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패전처리, 회귀하다-98화 (99/204)

< 98 - Rookie of the year. >

“이건 어떻게 보면 단장의 능력이라고도 볼 수도 있고. 구단의 미디어 대응 팀의 능력이라고도 볼 수도 있어요. 또 감독의 역량에 따라 갈리는 일이기도 하고...”

“그리고?”

“선수의 언론 대처 능력에 관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패트릭은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조금 한숨을 쉬었다.

“저번에 어떤 기자랑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다면서요?”

“내가? 언제요? 난 그런 적 없는데.”

“나도 당신이 그럴 성격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소문이 그렇게 돌아요.”

“그건 그냥 개소리예요.”

“무슨 건덕지라도 없었어요?”

“음...”

기자들에게 우호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적대적이지도 않았다. 머릿속에 쉽게 스쳐가는 장면은 없었...다.

아니구나.

“한 명 있었네요. 우리 홈 구장에서. 클리블랜드랑 경기할 때.”

“무슨 일이었죠?”

“음. 그 기자가 출입금지 구역에 들어왔어요. 저는 여기 들어오면 안 된다고 했고, 그 놈은 알겠으니까 인터뷰나 좀 하자고 했죠.”

“그래서?”

“그냥 짜증이 좀 났었는데 마침 랭카스터 감독이 들어왔어요.”

“하.”

“랭카스터가 그 놈 멱살을 들어올렸고, 공중에 뜬 그 놈을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네요. 나보고는 나가 있으라고 해서 그냥 나왔거든요.”

패트릭이 한 쪽 눈을 씰룩거리며 말했다.

“지금은 아마 당신과 랭카스터가 작당을 해서 정의롭고 기자 정신에 불타는 기자 한 명에게 물리적 강압을 일삼으며 취재를 방해한 것 쯤으로 소문이 돌고 있겠네요. 기자들이란 그런 종족이죠.”

“샘 호킨스나 예은 누나는 안 그러던데.”

“어딜 가나 20%의 또라이는 있는 법이죠. 그리고 그 20%의 또라이가 안 좋은 말을 만들어내고, 그렇게 만들어진 안 좋은 말은 80%의 나머지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구요.”

지혁은 그냥 가만히 턱을 긁고만 있었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기자들의 세계에 아주 익숙한 건 아니지만 대충 어떤 흐름으로 돌아가는지는 안다. 야구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자들은 기자들 나름대로의 카르텔과 법칙이 있을 것이다.

선수들과 스태프들은 때로는 기자를 적대시하고 때로는 이용하며 상황을 바꿀 수 있다. 마찬가지로 기자들도 그럴 수 있다.

“자. 다시 원점으로. 그래서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신인왕? 글쎄요. 분위기를 좀 봐야겠지만...”

“겠지만?”

“아마 당신이 가져가겠죠. 물론 완전 루키는 아니고 작년에 47이닝이나 던졌던 루키이기는 하지만, 시즌 15승에 평균자책점이 2.50인데. 이 성적으로 못 받으면 아마 구단이건 팬들이건 선수들이건 다 뒤집어질 겁니다. 기자들이 그들 전부를 적으로 돌릴 수 있는 배짱이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그럼 됐어요. 제발 그랬으면 좋겠네.”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기도 하고. 기자들의 땡깡을 무조건 받아줄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판단한 지혁은 억지로라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로 했다. 조금 불안하기는 했지만, 상식이 있으면 상은 지혁에게 돌아와야만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패트릭이 뭔가 떠오른 듯, 미묘하게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

- 휴스턴 애스트로스, 개인 부문 상을 휩쓸 수 있을까?

올 시즌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돌풍은 정말 엄청났다. 월드시리즈 우승팀 캔자스시티 로얄스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조금 더 높은 위치까지 올라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오랜 시간 투자해 온 그들의 어린 선수들은 올 시즌을 계기로 그야말로 ‘폭발’했기 때문이다.

