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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불펜생활-178화 (178/190)

178화. 금연

“생각보다 시원하네. 바람도 많이 불고….”

9월 중순에서 하순으로 넘어가는 그 어딘가.

압구정동 어딘가에 있는 벤치에 앉아 아이스 커피를 쪽쪽 빨며 민영 씨를 기다렸다.

너무 일찍 나왔나.

시계를 얼추 보니 1시 30분. 반차 쓰고 나온다는 민영 씨의 시간에 얼추 맞지 않을까, 싶었는데 약속했던 시간보다 너무 일찍 도착해버렸다.

“30분….”

무려 30분이나 일찍.

“…담배나 하나 피우고 올까.”

흘끔, 저 언저리에 있는 흡연 부스가 눈에 들어왔다.

“…….”

오늘 오전에 일어나서 딱 하나만 피웠는데.

아직 민영 씨 만나기까지 30분이나 남았는데.

30분이면 냄새 빠지고도 남을 시간인데.

“에이, 하나 정돈 괜찮지, 에이.”

내가 담배 피우는 부분에 대해 민영 씨는 썩 탐탁치는 않지만 그냥 이해해주는 정도의 포지션이다.

끊는 거 어려운 거 아니까 이해는 하지만…그래도 웬만하면 끊으셨으면 좋겠어요.

아니, 민영 씨가 담배 끊는 게 어려운 걸 어떻게 알지? 라는 생각으로 이어진 대화에선 장인어른 되실 분에 대한 이야기도 얼핏 들을 수 있었다.

민영 씨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태우기 시작해 지금까지 진득하게 태우고 계신다지.

치익―

정확하게 언제인지는 모르겠다만, 언젠가부터 우리나라에서 금연에 대한 이슈가 붕 떠오르기 시작했을 무렵 금연 시도를 하긴 하셨단다.

“스읍, 후우….”

한…세 시간 성공하셨다 그랬던 거 같은데.

그 모습을 본 예비 장모님께서도, 그리고 민영 씨도 그때부터 그냥 그러려니 한단다.

때문에 민영 씨도 내가 담배 피우는 부분에 대해 직접적으로 끊어라 마라까지 이야기하진 않는다.

못마땅하긴 하지만 그냥 놔두는 정도. 마치 예비 장인어른처럼.

츠으으으―

“흐음….”

커피 찌꺼기처럼 보이는 재떨이에 꽁초를 꽂아넣고 흡연부스에서 나와 다시 민영 씨를 기다리던 벤치에 앉았다.

킁킁―

“…생각보다 냄새 안 나는데?”

차에 가서 향수라도 한 번 더 뿌릴까, 싶었는데 시원하게 부는 바람 덕인지 딱히 담배 냄새가 느껴지진 않는다.

그래도 사람이라는 게 불안함을 느끼니, 괜히 팔을 살짝 벌려 바람에 저항할 표면적을 늘렸다.

“시원하네….”

확실히 이제 곧 가을이구나.

어느덧 남은 리그는 6경기. 그리고 원하 챌린저스의 남은 매직넘버는 고작…….

“한울 씨!”

“왁!”

아잇, 깜짝이야.

“아하핫, 왜 놀라요?”

“아…잠깐 딴생각하고 있었다가, 아, 진짜 깜짝 놀랐네.”

“많이 놀랐어요?”

“어우….”

남자친구를 깜짝 놀래킨 게 너무 좋아!

감정을 여과없이 내세운 민영 씨는 꺄르륵 웃으며 나에게 다가와,

“…윽!”

인상을 찌푸렸다.

“왜 그래요?”

“…….”

아니, 나를 노려봤다.

“한울 씨, 담배 피운 지 얼마 안 됐죠?”

어…….

“아, 아까 피웠는데요. 아까.”

“아까 언제요?”

“좀 많이 됐는…데.”

“담배 냄새가 이렇게 많이 나는데요?”

어지간히 심한지 코를 손가락으로 잡고 이야기하는 모습에,

킁킁―

내 몸에서 나는 냄새를 한번 맡아본다.

“…안 나는데.”

“나요!”

