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패전처리, 회귀하다-127화 (128/204)

< 127 - 배수진. >

2017년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전반기 성적.

1. 보스턴 레드삭스 (57승 33패)

2. 뉴욕 양키스 (52승 41패) - -6.5G

3. 탬파베이 레이스 (50승 42패) - -8G

4. 볼티모어 오리올스 (48승 44패) - -10G

5. 토론토 블루제이스 (40승 49패) - -16.5G

2017년 아메리칸리그 와일드카드 레이스.

1. 뉴욕 양키스 (52승 41패) - +1.5G

2. 미네소타 트윈스 (50승 42패) - 0

2. 탬파베이 레이스 (50승 42패) - 0

3.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48승 43패) - -1.5G

4. 볼티모어 오리올스 (48승 44패) - -2G

*

올스타 게임은 꿈이 현실로 만들어진 환상적인 이벤트였다.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모든 야구선수들을 통틀어 손에 꼽을 수 있는 선수로 발돋움했다는 공식적인 증거이기도 했다. 그래서 좋았다. 모든 것이 다.

하지만 문제가 딱 하나 있다. 올스타라면 응당 감내해야 하는 문제. 짧았던 올스타 브레이크를 거치는 동안, 대부분의 선수들이 짧지만 꿀 같았던 휴식을 즐겼다. 하지만 지혁과 아처, 디커슨. 올 시즌 탬파베이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세 사람은 쉬지 못했다.

물론 올스타 게임에 나서면서 많은 것들을 느꼈고 선수로써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광 중 하나를 쟁취했지만 쉬어야 할 기간에 쉬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선수가 가질 수 있는 영광과 시즌 중에 맞춰져 있던 몸의 리듬을 맞바꾼 것이 묘한 불균형을 만들어 낸다. 선발로 나서다가 중간으로 올라간 것도 그렇고. 평생 동안 올스타와는 상관없이 살아왔던 지혁이기에, 이 상상도 못한 미세한 언밸런스가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후반기 첫 경기에 마운드에 오르기 전까지는.

“후우.”

마운드에 선 지혁의 한숨이 이렇게 깊었던 적이 적어도 이번 시즌에는 없었다. 그건 확실했다. 전반기 내내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었다. 시즌에 들어오기 전까지 가장 중점적으로 신경을 썼던 커브와 싱커의 제구도 특별히 어긋나는 일이 없었고, 구속이 올라온 패스트볼은 중요한 순간에 힘으로 타자들을 억누르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중간으로 등판했던 탓일까? 아니면 단순히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뭐라고 정의할 수는 없지만, 마운드 위에서의 모든 동작에서 일관적인 느낌이 들지 않았다.

투구를 하는 왼팔이 공기를 가르는 데 아주 미묘한 무언가가 팔을 막아세우는 느낌이 든다. 투구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건, 평소의 완벽한 느낌에서 무언가 빠지거나, 과하거나, 답답하거나, 혹은 지나치게 가볍거나 하는 느낌이 든다는 말과 같다.

세트 포지션에서 힘껏 뿌린다고 뿌렸는데, 패스트볼이 93마일이 나왔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볼의 회전이 약간 풀리면서 힘이 떨어졌다. 브렛 가드너의 방망이는 그 미세한 허점을 놓치지 않고 공을 외야로 때려보냈다.

“2루 막아! 2루 막아!”

유격수의 키를 아슬아슬하게 넘어 좌중간에 떨어진 애매한 타구. 중견수 키어마이어와 좌익수 라스무스 사이를 교묘하게 가르는 공을 향해 키어마이어가 무릎으로 미끄러졌다. 그는 수비 괴물답게, 어려운 동작에서도 스프링처럼 튀어 일어나며 역동작을 극복하고 2루로 공을 뿌렸다.

하지만 양키스의 첨병인 브렛 가드너는 빠른 발을 자랑하기라도 하듯 2루에 먼저 발을 들이밀었다. 2루에 있던 주자인 스탈린 카스트로는 여유 있게 홈을 밟고 지나간 뒤였다.

“쓰읍.”

4실점 째. 이번 시즌 5이닝을 채우지 못한 상태에서 4실점을 한 건 처음이었다. 투구수가 많은 편은 아닌데 팔이 무겁다. 답답한 마음에 모자를 벗고 가슴을 주먹으로 몇 번 치고 있는데, 외야에서 웅성거림이 짙어졌다.

“트레이너!”

한 명이 외야의 녹색 잔디 위에 쓰러져 있었다. 까다로운 타구를 향해 몸을 던졌던 키어마이어는 아니었다. 그의 뒤쪽으로 동선을 잡고 빠지는 공을 향해 커버를 들어가던 좌익수 콜비 라스무스였다.

안 좋은 일은 겹쳐서 몰려온다. 지혁이 이번 시즌 최악의 피칭을 한 그 날에, 베테랑이자 팀의 주전 좌익수를 담당하던 콜비 라스무스가 무릎 부상으로 팀에서 이탈했다. 그리고 올 시즌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보이며 내야 센터 라인의 당당한 주전으로 활약하던 팀 베컴도 잔부상에 시달리며 15일 DL에 올라갔다.

