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어라!
“헤이.”
“문, 진출 축하해.”
“에반! 감독님.”
5차전이 끝난 다음 날, 하루의 휴식일. 양 팀의 ALCS 1차전이 열리는 클리블랜드 프로그레시브 필드에서 열리는 미디어 데이 행사를 앞두고 프레스 룸에 양 팀의 관계자들이 모였다.
지혁은 프레스 룸에 들어서자마자 그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네는 두 사람과 가벼운 포옹을 했다.
“어제 진짜 힘든 게임 했더라구요.”
“하하, 죽는 줄 알았지.”
“그래도 역시 당신이네요. 마지막 순간에 그걸 넘기다니.”
“채프먼이 힘이 많이 떨어졌더라고. 운이 좋았어.”
기자들이 벌써부터 카메라를 들이댔지만, 지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옛 동료들이 여기까지 올라온 것에 대한 아낌없는 진심의 칭찬을 보냈다.
“고생하셨어요.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여기까지 왔네요.”
“하하, 널 박살 내려고 이를 악물었지.”
“하하하!”
랭카스터는 특유의 들소 같은 주먹을 흔들어 보이며 익살맞게 웃었다.
“작년에도, 올해도, 네놈 덕분이지.”
“올해도요?”
“흐흐.”
랭카스터가 뭔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고 있는 동안, 뒤늦게 들어온 프랑코나 감독이 그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훌륭한 경기를 하더군.”
“흠. 고맙군. 클리블랜드야 뭐 항상 강팀이니 내 덕담이 필요 없겠지.”
“물론.”
그렇게 잠시 얘기를 나누는 시간 동안. 기자들이 자리를 꽉 채우기 시작하고 TV 카메라가 이곳저곳 세팅되었다.
“아- 그럼 지금부터,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을 가리기 위한 ALCS 사전 미디어 인터뷰를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기자회견은 MLB.com, ESPN, CBS에서 공식적으로 지정한 양 팀을 향한 질문 다섯 개씩과 그 답변을 먼저 듣고, 이후 현장 기자 분들의 질문을 무작위로 받도록 하겠습니다.”
진행자가 마이크를 쥐면서 기자회견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예상했던 질문들과 예상되던 답변들이 몇 개 나왔다.
형식적인 것이면서도 또 나름대로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문답들이다.
예컨대, 두 팀 모두에게 질문되었던 체력 문제에 관한 질문이라거나, 투수 로테이션에 관한 질문들, 야수 라인업의 변화는 어떻게 될 것인가에 관한 것들 말이다.
“분명히 체력적으로는 문제가 조금 있습니다. 선수들은 긴 시즌을 치르고 나서도 극한의 집중력을 유지해야만 했죠. 하지만 이 모든 게 포스트시즌입니다. 우리 선수들은 3년 연속으로 이 무대에 나서고 있고, 준비는 잘 되어 있죠.”
“힘들다는 걸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게다가 우린 다섯 번의 디비전시리즈 경기 중 두 경기에서 연장까지 갔으니까. 하지만 우리 팀에는 운동 능력이 좋은 선수들이 많고, 허슬 정신을 잊지 않는 선수들만 모여 있습니다. 믿습니다.”
이처럼 두 감독의 대답은 비슷하기도 했고.
“우리의 목표는 월드시리즈 트로피입니다. 그걸 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저는 탬파베이 레이스를 존경하고, 여기 있는 랭카스터 감독과 롱고리아를 포함해 탬파베이의 모든 선수들을 경계 대상으로 생각하지만 목표는 한 단계 더 높은 곳입니다. 그건 변하지 않아요.”
“한 경기. 한 경기를 잡는 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그리고 매일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챔피언이 되는 것? 중요하죠. 월드시리즈에 나가는 것?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건 내일의 1차전을 잘 치르는 겁니다. 그 이후의 일은 그 이후에 생각하는 편입니다.”
이렇게 완전히 다르기도 했다.
“네트워크 4의 조지 해리슨입니다. 1차전 선발투수로 나설 문에 대해서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요.”
그리고 현장 기자들의 질문으로 넘어가자마자, 당연하다는 듯이 지혁의 이름이 언급되었다.
“많은 언론들이 이번 CS를 ‘문의 매치 업’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CS라는 중요한 무대에서 친정팀과 상대하게 되셨는데요, 문. 기분이 어떠신가요?”
“우선 진심으로, 정말로 기쁩니다. 탬파베이 레이스는 제가 정말 사랑하는 팀이고, 저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팀입니다. 팀을 옮기긴 했지만 여전히 그렇죠. 챔피언십시리즈는 아메리칸리그의 15팀 중에 가장 위대한 두 팀만이 초대받은 곳이고, 이런 무대에서 제가 가장 사랑하는 두 팀이 경기한다는 건 몹시 흥분되는 일이네요.”