…진짜 안 나는데.

“원래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못 느껴요. 옛날에도요, 네? 아빠가…아니, 아버지가요, 네? 저 완전 어릴 때 뽀뽀하자고 막 들이대는데 담배 냄새 엄청 났어요. 담배 냄새 싫다고 막 싫다고 했는데 상처받았대요.”

“어….”

“근데 아버지는 담배 안 피웠다고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가장 직전에 피운 게 언제냐 물어보니까 한 시간 전에 피웠었대요.”

“음….”

“나요. 지금 한울 씨도 담배 냄새나요.”

“…….”

음, 완벽하게 할 말이 없는데.

“그, 일단 밥 먹으러 가요. 배고프지 않으세요?”

그러니까 은근슬쩍 말을 돌려본다.

“흐음….”

“…….”

그 의도를 눈치챘는지 나를 흘겨보는데 등에서 식은땀이 나는 것 같다.

“그래요, 일단 밥 먹으러 가요. 배고파요.”

그래도 금방 내가 알던 민영 씨로 돌아왔다. 한결 마음을 놓고 민영 씨의 손을 잡기 위해 왼손을 뻗었…….

“안 돼요.”

“네?”

“냄새나요!”

“…….”

…지만 거절당했다.

“어…그…예….”

“시간 한참 지날 때까진 손잡으면 안 돼요.”

세상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지만,

“안 돼요!”

“…예.”

표정이 워낙 단호하니 어쩔 수가 없다.

헝.

하는 수 없이 민영 씨와 손을 잡는 게 아니라 어깨를 붙이고 식당을 찾으러 돌아다니는 도중,

“…한울 씨, 있잖아요.”

“네?”

“이참에 담배 한 번 끊어보시는 게 어때요?”

그 어떤 퀘스트보다 어려운 퀘스트가 밑도 끝도 없이 등장했다.

“가, 갑자기요?”

“음….”

민영 씨는 근처의 흡연 부스를 한번 슬쩍 보더니,

“흡연하시는 분들한테 담배가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게 아니니까. 딱히 신경쓰지는 않았거든요. 냄새나는 건 그냥 제가 피하면 되니까.”

그 반대 방향으로 내 어깨를 슬쩍 밀었다.

“근데 문득 드는 생각이…아까 아버지 얘기했잖아요?”

“그…민영 씨 어릴 때 얘기요?”

“네.”

흡연 부스로부터 거리를 살짝 벌리자 보인 중식당에 같이 들어갔다.

뭘 먹을지 같이 고민하고, 같이 먹을 음식을 정하고, 마주 앉아 음식을 기다리고.

“한울 씨는 아이 갖고 싶어요?”

“어….”

입가로 가져가던 물잔이 시간 정지 물약을 쓴 것처럼 멈췄다.

“…예.”

시간 정지 물약의 효과가 끝났을 땐 나도 모르게 진실된 대답을 뱉은 후였다.

“아들이었으면 좋겠어요, 아니면 딸이었으면 좋겠어요?”

“어….”

어려운 질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걸 보니, 확실히 민영 씨는 요오오오망한 존재가 틀림없다.

“전에 한 번 생각해본 적 있긴 한데…민영 씨 닮은 딸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하긴 했어요.”

“그럼, 나중에. 우리가 아이를 언제 가질진 모르겠지만, 나중에. 저랑 똑닮은 딸아이가 한울 씨 보고 막, 아빠 담배 냄새나서 싫어! 그러면 어떨 것 같아요?”

아이가 직접 사리분별도 하며 재잘재잘 말까지 할 정도면 내가 은퇴하고 난 이후가 아닐까 싶은데.

그때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진 모르지만 대충 저녁에 집에 퇴근한 그림을 그려놓고…….

퇴근해서 문 열고 들어가자마자 아빠 왔다! 하고 소리치면 딸애가 와아아! 아빠와따아아!! 하면서 뛰쳐나오겠지.

그러면 그 뒤에서 민영 씨가 어…이름은 모르겠지만, 누구누구야 뛰면 안 돼! 하고 다그치긴 하지만 흐뭇하게 웃고 말야.