같은 지구의 양키스와의 3연전, 1승 2패로 루징. 리그에서 시즌 무패를 기록하고 있던 유일한 투수였던 지혁의 첫 패전. 주전으로 자리 잡고 있던 야수 두 명의 이탈. 후반기의 시작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

구단과 선수의 입장에서 보면, 기자들은 뱀 같은 존재들이다. 그들은 반드시 같은 팀으로 만들어야 하는 존재들이기도 하지만, 반드시 같은 팀이 되어줄 수는 없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그들은 어디에도 있고 또 어디에도 없다. 도대체 누구인지, 그 존재가 실재하는지조차도 알 수 없는 익명의 누군가에게 기댄 조그만 조각으로 거대한 폭풍을 만들어내곤 한다. 그리고 나서는 웃는 낯으로 농담을 건네며 접근해서는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고 더 많은 조각을 달라고 떼를 쓴다.

그래서 이 바닥에서 구르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기자들을 싫어했다. 기자들의 힘이 너무 강력하니 앞에서는 웃으며 받아주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 기자들을 좋아하는 사람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특히 랭카스터는 더욱 그렇고. 야인 생활을 할 때는 기자가 따라붙지도 못했다. 메이저리그 팀의 감독이 되어서는 어쩔 수 없이 관리를 조금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 랭카스터가 격노하는 일이 벌어졌다. 많은 벤치 클리어링 사태에서 보았듯이, 랭카스터가 화가 나면 그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게 된다.

- 위기의 탬파베이, 설마 시즌을 포기하나?

- [주의 : 농담이 아닙니다!] 슈퍼 문, 온 더 마켓?

- 리그를 뒤흔들 초대형 지진, 진원지는 탬파베이.

엄청난 크기의 머릿기사가 신문 한 면의 대부분을 차지해버렸다. 랭카스터는 화가 잔뜩 난 들소처럼 신문을 말아쥐고 흔들어댔다. 블룸의 눈앞에서 왔다갔다하는 신문지는 마치 블룸을 때리고 위협하기 위한 도구처럼 보였다.

단장의 야구, 프런트의 야구가 펼쳐지는 메이저리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덩치 차이만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처럼 보이기도 했다. 내셔널 지오그래피의 한 장면마냥.

“나랑 한 번 해 보자는 건가, 체임?”

“계약이 쉽지 않아요. 계약이 되지 않고 있으니 루머가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고요. 미안합니다.”

“아니. 미안할 건 없지. 미안할 짓을 안 하면 돼. 이 순간에 문을 트레이드 시킨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난 그 순간 그만 둘 거야. 그리고 네놈 면상에 성한 구석은 한 군데도 남겨두지 않을 거야.”

“아직 결정된 건 아무 것도 없어요.”

“그 말이 제일 마음에 안 들어! 결정된 게 없다고? 당신들은 진작에 결정을 냈어야 했어! 아무데도 보내지 않는다고,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선수들이 그렇게 믿게 만들었어야 한다고!”

랭카스터의 투기는 진짜였다. 체임 블룸은 이를 악물어야만 했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하면, 진짜로 랭카스터에게 한 대 맞을 걸 각오하고 오기도 했다. 평생 동안 주먹질과는 개미 눈곱만큼도 연관이 없었던 체임 블룸에게는 인생을 건 모험, 그 비슷한 것이었다.

“지금 트레이드는 불가능해. 누구를 데리고 와도 안 돼. 지금 우리 팀에 커쇼를 데려다 놓는다고 해도, 난 문을 택할 거야.”

“대니...”

“차라리 나를 잘라. 아무나 감독하라고 해. 문을 보내는 그 순간이 나도 끝이야.”

랭카스터가 그 거대한 주먹으로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애초에 랭카스터의 이런 성격을 알면서도 감독 자리에 데려다 앉힌 게 블룸 자신이었다. 물론 프리드먼의 사실상 마지막 지시였기도 했지만. 어쨌든 각오했어야 하는 일이다.

후반기 시작이 안 좋은 분위기로 이어진 게 문제의 시발점이었다. 후반기 시작 5경기에서 1승 4패. 그리고 마감 열흘 앞으로 다가온 트레이드 데드라인. 탬파베이가 끝까지 대권 도전을 포기하지 않는 시즌을 보낼 거라면 트레이드 얘기는 나오지도 않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탬파베이는 자초했다. 현장의 결과를 보고 판단을 내리는 프런트가 주요 선수들의 계약 문제에 가타부타 얘기를 덧대지 않는 것 자체가, 기자들에게는 신호였다. 이 팀은 아직도 재고 있다. 러쉬냐, 리툴링이냐. 그게 지금까지 탬파베이가 살아남은 방법이기도 했다.