“탬파베이를 상대로 상대전적이 거의 없는 편이죠. 두 경기에서 1승, 3.00입니다. 아무래도 친정팀이다 보니 조금 까다롭게 느끼는 부분은 없을까요?”
“레이스의 선수들은 저를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도 레이스의 선수들을 잘 알고 있어요. 서로의 조건은 같다고 봅니다. 재밌는 승부를 할 수 있을 겁니다.”
지혁에게 한바탕 질문이 쏟아지고 나자, 탬파 쪽 지역 기자들이 롱고리아에게 묻기 시작했다. 저들은 지혁에게도 정다운 질문을 던져 주던 사람들이었다. 오랜만에 만나니 정겨운 느낌까지 들었다.
“에반, 문의 투구를 공략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을 준비하고 있나요?”
“오, 물론이죠. 우리는 자신 있습니다.”
“와우, 어떤 선수도 문을 상대로 자신 있다는 말을 그렇게 자신 있게 못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저는 이 녀석의 약점을 알거든요. 3년 내내 이 친구의 바로 옆에 서 있었으니까요.”
“뭐? 에반, 그런 게 있었으면 동료한테 말을 해 줬어야 되는 거 아니야?”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있었지. 하하하.”
롱고리아가 지혁을 바라보면서 농담하는 게 분명한 표정으로 말하자, 지혁도 테이블을 살짝 치며 일어나는 퍼포먼스로 응답해 줬다. 덕분에 기자회견장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하하, 하지만 정말 기대하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같은 팀에 위대한 투수를 뒀던 타자들은, 그 투수를 보며 상상하기 마련이거든요. 이 투수와 상대한다면 어떨까 하는 것들이요. 저뿐만 아니라 우리 선수들의 머릿속에는 그 이미지가 있습니다. 이미지대로 한번 해 보겠습니다. 긴장하라고, 문!”
하하하, 지혁은 웃었다. 롱고리아도, 랭카스터 감독도 웃었다. 웃지 않는 사람은 프랑코나 한 명 뿐이었다.
***
“기분이 좋아 보이네요.”
“탬파베이와 ALCS를 치를 줄은 정말 몰랐으니까. 재밌을 것 같아요.”
“너무 들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기자회견을 TV로 감상한 패트릭은 집에 들어온 지혁을 보자마자 말했다.
“친정 팀을 이런 곳에서 만났다고 해서, 마음이 풀어지지 말길 바랍니다. 난 그런 선수들을 정말 많이 봐 왔어요.”
“날 뭘로 보고? 하하.”
“진짜 위너가 될 사람은 무슨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법입니다.”
“한국에도 그 비슷한 말이 있어요. 호랑이는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한다고.”
패트릭은 핸드폰으로 영상을 틀고는 지혁이 롱고리아와 농담을 주고받는 순간 잠깐 스쳐간 프랑코나의 얼굴을 가리켰다.
“테리가 오늘 당신에게 따로 얘기한 건 없었습니까?”
“음? 네. 전혀요.”
“이런, 프랑코나도 조금 물러졌나? 난 오늘 당신이 혼이 좀 났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혼이라구요?”
“너무 무른 감이 있었어요. 이제부터 당신과 탬파베이는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데 말입니다.”
“뭘 또, 야구에 목숨까지.”
“그런 각오가 아니면 저주를 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을 텐데.”
흠. 지혁은 턱을 긁으며 기자회견을 곰곰이 돌아봤다. 분명 화기애애했고, 모든 게 만족스러웠다. 지혁에게는 더 바랄 게 없는 매치 업이었다.
기분도 좋았다. 옛 동료들과 최정상의 자리를 놓고 다툰다는 건 지혁의 생각보다도 훨씬 더 애틋한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확실히 내가, 지나치게 취해 있었나 보네요.”
프랑코나 감독의 표정은 분명히 마음에 안 드는 뭔가가 있어 보인다. 게다가 선수의 감정에 대해서는 쉽게 언급하지 않는 패트릭조차 이렇게 나서는 걸 보니, 지혁의 태도에 문제가 조금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든다.
인정하기로 했다. 그러자 패트릭이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을 한다.
“중요한 건 결과입니다. 결과는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죠. 하지만 결과가 나빴을 때 당신이 오늘 보여 준 태도는 좋지 않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어요. 남들이 보기엔 마인드 컨트롤을 제대로 못 한 것처럼 보일 테니까.”
