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패전처리, 회귀하다-161화 (162/204)

원투 펀치

“2018시즌 메이저리그는 정말 대단한 임팩트로 출발했습니다. 가장 먼저 찾아봐야 할 곳은 당연히 클리블랜드입니다.”

“이견이 있을 수 없죠.”

모든 스포츠 프로그램이 다 같은 소식으로 자신들의 오프닝을 장식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기록이다.

“오프닝 데이에 노 히터. 상상할 수 없던 기록 중 하나였죠. 가장 최근의 기록이 언제라고요, 밥?”

“1940년입니다. 공교롭게도 같은 팀이네요. 클리블랜드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투수, 밥 펠러가 유일한 기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펠러는 아주 당연하게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선수이기도 했습니다. 또 펠러는 월터 존슨과 크리스티 매튜슨에 이어 세 번째로 투표 첫해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선수이기도 합니다. 아이오와 출신이었던 펠러는 통산 266승과 3.25의 평균자책점, 통산 2,581개의 탈삼진을 잡아냈던 위대함 그 자체였던 선수입니다. 공식적이지는 않지만 그의 패스트볼 구속은 무려 107마일에 달했다고 알려지고 있죠.”

스토리를 만들어 내기도 좋았다. 선수 생활 내내 클리블랜드에서만 활약했던 펠러는 선수 생명을 이어가는 도중 제2차 세계 대전에도 참가했으며, 여덟 개의 무공 훈장을 받은 뒤 다시 마운드로 복귀해 영광의 시대를 이끌어 나가던 선수였다. 그의 번호인 19번은 클리블랜드에서 가장 먼저 영구결번이 된 번호이기도 했다.

“1940년이라, 와우, 그럼 78년 만의 기록이 다시 나온 것이로군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기록이 있죠. 트레이드된 이후 첫 경기에서 노히터 게임을 달성한 건 역사상 문이 최초입니다.”

“그렇군요. 놀랍게도 문은 클리블랜드 유니폼을 입고 처음 던지는 경기였어요.”

“보통 새로운 팀에 오면 환경에 적응하는 게 먼저죠. 포수와의 호흡, 야수들과의 호흡, 코칭스태프와의 호흡…… 그런데 문에게는 이런 과정이 필요 없었나 봅니다. 그는 역사에 이름을 새겼습니다.”

“저희가 계속 얘기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시청자 여러분, 대기록이 나온 장소인 클리블랜드를 확인하시죠. 어제 경기의 하이라이트가 끝나면 문의 인터뷰 영상도 나옵니다. 놓치지 마세요.”

탬파베이의 유니폼을 입고 클리블랜드를 상대로 던지던 지혁의 모습부터, 입단식에서 클리블랜드 유니폼을 입는 모습, 클리블랜드의 새 동료들과 장난을 치는 모습에 이어 어제의 투구가 화려한 파노라마 영상으로 펼쳐진다. 탈삼진 아홉 개, 땅볼 유도 열세 개, 뜬공 유도 다섯 개. 그동안 허용한 출루는 단 두 개. 그나마 두 명의 주자를 내보냈을 때도 곧장 더블 플레이를 유도해 내는 투구.

“오늘의 투구는 정말로, 정말로 압도적이었습니다. 어떤 마음이셨나요?”

“글쎄요, 평소처럼 던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기장을 꽉 채워 주신 클리블랜드 팬 여러분의 엄청난 성원이 제게 에너지를 불어넣어 줬습니다. 그것뿐이네요.”

“많은 사람들이 리그 최고의 포수 중 하나인 페르난도 멘데스와의 호흡에 대해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두 사람의 하모니가 환상적이라는 걸 증명해 주셨는데요. 어떠셨나요?”

-히이-하!

린도어가 사람 몸통만한 게토레이 통에 음료수를 가득 채워 인터뷰를 하고 있는 지혁의 머리 위에 끼얹었다. 노련한 리포터와 카메라맨은 미리 피했고, 지혁은 기분 좋게 그 음료수를 뒤집어썼다.

“와우, 하하하. 오, 이런!”

리포터가 웃으며 인터뷰를 진행하려던 찰나, 진심으로 뒤돌아 도망쳐 버렸다. 마이클 브랜틀리가 한 번 더 게토레이를 끼얹은 것이다. 음료를 두 통이나 쓰다니.

완전히 쫄딱 젖어 버렸지만, 지혁은 그래도 웃었다.

“어메이징, 하하, 문, 이대로 조금 더 늑장을 부리다가는 게토레이 샤워를 또 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인터뷰를 빨리 진행하죠. 멘데스와의 호흡부터요.”

“아, 뭐라고요? 귀에 음료가 들어가서 제대로 안 들리네요.”

“멘데스요, 멘데스!”

