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화. 극-복
승주가 어딜 가든 난 내 할 일을 해야했기에,
퍼엉-!
“아이이, 뽈 좋아아악!!”
짝짝짝―
“와…선배님 볼 진짜….”
“한울아, 너무 힘 들어가진 말고.”
불펜에서 열심히 몸을 풀고 있었다.
건영이의 괴성.
후배들의 감탄.
코치님의 격려.
플레이트 뒤에 짝다리를 짚고 서서 불펜의 전경을 내려다보니 이 모든 게,
“후, 직구 하나 더.”
“직구! 에이!”
나를 위해 맞춰진 팀처럼 느껴졌다.
퍼엉-!
“굿, 굿-! 이대로만, 지금 너무 좋아요!”
정신없이 몸을 풀다보니 8회 말이 진행 중이라는 것도, 그 8회 말이 슬슬 마무리되어간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 했다.
“지금 치성이 볼 몇 개예요?”
“89개.”
7.2이닝 동안 89개 투구수.
“하필 오늘 긁히는 날이냐.”
맞춰잡는 투구의 진수?
뻥-!
“스라이이이, 웃!”
아니, 그냥 잘던진다.
볼빨 좋은 투수가 굳이 맞춰잡는 투구를 진행할 필요가 없다는 걸 다른 누구도 아닌 지금 선발투수가 몸소 보여주고 있다.
그 투수랑 상대하는 게 우리 팀이라는 게 좀 문제긴 한데,
Your love is a wildcard, Folding is the hard part―
너네도 이제 그렇게 될 거다.
와아아악-!!
김한울! 김한울! 김한울!
비트에 맞춰 춤을 추던 치어리더들의 동작이 끝남과 동시에 전광판은 옛날에 찍어두었던 내 얼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 모습이 먼지처럼 사라진 뒷 배경에 ‘WONHA’ 라는 글자가 보인 뒤 오른손 하나가 나타나 로진백을 던진다.
I don't know if you'll hold me, Or leave me here feelin’ lonely―
전광판 안의 나는 어색함이 느껴지는 투구폼을 한 번 시연하곤 화면 오른쪽의 ‘4 김한울’ 마크를 본 뒤 다시 정면을 쳐다본다.
그렇게 어설픈 투구 시연이 끝난 뒤, 프로필 사진으로 넘어와 김한울 4, 그 아래 내 약력들이 간단하게 나타난다.
“…….”
마운드까지 걸어가며 전광판에서 시선을 조금도 떼지 않았다.
“…멋있네.”
무미건조하게 전광판의 등장영상을 판결내릴 즘엔 적당하게 마운드 근처에 도착할 무렵이었다.
플레이트 앞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야구공을 집어 묻은 흙을 살살 털어준 뒤 로진백을 거칠게 탈탈 묻혔다.
참 신기해.
구장 밖에 있으면, 경기 중이라도, 덕아웃에 있을 때, 심지어는 등판하고 덕아웃으로 돌아갈 때도.
모든 순간순간 난 알고 있다. 아, 나도 미친놈이구나, 제정신으로 사는 새끼는 아니구나, 하는 거.
근데 신기하지.
“윽!”
퍼엉-!
마운드에만 올라오면.
마운드에서 공만 잡으면.
마운드에서 포수만 보면.
“흡!”
퍼엉-!
정말 딴사람이 된 것 같아. 내가 봐도.
“후!”
0 대 0, 균형의 수호자가 아직 자리하고 있는 경기 흐름에서 내가 등판한 이유는 우리 팬도 알고, 중계진도 알 거고, 심지어 상대 팀도 알 거다.
오늘, 무조건 잡는다.
무조건 오늘 이겨서,
“끄윽!”
퍼엉-!
1위 잡는다.
“플레이!”
먼저 상대할 타자는 4번타자 남동근.
“후우….”
그러고보니 모든 스탯은 올백으로 맞춰뒀으니 이제 퀘스트를 볼 일은 없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거진 4년 동안 함께 부대끼면서 살았던 퀘스트인데, 이제 볼 일이 없다 생각하고 밀려든 아쉬움은 생각보다 컸다.
