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패전처리, 회귀하다-123화 (124/204)

< 123 - 떠나기 싫은 선수, 보내야 하는 구단. >

6월에 접어든다. 뜨거운 여름이 찾아왔다. 계약 문제의 공을 체임 블룸에게 넘겨버린 이후, 지혁은 다른 일에 신경 쓰지 않고 야구에만 집중했다. 이미 원하는 것은 확실하게 주지시켰다.

탬파베이 레이스의 시스템을 바꿔서라도 월드시리즈 진출, 나아가 우승에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팀이 되는 것. 그게 아니라면 적은 연봉을 받아가면서까지 탬파베이에 남을 이유가 없다.

한편으로는 그의 에이전트가 패트릭이기에 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이미 패트릭에게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 확고한 믿음이 있다. 패트릭이라면 지혁이 만족스럽지 않은 계약은 하지 않는다. 설령 엄청난 돈을 준다고 하더라도 지혁의 마음을 억지로 돌리면서까지 탬파베이에 남기지도 않는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생의 구력이 있는데 마인드 컨트롤에서 허점을 보인다는 건 안 될 말이기도 했다. 지혁은 야구 외적인 문제들이 경기 내용에 영향을 끼치지 않게 하려고 특별히 더 집중했고,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야구에만 집중해야 할 사람은 지혁뿐만이 아니었다. 지혁만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 음. 오늘 콥이 안 좋네요. 벌써 볼넷이 6개입니다. 시애틀의 타자들이 오늘 편하게 경기를 하네요. ]

알렉스 콥의 투구가 눈에 띄게 좋지 않았다. 지난 경기에서부터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낮게 던지는 패스트볼과 체인지업 조합으로 자신의 투구를 해야 할 콥이었지만, 공이 자꾸 높거나 낮거나 빠져나간다. 안 그래도 불펜에 부하가 가해지고 있었기에 베테랑인 콥이 오래 버텨주기를 기대했던 탬파베이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 바꿉니다. 더 이상 두고보는 건 힘들었겠죠. 좌완 호세 알바라도가 준비하네요. ]

[ 3이닝 동안 투구수가 82개. 최소한 5회까지는 끌고 가지 않을까 했는데 일찍 바꾸네요. ]

[ 랭카스터 감독의 표정에서 분노를 읽을 수 있습니다. 화가 좀 났네요. 투구수로만 보면 더 끌고 갈 수도 있겠지만, 이 투구에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입니다. ]

그리고 이튿날. 풀타임 4년차이자 연봉조정의 특혜를 한 번 받은 제이크 오도리찌도 흔들리는 투구를 했다. 하이 패스트볼을 주로 쓰는 오도리찌는 이상하게 공에 힘이 빠져 보였고,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홈런 4개를 맞은 오도리찌도 처참한 패전을 떠안았다.

4월과 5월, 시즌 초반에 기세를 올리던 탬파베이가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크리스 아처와 지혁이 나서는 경기를 제외하고는 항상 힘든 경기가 이어졌다.

선발투수들이 휘청거리면 그 짐은 불펜이 떠안게 되고, 불펜이 과부하가 걸리면 오랜 시간 수비에 나서야 하는 야수들도 영향을 받는다. 아주 작은 균열이 거대한 지진으로 이어지는 건 예삿일이다. 6월의 탬파베이는 마치 지진 예고가 내린 지역에 서 있는 건물 같았다.

그리고 이 모든 균열의 시작은 물밑에서 흔들기 시작하는 다른 구단의 손길이었다.

*

“괜찮아요?”

“... 뭐가?”

“아까 전화하고 나서 표정이 별로 안 좋던데.”

“아. 뭐, 그냥.”

“얘기하기 불편하면 안 해도 상관없어요.”

후우. 콥이 한숨을 쉬었다. 지혁은 내일 등판을 앞두고 있는 콥의 옆에 털썩 앉았다. 양키스타디움의 뜨거운 햇빛이 정면으로 떨어지는 곳이었지만, 선글라스를 눌러 낀 두 사람은 그냥 더그아웃 난간에 걸터앉아 장엄한 관중석만 바라봤다. 콥은 구레나룻과 연결된 턱수염을 손등으로 벅벅 긁었다.

