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 프리드먼의 고민.
7월 28일, 월요일.
어둑해진 더램 불스 애슬래틱 파크에 두 사람이 들어왔다. 모자에 눌린 뒷머리가 이리저리 뻗친 게 딱 봐도 며칠은 제대로 씻지도 못한 사람처럼 보였다.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얼굴에는 피곤함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하지만 그 꾀죄죄한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게도, 좁은 통로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향해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
“단장님. 연락도 주시지 않고 갑자기 여긴 어떻게...”
“꼭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 불쑥 찾아와서 미안합니다, 찰리.”
더랜 불스의 찰리 몬토요 감독은 조금 당황했다. 앤드류 프리드먼과 체임 블룸이 거의 폐인처럼 늘어진 다크 서클을 깊은 후드 티셔츠로 애써 가리며 더램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선수들의 훈련은 이미 끝났다. 몇몇 선수들만 남아 개인 훈련을 진행하고 있었다. 더램의 훈련 스케줄을 잘 알고 있는 블룸이 그냥 프리드먼을 데려왔을 리 만무하다.
“찰리. 나랑 같이 좀 다니죠.”
“뭐, 그러시죠.”
타자들이 토스 배팅을 치고 있는 근처에서 타격코치와 한참을 얘기하던 프리드먼은 몬토요 감독을 돌아보며 내야 뎁쓰를 물었다.
“내야 유틸리티들. 컨디션이 좀 어떻죠?”
“내야라... 로비 프라이스는 타격이 영 안 올라오고. 마이크 폰테낫은 그저 그래요. 평소의 그 같다고 해야 하나. 윌슨 베테밋은 부상 이후에 폼이 다 죽어버렸고.”
“이형진은?”
“형진. 후.”
몬토요 감독은 한숨을 한 번 길게 내쉬고는 턱을 긁었다.
“타격이 영 안 올라오네요. 좋아질 것 같다가도 또 금방 무너지고. 조금 감을 잡는가 싶다가도 다시 밸런스가 안 잡히고.”
“곤란하네.”
“스스로도 타격이 워낙 안 되니까 집중력이 많이 떨어진 느낌이에요. 수비도, 주루도. 미스 플레이가 조금씩 나오고 있고... 머릿속이 복잡할 겁니다.”
탬파베이의 입장에서는 팀 내 유망주 랭킹 2위인 이형진의 부진이 굉장히 신경 쓰였다. 작년 시즌 초에 당했던 끔찍한 부상이 아니었다면, 작년 시즌 중에 메이저리그로 올려 경험을 쌓아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큰 부상을 당했고, 그 이후의 성적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타격이 좋지 않은 것을 감수하고라도 수비 요원으로 쓰고 싶지만 그것도 타격이 최소한은 되어야 하는 일. 트리플 A에서도 .208을 치고 있는 선수를 메이저리그로 올릴 수는 없다.
게다가 이형진의 나이는 이제 스물넷. 올 해를 트리플 A에서 마친다면 내년부터는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나이.
“이게 한계일지도 모르겠네요.”
블룸이 씁쓸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기본적으로 유망주라는 존재는 그렇다. 5년 뒤의 미래를 예측하며 모셔온 선수들에게 큰 기대를 걸지만, 정작 한 달 뒤에 그 선수가 주전으로 나서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이 복권에 비유하는 건 충분히 그럴 만해서다.
단 한 명도 기대하지 않았던 31라운더 출신 케빈 키어마이어는 4년 만에 메이저리그의 주전 선수가 된 반면, 탬파베이에 합류한 이후 탑 5에서 벗어나본 적이 없는 이형진은 결국 벽에 부딪혔다.
“하아.”
마치 담배라도 입에 문 듯 깊은 숨을 내뱉은 프리드먼이 몬토요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아무도 듣지 못하게 하려는 듯 목소리를 잔뜩 낮춘 채였다.
