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클 포크
“너클 포크라는 건…… 솔직히 처음 들어 보네요.”
“그럴 수 있어. 공에 이름은 붙이기 나름이니까.”
“포크 계열이겠죠? 전 포크 쪽은 못 던지는데.”
“음, 일단 한번 봐.”
캘러웨이는 검지와 중지 사이를 조금 벌려 세로로 놓인 공의 솔기 양 쪽을 부여잡았다.
“자. 이게 일반적인 스플리터야. 여기서 손을 더 찢어서 완전히 끼워 던지면 포크볼이 되지. 아시아 쪽에서 이 공을 잘 쓰는 편이야. 특히 일본 녀석들이. 하지만 지금 내가 잡은 이 스플리터가 더 핫한 공이지.”
“여기까지는 저도 압니다.”
“좋아. 그럼 이 공은 어때? 잘 봐.”
캘러웨이는 비어 있는 포수 쪽을 향해 가벼운 스트라이드를 뻗으며 공을 던졌다. 1루 쪽 플레이트를 밟고 있던 캘러웨이의 손에서부터 우타자의 몸쪽으로 향하는, 그러니까 사선에 가까운 방향으로 향하는 공이었다.
“어?”
변화가 생긴다. 처음에는 날아가던 공에 실밥이 돌아가는 것이 보였었다. 하지만 중간 즈음에서부터는 실밥이 돌지 않았다. 회전이 멈춘 것이다. 그러면서 공이 흔들리며 떨어졌다. 지금까지 날아오던 방향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툭.
홈플레이트 뒤쪽을 때리고 나서 그물에 처박힌 공을 바라보며, 캘러웨이는 지혁을 향해 돌아보았다.
“어떠냐?”
답은 정해져 있었다.
“엄청 멋있네요. 이게 대체…… 너클볼과 포크볼을 결합한 건가요?”
“하하, 뭐, 결합까지는 아니고. 조금 섞었다고 해야 하나.”
캘러웨이는 잠시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새 공을 주워 들어 자신의 그립을 보여 주었다.
“공에 이름은 붙이기 마련이야. 스플리터도 그렇지. 아시아권에서는 반半포크로 부르기로 했었으니까. 이 공도 반포크 계열이라고는 볼 수 있어. 하지만 포크나 스플리터의 목적과는 완전히 다르지.”
“목적이요? 어떤 면에서 그렇죠?”
“좋아! 아주 좋은 질문이야. 이렇게 질문을 해 오는 녀석이 좋은 투수지. 자, 일반적인 포크나 스플리터의 목적이 뭐지?”
“패스트볼처럼 들어오다가 중간부터 떨어뜨리는 거죠. 패스트볼인 척하려고요.”
“좋아, 그렇다면 포크나 스플리터의 속도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죠. 대처할 수 없는 시간에 떨어져야 하니까.”
“그거지. 바로 그거야. 엄밀하게 말하면 포크 계열의 투구들은 커브나 슬라이더 류의 브레이킹 볼도 아니고, 체인지업 류의 오프스피드 피치도 아니야. 하지만 내가 던지는 이 공은, 그 두 가지 역할을 모두 할 수 있지.”
캘러웨이는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아마 그가 현역 시절에 던질 수 있었던 최고의 필살기 같은 공인 모양이었다.
“문, 네 공은 아주 좋아. 제구력도 최상에 가깝고. 폼에는 디셉션도 있지. 네가 리그에서 손에 꼽을 수 있는 투수인 건 그것들 때문이야. 패스트볼도 빨라졌고, 싱커도 날카롭고. 가끔 던지는 커브도 아주 훌륭한 낙폭을 가지고 있어. 하지만 그중에서도 부족한 걸 찾아내자면 말이지. 오프스피드야.”
“흠.”
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타이밍을 빼앗는 공은 마땅치 않았던 게 사실이었다. 체인지업을 던질 수 있기는 했지만 메이저리그에서 지속적으로 던질 수 있는 공은 아니었다. 어쩌다 가끔,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때 깜짝 놀라게 할 요량으로 던지는 정도의 공. 순수한 지혁의 재능만으로 던져야 하는 공이니까 당연한 말일지도 모른다.
“너클 포크를 타석에서 보면, 이 공이 오프스피드 피치의 역할을 한다는 걸 정확히 알 수 있을 거야.”
“아, 회전이 멈추는 바로 그 순간이군요?”
지혁의 대답에 캘러웨이가 제법 놀란 듯 눈을 크게 치켜떴다.
“똑똑한데? 정확해. 공이 날아오면서 회전이 멈추게 되기 때문이지. 타석에서 볼 때는 회전이 멈추는 순간에 공도 같이 멈춘 것처럼 느껴지거든. 체인지업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순간처럼 말이야. 어설픈 체인지업보다는 내 공이 훨씬 더 좋은 오프스피드 피치가 될 수 있지.”
