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패전처리, 회귀하다-34화 (35/204)

34 - 미스테리 피쳐(2).

@kennyZ_thunder

- 호킨스가 말한 미스테리 피쳐, 생각보다 엄청 좋은데? 3이닝 퍼펙트 하는 중!

@beastofmound

- 저 떨어지는 공 대체 뭐야? 타자들이 전혀 타이밍을 못 잡는데?

@OKRays

- 이 친구가 스프링캠프에 합류했던 그 친구 맞지? 앤드류 프리드먼의 선수 보는 눈은 신이 내려주신 거라구. 잘 하는 게 당연해.

마이너리그를 즐기는 사람들의 그룹에서는 인상적인 호평이 잇따르고 있었다. 더블 A의 남부 리그는 전체적으로 투고타저의 성격을 가진 리그였지만, 모바일 베이베어스만큼은 다른 팀들을 압도하는 타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베이베어스를 상대로 지혁은 3이닝 동안 44개의 공을 던지며 단 한 타자도 출루시키지 않았다.

베이베어스의 선발 투수인 A.J. 쉬겔도 만만찮은 피칭을 선보이고 있었다. 1회말 브렛과 헤이거가 연속 안타를 때려냈지만, 몽고메리가 스코어링 포지션에 주자를 둔 것은 그때뿐이었다. 안정을 되찾은 쉬겔도 3이닝을 실점하지 않고 막아냈다. 팽팽한 0대0 상황이 이어졌다.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첫 타자 자미에슨의 허를 찌르는 백도어 슬라이더가 바깥쪽 존에 걸쳤다. 구심이 역동적인 제스쳐를 취하며 우렁차게 삼진 콜을 외쳤다.

“완전히 불이 붙었구만.”

호킨스는 기록지에 삼진을 추가했다. 열 명의 타자를 상대로 벌써 네 개 째였다. 경기 시작 전 불펜에서 봤던 공을 그대로 마운드에서 뿌리고 있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좋은 것 같기도 했다.

“갈수록 신기하단 말이지. 작년까지만 해도 던져본 적도 없던 싱커는 최소한 플러스 급은 받을 만한 공이고. 패스트볼도 좋아졌고. 슬라이더를 쓰는 타이밍도 아주 노련하고.”

습관적으로 볼펜 뒤쪽을 잘근잘근 깨물던 호킨스는 자신의 계정으로 들어온 질문들에 몇 개 대답을 해 주었다.

@innoutcrazy

- 저 친구의 싱커는 어느 정도의 평가를 받는 구질이야?

@fox_samhawkins

- @innoutcrazy 취재한 바에 따르면 이번 시즌부터 던지기 시작한 구질이라고 해. 그래서 정확하게 판단하기는 좀 일러. 풀타임을 치러본 게 아니라서. 내가 볼 땐 최소 플러스 급이야.

@power_galaxyevan

- 미스테리 피쳐는 정말 재밌는 표현이야. 이 한국인 투수의 가장 미스테리한 점이 뭐라고 생각해?

@fox_samhawkins

- @power_galaxyevan 좋은 질문이야. 갑자기 나타난 것도 물론 미스테리하지만, 진짜로 의아한 건 마운드 위에서의 운영 능력이야. 지난 시즌까지는 그냥 평범한 어린 투수였거든. 쉽게 무너지고, 쉽게 흔들리고. 그런데 올해는 아니야. 완전히 베테랑 같은 투구를 보여주고 있어. 오, 마침 지금도 그렇네.

지난 타석에서 끈질기게 지혁을 물고 늘어졌던 2번 몬티야. 지혁은 몬티야의 전 타석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초구부터 변화구로 유인하려던 메일리의 싸인을 단호히 거부한 지혁은 88마일짜리 패스트볼을 정가운데에 집어넣었다. 첫 타석과 마찬가지로 공을 지켜보는 전략으로 타석에 들어섰던 몬티야를 농락하는 듯한 공. 힘을 잔뜩 뺀 밋밋한 패스트볼.

몬티야가 초구에 방망이를 내는 일은 절대로 없으리라고 확신했기에 가능한 공이었다.

한복판을 통과하는 허술한 공을 지켜보기만 한 타자는 여러 가지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 중 가장 크고 강렬한 것은 무시당하는 기분이다. 수천수만 번 타석에 들어선 타자들의 냉정함도 무너뜨리곤 하는 모멸감을 더블 A에서 뛰는 마이너리거가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딱!

지혁은 시간을 끌지 않았다. 한복판으로 향하다가 마지막에 가라앉는 싱커를 곧장 던졌다. 방금 전 밋밋한 패스트볼로 스트라이크 하나를 눈 뜬 채로 기증했던 몬티야가 절대로 참아낼 수 없는 공이다. 지혁의 싱커는 여지없이 가라앉으며 몬티야의 방망이 밑둥에 맞았다. 3루수 쉐퍼의 정면으로 깔끔하게 들어간 공으로 아웃카운트를 추가한다.

