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평화로운 불펜생활-190화 (에필로그) (190/190)

190화. 평화로운[마지막화] 에필로그

믿었노라.

빠암-! 빠바바밤! 빠바바바밤, 빠암- 빠바밤, 윤! 승! 주!

그리고 그에 따라 구원받았노라.

4회 말에 2점을 냈다는 점. 뒤에 다섯 번의 공수 교대가 있음을 생각하면 그리 대단한 수준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나이싸, 나이싸아아!!”

“빨리 들어와, 빨리 들어와악!!”

찰칵!

찰칵!!

이 약소한 두 점은 경기의 흐름을, 시리즈의 흐름을, 시즌의 흐름을 조금 더 대단한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있었다.

따악-!

“간다, 성훈이 간다!!”

“성훈이형 갔다아아!!”

대단한 방향이 뭐냐고?

따악―

“성문이 가가, 계속 가!”

“성문이 쓰리봐, 쓰리!!”

뭐긴.

따악―

“어…잠깐만…고!”

촤악―

“쎄잎!”

우승이지.

“나이쓰아아악!!”

“계속 가자, 계속 가자!!”

“가즈아아!!”

4회에만 대거 7점을 연속적으로 뽑아내며 원하 챌린저스는 면전에서 못을 떡하니 박아버렸다.

퍼엉-!

“샤이아아앜-!”

우리가 우승할 거라고.

딱―

“투투!”

“세컨 빨리!”

“1루는 여유 많아요!”

빡―

아웃―

“호오오오!”

“짜란다짜란다, 원하 잘한다아아악!!”

7점.

두 점에서 시작된 나비효과가 선명하게 경기의 흐름을 핥고 있었다.

낼름.

따악-!

“성현이도 하나 가는구나!”

“멀리 가는구나!”

“멀리 안 나간다!!”

이 맛은 우승의 맛이구나.

충격적인 경기의 전반부가 끝난 뒤 잠시 가지게 된 클리닝 타임 동안, 선수들은 저마다 들뜬 감정을 마음껏 표출했다.

지나가다 보이는 사람마다 하이파이브를 쳐대는 진형이.

애써 우승의 맛을 잠시 보류하려고 어깨를 풀어주는 규진이형.

그 맛을 전혀 숨기지 못하고 미친놈처럼 호롤롤로 하는 명진이.

“잠깐만, 다들 모여봐. 승진아, 불펜에 있는 애들도 다 데려와봐.”

“아, 예!”

어딘가 부산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져 잠시 팀원들을 불러모았다.

나한테 장난도 많이 치고, 쌉소리도 많이 하는 놈들도 많지만 아직까지 날 주장이라 생각은 하는듯,

“무슨 일이십니까, 선생님.”

“왜왜, 뭔데.”

일단 모여는 준다.

“지금…9 대 0이야. 점수차 많은 거 맞아. 여기서 우리가 실수만 안 하면 우리가 우승인 거 맞아.”

희망적인 이야기를 퍼뜨리자 나를 쳐다보는 팀원들 얼굴에 자긍심이 솟구친다.

“맞는데.”

또 금방 불만이 솟구친다.

“조금만 진정하고, 일단 경기 자체에 집중하자.”

왜? 사실상 우승 맞다며? 그럼 벌써부터 좋아해도 되는 거 아닌가? 뭐가 문젠데?

“다들 지금 우승에 정신 팔려있는데, 그러다가 실책 나오고, 볼넷 나오고, 찬스에서 애매하게 삼진 처먹고. 그러다가 경기 흐름 애매해지면 어떡할 건데.”

물론 나도 그들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또, 그렇기에 말해야 한다.

“뭐 끝날 때까지 경기는 끝난 게 아니라느니, 마지막까지 팬들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느니. 난 그런 거 몰라.”

이 중에서 가장 우승의 맛을 원하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니다.

“빨리 끝내자. 빨리 끝내고, 조금이라도 빨리 우승하자. 조금이라도 빨리. 조금이라도 빨리 편하게 기뻐하자고.”

나다.

“오케!”

“예에에!!”

“가자가자, 수비 나가! 다 막어, 다 막어!”

짤막하게나마 가진 연설은 분명 효과가 있었다.

따악-!

빡-!

“아웃!”

막고,

퍼엉-!

“샤이아아앜!”

던지고,

따악-!