지혁은 단번에 납득했다. 투수의 뒤에서 보면서도 공이 순간적으로 멈추는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였으니까. 타석에서는 체감 정도가 훨씬 더할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까 네 투구를 되돌려 보자고. 카운트는 투앤투, 타석에는 트라웃. 그 전에 네가 던질 수 있는 모든 공을 다 보여 줬지. 싱커, 패스트볼, 커브, 다시 싱커. 그리고 다섯 번째 공을 던질 차례야. 트라웃 정도 되는 녀석이라면 패스트볼에 타이밍을 맞추고 마지막에 변화하는 공들을 툭툭 잘라 낼 거야. 그러면서 투수를 압박하겠지. 건드려도 아웃이 나올 수밖에 없는 완벽한 공을 매번 던질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캘러웨이는 다시 한 번 포수 쪽으로 공을 던졌다. 중간에서부터 회전을 잃은 공이 너울거리며 떨어져 내렸다.
“이 공 하나 섞는 게 낫지 않겠어?”
낫죠. 낫고말고요. 지혁은 캘러웨이에게 완전히 설득당했다.
***
스프링캠프까지 남은 기간은 한 달 하고 조금. 지혁은 오랜만에 새로운 퀘스트를 깨는 마음으로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새로운 구종을 배우고 연습하는 건 언제나 재밌는 일이었다. 브랜든 웹의 싱커를 처음 던지기 시작했을 때도 그랬고, 그 싱커에 알렌의 지도를 더해 지혁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도 그랬다. 후지의 커브를 새로 던지기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지혁에게는 결코 없던 재능을 신을 통해서 받았다. 그 재능을 개화시키는 것은 오롯이 지혁의 몫이었고, 어디 가서 노력으로는 진 적이 없는 지혁은 계속해서 공을 던짐으로서 마침내 지금의 위력적인 공들을 만들어 냈다. 그냥 수도 없이 많이 던졌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이 생각했다.
투수로서 성장할 수 있는 조그만 계기라도 생긴다면 거기에 완벽하게 푹 빠져들어야만 한다. 그게 지혁의 방식이었다. 재능이 없었으니까. 부족한 재능을 커버하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이 해야 한다.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므로 지혁의 이번 겨울은 너클 포크로만 점철되었다.
하지만. 어쩌다 몇 개 정도는 괜찮은 공이 들어갔지만, 낮은 공을 던지려 하면 여전히 반도 못 가 땅바닥에 처박혔다. 존 높은 공을 공략하려 하면 회전이 덜 풀려 배팅 볼 그 자체가 되어 버렸고.
“……하.”
“실망할 것 없어.”
캘러웨이는 명백하게 실망스러운 표정을 하고서는 표정과 완전히 다른 말로 지혁을 위로했다.
“네가 너클 포크라는 말을 못 들어 본 것도 당연해. 이 공은 아무나 던질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포크볼이기도 하면서 너클볼이기도 하면서 또 체인지업이기도 하니까. 선택받은 몇 명만 던질 수 있는 공이라고.”
캘러웨이는 자기가 만난 모든 투수들에게 이 공을 권유해 봤지만, 아직까지 너클 포크를 소화할 수 있는 선수를 본 적이 없다고도 덧붙였다.
“안 되면 그냥 말아도 돼.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거지! 잊지 마. 너클 포크 없이도 너는 사이 영 2위 투수라고.”
그 말대로다. 그래서 얄미운 신이 가끔씩 나타나 ‘캘러웨이의 재능을 사지 않겠는가?’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지혁은 거절했다.
그렇다고 해서 지혁이 너클 포크를 포기할 생각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건 세상에서 제일 지혁답지 않은 짓이다. 아직 공을 배운지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신의 능력을 빌리지 않고 도전해도 되는 일인데, 일찍부터 타협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지혁이 한 달 넘게 투자했지만 아직도 너클 포크를 제대로 던지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명백했다. 던지기가 너무 어려워서다. 기본적으로 두 손가락을 이용해야 하는 일반적인 공들과는 달리 세 손가락을 이용해야 하는 데다가, 공을 손에서 떠나보내는 그 순간의 느낌은 누구도 제대로 설명해 주지 못했다. 심지어 캘러웨이조차도.
실밥을 긁는 것도 아니고 또 밀어 내는 것도 아니고 흘려보내는 것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엔가 위치한 느낌으로 던져야 한다. 전생의 지혁이 새로운 공을 배워 보기 위해, 손가락 장난질이라도 하기 위해 무수히 노력했지만 이렇게까지 난이도가 높은 공은 처음이었다.
검지와 약지로는 공을 흘리는 것과 긁는 것의 중간 정도의 힘을 줘야 한다. 이때 검지와 약지로 최소한의 회전을 걸어 줘야 처음에 회전이 걸린다. 동시에 가운데에 찍듯이 박아 넣은 중지로는 회전을 억제할 수 있게끔 밀어 넣어야 한다. 그래야 이 공의 핵심인 ‘날아가는 중간에 회전이 멈추는’ 현상이 발생한다.
또 하나의 공이 포수의 머리 한참 위로 날아가는 것을 보면서. 지혁은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캘러웨이는 가만히 보다가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안 되면 될 때까지다.
