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기본
쟤가 갑자기 왜 저러지? 라는 생각보다는,
“아까부터 계속 그러네, 저걸 어떻게 쳐요!”
드디어 터질 게 터졌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 시발점이 다른 누구도 아닌 성현이가 될 거라는 것 정도만 예상을 못 했다뿐이지.
“확실해요? 들어온 거 확실해요?!”
성현이는 정말 ‘프로’라는 두 글자를 자랑스러워할 자격이 있는 녀석이다.
모든 플레이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최선을 다한다.
팬들의 존재를 인지하고 그들을 본인보다 우선으로 대한다.
상대팀을 존중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예의라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경기를 관장하는 심판에 대한 예의 또한 좋기로 소문이 난 녀석이다.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1루를 밟고 2루를 밟고 3루를 밟을 때마다 각 베이스를 관장하는 심판에게 인사를 건넨다.
타석에서 웬만큼 빠진 볼에도 웬만하면 수긍하려 든다. 들어왔으니까 잡아줬겠지. 그냥 내가 치면 되지.
아웃과 세이프 관련해선 아무래도 팀 승리가 왔다갔다 하기에 어필은 한다. 근데 아마 비디오 판독 없었음 그냥 덕아웃 들어왔을걸.
그런 녀석이,
“스쳤어.”
“라인을 탄 것도 아니고, 꺾인 것도 아니고, 여기로 이렇게 빠져나가는 게 어떻게 스쳐요!”
저렇게 바락바락 대드는 모습은 정말 보기가 드물다.
“아니, 아예 스치질 않았는데 어떻게 이게 잡히냐구요!”
“스치고 들어갔으니까 잡지, 아니면 내가 왜 잡는데!”
“야야, 성현아. 들어가자, 들어가.”
가만히 놔뒀다간 일이 커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감독님 다급하게 뛰쳐나가 성현이를 말려보지만,
“아니, 잠깐만요. 아까 훈이형 때도 그러고, 혁준이 던질 때도 그러고, 오늘 뭐 있어요? 예?!”
제대로 빡이 돌아버린 성현이한텐 들리지가 않는다.
“아니, X발 제대로 안 봐요?! 안 보냐고!!”
그리고 보통 이렇게 되면,
“퇴장!”
해당 타자는 퇴장을 당하고,
“잠깐만, 뭘 또 퇴장까지 시켜요! 아까부터 이상하게 보는 건 맞구만!”
“뭘 이상하게 봐요! 대들어요, 지금?”
“뭐? 대들어? 당신이 내 위야? 어?!”
우리 선수를 보호하던 감독님마저 빡돌게 만들고,
“퇴장!”
감독님까지 퇴장 명령을 받기도 한다.
“감독님, 일단…예?”
“아니, 놔 봐!”
“아우, 감독님…저희가 할게요.”
결국 코치님들까지 나서서 성현이와 감독님을 말리며 사태가 일단락되긴 했다.
“…오늘은 좀 심한데요.”
“오늘 커뮤니티에서 불 좀 나겠는데.”
아직까지 어수선함이 남아있는 분위기 속에서 기성이가 유격수 땅볼로 물러나며 쓰리아웃, 공격이 끝났다.
“갔다 와라. 고생하고.”
“…예.”
야구 참 좋아하고 공 던지는 거 참 좋아하는 혁준이가 마운드에 올라가기 싫어할 정도라니.
“와…이따가 어떡하지. 나도 올라갈 텐데.”
최근 두 경기, 월요일 휴식일과 우천 순연된 경기를 포함하면 최근 4일간 등판이 없었기에 오늘 컨디션 점검 겸 올라갈 확률이 크다.
게다가 아직까지 점수가 0 대 0, 박빙인 상황이 유지된다면 더더욱이 올라갈 확률이 높아지고.
약 한 시간 뒤를 걱정하며 혁준이의 연습투구를 지켜보길 잠시,
“플레이!”
문제의 심판이 혁준이를 가리키며 경기의 재시작을 알렸다.
퍼엉-!
“스트라잌-!”
잡아줘야 하는 곳을 잡아주지 않는다. 근데 또 잡아주면 안 되는 곳은 잡아주기도 한다.
이런 알고리즘이 형성되었다 한들,
부웅-!
“스윙-.”
굳이 ‘볼’ 구역에 던져서 모험을 할 이유는 없다.
잡아준다면 나름 허를 찌르는 전략일 수는 있는데, 안 잡아주면 어떡하려고.
