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 선물.
2014년 7월의 마지막 날이 끝나기 3분 전. 트레이드 사무국으로부터 최종 승인을 알리는 확인 전화가 동시에 세 구단의 프런트 오피스에 도착했다. 그리고 트위터를 통해 트레이드가 발표된 순간, 전 미국의 야구 포럼이 터질 듯이 달아올랐다.
- 데이비드 프라이스, 디트로이트 행!
- 벌랜더-프라이스-슈어져-산체스-포셀로. 꿈의 선발진 구축한 디트로이트!
- OH, MY GOD! 돔브로스키의 전력질주!
처음의 시선은 디트로이트가 구상한 선발진에 쏠렸다. 한 선발진에 사이영 수상자가 세 명. 언론들은 벌써부터 애틀란타가 구성했던 전설적인 투수진에 빗대는 등 난리를 피워대고 있었다.
- Price의 Price가? 앤드류 프리드먼, 의아한 결정.
- 가치가 떨어진 프라이스, 탬파베이의 속내는?
드류 스마일리. 디트로이트의 5선발이었던 선수.
게다가 시애틀의 백업 내야수인 닉 프랭클린.
18살이라는 아주 어린 나이의 유망주 윌리 아다메스.
탬파베이가 프라이스를 보내고 얻은 선수는 이게 다였다. 표면적인 가치가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줄을 이었고, 탬파베이의 팬들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팀의 역사적인 프랜차이즈를 보내면서 얻은 게 이름도 제대로 들어본 적 없던 선수들이라니!
“다들 바짝 긴장해.”
트레이드가 끝난 뒤 대부분의 직원들은 퇴근했지만, 홍보팀과 언론대응팀 직원만큼은 남아 노트북 화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치 용암이 부글거리는 화산인 양, 공식 트위터와 페이스북 계정에 댓글이 수십 개씩 업데이트되고 있다.
“대부분이 욕...이네요.”
“각오했잖아.”
“좀 심한 것 같은데요.”
“눈 질끈 감아.”
충격적이었을 터다. 세이버매트릭스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드류 스마일리는 아주 우수한 투수다. 지금의 기댓값은 안정적인 로테이션을 돌 수 있는 3~4선발이지만, 세이버적인 지표가 나타내는 것은 아주 훌륭한 3선발과 2선발까지 기대할 수 있는 투수. 그렇기에 탬파베이와 프리드먼은 디트로이트에서 얻어 올 핵심 선수로 스마일리를 꼽았다.
그러나 팬들에게 스마일리는 낯선 선수다. 메이저리그에 선을 보인지 얼마 되지도 않은데다가 디트로이트의 이름값 있는 선수들에 밀리고 치인 하위 로테이션 선수에 불과하다. 수학적인 전문가들과 라이트한 야구팬들 사이의 괴리감에서 오는 충돌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어떤 욕이나 악성 댓글에도 손대지 마. 하나라도 지웠다가는 난리가 날 거야. 무조건 그냥 둬. 눈 똑똑히 뜨고 다 지켜봐.”
팀장의 단호한 말에 직원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가끔 프리드먼 단장을 향한 인신 모독성 글들이 섞여 있었기 때문에 골라내는 작업은 필요했다. 어쩌다 하나씩 올라오는 그 글들을 위해 탬파베이 레이스라는 조직에게 가해지는 비판과 비난들을 오롯이 지켜보고 있어야 했다.
새벽은, 아주 길었다.
*
앤드류 프리드먼이 아주 큰 손해를 봤다는, 최악의 선택이었다는, 차라리 프라이스를 남기고 겨울에 트레이드 시키는 게 나았을 거라는 기사와 칼럼과 SNS 멘션들이 새벽 내내 쌓였다. 아마 그 내용을 다 프린트해서 단장실에 쌓는다면 프리드먼이 앉을 자리조차 없을 것이다.
“좋은 아침!”
그러나 프런트 오피스의 문을 열고 들어온 프리드먼은 평소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커피를 흔들며 들어온 프리드먼은 밤새 모니터 앞에서 욕을 지켜보며 눈이 시뻘개진 직원들의 등을 한 번 두드려 주었다.
“케이트! 오늘 검토해야 될 자료들이랑 기자회견 스케줄 가져다 줘.”
“네. 지금 바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단장실에 들어온 프리드먼은 곧장 인터넷을 켰다. 그가 가장 먼저 접속한 사이트는 mlb.com이나 espn 등이 아니었다. 마이너리그 공식 사이트인 milb.com이었다. 그리고 가장 보고 싶었던 기사가 메인 화면의 절반을 차지하며 눈앞에 떠올랐다.
