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패전처리, 회귀하다-76화 (77/204)

< 76 - 팀을 뭉치게 하는 건(2). >

솔직히 말하면 정말 무서웠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볼티모어의 선수들도 예상하지 못했던 듯 입이 떡 벌어졌고, 탬파베이의 선수들은 그 누구보다도 랭카스터부터 말려야 한다고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랭카스터가 득달같이 마운드 위로 달려들어 펀치를 날리려는 데이비스를 막아섰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 데이비스의 어깻죽지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배 쪽을 강하게 밀어내며 데이비스를 뒤로 물렸다. 191cm에 100kg나 나가는, 아주 화가 나 있는 데이비스가 순한 양처럼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미친 들소는 데이비스를 아래로 내려다보며 삿대질을 해댔다. 뒤늦게 도착한 지혁은 제대로 듣지 못했지만, 그건 위협이고 경고였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런 살벌한 기운이 뿜어져 나올 수는 없었다.

“문! 너도 빨리 말려!”

누군가 지혁을 아수라장 속으로 밀어 넣었다. 지혁과 덩치 큰 선수들 몇몇이 랭카스터의 팔뚝을 하나씩 잡아챘다. 양 쪽으로 두 명씩 달라붙어서야 자꾸 앞으로 나가려는 들소를 자리에 잡아둘 수 있었다.

그 뒤로는 마치 소싸움을 하듯이. 있는 힘껏 힘을 쓸 뿐이었다. 그 이외에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캠든 야즈의 마운드는 완전히 아수라장이었다.

*

그러니까 이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벤치 클리어링에서 감독이 가장 먼저 달려나갔다는 건 아마 메이저리그 전례에 없었던 일일 것이다. 그리고 랭카스터가 달려가자 서로 달라붙으려던 선수들이 기적이 일어난 홍해처럼 갈라지는 것도 아주 장관이었다. 물론 제 3자의 입장에서는 말이다.

“충격과 공포의 현장이었죠. 이건 오프 더 레코드로 부탁드려요.”

“하하하! 당연하죠. 지금 녹음기도 안 켜 놨어요.”

“난 진짜로 무섭더라니까. 무슨 일 나는 줄 알았다고. 기세가, 기세가! 어휴.”

“볼티모어 애들 표정 봤냐?”

지혁은 먹는 것도 잊어버린 채 얘기를 나누었다. 그의 옆자리에는 형진이, 그리고 맞은편에는 조예은이 앉아 있었다.

작년 스프링캠프 이후 처음으로 식사 자리를 마련한 날이었다. 오늘의 대형 사고가 터지기 전에 잡아놓은 약속이었다. 아마 예은은 이런저런 기사거리를 찾아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의 주제가 달라질 일은 없는 것 같았다. 처음 얼굴을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랭카스터 감독에 대한 얘기뿐이다.

“근데 처음에 랭카스터 감독이 처음에 달려 나갈 때 뭐라고 소리치지 않았어요?”

예은은 랭카스터의 바로 다음으로 마운드에 도착했던 지혁에게 물었다.

“방망이 내려놓으라고요.”

“방망이?”

“데이비스가 처음에 올라오기 시작할 때 방망이를 들고 있었나 봐요. 마운드에 왔을 때는 방망이가 없긴 하던데. 전 감독님 등짝에 가려서 아무것도 못 봤거든요. 그런데 어쨌든 그 짧은 시간에 방망이 놓으라는 소리를 몇 번이나 지르던지 몰라요.”

경기가 끝난 이후에도 탬파베이의 선수들은 전말을 완전히 듣지 못했다.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나고 5분이 넘는 시간 동안 두 팀의 선수들은 그라운드 위에서 대치했다. 그리고 나서도 소동이 진정되기까지는 5분이 더 걸렸다.

어마어마한 장비를 차서 몸이 비대해 보이는 심판과, 그것보다 더 거대한 체구의 랭카스터가 한참을 말싸움을 했다. 랭카스터는 확실히 흥분해 있었다. 이미 선수를 폭행한 전력이 있던 랭카스터 아닌가? 모든 사람들이 숨죽이며 때 아닌 장면에 집중했다. 미친 들소가 설마 또?

“퇴장!”

당연하게도 랭카스터 감독은 퇴장 선언을 받았다. 사유는 심판을 향한 욕설이었다. 그렇게 흥분해서 큰 소리를 질러댔으니 욕설이 없었을 리가 없다. 물론 먼저 마운드로 뛰어올라간 볼티모어의 크리스 데이비스도 퇴장을 당했고, 벤치 클리어링을 유발했다는 이유로 에라스모 라미레즈도 퇴장을 당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또 우려했던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랭카스터가 퇴장 선언을 받은 이후에도 몇 분 동안 그라운드에 남아서 길길이 날뛰었긴 했지만.