@fox_samhawkins

- @power_galaxyevan 타자를 농락하는 것 같은 저 피칭을 봐. 투수가 타자를 흥분하게 만들고, 곧장 스윙을 유도했지. 게다가 삼진을 잡기 위해 무리하지도 않아. 존 안으로 공을 넣어서 가볍게 맞춰 잡고 있어. 어린 선수들에게서 쉽게 찾을 수 없는 스타일이야.

SNS에 멘션을 입력하던 호킨스는 잠시 태블릿을 접어두었다. 제이크 램과의 이번 승부는 꽤 재미있는 일전이 될 것이다. 리그에서 가장 파괴력 있는 타자와의 두 번째 승부다.

마운드의 지혁은 다시 한 번 정신을 집중했다. 제이크 램을 상대로 단 일 구라도 맥없는 공을 던졌다간 홈런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지금까지 잘 해온 투구를 한 번에 망칠 수도 있다.

램은 위협적으로 연습 스윙을 두어 번 하고는 헬멧을 고쳐 썼다. 타석에 들어서서 홈 플레이트를 탁탁 두드리고는 방망이를 곧추세웠다. 눈에서는 레이저 광선이 나오는 것 같다. 그 눈빛을 정면으로 바라본 지혁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눈빛 봐라. 아주 사람 잡겠네.’

하지만 질 수는 없다. 지혁도 마찬가지로 살벌한 눈빛을 쏟아냈다. 램도 지혁과 똑같은 생각을 했다. 이번 시즌 전까지는 이름조차도 들어본 적 없었던 미지의 투수가, 지금은 리그에서 누구보다도 상대하기 까다로운 투수가 되어 눈앞에 있었다.

초구. 지혁은 메일리의 싸인을 받고 슬쩍 웃었다. 이번 경기에서 한 번도 던진 적 없던 커브가 존을 통과했다. 강타자를 상대로 허를 찌를 수 있는 공이다.

램은 방망이를 내려다가 어정쩡한 위치에서 손목에 힘을 뺐다. 스윙은 돌아갔지만 램의 입장에서는 방망이에 맞추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아오. 차라리 때리지. 맞았어도 단타일텐데.’

‘위험했다. 운이 아주 좋았어도 내야를 간신히 벗어났을 거야.’

2구. 이번엔 지혁이 인터벌을 꽤 길게 가져갔다. 메일리가 싱커, 패스트볼, 슬라이더 싸인을 낸 것에 계속해서 고개를 저었다. 또 다시 커브를 던지고 싶었다. 이 상황에서 두 개 연속으로 커브를 던지리라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기어이 커브 싸인을 받은 뒤 천천히 와인드업 해 공을 뿌린다.

지혁의 손끝에서 공이 떠나자마자 램은 허탈한 감정을 느꼈다. 설마설마 했는데, 확연히 느린 공이 둥실 떠 오면서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사뿐히 들어왔다. 방망이를 든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경기 내내 하나도 던지지 않던 커브를 연속해서 두 개나. 심지어 파괴적이거나 치기 어려운 커브도 아니었다. 하지만 방망이를 낼 수는 없었다. 제대로 허를 찔렸다.

‘몰아넣었다. 여기서 바로 들이받을까?’

‘투 스트라이크. 바로 들어오나?’

흐읍. 숨을 크게 들이마신 지혁은 팔을 휘두르는 순간 기합을 내질렀다. 느린 공 두 개를 봤으니 몸이 제대로 따라나올 수 없을 것이다. 이미지 속에서 숱하게 던졌던 몸쪽 꽉 찬 패스트볼. 전력으로, 빠르고, 강하게 뿌린다.

쌔애액, 하는 바람소리가 홈플레이트 위를 갈랐다. 마치 도끼질을 하듯 강하게 내리친 램의 방망이가 몸쪽으로 달라붙는 패스트볼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공이 쪼개지는 듯한 타구음이 들렸다.

지혁과 램의 시선이 동시에 우측 담장 쪽으로 향했다. 몽고메리의 에이스가 된 미스테리 피쳐와, 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타자의 대결. 한참 동안 날아가던 공이 서서히 떨어지고, 두 사람의 승부는 담장 바로 앞에서 마무리되었다. 공이 떨어지는 지점에는 이미 조이 리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좋았어!”

리카드가 공을 글러브에 넣는 순간 지혁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힘 대 힘으로 붙어서 이겨냈다. 제이크 램을 꽉 틀어막는 것은 승리로 가는 데 굉장히 중요한 요소였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투구는 백 점 만점에 백 점짜리다.

제이크 램은 1루 베이스 위에서 배팅 장갑을 벗는 순간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음을 알아챘다. 스윗 스팟이 아니라 방망이 약간 안쪽에 맞았다. 그래서 손이 얼얼하게 울리는 것이다. 램은 마운드를 내려가는 지혁을 흘끗 쳐다보았다. 자신감 넘치는 얼굴이다. 램은 씁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오늘 무조건 하나는 친다. 저 투수한테 한 방 먹여야 돼.”

*

5회초, 지혁은 페랄타에게 몸에 맞는 볼을 내주었다. 몸쪽으로 싱커를 붙이려다가 손에서 살짝 빠져버렸다. 선두타자를 출루시켰으니 위험하다고 모든 사람들이 생각했다.