“성문이 뛰어, 뛰어, 계속 뛰어!!”

“드루와!! 드루와아악!!”

뛰고.

상수 타이거즈는 본인들이 할 수 있는 걸 다 했다.

그저,

부웅-!

“스윙, 아웃-.”

원하 챌린저스가 할 수 있는 게 상수 타이거즈가 할 수 있는 것보다 조금 더 많았을 뿐.

그렇다고 상수 타이거즈 또한 멍 때리고만 있던 건 더더욱 아니다.

그들 딴엔 뭐라도 해보겠답시고 번트도 대보고, 도루도 해보고, 앤드 런 작전도 걸어보고, 할 수 있는 건 다 했지.

그 시도들이 전혀 쓸모없던 것들은 아니었다.

2점.

여러 작전들을 통해 무려 2점이나 뽑아낸 점은 충분히 칭찬해 마땅하다.

근데,

Your love is a wildcard, Folding is the hard part―

거기까지다, 야.

와아아악-!!

김한울 나왔다, 김한울이다!

김한울! 김한울! 김한울!

빨리.

얼른 경기 끝내고 맘 편히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싶다는 마음은 굳이 등판하지 않아도 될 경기의 명분을 만들어주었다.

마지막을 멋지게 장식하고 싶어서?

한 번이라도 더 팬들의 함성을 듣고 싶어서?

마지막까지 상수 타자들을 괴롭히고 싶어서?

다 그럴 듯한 명분일 뿐이고, 정말로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다.

내가 나서면 조금이라도 더 경기를 빨리 끝낼 수 있지 않을까?

“읍!”

퍼엉-!

머리를 계속 차분하게, 진중하게, 근엄하게, 뭐 그런 주문을 하지만 몸뚱어리가 전혀 말을 듣지 않는다.

괜히 주위가 산만하고 막 심장이 뛰는 게 느껴진다.

“후!”

규학이가 되돌려주는 공을 받아들고 잠시 마운드 뒤로 빠졌다.

차분하게, 진중하게, 근엄하게.

짧은 심호흡과 함께 뒤를 쳐다보니 야수들은 아까 내가 한 말을 곧잘 이행해주고 있다.

제일 먼 좌익수 위치에서 통통 뛰는 훈이.

마지막까지 집중하고자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성문이.

성훈이형이 던져주는 애매한 바운드를 끈질기게 잡아내는 기성이.

“…오케.”

2번타자, 2루수 강대현―

좀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8회 초의 첫 타자가 등장하자 다시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애써 그 웃음을 감춰보려 얼른 글러브로 입가를 가렸다. 다행히 평소 와인드업 때 사인을 고르던 자세와 비슷해 그리 이상하게 보이진 않겠지.

“플레이!”

심판의 플레이 콜과 동시에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고 양손을 머리 뒤로 넘겼다.

“후우….”

그리곤,

“읍!”

있는 힘껏 던진다.

퍼엉-!

규학이가 대주는 포수미트를 향해.

“샤이이잌-!”

초구를 지켜본 강대현이 고개를 갸웃거리긴 하지만 그래도 표정에 그렇게 큰 불편함은 보이지 않는다.

이 정도면…….

불편함이라기보단 의아함에 가깝겠다.

“읏!”

부웅-!

“스윙-.”

내가 이걸 왜 못 치지?

그런 궁금증을 대놓고 표시하는데, 그에 대한 답을 알고 있다면 바로바로 알려주는 게 또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끄윽!”

왜 못 치긴요.

부웅-!

그냥 내가 잘던지는 거죠.

“스윙, 아웃!”

깔끔하게 삼진으로 이닝을 시작하니 조금 전까지 느껴졌던 긴장과 답답함이 단숨에 날아갔다.

이거지. 이게 야구지. 이게 투수지.

“하나요!”

“오케, 하나!”

라운딩의 마지막을 장식한 기성이가 검지 손가락 하나를 펴고 빨간불 하나가 들어왔음을 알렸다.

기성이에게 받은 공을 뽀득뽀득 닦아내며 플레이트를 밟자,

3번타자, 지명타자 이용호―

쉴 새 없이 다음 타자가 등장한다.

“하…또 너냐.”

조금 전 강대현을 봤을 때완 조금 다른 의미로 미소가 지어진다.

이번엔 굳이 웃음을 감추려 들지 않았다.