“생각보다 쉽지 않네.”

“이해해요.”

“네가? 아직 경험해본 적도 없으면서.”

“그냥,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아요. 저도 방출되고 팀 구하고 다닐 때 그런 느낌이었을 거예요. 계약이라는 게 다 그렇죠, 뭐. 에이전트랑 얘기해야 되고, 구단이랑 계속 만나야 되고...”

“하하. 그런 게 아냐. 전혀 아니지.”

콥은 이상한 표정으로 웃었다. 착잡함이라고 해야 할까? 오래 살면서 많은 사람의 표정을 봐 온 지혁이지만, 그 표정만큼은 뭐라고 정의할 수 없었다.

“이 팀을 떠날 때가 됐다니까 기분이 이상해서. 그것뿐이야.”

“구단이랑은 얘기가 잘 안 됐나 보네요.”

“음. 힘들 것 같아.”

“푸우.”

지혁은 입술을 부르르 털었다. 올해가 끝나면 FA 자격을 얻는 콥은, 오랜 프로 선수로써의 대가를 받는 선수치고는 지나치게 슬퍼 보였다.

“난 탬파베이 데빌레이스에 드래프트 됐어. 그리고 제임스 쉴즈를 보고 배웠고, 에반 롱고리아와 함께 웃었고, 데이비드 프라이스의 뒤를 받쳤지. 지금은 크리스 아처와 너랑 같이 있는 팀이고 말야. 여긴 내 프로 인생에 전부가 담겨 있는 팀이야.”

“아아.”

“올해가 벌써 11년째야. 마이너리그에서 5년 있었고, 메이저리그에서도 이 못생긴 가오리 마크를 6년 동안 가슴에 달고 있었는데.”

콥의 마음에 쓸쓸함이 묻어났다. 콥과 같은 경우는 꽤 있었다. 탬파베이가 암흑기던 시절부터 끝까지 팀을 지켜내 온, 연봉조정에서도 비교적 저렴한 연봉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젊고 역동적인, 또 매력적인 팀의 일원이었던 선수들. 그런 선수들도 결국 팀을 떠났다. 끝까지 남아 있는 사람은 유일했다. 에반 롱고리아.

“이제 팀을 떠날 때가 됐다고 생각하니까... 이게 무슨 느낌인지 모르겠네. 뭔가 허무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나? 그건 잘 모르겠네.”

“트레이드 되는 건 확실한 거예요? FA로 남을 수도 있잖아요.”

“FA는 안 될 거야. FA 시장이 가격이 너무 뛰어버렸잖아. 만약 구단이 날 잡을 수 있었다면 FA까지 가기 전에 계약을 했겠지.”

“제의가 온 팀은 있고요?”

“음, 꽤. 그래도 내가 아주 못난 투수는 아니니까. 반년 렌탈로라도 쓰겠다는 팀이 조금 있나 봐. 몸값도 싸니까. 하하.”

가타부타 더 이상 말을 더할 필요가 없었다. 이 시점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았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느니, 연봉을 더 많이 주는 좋은 팀에서 열심히 하면 될 것이라느니 하는 위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하나뿐이다. 콥은 탬파베이 레이스를 사랑했다. 전미에서 가장 작은 마켓이고, 가장 인기가 없는 팀이고, 가장 주목받지 못하는 팀이지만, 그래도. 콥에게 기회를 준 팀이고, 콥을 믿어준 팀이고, 콥을 메이저리그에서 3~4번째 선발 로테이션에는 꼬박꼬박 들 수 있게 만들어준 팀이다. 큰 부상을 당해 오랜 시간 자리를 비웠지만 그를 포기하지 않은 팀이기도 하다.

“아마 7월 초? 아무리 늦어도 7월 중순에는 트레이드가 될 것 같대.”

“... 힘내요.”

마지막까지 잘 해야 하는데. 콥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떠나는 것이 확정된 사람의 표정을 보고서도 그냥 떠날 수 없어서. 해가 움직여 구름 속에 들어가고 다시 나오기를 수십 번 반복할 동안 그렇게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

“이런. 알렉스가 또 휘청거리네요.”