댈러스 카이클과 콜린 맥휴. 두 어린 투수는 휴스턴이 마치 다이아몬드를 대하듯 정성껏 갈고 닦아 조련한 세월에 보답한 대표적인 선수들이다. 댈러스 카이클은 시즌 20승 8패, 평균자책점 2.42라는 경이적인 성적을 거두었고, 콜린 맥휴는 시즌 19승 7패에 평균자책점 3.58을 기록했다.

그러니까 이 성적은 메이저리그 최고의 원투펀치인 LA 다저스의 클레이튼 커쇼-잭 그레인키와 비견되는 것이다. 평균자책점에서는 다저스의 두 투수가 상대적으로 좋지만, 다승 지표에서는 휴스턴의 어린 투수들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좌측 펜스가 압도적으로 짧은 미닛메이드 파크를 홈으로 쓰면서도 그렇다.

덕분에 카이클과 맥휴 모두 사이영상 후보에 올라 있다. 카이클이 보다 유력한 후보이고, 또 하나의 강력한 경쟁자인 데이비드 프라이스와 펠릭스 에르난데스, 그리고 소니 그레이를 제칠 것으로 보인다. 가장 압도적인 후보다.

투수 쪽에서 카이클과 맥휴가 있다면, 타자 쪽에는 단언컨대 카를로스 코레아가 있다. 슈퍼 2 조항을 피해 6월에 메이저리그에 콜업된 코레아는 시즌 102경기에 나와서 .289의 타율과 27홈런, 82타점, 15도루를 기록했다. 그의 OPS는 무려 .887이다.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지 한 달도 채 안 되어 휴스턴의 3번 자리를 차지한 이 선수가 없었다면, 과연 휴스턴이 보여준 질주는 가능했을까? 그가 차지했던 유격수 자리의 백업이 매우 마땅치 않았던 것을 떠올려 보자. 불가능했을 것이다.

코레아는 현 시점에서 유력한 신인왕 후보다. 물론 탬파베이의 루키 투수 문이 가장 위험한 경쟁자다. 문은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노히터 게임까지 달성하며 대단한 임팩트를 날렸다. 하지만 결국 탬파베이를 포스트시즌으로 이끌지는 못했다. 그 시간 코레아는 시즌 최종전, 9회, 두 점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역전 쓰리런 홈런을 날리며 팀을 포스트시즌으로 이끌었다. 임팩트의 차이는 없지 않은가?

... (하략)

*

“이딴 기사가 나오는 동안, 탬파베이 쪽 언론대응 팀은 뭘 하고 있었죠?”

“뭘 하다뇨? 일했죠. 이건 그냥 휴스턴 지역지입니다. 휴스턴 지역지에서 휴스턴 선수들을 영혼까지 핥아 주겠다는데, 우리가 어떻게 뭘 더 할 수 있겠어요?”

“이쪽 지역지에서는 왜 이런 기사가 안 나오느냐, 이 말입니다.”

“패트릭.”

체임 블룸은 많이 지친 듯 보였다. 휴스턴은 구단 차원에서 힘을 쓰고 있다. 카이클에게 사이영 상을 줘야 한다는 기사, 코레아에게 신인왕을 줘야 한다는 기사가 하루가 멀다하고 올라오고 있다. 그 모든 기자들이 단체로 돌아버린 게 아니라면. 휴스턴이 강하게 밀어주고 있기 때문에 이런 기사가 올라온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패트릭 에이버리라는 문의 에이전트가, 밤 8시에, 퇴근도 하지 못한 블룸의 사무실에 들이닥쳐 이런 소리나 내뱉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기자들에게 개인적으로 기사를 로비할 수는 없어요.”

“휴스턴은 그렇게 했습니다.”

“우린 휴스턴이 아니고요. 그건 옳은 일이 아닙니다.”

블룸은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상대가 패트릭이라는 게 불운이라면 불운이었다. 패트릭은 이런 자리에, 블룸의 한참 상위 호환인 앤드류 프리드먼과 여러 차례 앉았던 사내였으니까.

“단순히 옳지 않기 때문인가요? 아니겠죠.”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네요.”

