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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전처리, 회귀하다-70화 (71/204)

< 70 - 채찍과 당근. >

연두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호킨스의 기사를 읽어나갔다.

- 문지혁은 지난해 데뷔를 한 것에 이어 이번 시즌에도 5선발 자리를 꿰찬 것으로 보인다. 물론 랭카스터 감독이 아직까지 개막 로스터를 확정하지는 않았지만, 스프링캠프에서 보여준 문지혁의 투구를 보면 선발 한 자리를 꿰찬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번 시즌 탬파베이의 선발 로테이션은 크리스 아처-알렉스 콥-드류 스마일리-제이크 오도리찌로 돌아간다. 마지막 조각을 두고 여전히 트리플 A에서 정체 중인 알렉스 콜로메와 마이크 몽고메리, 맷 안드리스 등이 경쟁하고 있다. 하지만 문지혁은 이미 그 경쟁을 넘어선 듯 여유로워 보인다.

문지혁은 작년 인상적인 평가를 받았던 싱커를 단 하나도 던지지 않고, 스프링캠프 내내 커브를 연마하는 데 중점을 두는 모습이었다. 마치 베테랑 투수들이 자신의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는 듯한 과정을, 메이저리그 경력이 3개월도 채 안 되는 투수가 걷고 있는 것이다. 경쟁의 장에서 자신을 선보여야만 하는 투수에게는 있을 수 없는 여유다.

만약 랭카스터 감독이 문지혁을 5선발로 낙점했다면, 문지혁이 투수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크다. 공격력이 약한 대신 투수력과 수비력으로 승부를 보는 탬파베이에서 선발진 한 명 한 명이 부담해야 하는 역할도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만약 지난 시즌처럼 5번째 선발이 정해지지 않고 시즌 내내 휘청거린다면, 탬파베이는 작년처럼 그 ‘한 끗’을 넘어설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성적은 안 좋았지만요.”

선발로 세 경기, 중간으로 두 경기를 나서 13이닝을 던지며 5실점. 홈런도 두 개를 내줬다. 싱커를 던지지 않고 높은 볼 위주로 던지다 보니 지혁이 자랑하던 그라운드볼 비율도 47%에 머물렀다. 표본이 작긴 하지만 이 정도면 극단적인 플라이볼 피쳐라고 봐도 무방한 투수가 된 것이다.

“괜찮아. 어차피 시즌 들어가면 다시 싱커로 승부를 보게 되어 있으니까. 커브는 두 번째 옵션이라고 나한테 분명하게 말했어.”

패트릭은 걱정하지 않는 듯이 턱을 긁었다. 실전에서뿐 아니라 연습에서도 극단적으로 패스트볼과 커브 조합만 던지고 있는 지혁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자신의 정체성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을 것이다.

“자. 오늘은 퇴근해. 우리도 이제 일은 거의 끝났으니까. 시즌을 기다리면서 푹 쉬면 될 거야.”

“대표님은요?”

“난 멘데스랑 다른 선수들 쪽 기사도 살펴야 돼.”

“으. 인턴은 퇴근하라고 하면서 자기는 남아서 일해야 된다는 상사. 싫은데요, 그거?”

“됐어. 넌 문만 전담해서 맡아.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저 그러면 진짜로 가요?”

“가.”

연두가 짐을 챙겨 일어나려던 순간에, 지혁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패트릭?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대표님. 저기 제 일감이 스스로 굴러들어왔는데요. 그리고 아마 지금 일을 시킬 것 같아요.”

“... 그래. 너도 일복 하나는 타고난 것 같다.”

*

4월 4일, 스프링캠프 마지막 경기.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의 경기에서 탬파베이는 안타를 딱 2개만 때려내는 빈공 끝에 0대1로 패했다. 물론 디트로이트의 투수들이 대부분 메이저리그에서 뛸 선수들이긴 했지만, 탬파베이의 팀 컬러가 그대로 드러난 한판이었다. 투수들의 역투에 타자들이 응답하지 못하는 그런 컬러.

마치 지난해를, 지금까지의 탬파베이를 떠올리게끔 만드는 그런 경기가 끝난 뒤의 미팅. 클럽하우스 한가운데에 앉아 있는 랭카스터의 위협적인 표정이 무서웠지만 랭카스터는 오히려 이보다 더 할 수 없을 정도로 침착했다. 아니, 침착해 보였다.

