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평화로운 불펜생활-176화 (176/190)

176화. 체인지업

시즌이 슬슬 마무리되는 시기에 접어들며 각 팀마다 몇 위를 위한 매직넘버가 몇이니, 트래직 넘버가 몇이니에 대한 계산식이 등장했다.

원하 챌린저스 70승 44패. 그리고 상수 타이거즈가 66승 48패. 남은 경기가 12경기씩이고 게임차가 네 게임.

이 숫자들을 원하 챌린저스에 대입하면,

“…9경기.”

앞으로 원하 챌린저스는 9승을 챙기면 다른 거 뭐 볼 것도 없이 자력으로 리그 우승을 확정짓는다.

“후우….”

12경기 중 9승. 승률 75%

승률 61%팀 따위가 논하기엔 일견 무리처럼 보일 순 있지만 우리가 9승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상수 또한 질 가능성이 있는 거니까.

“오늘도 못 나가려나.”

근데 그런 걸 떠나서, 요즘 등판 한 번 하기가 정말 힘들다.

페넌트레이스보단 한국시리즈를 겨냥하는 요즘 팀 분위기상 나 같은 에이스들보단 백업, 혹은 1.5군급 선수들의 출전이 우선시되는 경향이 있거든.

주전급을 빼고 그보다 아래 선수들을 출전시키는 건 팀의 입장에선 두 가지 이득이 있다.

한국시리즈 엔트리의 남은 자리 중 누굴 데려갈 것인가에 대한 판단, 그리고 주전 선수들의 체력 안배.

그 와중에 원하 챌린저스 참 대단하다 느끼는 게, 주전 선수들이 이렇게 대거 빠진 와중에도 착실하게 승리를 쌓아가고 있다는 것.

옛날의 그 레귤러 빼면 아무것도 없던 원하 챌린저스가 아니다. 이젠 KBO에서 뎁스로만 따지면 상위권에 속하는 팀이 됐다.

“저기, 선배님.”

“엉?”

그 과정 속에서 선배들, 그리고 후배들 모두 힘을 냈다.

“저 체인지업 좀 연습해봤는데 혹시 한 번 확인 가능하십니까.”

선배들은 후배들의 머리채를 잡고 본인들의 팁을 강매했으며, 후배들은 선배들의 멱살을 잡고 선배들의 팁을 강탈해갔다.

잘하네.

“체인지업? 웬일로?”

“그, 옛날에 저희 둘이랑 최은구 선배님이랑 한규진 선배님이랑 넷이서 술 먹은 적 있지 않습니까.”

“아! 그때 왜, 낙지볶음 먹었을 때 아니야?”

“맞습니다.”

지호랑 그렇게 넷이서 술 먹었던 게 언제더라. 벌써 한 2년 된 거 같은데.

그때 나눴던 얘기가 분명…….

“…후두부랑 측두부.”

“예?”

“아, 아냐. 아냐, 아무것도.”

“예….”

크흠.

“생각해보니까 그때 변화구 얘기도 나왔었지. 너 지금 던지는 거에 뭘 추가하면 좋을까, 그 얘기.”

“맞습니다.”

“거기서 체인지업 골랐구만.”

“예.”

기억이 맞다면 규진이형이 포크볼을 추천했고 은구 선배가 투심 계열을 추천했을 거다.

그중 체인지업을 추천했던 건,

“내가 추천해놓고 물어보는 것도 웃기긴 한데, 왜?”

나였다.

“이것저것 연습들 다 해보긴 했습니다. 투심은 영 감이 안 오니 그렇다 치고, 포크볼이 제일 좋아보이긴 했는데….”

“했는데?”

“…감각 자체는 체인지업이 제일 좋은 것 같습니다.”

“감각이라….”

지호의 경우 체인지업은 과정, 포크볼은 결과라 평가할 수 있다.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 다르긴 하겠다만, 지금 지호는 과연 과정과 결과 중 어느 것을 선택하는 게 정답일까.

“잘 선택했네.”

당연히 과정이지.

성적 때문에 은퇴기로에 놓인 선수, 혹은 더 이상의 성장 가능성이 없다고 되는 선수는 당연히 결과물을 중시하는 게 맞다.

안 그러면 짤리니까.

하지만 아직도 20대 초반에 속하는 지호는 아직까지도 야구로 먹고 살날이 많이 남았다.

천천히 연습하고 실험해보고 시험해보며 자기 입맛대로 맞춰나가는 것, 그게 10년 뒤에도 지호가 야구선수로 먹고살 수 있는 길 중 하나다.

