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똑같지
[김형철의 돌직구 - 평균자책점 ‘0’점, 김한울의 경고는 올해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길고 길었던 2020시즌이 끝났다.
물론 아직 포스트시즌이 남아있긴 하지만, 오늘은 그보다 조금 더 대중적인 정규시즌에 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2020시즌은 나름의 기록들이 쏟아져내린 한 해라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대표적으로 이야기해볼만한 선수라면 상수 타이거즈의 박해진.
박해진은 이번 시즌 무려 59개의 홈런을 쏘아올리며 KBO리그 역대 한 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을 세웠다. 종전 자신의 기록을 또 한 번 뛰어넘은 대단한 기록.
동성 호넷츠의 이현진 또한 나름의 기록을 세웠다. 최초, 혹은 최고와는 거리가 멀지만 몇 년 만에 20승 투수의 왕관을 썼으니 나름 성공적인 기록이 아닐까.
KBO리그에서 수비를 담당하는 원하 챌린저스, 그 중에서 유격수 포지션을 맡고 있는 이명진은 2020시즌 실책 0, 수비율 100%의 완벽한 모습을 보여줬다.
성운 호크스는 길고 긴 재활을 끝내고 돌아왔지만 타격감을 빼먹고 온 이수준에게 대타의 자리를 전담했고, 대타 출장 시 22타수 22안타라는 기대 이상의 소득을 올렸다.
글이 길어질까봐 모두 소개할 순 없지만 이 외에도 어마어마한 기록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10년 연속 180안타 이상을 쳐온 KP 스타즈의 김기윤, 통산 150승 고지를 넘긴 비스코 러너즈의 임호택, 이번 시즌에만 만루 홈런 4개를 때려낸 가야 퍼펙터스의 이원웅 등등.
많다. 정말 많다.
그만큼 KBO리그의 수준이 올라갔고, 또 그만큼 보는 야구팬들의 눈 또한 즐거웠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대단한 기록들은 모두 단 한 명 앞에 무릎을 꿇고 만다.
54경기 62이닝 4승 무패 40홀드 9세이브 91삼진 8볼넷.
그리고 가장 중요한 기록, 이번 시즌 평균자책점 ‘0’.
[9월 27일, 시즌 마지막 경기에 등판하는 김한울과 그 뒤로 보이는 전광판. 마지막 경기 직전까지의 시즌 기록이 보인다.]
필자는 이번 시즌 김한울에 대한 칼럼을 여러번 게시한 적이 있다.
한 번은 김한울의 정교한 제구력에 대해, 한 번은 김한울의 투구폼에 대해, 한 번은 김한울의 볼배합에 대해, 그리고 가장 최근엔 김한울의 변화구에 대해.
솔직히 말해서, 김한울이 이번 시즌 일을 낼 거라 예상은 어느 정도 했었다. 근데 이 정도의 큰 일을 낼 거라곤 조금도 예상하지 못 했다.
평균자책점 0점이라…….
혹자는 김한울이 불펜투수라는 점, 혹은 거의 8회에만 고정적으로 나왔다는 점을 들어 평가 절하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필자가 묻고 싶다. 그래서 지금까지 김한울과 조금이나마 근접했던 투수가 있는지.
인정할 건 인정하자. 2020시즌 김한울은 분명 전설의 한 줄이 아닌 한 페이지를 대서특필해도 될 투수가 맞다.
그렇다면 우리는 김한울이 어떻게 이런 위대한 투수로 추앙받는지에 대해 알아 볼 필요가 있다.
당연히 구속, 변화구, 제구, 주자 견제, 수비, 볼배합 등등, 이런 요소들 덕일테지만 이 부분은 다들 잘 알테고.
[다음 타자를 기다리며 로진백을 만지작거리는 김한울의 모습]
선출의 입장에서, 그것도 프로 선출의 입장에서, 게다가 나름 프로야구판을 오래 굴렀던 입장에서 보자면 김한울은 정말 특이한 선수가 맞다.