지나치게 들뜨지 말라는 말을 패트릭은 이런 식으로 한다. 다행히 패트릭의 의도를 한 번에 알아들은 지혁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패트릭의 등을 두들겼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래 봬도 산전수전 다 겪은 몸이니까. 심지어 나는 신이랑 계약까지 한 사람이에요. 무슨 일이 일어나도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데에는 도가 텄으니까.”
“참 나, 신이랑 만났다는 걸 이럴 때 써먹네.”
“그게 선택받은 자의 특권이죠.”
지혁은 속으로만 슬쩍 웃었다.
모든 야구 선수들은 야구 내적인 일보다는 야구 외적인 일로 더 많이 흔들리곤 한다. 하지만 아무도 믿지 못할 경험을 계속 해 온 지혁은 아니다. 이제는 어떤 일에도 무덤덤해졌다.
탬파베이를 만나는 것? 기분 좋은 일이다. 설레는 일이기도 하다. 뭐, 좋다. 하지만 그건 딱 거기까지다.
지혁과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는 프랑코나나 패트릭조차도 이런 외부적 변수들이 지혁을 흔들 거라고 생각하지만, 더 이상 야구 외적의 일들은 지혁을 흔들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번 재회를 통해서 확실히 증명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컨디션은?”
“아주 좋습니다.”
“문자 그대로 말인가?”
“네.”
경기 시작 1시간 전, 불펜 피칭을 하고 있는 지혁의 뒤에서 프랑코나 감독은 떠나지 못했다.
“1차전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설명을 안 해도 되겠지?”
“물론입니다.”
“디비전시리즈에서 클루버가 무너졌지. 다행히 그 뒤에 네가 분위기를 끊어 줬어. 하지만 이번엔 아닐 수도 있어. 네 다음에 올라가는 건 클루버가 아니라 카라스코야.”
“알고 있습니다.”
“카라스코는 분위기를 탄 상태에서는 최고의 공을 던지는 놈이지만, 분위기를 뒤집어엎을 수 있는 녀석은 못 돼. 그래서 오늘 경기가 더더욱 중요한 거야. 책임감을 조금 더 느끼길 바란다.”
“네.”
평소답지 않게 프랑코나는 몇 번이고 되물어 확인을 하는 모습이었다. 지혁도 나름대로 프랑코나의 고충을 이해했다. 지혁이 탬파베이에 몸을 담았기 때문에 더 잘 안다.
탬파베이는 기세를 잘 타는 팀이다. 차라리 양키스가 올라왔더라면, 어느 정도 계산이 섰을지도 모른다. 탬파베이가 올라왔지만 양키스가 더 강팀인 것도 사실이고, 그만큼 양키스에 맞춘 대비를 해 왔었으니까.
하지만 기세를 탄 탬파베이는 전력을 가늠하기가 힘들다. 상대적으로 경험도 떨어지고 재능도 없는 선수들인데, 기세를 타기 시작하면 그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안 잡히는 팀이다. 지혁도 그런 탬파베이의 일원으로 살아왔다.
“시리즈 전체를 봤을 때 기세를 살려 주면 안 돼. 1차전은 절대로 잡아야만 하는 경기야.”
프랑코나는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해 왔던 말을 마지막으로 또 남기고 불펜을 떠났다. 곧이어 캘러웨이 코치가 허겁지겁 들어왔다.
“감독님이 뭐라셔?”
“오늘 잘 부탁한다고요.”
“그래? 흠. 자, 오늘 탬파베이 라인업이야.”
라인업 종이를 받아들어 확인하자마자 지혁의 눈이 커졌다.
“이게 진짜에요? 오피셜?”
“응. 오피셜. 랭카스터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네.”
“와, 진심으로 이건 좀 충격이네요.”
아무래도 랭카스터는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야구 외부의 일들로만 지혁을 흔들기는 힘들다는 걸.
야구 내부의 일로도 지혁을 흔들려는 시도를 한 흔적이 너무나 뚜렷한 라인업이었다.
“1번이 에반이라고?”
가장 높은 곳에 롱고리아의 이름이 위치하고 있었으니까.
