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패전처리, 회귀하다-162화 (163/204)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 성적표 (2018-04-30 기준)

1.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17-5)

2.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11-11) -6G

3. 캔자스시티 로얄스 (11-12) -6.5G

4. 시카고 화이트삭스 (9-13) -8G

5. 미네소타 트윈스 (7-17) -11G 숨겨 뒀던 시한폭탄

“……글쎄, 이건 좀 애매한데?”

공을 쥐고 있던 멘데스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괜찮아지고 있기는 해. 방금도 분명 마지막에는 너클처럼 들어왔고…….”

“그런데?”

“애매하네. 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되나.”

멘데스는 지혁의 너클 포크를 받으면서 이 공을 설명할 단어를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려야 했다.

굉장히 모호한 공이었다. 엄청나게 위력적인 것 같으면서도 또 엄청나게 쉬운 공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게. 아마 단언컨대 멘데스가 지금까지 받아 본 공 중 가장 형용이 어려운 공이다. 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코치님?”

답답해진 지혁은 캘러웨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캘러웨이 코치도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말았다.

“나라고 모든 걸 다 아는 건 아냐.”

“코치님이 연습할 때는 이런 느낌의 공이 없었나요?”

“응. 난 어릴 때부터 이렇게 던지고 놀았었어. 나만의 필살기 같은 공이었지. 막상 프로가 되어서는 이 공을 쓸 생각도 못 했었지만. 캐치볼을 받던 친구 하나가 이 공을 대체 왜 안 쓰고 있는 거냐고 화를 내길래 써 봤지. 통했고.”

“음, 그것 참 도움이 되는 조언이네요.”

“하하, 화라도 내 줄까?”

“아뇨, 진심인데. 어릴 때부터 던지던 만큼 던지다 보면 언젠가는 되겠다는 생각을 한 것뿐인데요.”

“야 이 미친놈아. 난 열두 살 때부터 던졌다고.”

14연전을 마친 뒤의 휴식일에도 불러내서 너클 포크를 봐 달라고 하더니, 이제는 계속 던지면 언젠간 될 거라는 미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 대는 선수라니. 그것도 시즌 중에, 팀의 원투 펀치를 이루고 있는 선수가.

캘러웨이 코치는 지혁을 만난 지 세 달 만에 질려 버렸다.

코리 클루버라는 인생의 역작을 탄생시켰고, 카를로스 카라스코의 제구를 잡았으며, 대니 살라자르에게 슬라이더를 가르쳤고, 절대 안 잡힐 것이라던 바우어의 제구까지 잡아 놓은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코치인 캘러웨이조차도 이런 선수를 본 적은 없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납득이 되는 것이다. 이번 시즌 4월, 다섯 경기에 등판해 4승 무패, 0.97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 또 그러면서도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던 너클 포크가 조금씩 좋아지고 있는 것이.

페이스가 조금 떨어질 만도 하건만, 당최 문지혁이라는 투수의 머릿속에는 좋은 피칭과 성장 말고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캘러웨이의 입장에서도 이 선수는 미지의 존재였다. 대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지?

“벌써 2시네. 그만 던져.”

“조금 더 던져 볼게요. 계속 좋아지고 있는데.”

“시끄러워. 나도 딸내미랑 좀 놀아 줘야 할 거 아냐.”

“코치님은 가세요, 그럼.”

“안 돼. 너 내일 모레 등판이야. 작작해.”

“이 공은 팔에 힘이 덜 들어가서 괜찮아요. 많이 던져도.”

“누가 그래? 모든 공이 다 마찬가지야. 던지면 던질수록 팔이 상해.”

어쩔 수 없이 이번에도, 캘러웨이는 멘데스에게 눈짓을 보냈다. 어차피 받아 주는 선수가 없으면 던지나 마나다. 특히 멘데스가 받아 주지 않으면 더더욱 그렇다.

애초에 받기 쉬운 공이 아닐 뿐더러 멘데스가 투구 하나하나에 짚어 주는 정확한 지적이 아니었더라면 지금까지의 성장도 없었을 것이다.

캘러웨이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멘데스도 마스크를 벗고 마운드로 올라왔다.

