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 더램 불스의 방식(2).
형진은 스테이크를 한 뭉텅이 썰어내 우걱우걱 흡입했다.
“며칠 굶었냐?”
“네가 사는 거 언제 먹어본지 기억도 안 나.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먹겠냐?”
덩치가 워낙 큰 녀석이라 그런지 먹는 양도 어마어마하다. 게다가 속도는 또 어찌나 빠른지. 달리기 속도만 빠른 게 아니라 먹는 속도도 무지하게 빨랐다.
“하나 더 시켜도 되냐?”
“이형진... 너 이 새끼. 특급 비밀 아니기만 해봐.”
웨이터가 형진의 앞에 놓인 접시를 치우는 동안 형진은 은밀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탬파베이는 시스템이 이상한 팀이야. 몽고메리에서는 야구를 못 하면 피드백을 해 주잖아.”
“당연하지.”
“여긴 아니야. 그러니까... 뭐라고 할까. 못 하는 건 그냥 못한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지혁이 인상을 팍 찌푸렸다.
“야구를 하다 보면 잘 되는 날도 있고 안 되는 날도 있고 그렇잖아. 게임에 나가서 야구를 잘 못하면 그냥 안 되는 날인가보다, 이렇게 취급해. 다른 마이너리그 팀들처럼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오늘은 이게 문제였다, 다음부터는 이렇게 해 봐라. 절대 먼저 말 안 해줘. 절대로.”
형진은 몸을 앞으로 잔뜩 굽히며 말했다.
“네 마음대로 해. 이게 내가 합류한 날에 몬토요 감독이 말해준 전부였어.”
“마음대로 하라고?”
“어. 이런 생각인 것 같아. 야구에 대해서 일절 터치하지 않는다. 타격에 문제가 있는 것 같으면 선수가 알아서 코치한테 가서 배우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라. 수비가 안 되면 수비코치한테 가서 특별 훈련을 요구하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라. 대신.”
“대신.”
“결과가 안 좋으면 너는 끝이다. 끽.”
형진은 목을 한 번 슥 그어보였다. 더램이 독특한 것은 선수들을 평가하는 방식이었다. 메이저리그 팀의 선수 평가 방식을 더램에서도 그대로 취하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탬파베이가 판단하기로는, 더램은 마이너리그가 아닌 셈이다.
기본적으로 메이저리그의 문을 넘은 선수들은 누구나 다 어느 정도의 결과를 보장할 수 있는 선수들이다. 최소한의 성적마저 내지 못한다면 방출되는 것이고. 그 정도의 성적은 마이너리그에 있는 선수를 올려다 써도 대체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메이저리그 팀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꾸준한 플레이를 할 수 있는가이다. 어제의 승리에 도취하지 않고, 오늘의 패배를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 능력. 본인 실력의 100%를 야구장에서 유지할 수 있는 능력. 모든 메이저리그 팀들이 선수들을 평가할 때 최우선으로 두는 가치. 더램에서는 그것을 중요시한다.
“여긴 마이너리그가 아니라 이거네. 메이저리그처럼 뛰어라. 그 중에서도 잘 하는 놈만 올라간다.”
“그렇지. 그래서 출근하는 순간부터 퇴근할 때까지 전부 다 평가하는 거야. 야구하지 않을 때의 모습, 루틴, 열정, 관계. 이런 것들을 보고 메이저리그에서 자리를 유지할 수 있냐 없냐를 보는 거지. 야, 다른 팀이었으면 난 진작에 메이저 갔어.”
“뭐래. 너 방망이 치는 거 때문에 못 갔잖아.”
“죽을래?”
형진이 때마침 서빙되어 나온 두 번째 그릇의 고기를 해치우는 사이, 지혁은 전생에서 떠돌았던 많은 구단들을 떠올렸다.
