀러오세요.”

“그러곤 싶은데 아이들이 싫어하지 않을까 걱정되네요.”

“아하하핫!”

마무리 인사까지도 원만하게 나누며 상견례는 아주 성황리에 잘 마무리되었다.

“그럼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한 번 더 뵙겠습니다.”

“예예, 들어가십쇼.”

“예, 들어가세요!”

민영 씨 부모님께서 꾸벅 인사하시자 우리 엄마와 아빠도 꾸벅 인사하셨다. 아, 물론 나도.

“…근데 민영 씨는요?”

“네?”

“아버님이랑 어머님 따라가시는 거 아니었어요?”

“그….”

“네.”

“넌 왜 그렇게 눈치가 없냐?”

“어?”

민영 씨랑 다소 어색한 대화를 나누고 있자 아빠가 다가와 팔뚝을 툭 때렸다.

“우린 먼저 간다.”

“어?”

“사돈께서 자리 피해주신 거잖아, 멍청아.”

“아….”

“우리도 눈치껏 피해줄 테니까 적당히 놀다 들어가라. 며느리 잘 데려다주고.”

“아, 아빠!”

“우리 간다.”

“아….”

텅- 부웅-!

“…빠.”

아빠는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더니 정말 빠르게 차에 타고 떠나버렸다. 엄마는 그새 차에 타 있었는지 보이지도 않고.

“…….”

“…….”

덕분에 민영 씨와 단둘이 남게 되자 약간의 어색함이 감돌았다.

“…한울 씨는 저랑 있는 게 싫어요?”

“아뇨, 그럴 리가 있나요, 제가 어찌 감히 그런 미친 생각을 하겠습니까,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거죠, 그렇죠, 그럼요.”

“근데 왜 남았냐고 물어보시는 거예요?”

“그게….”

하얀 볼따구에 바람을 뿡 넣고 토라진 표정을 짓는 민영 씨 이야기를 듣고 아, 실수했구나를 깨달았다.

근데 어떡해, 어색함이 느껴지는 게 사실인걸.

물론 그 이유라는 게,

“…뭔가 믿기지가 않아서요.”

“어떤 게요?”

“진짜로 5개월만 있으면 우리 결혼하는 거잖아요.”

“그런데요?”

“전에는 그…막연하게 느꼈거든요. 결혼하는구나, 결혼하겠구나. 근데 상견례까지 마치니까 오히려 실감이 안 나요.”

“그게 뭐예요.”

듣는 입장에선 말 같지도 않은 소리겠지만.

“저 그냥 갈까요?”

“아뇨, 아뇨아뇨. 가다뇨, 민영 씨 가면 저 안 돼요.”

내 해명을 듣고도 맘에 풀리지 않은 듯, 민영 씨는 여전히 입술을 쭉 내밀고 있었다.

이러면 안 된다는 건 아는데,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나도 모르게 튕겨나오려는 웃음을 힘겹게 억눌렀다.

“일단…차로 가죠.”

“네에….”

흥, 칫, 뿡, 쳇.

민영 씨는 본인의 감정을 마음껏 내비치며 나를 따라 차에 탔다.

차에 타자마자 아이고, 나도 모르게 식은땀을 뱉어냈다.

“한울 씨.”

“네, 네?!”

“왜 그렇게 놀래요?”

“아뇨, 딱히 놀라진 않았는데….”

그냥 지은 죄가 있는 것 같아서요.

“…왜 그러세요?”

“정말로 아직도 실감이 안 나요?”

“네? 아…조금요.”

“왜요?”

“음….”

대답을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 말끝을 늘이긴 했지만, 나를 쳐다보는 민영 씨의 시선을 피하진 않았다.

가만히, 민영 씨의 갈색 눈동자를 바라보며 천천히 생각나는 바를 읊었다.

“우리가 이렇게 만나고 밥 먹고 하는 거요. 가끔씩 영화보고 커피 마시고 하는 거요.”

“네.”