“돈이 모자라죠?”

“크흠. 패트릭. 설령 우리가 기자들을 포섭할 수 있다고 해도, 그 정도로 돈이 없는 구단은 아니에요. 기자들에게 저녁 식사 몇 번 살 수 있는 돈도 없는 구단이 어디 있겠어요?”

“탬파베이 레이스에서 전미기자협회에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서는 저녁 식사 몇 번 사는 걸로는 모자라죠. 체임.”

블룸의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것이 패트릭의 눈에는 선하게 보였다. 이 사람은 프리드먼의 후계자 수업을 덜 받은 게 분명했다. 표정에서도, 제스쳐에서도, 눈빛에서도. 모든 면에서 생각을 읽기가 너무 쉬운 사람이다. 이 필드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하룻강아지인 것이다.

패트릭이 굳이 블룸을 찾아온 건 어차피 지혁이 타게 될 신인왕 때문이 아니었다. 아무리 기자들이 파렴치한 녀석들이라도, 정작 투표할 때는 지혁에게 표를 줄 수밖에 없다. 그게 숫자의 힘이다. 드러나 있는 숫자는 너무나 명백하고, 기자들은 스스로 논란을 뒤집어 쓸 배짱이 없는 녀석들이다. 누군가에게 뒤집어씌우는 일은 잘 하지만.

지혁이 탬파베이에 있는 한, 그리고 다음 시즌에도 지혁이 올해와 비슷한 성적을 내는 한, 탬파베이는 반드시 지혁에게 장기계약을 제시할 수밖에 없다. 협상 테이블에서 만나야 할 상대를 판단하고 약점을 캐내 우위에 서는 것. 패트릭이 굳이 이 밤에 여기에 쳐들어온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돈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뭔가 조금이라도 액션을 좀 보여 주셔야죠. 그래야 저도 제 고객에게 뭐라고 할 말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문은 매우 불안해하고 있어요.”

“하... 스탯과 통계만 놓고 보세요. 코레아에게 상이 돌아갈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그거야 나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위기는 코레아 쪽으로 쏠리고 있죠. 자. 만에 하나라도 코레아에게 상이 돌아간다고 합시다. 그 이후의 일은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패트릭은 블룸의 대답을 듣지도 않았다. 손목에 찬 시계를 내려다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하지만, 체임. 문과 약속이 있어서요. 그리고 이만하면 저와 제 고객의 요구가 무엇인지는 충분히 알아들으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네. 고맙네요.”

“요구를 말씀드린게요? 아니면 제가 일어나는 게? 하하하. 체임. 부탁드립니다. 내 고객에게, 아니지. 탬파베이의 두 번째 선발투수에게 힘을 실어 주세요.”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패트릭.”

“저도 그렇습니다.”

패트릭은 웃으며 체임의 사무실에서 나왔다. 지금쯤 욕 한 바가지를 시원하게 내뱉고 있겠지. 그는 아직 멀었다. 프리드먼에게서 배웠으니 프리드먼의 흔적이 남아 있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가 프리드먼이 되려면 가야 할 길이 멀고도 험할 것이다.

*

2015년 11월 16일.

“패트릭. 결과는 아직?”

“네. 오후 다섯 시에 공식 발표라니까요. 삼십 분이나 남았는데.”

“기자들이 트위터 같은 데에다가 인증도 남기고 그런다면서요.”

“결과가 나오기 전에 그런 멍청할 일을 할 사람은 없어요. 정말 관심이 급한 또라이가 아니면.”

“젠장.”

막상 결과 발표일이 다가오자 떨리는 것은 어떨 수 없었다. 전미기자협회(BBWAA)에 등록되어 있는 기자들 중 메이저리그 팀의 연고지 별로 두 명씩 선정된 총 30명의 기자가 투표를 마쳤다. 오직 결과 발표만이 남아 있다.

“당신이 이렇게까지 상에 집착하는 사람인 줄은 몰랐네요.”

“이 상은 특별하니까요.”