봐라, 내가 널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대놓고 보라는 뜻으로 가볍게 미소를 지어주니 이용호의 표정이 썩어들어가는 게 보인다.

꼬우세요?

“끕!”

뻥―

“샤이이잌-!”

꼬우면…아시죠?

이용호과 개인적인 위계질서가 어느 정도 확립된 것이 느껴지니 마음이 또 다른 의미로 편-안해진다.

“윽!”

퍼엉-!

“샤이이잌-!”

이거지. 이게 맞지. 이게 야구지.

편안하다 못해 아주 그냥 후련함까지 느껴지는 카운트에 입가에 미소가 떠나긴커녕 오히려 짙어진다.

이 미소가 이용호에게 어떤 의미로 작용됐는지는 모르겠다만, 이를 악 물어버리는 모습이나 배팅장갑의 주름이 심해진 걸 보니 어깨에 꽤 힘이 들어갔나보다.

이럴 땐 삼진보다 더 효용이 큰 결과가 하나 있지.

“말고…오케.”

딱 두 번만에, 딱 원하는 구종이 등장했다.

기쁜 맘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끅!”

꼿꼿하게 펴진 검지 손가락으로 내가 던질 곳을 정확하게 가리킨다.

저기!

딱―

제 머리 위로 붕 뜬 커브를 보고 움찔거린 이용호가 뭐 어떻게 해보겠답시고 배트를 내긴 했지만,

촵―

적당한 바운드, 적당한 속도, 적당한 높이로 날아오는 타구는 적당한 투수 땅볼이 되어 내게 되돌아올 뿐이다.

대충 가슴께로 날아온 타구를 멋지게 낚아채 천천히 1루 쪽으로 걸어갔다.

글러브에서 공을 빼다가, 습관처럼 몸에 익은 직구 그립을 잡고 툭 던져주면,

“아웃-.”

이번 이닝의 두 번째 빨간불이 등장한다.

“둘이요!”

“오케!”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라운딩의 마지막을 장식한 기성이가 검지와 새끼 손가락을 펴고 투 아웃을 알려줬다.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니,

4번타자, 1루수 박해진―

다시금 다음 타자가 등장한다.

“또 너냐, 또.”

조금 전 강대현을 봤을 때와, 조금 전 이용호를 봤을 때완 또 다른 의미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굳이 웃음을 감추려들지 않았다.

봐라, 내가 널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의 사용처가 매우 다르긴 한데, 박해진이라면 충분히 그 차이를 알고 있을 거다.

예,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 땐 제가 진 거 인정하는데, 그걸로 끝났다 생각한 건 아니라 믿습니다.

아마 우리가 야구로 대화하는 게 아니라 언어로 대화를 하고 있다면, 박해진의 성격상 이렇게 얘기하지 않았을까.

“후우….”

박해진 정도 되는 녀석이면…….

검지, 모자, 팔꿈치, 글러브, 팔꿈치, 어깨, 글러브.

내가 직접 사인을 내줄 정도는 되는 녀석이지.

그리고,

“읍!”

더, 더, 더 힘을 쏟아부어 던질만한 가치가 있는 녀석이기도 하다.

부웅-!

“스윙!”

초구부터 강화 직구를 던져놓고 전광판을 확인하니 159km가 나온다.

“…어지간히 이기고 싶은가봐, 나도.”

내가 던지고도 놀라운 버프에 헛헛히 웃으며 다시금 플레이트를 밟았다.

검지와 중지, 팔꿈치, 모자, 가슴, 글러브, 모자.

빨리빨리.

굳이 흐름 뺏기고 싶지도 않고, 지금의 이 좋은 감정을 연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다.

빨리빨리.

“웁!”

퍼엉-!

“샤이이잌-!”

템포도 빨리, 폼도 빨리, 그리고 구속도 빨리.

한 번 더 전광판을 구경하니 이번에 찍힌 구속은 160km.

짤막하게 구속을 확인하고, 이번엔 내가 사인을 보내지 않고 규학이의 사인을 기다렸다.

아마 이 지경까지 오면 내가 뭘 던지고 싶어할지 규학이도 잘 알 거다.

“오케.”

그리고, 내가 뭘 던지고 싶어할지 규학이보단 박해진이 아마 더 잘 알고 있을 거다.

“후우….”

즉,

“끄으윽!”