“캐치볼이나 한번 해보자.”

“예. 볼은 제가 챙기겠습니다.”

마침 할 짓도 없었겠다, 곧장 글러브를 챙겨 그라운드로 나섰다.

“던져도 되겠습니까?”

역시, 지호가 참 빠릿빠릿해.

나도 덕아웃에서 부지런하게 나섰는데, 지호는 공까지 챙겨온 마당에 먼저 멀리까지 가선 공을 들어보였다.

“어어, 던져봐.”

“일단 직구로 어깨 좀 풀겠습니다.”

“어이어이.”

우선 가벼운 캐치볼로 간단하게 몸을 풀어준 뒤,

“체인지업 던져보겠습니다.”

“오케오케.”

지호가 체인지업을 던졌다.

빡!

“오…계속 던져봐.”

“아, 예.”

빡!

빡!

“좀 크게 던져보겠습니다.”

“어이.”

빡―

“오.”

좋은데?

“어떻게 던졌냐?”

캐치볼을 잠시 중단하고 지호에게 다가가서 그립이나 요령에 대한 부분을 타진했다.

단순히 좋다, 안 좋다 이상의 반응이 나오자 지호도 꽤나 기뻤는지,

“여기 검지랑 엄지로 동그라미 만든 다음에….”

아주 성심성의껏 본인이 만들어낸 꿀팁들을 전수해주었다.

아, 체인지업 이렇게 던지는 것도 괜찮네. 괜찮긴 한데…….

“이거, 여길 한 번 이렇게 잡아봐.”

“이렇게….”

“어어. 여길 좀 더 벌리고. 그치그치, 너는 엄지랑 검지로 원을 만들잖아? 나 같은 경우는 검지를 여기, 엄지 밖으로 이렇게 걸치거든.”

“아…이걸로 한 번 던져봐도 되겠습니까?”

“어어, 해봐해봐.”

이런 교육열 참 높은 아이 같으니라고.

빡―

“어떻습니까?”

“좋다. 이것도 꽤 좋아. 아까 건 이러엏게 떨어졌거든. 근데 지금 건 이러엏게 떨어진다.”

오른손에 공을 잡고 지호가 던진 방향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궤적의 차이를 그려줬다.

“어떤 게 더 좋습니까?”

“딱히 뭐가 더 좋다 이런 건 없어. 그냥 취향 차이 같은 거라서. 상황에 따라서 너가 편한대로 맞춰가면 돼.”

“그럼 그, 혹시 상황이라는 건 어떤 게 있습니까?”

“상황?”

아, 진짜 귀찮게 하네.

“애초에 변화구라는 거 자체의 의도가 뭔지를 먼저 생각해야 돼.”

“의도 말입니까?”

“그치. 변화구가 왜 있어, 직구만으론 잡기 힘드니까, 직구를 보조해주려고 나타난 게 변화구잖아. 그치?”

더 귀찮게 해줘.

“결국 변화구를 뭘 던지냐, 그 변화구가 어떤 변화구를 보이도록 만드냐, 이건 정말 게임에서 조합 짜듯이 생각하면 돼.”

“아, 조합….”

“단순 예시긴 한데. 정말로 단순 예시야, 단순히.”

“예.”

“내가 싱커를 던져. 그럼 이렇게 말려들어가잖아.”

대략 4시 방향으로.

“근데 체인지업이 이렇게 아래로 푹 꺼져버리면 너무 차이가 크니까 어떤 의미로 보면 타자가 안 속을 수도 있어.”

“그…대신 체인지업이 싱커랑 같은 방향으로 휜다면….”

“궤적이 아닌 속도의 차이로 속임수를 줄 수도 있겠지.”

“아아….”

이해했으려나.

“사실 내가 말해놓고도 이 논리가 말이 안 되는 게, 아무리 범타가 나왔다고 해도 타자가 이게 변화구구나! 를 알고 치면 변화구의 의미가 없어.”

“의도 자체가 속이려고 던지는 거니까 말입니까?”

“그치그치.”

이해했네.

“근데 너도 투수 오래 했으니까 알잖아. 최대한 기다렸다가 궤적 보고 치는 애들이 있는 거.”

“아…맞습니다.”

“그냥 인정하면 편해. 아, 얘네는 단순히 공의 변화만 가지곤 잡을 수가 없는 애들이구나. 인정하면 돼. 왠 줄 알아?”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걸 인정하면 그 다음 스텝을 밟을 명분이 생기거든.”