“로비 프라이스는 방출할 겁니다. 그리고 닉 프랭클린이 팀에 올 거예요. 프랭클린의 몸 상태를 봐야 되겠지만, 일단은 트리플 A에서 시험할 겁니다.”
“프랭클린? 그게...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 시애틀 선수였나요?”
“네. 내년 메이저 팀 내야 백업 자리는 그 친구가 가져갈 거예요.”
“흠... 알겠습니다. 2루 자원이죠?”
“유격수나 1루도 볼 수는 있긴 합니다. 2루가 제일 맞는 곳이고.”
프리드먼과 블룸은 몬토요 감독을 대동한 채 불펜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불펜에는 알렌 코치와 투수들 몇 명이 훈련 중이었다. 헝거 게임에 합류한 선수들이 많았다. 알렉스 콜로메, 마이크 몽고메리, 맷 안드리스 같은 선수들. 물론 지혁도 포함되어 있었다.
“방해해서 미안합니다.”
선수들과 한 번씩 가벼운 악수를 나눈 프리드먼이 알렌 투수코치의 옆에 가 섰다. 밖에서 몬토요 감독에게 물었던 것처럼, 알렌에게도 선수들의 컨디션을 물었다.
“컨디션? 글쎄... 지금 당장 메이저리그로 콜업할 선수를 찾는 겁니까?”
“비슷하다고 해야겠죠. 이건 아직 비밀인데, 베다드를 지명할당 할 겁니다. 클레임 들어올 팀도 없을 것 같고.”
“결국 그렇게 됐군요. 미안한 말이지만 베다드는 너무 늙었어. 이제 몸이 돌아가지를 않아요.”
“지금 상황에서 한 명만 올리라고 한다면, 닐. 당신은 누굴 추천할 겁니까?”
“선발 자원이 필요한 건 맞죠?”
이번 시즌 탬파베이의 5선발 자리는 그야말로 땜빵이었다. 불펜 자원들이 수시로 선발 기회를 받았고, 그럴 때마다 작은 성공과 작은 실패를 반복했다. 누군가가 선발 자리로 가면 또 누군가가 불펜에서 그 역할을 대신하고, 또 빈자리가 나면 선발 테스트를 받았던 선수가 다시 불펜으로 이동하는 현상의 되풀이.
지긋지긋한 부상 악령이 탬파베이를 그렇게 만들었다. 프리드먼이 고개를 끄덕이자 알렌은 잠시 고민했다.
“흠... 내가 저번에 보고했던 건 기억하죠? 알렉스 콜로메는 릴리버로 전환시키는 게 나아요. 제구가 불안한 게 당최 잡히지를 않아서. 그냥 패스트볼로 쑤셔 넣는 게 나으니까.”
“미안한데 닐. 내가 좀 바빠서. 결론만 말해 줘요.”
“지금 당장이라면 네이트 칸스. 선발로 쓸 거면 그나마 이 친구가 가장 낫습니다.”
“칸스? 이건 약간 의외인데.”
“왜죠?”
“성적은 마이크 몽고메리가 훨씬 더 좋잖아요.”
알렌은 한 쪽 구석에서 쉐도우 피칭을 반복하는 칸스를 한 번 쳐다보았다.
“몽고메리는 스태미너가 부족합니다. 지난 두 경기에서 슬슬 조짐이 드러났어요. 이미 많이 지쳐있는 상태입니다. 체력적인 부담을 많이 느끼고 있어서 공이 많이 날립니다. 그래서 기복이 너무 심해요. 제구가 잡히는 날에는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할 투구를 하지만, 제구가 안 잡히는 날에는 여기서도 안 통하는 피칭을 합니다. 칸스는 그나마 기복이 좀 덜하고. 최근 들어서는 제구도 조금씩 잡혀가고 있고.”
“으음.”
프리드먼이 캐치볼을 하고 있는 지혁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 친구는?”