이번 공의 결과 또한,

부웅-!

“스윙, 아웃!”

박해진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단 소리겠지.

“쌰아아악!!”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쉽다 했나.

처음 박해진을 삼진 잡았을 땐 조금도 믿겨지지가 않아 계속 멍때렸던 것과 달리 이번엔 자연스럽게 괴성이 튀어나왔다.

또한 자연스럽게 주먹을 불끈 쥐고, 자연스럽게 주먹을 허공에 지르고, 자연스럽게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덕아웃을 향한다.

“아, 한울이 짜란다, 짜란다!”

“짜란다, 짜란다!”

“규진이형은 안 자란다!”

“미친 새끼야!”

왁자지껄한 덕아웃 분위기 속에서 시간이 지날 때마다 팀원들은 분명 확실한 감정을 하나씩 쌓아가고 있었다.

8회 말 공격,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 솔로 홈런으로 한 점을 추가한 성현이는 1루 베이스를 향하며 손가락으로 덕아웃을 가리켰다.

9회 초 수비, 경기의 마무리를 위해 마운드에 오른 승진이는 헌철이를 삼진으로 처리하며 원 아웃을 만들었다.

9회 초 수비, 하해진의 라이너성 타구를 아무렇지도 않게 잡아낸 성훈이형은 묵묵하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투수에게 공을 돌려줬다.

9회 초 투 아웃.

“온다…온다…진짜 큰 거 온다….”

원하의- 승리를- 위하여- 오늘도- 힘차게- 외쳐라- 나가자- 싸우자- 우리의- 챌린저스- 원하의- 승리를- 위하여-!

자기들 멋대로 우승을 확정지은 관중석은 벌써부터 원하 챌린저스의 응원가를 떼창하며 감각을 공유하길 강제하고 있었다.

강제?

“다 왔다, 다 왔어!”

“하나만 더 가자, 진짜 다 왔다!!”

그래, 강제.

이 강제적인 법령은 충분히 효력이 있었다.

덕아웃은 언제든지 그라운드로 뛰쳐나갈 준비를 마쳤다.

끝에 다다른 걸 아는지 승진이는 섣불리 플레이트를 밟지 못 했다.

명진이는 덕아웃에서도 확인이 가능할 정도로 눈시울을 붉힌 채 제자리에서 방방 뛰어다녔다.

“멋지게 들어가자아아!!”

덕아웃 난간을 붙잡고, 눈을 질끈 감은 채 소리쳤다.

멋지게 들어가자.

딱―

멋지게.

왁, 와아악!!

야아아!!

멋지게.

팍!

멋지게.

“아웃!”

멋지게.

“와아아아악-!!”

“왔다!!”

“으허아아악!!”

멋지긴 개뿔이.

그 멋진 사람이라 생각했던 성훈이형도 본인에게 날아오는 뜬공을 잡자마자 괴성을 질러대며 곧장 마운드로 뛰어갔다.

승주는 덕아웃에서 그 누구보다 빠르게 그라운드로 뛰쳐나가 모든 이들 사이에 파묻혔다.

작년 정규시즌 우승 때도 그러더니, 명진이는 이번에도 우승 확정의 순간과 함께 두 눈에서 눈물을 흘려댔다.

그래, 이래야 우리 애들 답지.

마운드 주변으로 이리저리 엉클어져 있는 원하 챌린저스의 덩어리들을 보니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 같다.

천천히, 팀원들이 모여있는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 꼬라지가 맘에 안 들었는지,

“야, 뭐하냐! 빨리 안 오냐, 찰칵 어디 갔냐!”

오열하는 명진이를 달래던 승주가 얼른 이쪽으로 오라 채근한다.

“아….”

그냥 가긴 좀 그런데.

잠시 이리저리 둘러대다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관중석 쪽으로 향한다.

와아악-!

원하, 원하아아, 어헝, 이겼어어…!

김한울! 김한울! 김한울!

그 중 가장 가까운 관중에게 다가가,

“저기, 미안한데! 핸드폰 좀 잠깐만 빌려줄래요! 우리 사진만 찍고 돌려줄게요!”

잠시 핸드폰을 부탁했다.

그 팬은 내 말에 허둥지둥거리더니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제 핸드폰을 꺼내 펜스 그물 사이로 핸드폰을 건네줬다.