퇴장당한 랭카스터 감독은 더 이상 더그아웃과 클럽하우스에 나타나지 않았다. 캐쉬 벤치코치가 어수선한 팀을 추스르고 경기를 마무리지었다. 경기가 끝난 후에도 랭카스터는 얼굴을 비추지 않아서, 선수들은 여전히 걱정과 의문을 반 정도씩 안고 원정 숙소로 돌아갔다.

“어휴... 제 인생에서 가장 다이나믹한 날이에요.”

“하하. 저도 이런 건 처음 봐요.”

“잠깐, 이거 기사 뜬 건가?”

형진이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내밀었다. 세 사람이 형진의 핸드폰 화면 앞으로 머리를 맞댔다.

- ‘미친 들소’의 로데오 한 판! 캠든 야즈에서 벌어진 대형사고.

“로데오... 기사 제목 참 대차게 뽑았네요.”

랭카스터의 인터뷰 장면이 동영상으로 첨부된 기사였다. 형진은 기사를 읽기 전에 영상부터 재생시켰다.

“오늘 경기에서 유독 흥분하신 이유가 뭔가요?”

“크리스 데이비스는 방망이를 들고 마운드로 향했습니다. 처음에 분명히 방망이를 들고 있었고, 나는 그걸 똑똑히 봤습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나는 내 선수를 보호해야만 했어요.”

그리고 곧장 경기 속 영상으로 화면이 돌아갔다. 라미레즈가 삼진을 잡은 후 짧게 포효하는 순간, 데이비스가 자신의 헬멧을 땅에 내동댕이친다. 그리고 마운드로 달리기 시작한다.

세 발자국 정도? 그의 왼손에 분명히 방망이가 들려 있었다. 아주 잠깐이긴 했지만. 데이비스는 곧 방망이를 놓았지만 이미 랭카스터는 더그아웃 바깥으로 튀어나오고 있었다.

“내가 퇴장당한 건 이해할 수 있습니다. 흥분했고, 심판에게 욕을 했습니다. 이건 인정합니다. 심판에게 따로 사과도 할 것이고. 하지만 크리스 데이비스의 폭력적인 위협에 대해서는 참고 넘어갈 수 없습니다. 그건 우리 팀원을 방망이로 폭행하려는 명백한 의도였다고 밖에 볼 수 없으니까.”

“벤치에서 가장 먼저 달려 나오셨습니다. 이유가 있을까요?”

“내 선수를 보호하기 위해서. 다른 이유는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긴장하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감독님은 10년 전에 사람을 때린 경험이 있으셔서요.”

“난 어리석은 행동을 되풀이 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고. 사람을 때릴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건 경우가 다르지. 크리스 데이비스는 자신의 행동에 사과를 해야 합니다. 벅 쇼월터 감독에게도 사과를 요구합니다. 볼티모어 구단의 GM과 사장에게도 사과를 요구합니다.”

랭카스터는 입에서 침을 튀겨가며 거침없이 이야기했다.

“볼티모어에서 먼저 사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나는 사과할 생각이 없습니다. 에라스모 라미레즈를, 또 그가 휘두를지도 몰랐던 방망이에 노출될 수 있었던 우리 모든 선수들을 나는 보호해야만 합니다.”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랭카스터는 ‘보호’에 강한 방점을 찍어 인터뷰를 마쳤다. 지혁과 형진은 서로를 돌아보았다. 두 사람은 아마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인터뷰를 본 탬파베이의 모든 구성원들도 그럴 것이다.

*

다음 날. 랭카스터는 아무렇지도 않게 더그아웃에 나타났다. 선수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캠든 야즈를 이리저리 서성이는 랭카스터에게 누구도 쉽게 접근하지 못했다. 그는 평소보다도 더 살벌한 표정으로 홈팀 더그아웃을 노려보다 들어오곤 했다.

“라인업 나왔다. 다들 확인해.”

클럽하우스에서 남긴 말도 이것뿐이었다. 그 말만 남기고는 여전히 더그아웃에 나가 볼티모어 쪽을 노려보기만 했다.

“사과하러 오기를 기다리는 것 같은데?”

“응. 내 생각도 그래.”

“쇼월터 감독이 올까?”

“절대로 안 올걸. 그 양반도 성격 알아주잖아?”

“저쪽 녀석들은 데이비스한테 퇴장을 준 걸 납득할 수 없다면서 항소할 거라고 하던데.”

선수들은 수군거리면서 경기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엄청난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난 이후의 경기라서 선수들이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엄하게 선수들을 지적했을 랭카스터는 그런 꼴을 그냥 지나쳤다. 랭카스터가 했어야 할 역할은 캐쉬 코치가 대신할 뿐이었다.

그렇게 경기가 시작되었다.

[ 어제 경기에서 굉장한 다툼이 있었죠. 오늘 2차전은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네요. 볼티모어의 선발투수 미겔 곤잘레스. 탬파베이의 1번 타자 데이빗 드헤수스를 상대합니다. ]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미겔 곤잘레스의 다섯 번째 공이 바깥쪽으로 들어갔다. 드헤수스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심판을 잠시 쳐다보다가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저걸 어떻게 치라는 말이야?”