간신히 콜업되어 올라간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흐르는, 그 알 수 없이 싸늘한 분위기. 이긴 날에 클럽 음악을 틀어놓고 라커룸에서 춤을 추는 와중에도, 진 날에 혼자 괴로워하고 있는 도중에도, 동료들과 대수롭지 않은 장난과 농담을 하는 것조차도 누군가는 지켜보고 또 평가하고 있는 그런 상황들.
“이 모든 것도 다 야구야. 이게 메이저리그고.”
지혁이 처음 메이저리그에 올라갔었던 날, 팀의 베테랑이었던 누군가가 말했었다.
루키 헤이징, 신인들의 맥주 심부름, 빈볼에 대처하는 벤치 클리어링, 배트 플립을 도발이라고 받아들이는 불문율... 이런 것들도 다 메이저리그의 일부분이라며. 야구가 펼쳐지는 무대만이 메이저리그 아니다.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등록된 사람들의 생활이 곧 메이저리그다.
“메이저리그식 평가 방침이라.”
더램이 원하는 게 그거라면 지혁은 자신있었다. 풀타임을 치러 본 적은 없지만, 메이저리그 팀에 나름대로 꽤 들락날락했었다. 아마존보다 훨씬 더 위험한 그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든 그 문화에 적응하려고 발악하기도 했고.
메이저리거가 되어서도 남들보다 한두 시간은 일찍 클럽하우스에 나왔고, 언제나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던 생활이 몸에 배어 있다. 퇴근한 이후에도 따로 개인 훈련을 하고, 스트레칭을 하고, 영상을 보며 공부하던 생활도 마찬가지다.
“읍, 구러니까 롸커웨서도...”
“드러워. 다 씹고 말해.”
형진이 눈웃음을 쳤다. 손으로 손가락 하나를 들고 있었다.
“또 먹겠다고?”
“어. 더 시킨다. 그건 그렇고, 코치들이 그렇게 평가하니까 라커에서도 다들 알아서 하는 거야. 졌다고 짜증내면 그것도 나름대로 마이너스고, 또 졌다고 분해하지 않으면 그것도 마이너스고. 몽고메리까지는 뭘 해도 평가가 좀 유들유들하거든. 여긴 아니야.”
“메이저에 올릴 수 있는 자리는 한정되어 있으니까 그렇겠지.”
마지막 남은 고기 한 덩이를 포크로 집어 삼키며 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한 자리가 안 뚫려. 한 자리가. 내야 백업인 나도 그런데 너도 고생 좀 하겠다. 우리 투수 애들도 눈에 불을 켜고 있거든.”
“다들 성적이 좋긴 하더라.”
“안드리스? 걔는 트레이드로 들어온 앤데 공 꽤 괜찮고. 콜로메랑 로메로는 여기서 되게 오래 있었는데 공 무지 빨라. 타석에 들어가면 보이지도 않아. 미쳤다니까.”
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더램에 합류한지 열흘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불펜에서 본 경쟁자들의 공은 확실히 몽고메리의 투수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탬파베이 레이스와 몽고메리 비스킷츠의 중간에 더램 불스가 있는 게 아니었다. 탬파베이의 바로 턱밑에 더램이 있고, 그 한참 아래에 몽고메리가 있는 것 같았다.
‘이러니까 단번에 메이저리그로 올리질 못했구만. 잠깐. 그러면 프리드먼은 이 때 즈음에 나를 더램으로 올릴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가?’
지혁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의 조각을 맞춰 봤다. 시즌 전 프리드먼은 확장 로스터가 실행되는 9월부터는 지혁의 콜업을 고려하겠다고 했다. 물론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이라는 전제를 달긴 했지만. 패트릭의 멘데스 계약도 걸려 있고.
마이너리거들이 메이저리그 시스템에 적응하고 그 시스템대로 훈련하기 위해 만든 게 지금 더램의 방식이라면, 프리드먼은 분명히 이런 스케줄을 어느 정도 고려했을 것이다. 어쩌면 지혁의 트리플 A 콜업이 조금 늦었을 수도 있다. 7월 중순에야 더램에 합류했으니.