“괜찮아. 경기 내용이야 이렇게 엉망일 때도 있어.”

처음에 60명이 넘게 시작했던 스프링캠프 멤버 중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는 건 30명 남짓. 당장 내일 모레 치러질 개막전에도 이 멤버들이 대부분 출전한다. 랭카스터는 개막 시리즈를 치르기도 전에 선수들의 기를 꺾지는 않을 모양이었다. 따뜻한 격려로 시작하는 걸 보니.

“내가 화를 내면서 이 테이블과 의자를 집어던지고 클럽하우스를 때려 부숴도, 타자들의 타격감이 하루아침에 돌아오지는 않아. 그건 어쩔 수 없지. 문제는.”

아무래도 잘못 짚었나 보다. 이 사람은 화가 나 있는 것 같았다. 첫 마디는 따뜻한 격려 따위가 아니었다. 아마... 화를 내기 직전에 밑밥을 깔아두는 것 같은, 그런 말이었다. 지혁은 미친 들소가 농담을 할 때마다 그게 농담인지 아니면 진담인지 헷갈려서 진이 빠질 지경이었다. 본능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사람이라서.

“허슬을 아끼는 녀석들이 눈에 보였다는 거지.”

몇몇 선수들이 움찔했다. 옆으로 빠져나가는 타구에 몸을 날려서 막아 세울 도전을 해볼 법 했던 내야수들이라거나, 장타를 주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적극적으로 앞으로 달려나오는 선택을 하지 않은 외야수들, 그리고 투수 앞 땅볼을 친 상태에서 1루까지 전력으로 달려나가지 않은 선수들.

“헤이. 너희들. 수도 없이 말했지만, 우리 팀에게는 허슬이 중요하다. 그래서 내가 우리 팀에 감독으로 부임한 거고. 언제나! 모든 플레이에! 몸을 아끼지 마!”

지혁은 한가운데 위치한 랭카스터 넘어 그의 맞은편에 앉은 내야수 팀 베컴의 표정이 썩어들어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디트로이트의 유일한 득점은 베컴의 옆을 스쳐 지나가는 중전 안타에서 나왔다.

“오늘, 시범경기 마지막 경기를 치르고 있는 너희들의 꼴을 보면서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와 코치들이 한 달 내내 너희들에게 우리 팀의 방침에 대해 강조했지만, 벌써 잊어버렸다는 거. 허? 내 말이 틀렸나?”

라커룸이 고요해졌다. 랭카스터가 첫 날 부임했을 때의 몰래카메라처럼 누군가가 나서서 저 들소에게 대든다면, 이번에야말로 진짜 펀치를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분위기였다.

“말할 때마다 잊어버린다면, 잊어버리지 않을 때까지 말해 주지. 다시 말한다. 우리는 점수를 주지 않는 플레이를 해야 한다. 투수력이 강하고, 수비가 좋아. 수비수들은 있는 힘을 다해서 점수를 주지 않아야 한다. 아웃카운트 하나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해야 하지. 타격은? 홈런을 치거나, 아니면 무조건 달려서 한 점을 짜낸다. 주자는 어떻게든 다음 루를 노리고, 타자는 어떻게든 다음 루로 보낸다. 이렇게 간단한 걸.”

지혁은 랭카스터의 레퍼토리를 금새 외웠다. 이제 소리를 빽 지를 타이밍이다.

“허슬! 허슬을 통해 해낸다.”

랭카스터는 위협적인 눈빛으로 선수들을, 특히 마음에 들지 않았던 야수들에게 꽤 오랜 시선을 두면서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남들과 같은 플레이를 해서는 같은 점수를 준다. 같은 점수를 주면 그만큼 점수를 따내지 못하는 우린 진다. 내 말에 틀린 부분이 있으면 지금 얘기해라. 한 달 내내 얘기할 기회를 줬지만, 오늘 또 기회를 주지.”

진심으로 화가 난 미친 들소에게 정면으로 대답할 수 있을 만큼 대담한 선수가 있지는 않다.

