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패전처리, 회귀하다-125화 (126/204)

< 125 - 올스타 게임(1). >

허니웰이 올라온 이후, 두세 경기 정도 롱릴리프로 경기에 투입되어 적응하는 동안 끊임없이 지혁과의 연결 고리가 만들어졌다. 하여튼 기자들이란. 아직 미디어에 대처하는 게 능숙하지 않은 어린 선수들은 기자들의 좋은 먹잇감이다.

그래도 기자들의 끈덕진 카메라 플래쉬와 질문 세례를 버틸 수 있었다. 6월부터 시작된 탬파베이의 하락세가 뒤집어진 덕이다. 올스타 브레이크를 앞둔 마지막 7경기에서 5승 2패를 거두며 팀 분위기를 전환했다. 마지막 휴스턴과의 시리즈에서 아처, 지혁, 그리고 오도리찌를 내세운 탬파베이는 위닝시리즈를 거두며 전반기를 마무리했다.

전반기를 끝낸 시점에서 탬파베이 레이스의 성적은 50승 42패, 지구 3위. 승패 마진을 +8까지 다시 끌어올렸다는 게 고무적이다.

지구 1위를 유지하고 있는 보스턴은 57승 33패로 리그 최고승률을 기록하며 치고 나갔지만, 지구 2위이자 와일드카드 레이스에서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양키스(52승 41패)와는 한 게임 반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두 장이 주어지는 와일드카드 레이스의 두 번째 위치에 미네소타 트윈스와 함께 자리하고 있다.

이 좋은 성적은 아이러니하게도 탬파베이 레이스에겐 큰 고민거리였다. 바짝 신발끈을 졸라매고 다시 뛰어나갈 수 있는, 또 남들이 보기에는 그래야만 할 것 같은 그런 위치에 있다. 마라톤으로 치면 반환점을 돈 시점에 일찌감치 멀어져버린 선두의 뒤에 있는 2위 그룹에서 살짝 뒤쪽에 쳐져 있는 셈이다.

여기서 즉시전력감 선수들을 트레이드하고 시즌을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선수들의 가치가 조금 낮아지더라도 이번 시즌도 끝까지 달려볼 것인가?

탬파베이 레이스는 이렇게 애매한 상황에 반환점을 돌았다. 그리고 결착점에 섰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선택을 내려야만 할 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결정을 내려야 할 사람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3주. 트레이드 데드라인인 8월 1일까지는 방향을 정해야만 할 것이다.

*

2017년 7월 12일. 오전 11시.

마이애미, 말린스 파크.

“와-하하하!”

“호우~ 호우~”

음. 여기가 클럽인지, 아니면 클럽하우스인지. 게다가 아직 아침 11시밖에 되지 않았다. 선수들에게는 새벽이나 다름없는 시간대다. 그런데 대체 이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거지?

클럽하우스는 엄청나게 시끄러웠다. 흑인 선수들은 술이라도 마신 것 같았다. 춤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괴상한 몸짓으로 엉덩이를 흔들어대는 녀석도 있었고 오랜만에 다른 팀의 친구들과 만난 것처럼 낄낄대는 녀석들도 있었다. 특히 올스타 전야제인 어제 홈런 더비에 참여했던 타자들은 이미 한 번씩 얼굴을 본 덕인지 적응이 필요 없는 모양이다.

올스타전. 별들의 잔치.

지혁은 탬파베이 레이스에서 선수 추천이나 감독 추천이 아닌 팬 투표로 뽑힌 유일한 선수다. 크리스 아처는 선수 추천으로, 코리 디커슨은 테리 프랑코나 클리블랜드 감독의 감독 추천으로 올스타 팀에 합류했다.

두 번의 인생을 통틀어 처음으로 이 자리에 합류했다. 지금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인기가 많고, 가장 야구를 잘 하고, 가장 영향력이 있는 선수들의 모임에. 팬들의 선택을 받아서.

감회가 새로워야 했다. 그리고 어제까지만 해도, 아니, 클럽하우스에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분명 엄청나고 놀라운 만남과 일들이 가득할 거라고 믿었다. 설레기도 했다. 그런데 이 꼴은... 음. 확실히 적응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적응이 안 되네.”

“헤이! 아담!”

지혁과 함께 클럽하우스에 들어선 크리스 아처는 이미 시즌 전 WBC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미국 선수들을 찾아다니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중이다. 탬파베이에서 같이 올스타에 뽑힌 또 한 명의 선수인 코리 디커슨은 콜로라도 로키스 시절 동료였던 놀란 아레나도를 만나기 위해 내셔널리그 쪽 더그아웃에 먼저 향했다.

생애 처음으로 올스타 게임에 선발된 지혁은 마치 오랜만에 모인 동창회 같은 클럽하우스 분위기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선수가 저 쪽 구석에 한 명 또 있었다.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 겉돌고 있어요’ 라고 말하는 것 같은 표정으로 멍하니 있는, 녀석. 후지.