또 동시에,
“끅!”
퍼엉-!
“스라아아잌-!”
이제 진짜 내 멋대로 던질 수 있겠구나, 이제부터가 진정한 시험의 무대구나, 라는 생각 또한 들었다.
왜?
퀘스트 보상을 위해 내가 맞춰야만 했던 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그 때문에 ‘아 이거 해야돼서 이거 던지다가 맞았어요’ 라는 변명을 할 수 없게 됐다.
아니,
“윽!”
부웅-!
“스윙-.”
애초에 변명 같은 걸 할 생각도 없었긴 했지만서도.
158km, 156km 직구 두 개로 카운트 두 개를 빠르게 잡아놓고 공을 만지작거리며 1루측 관중석을 살폈다.
삼진! 짝짝짝, 삼진! 짝짝짝, 삼진! 짝짝짝…….
응원단장님의 구호에 따라 팬들이 남동근의 기록지를 위조하려 들고 있었다.
위조?
“끄악!”
부웅-!
“스윙, 아웃!”
아니, 팩트.
스윙 한 번 시원하게 돌린 후 덕아웃으로 돌아가는 남동근 옆으로,
5번타자, 우익수 명승주.
다음타자 명승주가 걸어왔다.
근데 솔직히 이쯤되면 타자들도 느끼는 점이 하나 있지 않을까.
“읍!”
부웅-!
“스윙-!”
정말로, 다른 때면 모를까 올해의 김한울은, 오늘의 김한울은 나 따위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투수라는 거.
그런데도 나를 상대하기 위해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타석에 들어서는 모습을 보면 경외감마저 느껴진다.
왜?
딱―
“파울-.”
정말 보잘것없고 아무것도 아니었던 시절의 내가 마운드에 설 때면, 그 누구보다 내가 그런 감정을 느꼈거든.
아니, 더 심했지.
정말로, 다른 때면 모를까 올해의 저 타자는, 오늘의 저 타자는 나 따위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타자구나.
매년, 매월, 매주, 매일, 매 타석, 매구마다 느꼈다.
그런데도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마운드에 섰다.
그래놓고 마운드에서 내려오면, 집에 갈 때면, 잠들고 꿈을 꿀 때면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했다.
그 현실은 나에게 있어 트라우마와 같았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정말 보잘것없는 내가 계속 여기에 서있어도 되는 걸까.
“으윽!”
부웅-!
“스윙, 아웃!”
결론부터 말하면 그래선 안 됐다. 어딜 감히 투수 같지도 않은 새끼가 마운드를 지키고 있으려 그래.
“…후.”
하지만 또 다른 열린 결말을 이야기해보자면, 그래선 안 됐던 일을 강행했던 덕에 지금의 내가 있고, 또 지금의 원하 챌린저스가 있다.
6번타자, 2루수 조상욱.
트라우마?
극복해냈다.
물론 오롯하게 나만의 노력이라 자랑할 수는 없다. 사람 양심이 있지, 이 시스템과 퀘스트 덕분이라는 걸 절대 잊지 않는다. 아니, 잊지 못 한다.
근데,
“윽!”
인생은 야구 같다면서. 인생은 때론 소설보다 더하다면서.
뻐엉―
“스라이이잌-!”
그거, 나도 조금만 느껴보면 안 될까.
나도 그만큼 절실했고, 이를 악물었고, 많이 울었고, 그 이상으로 처절했어.
둥-, 둥-, 둥, 둥, 둥둥둥둥, 두두두둥―
얼른 잡아줘. 얼른 우리에게 승리를 보여줘. 얼른 경기를, 이닝을, 타자를 끝내줘.
팬들의 염원이 태고를 타고 마운드까지 전해져내려왔다.
그들의 염원을 이뤄주기 위해 그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포수에 집중했다.
숨을 한 번 쉬고, 침을 한 번 삼키고, 고개를 한 번 젓고,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읏!”
공을 한 번 던지고.
따악-!
조상욱이 때려낸 타구가 내 시야 높은 곳을 향해 솟구쳐올랐다.