가장 특이한 점을 꼽아보자면 그의 멘탈이 아닐까.
2016시즌까지 김한울은 김한울 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말 ‘프로’ 이름을 달고 있는 게 부끄러운 투수 중 한 명에 불과했다.
정말 많이 얻어맞았고 정말 많이 혼났다. 또 정말 많이 쓰러졌으며 또 정말 많이 일어났다.
[6월 12일, 선두타자에게 3루타를 허용한 뒤 물끄러미 외야를 바라보는 김한울.]
그 과정에서 김한울이 어떤 방향으로 본인의 멘탈을 정리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안타를 맞아도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면 일견 승부욕이라는 게 있나, 의심이 되기도 한다.
또 그래놓고 삼진으로 이닝을 끝내면 외치는 김한울 특유의 기합은 그 누구보다 승부욕이 강하구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쁜 건 빨리 잊어버리고, 좋은 건 최대한 길게 가져가는 것.
말로는 쉽지만 막상 실행하기엔 모두가 어려워하는 그것을 김한울은 아주 숨 쉬듯, 아주 당연하게 실행한다.
그런 의미에서, 타자 출신이었던 필자는 현역 타자들에게 한 가지 경고를 하고 싶다.
[6월 12일, 선두타자에게 3루타를 허용한 뒤 다음 세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처리하고 포효하는 김한울.]
김한울의 시즌 평균자책점 0점이라는 이 기록, 단순히 올해로 끝날 기록은 아닌 것 같다.
* * *
똑똑―
배달이요!
“아, 왔다.”
낯선 남자의 목소리에 이끌려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문으로 향했다.
“맛있게 드세요.”
“예, 조심히 가세요.”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안전하게 배송해주신 배달 기사님께 간단히 인사한 뒤 빨빨빨 뛰어 컴퓨터 앞에 앉았다.
묶여있는 비닐을 힘으로 뜯어내고 상자를 억압하던 고무줄까지 벗겨내면,
“아, 한다.”
야구 관람 준비 끝.
10월 3일, 동성 호넷츠와 성운 호크스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을 시작으로 2020시즌 포스트시즌이 개막됐다.
이 두 팀의 이름을 나열하는 것만으로 2020시즌 상위 네 팀의 명단은 유추하기가 쉬울 거다.
그래, 작년과 마찬가지로 원하, 상수, 성운, 동성, 이렇게 네 팀.
그 아래 팀들의 순위는 나름대로 많은 변동이 오갔지만 그건 그쪽 동네 얘기고, 우리 동네는 완전히 작년과 같았다.
“우석이가 아주 이를 갈았던데, 어떻게 되려나.”
작년엔 성운이 홈 어드밴티지를 가져가긴 했지만 포스트시즌에 대한 경험에서 밀리며 동성에게 플레이오프 진출을 헌납했다.
작년과 똑같은 무대, 작년과 똑같은 성적, 작년과 똑같은 순서.
다만 다른 게 있다면,
“오….”
성운의 저력이라 할 수 있는 부분.
성운의 1선발, 추봉기가 첫 스타트를 깔끔하게 막아내더니 1회 말 공격부터 방망이가 빵빵 터지기 시작했다.
이런 성운과 상대하는 동성의 선발이 누구더냐,
“현진이가 어디 안 좋나. 왜 저렇게 털린대.”
다른 누구도 아닌 올해 21승을 거둔 국가대표 1선발, 현진이가 아니던가.
그런 녀석이 이닝 시작하자마자 5점을 내주는 모습은 아주 생경했다. 어디 문제라도 있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
그래도 시간이 지나며 제 감을 되찾았는지 2회부터 6회까진 5이닝 연속 세 타자로 끊어갔지만…….
“아, 이거 갔다.”
이미 너무 늦은 듯 하다.
1회부터 얻어낸 5점의 소중함을 그 누구보다 깊게 체감하고 있을 성운은 완벽하게 동성의 타선을 틀어막으며 첫 시리즈 스코어를 가져갔다.