- 퍼펙트게임! 미스테리 피쳐, 우뚝 서다.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내야 플라이로 유도하고 손을 번쩍 치켜든 지혁의 사진이 모니터를 가득 채웠다. 퍼펙트게임. 아무리 읽어도 기분 좋은 단어였다. 몇십 번을 곱씹어도 웃음이 자꾸 새어나왔다.
지금까지 퍼펙트게임은 탬파베이에겐 악몽 같은 말이었다. 탬파베이 레이스는 메이저리그에서만 세 번의 퍼펙트게임을 상대에게 헌납한 최초이자 유일한 팀이었다. 벌리, 브래든, 킹 펠릭스가 레이스를 상대로 퍼펙트 승리를 거뒀다. 마이너리그 팀도 꼼짝 못하고 퍼펙트를 헌납한 경기가 있었고. 이래저래 기록을 헌납하기만 했지, 실제로 기록을 달성한 적은 없었다.
그런 와중에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깜짝 기록이 쓰여졌다. 비록 메이저리그가 아닌 트리플 A에서의 경기였지만, 탬파베이 레이스라는 조직에서 처음으로 나온 대기록이다. 메이저리그 팀인 레이스는 물론 모든 마이너리그 팀을 통틀어서 창단 이래 최초의 기록을 쓴 것이다. 영입한지 1년도 안 된, 단순히 메이저리그 5선발 경쟁자일줄 알았던 문지혁이라는 투수가.
“단장님. 자료 가져왔습니다.”
“땡큐. 오늘 우리 홍보팀 따로 하는 거 있나?”
“언론대응팀이 고생하고 있어서 헬프 들어갔습니다.”
“안 돼.”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긴? 문의 퍼펙트 가지고 대대적으로 알려야지.”
“...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샬럿으로 갈 거야. 더램 선수단에도 연락해 둬.”
“비공개로 가실 겁니까?”
“아니. 기자들 달고 갈 거야.”
“엄청나게 몰릴 텐데요.”
“주의를 이쪽으로 최대한 돌려야지. 어차피 트레이드 반응은 시간 지나면 잠잠해 질거야. 스마일리가 잘 해주면 더 금방 잦아들 거고. 이 기록의 좋은 반응을 최대한 부각시키고 오래 끌고 나가야 해.”
케이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단장실을 빠져나갔다. 프리드먼은 다시 한 번 기사의 제목을 소리내어 읽었다. 퍼펙트게임이라는 퍼펙트한 어감이 입에 착 붙었다.
*
샬럿의 밤은 아주 길었다. 다음 날 아침 오랜만에 아주 푹 잔 이후에 눈을 떴는데 머리가 지끈거렸다. 간신히 실눈만 뜨고 시간을 확인한 지혁은 여전히 술 냄새가 밴 몸을 씻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한 시간은 더 누워 있어야 할 것이다.
어젯밤. 숙소로 돌아가려는 지혁을 붙잡아 세운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찰리 몬토요 감독이었다. 퍼펙트게임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내 놓고 맥주 한 잔은 무조건 해야 한다며.
정신이 멍하고 피로감까지 몰려와서 일찍 자야겠다고 생각했던 지혁은 샬럿의 원정 숙소 근처 술집에서 취할 때까지 맥주를 마셔야 했다. 감독과 코치들, 그리고 선수들이 모두 모인 어마어마한 규모의 파티였다.
“내일 경기는...”
“그건 내가 생각해! 일단 마셔, 지금을 즐기라고!”
몬토요 감독이 이렇게까지 싱글벙글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더램에 합류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아직 어색함이 남아있는 사이였지만, 퍼펙트게임이 그 서먹함마저 앗아간 모양이었다.
“남들은 평생에 한 번도 못 하는 기록이야.”
“전 아직 실감이 잘 안 나서요.”
“퍼펙트를 한 것 보다 싱커가 잘 들어간 게 훨씬 더 기분이 좋지?”
“사실... 네.”
“하하하. 너도 참 이상한 놈이다.”
알렌 코치도 모처럼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마시며 말했다. 사실 알렌이 퇴근한 이후에도 남아서 수건을 쥐고 몇백 번이나 더 팔 스윙을 연습했는지 굳이 말하지 않았다.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 싱커 그립을 쥐고 완벽한 공을 던지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두 시간씩 꼬박꼬박 한 것도. 또 가장 좋은 공을 던졌을 때를 녹화한 비디오를 계속해서 돌려봤다는 사실도.