“문? 아직 합류한지 얼마 안 돼서 평가하기는 좀 이릅니다. 두 경기 밖에 못 봤어요. 벌써 올릴 생각입니까? 당신답지 않은데.”
“그건 아닙니다. 당신이 저 친구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들어보고 싶어서.”
“싱커를 제외하면 구위가 좋다고 할 수는 없죠. 후하게 봐줘야 메이저리그 평균 정도? 평균 이하라고 보는 게 나을 겁니다. 그리고 제구는 나쁘지 않은 편이고. 좋은 건 일관성. 내 눈으로 확인한 것만 놓고 보면 기복은 거의 없는 편이에요. 마운드에서 노련하고, 멘탈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알고 있는 투수랄까요.”
“내년 시즌 말 즈음에는 메이저 레벨이 될 거라고 봅니까?”
프리드먼의 직접적인 질문에 알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되고도 남죠. 사실... 아닙니다. 평가는 여기까지만 하죠.”
“오케이. 알겠습니다.”
프리드먼의 머릿속은 터져나갈 것처럼 복잡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트레이드 팀은 움직이고 있다. 데이비드 프라이스라는, 지금까지 프리드먼이 결코 가져본 적 없었던 리그 최고 수준의 매물을 어떻게 팔아야 하는가를 결정할 시간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미 5월 말부터 시작해온 프라이스 트레이드의 대상 팀은 세 팀으로 좁혀져 있다. 그 중 LA 다저스는 훌리오 유리아스와 작 피더슨, 코리 시거 같은 유망주들을 끝끝내 내주지 않을 것이 확실했다. 프리드먼은 다저스를 정리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오스카 타베라스와 카를로스 마르티네즈, 둘 중 하나만 주겠다는 입장이 명확했다. 프리드먼이 양보해서 둘 중 하나만 받는다고 해도, 나머지 카드들을 두고 적잖이 부딪혔다. 프라이스의 가치를 채우기 위해서는 유망주 팜을 탈탈 털어도 모자람이 없다는 기사들이 무색하게도, 세인트루이스는 가치 있는 선수들을 전혀 내놓지 않으려 들었다.
세 번째 대상 팀은 시애틀 매리너스였다. 타이후안 워커에 닉 프랭클린. 프리드먼은 여기에 시애틀 팜 내 유망주 20위권에 있는 선수 한 명, 혹은 30위권에 있는 선수 두 명까지 제시했다.
시애틀의 단장 쥬렌식은 프라이스를 영입하고 싶어서 애가 제대로 탄 사람이다. 타이후안 워커를 내줄 것인지를 두고 지지부진한 협상을 계속해 왔지만, 결국 쥬렌식은 워커를 내놓을 것처럼 보였다.
사실 시애틀의 관계자들은 타이후안 워커, 혹은 그 대체제로 간혹 언급되곤 하는 제임스 팩스턴을 트레이드 매물로 내놓고 싶어하지 않았다. 쥬렌식 단장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데이비드 프라이스를 지금 데려가면 시즌 마지막 두 달 반과 내년 시즌까지 쓸 수 있다. 그 뒤는 FA다. 1년하고 조금 더 프라이스를 쓰기 위해 4년이 넘은 서비스타임을 가진 특급 유망주를 내놓는 것은 손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래서 프리드먼은 쥬렌식을 열심히 구워삼았다. 바쁜 와중에도 결국 직접 시애틀까지 다녀온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미국 동남쪽 끝에 위치한 탬파에서 북서쪽 끝에 있는 시애틀까지 장거리 비행까지 해 가면서 협상을 진척시켰다. 프리드먼은 쥬렌식의 마음을 최대한 돌려놨다고 생각했다. 메가 딜이 눈앞이다. 쥬렌식은 결국 워커를 내놓을 것이다.
“알렌. 프라이스가 팀을 옮길 거예요.”
“... 나도 대충은 들었습니다.”
