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패전처리, 회귀하다-25화 (26/204)

25 - 모바일 베이베어스.

버밍햄 전 선발 등판, 7.1이닝 무실점으로 첫 승.

펜서콜라 전 선발 등판, 5이닝 완봉승으로 시즌 2승.

몽고메리에서의 시즌 출발은 그 어떤 선수보다도 완벽했다. 비록 두 경기밖에 치르지 않았지만, 같이 로테이션을 돌고 있는 빅터 마테오는 평균자책점 8점대를 기록했고 딜런 플로로는 승리 없이 1패만 기록했다. 자레드 모르텐센이 1승을 가져갔지만 운이 좋았고.

몽고메리가 시즌 첫 열 경기에서 거둔 성적은 5승 5패. 그 중에서 지혁이 2승을 가져온 것이다. 오늘의 결과와 내일의 결과가 철저하게 다른 것이 야구라고 할지라도. 앞선 두 경기에서 보여준 모습 때문에 지혁의 입지가 어느 정도 탄탄해진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처음부터 지혁에게 은근한 호감을 갖고 있던 윌리엄스 감독은 로테이션을 운용하기가 한결 편해진 것을 느꼈다. 여전히 두고 봐야 한다는 리히텐슈타인 코치도 지혁의 컨디션이 가장 좋다는 것만큼은 인정하고 있었다.

“앤드류 벨라티를 스팟 스타터로 쓸 수밖에 없겠네요. 미시시피를 상대로 한 로테이션은 이렇게 결정하고... 그리고 다음 시리즈가 모바일 베이베어스.”

“흠.”

“1차전을 잡으면 좋을 텐데요. 순서대로라면 2차전에 문이 나오니까. 3차전도 플로로가 예정되어 있으니까 한 번 해 볼 만하고요.”

“가빈의 컨디션은 좀 어때?”

“아프지는 않다고 합니다. 큰 수술을 하고 돌아왔으니 의욕은 넘치는데...”

“그래도 40개야. 그 이상은 안 돼.”

윌리엄스 감독은 감독실 한 구석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체임 블룸을 돌아다봤다. 블룸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한 마디를 보탰다.

“그레이슨 가빈은 건초염 수술과 토미존 서저리를 동시에 한 선수니까요. 안 그래도 부상 전력도 많고. 점점 투구수를 늘려가더라도 최소한 전반기까지는 80개 이상을 던지지 않게 했으면 합니다.”

“전반기면... 투구수 제한을 너무 오래 끌고 가는 것 아닙니까?”

“재발이라도 했다간 선수 인생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리히텐슈타인 코치.”

프런트는 출전을 제한하고, 선수는 뛰고 싶어하고. 중간에서 그 사이를 조율해야 할 현장의 코치들만 죽을 맛이다. 게다가 그레이슨 가빈의 투구수 제한이 걸려 있으면 다른 경기들에서는 투수 운용이 변칙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오랜 이닝을 끌어줄 수 있는 두 번째 투수가 꼭 필요하니까.

“하. 1차전에는 그럼 마이크 콜라를 불펜 대기시키겠습니다. 하루 더 쉬어야 하긴 하는데, 롱맨으로 뛸 수 있는 유일한 선수예요.”

“그렇게 하지.”

“베이베어스를 상대로 이렇게 해서는 이기기 힘듭니다.”

“... 어쩔 수 없지.”

블룸은 주머니에 두 손을 꽂고 서성거리며 말했다.

“성적에 연연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시잖아요? 우리는 성적 가지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 평소처럼 선수들의 성장과 과제 해결에만 중점을 두시면 됩니다.”

“그래도...”

리히텐슈타인 코치가 뭐라 말을 하려다 그만두었다. 윌리엄스 감독도 그저 담배만 끔뻑끔뻑 피웠다.

“마이너리그가 우리 팀의 뿌리니까요. 이 시스템이 없으면 우리 팀은 제대로 돌아가질 않습니다. 여기서 고쳐서, 여기서 성장시켜서 더램으로 보내는 것. 이 시스템에는 변함이 없을 겁니다.”

블룸은 그 말과 함께 인사를 남기고 리버워크 스타디움을 떠났다.