“다음 스텝이라고 하면 어떤, 발전 같은 겁니까?”

“그치. 아, 내가 이걸 했는데 이게 안 되네. 그럼 이걸 해보면 어떨까, 이런 시도, 실험. 이것도 정말 엄청난 이득이거든.”

“와….”

감탄하긴 이르단다, 뉴비야.

“그래서 어떤 방법이 있느냐, 그게 바로 속도 차이야.”

“완급 조절입니까?”

“맞아. 함 봐봐.”

오른손을 가지고 내가 던지는 싱커의 궤적을 보여줬다.

“이게 내 싱커 궤적이거든.”

“예.”

“그럼 이건 어떠냐.”

한 번 더, 싱커의 궤적을 보여줬다.

“…방금 전 싱커 아닙니까?”

“차이는?”

“모르겠습니다.”

“속도 차이. 속도.”

“아.”

“사람인 이상, 야구로 밥 먹고 살아온 사람인 이상 공의 궤적은 구분할 수 있어. 그걸 칠 수 있냐 없냐는 그 다음 얘기고.”

“예.”

“근데 똑같이, 사람인 이상 똑같은 궤적을 가지고 속도에 변화를 주면 구분을 할 수가 없어. 그 X 같은 박해진만 빼고 말이야.”

“예?”

크흠.

“…여튼 그런 시너지를 한 번 생각해보라는 거야. 내가 원래 던지는 구종이 어떤 구질을 갖고 있으니 새로 추가할 구종은 어떤 구질을 만들지, 뭐 그런 거.”

“아…예.”

* * *

아까 나눴던 대화에 대한 이해도가 나쁘지 않았는지,

“체인지업이요!”

“첸쟙!”

6회 초 공격 중, 지호는 불펜에서 체인지업을 열심히 던져보고 있었다.

이렇게 던져보고 저렇게 던져보고 말 같지도 않게 한 번 던져보고. 더불어 안 던지던 것들도 던져보고.

나름대로의 성과를 얻었는지, 혹은 선택을 했는지,

“한 번 더요!”

“아이, 첸쟙!”

불펜 투구 중 체인지업을 던지는 데에 있어 망설임이 없다.

“지호 한…세 개 정도만 하고 마무리하자.”

“예, 알겠습니다!”

슬슬 공격이 끝나간다. 코치님의 말씀처럼 지호는,

“라스트.”

“네, 커브!”

“하이!”

공 세 개를 던진 뒤 열린 불펜 문을 따라 마운드로 뛰어갔다.

불펜 난간에 기대 지호의 연습 투구를 지켜보고 있자니,

“체인지업 알려줬냐?”

코치님이 옆에 다가와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아, 예.”

“어떻디?”

“음…이해도는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애초에 체인지업에 대한 감이 좋더라구요. 이것저것 알려줬는데 바로바로 적용하는 거 보니까.”

“바로 쓸만한 거 같냐?”

“쪼끔만 가다듬으면?”

“조금만이라….”

코치님은 전광판을 흘끔 보신 뒤 저쪽에 있는 배터리 코치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셨다.

“무슨 말씀하고 오셨어요?”

“상대 타순도 그렇고, 점수차도 그렇고. 체인지업 사인 좀 많이 내달라고 전달 좀 부탁했다.”

한성 위너스의 타순은 6번타자 김홍주부터. 그리고 점수차는 3점차.

“연습 겸?”

“이럴 때 한 번 시켜봐야지. 그리고 너 안목도 한 번 볼 겸.”

“에이, 제 안목 같은 거 봐서 얻다 쓰….”

띠링-!

[기도]

- 김지호 투수가 체인지업 5구 이상 투구하며 1이닝 무실점하길 기원하세요. (0/1)

- 보상 - 변화구 +2

“…….”

“쓰, 뭐.”

“…쓸 데가 있겠죠. 예. 그럼요.”

분명 예전에도 지호랑 관련해서 비슷한 퀘스트가 나온 적이 있던 거 같은데.

슬슬 소재 고갈인가봐, 요즘 퀘스트 내용도 재탕해먹는 게 많아진다, 응?

“흐음….”

“너 안목 본다 그러니까 긴장되냐?”

“아뇨, 그런 건 아니고….”

좀 미안하게도, 딱히 긴장은 되지 않는다.

“긴장될 게 뭐 있나요. 지호 잘하는데.”

우리 지호는 알아서 잘하는 아이니까.

나이 먹은 상태에서 2년은 크게 감흥이 없을 수도 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사는 거 아닌가, 다.

