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 - 가장 중요한 시리즈. >
“예에에쓰!”
볼티모어의 마지막 타자인 케일럽 조셉이 때린 타구는 완전히 빗맞으며 내야를 벗어나지 못했다. 2루수 포사이드가 옆으로 달려가 자리를 잡고 안전하게 플라이를 처리하는 순간, 트로피카나 필드에는 함성이 울려 퍼졌다.
관중들은 탬파베이가 보여준 모처럼 완벽한 승리를 기뻐했다. 루키 투수인 지혁이 시즌 13승 째를 수확했고, 커리어 두 번째 완봉승이기도 한 승리다. 타선에서도 6점을 지원하며 든든하게 받쳐줬고.
하지만 지혁을 포함한 탬파베이의 선수들은 포사이드가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처리하는 순간에도 웃지 못했다. 탬파베이는 여전히 와일드카드 레이스에서 4위까지 쳐져 있었다. 오늘 경기를 승리하며 와일드카드 2위인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더 이상 멀어지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외야 전광판에 표시되는 타 구장 소식은 여전히 게임차가 줄어들지 않고 있음을 말해준다. 휴스턴은 오클랜드를 크게 이기고 있고, 미네소타도 디트로이트를 상대로 앞서나가고 있으니까. 저 경기가 이대로 끝난다면, 여전히 탬파베이는 세 게임 반이라는 큰 게임차를 극복해야만 한다.
“문. MVP 인터뷰가 있어요. 잠시 이쪽으로.”
“네.”
지혁은 방송사 스태프의 손에 이끌려 MVP 인터뷰를 하러 이동했다.
“압도적이었네요. 수고하셨어요.”
“감사합니다.”
인터뷰에 들어가기 전, 사람 좋아 보이는 리포터가 짧은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완봉승을 따낸 선수치고는 지나치게 무뚝뚝한 모습의 지혁에, 리포터는 조금 당황한 듯 했다. 잠깐 대본을 살피던 리포터에게 큐 싸인이 날아들었다.
“탬파베이 레이스의 홈 구장인 트로피카나 필드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오늘 경기의 MVP로 선정된 탬파베이의 투수, 문을 만나보겠습니다. 문! 축하합니다. 그야말로 환상적인 피칭이었어요. 3회에 허용한 안타 하나를 제외하고는 완벽한 경기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컨디션이 좋았고, 동료들의 수비도 좋았네요.”
“오늘의 승리로 여전히 와일드카드 레이스에서 사정권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팀의 승리가 절실했던 상황에서 등판했는데, 부담은 없었나요?”
“아무래도 부담이 조금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우리 팀은 어려운 상황에 있어요. 매우 어렵죠. 부상 선수들도 많고요. 하지만 감독님부터 클러비들까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각오로 매일매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죠. 어려운 상황이지만, 우리가 오늘 같은 경기를 매일 할 수 있다면 결국 뒤집을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오늘 경기에서의 커브는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커브로만 삼진을 일곱 개 빼앗아내셨어요. 후반기에 들어와서 커브가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는 평가가 많은데요. 어떤 마술을 부리신 거죠?”
“마술이라고 할 건 없고요. 음. 아무래도 이번 시즌 전에 새로 익힌 구종인만큼, 던지면 던질수록 감을 잡고 있는 거라고 말씀드려야겠네요. 한 시즌 정도 던져 보니 이제 좀 쓸 만한 공이 됐다고 느껴져요. 오늘 공은 이번 시즌에서 던진 커브 중에 제일 좋았던 것 같네요.”
“놀랍네요.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질문하죠. 이번 시즌 루키 오브 더 이어 경쟁이 굉장히 치열합니다. 오늘 경기로 다시 한 발짝 앞서 나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하.”
지혁은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그런 건 신경 쓰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개인 성적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우리의 모든 신경은 오로지 와일드카드 획득에만 쏠려 있습니다.”
“환상적인 대답입니다. 오늘의 MVP, 문의 인터뷰였습니다.”
*
- 진짜 갓지혁 영어 인터뷰 볼 때마다 싼다... 핡 ? 얘는 미국 생활 6년차 만에 완전 현지인 다 된 듯. 최성수보다 영어 훨씬 잘하는 것 같음.
? 최성수도 영어함;; 영어인터뷰도 하고.
? 최성수는 부산 영어잖아ㅋㅋㅋㅋ사투리 억양 들어간 영어. 발음이나 그런걸 떠나서 문지혁은 스킬 자체가 다름. 한 20년 미국에 산 사람 같음ㅋㅋㅋ발음도 그렇고 스웩도 흘러넘침 ? 말만 통하면 되지 발음이 뭔 상관임 ㅂㅅ아
- 아 구진호 부상만 없었으면 양대리그 한국인 신인상 나오는건데ㅡㅡ ? 내셔널리그는 이미 브라이언트 확정인데 무슨 개소리ㅋㅋㅋㅋ 구진호는 마에다도 못 넘었는데 무슨 신인왕 타령임 ? 일뽕새끼 또 오셨어요? 우쭈쭈~ 현지에서도 구진호 신인왕 후보로 꼽고 있었는데 ? 근데 문지혁은 신인왕 받을 수 있음? 현지에서는 멘데스, 코레아, 린도어 순으로 보던데.