“아, 페르난도는 리그 최고의 포수입니다. 오늘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고. 멘데스가 이끌어 주는 대로만 던질 겁니다. 그게 최고의 방식이라는 걸 저는 아니까요.”

“놀라운 신뢰입니다. 그와 호흡을 맞춘 지 한 달도 채 안 되지 않았나요?”

“멘데스가 최고의 포수라는 건, 한 달이 아니라 공 한 개만 던져 봐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당신에게 놀라운 응원을 보내 준 클리블랜드의 팬 여러분께 마지막 한마디를 하고 마치도록 하죠. 축하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첫 경기라서 긴장도 많이 했는데, 꽉 찬 경기장을 보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여러분의 성원 덕분에 처음부터 좋은 기록을 냈으니까, 앞으로도 계속, 클리블랜드를 위해. 좋은 투구 하겠습니다. 땡큐, 클리블랜드!”

***

-축하해, 너 완전 클리블랜드 사람 다 됐더라?”

“아, 또 뭘. 그냥 프로니까 하는 인터뷰지.”

-됐어, 좀 섭섭하다? 몇 달 전만 해도 탬파베이 선수였으면서.

“야, 연두야, 오늘만 그 말 몇 번째 듣는지 알아? 탬파베이에서 전화한 모든 사람이 다 그 소리더라.”

-나도 탬파베이 사람이거든? 우리 팀에서나 그렇게 좀 던지지.

“내가 거기서 얼마나 잘 던졌는데.”

탬파베이에서 연이 있던 사람들은 모두 전화를 걸어 지혁의 기록 달성을 축하해 줬다. 연두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올해부터 탬파베이의 분석 담당 팀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한다.

확실히 야구를 거의 미친 사람처럼 파고드는 스타일이다 보니까, 야구 너드들이 가득한 탬파베이에서도 한자리 차지한 것이다. 그럴 법했다.

-어쨌든 너 덕분에 우리 팀 선수들도 불타올랐다더라. 너처럼 되고 싶다고. 우리 애기들 만날 땐 좀 살살 던져, 알았지?

“뭐래? 네가 나한테 돈 주냐? 아니잖아.”

-……나쁜 놈.

“프로의 세계에서 그런 게 어딨어. 항상 최선을 다하는 거지.”

-됐어, 끊어.

지혁은 씁쓸하게 웃었다. 지혁을 보내고 난 탬파베이는 다시 몇 년 간은 어린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키워야 하는 기간에 접어들었다.

이제 막 빅리그에서 경험을 쌓기 시작한 브랜트 허니웰이나 호세 드 레온 같은 투수들은 1~2년만 더 경험을 쌓으면 정말 매서워질 것이고.

롱고리아와 키어마이어, 디커슨을 중심으로 한 야수진은 전면적인 세대교체에 이제 막 들어섰으니까, 한 3~4년쯤 후에는 탬파베이도 강한 팀이 될 것이다. 그때까지 유망주들을 잘 지켜 낼 수 있다면 말이다.

어쨌든, 지혁은 이제 클리블랜드 소속이니까. 오늘도 출근이다.

***

“와우, 공 좋네요.”

“그렇지?”

이럴 때와 어울리는 말은 아니지만, 등잔 밑이 어둡구나 싶다. 지혁의 투구에 가장 불타오른 건 모니터 너머로 바라보던 탬파베이의 어린 선수들이 아니라, 코리 클루버였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클루버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해 보였다. 짜증이 조금 섞인 것 같기도 하고.

앙다문 입술과 레이저를 쏘는 듯한 눈빛. 팔 스윙을 할 때 나는 유니폼이 바람에 펄럭거리는 소리, 대포알처럼 쏘아져 나간 공이 멘데스의 미트에 박히는 소리. 멘데스의 미트에서 로진이 흩뿌려지는 모습까지. 심상치 않다.

“미네소타 녀석들, 악몽이겠어.”

지혁과 나란히 서서 클루버의 불펜 피칭을 지켜보던 캘러웨이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 그 말은 오늘 저녁 그대로 뉴스의 헤드라인이 되었다.

***

-‘미네소타의 악몽’. 두 경기 연속 영봉패!

-코리 클루버, 9이닝 2피안타 완봉승. CLE, 시즌 2연승 순항.

-‘불펜을 쓰고 싶은데……’ 프랑코나 감독, 행복한 웃음을 짓다.

***

심지어 클리블랜드 선수들조차 미네소타의 타자들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있을 정도였다. 오프닝 데이라는 기념적인 경기에서 안타를 하나도 쳐 내지 못했는데, 그 다음 경기에서는 코리 클루버를 만나서 안타 두 개에 그쳤으니 말이다. 시즌을 시작하자마자 두 경기 연속 무득점. 문자 그대로 악몽이나 다름없으리라.

“내가 미네소타 선수였으면 지금쯤 밥도 못 먹을걸.”