“너 오늘 병원 간다고 하지 않았어?”

“아, 면담 있기는 해. 그런데 아직 시간 많이 남아서 괜찮아.”

“그럼 오늘은 그만해. 나도 병원 가야 하니까. 이 지긋지긋한 자식아.”

“하하하! 이제는 그놈의 아미고 타령도 그만둔 거냐, 멘데스?”

“얘 하는 꼴을 좀 보세요, 코치님. 이렇게까지 독한 놈 못 봤어요.”

“그래. 나도 동감이다.”

지혁은 여전히 실전에서 쓰기에는 애매한 너클 포크의 정체 때문에 속으로는 애가 탔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옆에서 봐줄 수 있는 코치와 받아 줄 수 있는 포수까지 나선 마당에 더 고집을 부릴 수는 없다.

‘하지만…….’

남은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걸 아는 입장에서는. 조바심이 날 수 밖에 없다. 두 번째 인생에서 15년 타이머를 얻었다. 브랜든 웹의 싱커를, 패스트볼의 구속 2마일을 끌어올리느라 각각 2년씩 소비했다. 그리고 4년의 시간을 보냈고. 지혁에게 남은 시간은 7년이었다.

도중에 신과의 내기에서 이긴 덕분에 후지의 커브를 선수 생명 소비 없이 얻을 수 있었던 건 정말 기연에 가까운 일이었다.

어쨌든, 올해가 끝나면 지혁에게 남은 시간은 6년이 된다. 많이 남았다면 많이 남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또 짧다면 짧다고도 할 수 있는 기간이다.

이제는 정말 엄청난 재앙이 닥치지 않고서야 신과 거래를 하지 않을 것이다. 평생 동안 공을 던지고 싶었지만, 그게 안 된다고 하니까. 남은 시간이라도 철저하게 아껴야 한다.

너클 포크를 최대한 많이 던져서, 최대한 빨리 지혁의 것으로 만드는 일은 그래서 중요했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

***

“오셨네요. 닥터 시니에는 안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사무실로 바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네, 고맙습니다.”

“아, 그리고. 혹시 싸인 한 장만 가능할까요? 우리 조카 녀석이 그렇게 문의 싸인을 받아 달라고 난리라서요.”

“오, 그럼요. 그럼요. 사진도 찍을까요?”

“그래도 되나요? 정말 감사합니다!”

이미 클리블랜드 안에서 지혁은 최고의 인기 스타 중 한 명이 되었으니까. 물론 순위를 따지자면 당연히 르브론 제임스가 맨 위에 있겠지만, 지혁도 만만치 않은 지역의 슈퍼스타가 되었다.

병원의 사무를 담당하는 직원들과 사진을 찍고 싸인까지 해 준 뒤, 시니에를 만나러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아! 문! 앉아요, 앉아요. 잠깐만 기다려 줘요. 정말 잠깐이면 돼요.”

거의 얼굴 반을 가린 것 같은 땡그란 안경을 쓰고는 모니터 앞으로 몸을 잔뜩 기울인 채 뭔가를 들여다보고 있는 시니에의 모습이 낯설다. 의사는 의사구나 싶기도 하고, 또 어떻게 저렇게 생긴 사람이 의사를 했을까 싶기도 하고. 정말 의사랑은 잘 안 어울리는 생김새다.

“미안해요. 급하게 볼 차트가 있어서. 아, 저번에도 이겼더라구요?”

“네, 뭐. 에인절스가 타격 컨디션이 안 좋아요. 그런 경기에서는 지면 안 되니까.”

“피칭 최고였어요. 헤헤. 자, 저번에 MRI 찍었고, 보자…… 검사도 꽤 여러 개 했네요? 팔꿈치랑 어깨랑.”

“네.”

“자, 한 번 봐요. 여기부터. 이건 팔꿈치예요.”

시니에의 표정이 살짝 굳어 갔다.

“인대가 조금 부어 있네요. 염려할 만한 수준은 아닌데, 그래도 붓기가 눈에 보일 정도면 정상이라고 하기는 좀 그래요. 통증은 있어요?”

“아뇨, 전혀.”