? 끝까지 보긴 해야겠지만 지금까지는 문지혁도 안 꿀려요. 후반기 들어서는 무너지는 팀 먹여 살리는 수준이구요. 15승까지 찍으면 신인왕 못 받으면 이상한 정도일 듯. 두 경기만 더 이겼으면 좋겠네요.
*
“아직 안 잡니까?”
“패트릭?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에요?”
자정이 넘어가려는 시간에 패트릭이 전화를 걸어왔다.
“그냥. 확인 차원에서요. 두 달 동안 너무 무리했잖아요.”
“뭐. 괜찮아요. 오늘 경기 돌려보고 있었어요.”
“오늘 경기에서 돌려볼 게 뭐 그리 많다고. 안타 하나 맞은 걸 빼면 완벽했잖습니까.”
“실투 몇 개가 있었어요. 아무래도 시즌 후반이라 그런지 구속도 좀 떨어져 있고. 이제 잘 겁니다.”
“못 말리겠네. 다음 경기가 휴스턴 원정인 건 알죠? 그쪽 경기 자료 정리해서 메일로 보내 놨습니다. 확인해요.”
“아, 땡큐. 고마워요.”
지혁은 한 손으로는 휴대폰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패트릭이 보낸 메일을 열었다.
“오늘은 빨리 자기나 해요.”
“괜찮아요. 내일은 휴식일이라서.”
“그러다 탈나면 책임 못 집니다.”
“탈 날 일 없어요. 책임도 내가 지고.”
“하. 끊읍시다. 아. 그리고.”
패트릭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
“연두가 일을 그만둘 겁니다. 이번 시즌 끝나면요.”
“아니,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아뇨. 졸업 때문에.”
“아아.”
지혁은 잠깐 해야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뭔가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연두가 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중요한 시리즈를 앞에 두고 있는데 괜히 신경쓰이게 하기 싫다고. 그런데 뭐, 당신은 이런 거에 신경 쓰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말해 주는 겁니다.”
“계약이 끝난 건가요?”
“연두가 일을 워낙 잘 하니까 나도 정식 계약을 제의하려고 얘기해 봤는데, 졸업에도 신경 쓸 일이 많고... 또 다른 쪽에서 일을 한 번 해 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다른 쪽?”
“뭐. 본인이 생각하는 게 있겠죠. 어쨌든 오늘 경기하느라 수고 많았어요. 일찍 자고. 끊습니다.”
툭.
지혁은 괜히 씁쓸해졌다. 패트릭의 인턴이라는 이유로 지금까지 물심양면으로 지혁을 서포트해 준 연두다. 왈가닥이기도 했지만 또 어쩔 땐 여자의 몸으로 새벽까지 밤을 새는 게 안쓰럽기도 했었는데. 지혁에게 세이버매트릭스나 유의미한 통계 자료들을 읽는 법을 가르쳐야 했던 탓에 두 달 동안 연두도 지혁만큼 혹사당했다.
“근사하게 파티라도 한 번 열어줘야겠네.”
책상에 엎어져 잠들어있던 연두의 모습을 떠올리며, 지혁은 중얼거렸다.
*
2015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순위.
1. 토론토 블루제이스 (86승 65패)
2. 뉴욕 양키스 (83승 67패)
3. 탬파베이 레이스 (77승 74패)
4. 볼티모어 오리올스 (72승 78패)
5. 보스턴 레드삭스 (69승 81패)
2015년 아메리칸리그 와일드카드 레이스 순위.
1. 뉴욕 양키스 (83승 67패) - +4.0G
2. 휴스턴 애스트로스 (80승 72패) -
3. 미네소타 트윈스 (77승 73패) - -2.0G
4. 탬파베이 레이스 (77승 74패) - -2.5G
5. LA 에인절스 (77승 74패) - -2.5G
9월 23일. 탬파베이에게 남은 경기는 딱 열한 경기. 휴스턴 애스트로스보다 한 게임을 덜 치르긴 했지만, 두 게임 반의 차이는 너무나도 크게 느껴지는 시점.
탬파베이에게 마지막 기회가 주어졌다. 와일드카드 경쟁자인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원정 2연전. 두 경기를 다 잡아낸다면 두 팀 간의 승차는 순식간에 반 게임 차이로 줄어든다. 물론 그 동안 미네소타와 LA 에인절스가 헛발질을 하기를 기대해야 하기도 하고.
대신 한 경기라도 휴스턴에게 내주게 되면 와일드카드 레이스는 사실상 끝이 난다. 열 경기를 치르는 동안 세 경기를 극복하는 건 말 그대로 기적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휴스턴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비장한 전의가 감돌았다. 확장 로스터 기간에 마이너리그에서 올라온 선수들까지 포함한 36명의 선수단은 하나같이 조용히 앉아 휴스턴 선수들의 영상 자료를 돌려보며 날아왔다.