이번 1차전의 MVP를 꼽아보자면 당연히,
[우석 - 봤음?]
5타석 3타수 3안타 2홈런 2볼넷의 우석이.
[아 치킨 먹느라 못 봄 ㅈㅅ]
[우석 - 개새끼야]
이를 갈았다는 게 뭔지 제대로 보여준 한 경기가 아니었나 싶다.
근데 우석아, 이제 고작 한 경기밖에 안 했는데 벌써부터 그러면 어떡하냐…….
“…와, 또 갔어.”
…라기엔 다음 날,
[우석 - 봤음?]
[ㅈㅅ 치킨 무 국물 흘려서 닦느라 못 봤음]
[우석 - 개새끼야]
4타수 3안타 1홈런으로 다시 한 번 저력을 보이며 홈에서 먼저 치른 시리즈를 모두 챙겨갔다.
1차전과 2차전, 모두 MVP를 싹 쓸어간 우석이를 앞으로 내세워서 앞으로 한 경기만 성운이 이긴다면 우석이가 시리즈 MVP까지 받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따악-!
“…와, 쟤 뭐냐.”
그리고 그 생각은 현실이 되었다.
하루 쉬고 다음 날, 동성의 홈구장으로 옮겨와 치른 3차전에서 우석이는 5타석 2타수 1안타 1홈런에 볼넷 두 개와 몸에 맞는 공 하나를 기록했다.
세 경기 동안 우석이가 기록했던 내용을 가볍게 읊어보자면 타율 0.777, 출루율 0.867에 홈런 네 개.
그리고 시리즈 MVP를 우석이가 받았다는 점에서 3차전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갔는지도 간단하게 유추가 가능하겠지.
[우석 - 봤냐?]
[치킨 부스러기 줍느라 못 봤음 ㅈㅅ]
[우석 - 개새끼야]
줄곧 포스트시즌의 한 자리를 도맡아오던 동성이 준플레이오프에서 그냥 광탈을 해버리는 이변이 발생한 것이다.
성운이 많이 세지긴 했는데, 그래도 동성한테는 안 되지 않을까…같은 생각으로 세 경기를 모두 지켜보던 사람들은 다들 놀랐을 거다.
우석이한텐 미안하지만,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었기에 꽤나 놀란 상태고.
때문에,
[냉정하게 얘기해서, 저희가 이 자리까지 올라올 거라 생각한 분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 때 우석이가 한 말은 더욱 가슴 깊숙하게 와닿았다.
지금 우석이가 느끼는 저 감정이라는 게, 나도 참 뼈저리게 느낀 감정이었거든.
분명 강팀인데, 강팀으로 성장을 했는데 왜 사람들을 우릴 보며 ‘와, 쟤네가 저기에 있어?’ 같은 시선을 받아야 하는 걸까.
[그래도 성운이 강팀이라는 건 이미 확실히 증명된 사실이고, 저흰 그것보다 더 강력하게 주장할 자신감과 명분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맞다. 이젠 원하 챌린저스랑 저 아랫동네에서 짝짜꿍하며 놀던 시절의 성운이 아니다.
성운은 18년도부터 3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며 분명한 강팀의 반열에 올랐다.
이제 어디가서 처맞고 우는 팀이 아니라 한 대 맞았으면 두 대 이상으로 되갚아 줄 수 있는 저력을 갖춘 팀이라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따악-!
- 이용호의 타구가, 멀리, 좌측 담장, 좌측 담장, 좌측 담자아앙, 넘어갑니다아아!!
그런 자신감만으로 싸우기엔 이번엔 상대가 너무 강하다.
잠실구장에서 상수 타이거즈의 홈으로 먼저 시작된 플레이오프 1차전, 아니 뭐 똑같은 팀이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가 있나…싶을 정도로 성운은 상수에게 정말 뚜까뚜까 처맞았다.
플레이오프 1차전 스코어, 14 대 2.
