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패전처리, 회귀하다-158화 (159/204)

방심

-[MLB.com]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 시즌 프리뷰.

-MLB.com 에디터, 헨리 페키스턴.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에 대한 시즌 프리뷰는, 지금까지 필자가 쓴 모든 칼럼 중에서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작성이 끝났다. 그만큼 전력 차이가 압도적인 지구이다. 잠깐, 이 말은 지난 주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관련 칼럼을 쓸 때도 그랬던 것 같은데?

어쨌든,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에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향후 몇 년간 유지될 것 같은 독주 체제를 갖추어 놓았다면, 중부지구에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있다. 재작년, 그리고 작년. 월드시리즈 준우승 타이틀에 만족하며 저주의 유통기한을 70년까지 연장하고야 만 인디언스는 우승을 위해 모든 것을 다 털어 넣었다.

트레버 바우어와 프란시스코 메히아를 보내는 대신 탬파베이의 슈퍼 문을 데려온 것이다. 안토네티 단장과 프랑코나 감독은 필요했던 ‘마지막 퍼즐’을 채웠다고 말한다. 올해야말로 반드시 우승을 차지하고야 말겠다고 말이다.

이는 같은 지구에 속한 다른 팀들에게는 악몽 같은 소식이다. 시작부터 의지가 많이 꺾여 있을 것이다. 문이 없던 작년 시즌에도 클리블랜드는 나머지 네 팀보다 강했다. 생각보다 게임 차이가 많이 나지는 않았지만 다른 팀들이 추격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딱 그 정도의 차이를 보여 주었다. 그런데 리그에서 세 손 안에 꼽히는 좌완 투수(당연히 클레이튼 커쇼, 크리스 세일과 함께다)인 문까지 데려왔으니. 더 언급할 필요가 없다.

캔자스시티 로얄스는 2015년 월드시리즈를 제패한 이후 정해진 내리막길을 걷고 있으며, 앞으로 몇 년 간은 쭉 그럴 것이다. 미네소타 트윈스는 애매하다. 우승권에 도전할 전력도 아니고, 리빌딩을 할 정도로 팀이 노쇠하지도 않았다. 적절한 중위권 수준이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오프 시즌 동안 뜨거운 감자가 될 줄 알았던 저스틴 벌렌더는 시장에서 외면 받았고, 팀에 남았다. 그뿐이다. 팀의 황혼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카고 화이트삭스. 리빌딩이 아직 덜 끝났다. 굉장한 유망주들을 보유하고는 있지만, 최소한 2년은 더 필요하다. 리그 최약체가 될 것을 확신한다.

공교롭게도 지금 나열한 순서는 작년의 지구 순위와 꼭 같다. 그리고 이 순위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다섯 팀 모두 작년의 순위를 변화시킬 만한 드라마틱한 선택을 하지 않았으니까. 이러한 체제가 올 시즌에도 유지될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략…….

***

스프링캠프 시범 경기는 그냥 시범 경기일 뿐이다. 모든 팀의 선수들이 전력을 다하지는 않는다. 그저 몸을 끌어올리고, 테스트할 것들을 테스트해 보는 그런 과정이다. 그러니 이 바닥에서 구르는 그 누구도 시범 경기를 놓고 전력을 판단하지 않는다.

하지만 클리블랜드와 다른 팀들 간의 차이는 시범 경기에서부터 벌어지기 시작했다. 몇몇 슈퍼스타들이 팀을 이끌고 있는 디트로이트와 미네소타, S급은 아니지만 A급 선수들 여러 명이 포진한 캔자스시티이지만, 몇몇 슈퍼스타들과 A급 선수들이 전부 포진한 클리블랜드에 비하면 중량감이 너무 떨어진다.

경기장 안에서 뛰는 선수들과, 눈앞에서 경기력을 지켜보는 스태프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시즌은 길고, 변수는 많다. 야구는 알 수 없다는 말은 진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리블랜드의 구성원들은 지구 우승을 확신할 수 있었다. 재작년에도 그랬고 작년에도 그랬고 올해에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제일 재미없는 지구 중 하나가 될 거라는 예상도 심심찮게 쏟아지는 것이다. 페키스턴의 기사도 그렇고 그런 예상 중 하나였다. 하지만 페키스턴의 기사를 읽는 프랑코나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그는 긴 침음을 흘렸다.

“흠…….”

지구 우승을 확정지어 놓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칭찬에 기분이 좋을 법도 하건만. 프랑코나는 웃을 수 없었다. 지난 두 번의 실패를 겪은 이후, 이번 시즌 스프링캠프에 합류해서 느낀 불안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에게 닥친 과제는 두 개였다.