타자는 일말의 희망을 품이 지닌 채 뛰기 시작했고 포수는 설마, 혹시나 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퍼펙트 히트의 타격음을 듣고도 유일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 있다면 막상 공을 던진 나.
천천히,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잃지 않고 천천히 몸을 뒤로 돌리니 중견수가 한 걸음 한 걸음 담장을 향해 가까워지고 있었다.
좌익수에게 본인의 유니폼 앞면을 보인 채, 조금씩 옆 걸음을 걷던 중견수는 제 오른손에 담장이 닿자,
탁!
왼손을 뻗어 높은 곳에서 낙하하는 타구를 잡아냈다.
“아, 형 나이쓰!”
“굿 볼이요!”
“짜란다짜란다, 한울이형 짜란다!”
세 번째 아웃 카운트를 확인하고 천천히 덕아웃을 향해 돌아갔다.
바로 덕아웃에 들어가지 않고 덕아웃 입구에 서서 나보다 늦는 야수들을 기다려주었다.
우익수 성현이와 글러브를 부딪히고, 3루수 성훈이형과 손뼉을 마주치고, 좌익수 훈이와 등을 맞대고,
“진형이, 수비 좋네!”
“형은 볼 좋아요! 지려요!”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아낸 진형이와는 앞서 실행한 세리머니를 모두 리사이틀하고.
모든 야수들을 먼저 덕아웃으로 돌려보낸 뒤 가장 늦게 덕아웃 안으로 들어갔다.
“점수 못 나면 혹시 10회도 올라가나요?”
“10회…는 일단 석민이 올라갈 거야.”
“넵.”
투수 김한울의 임무는 여기서 끝.
그러나,
3번타자, 박!! 헌!! 희!!
야구선수 김한울, 원하 챌린저스 소속 김한울의 임무가 아직 남아있다.
“헌희 가자아아악!!”
소속 팀의 승리를 아낌없이 지원하고 기원하고 발원하는 것.
9회 말까지 동성 호넷츠의 마운드는 임치성이 계속해서 지키고 있었다.
좀 내려오지.
속으로 그렇게 생각은 한다만,
퍼엉-!
“스라이이잌-!”
152km짜리 직구가 바깥쪽 짜스트하게 꽂히는 걸 보니 이해는 됐다.
초구를 본 뒤 헌희는 헬멧을 고쳐쓰며 다음 투구에 대한 준비를 마치고,
따악-!
망설임없이 초구와 비슷한 공에 배트를 방출했다.
“갔…!”
“…아아악!”
“아오….”
마치 내 마지막 상대였던 조상욱의 타구가 생각나는 것처럼, 헌희의 타구도 중견수가 담장 앞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잡아냈다.
이럴 땐 홈 구장이 잠실인 게 참 다행스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막 그래.
4번타자, 중견수 박!! 진!! 형!!
또한 호수비 이후 좋은 타격이 나온다는 야구의 격언을 이런 상황에 적용시켜도 되는지 안 되는지에 대한 기준도 애매하고 막 그래.
왜?
투수 입장에선 야수들이 잡아주는 모든 아웃 카운트가 다 호수비거든.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점프 캐치도, 평범한 땅볼 아웃도, 타자의 역을 찌른 루킹 삼진도 모두 다.
하지만 애매하다는 건 바꿔 말해 내 멋대로 기준을 들이밀어도 괜찮다는 소리와 같다.
진형이는 아웃 카운트를 잡았다.
내 입장에선 진형이의 수비는 호수비다.
그러니까 진형이는 좋은 타구를 만들 거다.
개연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삼단논법을 떠올린 건 나 뿐만이 아니었다.
“진형이 가자아악!!”
“보여줘, 보여줘!”
“벌크업 보여줘!!”
덕아웃 펜스를 퉁퉁퉁 쳐대며 소리치는 헌희.
수줍지만 강하게 목소리를 내는 성문이.
환하게 웃으며 미친놈처럼 외치는 훈이.
“진형이 보여줘!!”
나도 질 수 없지.
헌희 처럼 펜트를 퉁퉁 때리며 진형이의 좋은 타격을 기원했다.
딱-!
내 기도는, 우리 팀원들의 기원은, 원하 챌린저스 팬들의 발원은 그대로 적중해,
빡!