하지만 경기장 위에서 지혁이 누구보다도 가장 냉정했다. 5번 가렛 베버를 상대로 연속해서 싱커 다섯 개를 던지면서 기어이 유격수 앞 땅볼을 만들어냈고, 베이베어스는 경기에서 처음으로 출루시킨 주자를 곧장 없애야만 했다.

6회초. 마이크 프리맨-존 그리핀-스티브 로드리게즈. 세 타자를 전부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싱커를 잔뜩 의식하고 들어온 하위 타선들을 상대로 싱커는 딱 두 개밖에 던지지 않았다. 오히려 패스트볼과 슬라이더를 과감하게 스트라이크 존 높은 쪽에 찔러 넣으면서 헛스윙을 이끌어냈다.

6회말이 되어 0대0의 균형이 깨졌다. 지혁과 마찬가지로 잘 던지고 있던 쉬겔에게 한 방을 먹인 것은 8번으로 나선 메일리였다.

쉬겔이 너무 쉽게 생각한 게 분명했다. 볼 카운트 원 스트라이크 원 볼에서 한가운데 높은 코스로 몰리는 실투가 밀려들어왔다. 비록 메일리가 타격에 재능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이 정도의 공을 허투루 넘기는 타자는 아니었다.

따아악!

엄청나게 호쾌한 타구음이 그 비거리를 짐작케 했다. 한참 동안이나 떠가던 공은 외야의 야쟈수를 훌쩍 넘는 곳에 떨어졌다. 메일리는 육중한 몸으로 차례로 베이스를 찍고 돌아와서는 곰처럼 허허, 웃었다. 지혁도 하이파이브를 하며 파트너의 대형 홈런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리고 7회초. 다시 1번부터 시작하는 이닝. 지혁은 마운드에 올라 침착하게 숨을 골랐다. 오늘의 컨디션은 놀라울 정도로 좋다. 지난 6이닝 동안 80개 남짓의 공을 던졌지만 여전히 체력적으로도 괜찮은 느낌이다. 상대는 우타자 두 명과 제이크 램.

‘램 앞에 주자를 두지 말자. 우선 자미에슨. 두 타석 연속 삼진이었지...’

자미에슨에게 던졌던 투구를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천천히 허리를 굽혔다. 메일리는 타석에 들어선 자미에슨을 흘깃 보고는 패스트볼 싸인을 냈다. 곧장 고개를 끄덕이고는 두 손을 글러브 안에 모았다.

자미에슨이 다리를 흔들며 노려봤지만 지혁의 시야에 자미에슨은 들어오지도 않았다. 홈 플레이트 위에 머릿속으로 그려 놓은 스트라이크 존, 그리고 메일리가 대고 있는 미트의 위치. 오로지 이것뿐이다.

와인드업 이후 힘차게 뿌린 공이 아슬아슬한 위치에 걸쳐 들어갔다. 바깥쪽 낮은 코스를 파고 들어간 공에 심판이 손을 들어 스트라이크 콜을 외쳤다.

“어마어마한 집중력이야.”

호킨스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매일같이 야구를 다섯 게임씩 보는 게 그의 일이다. 그 중에서도 이 정도의 투구 퍼포먼스는 손에 꼽을 만했다.

특히 이 피칭이 마이너리그에서 나오는 것은 더욱 드물었다. 오랜 경험을 갖고 있는 베테랑들이 트리플 A에서 몇 번 보여주기는 하지만 나이 어린 투수들이 하위 리그에서 이런 투구를 하는 일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스윙! 배터 아웃!”

2구도 존에 집어넣어 파울을 만들더니 3구에는 기어이 떨어지는 싱커로 헛스윙을 유도한다. 1회부터 지속되었던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피칭이 7회에도 계속되고 있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로진백을 툭툭 털고 있는 지혁의 모습에서, 분명히 압도적인 위압감이 흐르고 있다.

호킨스는 베이베어스의 더그아웃 쪽을 살폈다. 목소리를 내는 선수도 없고 대기 타석에서 힘껏 스윙을 하며 전의를 다지는 선수들도 없다.

“이건 뭐... 완전히 압도해버렸네.”

상대팀인 베이베어스 뿐이 아니다. 리버워크 스타디움에 모인 모든 관중들이 마운드만을 주목하고 있었다. 오늘 좋은 수비를 보여준 야수들이나 홈런을 때리기도 했던 메일리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들에게는 조금의 관심도 가지 않는다. 시선이 가는 곳은 오로지 한 곳. 마운드.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제르손 몬티야가 몸쪽을 쏜살같이 파고든 패스트볼을 이겨내지 못했다. 다섯 타자 연속 삼진. 방망이에 맞추면 그라운드볼이 나오고 맞추지 못하면 삼진이다.

“하, 하하. 오늘 기사 타이밍 죽였네.”

경기 전에 기사가 올라온 것이 다행이라고 느껴질 정도의 완벽투가 펼쳐지고 있었다. 호킨스를 포함해 이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한 명에게 압도당했다. 그리고 타석에, 그 중 가장 덜 압도당한 타자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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