“그걸 이제 매일 할 수 있잖아요.”

“그렇죠?”

“뿐만 아니라 같이 자고, 같이 부대끼면서 살고. 같이….”

“이제 생활 모든 걸 같이 한다는 게요?”

“네에….”

“그게 그렇게 안 믿겨져요?”

“조금…요.”

“어어엄청 기대하고 계신가보네요.”

“기대…기대? 기대죠? 그렇죠, 기대죠.”

어벙한 대답에 민영 씨는 빙긋 웃었다.

“그거 말고 또오…같이 장 보고, 같이 요리하고. 집에 어디 고장 나면 같이 고민하고, 무슨 일 있으면 같이 생각하고. 그쵸?”

“그…네.”

“한규진 선수 결혼했을 때처럼 다른 사람들이 축하해주고, 같이 신혼여행도 가고. 아, 그 전에 식장 고르면서 저 드레스도 봐야겠네요. 한울 씨도 엄청 기대하고 있을 거 같은데.”

자기 입가에 검지 손가락을 붙이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어쩜 이렇게 예쁠까.

“민영 씨는 엄청 예쁠 거예요.”

“웨딩드레스 입으면요?”

“네. 정말 예쁠 거예요.”

“당연하죠!”

꺄르륵, 민영 씨는 한껏 잔망스럽게 웃었다.

“빨리 보고 싶어요?”

“그럼요. 아, 이렇게까지 빨리 시즌 끝나길 바라는 건 처음인 거 같은데요.”

“5개월밖에 안 남았잖아요. 금방 갈 거예요.”

“5개월이라고 하니까 엄청 멀어보이니까 그렇죠.”

“멀긴요. 금방이죠!”

어린 애처럼 투정부리고 있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다. 근데 어떡해, 소풍이 기다려지는 어린아이처럼 정말로 투정이 나도 모르게 나오는데.

민영 씨는 솜씨 좋게 아이를 달래는 유치원 선생님처럼 나를 좋게좋게 타일렀다.

“이번 주에 올스타전이고, 올스타전 끝나면 또 금방 8월이고. 리그 순위 좀 신경쓰다보면 8월 금방이고. 9월, 10월엔 시즌 마무리하느라 바쁠테고. 11월엔 포스트시즌 마무리한다고 정신없을테고.”

짝!

“어머나, 금방 12월이네?”

자기가 한 말에 자기가 감탄했는지, 혼자서 박수까지 짝 치며 과장된 놀라움은 민영 씨 답게 아주 잔망스러웠다.

“어머나어머나, 느낌으로는 우리 당장 내일 결혼하는 것 같지 않아요?”

민영 씨도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소릴 하는구나.

헛헛하게 한 번 웃자 가슴을 메꾸던 답답함이 살짝 가신 것 같다.

“갈까요?”

“항상 생각하는 건데, 저 맨날 운전할 때 규정속도에서 10km씩 늦게 가거든요. 민영 씨 집에 데려다드릴 때.”

“그랬어요?”

“그러면 그만큼 우리가 더 오래 있을테니까요.”

으흐흣!

요상한 웃음소리와 함께 차가 천천히 민영 씨 집으로 출발했다.

왼손은 핸들에. 오른손은 민영 씨가 자기 두 손을 꼭 붙들어서 자기 다리 위에.

운전을 위해서 계속 전방주시하고 있자니 오른쪽 볼이 따끔거렸다. 흘끔, 사이드미러를 보는 척하며 민영 씨와 눈을 마주쳤다.

“…왜 그렇게 자꾸 쳐다봐요.”

“제가 보는 게 싫어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왜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 얼굴 좀 보겠다는데!”

아이고야.

민영 씨도 이제 슬슬 본인이 하는 말의 위력을 아는 것 같다. 옛날에 민영 씨라면 저런 말 해놓고 혼자 얼굴 벌개져있을텐데,

“프흐흣….”

저거 봐, 또 이상하게 혼자 웃잖아.