“왼팔인데, 으음…… 이건 염좌가 생길 수 있어요. 관리를 좀 해야겠네요.”

“많이 안 좋은가요?”

“잠재적인 위험이 있는 거라고 봐야겠네요. 조금 확대해서 볼게요. 자, 이건 팔꿈치 바깥쪽이에요. 인대가 갈려 있는 걸 볼 수 있네요. 싱커 계열을 많이 던져서 그래요. 바깥으로 틀어 던져야 하니까. 이것도 세심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겠네요.”

“아픈 건 정말 하나도 없는데요.”

“지금은 안 아플 수 있는데, 팔은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정도예요. 조금이라도 무리했다가는 끊어질 수도 있어요. 항상 조심해야 해요. 투구 수와 이닝 관리에도 신경을 써야겠네요. 감독님께 보고가 올라갈 거예요.”

“아, 그건 싫은데.”

투수라면 당연히 마운드에 서고 싶어 한다. 그것도 최대한 많이. 지혁처럼 선발투수라면 당연히 그렇다. 하지만 오랫동안 던지는 것도 지혁에게는 아주 중요하다. 시니에의 말마따나 지금보다 더 세심하게 관리할 필요는 있는 듯했다.

“여기가 끊어지면 몇 년을 마운드에 못 설지도 몰라요. 지금 1이닝, 2이닝씩 덜 서면서 오래 서는 게 낫죠. 그렇게 만드는 게 제 일이기도 하구요. 쉽게 비유해 볼게요. 팔꿈치는 정상 상태가 100이라고 했을 때 지금 75정도의 컨디션이에요. 만약 이게 70 밑으로 내려가 버리면 폭탄처럼 빵!”

아마 시니에는 위협적인 뭔가를 표현하려고 했던 것 같다. 두 손을 벌리면서 꽝! 하는 이미지를 주려고 했던 것 같은데. 실패다.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으니까.

“하…… 하하, 알겠습니다. 조심할게요. 어깨는요?”

“그래요, 조심해요. 어깨 쪽 볼게요.”

시니에의 말에 따르면, 등 쪽에 가까이 있는 후방 회전근과 삼각근은 그래도 괜찮은 편이라고 했다. 지혁은 마사지도 빠지지 않고 받고 유연함을 유지하기 위해 꽤 신경을 많이 쓴 케이스인데다가 투구 폼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 스타일이어서 위협이 될 만한 균열을 찾아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니에는 팔꿈치를 설명할 때보다 더욱 단호해졌다.

“여기도 위험신호가 있어요. 여기는 팔꿈치보다 더 직접적인데요? 전방 회전근인데, 여기는 투수라면 누구나 부담이 가는 곳이에요. 일반적으로 투수가 가장 많이 부담을 받는 곳이 허리고, 그 다음이 여기죠. 공을 많이 던졌기 때문에 무리가 간 거예요. 확실히.”

“……어떻게 해야 되죠?”

“쉬는 게 제일 좋죠. 선수들이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말이라는 건 알지만요. 문은 많이 던지면서 컨디션을 조절하는 스타일이라는 건 나도 알아요. 겨울 동안 지켜보기도 했고…….”

“시즌 시작한 지 한 달밖에 안 됐는데. 벌써 쉬어야 된다구요?”

시니에는 달력을 가리켰다.

“5월 한 달 정도만 쉬면서 근육이 회복할 시간을 주면 다시 괜찮아질 거예요.”

“……만약, 안 쉬면요?”

“언젠간 폭탄이 터지겠죠. 팔꿈치는 간단한 수술을 하면 2~3개월 만에 돌아오는 투수들도 있어요. 하지만 어깨는 수술하면 꼼짝없이 1년이죠.”

너클 포크가 중요하다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생겨 버렸다. 지혁의 마음을 크게 짓누르는 일이다. 너클 포크를 연습하는 걸 넘어서 당장의 투구까지 문제가 생겨 버린 중요한 일.

시니에의 얼굴 표정이 굳은 만큼 지혁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었다.