“우리 팀 녀석들은 모든 경기에서 이기고 싶어하는데. 그걸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프런트에서 아무리 승패에 연연하지 말라고 강조해도, 경기를 뛰는 현장의 선수와 스탭들은 얘기가 다르다. 눈앞의 경기에서 지는 것을 용납할 수 있을 정도로 승부욕이 없는 사람들은 애초에 야구장에 발을 들일 수 없다.

구심의 플레이 볼 신호가 울리고 나면, 그 곳이 메이저리그 경기장인지 마이너리그 경기장인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무조건 승리만을 원할 뿐이다.

리히텐슈타인의 씁쓸한 말에 윌리엄스가 담배를 비벼 끄며 대답했다.

“저 사람이라고 그걸 모르겠어? 프리드먼이라고 그걸 모를까? 다 알면서도 이렇게 만들어 놓은 거지. 어떻게 됐든 우리는 탬파베이라는 구단이 만든 룰에 따라야 해.”

브래디 윌리엄스는 달력에 세 선수의 이름을 차례로 써넣었다. 그레이슨 가빈, 문지혁, 딜런 플로로. 모바일 베이베어스를 상대로 한 선발 로테이션이다.

“우리가 해야 되는 건 이런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이기게 해 주는 거고.”

*

몽고메리 비스킷츠는 시즌 초반 투타의 불균형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었다. 신기할 정도로 밸런스가 어긋났다. 지혁을 비롯한 투수진이 호투를 할 때는 점수가 안 나고, 타선이 폭발적으로 점수를 뽑아낼 때에는 투수진이 같이 무너졌다. 덕분에 매 경기 누가 이겨도 이상하지 않은 한두 점 승부가 이어졌다.

펜서콜라와의 4연전 이후 치른 미시시피 브레이브스와의 3연전 시리즈가 특히 그랬다. 세 경기 모두 한 점차로 승패가 갈렸다. 문제는, 리그에서 2승 8패로 최하위에 쳐져 있던 미시시피에게 세 경기를 스윕 당했다는 것이다. 모두 한 점 차로.

덕분에 더그아웃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시끌벅적했을 라커룸은 조용했다.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듣던 녀석들이 가끔 흥얼거리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지혁은 상대팀인 베이베어스의 자료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더블 A 팀인 베이베어스는 지금까지 9승 1패를 기록하고 있다. 개막 시리즈에서만 2승 1패를 기록했고, 이어진 두 시리즈는 전부 스윕해 버렸다. 무려 7연승 중이다.

베이베어스는 특히 투수진이 강하다. 작년에 메이저리그 콜업된 경험이 있는 체이스 앤더슨과 팀 내 최고 유망주인 아치 브래들리, A.J. 쉬겔까지. 이 세 명의 투수들은 지금까지 치른 모든 경기에서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했다. 게다가 네 번째 투수인 마이클 리는 지혁처럼 두 경기 무실점 중이다.

미시시피와의 시리즈에서 타격감이 완전히 죽어버린 몽고메리 타자들의 방망이로는 공략하기 힘든 상대들이다. 모바일 베이베어스를 상대로 이기는 방법은 명확하다. 투수들이 최소한의 점수를 주고, 타자들이 딱 이길 수 있는 점수만 낸 뒤 어떻게든 지키는 것.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 때 지혁의 라커 앞을 지나가던 유격수 헤이거가 몸을 살짝 굽히고는 물었다.

“문, 그 소식 들었어?”

“무슨 소식?”

“메일리가 내일 하이 싱글 A로 내려간대.”

“왜? 딱히 모자라거나 못 하는 것도 아니었잖아?”

“걔는 로우 싱글 A에서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 찍고 바로 여기로 왔잖아. 단계를 밟으러 다시 가는 거지. 여기는 카살리가 주전을 딱 차지하고 있으니까. 베일리도 3년 째 더블 A에 있는 백업이고. 베일리를 내려보낼 순 없잖아.”

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로스터에는 제한이 있고, 어쩔 수 없이 내려가는 일도 있다. 누군가가 치고 올라오면 누군가는 결국 밀려나야 한다.

하지만 메일리가 내려간다니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스프링캠프에서 가장 경력이 안 되는 두 선수가 바로 지혁과 메일리였다. 싱글 A에서 시즌을 치르고 스프링캠프에 초청받은 유이한 선수였고. 몽고메리에서 던진 첫 번째 경기에서 공을 받아준 것도 메일리였다.

