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평가
김한울이 던지면 문규학이 받는다.
이 행동을 몇 번인가 반복했을 때, 문규학이 빠르게 2루로 던지며 연습투구의 종료를 알렸다.
내야수들끼리 라운딩하는 동안 김한울은 잠시 마운드 뒤로 와 클리트 클리너에 스파이크를 닦으며 로진백을 만지작거렸다.
1번타자, 중견수 고동욱
김한울이 라운딩을 마친 공을 받아 플레이트에 설 무렵에 선두타자가 나타났다.
“상수 타이거즈의 8회 초, 세 점 뒤진 가운데 1번타자 고동욱 선수부터 진행됩니다. 앞선 세 타석에선 좌익수 플라이, 1루수 직선타, 중견수 플라이를 기록했습니다.”
“오늘 타격감 자체는 좋은 것 같은데 어딘가 운이 없네요. 계속해서 상대 호수비나 수비 정면으로 가면서 잡혀요.”
“그만큼 원하 선수들이 대비를 잘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수비진들의 준비 말씀이실까요?”
“예예. 수비진들은 이 선수가 어느 방면으로 공을 잘보낸다, 어디로는 약한 타구가 온다, 이런 거 다 공부하거든요.”
“요즘 워낙에 선수들도 공부를 많이 해야하니까요.”
“공부할 수 있는 이…노트들? 테이블도 많구요, 요즘엔.”
홈플레이트를 정면으로 바라본 채, 짝다리를 짚은 것 같으면서도 정갈한 모습으로 김한울이 포수의 사인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야수들이 그 부분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면, 배터리도 알아야 하는 게 있죠.”
“어떤 걸까요?”
“그야 당연히….”
퍼엉-!
스트라이-잌!
“이 타자가 어디를 잘친다, 어디를 못친다. 결국 투수가 던져야 타자가 치는 거니까요.”
“초구는 바깥쪽 패스트볼. 157km입니다. 말씀 이어주시죠.”
김한울의 투구 때문에 김수찬 해설의 말이 잠시 끊겼지만 권명훈 캐스터는 자연스럽게 다음 멘트를 유도했다.
“그런 부분에서 김한울의 투구를 보면 참 편안하죠.”
“그렇죠.”
“잘치는 타자도 못치게 만들어요. 그게 김한울이에요.”
“타자 출신으로 이영진 해설이 보시기에 김한울 투수는 어떤 투수입니까?”
“아…막막하네요. 그렇게 여쭤보시니까.”
어헣헣헣!
이영진 해설의 말에 김수찬 해설이 껄껄껄 웃었다.
띡!
“2구째는 바깥쪽 싱커로 보이는데요, 심판의 머리 위로 높게 뜹니다. 문규학 포수가 달려갑니다만, 백 보드 뒤로 넘어가며 잡을 수 없습니다.”
“김한울 투수가 정말 영리하거든요.”
“어떤 부분에서 영리하다 말씀하시는 걸까요?”
“당장 자기가 속해있는 상황의 모든 걸 이용할 줄 알아요. 그게 정말 어렵거든요. 이영진 해설위원이 말씀하신 것도 그런 내용일 거예요.”
“맞아요. 심지어는 타자가 자신있어 하는, 타자에게 유리한 상황까지도 써먹을 줄 아는 그런 투수니까요.”
투닥―
“바깥쪽의 체인지업으로 헛스윙을 유도해보려 했지만 너무 빠집니다. 타자에게 유리한 상황까지도 이용할 줄 안다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예시가 있을까요?”
“타자 입장에서. 사실 그렇게 생각하잖아요? 내가 몸쪽에 강한 타자라면, 또 바깥쪽에 약한 타자라면 바깥쪽을 중점적으로 볼배합을 짤 거다, 그렇게 타자도 작전을 맞춰오잖아요?”
“그렇죠.”
“근데 김한울 선수는 그게 안 통해요.”
“안 통하죠. 몸쪽이 강해? 내가 더 강한데?”
“아하하, 김수찬 해설위원 말씀대로 딱 저런 느낌이 들어요.”
퍼엉-!
쓰리이이!!
“바깥쪼옥, 158km! 고동욱은 그대로 지켜본 뒤 덕아웃으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이영진 해설위원이 얘기한 게 이런 거죠?”
“그쵸, 이런 거죠.”
카메라는 삼진을 잡아낸 후 마운드 주위를 빙 도는 김한울을 클로즈업했다.
모자를 벗어 유니폼으로 땀을 한 번 닦아내어 본인의 상태를 재정비한 후 카메라가 있는 쪽을 정면으로 둔 채 고민에 빠져있다.
“김한울 투수가 생각이 많아보이는데요.”
2번타자, 2루수 강대현
“아무래도 강대현 타자 때문이지 않을까요? 천적 관계에 있다곤 해도 오늘만 3안타를 때려내고 있으니까요.”
“첫 타석부터 두 번째 타석까지 연타석 홈런도 있었죠?”