“형! 왔어요?”

“야. 너도 거기서 쭈구리고 있었냐.”

남들은 아직 유니폼을 입고 있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보스턴의 져지를 챙겨 입고 심지어 바지에 벨트까지 착용하고 라커 한 쪽에 앉아 있던 후지가 반갑게 달려왔다.

“뭘 벌써 유니폼까지 챙겨 입었어?”

“아. 같이 온 보스턴 선수들은 다 지들 친구 만나러 갔어요. 아는 사람도 없어서 그냥 불펜에서 몇 개 던지려고.”

“올스타전까지 와서 무슨 불펜 피칭을 해? 그냥 다른 팀 선수들이랑 얘기나 좀 하지.”

후지의 표정이 샐쭉하게 변했다. 어린 티가 풀풀 묻어난다.

하지만 정작, 지혁도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몰랐다. 한때는 꿈에 그리던 올스타전이다. 올스타전에 나간다는 건, 최소한 어떤 팀을 떠올렸을 때 세 손가락 안에 생각나는 선수가 된다는 걸 뜻했으니까. 리그를 주름잡는 동시에 팀을 대표한다는 상징성도 있어야만 뽑힐 수 있는 게 올스타다. 하지만 그 찬란한 올스타들이... 이러고 있을 줄은 몰랐다.

“시끄러워 죽겠네.”

정체를 알 수 없는 라틴 음악이 고막을 때려댄다. 푸에르토리코와 도미니카 쪽에서 온 선수들은 몸에 지니고 있는 그 흥을 어떻게 주체해야 할지 모르는 모양이다. 지혁은 자신의 라커에 간단한 짐을 내려놓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여전히 후지는 쫄래쫄래 지혁을 따라다니고 있는 채다.

그나마 투수들은 조금 덜 시끄럽다. 야수 녀석들이 난리 부르스다. 상대적으로 덜 예민해서 그런 모양이다. 그렇게 한참 동안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지혁과 후지에게 목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기른 턱수염이 사내가 다가왔다.

“헤이. 반가워.”

댈러스 카이클. 2015년 사이영 위너. 2017시즌 현재 아메리칸리그에서 패전을 기록하지 않고 있는 유이한 투수. 지혁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점이 많아 언론들이 또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있는 그다. 그리고 선발투수들 중 가장 높은 팬 투표수를 기록해 오늘 경기의 선발투수로 낙점이 된 선수이기도 하고.

“나도.”

지혁은 카이클이 내민 손을 맞잡으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카이클은 지혁의 뒤에 서 있던 후지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너희들 둘, 아는 사이야?”

“아. 응. 에이전트가 같아.”

“뭐라고? 그 에이전트 누군지 몰라도 제대로 복 터졌네.”

별 거 아닌 그냥 인사였지만, 카이클이 한 번 물꼬를 터 주자 답답하고 어색했던 분위기가 조금은 풀린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많은 선수들이 지혁과 후지에게 다가왔다. 특히 투수들이. 지혁은 그나마 풀타임 4년차이기 때문에 다들 얼굴을 익혔고, 야구장에서 승부를 겨룬 적도 많았었기에 올스타 선수들의 주된 표적은 후지였다.

“대체 어디서 린스컴의 폼을 배웠어?”

“그 폼으로 던지면 팔은 안 아픈가?”

“너. 구속이 갑자기 뛰었다며? 대체 어떻게 한 거야?”

안 그래도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후지는 당황한 표정으로 지혁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지혁은 그저 웃고 말았다. 이것도 메이저리그라는 정글의 무대에서 살아남는 한 방식이다. 후지가 짧은 영어로 손짓발짓을 섞어가며 다른 팀의 올스타 선수들에게 잡혀 있는 사이 지혁은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나왔다.

“Mi Amigo!”

시끌벅적한 녀석들 사이로 우렁차게 외치며 지혁을 덥썩 끌어안은 사내. 전생의 닉네임 그대로, ‘퀵 팝’으로 불리기 시작한 홈플레이트의 왕. 페르난도 멘데스. 그도 올해 처음으로 올스타에 뽑혔다.

“도미니카에서 처음 봤던 게 엊그제 같은데. 엉? 플로리다의 슈퍼 문이라고? 하하.”

“잘 지냈어?”

“그럼. 이제 좀 적응했지, 난. 하하. 넌 잘 지냈냐고 물어볼 필요도 없지. 그냥 리그를 씹어먹고 있잖아.”

“하하. 이번 시즌은 운이 좀 좋네.”

“슈퍼 문? 만나서 반갑네.”

멘데스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중년의 한 남자가 끼어들었다. 악수를 위해 내민 손을 맞잡으면서야 그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2016년 아메리칸리그 최종 우승팀으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이끌었고, 그 자격으로 2017년 올스타전 아메리칸리그의 감독직을 맡게 된 명장, 테리 프랑코나.