“아쉽네. 메일리는 지금 어딨는지 알아?”

“비디오 룸에 가던데? 오늘 자료 본다고. 걔도 독해, 진짜.”

“알겠어. 땡큐. 연습 열심히 해. 오늘은 좀 치자?”

“하. 내 맘대로 되면 그게 야구냐?”

“하하. 힘 내, 친구.”

지혁은 라커를 나와 비디오 룸으로 향했다. 노트북에 이어폰을 꽂은 채 영상 자료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메일리가 보였다. 메일리는 지혁이 바로 뒤에까지 다가갔는데도 누가 온지도 모르고 노트북만 들여다보고 있다. 내일 강등이 예고되었는데도 비디오를 들여다보고 있는 그의 커다란 뒷모습이 조금은 안쓰러워 보였다.

“루크. 안녕.”

“문. 여긴 왜 왔어?”

“비디오 룸에 왜 오긴. 비디오 보러 왔지. 그나저나 얘기 들었어.”

“아... 그래. 어쩔 수 없지.”

메일리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강등의 맛은 언제나 씁쓸하다. 그 마음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지혁은 그저 같이 한숨을 쉬어주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해도 강등의 아픔을 위로해줄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개막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내려가서 다행이야. 싱글 A 녀석들을 분석할 시간도 충분히 있고... 무엇보다 거기서는 꾸준히 포수를 볼 수 있으니까.”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좋지.”

“여긴 카살리가 있어서 경험을 쌓을 수 없는 게 현실이고...”

애써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면서도 말끝을 흐리는 메일리의 표정에서 진한 아쉬움이 묻어나왔다. 조금이라도 메이저리그에 가까운 곳에 있고 싶어하는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그런데도 오늘 혼자서 비디오 룸에 박혀서 상대 타자들 분석을 하고 있는 모습에서는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워크에씩으로는 어디 가서 빠지는 평가를 들어본 적 없는 지혁조차도 메일리의 프로정신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냈다.

“베이베어스 놈들은 좀 어때?”

“괜히 7연승 하고 있는 게 아니야. 중심 타선이 엄청 좋고. 걔네가 중심을 꽉 잡으니까 안 맞던 타자들도 서서히 감을 끌어올리고 있어.”

“같이 좀 봐도 될까?”

“그래. 앉아.”

지혁은 메일리의 옆자리에 앉았다. 꽂혀 있던 이어폰을 빼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잠시 동안이지만 비디오 룸에서 메일리와 같이 있어주는 것이 큰 위로가 되기를 바라면서.

*

모바일 베이베어스와의 시리즈가 시작되었다. 리그 최약체인 미시시피에게 의외의 스윕을 당한 뒤 최강팀 베이베어스를 맞이한 몽고메리는 예상대로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9이닝 내내 끌려다니는 경기가 이어졌다. 보통은 9회까지 경기를 하다 보면 한 번 쯤은 기회가 오기 마련이다. 아주 작은 틈만 있어도 흐름이 바뀌곤 하는 게 야구니까. 하지만 1차전에는 그런 틈도 없었다.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마지막 타자였던 리치 쉐퍼가 방망이를 내지도 못하고 삼진으로 물러났다. 2아웃에 1, 3루라는 마지막 기회를 살리지 못한 것이다.

모바일 베이베어스와의 시리즈 첫 경기는 5대0 완패였다. 베이베어스의 에이스인 체이스 앤더슨이 올라온 마운드를 전혀 공략하지 못했다. 꼬여버린 타격 페이스. 좀처럼 실타래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었다.

마운드도 불안했다. 가빈은 토미 존 서저리를 받고 복귀한 첫 경기에서 2이닝을 소화하며 2실점했다. 이어 올라온 앤드류 벨라티가 홈런으로 한 점을 내줬고, 네 번째 투수였던 맷 로리스가 1실점. 그리고 8회에 마운드에 올랐던 제이크 톰슨도 1실점했다. 골고루 점수를 주고, 골고루 못 친 경기.

이 흐름을 끊어야 할 2차전 선발투수가 바로 지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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