“아웃-!”
진형이의 라이너 타구를 잡은 상대 3루수 본인도 본인의 호수비가 믿기지 않는지 뭐 호오오오! 같은 요상한 소릴 내며 같은 팀 2루수에게 볼을 던졌다.
아, 저렇게 소리치면서 좋아하면 미친놈처럼 보이는구나, 같은 생각보단,
“야씨, 저거 우리가 하던 건데.”
“표절 시비 좀 내볼까요?”
저거 우리 건데, 표절인데, 같은 실없는 소리를 옆에 있던 명진이와 나눴다.
“냅둬, 원조는 우리인 거 하늘이 알고 땅이 알….”
대타, 윤!! 승!! 주!!
“…엉?”
다음으로 등장하는 타자의 이름을 듣기 전까지만.
“…쟤가 왜….”
놀란 건 나 뿐만이 아니었는지 내 옆에 있던 명진이도, 상대팀 덕아웃도, 심지어는 상대 투수도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타임-.”
이 상황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포수가 잠시 타임을 끊고 마운드로 올라가 임치성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포수가 말하는 중간중간 무의식적으로 승주를 응시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지금 이 대타 작전에 대한 의도를 파악하려는 듯 했다.
무슨 생각일까…하며 감독님이 계신 곳을 흘끔 쳐다봤지만 언제나와 같은 무표정으로 그라운드를 응시할 뿐이다.
그럼 쟤는 뭔 생각으로 나갔을까…하며 타석을 보고 있자니,
“자기가 나가겠다 했다던데?”
“예?”
옆에서 기범이가 설명을 도왔다.
“아까 너랑 같이 불펜에 있었잖아.”
“아…어.”
“한 7회인가, 8회인가, 그때 나와서 감독님한테 가던데.”
“가서 뭐라 그랬는데.”
“뭐라 그랬는지는 못 들어서 모르는데….”
말을 잇던 기범이가 흘끔 승주를 쳐다봤다.
“…나와서 승주가 얘기하기로, 임치성 내려가기 전에 대타 한 번 내달라고 했대.”
“누굴.”
“누구긴. 지 얘기지.”
“…왜?”
“몰라.”
“…….”
짐작되는 이유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아마 아까 불펜에서 나눴던 이야기가 그 발로겠지.
“와…미친새낀가, 진짜.”
“미친새끼 맞잖아.”
“아니, 이건….”
트롤?
아니, 그렇게까지 생각하진 않는다.
애초에 이기고 있는 경기도 아니고, 점마가 아무리 미친놈처럼 다녀도 그 방향을 소속 팀으로 돌리는 녀석은 아니니까.
“…할 수 있나.”
오히려 대단함, 경외심 같은 걸 느끼면 느꼈지.
“아까 다른 말 한 건 없고?”
“별다른 말은 없었긴 했는데….”
퍼엉-!
“보올-.”
타자도 예전의 일을 기억하고 있는지 바깥쪽 먼 곳에 직구를 하나 던지며 한 번 간을 봤다.
“비참해지기 싫대.”
“뭘 비참해져.”
“어차피 언젠간 극복해야 될 문제 아니냐, 뭐 그런 말 하던데. 아까 쟤랑 무슨 얘기 했어?”
무모하다 얘길 해야할지, 대단하다 얘길 해야할지.
한참 먼 곳에 직구가 들어갔음에도 승주를 오른발을 홈플레이트 쪽으로 내밀긴 커녕 홈플레이트에서 멀어지게 했다.
“딱히…대단한 얘기 했던 건 아닌데. 그냥 홀드 상황 아닌데 불펜 올라가는 건 어떤 기분이냐 물어보더라고.”
“누가. 승주가?”
“어.”
퍼엉-!
“스라이이잌-!”
이번엔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가긴 했지만 승주 입장에선 여전히 먼 곳이다. 그럼에도 다시 한 번, 승주는 공이 도착하기도 전에 오른발을 뒤로 뺐다.
“뭐라 그랬는데, 넌?”
“그냥…별 말 안 했는데.”