이영진 해설의 말에 김수찬 해설이 한 마디 첨언했다.
해설진의 말이 맞는 듯, 김한울은 잠시 고민하다가 내야수 한 명 한 명에게 각각 손가락으로 수비위치를 지정했다.
“참, 이런 거 보면. 정말 김한울 선수가 대단해요.”
그 모습을 본 김수찬 해설이 감탄했다.
“아, 야수들 수비 지정에 관한 말씀이실까요?”
“그렇죠. 저 모습이 대단한 점이 어떤 게 있냐면 말이죠.”
퍼엉-!
스트라이-잌-!
“몸쪽으로 말려들어간 153km 공인데요,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습니다.”
“저런 게 정말 복잡하거든요.”
“어떤 게 복잡할까요?”
“일단 본인을 알아야죠. 본인이 던지는 공의 구질이 어떤지를 알아야죠. 구질을 알고, 또 타자가 어떤 유형인지를 알아야죠.”
“당겨치는지, 밀어치는지 말씀이실까요.”
“그렇죠. 여기에 하나가 더 필요해요.”
“어떤 게 필요할까요.”
“자기 팀 야수들 성향을 또 알아야 해요.”
퍼엉-!
“156km 패스트볼, 바깥쪽에 빠집니다. 카운트 1볼 1스트라이크. 본인 팀의 수비력을 알아야 한다는 말씀이실까요?”
“수비력…이라기보단 성향이라고 말씀드렸죠?”
“성향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표현일까요.”
“수비력이라고 하면 너무 뭉뚱그리는 말이라서요. 이 내야수가 커버 범위는 넓은데 핸들링은 평균이라든지, 점프 캐치는 좋은데 땅볼은 평균이라든지. 더 세세하게 들어가면 스타트할 때 왼발이 먼저 가는지, 오른발이 먼저 가는지.”
“생각할 게 많네요.”
“김한울 투수는 그걸 다 알고 있어요. 아까, 제가 김한울 투수를 빗대서 영리한 투수라 했잖아요?”
투닥―
“3구째는 스플리터가 바운드됩니다. 문규학이 1루심을 가리키는데요, 배트는 돌지 않았습니다. 말씀 이어주시죠.”
“저 외야수가 수비가 좋으니까 저 외야수 쪽으로 보내야지, 이런 막연한 게 아니에요.”
“조금 전 말씀하셨던 해당 야수의 수비 수준을 좀 더 세밀하게 나눈다는 말씀이실까요?”
“그렇죠. 정리를 하자면, 저 타자가 어떤 타자고 내 공이 어떤 공이니까 이쪽으로 타구가 갈 확률이 높다. 근데 이 야수는 이런 성향이니까 이쪽으로 미리 보내두면 수비하기가 편하겠다.”
“아, 확실히 이해가 되네요.”
딱―
파울-!
“초구와 같은 싱커인데요, 이번에는 타격하여 파울을 하나 만들어냅니다. 김한울 투수의 이런 모습을 보니 이영진 해설위원에게 궁금한 게 하나 생겼는데요.”
“예.”
“타자 입장에서, 투수나 포수가 저런 수비 위치 지정을 논하는 상태가 현대야구에선 꽤나 흔하지 않습니까?”
“아, 맞습니다.”
“타자 입장에선 저런 양상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저게 사실 타자 입장에선 기분이 나쁠 때도 있거든요. 사실 그렇잖아요, 저게 딱 타자의 약점을 대변하는 것과 같지 않습니까?”
“그렇죠. 이 타자가 어디가 약하니까 어디로 보내겠다, 이런 의도가 명확하니까요.”
“저 같은 경우는 약간 힘이 들어갈 때가 있었습니다. 보란 듯이 쳐내겠다, 이걸 쳐서 다시는 내가 이런 타자로 생각을 못 하게 해주겠다, 이런 생각을 했죠.
따악-!
“아, 강대현의 이 타구느은!! 높게 떠서어 날아가는데요오!!”
이영진 해설의 말처럼, 다시 한 번 몸쪽으로 들어간 싱커를 제대로 맞춰낸 강대현은 배트를 내려두고 일단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좌측 폴대를 벗어나버립니다. 파울.”
권명훈 캐스터의 말투처럼 금방 기분이 식어버린 강대현은 고개를 한 번 갸웃거린 뒤 다시 타석으로 돌아와 내던졌던 배트를 집어들었다.
“파울 홈런인데요, 김한울 투수는 미동도 않습니다.”
“저도 궁금하게 김한울 투수랑 얘길 해봤거든요. 저런 상황에 대해서요.”
“아, 네.”
“가끔씩은 그럴 때가 있다더라구요. 아주 특수한 경우긴 하지만, 일부러 치라고 주는 경우가 있답니다.”
“일부러 치라고 준다는 말씀이면 어떤 의도일까요.”
“강대현 타자랑 김한울 투수랑 천적 관계라는 건 모두가 알 거예요. 아니, 누구보다 강대현 타자 본인이 제일 잘 알겠죠.”