알렌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알렌이 키워낸 선수들 중 가장 위대한 선수가 프라이스였고, 프라이스도 자신을 성장시켜 준 가장 큰 은인으로 늘 알렌을 꼽곤 했다. 두 사람은 특별한 관계다. 프리드먼도 그 관계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직접 얘기해주러 더램을 찾은 것이다.
“우리 재정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솔직히. 프라이스의 연봉 정도는 감수할 수 있잖습니까? 나는 아직도 이 트레이드가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앤드류. 그 정도의 투수는 어디 가서도 구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우리 팀에 얼마 없는 프랜차이즈에요. 구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라구요.”
“당신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프라이스를 FA로 잃을 바에는 어떻게든 좋은 선수들을 데리고 오는 편이 낫습니다. 프라이스를 그저 보상픽 한두 장에 넘기는 게 훨씬 아까운 일이잖아요.”
“난... 아닙니다. 됐어요.”
더 아쉬운 소리를 쏟아내려던 알렌이 그냥 말을 멈추었다. 일개 투수코치인 알렌이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결국 프라이스는 트레이드 될 것이다.
“미안합니다. 당신이 프라이스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고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이해를 구하러 온 거기도 하구요.”
“당신은 당신의 일을 하고. 나는 내 일을 해야죠.”
“맞습니다. 여기 있는 선수들 중에서 프라이스의 뒤를 이을 만한 투수를 다시 만들어 내는 거죠. 그게 우리의 일이고.”
프리드먼은 낮게 대답했다.
스몰마켓 팀의 비애랄까. 프리드먼은 스몰마켓에서 팀을 월드시리즈까지 진출시키는 쾌거를 이루어냈지만, 결국 제임스 쉴즈나 데이비드 프라이스 같은 선수들을 지켜내지는 못했다. 갈수록 몸값이 폭등하는 선수들이 적은 돈을 받으면서까지 이 작은 팀에서 던지기를 바랄 수는 없다.
“저 친구, 저 공. 싱커 맞습니까?”
한참을 말없이 서 있던 프리드먼이 문득 물었다. 프리드먼의 손가락이 향한 곳에서는 지혁이 새로운 싱커를 시험하고 있었다.
“네. 던지는 법을 조금 손 봤습니다. 테스트 중입니다.”
“왜죠? 그 전까지의 싱커도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프리드먼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그러자 알렌의 목소리도 한결 밝아졌다.
“더 성장하고 싶다더군요.”
“위험하지 않나요?”
“...”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망설이던 알렌이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위험할 줄 알았죠. 하지만 요 며칠 보면서 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분명히 더 좋은 싱커를 던지게 될 겁니다.”
“어떻게?”
“더 빠르고, 더 강한 싱커. 브랜든 웹이 던지던 공처럼 날카롭고 정교하면서도, 또 케빈 브라운이 던지는 것처럼 파괴적인 싱커. 아마 던질 수 있을 겁니다.”
프리드먼은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알렌은 그 누구에게도 이런 칭찬을 하지 않았었다.
“매일 저렇게 세 시간씩을 연습하고 있어요. 쉐도우 피칭, 튜빙으로 릴리즈포인트를 잡는 연습, 불펜 피칭... 하루도 빼놓지 않고. 더램에 합류한 이후로 시합날을 제외하고는 하루도 거르지 않았습니다. 가끔은 나도 질릴 때가 있는데 저 친구는 그게 없어요.”
알렌의 마지막 말을 듣는 순간, 프리드먼은 마지막까지도 속으로 고민하고 있던 프라이스의 트레이드 철회를 완전히 내려놓았다. 생각보다 훨씬 더 큰 투수가 될지도 모른다.
부르르-
프리드먼은 품 속에서 울리는 핸드폰을 꺼냈다. 한 장의 사진과 짧은 메시지가 프리드먼의 눈앞에 펼쳐졌다.
- 오늘부로 내가 페르난도 멘데스의 공식 에이전트입니다. - From. 패트릭 에이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