“뭐, 생애 한 번 밖에 못 받는 상이긴 한데. 그래요. 특별하긴 하죠. 그래도 이 정도로 목을 매고 있는 줄은 몰랐어요. 지금 당신 꼭 똥마려운 강아지 같으니까, 잠깐 나가서 머리라도 식히고 와요. 커피를 마시든가.”

생애 한 번 밖에 못 받는 그런 상이라고 특별한 게 아니다. 선수 생명 4년이 걸려 있으니까 특별한 거다. 어차피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비밀인데, 괜히 패트릭의 곁에서 알짱대고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밖으로 나가 찬바람이나 쐬는 게 나을 것이다. 지혁은 잠시 바깥으로 나왔다.

“클클. 자네.”

“와! 깜짝이야. 아오, 뭡니까.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꽤 긴장되나 보군?”

“당연하죠. 선수 생명 4년인데.”

“그 때는 배짱 있게 내지르더니 말이야.”

신은 지혁에게 맥주 한 캔을 건넸지만, 지혁은 고개를 저어 거절했다.

“솔직히 제가 이걸 못 받는 건 좀 말이 안 돼요. 그렇죠?”

“이 세상에 말이 안 되는 건 없다네. 자네가 날 만난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야.”

“그래요, 그래요. 이 세상에 나한테 공감해 줄 수 있는 녀석은 단 한 명도 없죠. 어떤 미친놈이 야구의 신을 만났다고 하면 믿어주겠어요. 그렇죠? 오늘 상을 못 타면 내 은퇴가 4년이나 앞당겨진다는 걸 누가 믿어주겠냐구요.”

“흐흐흐.”

지혁은 신을 한 번 째려보고는 그대로 집 근처 한 바퀴를 돌았다. 머릿속은 이미 생각에 생각이 덧입혀져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가 되어버렸다.

신인상을 받는다면, 남은 10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만약 신인상을 받지 못하게 된다면 남은 6년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말로 못 받는다면 어떡하지?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대충 이런 흐름의 반복이었지만 말이다. 숙소 근처 거리를 한 바퀴를 돌고, 다시 한 바퀴를 돌고. 그러고도 마음이 좀체 안정되지 않아서 한 바퀴 더 돌려는 찰나에 가만히만 있던 신이 지혁에게 말을 걸었다.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가?”

“갑자기 그건 무슨 말이에요?”

“아니. 아까 자네가 그랬잖아. 이 세상에서 자네와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네, 뭐. 그러긴 했죠.”

“그래서 그냥 한 번 물어본 걸세.”

“됐어요. 지금 그건 하나도 안 중요해요. 신님은 투표 결과도 알죠? 알고 있죠?”

“모른다네. 그리고 나한테 듣는 건 재미가 없잖아.”

“재미는 무슨... 똥줄이 타서 닳아 없어지겠어요.”

“마침 시간도 된 것 같은데. 들어가지?”

“아, 벌써?”

지혁은 황급히 집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패트릭!”

“문. 어...”

“결과!”

“음... 이걸 어떻게 말해야 되나 싶네요. 하아...”

패트릭이 길게 한숨을 쉰다. 누가 뒷통수를 강하게 내리친 것만 같이, 지혁은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안 돼! 말도 안 돼!”

“워, 워. 문.”

“내가 아니라고? 내가 신인왕이 아니라고? 이건 진짜 말도, 안! 돼!”

패트릭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뭔가 집어던지기 직전의 상태가 되어 버린 지혁의 이마를 한 번 쿡 찔렀다.

“장난도 못 치겠네.”

“허?”

“축하합니다. 2015년 시즌 아메리칸리그 신인왕. 당신입니다.”

“하아아...”

다리에 힘이 풀렸다. 기쁘다는 감정보다도, 선수 생명 4년을 지켜냈다는 안도감이 훨씬 더 컸다. 그래서 그냥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약간은 허탈한 표정으로. 정말 다행이었다.

“뭐야, 이 반응은 또?”

도무지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짜증을 내는 패트릭과 함께, 그냥 한참을 앉아 있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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