쉴 틈 없이 이어진 2차전에선 전날의 설움을 갚겠다, 뭐 그런 마음이었는지 투수진이 열심히 일하며 상수의 강타선을 3점으로 꽁꽁 묶었다.
타선이 한 점도 못 내서 그렇지.
하루 쉬고, 제 집으로 돌아와 상수 타이거즈를 맞은 성운 호크스는 여기서 지면 정말로 끝이 난다는 일념으로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5 대 2.
다행스럽게도 이번엔 성운의 승리로 플레이오프 3차전이 끝났고,
- 신태범의 타구가 다시 한 번, 우중간으로 높게, 아주 높게 날아가서어어어, 담장 밖에서 뵙겠습니다아아!!
거기까지였다.
시리즈 스코어 3 대 1.
“에휴….”
“잘했어, 뭘 한숨을 쉬냐.”
공식적인 2020시즌의 일정을 마감한 우석이는 지금 내 앞에 앉아 소주를 맛깔나게 드링킹하는 중이다.
“너 언제였지…옛날에 동성이랑 할 때였는지, 상수랑 할 때였는지. 그때 니가 왜 그런 소릴 했는지 알겠더라.”
“내가 뭔 소릴 했는데?”
“뭐랬더라…솔직히 질 거 같다고 했던 거.”
“음….”
동성한테 졌다, 라는 부분이면 18시즌 때 같은데. 상수 얘기가 나오는 걸 보면 작년인가?
“새끼가 왜 그렇게 약한 맘 먹고 들어가나, 싶었는데 막상 내가 그 입장되니까 알겠더라. 그런 거 있잖아, 아, 진짜 여기는 내가 안 되는구나.”
“있지.”
내가 뭔 짓을 해도 이길 수가 없다 느낄 때.
내가 뭔 짓을 해도 자살행위처럼 느껴질 때.
내가 뭔 짓을 해도 모든 이들이 비웃기만 할 때.
“열심히 안 한 건 아니야. 진짜 열심히 했어. 하아…3년 연속으로 준플에 플레이오프만 밟는다는 게 생각보다 좀….”
“비참하냐?”
“좀.”
126경기라는 길고 긴 마라톤에서 1위하는 것과 짧으면 4경기, 길어봐야 7경기 안에 승부가 결정나는 한국시리즈.
객관적인 가치 자체는 정규시즌 1위가 조금 더 무겁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규시즌은 아무래도 운이라는 요소의 함유량이 적게 느껴져서 그런 게 아닐까.
뛰는 건 당연히 잘 뛰어야 하고, 심지어는 쉬는 것마저 잘 쉬어야 한다. 온갖 작전과 암수가 오간 뒤 최정상의 자리에 올랐을 때의 뿌듯함이란 정말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근데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 건 결국 한국시리즈 우승이다.
왜일까.
뭐…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진짜 마지막이라는 점. 그리고 최강자들 사이에서 진정한 최강자로 인정받는 무대라서라 생각한다.
그리고,
“X발,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꼬우면 1등 하시든가.”
“선생님도 아직 1등 아니십니다, 한국시리즈는 꽁으로 처먹냐?”
나 또한.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정규시즌 1위라는 점에서 희열을 느껴야하는데, 남아있는 한국시리즈에 대한 걱정이 더 크다.
웃기지.
“누가 좀 꽁으로 맥여줬음 좋겠네.”
사람의 이성과 본성이 이렇게까지 따로따로 놀아난다는 게.
“준비는 잘 되냐?”
“코시?”
“그거 말고 있냐.”
“그냥…똑같지. 팀 연습하고, 컨디션 조절하고. 개인연습도 하고.”
“좀 이겨봐, 새꺄.”
“뭘.”
“상수 좀 이겨봐아아, 옛날에 우리한테 상수 못 잡는다고 지랄지랄 생지랄하던 새끼가 막상 지는 쪽도 못 쓰면서 말이야.”