하지만 20대 초반, 그것도 정말 이를 악물고 사는 그 나이대에게 2년이란 시간은 정말 성대하게 느껴질 시간대다.

2년.

그 2년 동안 우리 지호는 무엇을 했는가.

열심히 뛰고, 열심히 던지고, 열심히 받고, 열심히 공부하고.

뻥-!

지호는 오롯하게 본인의 힘으로 어려움을 극복해나갈 수 있는 한 명의 ‘투수’가 된 지 오래다.

“샤이, 잌!”

어디보자 어디보자, 대충 변화각이나 구속대를 보아하니…….

“저거 체인지업이냐?”

“맞는 거 같은데요?”

허, 진짜 쟤도 제정신 아니구나. 초장부터 체인지업을, 그것도 존 안에 쑤셔 넣을 생각을 하네.

“가끔 지호 보면서 드는 생각이 있거든.”

“어떤 거요?”

“옛날 너 보는 거 같아서.”

“음…지호가 좀 과감하게 들이대는 게 있긴 하죠.”

“아니, 그거 말고.”

“예?”

부웅―

“저렇게 생각없이 앞뒤 생각 안 하고 실행에 옮기는 거 보면 말야. 꼭 옛날 너 보는 거 같어.”

“…….”

음…칭찬이겠지. 칭찬일 거야.

따악―

“아, 떴다.”

코치님의 극찬을 듣기라도 한 건지, 지호는 착실하게 아웃 카운트를 늘려갔다.

본인이 내걸었던 공약처럼 체인지업에 대한 감각이 있는지,

부웅―

“스윙, 아웃!”

최형선에겐 삼진을 잡아내며 빠르게 2아웃을 조립시켰다.

“아, 그리고…점수차 여기서 더 안 벌어지면 너 8회에 올라간다. 대기만 하고 있어.”

“예예.”

“그리고 이따가 지호 내려오면 아마 쟤 그럴 거거든, 그 뭐야….”

지호가 아마 이닝 마치고 내려온다면…….

“던진 거 봤냐, 어땠냐, 피드백 좀 해달라, 뭐 그러겠죠.”

날 아주 귀찮게 할 거다.

“그래. 그거 말 좀 잘 해주고.”

“그럼요.”

그리고 난 그런 의미의 귀찮음을 아주 좋아한다.

띠링-!

[기도]

- 김지호 투수가 체인지업 5구 이상 투구하며 1이닝 무실점하길 기원하세요. (1/1)

- 보상

- 변화구 +2

제구 - 최상

구위 - 최상

체력 - 중

포심 - 100

커브 – 97+2=99

슬라 - 96+2=98

스플 - 98+2=100

체인 - 97+2=99

싱커 - 96+2=98

특성

해탈 - 어떤 타구, 상황에도 그러려니 합니다.

불편 - 상대하는 타자가 타석에서 투수를 보면 어딘가 불편하게 만듭니다.

편안 - 본인을 보는 이들이 편안함을 느낍니다.

집중 – 집중할 수 있는 대상의 수가 늘어납니다.

승부 - 이기고 싶을 때 포심이 +5 됩니다.

전염 - 본인의 감정이 전염됩니다.

“아, 끝났네.”

코치님과의 대화 때문에 잠깐 경기를 못 본 사이, 뜬금없이 들린 알림음에 고개를 돌리니 지호가 팀원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불펜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선배님, 혹시 보셨습니까.”

“아, 어. 봤지, 봤지.”

“혹시 따로 주실 말씀 같은 거 있으십니까.”

역시, 우리 학구열 높은 아이야, 우리 지호는.

“소감문이라고 해봐야 그냥 잘했다는 말밖에 못 하겠다. 대충 넘기려는 말이 아니라 진짜 좋아서.”

“아….”

“그것보단 너가 느낀 점을 말하는 게 더 빠를걸?”

“아, 그럼 저 아까….”

물꼬를 틔워주니 지호는 아이싱 해야하는 것도 잊어버리곤 얼른 공을 들고 와서 질문 공세를 시작했다.

“야야, 일단 아이싱이나 하고 와. 시간 많으니까.”

“아….”

“갔다왐마.”

“예….”

지호가 어깨랑 팔꿈치에 얼음을 둘둘 말아대는 동안 7회 초 공격이 빠르게 끝나고,

“선배님. 아까 이렇게 해보려 했는데 이게 잘 안 됐었습니다.”

그것보다 더욱 빠르게 돌아온 지호가 도착하자마자 공을 들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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