때문에,
부웅―
“스윙, 아웃-.”
자연스럽게 전략은 패도적인 성향으로 바뀌게 된다.
힘을 빼도 되는 곳에서 힘을 빼면 안 된다. 힘을 좀 써야 하는 곳에선 더 힘을 넣어야 한다.
이는 필시,
따악-!
“힘 빠졌네.”
투수의 체력을 과도하게 깎아먹는 요소가 된다.
7회 말, 시작하자마자 비슷한 이유로 선두타자에게 볼넷을 허용한 뒤 7번타자 양진우에게 선취 투런포를 얻어맞았다.
“석민이 올라가자.”
“아, 예!”
그 시점에서 혁준이의 임무는 끝이 나고 석민 선배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혁준이 고생했다.”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돌아오는 혁준이를 맞아 등을 토닥여주었다.
“아아…뭐 이러냐.”
얘도 참 기구하지.
기껏 체인지업 열심히 연습해놨더니 뜬금없이 심판 때문에 제대로 써먹어 보지도 못 하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힘이 잔뜩 들어가선 7회에 의미없는 홈런까지 얻어맞고.
오기로라도 더 던지고 싶은데 분위기 때문에 내려오기까지 하고.
사실 별생각이 없었다면 지금 혁준이에게 지금까지 넌 잘했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뭐 이런 소리나 했을 거다.
“네 녀석의 부족함을 이제 알겠느냐.”
“예?”
“네 녀석의 부족함은 다른 무엇도 아닌 너의 그 멘탈이니라.”
“아….”
근데 그런 얘기 해봐야 딱히 도움이 될 것 같진 않더라고.
“아아, 선생님. 그럼 그 멘탈을 키우기 위해 전 무엇을 하면 됩니까.”
“가서 아이싱이나 하고 오는 길에 얼음물이나 좀 챙겨오거라.”
혁준이는 회복 탄력성이 좋은 녀석이다.
회복 탄력성을 따지기에 딱히 바닥을 찍진 않았지만,
“예이!”
오히려 그렇기에 가벼이 넘기고 털어낼 수 있다.
쌉소리에 기분을 회복한 혁준이가 덕아웃 뒤로 넘어가는 걸 보며 석민 선배의 투구를 지켜봤다.
잡아줄 곳은 잡아주지 않고, 잡아주면 안 되는 곳을 잡아주는 불확실성.
석민 선배의 등판을 누가 점지시켰는진 모르겠다만,
딱―
“숏 대시!”
꽤나 좋은 전략이다.
저걸 쳐야 하는지, 저걸 쳐도 되는지에 대한 판단보다 ‘치고 싶다!’를 만드는 투수.
배터리는 물론이고 타자들마저 스트라이크 존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는 상황에서 언더핸드라는 특수성은 분명 유리한 작용을 할 거다.
꺾이고, 휘고, 말리고, 벗어나고, 솟아오르고.
띡―
“세컨!!”
“마, 마아아악!!”
지금도 봐, 자신있게 휘둘러놓고 타자의 표정을 보면 ‘아, 내가 왜 쳤지?’ 싶은 후회가 가득하다.
“…흐음.”
석민 선배의 투구를 인상 깊게 바라보고 있자니,
“한울이 일단 대기만 하고 있자.”
“아, 네.”
8회에 대한 출격 대기가 떨어졌다.
“8회죠?”
“그치.”
“옙.”
다음 공격에 타순이 좋으니까 최소 한 점, 운이 좋으면 동점까진 어떻게 따라갈 것 같긴 한데…….
“건영아, 준비 좀!”
“예에에에!”
행복회로를 걷어내고 등판에 대한 준비를 시작했다.
팔다리 쭉쭉 늘려주고, 허리도 휙휙 돌려주고,
퍼엉―
가볍게 공도 몇 개 던져주고.
“음…방향을 어떻게 잡아야되나, 그러면.”
현재의 내 투구 스타일을 얘기해보자면, 정교한 제구로 천천히 스택을 쌓다가 마지막에 강력한 구위로 뻥 터뜨리는 스타일.
하지만 내 가장 강력한 무기인 ‘정교한 제구’가 반쯤 봉인된 상황에서 이런 작전은 살짝 수정을 거칠 필요가 있어보인다.
이른바,
“싱커.”
“아이, 씽카!”
날먹 전법.
펑-!