***
2월 중순. 클리블랜드의 홉킨스 공항에서 비행기에 올라탔다. 스프링캠프의 시작이다. 클리블랜드는 애리조나가 아닌 플로리다에 캠프를 차리는 팀 중 하나였고, 지혁은 탬파를 떠난 지 두 달 만에 다시 플로리다로 돌아가게 됐다.
선수단과 프랑코나 감독은 플로리다 캠프장에서 합류할 것이다. 지혁은 클리블랜드 구단 쪽 사람들과 같이 단체로 이동하게 되었는데, 다들 분주하게 움직이며 이것저것을 챙기는 동안 일찌감치 비행기에 올라탔다.
왼손에는 너클 포크의 그립을 쥔 채였다.
“T-23……23. 와, 여기네!”
“응?”
지혁의 옆자리에 털썩 앉은 사람. 시니에다. 지혁이 클리블랜드에 합류해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여자였다. 대체 무슨 의사라는 사람이 이렇게 시간이 많은지도 모르겠고, 또 남는 시간에 왜 자기 할 일을 안 하고 자꾸 지혁의 연습을 보러 오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해결 못 했죠?”
“뭐, 네.”
“괜찮아요. 금방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
시니에는 지혁의 왼손에 끼워진 야구공을 가리키며 배시시 웃는다. 이제는 시니에의 종잡을 수 없는 말에 익숙해져 버린 지혁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시니에도 지혁의 반응에 익숙해졌는지, 자신의 가방에서 서류들을 한 무더기 꺼냈다.
“이건 다 뭐냐고 물어보려고 했죠? 이번 스프링캠프에 합류하는 59명 선수들의 몸 상태에 대해 적혀 있는 차트예요. 물론 문 것도 있고요.”
시니에는 혼자 묻고 혼자 답했다.
“말 나온 김에 살펴볼까요? 문, 문, 문…… 자, 여기 있네. 키는 187.4cm, 몸무게는 98kg…….”
그녀가 쫑알거리기 시작했다. 하이톤도 아니고 허스키하지도 않은 목소리가 거슬리지 않고 귀에 착 내려앉았다. 어차피 시니에가 하는 말은 잘 듣지도 않는 데다가 들어도 알아듣지 못할 전문 용어가 많아서, 지혁은 주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편이었다.
하지만 시니에의 목소리는 뭔가 안정감을 주는 힘이 있었다. 백색소음이라고 할까, 아니면 ASMR이라고 할까. 뭐 그런 것들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시니에는 차트에 적힌 것들을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리고, 지혁은 시니에의 목소리만 들으면서 너클 포크의 이미지를 트레이닝하는 비행이 이어졌다. 플로리다 브래든턴에 위치한 맥케치니 필드에 도착할 때까지.
***
“반갑네.”
“처음 뵙겠습니다. 문지혁입니다.”
“든든하군.”
메이저리그에서도 손꼽히는 명장인 테리 프랑코나를 처음 만났다. 금빛 뿔테 안경 속에서 날카로운 눈빛이 빛났다. 딱 두 마디를 나눴을 뿐인데 카리스마가 철철 넘쳐흘렀다.
“문, 반갑다.”
클리블랜드의 에이스인 코리 클루버도 지혁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고. 마이클 브랜틀리와 제이슨 킵니스, 로니 치즌홀 같은 중견 선수들도 지혁에게 선뜻 다가와 팀에 합류한 걸 축하했다.
“Hi.”
앤드류 밀러는 엄청나게 긴 다리로 성큼성큼 다가와서는 지혁에게 냉큼 손을 내밀기도 했다. 불펜의 에이스인 밀러는 같은 좌완 투수인 지혁에게 큰 관심을 가진 듯했다. 안 그래도 클리블랜드는 좌완 투수들이 없기로 유명했으니까. 이번에 합류한 지혁이 선발진에서 유일한 좌완 투수였다.
그리고 저쪽 구석에서부터 벌써부터 시끄러운 기운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예에에에아! 문! 웰컴!”
“히이-하! 아미고!”
“멘데스의 아미고라면 내 아미고이기도 하지! 헤이, 아미고!”
“하. 저 미친놈들.”
밀러조차도 어이가 없는지 허탈한 웃음을 내보이고 말았다.
페르난도 멘데스를 중심으로 한 도미니카, 푸에르토리코, 그리고 북중미 선수들이 우루루 몰려들고 있었다. 프란시스코 린도어나 카를로스 산타나, 호세 라미레스, 대니 살라자르와 카를로스 카라스코 같은 선수들. 하나같이 우스꽝스러운 복장에 머리에는 어디서 구했는지도 모를 깃털을 꽂고 나타났다. 지혁이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자, 밀러가 허리를 숙여 지혁의 귀에 대고 속삭여 줬다.
“우리가 인디언스라서. 스프링캠프의 시작은 인디언처럼 꾸미고 다니자고 멘데스 녀석이 제안했대. 미친놈들을 휘어잡는 건 역시 미친놈뿐이니까. 하.”
하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진짜로 종잡을 수 없는 구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