“근데요, 한울 씨.”

“네?”

한 번 잔망스러움 컨셉을 잡은 민영 씨는 일단 계속 컨셉을 고수하기로 했나보다.

“언제까지 민영 씨, 민영 씨하고 부를 거예요?”

“아…그러게. 이제 부분데 계속 씨씨 하고 부르는 것도 좀 그렇….”

“누나, 라고 해봐요.”

“…….”

“얼른요. 민영이 누나, 해봐요.”

새삼스럽게 이 사람이 나보다 한 살 연상이라는 걸 떠올렸다. 하는 짓이 워낙 귀엽고 뽀짝한 사람이라 곧잘 까먹었는데.

“저 운전 좀 집중할….”

“누나, 해봐요.”

“…….”

“얼르은.”

제발.

“눗, 누….”

“잘한다!”

“…….”

“한울이 잘한다!”

“…누나.”

“와아!”

아이고…….

민영 씨를 처음 알게 되고 약 3년. 처음으로 ‘누나’ 소리를 냈고, 처음으로 ‘한울이’ 소리를 들었다.

그 처음으로 들은 누나 소리가 어지간히 기뻤는지,

“한 번 더요!”

“누나….”

“아니아니, 민영이 누나죠.”

“미, 민영이 누나….”

“프흣!”

민영 씨 집 앞에 도착하는 그 짧은 몇 분 새 몇 번이고 나는 누나 소릴 내야했다.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누나 한 번만 더요.”

“누나.”

나도 해탈했나봐. 이젠 아주 자연스럽게 나오네.

“헤헤….”

그럼 뭐하나,

스윽- 스윽―

하는 짓이 이렇게나 귀여운 사람인데.

“아, 내가 누난데!”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자 민영 씨는 또 입술을 삐쭉 내밀며 화났다는 감정을 열심히 내보였다.

하나도 안 무섭다.

“내, 내가 누난데….”

무시하고 계속 머릴 쓰다듬어주니 목소리는 점점 잦아들고 고개는 점점 내려간다.

스윽- 스윽―

“민영 씨.”

“…네.”

“고마워요.”

“새삼스럽게.”

퉁명스러운 목소리에 난 더 기쁘게 웃을 수 있었다.

“…가볼게요. 조심히 가시구, 도착하면 문자 남기시구요.”

“네. 먼저 들어갈게요.”

“그럼 다음 주에 만나요.”

“네, 또 연락 드릴게요.”

민영 씨는 차에서 내려야 하고, 나는 집으로 가야한다. 하지만 두 사람 중 어느 누구 하나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이지 못 한 거지.

그렇게 몇 번인가를 더 쓰다듬어주다가, 아 내일 민영 씨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들자 힘겹게 손을 가져왔다.

“가볼게요.”

“네. 조심히 들어가요.”

“헤헤….”

레그 룸에 두었던 가방을 챙기는 모습, 전에 알려준대로 왼손으로 조수석 문을 여는 모습, 그리고 차 문 앞에서 기다리는 모습을 모두 확인했다.

그리고 마지막 인사를 위해 조수석 창문을 열려고 하니,

탁탁탁-!

민영 씨가 빠르게 자동차의 앞쪽을 뛰어 돌아왔다. 그렇게 민영 씨가 도착한 곳은 운전석 앞.

“…민영 씨?”

무슨 일인가 싶어 내리던 조수석 창문을 놔두고 운전석 창문을 주욱 내렸다.

“왜 그러세요?”

“한울 씨, 뭐 잊은 거 없어요?”

“네?”

“잊은 거 있잖아요.”

“어….”

가만히 민영 씨 얼굴을 쳐다봤다.

그러고 있자니,

톡톡―

검지 손가락으로 자기 입술을 톡톡 건드린다.

“…아.”

예쁜 입술에 팔렸던 정신을 어렵게 되찾아오니 이미 민영 씨의 얼굴이 가깝게 다가왔다.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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