결론에 도달했다. 프리드먼은 애초에 지혁을 엄청나게 고평가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 게 아니고서야 메이저리그 콜업을 걸고 딜을 걸었을 리가 없다. 이번 인생에서의 지혁은 보여준 것이라고는 도미니카 윈터리그에서의 세 경기가 전부였는데, 그걸 보고 미래의 계획을 짜 둔 것.
괜히 프리드먼을 천재 단장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구나. 살짝 소름이 돋을 정도다.
혼자 한참을 생각하고 있던 지혁의 접시를 가리키며 형진이 슬쩍 물었다.
“야, 너는 더 안 먹냐?”
“어. 너 설마? 더 이상은 안 돼. 거기까지만 해.”
“야. 딱 한 접시만 더 먹자.”
“작작해, 진짜. 못 먹어서 죽은 귀신 붙었냐?”
“마지막이야. 엄청 맛있잖아. 한 접시만 더.”
“미친놈아. 맛있는 만큼 비싸다고.”
하지만 기어이 한 접시를 더 먹었다. 지독한 놈이다.
“실책하기만 해라, 진짜로. 내가 세 배는 더 뜯어낸다.”
*
뻐엉!
불펜 포수의 미트를 향해 날아가던 싱커가 꿈틀거리면서 순식간에 떨어졌다. 스트라이크 존 낮은 쪽 경계에 미묘하게 걸쳐 들어간 공. 구속은 91마일이 나왔다.
“91! 코치님, 91인데요?”
“방금 건 볼이었어.”
“이 정도면 방망이 나올 법 하잖아요?”
“골라낼 법도 해.”
알렌이 한 번 마음을 먹고 달라붙기 시작하면, 웬만해서는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지혁은 그냥 웃었다. 알렌이 칭찬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알 수 있다.
브랜든 웹의 싱커였던 공. 그 자체로도 더블 A에서 톡톡히 위력을 발휘했던 공. 그 공이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알렌이 교정해 준 방법대로 던지면서 싱커 자체의 파워가 더 붙었다. 파워를 붙인 이후에도 일정한 릴리즈포인트를 유지하며 제구를 잡아나가는 것은 끊임없이 던지면서 반복하는 일이다.
“그만하고 어깨 마사지나 받아.”
“세 개만 더 던지겠습니다.”
“안 돼. 오늘 벌써 40개야.”
“지금 감이 좋아서 유지시키고 싶은데요.”
“마음대로 해. 대신 몸 관리는 알아서 해. 다치면 감각이고 뭐고 아무것도 안 남아.”
알렌이 냉정하게 돌아서자 불펜 포수도 일어섰다. 지혁도 할 수 없이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두 손가락으로 모두 실밥을 강하게 때리는 싱커의 느낌이 여전히 손끝에서 펄떡거리는 것 같았다.
마사지실 침대에 누워 어깨와 팔을 관리 받는 중에도 머릿속에는 싱커의 궤적과 무브먼트가 생생했다.
웹의 싱커가 한 점을 향해 파고드는 날카로운 맛이 있었다면, 새로 던지고 있는 싱커는 그보다 훨씬 더 파워풀했다. 스피드도 늘었고 힘도 붙었다.
하지만 그만큼 정교한 맛은 떨어졌다. 역동적인 대신 컨트롤하기가 어려워졌다. 이전에 던지던 공들처럼 낙폭을 조절한다거나, 공의 스피드를 조절하기는 힘들었다. 물론 앞으로 더 던지다 보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싱커를 던질 때는 이 바깥쪽 팔꿈치를 더 조심해서 다뤄야 하네.”
그 때 지혁의 팔을 꾹꾹 누르던 트레이너 스펜이 말했다. 백발이 정정한 스펜은 벌써 30년이 넘게 선수들의 몸을 관리해 온 사람이었다.