단란한 가정의 참모습이구나, 하며 충만한 마음에 다가온 딸아이를 품에 안으려고 하니 갑자기 딸애가,

윽! 아빠 담배 냄새나, 꺼져!

라고 소리친다면 과연 난 어떤 기분이 들까.

“…담배 냄새난다고, 꺼지라고, 딸애가 저한테 그러면 되게 슬프지 않을까요.”

“꺼, 꺼지라는 말까진 딱히 안 했는데….”

격렬한 반응에 당황했는지 민영 씨가 여린 몸을 눈에 띄게 움찔거렸다.

“그, 그리구요!”

그리곤 말을 돌려보기 위해,

“담배가 그, 왜! 정자 수도 막 떨어뜨린다고 하잖아요!”

“…….”

아무 말이나 꺼낸다.

“…그….”

뒤늦게나마 자기가 뭔 소릴 했는지 눈치챘나 보다.

“여튼, 그러니까요. 담배 끊는다는 게 엄청 힘든 일이라면서요.”

“하아…그쵸. 솔직히 힘들어요.”

담배 끊은 사람이랑은 상종도 하지 말라.

금연이라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또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사람이 얼마나 독한 사람인지를 알려주는 속담이 있다.

“알지만 나중을 생각해서라도, 지금부터라도, 어떻게 시도라도 한 번 해보시면 좋지 않을까요? 지금도 지금이지만 나중에 나이를 더 먹고 나서 더 힘들 수도 있잖아요, 그쵸?”

“…….”

민영 씨가 이야기하는 모든 단어 하나하나, 문자 하나하나가 맞는 말이라 어떻게 반박할 말이 없다.

“오늘 당장 못 끊으면 어디 큰일난다, 이런 것도 아니니까. 차분하게, 편안하게 시도해보면 좋지 않을까요?”

“시도는….”

하아…….

“…해볼게요.”

“좋아요, 잘 생각했어요!”

확실히, 나중에 아이가 생긴다면 민영 씨는 참 좋은 엄마가 될 것 같다.

스윽, 스윽―

잘했다고 칭찬해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게 참 기분이 좋네.

* * *

오전 느지막하게 일어나서 잠시 멍…때리다 침대에서 벗어난다. 비척거리며 의자에 앉아 주섬주섬 담배를 하나 입에 문다.

니코틴 파워 덕분에 잠시 또렷해진 정신을 붙잡고 화장실로 들어가 허물을 벗어제낀 뒤 물을 튼다.

쏴아아아- 하는 물을 맞으며 또렷했던 정신을 날렵하게 강화하면 그 날 하루의 준비 끝.

“…어우.”

그러나 오늘은 좀 다르다.

“하아아암….”

어제 민영 씨와 만나기 직전 피운 담배를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담배를 입에 댄 적이 없다.

“…몇 시냐….”

갈라진 목소리로 핸드폰의 시계를 확인하니 오전 10시.

지금까지 무려 20시간 넘게 금연을 지속 중인 것이다.

“아, 담배….”

피우면 안 된다고, 만지면 안 된다고, 쳐다봐서도 안 된다고 생각은 하지만 문득 책상 위에 널브러진 담배를 보니,

“…….”

손이 가려 한다.

“어우, 그냥 움직여야겠다.”

빠르게 고개를 훌훌 털어내고 침대에서 벗어났다.

정신을 바짝 차리기 위해 평소처럼 따뜻한 물이 아닌 차가운 쪽의 물을 틀어놓고 맞으니,

“악, X발!”

몸이 격렬하게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내가 감히 건방을 떨었구나, 내가 감히 오만을 떨었구나, 하며 샤워기 수전을 따뜻한 방향으로 슬쩍 돌렸다.

맨날맨날 행하던 루틴에서 벗어나서 그런가,

“어으….”

따뜻한 물을 맞고 있음에도 영 정신이 차려지지가 않는다.

멍청하게, 샤워기 앞에 서서 물이 쏟아져내리는 모습을 바라보길 잠시,

“…아.”