“너희들 중 몇몇은 밖에서 BQ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 녀석들인데도 지금 이 순간까지 메이저리그 팀에 남아있는 이유는? 내가 보기에 운동 능력이 좋고, 몸을 아끼지 않는 용기를 가지고 있다고 봤기 때문이야. 캠프에 합류했다가 마이너리그로 돌아간 녀석들에 비해서 너희가 갖는 강점은 그거라고!”

랭카스터가 이렇게까지 씩씩대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웬만해서는 늘 킬킬대는 크리스 아처나 케빈 키어마이어도 그저 잠자코 있었다.

“자. 감독님께서 오늘 경기를 보고 개막전 로스터에 들어가지 못할 여섯 명을 추려냈어. 아쉽겠지만 마이너리그 팀으로 돌아가서 조금 더 정진하길 바란다. 내가 개인적으로 불러서 알려줄 거야.”

이번 시즌 벤치 코치로 부임한 케빈 캐쉬가 랭카스터 감독의 옆으로 나서며 말했다. 탬파 지역의 로컬 보이인 캐쉬는 랭카스터와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다. 오히려 조 매든 감독 시기에 팀에 있었다면 정말 잘 어울렸을 것 같이 자상하고 화목한 사람.

“오늘 경기를 리뷰할 게 많을 거야. 물론 오늘 경기도 시범경기에 불과하지만, 당장 내일 모레가 개막전이니까. 비디오 룸에 자료들이 다 정리되어 있을 거니까, 한 시간 뒤에 비디오 룸에서 다들 보자고. 괜찮아, 오늘 경기는 그 비디오 룸에서 다 잊어버려. 중요한 건 내일 모레 시즌부터 오늘 같은 플레이를 다시 안 하는 거니까. 자!”

캐쉬가 나서 선수들의 가라앉은 분위기를 정비하는 새 랭카스터 감독과 다른 코치들은 클럽하우스를 박차고 나갔다. 지혁은 랭카스터의 위압에 잔뜩 주눅 들어 있는 몇몇 선수를 돌아보며 생각했다.

‘누가 이런 코칭스탭을 선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조련사들을 잘 심어 놓긴 했네.’

랭카스터는 채찍이고, 캐쉬는 당근이다. 이 한 마디로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어느 팀이나 악역을 자처해야만 하는 스탭이 있고 그걸 조율해야 하는 스탭이 있는 법이다. 감독이 스스로 악역을 맡은 게 조금 특이하긴 했지만, 탬파베이도 큰 틀에서 그런 요소를 가지게 된 셈이다.

지난해까지는 악당이 없었다. 쓴소리를 세게 하며 나사 빠진 선수단을 잡아주는 코치가 없었던 탓에, 한 번 슬럼프에 빠질 때마다 그게 오래 갔던 것일지도 모른다. 덕분에 가족 같은 분위기가 유지되기는 했지만.

“형진! 잠깐 나 좀 볼까?”

곰곰이 감상에 빠져 있던 지혁을 깨운 것은 캐쉬가 형진을 호출하는 목소리였다.

‘결국 얘도 내려가나?’

지혁은 형진을 돌아보았다. 입술을 꽉 깨물고 주먹을 부르르 떠는 형진이 안쓰러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

2015년 4월 6일. 트로피카나 필드.

2015시즌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개막전, 탬파베이 레이스 vs 볼티모어 오리올스.

탬파베이 레이스 선발 라인업.

1. 존 제이소 DH

2. 스티븐 수자 주니어 RF

3. 아스드루발 카브레라 SS

4. 에반 롱고리아 3B

5. 제임스 로니 1B

6. 데스먼드 제닝스 LF

7. 르네 리베라 C

8. 로건 포사이드 2B

9. 케빈 키어마이어 CF

P. 크리스 아처.

경기 결과 : 탬파베이 레이스 2 vs 6 볼티모어 오리올스.

승리투수 : 크리스 틸먼(1-0, 1.35) 패전투수 : 크리스 아처(0-1, 4.76) 홈런 : 에반 롱고리아(7회, 1점, 탬파베이), 알레한드로 데아자(5회, 2점), 스튜어트 피어스(6회, 1점), 라이언 플래허티(9회, 1점, 이상 볼티모어).

- 탬파베이 레이스, 개막전 패배.

- 베이스볼코리아, 조예은 기자.