휴스턴의 경기장인 미닛메이드 파크에 들어서는 순간에도, 클럽하우스에서 유니폼으로 갈아입는 순간에도, 워밍업에 나서 땀을 내는 순간에도 선수단 사이에는 적막한 긴장감이 흘러다녔다. 그 떠들기 좋아하는 키어마이어도, 라틴계 특유의 시끄러운 음악을 언제나 틀어놓던 카브레라도 그저 조용히 경기만을 기다렸다.
“자, 다들!”
클럽하우스에 잔뜩 진을 치고 있는 기자들을 모조리 내보낸 뒤, 랭카스터는 크게 박수를 치며 선수들 모두를 집중시켰다.
“휴스턴의 라인업이 나왔다. 예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아. 저쪽도 총력전이다.”
휘유. 랭카스터는 낮은 휘파람 소리를 냈다.
“마지막 기회다.”
마지막 기회라는 말을 곱씹을 수 있게 해 주려는 듯, 랭카스터는 오랜 시간 말을 잇지 않았다. 그리고 랭카스터의 의도대로 모든 선수들이 마지막 기회라는 단어를 오래도록 되뇌었다.
“너희들에게 여러 번 말했고, 말할 때마다 미안하다고 얘기했지만. 다시 얘기한다. 우리는 올 해 기대 이상이었다. 다들 그랬지. 프리드먼의 시대가 끝났고, 새 시대가 오려면 3년은 준비해야 한다고.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다고. 차라리 리빌딩을 하는 것이 나을 거라고.
탱킹을 하라고!”
랭카스터가 주먹을 흔들며 소리치듯 말했다.
“하지만 우린 포기하지 않았다. 오늘, 그리고 내일. 두 게임을 잡아내고 나면 뒤집을 수 있다. 와일드카드 두 장 중 한 장은 우리가 가져간다. 이길 수 있고, 또 이겨야만 해. 너희들이 지금까지 해온 걸 떠올려. 그대로만 하면 된다.”
“예쓰!”
클럽하우스에 모인 선수들은 마치 스파르타의 전사가 된 양 소리질렀다. 랭카스터는 그 반응이 마음에 든다는 듯 씨익 웃으며 한 걸음 나섰다. 그리곤 들소 같은 커다란 주먹을 머리 위로 쭉 들어올렸다.
“오늘 선발은 문이다. 우리 모두 지난 두 달 동안 문이 어떻게 지내왔는지 잘 봐 왔지.”
“미친놈!”
“그거다. 크리스. 저 녀석은 미친놈이야. 그리고 그 미친 열정으로 야구를 해 준 덕분에, 우리도 여기까지 왔다. 이제 남은 열 경기, 우리 모두 문처럼 미친놈이 되어 야구를 할 거다. 오늘 너희들은 저 미친 루키를 도와 줘야 한다. 어떻게?”
“허슬!”
“그래! 뭐라고?”
“허슬!”
“다시 한 번!”
“허스으으으을!”
“오케이! 가서 몸을 던져! 있는 힘을 다 쥐어짜내서 어떻게든 이겨! 할 수 있는 모든 플레이를 다 해내고 와!”
랭카스터는 있는 힘껏 몸을 흔들며 선수들을 사로잡았다. 마치 포효하는 불곰이라도 된 것처럼.
“우리가 와일드카드로 간다! 그 자격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와! 원, 투, 쓰리!”
“허슬!”
“Whoo!”
“가자, 가자!”
모든 선수들이 동시에 주먹을 허공에 내리쳤다. 2015년 메이저리그 시즌에 치러지는 162경기 중에 가장 중요한 2연전. 탬파베이 레이스와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시리즈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2015년 9월 23일. 미닛메이드 파크.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아메리칸리그 경기.
휴스턴 애스트로스(80승 72패) vs 탬파베이 레이스(77승 74패).
휴스턴 애스트로스 선발 라인업.
1. 호세 알투베 2B - .313
2. 마윈 곤잘레스 LF - .283
3. 카를로스 코레아 SS - .295
4. 제드 로우리 3B - .267
5. 카를로스 고메즈 CF - .252
6. 에반 개티스 DH - .248
7. 루이스 발뷰에나 1B - .218
8. 행크 콩거 C - .233
9. 조지 스프링어 RF - .281
P. 댈러스 카이클. (17-8, 2.51).
탬파베이 레이스 선발 라인업.
1. 브랜든 가이어 LF - .265
2. 스티븐 수자 주니어 RF - .229
3. 에반 롱고리아 3B - .268
4. 로건 포사이드 2B - .287.
5. 아스드루발 카브레라 DH - .263
6. 팀 베컴 SS - .241
7. 제임스 로니 1B - .266
8. 케빈 키어마이어 CF - .263
9. 커트 카살리 C - .231
P. 문지혁. (13-7, 2.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