드헤수스의 투덜거림은 2번 키어마이어에게서도 똑같이 나왔다. 키어마이어는 5구째 바깥쪽 존에서 떨어지는 공을 간신히 맞춰냈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1루 플라이로 물러났다.

“1구랑 2구는 누가 봐도 빠졌어. 그걸 잡아주면 오른손 타자는 왼손투수 공을 칠 수가 없어. 오늘 바깥쪽이 너무 후해. 이건 못 쳐.”

더그아웃에서 존의 좌우폭을 재는 건 매우 힘든 일이다. 태평양 존이라 이거지. 지혁은 오늘의 선발투수 아처를 돌아보았다. 아처도 고개를 끄덕였다.

*

[ 이번 시즌 탬파베이의 에이스인 크리스 아처. 오늘 경기에서 초반에 고생을 좀 하는군요. 매니 마차도와 아담 존스에게 연속 볼넷을 줍니다. ]

아처의 단점은, 가끔씩 제구가 흔들린다는 것이다. 빠른 공과 엄청난 낙폭을 지닌 세로 슬라이더는 타자의 헛스윙을 유도해내는 매우 훌륭한 공들이다.

하지만 어린 투수답게 여전히 마인드컨트롤에 조금 문제가 있다. 아주 가끔씩 제구가 흔들리기 시작한 날에는 투구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오늘 그 날인가?”

마운드 위에서 짜증 섞인 표정을 짓고 있는 아처를 보며 지혁이 낮게 중얼거렸다.

딱!

볼티모어의 4번으로 나선 크리스 데이비스가 낮은 공을 퍼올렸다. 우중간을 향해 한참을 날아가던 공이 펜스 상단을 그대로 때리는 2루타로 연결되었다. 두 명의 주자가 모두 들어왔다. 1회부터 2실점.

“안 좋네. 아.”

아처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마운드 위에서 마음대로 안 풀리는 투수의 심정을 잘 알고 있는 선수들이 목소리를 높여 아처를 격려했다. 하지만 2아웃을 잡고 나서 중전 안타 한 개를 더 허용하며 3점째를 내주고 말았다.

“젠장. 오늘 존이 이상해!”

간신히 1회를 마무리하고 내려온 아처가 더그아웃에서 짜증을 냈다.

“우타자 바깥쪽 존이 이상해. 똑같은 코스에 두 개 들어갔는데 하나는 스트라이크를 주고 하나는 볼을 줬어.”

마지막 안타를 맞기 전 공이 볼로 선언되면서, 다음 공을 던질 곳이 없어졌단다. 가끔씩 이렇게 일관성 없는 주심들이 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심판을 보는지 모를 정도로 오락가락하는 놈들. 투수 입장에서 가장 큰 적이 상대 타자가 아니라 심판일 경우가 간혹 생기는데, 그런 날에는 정말 짜증이 하늘 끝까지 솟구치곤 한다.

오늘의 아처가 그런 경험을 하고 있다. 2회말에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일이 잦았다.

“이런. 이거 넘어가겠는데...?”

2회에도 결국 주자를 쌓아놓고 한 방을 맞았다. 조나단 스쿱의 투런 홈런. 스코어는 초반부터 5대0으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

6회초. 아처가 4.1이닝 만에 물러났고, 점수는 8점차까지 벌어졌다. 오늘 경기는 힘들겠다는 감정을 더그아웃의 모든 이들이 공유하고 있었다. 언제나 허슬을 강조하고 목소리를 높여 팀 분위기를 끌어올리길 바라는 랭카스터도 팔짱을 낀 채 그라운드를 바라보고만 있다.

“에이캡! 하나 쳐 줘!”

6번으로 나선 아스드루발 카브레라가 타석에 들어섰다. 지혁은 이상하게 시선이 마운드로 끌리는 것을 느꼈다. 곤잘레스가 볼티모어 쪽 더그아웃을 한 번 바라보더니 마운드에 침을 탁 뱉었다. 묘하게 기분 나쁜 그림이 그려졌다. 하필이면 타자도 어제 세레머니를 한 카브레라고.

“뭔가 일이 날 것 같은데...”

“일? 무슨 일?”

초구였다. 볼티모어의 포수 케일럽 조셉은 한복판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싸인 교환도 순식간에 이루어졌고. 미겔 곤잘레스가 던진 공이 카브레라의 등에 그대로 꽂혔다.

“저 새끼 저거!”

착 가라앉은 더그아웃이 순간 소란스러워졌다. 동시에 모든 사람들이 랭카스터를 돌아보았다. 그가 한 걸음씩 더그아웃 바깥으로 옮기고 있었다.

“아, 하느님.”

또 뭔가 일어날 판이 생겨버린 것이다. 이번 시리즈는 정말로 순탄하지 않았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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