“고마워요, 금방 갖다 줄게요!”

“네에! 사진 많이 찍어요!”

오케.

급하게 얻은 카메라를 오른손에 쥐고 얼른얼른 마운드로 뛰어갔다.

첨엔 내가 뭘 하려나, 궁금하게 쳐다보던 팀원들도 내 오른손에 들린 핸드폰을 보니 단번에 이해가 된 모양이다.

“야야, 자세 잡아, 빨리!”

“찍자찍자, 찰칵 하자아!”

이해가 됐다면 자연스럽게 본인들이 취해야 할 행동 또한 알고 있겠지.

녀석들은 카메라 구도 안에 들기 위해 지들끼리 치대며 경쟁을 일삼았다.

어이가 없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하고, 그런 여러 감정을 느끼며 빌린 핸드폰의 화면을 켜고 카메라를 얼른 찾았다.

“야, 나 안 나오잖아!”

“빠지든가!”

“얼굴 좀 줄여, 돼지 새끼야!”

미친놈들인가.

뒤에서 뭔 상황이 벌어지든, 딱히 신경쓰지 않고 핸드폰을 쥔 왼손을 머리 위 높이 들어올렸다. 최대한 많은 이들이 카메라에 담길 수 있도록.

“야야, 찍는다! 셋 세면 찰칵이야!”

“예에에!”

“하나!”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는데도 카메라 앵글 안 몇 명은 아직까지도 투닥거리고 있다.

내가 더 크게 나올 거라느니, 넌 얼굴이 커서 그냥 있어도 크게 나올 거라느니, 난 잘 안 나온다 하니 그건 너가 키가 작아서 그런 거라느니.

“둘!”

어릴 적부터 봐왔던 우리나라 야구팀들도 그렇고, 아니면 해외 야구팀들도 그렇고.

다른 우승 팀들이 우승할 때 보면 다 같이 화기애애하게 얼싸안거나 하이파이브하거나, 뭐 그 정도던데 우리 팀은 왜 이러는지.

“셋!”

근데 웃기지, 만약 우리 팀 애들이 그랬다면 참 어색했을 것 같다.

저런 꼬라지를 보자니 그래, 이게 우리 팀이지, 이게 우리 애들이지, 우리 미친놈들이지, 그런 안도감이 오히려 더 크게 느껴진다.

“찰칵!”

우리 팀, 참 평화롭네.

【 에필로그 】

“하아아암….”

아…머리야…….

느지막하게 잠에서 깨 상반신을 일으키니 몽롱함이 눈꺼풀을 가로막는다.

“…아우.”

일어나야지, 나가야지, 준비해야지.

얼굴을 이리저리 쓸어내리며 침대에서 벗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쏴아아- 쏟아지는 따뜻한 물을 면상으로 받아내니 좀 정신이 차려지는 것 같기도 하고.

샤워를 마치고 남은 물기를 탈탈 털어내며 컴퓨터 책상 앞 의자에 철푸덕 앉았다.

팍, 하는 그 효과음에 생각보다 컸는지,

“…언제 일어났어요?”

옆 침대에서 민영 씨가 살짝 갈라진 목소리로 아침을 맞이했다.

“아, 미안해요. 깨웠네.”

“일어나야죠오, 아으으…금방 나가야 되죠?”

“금방은 아니고. 좀 시간 있어요.”

“그럼 밥 먹구 가요, 먹구 가….”

기지개를 쭈우욱 켜며 민영 씨도 침대에서 벗어났다. 그대로 방을 나가자마자 곧장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흐뭇-하게 웃으며 잠시 생긴 짬에 인터넷 기사들을 훑어봤다.

[KBO 2021시즌, 올해도 원하는 우승 선두권이다.]

[2021시즌의 원하 챌린저스는 어떤 팀이 될까?]

[김한울은 2021시즌에도 전설을 쓸까?]

으, 노잼.

맨날 똑같은 얘기들만 해대니 보는 입장에선 이제 질릴 지경이다.

뭐, 말이 그렇다는 거고.

“한울 씨, 밥 먹어요-.”

“아, 예.”

우리 팀, 그리고 나를 이렇게 추켜세워주는데 기분이 나쁘진 않다.

민영 씨의 안내에 따라 식탁 앞에 앉으니 꽤나 화려하게 차려진 아침상이 보인다.

아침…이라기에 좀 늦은 시간이긴 한데…….