뭐라 변명할 여지가 없다는 게 슬프네.
“그래도 한 건 했잖아. 해진이한테 잡더라, 야.”
“아…그거.”
박해진에게 생전 처음으로 삼진을 잡은 날, 내 상황에 대해 잘 아는 이들로부터 축하 연락이 왔었다.
현진이도 그렇고, 민영 씨도 그렇고, 은서 씨도 그렇고,
“미친 새끼, 160km가 말이 되냐?”
눈앞에 우석이도 그렇고.
“와…130km 갖다가 빌빌대던 게 엊그제 같은데, 뭐? 160?”
“선생님, 세상사 모든 인간들이 발전이라는 걸 하는 동물이 아니겠습니까.”
“발전이고 나발이고요, 아저씨. 그건 발전이 아니라 발명 수준입니다, 아저씨.”
으, 노잼.
“그래서. 좋디?”
“뭐가.”
“해진이한테 삼진 잡으니까.”
“좋지.”
“좋은데, 맘 놓진 말고.”
“아….”
“하필, 하필 해진이한테 삼진 잡은 게 페넌트 마지막 카운트여가지고 좀 걸리네.”
“맘 풀어졌을까봐?”
“그거지. 와 X바, 됐다. 나 할 거 다 했다, 이제 놀 거야, 그 아무도 날 막을 순 없으셈, 이딴 식으로 생각할까봐.”
꽤 거나하게 취했는지, 우석이의 대사에 비문이 꽤 많이 섞여있다.
“이게 진짜 오글거리는 말인 건 알거든.”
“그럼 하지마.”
“안 돼. 이렇게 술처먹었을 때 아니면 못 해. 지금 해야돼.”
“아, 제발.”
“우리 고등학교 때 기억나냐.”
X발.
“…언제.”
“집에서 같이 야구 보면서 그랬잖아. 우리도 언젠간 저기서, 저렇게 우승 트로피 들어올리고 좋아하고 기뻐가지고 막, 날뛰면서.”
그런 류의 이야기는 꽤나 많이 나눴다.
우리가 저들과 함께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저들보다 뒤쳐지진 않을까.
우리가 저들을 넘어설 수 있을까.
“이게 1차적인 목표는 이뤘다고 생각하거든.”
지금에 이르러서 보니 그 이야기들은 대부분은 현실이 되었다.
“근데 그 다음이 안 붙어. 이게 팀빨인지, 운인지는 모르겠는데.”
하지만 아직 남은 이야기가 하나 있다.
“아, 모르겠어. 너도 너 성격알고, 내 성격도 아니까. 우리 성격 있으니까 그냥 다 까고 얘기해서.”
“얘기해서.”
“…최소 내년까진 한국시리즈 우승은 못 할 거 같다.”
한국시리즈 우승.
“왜?”
“자격지심 같은데. 아니, 맞지. 자격지심 맞어. 그거 때문에 하는 소리긴 한데, 원하엔 너 있고, 상수엔 박해진 있고. 못 넘어, 팩트야.”
“야구는 팀 게임이라고 맨날 소리치던 새끼가 그런 소릴 하냐?”
“팀 게임이지. 팀 게임이고말고. 팀 게임인데.”
탁-!
소주잔을 테이블에 강하게 내리더니 빈 손가락으로 날 가리킨다.
“그런 게 있거든. 그 팀을 뛰어넘는 존재 같은 거. 리더, 주장, 아이 그런 거 말고. 그런 얘기 아니고.”
“뭔 얘긴데.”
“그런 거 있잖아아, 좀. 진짜 얘는 범접을 못 하는구나. 얘 때문에 우리가 이 꼴이 났구나, 그런 생각들게 하는 존재.”
“그게 나라고?”
“너랑 해진이. 그리고!”
꼴꼴꼴―
비어있는 잔이 다시금 소주로 메워졌다.
“그런 박해진이를 잡을 수 있는 건 실질적으로 너 밖에 없다, 이 말이야. 알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