“나도. 스타일도 완전히 다른 두 괴물을 연속으로 만났으니까.”

팀의 분위기 메이커인 린도어는 정신없이 낄낄댔다. 왼손 투수인데다가 지저분한 싱커를 던지는 지혁을 만났다가,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우완 정통파에 묵직하기 그지없는 패스트볼과 커브 조합의 클루버를 만났으니까.

만약 타석에서 이틀을 그렇게 허비해 버리고 나면 맥이 탁 풀릴 것이다. 이제 막 시즌을 시작했는데 말이다.

클루버는 사이 영 수상자 출신이다. 현재 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우완 투수 세 명을 뽑으라고 한다면, 보스턴의 후지와 워싱턴의 맥스 슈어져는 두 자리를 확고부동하게 지키고 있고, 나머지 한 자리에 가장 많이 언급되는 선수가 바로 클루버다. 평론가들의 스타일에 따라 지혁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자리하기도 하는 선수이기도 하고.

“이 정도 원투 펀치면 몇 년 전 다저스랑 비슷한데? 커쇼랑 그레인키 말이야. 그때는 진짜 다저스랑 게임하기 싫었는데.”

“아냐, 클루버가 그레인키보다는 낫지.”

“지금 보스턴이랑도 비슷한 느낌이네. 프라이스가 맛이 좀 갔으니까. 그쪽도 있잖아. 후지랑 세일.”

“그나저나 클루버도 공이 더 좋아진 것 같지 않아? 어제 공을 받는데 미트를 낀 손이 얼얼할 정도였어. 뒤에서 보니까 좀 어때?”

“맞아. 내가 시프트 때문에 정확하게 2루 베이스 위에서 봤는데, 팔 스윙이 보이지도 않더라고.”

하지만 사이 영 수상 이후, 클루버는 리그를 대표하는 우완 에이스임에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었다. 몇몇 도가 지나친 사람들은 그가 정체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이 영 수상 이후 클래식 성적도 아주 조금씩 안 좋아지고 있었고. 가을 야구에서의 성적이 신통치 못했던 탓에 큰 경기에서 약하다는 말도 새어 나왔다. 결국 어느 팀에서도 1선발은 할 수 있지만 리그 최고의 투수의 반열에는 올라설 수 없다는 평가도 잇따랐다.

“자극을 받았겠지. 생각해 봐, 만약 이번 시즌 트레이드 루머가 나오던 툴로위츠키가 우리 팀에 와서 첫 경기에 홈런 세 개를 때렸다고 쳐. 그러면 린도어, 너는 기분이 어떻겠어?”

“Shit! 그건 절대로 안 돼! 다음 경기에 나가서 나도 홈런을 때려야지.”

“그거야. 클루버는 누가 뭐래도 우리 팀의 최고 투수였는데. 트레이드로 들어온 문이 첫 번째 경기에 나가서 노히트까지 해 버렸으니까. 당연히 자극받아야지.”

클리블랜드의 선수들은 클루버가 정체하고 있다는 말에 눈곱만큼도 동의하지 않았다.

최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여정은 원래 그 자리에 도전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이다. 하지만, 지혁이 들어와서 보여 준 활약이 클루버를 자극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명백한 사실이 되어 가고 있다.

“린도어, 내가 매일같이 저 두 녀석의 공을 받아서 아는데…….”

멘데스는 더그아웃을 가리켰다. 지혁과 클루버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약간 떨어져 앉은 두 사람은 각자 이어폰을 끼고 자신의 태블릿을 묵묵히 내려다보고만 있다.

멀리서 보기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장면일 수도 있겠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긴장 기류가 흐르고 있다. 동료이면서 또 경쟁자이기도 한 사이.

“이번 시즌을 풀타임으로 치르고 나면, 분명히 더 좋아질 거야. 투수라는 놈들은 원래가 자존심이 세거든. 안 그런 척하면서 속으로만 서로 무지하게 견제하고 있다고. 문이 잘 던지면 클루버도 기를 쓰고 던지고, 또 클루버가 잘하면 문도 멋지게 응답할걸.”

“으! 난 클리블랜드에 뼈를 묻어야겠어. 나가서 저 녀석들을 상대로 만나는 건 절대로 싫어.”

“하하하, 재밌다, 재밌어. 이번 시즌 진짜로 재밌다고.”

멘데스는 껄껄 웃어 댔다. 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원투 펀치를 데리고 포수를 한다는 건 신의 축복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리라.

“재료는 환상적으로 차려졌으니까. 요리할 일만 남았지. 우리랑 같은 지구에 속한 다른 팀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더 치고 나가야겠어.”

멘데스라는 최고의 포수가, 서로에게 자극을 주며 서로를 끌어 주고 있는 리그 최고의 원투 펀치를 만났을 때. 세 사람 사이의 시너지는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커진다.

그게 클리블랜드의 시즌 초반을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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