“멘데스하고는 아는 사이인가 보군?”

“네. 그... 에이전트가 같아서요.”

“오, 그래? 좋은 인연이군. 에이전트는 좋겠어. 자네 같은 투수와 이 친구를 같이 데리고 있다니 말이야.”

“보스. 저기 저 친구 보이시죠? 저 친구도 우리 컴퍼니에요.”

“뭐야?”

멘데스가 가리킨 후지를 보면서, 프랑코나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대체 어떤 에이전트이기에 리그에서 가장 파괴력 있는 두 투수와 홈플레이트의 왕까지 데리고 있는 거야? 누가 봐도 그렇게 말하고 있는 표정이었다.

“크흠. 어쨌든. 자네는 우리가 상대하기 가장 까다로운 투수였는데. 이렇게 올스타전에서라도 만나서 반갑게 생각해. 오늘 언제쯤 마운드에 올라가고 싶은가?”

“저야 뭐, 감독님께서 정해주시는 대로 올라가는 거죠.”

“... 좋아. 마음에 드는군.”

프랑코나는 지혁을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더니 환하게 웃으면서 어깨를 툭툭 쳐 주었다.

“올스타는 처음이라고 알고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야구를 잘 하는 녀석들이니까, 즐기게. 인연을 잘 만들어 두면 나쁠 건 하나도 없을 테니까.”

“감사합니다.”

프랑코나는 간단한 덕담을 남기고 클럽하우스를 빙빙 돌았다. 후지를 포함해 모든 선수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지혁에게 건넨 덕담과 비슷한 말을 모두에게 남겼다. 선수들은 그의 말처럼 일 년에 한 번 있는 이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지혁과 후지도 그 동안 상대로만 만났던 선수들과 인사를 하며 말문을 트기 시작했다.

올스타의 날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

“전부 도열하겠습니다!”

말린스 파크의 직원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며 선수들을 구장으로 내보냈다. 만원 관중으로 꽉 찬 말린스 파크의 장관을 구경하며 선수들이 구장으로 달려나갔다.

아메리칸리그가 배정 받은 1루 쪽 파울라인에 주욱 늘어선 벤치 멤버 선수들 사이로 지혁도 어깨를 나란히 했다. 반대편에는 내셔널리그 선수들이 일제히 늘어섰다.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야구 선수들 사이에, 지혁이 있었다. 전생에서는 꿈도 못 꾸던 일이다.

엄청난 관중들이 내려다보는 가운데, 그들의 박수와 우렁찬 환호를 들으며. 올스타임을 증명하는 패치를 유니폼 팔뚝에 달고. 그렇게 섰다. 지혁이. 뒷짐을 지고 서 있는데 새삼스럽게 전생의 기억이 자꾸 떠올랐다. 모두가 안 될 거라고 했을 때도 끈덕지게, 치열하게 붙어 있던 보람이 이렇게까지 돌아오다니. 신을 만난 건 인생에 다시 없을 행운이었다.

- 내셔널리그의 벤치 멤버부터 소개하겠습니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클레이튼- 커쇼!

무려 커쇼 같은 선수와 같은 무대에 서면서 말이다. 홈 경기장인 말린스 파크의 주인인 마이애미 말린스가 속한 내셔널리그 선수들부터 선수 소개가 이어진다. 그리고 마이애미의 선수들을 소개할 때는 그야말로 귀청이 찢어질 듯한 엄청난 환호가 쏟아졌다. 비록 선발 라인업에 들지는 못했지만 벤치 멤버로 뽑힌 마르셀 오수나가 모자를 벗어 인사를 건네자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관중석에서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 내셔널리그의 선수 소개가 끝나고 아메리칸리그 쪽으로 차례가 돌아왔다. 클리블랜드의 선수들부터 시작된 선수 호명이 볼티모어, 보스턴, 양키스로 이어지고. 마침내 탬파베이의 선수들 차례가 되었다.

- 탬파베이 레이스입니다. 크리스- 아처! 코리- 디커슨! 그리고...

아처와 디커슨이 자신의 차례에 모자 챙을 한 번 쥐었다 펴며 카메라를 응시했다. 그 모습이 전광판을 포함해 전 세계로 송출되고 있을 것이다. 마이애미의 팬들은 같은 플로리다 지역의 라이벌리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두 선수에게 자연스럽게 야유를 내뱉었다.

- 지-혁, ‘더 슈퍼’ 문!

“푸핫.”

옆에 서 있던 디커슨이 이상한 웃음소리를 냈다. 굳이 ‘더 슈퍼’라는 닉네임을 넣어야만 했을까? 누가 대본을 작성했는지 참. 지혁은 덕분에 이상한 미소를 지으며 한 손을 들어보였다. 관중석에서 더없이 큰 야유가 쏟아지는 것을 여유롭게 감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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