한국인 듀오, 문지혁과 이형진이 개막 로스터에 포함된 탬파베이 레이스가 2015 메이저리그 개막전에서 볼티모어 오리올스에게 패했다. 탬파베이의 선발투수였던 크리스 아처는 5와 3분의 2이닝을 던지면서 홈런 두 개를 허용하며 4실점(3자책)하는 아쉬운 투구를 선보였다.

한편 이날 경기에서 8회말 대주자로 출전한 유격수 이형진은 2008년 시카고 컵스와 계약을 맺으며 미국 무대에 진출한 이후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는 기쁨을 누렸다. 로건 포사이드의 대주자로 투입된 이형진은 9회초 유격수 자리에서 수비에 나섰고, 한 개의 타구를 깔끔하게 처리하며 꿈에 그리던 메이저리그 데뷔에 성공했다.

대니 랭카스터 탬파베이 레이스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내일 열리는 개막시리즈 2차전 선발투수로 문지혁을 예고했다. 당초 5선발로 시즌을 시작할 것으로 여겨졌던 문지혁이지만, 2선발로 예상되던 알렉스 콥이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는 부상을 당하며 로테이션을 바꾸게 되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로 인해 내일은 코리안 메이저리거들 중 부상으로 DL에 올라 있는 LA 다저스의 류희주를 제외한 네 명이 출격할 수도 있는 날이 되었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고준호, 텍사스 레인저스의 최성수, 탬파베이 레이스의 문지혁은 출장이 유력하고 이형진 또한 대주자 또는 대수비로 출장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

“후우.”

경기 시작 2시간 전부터 몸에서 땀을 내고 있는 지혁에게 랭카스터 감독이 쿵쿵 다가왔다.

“문. 컨디션은?”

“나쁘지 않습니다.”

“좋아. 어제 경기를 보고 많이 느꼈겠지? 힘 빠진 공은 위험해.”

“알고 있습니다.”

크리스 아처가 홈런을 두 방, 그리고 9회에 등판한 커비 예이츠가 홈런을 한 방. 총 세 방을 허용했다. 작년부터 엄청난 홈런 군단으로 거듭난 볼티모어는 올해도 자신들의 장점을 뽐내기 시작했다.

“어제 아처가 맞은 홈런을 기억하고 있나?”

“네. 떨어지는 슬라이더였죠.”

“어제 보니 이 녀석들 어퍼 스윙으로 일관하고 있어.”

팔짱을 끼고 외야 쪽 관중석을 바라보던 랭카스터가 무언가를 골똘하게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러니 시범경기에서 던진 대로 던져 봐.”

“네?”

“네가 왜 싱커를 놔두고 커브를 던졌는지 이유를 보여 달라는 말이야. 시범경기에서 두 번째 옵션을 시험한 결과를 확인하자고. 첫 경기고, 상대가 볼티모어라서 가능한 도전이야.”

“아직 커브가 완전하지는 않아서... 시범경기 성적도 안 좋았구요. 조금 고민되네요, 그건.”

“싱커처럼 마지막에 떨어지는 공은 힘 있는 어퍼 스윙에 제대로 맞으면 위험할 수 있어. 어제 슬라이더처럼. 차라리 높은 공으로 허를 찔러.”

랭카스터는 낮게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힘이 가득 실려 있었다.

“나도 타자 출신이지. 개막전에서 홈런 맛을 본 녀석들은 더더욱 어퍼 스윙에 집착하게 돼 있어. 힉키 코치와 얘기해 보게.”

“... 네. 알겠습니다.”

“부담 갖지 마. 외야는 넓어. 외야로 띄운 공은 수비수들이 도와줄 거니까. 그리고.”

한 템포 쉰 랭카스터가 마지막 말을 남겼다.

“그 커브.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좋아. 그러니 믿음을 갖고 자신 있게 던지라고.”

랭카스터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야수들이 몸을 풀고 있는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키어마이어를 툭툭 건드리며 장난을 치기 시작하는 랭카스터를 보며, 지혁은 놀란 마음을 거둬들이지 못했다.

스프링캠프 기간 내내 커브를 던졌다. 하지만 누군가에게서 커브가 괜찮다는 말을 들은 건 처음이었다. 게다가 그 대상이 랭카스터 감독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커브...”

지혁은 혼자 멍하니 되뇌었다. 경기 시작까지 남아 있는 두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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