“자네도 팔꿈치를 바깥쪽으로 틀어버리면서 던지지?”
“네. 맞습니다.”
“몇몇 선수들은 팔꿈치를 패스트볼 던질 때처럼 일직선으로 휘두르는데도 움직임이 있는 공을 던지곤 하지. 그 선수들은 신께 축복받은 거야. 팔꿈치에 무리를 덜 가게 하면서도 공에 자연스럽게 테일링이 걸리니까. 자네는 축복을 받지 못했군.”
전 싱커를 던진다는 것 자체가 축복받은 겁니다, 영감님. 지혁은 속으로만 대답했다.
“팔꿈치를 비트는 건 자네 같은 선수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부하가 걸리는 일이야. 슬라이더처럼 안쪽으로 비트는 것보다, 싱커나 스크류볼처럼 바깥쪽으로 비트는 게 특히 더 그렇지. 이 팔꿈치 관리에 조금이라도 소홀하면 곧장 수술대 행이네. 이 부위는 재활이나 이런 게 없어. 재활은 오히려 악화시킬 뿐이지.” 스펜은 지혁의 왼쪽 팔꿈치를 꾹 누르고는 빙빙 돌리면서 근육을 풀어주었다.
“팔꿈치를 비트는 투수들은 부상을 달고 살지. 큰 부상을 당하는 경우도 정말 많고. 자네처럼 매일같이 마사지를 받는 선수들도 얼마 없어. 이것도 귀찮다고 안 하는 녀석들도 많고.”
“관리 잘 해야죠. 팔이 제 밥줄인데.”
“그러니까! 그런 마음으로 세심하게 관리해야 되는데. 빠른 공 팍팍 집어넣으니까 자기 팔이 무쇠로 만든 줄 아는 멍청이들이 많단 말이야. 쯧쯧...”
스펜이 팔꿈치에 남은 마사지 오일을 수건으로 슥 닦아내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투구를 많이 하면 자연스럽게 팔꿈치에 무리가 가니까. 자네는 정말로 관리 잘 하길 바라네. 매일같이 와서 나를 귀찮게 해도 괜찮으니까.”
“하하. 네. 그러겠습니다.”
“다 됐네. 내일도 올 건가?”
“그럼요. 불펜에서 간단히 던지고 또 오겠습니다.”
스펜은 인자한 미소를 한 번 지어보이고는 팔을 휘휘 저어보였다. 손을 흔들어주고 마사지실에서 나온 지혁은 왼쪽 팔꿈치를 한 번 슬쩍 만졌다.
‘확실히 싱커는 부상당하기 쉬운 공이긴 하지.’
웹의 싱커를 배우고 난 이후로 싱커를 엄청나게 던져댔다. 도미니카에서부터 스프링캠프를 거쳐 몽고메리, 그리고 지금의 더램에서까지. 웹의 싱커를 처음 던지기 시작한 이후로 공은 던진만큼 좋아졌다. 구속도 올라왔고, 무브먼트도 좋아졌고. 지금은 새로운 싱커를 연습하고 있고. 그 동안 팔 관리에 살짝 무신경했던 부분이 있었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한 번 돌아본다. 너무 위만 보고 달려오지는 않았나.
복기한다.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고 몸의 한계를 넘어서는 짓을 하지는 않았는지.
그러면서도 또 생각한다. 한계까지 몰아붙였는지. 더 끌어올릴 수 있는데 멈추는 것은 아닌지.
‘던지는 걸 줄일 수는 없어. 지금 공을 끌어올리지 않으면 정체될지도 몰라. 그래도 관리에는 좀 더 신경을 써야겠다. 후...’
지혁은 왼팔을 쭉 잡아당겨 스트레칭을 하면서 라커로 향했다. 스펜 트레이너는 마사지실 문에 기대어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