“대니. 난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이번 시즌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고.”

“그건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 내가 듣고 싶은 대답은 아니야!”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이 순간에도 문을 트레이드해 달라는 오퍼가 몇십 개는 쌓여 있어요. 스몰마켓 팀이 아닌 이상 전부 다 달려들었다고 봐도 됩니다. 그리고 스몰마켓 팀들 몇몇도 지들 팜을 다 털어먹어서라도 문을 데려오고 싶다고 하는 판이에요.”

“분명히 말했는데. 내가 듣고 싶은 대답이 아니라고.”

“내가 해 주고 싶은 대답도 아니라니까요!”

아주 잠깐 목소리를 높였던 블룸은 마치 상위 포식자를 대하는 산양처럼 본능적으로 목소리를 다시 낮추었다.

“하지만 이 팀의 결정은 내가 내리는 게 아니에요. 사장인 실버맨이 내리는 것도 아니고, 당신이 내리는 것도 아니라구요. 결정은 돈이 내려요. 우리는 문을 붙잡고 있을 돈이 없어요.”

“... 그래서, 이번 시즌을 포기해라? 문을 보내라는 건 이번 시즌을 포기하라는 말과 동의어야. 그리고 만약 그렇게 대답할 거라면, 당장 나가서 기자들을 불러. 내가 오늘 여기서 그만둔다고.”

“여유가 없어요. 딱 일주일. 일주일 안에 반등해야 해요. 문을 트레이드해서라도 가치 높은 유망주들을 데려와야 한다는 사람들의 입에 뭐라도 쑤셔 넣기 위해서는, 성적으로 얘기하는 수밖에 없어요.”

성적이 문제다. 성적. 지구 2위 양키스를 따라잡는 게 버거울지 몰라도, 와일드카드 레이스에서 떨어지지 않고 딱 달라붙어 있어야만 한다. 지금 와일드카드 레이스의 2위는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의 미네소타 트윈스. 두 게임 반 차이.

맹렬하게 따라가서 더 딱 달라붙어서, 시즌이 끝나는 날까지 와일드카드 획득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수치로 보여줘야만 한다.

“그래야 빌어쳐먹을 이사들에게 입 닫고 결과나 지켜보라고 할 수 있다니까요. 지금처럼 가능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는 내가 그 말을 듣게 생겼어요. 닥치고 결과나 지켜보라는 말.”

체임 블룸도 절박했다. 랭카스터는 찬물만 벌컥벌컥 들이켰다.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판단하면 이사들의 주장이 맞다. 어차피 잡을 수 없는 카드라면, 지혁의 가치가 최고점에 있는 지금 트레이드해야 유망주들을 쓸어 담을 수 있다. 만약 시즌이 끝날 때까지 지혁을 데리고 있다가 내년 연봉이 10m을 상회하기라도 한다면? 지혁을 영입해갈 수 있는 팀이 적어진다. 웬만한 규모의 팀들은 저 연봉에서 이미 다 떨어져 나갈 것이다.

하지만 지혁을 데리고 있지 않는다면, 혹시 모를 기적의 반등은 아예 없다. 만약 지혁을 트레이드시킨 뒤에라도 정말 하늘이 도와 가을 야구를 할 수 있게 된다면? 그 때 팀에 슈퍼 에이스가 되어 버린 지혁이 없다면? 그건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다.

“반등이라. 좋아.”

랭카스터는 알았다. 도박을 해야만 하는 시점이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성적을 끌어올려야 한다. 후반기의 안 좋은 분위기를 극복해내야 한다. 전문가들의 비관적인 예측에도, 이사들의 냉정한 시선에도 큰 엿을 먹여야만 한다. 벼랑 끝에 섰을 때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다면 승부를 볼 수 없다.

“대신, 신인들을 올려 줘.”

앞뒤 잴 거 없이 전력으로 달려들어야만 하는 선수들로 승부를 보겠다는 심산이다. 그들의 실력이 부족하면 어쩔 수 없다는 배수진.

블룸도 눈을 질끈 감았다. 그의 본능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탬파베이 레이스가 만에 하나라도 월드시리즈에 도전할 수 있다면, 그건 지혁이 팀에 있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다. 문지혁 정도 되는 투수를 데리고도 더 높은 곳을 향할 수 없다면, 어느 투수를 데리고 있어도 불가능한 도전일 것이다.

극단적인 선택이 무엇이든, 이번 시즌 팀에 지혁을 남겨 마지막 도전을 할 수 있다면, 할 것이다. 해야만 하고.

*

[로스터 변동 : 탬파베이 레이스]

콜비 라스무스(OF), 팀 베컴(SS) - DL 맷 안드리스(SP), 엑세비어 세데뇨(RP), 피터 버죠스(OF) - (to the Durham, AAA) 윌리 아다메스(SS), 제이크 바우어스(OF), 후 치웨이(RP), 제이콥 파리아(RP), 호세 드 레온(SP) - (to the Tampa Bay, ML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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