하나는 우승을 위한 갈망을 더 채찍질하는 것이다. 지구 우승을 하는 건 자랑스러운 일이다. 디비전시리즈 우승? 챔피언십시리즈 우승? 선수들은 가족들에게 평생 자랑할 수 있는 성취를 이뤄냈다. 사람마다 성취와 만족의 기준은 다 다르기 때문에, 선수들 중 몇몇은 지금까지 이뤄 낸 성과에 만족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팀의 목표는 그 이상. 모든 팀들 사이에서의 최정상. 월드시리즈 우승. 그것뿐이다. 지금까지 잘 해 온 선수들에게 더 잘 해야만 한다고 몰아붙이는 것은 말은 쉬워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니까. 팀의 선장이자 지도자의 입장에서는 가장 곤혹스러운 일들 중 하나다.

다른 하나는 보다 더 당면한 문제다. 선수들의 자만심을 관리하는 것. 지금은 스프링캠프 시범 경기이기 때문에 선수들을 독촉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당연히 우승’할 것이라는 관념이 이미 선수들에게 스며들고 있다. 이런 자세로 시즌을 치르는 건 위험하다.

“캘러웨이 코치, 어떻게 생각해?”

“솔직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만심이라는 건 어떻게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나?”

“네. 적어도 전 그렇습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 아주 맞는 말도 아니고.”

방심과 자만은 프로의 가장 큰 적이다.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모두가 당한다. 심지어는 선수가 아니라 감독과 코치들조차도 당한다. 심각한 독이어서, 당하고 있으면서도 당하는 줄 모를 때도 있다. 프랑코나는 잔뼈가 굵은 사람이지만. 선수들 사이에 감도는 실체 없는 자만심에 대처하는 게 매번 참 힘든 일이라는 걸 실감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더 그렇군.”

“2년 연속으로 잘 했으니까요. 자신감이 가득 차 있을 수밖에 없죠.”

“그게 자만이 되는 법이지.”

하아, 프랑코나는 깊은 한숨을 쉬며 펜으로 달력을 툭툭 두드렸다. 4월 2일. 오프닝 데이. 그때까지 선수들의 자만심을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시간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

스프링캠프 시범 경기의 마지막 경기는 스타인브레너 필드에서 열린 양키스와의 원정 경기였다. 카를로스 카라스코가 선발 마운드에 올라 4.1이닝 동안 3실점했고, 불펜에서 이어받은 브라이언 쇼가 타일로 올슨이 2실점, 라이언 메리트가 2실점 하며 총 7실점을 했다. 지난 시즌을 풀타임으로 치르며 괴물로 거듭난 애런 저지는 1회와 5회 홈런을 뽑아내며 괴력을 뽐냈다.

“오늘 경기가 얼마나 실망스러웠는지를. 내가 더 전달해야 하나?”

몇몇 투수들이 고개를 푹 숙였다. 굳이 오늘 부진했던 선수들뿐이 아니었다. 시범 경기 마지막 주, 클리블랜드는 4연패했다. 그 네 경기 중 지혁도 한 경기에 등판했다. 3이닝을 던지며 1실점. 의외의 홈런 한 방을 허용한 것을 빼고는 완벽한 투구였다. 하지만 그 경기도 결국 졌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지혁도 씁쓸한 표정으로 프랑코나의 연설을 듣고 있어야 했다.

“이번 게임을 치르기 전에 너희들에게 분명히 말했던 것 같은데. 시즌의 게임이라고 생각하자고. 당장 내일 모레가 개막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고. 하지만 너희가 보여 줬던 태도나 마음가짐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더군. 안 그런가?”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선수들에게 퍼져 있는 자신감과 자만심의 경계가 무너진 것이다. 실전에 들어가야 하기 직전에, 넘치는 자만심이 기어이 화를 불렀다. 프랑코나가 생각하기에 마지막 주 경기들만큼은 실전처럼 하고 싶었고, 또 해야만 하는 경기였다.

하지만 어처구니없는 큰 스윙, 생각하지 않는 플레이, 사라진 팀 배팅, 힘 잃은 고무줄처럼 늘어져 있는 수비 집중력.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오늘은 다 같이 경기를 돌려 보며 모든 플레이를 다 분석한다. 전부 비디오룸으로 모여!”

저 말은 클리블랜드로 돌아가는 비행 일정을 미룬다는 뜻과 같다. 프랑코나는 단단히 화가 났음을 모두에게 알린 것이다. 모두가 비상이 걸렸다.

지혁은 처음 경험해 보는 일이었지만, 선수들의 침울한 반응으로 볼 때 아마 지독한 하루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슬픈 예감대로였다. 프랑코나 감독은 3시간이 넘어가는 풀타임 경기를 돌려보며 선수들이 해야 할 플레이를 일일이 지적했다. 아주 세세한 것도 넘어가지 않았다. 내야수들의 풋워크, 외야수들의 수비 위치와 타구 판단, 타자들의 스윙 자세와 타이밍까지.