“지금 이 고비를 못 넘기면... 승률이 5할에서 +1까지 떨어지나요? 레드삭스와의 게임 차이가 여섯 게임 반. 2위도 양키스에게 내줄 것이고... 음. 올 시즌은 힘들겠네요.”

“타이밍을 잘 잡아야 해요. 셀러로 전환할 타이밍.”

“셀러가 되어버리기는 아직 좀 일러요. 아직 와일드카드 순위에서는 두 게임 반 차이밖에 안 나요. 벌써 세일즈를 논하는 건 좀 이르잖아요.”

“우리는 숫자를 가지고 노는 구단입니다. 지금까지의 성적과 앞으로의 기댓값을 비교해서 결정해야죠. 선수들의 가치는 지금이 가장 높습니다.”

불투명한 유리창으로 4면이 모두 쌓여 있는 대회의실. 커다란 스크린에 오늘의 야구가 소리 없이 흘러나오고, 아주아주 커다란 원형 테이블에 열댓 명의 사람들이 둘러앉았다. 탬파베이의 이사들, 단장과 단장 보좌, 사장과 구단주까지 모두 모인 정례 분기 회의.

시즌 초반의 스타트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좋아서, 기대를 했던 시즌이었다. 랭카스터가 부임한 지 세 번째 시즌이기도 했고, 작년 팀에 새로 들어온 선수들이 올해야 적응을 마친 듯 제 실력을 찾아가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 좋은 페이스를 끝까지 유지해낼 수 있는 뚝심이 부족했다. 그리고 그것이 곧 실력이기도 했다.

냉정하게 말해서, 탬파베이 레이스는 컨텐딩에 도전할 수 있는 실력의 팀은 아니었다. 운이 따르고 하늘이 도와줬을 때, 또 기대하지 않았던 선수들이 브레이크 아웃하면서 괄목한 성장을 보였을 때에나 컨텐딩 도전이 가능한 팀이다. 언제나 그래왔다. 언제나 그런 위치에 있게 만든 게 바로 지금 이 자리에 모여 있는 프리드먼의 사람들이었고.

“냉정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우리는 한두 해 바짝 달려서 우승 트로피를 반드시 차지해야 하는 팀이 아니잖아요.”

볼펜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던 이사 중 한 명이 스크린을 가리키며 말했다. 알렉스 콥의 낮은 체인지업을 퍼올린 양키스의 애런 저지가 우측 담장을 훌쩍 넘겨버리는 시즌 20번째 홈런을 때려냈다.

“블레이크 스넬이 지금 몇 달째 더램에 있죠? 올려 써야지 않겠습니까? 테일러 게리어리는요? 이 친구도 벌써 몇 년째 유망주 소리만 들으면서 아직도 메이저 데뷔를 안 했어요. 내년에는 브랜트 허니웰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야수 쪽은 어떻고요? 난리도 아니에요. 제이크 바우어스, 다니엘 로버트슨, 윌리 아다메스, 케이시 질라스피. 올 해 40인 로스터 안에 넣어야 하는 선수들이 넷이나 됩니다.”

“제이의 말이 맞아요. 이제는 기존 로스터를 비워내야 할 때입니다. 재정에도 여유분을 만들어야죠. 그래야 새 구장 협상에 진척이 생길 거고.”

점점 다가오는 여름 이적 시장에 앞서 ‘셀러(주 ; Seller, 팀의 전력인 선수들을 트레이드로 처분하고 리빌딩으로 방향을 트는 팀)’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이사들의 말에 힘이 실린다. 1군 전력이 될 선수들을 내보내고 유망주로 그 자리를 채우는 시스템을 유지하자는 사람들이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체임 블룸이 입을 열었다.

“다들 보고서를 읽으셨겠지만, 그런 식이 되어버리면 우리는 문을 잡을 수 없습니다.”

“그건 다른 문제입니다. 체임. 다른 선수들을 내보내고 나면 문의 연봉을 1년 정도는 커버할 수 있어요. 그리고 문은 내년에 팔아도 괜찮습니다.”