“맞습니다.”
“일방적인 관계가 계속되면 본인이 마운드에 섰을 때 그 타자가 빠지고 다른 타자가 들어올 수도 있잖아요?”
“그렇죠. 대타가 나올 확률이 크죠.”
“그 대타가 어떤 타자가 나올지 모르니까, 그런 변수를 차단한다 하더라구요.”
“아…조금만 더 하면 내 공 칠 수 있으니까 좀 더 해 봐. 이런 의미일까요, 혹시?”
“예. 참 못됐죠.”
김수찬 해설의 말처럼,
따악―
직전 타격의 파울 홈런으로 자신감을 얻어낸 강대현은 다음 공을 자신있게 때려냈다.
“6구째를 퍼올렸는데요, 중견수 박진형이 제자리에서 간단하게 잡아냅니다. 투아웃.”
“방금 박진형 선수의 위치가 딱, 김한울 투수가 지정해준 그 자리죠?”
투아웃까지 깔끔하게 잡아낸 김한울은 다시 한 번 마운드 주위를 빙글 돌았다.
모자를 벗어 땀을 닦아내고, 클리트 클리너에 스파이크를 긁고, 로진백을 충전하고.
이젠 습관에 포함시킬 수 있는 행동들을 보인 뒤 다시 플레이트를 밟는 모습은,
3번타자, 지명타자 이용호
“상수 타이거즈의 세 번째 타자로 이용호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중계 화면으로 인해 너른 등판밖에 보이지 않지만 묘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압도감.
압박감.
위압감.
“이용호 타자도 오늘 타격감이 꽤 좋습니다. 홈런 하나 포함해 2타수 1안타, 볼넷 하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은퇴한 홍석진 타자의 빈자리를 아주 완벽하게 메꿔주고 있죠?”
“보는 시선에 따라 홍석진 타자보다 더 타선의 짜임새를 잘 만들었다 평가하는 분도 있죠.”
“이용호 타자가 작년 시즌, 갑자기 성적이 반등한 원인은 어떤 게 있다 보실까요?”
펑!
“낮게 꺾여 들어가는 슬라이더가 스트라이크 존에 걸치는데요, 문규학 선수가 미트를 가만히 두며 심판에게 어필하지만 볼 판정을 유지합니다.”
“이용호 타자가 좋아진 점은 바로 이런 부분이죠.”
“아, 애매한 공을 골라내는 능력일까요?”
“맞죠. 전에는 이제…본인의 배트 스피드만 믿고 막 휘둘러댄다는 느낌이었지만, 이젠 차분하게 골라내며 딱 쳐낼 수 있는 공만 쳐내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퍼엉-!
“2구째 높은 패스트볼인데요, 헛스윙으로 카운트 하나를 보냅니다.”
이영진 해설의 말과는 다르게 곧장 헛스윙이 나오며,
“아이고, 경기 끝나고 이용호 선수한테 뭐라 한마디 해야겠네요.”
이영진 해설을 민망하게 만들었다.
“하하하, 아무래도 김한울 투수에게 위압감 같은 걸 느낀 게 아닐까요.”
“이영진 해설도 현역 시절에 천적이었던 투수가 있지 않습니까?”
“있죠. 많죠.”
“천적 관계에 있는 투수를 상대하면 어떤 생각으로 타석에 임하십니까?”
“아…이게. 막막합니다. 이걸 어떻게 해야하는지, 뭐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모든 게 막막해요.”
“지금 이용호 타자도 그런 기분을 느끼고 있을까요?”
“그러지 않을까요?”
이번엔 이영진 해설의 말처럼,
부웅-!
“116km짜리 아주 느린 커브인데요, 어설픈 스윙으로 다시 한번 카운트를 만들어냅니다.”
이용호는 리드미컬한 헛스윙으로 카운트 1-2을 만들었다.
“이번 시즌 김한울 투수가 워낙에 압도적인 성적을 내고 있다 보니까…선수들 사이에서 어떤 말이 유행하는지 아십니까?”
“아, 어떤 말이 유행하고 있을까요?”
“다른 투수면 몰라도, 김한울 투수한테 삼진 먹는 건 전혀 부끄러운 게 아니다, 뭐 그런 말이 유행한답니다.”
아하하하!
이영진 해설의 썰에 의해 중계 부스는 잠시 웃음꽃이 폈다.
이번 시즌 김한울의 모습을 쭉 지켜봐왔던 이들이라면 모두가 동의할만한 그 내용은 굳이 선수들뿐 아니라 팬들 사이에서도 잘만 돌아다니는 내용이었다.
시즌 평균자책점 0점.
‘0점대’라는 막연한 단어가 아닌 숫자 ‘0’을 명확히 나열하는 김한울의 모습은,
퍼엉-!
“몸쪽, 159km!! 2020시즌 김한울의 전설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그 누가 봐도, 당분간 쉽게 어긋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