“하아…….”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지혁은 애써 머리를 굴리려고 했다. 새로운 삶을 살게 되면서 예전처럼 빡세게 던져 왔다. 아니, 이전의 삶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많이, 세게 던져 왔다. 그때는 불펜 투수였고 지금은 선발투수니까. 불펜 투수라고 해서 공을 적게 던진다는 뜻은 아니지만, 주기적으로 실전에서 100개 내외의 공들을 던지면서도 새로운 공을 던지는 일도 병행해 왔다.

몸에 탈이 나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냉정하게 생각해도 그렇다.

“그래도 관리를 잘 해서 이 정도인 거예요. 이렇게 위험한 신호를 일찍 감지하는 일은 흔치 않아요. 이번에 검진을 한 건 아주 다행이네요. 몇 주 늦었다면 경기 도중에 일이 터졌을지도 모르는데.”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지금 상태에서 몸에 칼을 대거나 다른 조치를 취하기도 애매해요. 지금은 쉬는 것 말고는 답이 없어요.”

“하아, 젠장.”

“당연한 얘기지만 감독님께도 보고가 올라갈 거예요. 그냥 한 달 동안 물리치료 받으면서 근육에게 휴식을 주세요. 그냥 한 달일 뿐이에요. 지금 팀도 큰 경기 차이로 선두를 유지하고 있으니까, 무리할 필요가 전혀 없잖아요.”

“……알겠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으면 지금 쉬는 게 낫죠.”

“잘 생각했어요. 오늘 바로 물리치료부터 받을까요? 7층에 가면 물리치료실이 있어요. 가서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요.”

“네, 그러죠.”

방금 전까지만 해도 너클 포크를 더 던지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는데. 몸에는 전혀 위화감이 없었는데, 정작 지혁의 몸속에는 시한폭탄이 숨어 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혁은 힘없이 몸을 일으켰다. 예상하지 못했던 암초를 만났다. 부상이라는 건 원래 이렇게 알게 모르게 다가오는 법이다.

***

-CLE, 좌완 에이스 문을 15일 DL에 올리다.

-프랑코나 감독,

“문의 예상 공백은 한 달 정도. 큰 부상 아니다.”

-BOS, 프라이스에 이어 후지도 부상? 92마일까지 떨어진 패스트볼.

-메이저리그에 번져가는 데드 암 증세…… 쟈니 쿠에토, 다나카 마사히로에 이어 후지 미유타까지?

-데이브 돔브로스키 단장, 불쾌감 표시.

“핵심 선수들의 연속적인 부상은 팀 의료진에 문제가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

“저, 물리치료 끝났어요.”

깜빡 잠이 들었다. 침대에 누워 어깨에 따뜻한 적외선 물리치료기를 대고 있으니 잠이 안 오면 이상한 일이다. 지혁은 얼른 간호사를 불렀다.

“닥터 시니에가 곧 올 거예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네.”

시니에는 물리치료가 끝나면 항상 자기가 직접 와서 체크하곤 했다. 곧 익숙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침대에 누워 있는 지혁의 시야에 시니에가 들어왔다.

“기분은 어때요?”

“매일 똑같죠, 뭐. 일어나도 되죠?”

“네.”

시니에는 적외선 치료기의 불빛을 끄고는 장비를 정리했다. 지혁도 이불을 한쪽으로 밀어 내며 자신이 있던 자리를 정리했다.

“이걸로 딱 3주째 물리치료가 끝났어요. 내일은 MRI를 다시 찍어 볼 거고, 그동안 투구하지 않고 쉰 근육이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할 거예요. 오전에 MRI 일정을 잡아 뒀는데, 시간 괜찮죠?”

“네. 요새 하는 일이라고는 집에 있다가 여기 오는 일밖에 없는데요.”

“좋아요. 내일 봐요.”

지혁은 덤덤하게 일어났는데, 웬일인지 시니에가 괜히 치운 장비를 한 번 더 매만지며 자리에 머무르고 있었다.

“저 먼저 갑니다.”

“문.”

“네?”

“내일 MRI 찍고…… 다른 약속 있어요?”

“네? 아뇨, 집에 가서 쉴 건데요.”

“그러면 저녁에, 그, 그, 식사나 한번 할래요? 내가 살게요.”

어. 이건 이상하다. 명백하게,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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