‘이럴 때 보면 랭카스터 감독보다 더 무섭다니까.’

지혁은 거대한 몸집과 화끈한 성격의 랭카스터를 떠올렸다. 직접적이고 직설적이었던 랭카스터의 스타일은 어찌 보면 알기 쉬웠다. 마치 정말 들소를 마주하는 것처럼. 눈앞에서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다가도 화가 가라앉으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스타일이었으니까.

한편 프랑코나는 벌써 몇 시간째 말의 높낮이도 변하지 않고, 어조와 톤도 일관적이다. 목소리에 서늘한 냉기가 서려 있는 것으로 조금 짐작이나 가능할까. 속을 알 수 없어서 훨씬 더 무서운 사람이다.

“……이상. 2시간 뒤 비행기 탄다. 준비해.”

한 4시간쯤 지났을까? 그동안 심지어 화장실을 간 선수도 없었다. 프랑코나는 4시간을 내내 똑같은 자세로 선수들의 문제를 지적한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와, 오늘 정말 제대로 날 잡으셨네.”

“그러게 말이야. 감독님이 제대로 화가 나셨나 본데.”

코치들 몇몇이 수군거렸다. 선수들의 진을 쏙 빼 놓은 분석 시간이 지나가는 동안 코치들도 전전긍긍했을 것이다. 프랑코나가 이렇게까지 한 건 선수들만의 책임도 아니요 감독의 책임도 아니니까. 팀 모두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랑코나가 선장답게 칼을 빼어 든 것이고.

그렇게 침울한 분위기에서 선수들이 라커로 돌아가 짐을 챙겼다. 급하게 비행 일정을 새로 잡은 탓에 2시간은 대기해야 했다. 선수들은 제각각 시간을 보낸다. 프랑코나의 진 빠지는 분석을 듣고도 또 다시 경기를 돌려 보는 선수들도 있고, 피곤했던지 잠을 청하는 선수들도 있다.

지혁은. 멘데스에게 다가갔다.

“너는 뭐 할 거야?”

“흠, 글쎄. 딱히 할 건 없어.”

“그럼 공이나 좀 받아 줘라.”

“뭐라고?”

“너클 포크. 오늘 못 던졌으니까.”

“이 와중에 공을 또 던지겠다고?”

“안 될 건 뭐야? 다른 선수들은 정신 좀 차리고. 난 연습 좀 더 하고. 그런 거지.”

“……지독한 놈이다, 진짜.”

“받아 줄 거지?”

“하, 그래. 나도 진짜 너한테는 두 손 다 들었다. 항복이야, 항복.”

“가자, 불펜으로.”

야구가 안 될 때는 야구로 풀어야 한다. 지혁은 엘리트가 아니었다. 힘든 상황에 있을수록 더 야구에 치중하는 게 지혁의 방법이다.

***

“으쌰!”

“오-케이! 방금 건 괜찮았어!”

열 개를 던지면 한 개 정도는 제대로 들어간다. 멘데스는 그럴 때마다 호쾌하게 소리를 질러 주며 지혁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 줬다.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참 좋은 포수다.

“지금의 감각을 빨리 고정시켜야 하는데.”

릴리스 포인트를 조정하거나, 어깨와 팔의 스윙을 늘였다 줄였다 하며 최적의 지점을 찾아가는 연습을 반복하고 있다. 처음에는 막연했던 것이, 이제는 안개가 조금씩 걷혀 가는 과정이라고 해야 할까. 아주 조금씩이지만 분명히 나아지고 있었다. 지혁의 방식대로니까. 신을 찾아오게 만들 수 있었던 그 방식이니까. 지혁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

“다시! 방금은 안 돼.”

“흠- 애매해. 다시.”

“아니야, 다시.”

물론 아직 10%의 확률 정도지만. 앞으로는 늘어나겠지.

그렇게 카트 한 박스의 공을 다 던져 갈 즈음이었다.

“여기서 뭐 하나?”

프랑코나 감독이 불펜에 들어왔다.

“감독님?”

“…….”

“오늘은 너클 포크를 던질 시간이 없어서요. 시간이 좀 뜬다고 해서, 연습 중입니다.”

“곧 출발할 거니까. 바로 옷 갈아입고 준비해.”

“아, 네. 그러겠습니다.”

프랑코나는 중지로 안경을 한 번 추켜올리고는 돌아서 불펜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지혁이 멘데스와 함께 공을 정리하는 사이에 다시 돌아왔다.

프랑코나는 문을 열고 고개만 내밀고는 확고하게 말했다.

“문, 오프닝 데이 선발이다. 알아 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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