싱커를 완벽하게 던지기 위함이었다. 선수 생활 3년과 바꾼 브랜든 웹의 싱커를, 문지혁의 싱커로 탈바꿈시키는 과정에서 필요한 모든 노력을 다 쏟아 붓고 싶었다. 이번 생이 끝날 때에도 여전히 후회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러니까 남들이 볼 때는 말도 안 되는 성장 속도가 나온 것이다. 하루 종일 싱커 생각만 하고 있는데도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포기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
“끄아아... 아. 죽겠네.”
지혁은 묵직한 추가 들어있는 것 같은 머리를 흔들며 자리에서 힘든 몸을 일으켰다. 핸드폰을 켜니 축하한다는 문자가 몇십 개는 와 있었다. 패트릭과 티미, 몽고메리의 선수와 코치들, 심지어 데이토나 컵스 시절 알고 지냈던 몇몇 선수들까지. 샘 호킨스도 자기가 쓴 기사와 함께 메시지를 보내 놨다. 지혁은 그 중에서 약간 이질적인 문자 하나를 찾아냈다.
- 축하합니다, 문지혁 선수. 클럽 레코드인 것을 알고 계신가요? 오늘 단장님이 직접 방문하실 예정입니다. 기자회견이 잡혀 있으니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탬파베이의 직원이 보낸 문자였다. 프리드먼 단장이 직접 온다.
“뭐, 클럽 최초 기록이라니까...”
올 만 하긴 하지.
오랜만에 보는 프리드먼은 어떤 말을 할까 궁금했다. 찬물로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으며 프리드먼과의 첫 만남이자 유일한 만남을 떠올렸다. 그는 마이너리그에서 괜찮은 성적을 찍으면 올해 안에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올리겠다고 했었다. 지혁은 당당하고 자신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러겠노라고 했었고.
지금까지 기록한 성적은 두 사람이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좋았다. 몽고메리에서는 15경기에 선발 등판해서 10승을 거뒀고. 더램에서는 올라온 지 3경기만에 2승. 그 중 하나는 퍼펙트게임이니까. 아마 약속을 지키지 않고는 못 배기겠지. 더램에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르겠지만, 완전히 말아먹지만 않으면 될 것이다.
“눈앞으로 왔다. 메이저리그.”
지혁은 왼손을 한 번 불끈 쥐어보였다. 저번 생보다 메이저리그 데뷔를 6년이나 앞당긴 셈이다.
*
“문. 축하합니다.”
BB&T 파크 원정 라커룸에 프리드먼이 들어왔다. 프리드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성큼성큼 다가와 지혁과 손을 한 번 마주친 뒤 꽉 안았다. 뒤에는 엄청난 기자 떼가 몰려 있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내가 해야죠. 우리 팀의 역사를 써 줬으니까요.”
프리드먼의 뒤를 따라온 프런트 직원 두 명이 커다란 현수막 하나를 폈다.
‘클럽 역사상 최초의 퍼펙트 게임. 9 IP, 0 HIT, 0 BB, 0 R. Moon Ji-Hyuk.’
지혁이 마운드에 서 있는 사진에 멋진 폰트로 문구와 기록을 덧붙인 것이었다.
“한 번 봐요.”
“하하. 멋있네요. 정말 감사...”
“하나 더 있어요. 이것도.”
또 다른 직원은 액자를 내밀었다. 아웃카운트 27개를 잡는 사진들을 나란히 붙여 만든 사진과 정중앙에 포효하는 지혁이 걸려 있었다. 구석에는 조그맣게 ‘Thanks, Moon!’이라는 코멘트도 새겨져 있었고.
“이걸 언제 만드셨어요? 시간도 없으셨을 텐데.”
“우리가 이런 거 하라고 있는 사람들인데. 이 정도는 금방이죠.”
지혁보다 주위에 있는 선수들이 더 들뜬 것 같았다. 현수막을 라커 안에 이리 저리 걸어보며 장난을 치고, 몇 명은 액자를 지혁의 라커 앞에 기대 세워놓고 브이 자를 그리며 기자들에게 포즈를 취해 보였다.
“문지혁 선수, 소감 한 번만 말씀해주세요.”
기자들 중 한 명이 못 참고 튀어나왔다. 옆에 서 있던 프리드먼이 한 손을 들며 저지했다.
“이제부터 기자회견 할 겁니다. 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여러분. 라커에서의 인터뷰는 오늘 경기가 끝난 뒤에 정해진 시간에 한번에 진행하겠습니다. 대니! 기자회견 준비는 됐죠?”
“네. 이동하시면 됩니다.”
프리드먼이 지혁의 허리에 손을 턱 얹으며 작게 말했다.
“갑시다. 내가 준비한 선물이 거기에 하나 더 있으니까.”
귀에 대고 낮게 속삭인 말에, 지혁의 눈이 번쩍 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