“다 먹을 수 있죠?”

“…….”

제 입장에선 아침인데요, 민영 씨.

“어…예.”

하지만 민영 씨의 저 해맑은 미소를 보면 도저히 고개를 저을 수가 없다.

“민영 씨는 안 먹어요?”

“저는 한울 씨가 먹는 것만 봐도 배불러서 괜찮아요.”

어쩜, 결혼하고 몇 개월이 지났는데 아직까지 이렇게 이쁜 말만 골라서 하는지.

꼬르륵―

“…….”

“…….”

어쩜, 결혼하고 몇 개월이 지났는데 아직까지 이렇게 귀여운 짓만 골라서 하는지.

“그, 그럼 저도 조금만 먹을까요?”

“같이 먹어요.”

“네, 네에….”

멋쩍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가 쓸 수저를 가져오는 민영 씨를 바라보며 나도 젓가락을 집어들었다.

“어때요, 또 새로 시즌 시작인데.”

“사실 작년에 우승하고 생각이 꽤 많았거든요.”

“어떤 생각이요?”

“어어…다음 시즌까지 어떻게 지내나….”

우승 확정 후, 그냥 푹 쉬었다.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푹 쉬었다.

“뭘 하면서 준비해야 하나….”

그리고 얼마 뒤, 날짜가 잡히자마자 바로 민영 씨와 결혼하고 지금 이렇게 같이 밥을 먹고 있다.

“차라리 우승하고 끝이면 모르겠는데, 그게 아니잖아요. 앞으론 또 어떡해야 하나….”

결혼의 기쁨도 잠시, 다음 시즌을 대비해야 한다는 이유로 민영 씨와 잠시 떨어져 또 한 번의 스프링 캠프를 참석했다.

“그리고…내 입으로 이런 말 하는 것도 웃기긴 한데, 작년에 제가 잘했잖아요.”

“그냥 잘한 게 아니라, 어어어엄청 잘했죠.”

“그쵸. 근데 올해도 작년만큼 잘할 수 있을까…그런 고민이요.”

사실 꽤 걱정이 됐다.

지금의 내 자리를 만들어준 이 시스템이 언제까지 유효할지.

일단 아직까진 그런 걱정할 필요가 없어보이는 게, 캠프에서도 꽤 괜찮은 모습들을 이어갔다.

구속도 그렇고, 변화구도 그렇고, 제구도 그렇고, 또 아직 아픈 곳도 없고.

“생각들은 잘 정리됐어요?”

내 고민을 끝까지 들어준 민영 씨는 가볍게 웃었다.

“네.”

그에 나 또한 가볍게 웃었다.

“어떻게 정리됐는데요?”

그에 민영 씨가 웃음을 짙게 만든다.

“그냥 하던대로 하면 될 것 같아요.”

그에 나 또한 더욱 웃음을 짙게 만든다.

“멋있네요.”

“알아요.”

“어우, 그게 뭐야.”

질색팔색을 하면서도, 민영 씨 눈가에 쓰인 콩깍지는 아직까지도 선명하다.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 밥을 맛있게 다 먹은 뒤, 옷방에서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나갈 채비를 마…….

“…오.”

…치기 전, 장식장에 새롭게 추가 된 전리품들을 한 번씩 더 확인했다.

2020 KBO 홀드왕 - 원하 챌린저스 김한울

작년 리그 시상식에서 받은 홀드왕 트로피,

2020 KBO 특별상 - 원하 챌린저스 김한울

같은 날, 시즌 평균자책점 ‘0점’을 찍었다고 특별하게 받은 트로피.

감사패 - 원하 그룹

원하 챌린저스 김한울

거기서 조금 더 지난 어느 날, 원하 그룹 회장님이 직접 사사해주신 감사패.

“…X나 멋있어.”

오늘 하루도 멋지게 힘낼 수 있는 주문을 하나 외워주고 옷방을 나섰다.

“이제 나가세요?”

“아, 네.”

부시럭부시럭거리고 있자니 민영 씨가 도도도도 달려와 마중을 나와준다.

“다녀올게요.”

“조심히 다녀와요, 보고 있을게요.”

아, 강아지 같아서 진짜 귀엽다.

스윽스윽―

“헤헤….”

나서기 전, 민영 씨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으며 하루의 연료를 충전했다.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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