꽤나 긴 시간 동안 멍때리고 있었다는 사실에 혼자서 깜짝 놀란 후 얼른 샤워를 시작했다.

온몸에서 흐르는 물기를 수건으로 닦아내고, 머리도 탈탈탈 털어내고. 주섬주섬 옷들을 입고, 밥을 챙겨먹고. 핸드폰도 좀 보고, 필요한 물품들을 챙기고.

“하아….”

집 안에서 행동하는 모든 움직임엔 책상 위 담배를 향하는 시선이 첨가되어있었다.

안 돼.

무려 만으로 하루 이상을 버텨냈는데 여기서 허무하게 탑을 무너뜨릴 순 없다.

미련을 버리고 얼른 집 밖을 나섰다.

삑―

차에 타서 익숙하게 운전하길 잠시,

“아, 어디 갔지.”

신호에 걸린 사이 나도 모르게 센터페시아에 있을 담배를 찾고 있었다.

“가는 길에 잠깐 편의점 좀 들….”

아.

“미친, 안 돼. 정신차려, 이 새끼야.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그러고 있냐, 정신차려, 제발 좀, 좀 정신 좀 이렇게 좀 해 봐 좀….”

집에서 잠실구장으로 향하기까지 약 30분.

“오, 한울 씨. 오랜만입니다.”

“…예.”

“무슨 일 있어요?”

그 사이 꽤나 초췌해졌는지, 구장에 도착하자마자 만난 영진 씨가 날 보자마자 걱정부터 한 마디 건넨다.

“아뇨, 딱히 그런 건 아니고….”

“그런 것치곤 되게 피곤해 보이는데요?”

상태가 그렇게 안 좋아 보이나.

“담고?”

“아, 가시….”

안 돼.

“아, 아뇨. 전 괜찮아요.”

“괜찮은 게 어딨어요, 한 대 태우면 괜찮아져요.”

“아니, 그게 아니라 그…저 금연 시작해가지고.”

학연, 지연, 혈연, 그중 제일은 흡연이리라.

“…예?”

흡연으로 맺어진 두 남자는 급속하게 거리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에이, 한울 씨 또 이상한 거짓말한다.”

“아니, 진짜로. 진짜로 끊어보려고요.”

흡연자 특, 옆에서 금연한다 그러면,

“요즘엔 그런 농담 안 통해요.”

도와주긴 커녕 헛소리로 치부한다.

“진짜로. 진짜로. 진짜 끊으려고.”

그 업보가 돌아온 건가.

“뭔 일 있었어요? 갑자기 웬 금연이래.”

“그게 그…여자친구랑 담배 얘기가 나와가지고….”

“여자친구분이 담배 끊으래요?”

“뭐 안 끊으면 헤어질 거라느니, 무조건 끊으라느니, 그런 식으로 얘기한 건 아니고.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조곤조곤 얘기하니까 더 무서운 거.”

“아….”

“한울 씨, 이러이러하고 저러저러하니까 이번 기회에 한 번 금연 시도 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아이고….”

“…예. 그렇게 됐습니다.”

“그래서 한울 씨는 알겠다 했고?”

“어쩌다보니까 그렇게 됐네요.”

미래의 딸아이까지 나온 마당에 싫어요! 하고 거절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하아…그럼 난 앞으로 누구랑 같이 담배 태우나.”

“…쏘리.”

“아이, 뭘 미안해요. 끊는 게 맞지.”

“저기, 사모님은 뭐라 안 해요?”

“집사람이요? 같이 태우는데, 뭐.”

와우.

“아쉬워도 어쩔 수 없죠. 이왕 시작했으니까 한 번 제대로 끊어봐요, 이참에. 나도 앞으로 한울 씨 앞에서 담배 얘긴 안 꺼낼 테니까.”

가장 가까운 전우를 잃었음에도 영진 씨는 환하게 웃으며 어깨를 두드려줬다.

“그…먼저 들어가 볼게요.”

“예. 오늘도 힘내십쇼.”

“예….”

영진 씨는 웃으며 손을 흔들곤 흡연실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하아.”

오늘 하루가 대단히 힘들 것 같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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