아마…방금 던진 싱커는 140km대 중반 정도 나오지 않았을까. 많이 쳐주면 140km대 후반.
“엥?”
“왜?”
“아직 몸 덜 풀리셨어요?”
“아니? 왜?”
“좀 느린 거 같아서요.”
“아아.”
평균적으로 150km대 초반, 최고구속으로 155km까지 때려본 적 있는 싱커.
거진 맨날 공을 받아주는 입장에선 당연히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
“어디 아프신 건 아니죠?”
“괜찮아, 멀쩡해.”
어디가 아픈 건 아닌지, 던지는 감을 잃어버린 건 아닌지, 어디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슬라이더. 짧다.”
“옙!”
하지만 전혀 문제없다.
뻥!
오히려 그걸 노린 거거든.
“어우, 지금 꺼 뭐예요? 커터예요?”
“비슷하지?”
마찬가지로 슬라이더 또한 최대한 각도를 줄인다. 속도는 대략 맥스 150km 정도가 되도록.
말고…또 필요한 게 있나.
플레이트 뒤에 서서 짝다리를 짚은 채 건영이를 쳐다보며 잠시 생각했다.
오늘 작전을 위해 챙긴 무기 중 더 챙길만한 게 있을까. 뭐 빠뜨린 건 없을까. 뭐 더 가져가면 좋을 게 없을까.
“…아.”
체인지업이 좋겠다.
“체인지업. 많이 떨어진다.”
“예이!”
커브는 오늘 작전에 있어서 구속 편차가 너무 크기에 가능하면 아낄 생각이다.
스플리터도 좋긴 하겠다만 오늘만큼은 싱커의 활용도가 더욱 높을 예정이다.
직구? 직구는 당연히 던지지.
투닥―
“어우, 좋다. 잘 떨어져요!”
직구 던지듯이 손가락으로 때리는 체인지업이 아닌, 팜볼처럼 손바닥으로 밀어던지는 체인지업.
평소 잡던 그립보다 더욱 깊숙하게, 손바닥 쪽으로 끼워 넣은 덕에 훨씬 커다란 낙폭으로 떨어졌다.
이 정도면 세팅 완료.
“지금이….”
정신없이 몸을 풀어놓고 나서야 지금 그라운드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오.”
워밍업 전 돌렸던 행복회로가 헛된 게 아니었던 듯, 이미 한 점을 내고 주자가 양 코너에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빨간불이 두 개 들어와있다는 것 정도.
그래도 믿음직한 구석이라면,
“술쟁이 새끼, 어제도 처먹었잖아. 알콜 파워 좀 내봐라야….”
타석에 서 있는 게 승주라는 것 정도.
타석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아직까지 전광판에 노란불이나 초록불은 들어와있지 않다.
초구는,
펑-!
“보올-.”
높은 직구로 볼.
짝짝짝짝!
“아, 굳 아이, 굳 아이!”
“잘 본다, 잘 봐!”
아, 모르겠고 우리 팀 짱! 우리 팀원 그냥 짱!
애매하게 높았던 것도 아니고 그냥 시작부터 대놓고 높았던 볼인데도 덕아웃의 팀원들은 있는 힘껏 목소릴 내며 승주를 응원했다.
2구는,
띡!
“파울-.”
포수미트 안에 들어가기 직전의 직구를 기어코 끄집어내서 만들어낸 파울.
짝짝짝짝짝!
“아, 타이밍 좋다, 좋아!!”
“스윙 좋아, 스윙 좋아!”
대놓고 늦은 타이밍이었다.
때문에 스윙도 완전히 퍼져나오는 스윙이 돼버렸다.
애초에 지금 볼 카운트에서 저렇게 스윙하느니 안 하는 게 이득이다.
그럼에도 팀원들은 또다시 박수를 치고, 또다시 목소릴 내며 승주를 응원했다.
짝짝짝짝!!
“승주 가자가자!!”
“이번에 맞는다, 때린다!!”
마치 그렇게 안 하면 벌금이라도 물리는 듯이.
승주는 잠시 오른발을 타석 밖으로 빼낸 채 배트를 휘적거리며 타이밍을 계산하는 듯 보였다.
조금 전 직구는 엄연히 실투의 범주에 속하는 공이다.
득점권 상황에서 말도 안 되는 자체 버프를 갖는 승주가 놓칠만한 공이 절대 아니다.
그럼에도 놓쳤다는 건 분명 예상치 못 했던 구역에서 삐걱였다는 소리다.