아까 승주와 나눴던 이야기의 편린을 끌어와본다.
“…내가 상황이 안 돼서 경기에 못 나가는 거면 모를까, 홀드라는 그 상징 하나 때문에 경기에 못 나간다 하면 비참하지 않겠냐. 그런 얘기했는데.”
그 편린은,
띡!
승주에게 매우 크게 느껴졌던 것 같다.
“파울-!”
짝짝짝짝-!
“아, 승주 나뱃나뱃!”
“배팅 좋아, 타이밍 좋아!”
“스윙 좋아요, 볼 봤어, 봤다!!”
승주와 임치성의 일을 알고 있는 팀원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승주를 격려했다.
박수를 치거나, 입 앞에 손을 모아 소리치거나, 그냥 미친놈처럼 소릴 치거나.
파울 타구가 날아갔던 심판의 왼쪽 뒤를 흘끔 쳐다본 승주는 다시 한 번 원래의 루틴을 취했다.
배트를 휘적휘적 돌리고, 그립을 잡아 움찔거리며 제 왼쪽 어깨에 올려두고, 오른발을 까딱거리며 박자를 맞추고.
“승주가 아마 그렇게 받아들인 거 아닐까.”
“뭘?”
“방금 한울이 너가 비참 뭐 어쩌고 했던 거.”
“…그걸 어떻게?”
“직구에 머리 맞는 게 진짜 엄청난 일이잖아. 정신적으론 그것 때문에 은퇴하냐 마냐 생각도 할만한 일인데.”
“당연하지.”
“근데 또 그렇지 않냐. 겉으로 보면 진짜 아무것도 아닌 일인 거.”
“그게 왜 아무것도 아닌 일이야?”
“기록지 상으론 그냥 몸 맞는 공일 뿐이잖아.”
그건 좀…….
“몸에 맞든 말든, 경기는 진행될 거고. 머리가 몸에 붙어있으니 몸 맞는 공이고. 맞았으니 주자로 나가야 되고.”
“머리 맞는 게 그렇게 작은….”
“그러니까, 겉으로 보면.”
틱―
“파울-.”
다시 한 번, 승주는 어떻게든 기어코 파울을 만들어냈다.
“겉으로 보면 그냥 몸 맞는 공이라는 상징성 하나일 뿐이잖아. 기록이니까.”
“그래서, 옛날에 그런 일 때문에 경기에 못 나가면 비참한 거다?”
“그런 거 같은데. 내가 아는 저 새끼 성격엔.”
“…….”
기범이에게서 시선을 치우고 잠시 타석에서 나와 배트를 돌려보는 승주를 직시했다.
“…미친새끼.”
윤승주! 윤승주! 윤승주!
과거의 사건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금 덕아웃에선 무슨 말들이 오가는지도 모르면서 관중석에선 승주의 이름을 연호했다.
클러치 히터.
해줘야 할 때 정말로 해주는 타자.
중요한 상황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타자.
각자가 표방하는 승주의 의미는 다르겠지만, 결국 그 의미가 관통하는 내용은 하나로 집결됐다.
따악-!
“와악!”
“갔다!”
“어어억!!”
“승주야아아아!!”
하나 쳐주기를.
이 중요한 순간에서 하나 때려서,
“와아아악-!!”
“승주야아악!!”
“이리와, 뛰어와, 빨리 뛰어 이 새끼야!!”
와아아아-!!
윤승주!! 윤승주!! 윤승주!! 윤승주!!
원하 챌린저스의 승리를, 우승을 확정지어 주기를.
“X바아아아아알!!”
우중간 담장을 넘긴 끝내기 홈런 타자는 모든 베이스를 전력질주하며 제 감정을 욕지거리에 담아 강하게 내질렀다.
무슨 100m 달리기 하는 것마냥 1루를 찍고, 2루를 밟고, 3루를 돌아 홈으로 달려드는 승주의 눈깔에,
와아아악, 뒤져라 이 술쟁이 새끼야!
윤승주 이 새끼야!!
미친 새끼, 개새끼, 소새끼, 말새끼야!!
모든 것을 극복해낸 본인을 공손히 맞이하는 팀원들의 모습이 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