“아뇨. 그런 식으로는 문을 잡아두지 못해요. 문의 요구는 명확합니다. 시스템을 갈아엎어서라도 윈 나우 모드로 전환하는 것이니까요. 그게 아니라면 시즌 후 연봉조정위원회에서 천만 달러 이상까지 요구액을 높일 겁니다.”

“그게 통과되겠어요? 하! 7백만 달러만 요구해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아뇨. 담당 팀에서 올 시즌 문의 기대성적을 찍어내고 다른 팀 선수들의 연봉과 비교했을 때, 천만 달러 이상의 연봉은 충분히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린 그렇게까지 많은 연봉을 지급할 수 없을 테고. 그렇게 타결이 안 될 거라면 논텐더 FA로 풀어야 한다는 걸 알고 계시겠죠, 여러분?”

“아니,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나가버리는 건 GM의 책임이죠. 체임. 당신 앞에서 이런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앤드류 프리드먼이었다면 진작에 계약을 맺었을 겁니다. 우리가 이번 회의에서 확실한 대답을 들었어야만 하는 주제가 있다면, 그건 바로 문의 계약이에요.”

제이 브루클린은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그리고 대다수의 이사들이 그에게 동의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탬파베이의 이 시스템은 신성적인 것과 다름없었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자리를 잡고 있는, 탬파베이의 근간. 문지혁이라는 선수 하나 때문에 이 시스템을 들어엎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저들은 생각한다.

“시스템을 고칠 수 없다면, 우리는 문을 팔아야 합니다.”

“그를 잡을 방법은 우리가 아니라 당신이 찾아야 하는 겁니다. 체임.”

체임 블룸은 거대한 벽에 대고 혼자 이야기하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이사들이 얼마나 바쁜지 정례 회의는 순식간에 끝났다. 진척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시간만 흐를 뿐이다.

*

2017년 7월 2일.

- 탬파베이 레이스 - 휴스턴 애스트로스 트레이드. 알렉스 콥 ? 포레스트 휘틀리, 1대1 맞트레이드.

탬파베이 레이스가 FA를 앞둔 선발투수 알렉스 콥을 트레이드한다. 상대는 휴스턴 애스트로스. 콜린 맥휴의 장기 부상으로 선발 로테이션에 구멍이 난 휴스턴은 이번 시즌 월드시리즈를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검증된 선발투수인 알렉스 콥으로 그 자리를 채우기로 했다.

탬파베이에서 이번 시즌 6승 6패, 평균자책점 3.67을 기록 중인 알렉스 콥은 올해가 끝나고 나면 FA 자격을 얻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콥을 영입하는 데 드래프트 1라운드 출신인 포레스트 휘틀리를 거리낌 없이 내 준 휴스턴의 선택은 대범하기까지 하다. 메이저리그 6년차 투수인 알렉스 콥을 나머지 시즌 동안 사용하면서 1라운드 출신 투수를 내준 것은, 이번 시즌에 사활을 걸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셈이다.

이에 휴스턴의 GM인 제프 르나우는 “우리는 우승 트로피가 필요하다.”는 짧고 간결한 인터뷰로 그 의지를 드러냈다.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에서 10게임 이상 차이를 벌리며 압도적인 선두를 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욕심은 끝이 없어 보인다. 베테랑인 콥이 포스트시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 (하략).

*

즉시전력 투수인 콥이 팀을 떠났다. 그리고 싱글 A의 새파란 유망주가 팀에 합류했다.

메시지는, 명확했다.

“시스템은 변화하지 않았다, 이거지.”

지혁이 탬파베이에 몸담고 있을 시간은 아마 올해까지일 것 같다. 씁쓸한 뒷맛을 느끼면서 글러브를 주워들었다.

등판할 시간이다. 트레이드는 트레이드고, 야구는 야구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몸값을 더욱 높이는 게 여러모로 유리했다. 비어 있는 콥의 라커룸을 바라보며 지혁은 클럽하우스를 빠져나갔다.

상대는 볼티모어 오리올스. 뭔가, 분풀이를 하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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