그게 뭘까.
“치면 된다, 아까 스윙 좋았다!”
“막 휘둘러, 그냥 휘둘러요!!”
얼추 계산을 마쳤는지, 팀원들의 응원이 다시금 뜨거워지자 승주는 오른발을 타석 안으로 집어넣었다.
오른손으로 꼬나쥔 배트를 제 얼굴 앞에 휙휙 돌려대고, 그립을 말아쥐고선 양손을 왼쪽 어깨에 올리고, 등을 뒤로 한 번 숙이며 코어의 긴장을 빼고.
승주는 배트를 제 왼쪽 어깨에 눕힌 채 투구를 기다렸다. 배터리의 사인 교환이 끝나자 배트를 아주 약간 세워서 까딱거리기를 추가.
투수가 오른발을 들고, 오른발이 뻗어 나가고, 왼손이 잠깐 스쳐 지나가자,
따악-!
그것보다 훨씬 빠르게 승주의 배트가 돌아갔다.
“와아아악-!!”
“뛰어, 병천이 드루와!”
라이너성으로 맞은 탓에 담장을 넘기는 건 어림도 없고, 다만 우중간을 완벽하게 갈라버렸다.
3루에 있던 병천이는 사실상 득점 확정. 마찬가지 의미로 동점 또한 사실상 확정.
쟁점은,
“다 들어와, 진형이 너도 들어와아악!!”
“진형이 뛰어어어!!”
1루에 있던 진형이가 들어오느냐, 못 들어오느냐. 역전이 되느냐, 안 되느냐.
진형이가 3루 베이스를 밟기 직전부터 3루 주루코치님이 오른팔을 열심히 돌려댔다.
진형이가 3루 베이스를 밟을 무렵 타구는 외야에서 내야로 중계를 막 시작한 참이었다.
진형이가 3루 베이스를 밟은 뒤로 모두의 시선이 홈 플레이트에 집중됐다.
승주 다음 타석이 예약되어있는 성훈이형이 송구의 방향을 보며 양손을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휘적거렸다.
포수가 아닌 성훈이형을 보고 뛰던 진형이는 홈플레이트에 가까워지며,
촤악―
오른발을 홈플레이트 쪽으로 들이밀었다. 또한 그 직후 송구를 받은 포수가 얼른 몸을 돌려 진형이를 태그했다.
“아웃!”
엥?
생뚱맞게 느껴지는 판정에 연습 투구도 중단하고 그라운드의 상황을 지켜봤다.
진짜, 저 심판 아까부터 왜 저러지?
덕아웃, 그리고 원하 챌린저스 응원석이 들썩이는 와중에도 진형이와 성훈이형은 침착하게 양손으로 네모를 크게 그렸다.
표정을 보아하니 상대할 가치도 없다, 따질 가치도 못 느낀다, 뭐 그런 표정.
감독 자리가 잠시 공석이 된 탓에 임시 감독직을 수행하게 된 수석코치님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덕아웃을 나섰다.
원하 챌린저스 측의 요청으로 비디오 판독이 진행됩니다.
화끈했던 분위기가 잠시 잦아들고 구장 내엔 장엄한 음악이 흐…….
“세잎-.”
…른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금방 판정이 번복됐다.
“예에에엑!!”
“승주 나이쓰으!!”
“어우, 진형이도 슬라이딩 좋아!”
짝! 짝! 짝!
멋진 슬라이딩으로 득점 스탯을 하나 올린 진형이가 덕아웃으로 돌아오며 모든 팀원들과 하이파이브를 쳐대기 시작했다.
부디 이 기세를 몰아 한 점이라도 더 내주면 좋겠다 싶긴 했지만,
“스트라잌, 아웃!”
성훈이형이 몸쪽에 꽉 차다 못해 아주 그냥 흘러넘칠 것 같은 직구를 지켜보며 이닝이 그대로 종료됐다.
아, 물론 반어법이다.
“한울이, 나가자.”
“예!”
그래도 괜찮아.
무려 세 점을 냈다. 그 세 점으로 한 점을 역전한 그림이 됐다.
한 점?
빡빡하긴 하지만,
“후우….”
괜찮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어.
띠링-!
[간지럽게]
- 탈삼진을 기록하지 않고 1이닝 무실점하세요. (0/1)
- 보상 - 변화구 +2
굳이 탈삼진 같은 거 없이도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