*
[ 멋진 시구로군요. 캐벌리어스의 아이재아 토마스였습니다. 자, 양 팀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 1차전.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탬파베이 레이스의 1회 초 공격으로 진행됩니다. 라인업부터 확인하시죠. ]
[ 여러분은 아마 깜짝 놀라실 겁니다. ]
탬파베이 레이스 선발 라인업
1. 에반 롱고리아 3B
2. 코리 디커슨 LF
3. 윌리 아다메스 2B
4. 케이시 질라스피 1B
5. 스티븐 수자 주니어 RF
6. 리키 윅스 주니어 DH
7. 아데이니 에체베리아 SS
8. 윌슨 라모스 C
9. 케빈 키어마이어 CF
[ 와우. 정말이에요. 이게…… 어떤 의미일까요? 에반 롱고리아가 1번에 위치해 있습니다. 3번 자리에는 아다메스가 들어가 있고요. 게다가 리키 윅스, 아데이니 에체베리아처럼 벤치에서 출발하던 선수들도 주전 라인업에 들어왔습니다. ]
[ 랭카스터 감독의 의중을 저도 읽을 수가 없습니다. 글쎄요. 어떻게든 변화를 줘야 한다고 느꼈을까요. 어떤 의미일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라인업을 확인하는 순간 정말 깜짝 놀라서 멍했을 정도니까요. ]
지혁은 마운드에 올라 불펜 피칭을 하면서, 대기 타석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지혁의 투구를 면밀히 관찰하는 롱고리아 쪽을 흘깃 쳐다봤다.
모든 사람들이 당황했다. 심지어 프랑코나 감독조차 한참 동안이나 인상을 쓰며 그 라인업에 담긴 의미를 추측하려 애썼을 정도였다.
‘하지만 난 알아.’
랭카스터는 지혁의 특별함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탬파베이 레이스의 프런트, 코칭스태프, 모든 사람들이 지혁이 마운드에서 보여 주는 특별한 무언가를 지켜본 바 있다.
정말 파격적인 변화를 주지 않는 한 지혁이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다. 그래서 상상 이상의 변화를 선택한 것이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긴 하지만…… 결과가 좋을지 아닐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 야구는 결과로 말해야 하니까.”
마지막 연습 투구를 마친 지혁이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헬멧을 눌러쓰고 타석에 들어오는 롱고리아를 맞이했다.
“플레이 볼!”
구심의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와인드업에 들어간 지혁은 바깥쪽 정확한 코스에 초구 싱커를 집어넣었다.
“스트-라이크! 원!”
94마일이 찍혀 버린 싱커. 움직임도, 파괴력도 모두 만족스럽다. 마운드에 선 지혁과 공을 받은 멘데스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또 한 명, 타석의 롱고리아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묘하게 같은 타이밍에.
[ 세 선수가 초구를 보고 동시에 고개를 끄덕거리네요. 하하. 재밌는 모습입니다. ]
[ 아마 세 선수의 의미가 다 다르지 않을까요. 투수는 공이 만족스러워서 그럴 테고, 포수는 컨디션을 확인해서 그렇겠죠. ]
[ 그럼 타자인 롱고리아는요? ]
[ 글쎄요. 우리 팀에 있을 때와 변하지 않았군, 뭐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
초구로 컨디션을 확인한 지혁은 더욱 자신감을 가지고 높은 쪽 패스트볼을 찔러 넣었다. 롱고리아는 낮은 공을 잘 퍼 올리는 선수니, 높은 쪽을 공략하기로 이미 마음을 먹고 나왔다. 멘데스의 멋진 의견이었고, 2구째 헛스윙은 그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 2구만에 투 스트라이크를 잡아냅니다. 문, ALDS 2차전에서 보여 줬던 좋은 모습을 오늘도 이어 가는군요. ]
[ 탬파베이로서는 출루율이 좋은 선수들을 앞에 둔 게 아니라 롱고리아를 앞에 뒀기 때문에, 뭔가 의미를 찾아야 할 것 같은데요. 이건 좀 기분 나쁜 흐름이죠. ]
[ 그렇군요. 3구, 갑니다. 파울. 빗맞은 타구가 뒤로 빠져나갑니다. ]
[ 그래도 롱고리아가 싱커를 잘 따라갔네요. ]
‘네가 탬파에 있을 때 던지지 않았던 공이 있잖아. 초반엔 그걸로 승부를 보자고.’
멘데스가 경기 시작 전 말했던 내용이다. 그는 카운트를 몰아넣자마자 곧장 너클 포크를 요구했다. 손가락을 크게 벌리고 중지로 솔기 끝부분을 꾹 찍어 놓은 지혁은 빠르게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손에서 공이 떠나는 순간 애매한 회전으로 날아가던 공이 움직임을 뚝 멈추고 나비처럼 흔들린다. 멘데스의 미트에 박히는 그 순간까지도 격렬한 움직임을 보여 주는 공에 롱고리아의 방망이가 헛돈다.
[ 헛스윙! 삼진으로 ALCS를 시작하는 문입니다. ]
탬파베이 쪽 더그아웃을 슬쩍 쳐다봤다. 여전히 소리를 꽥꽥 질러 대고 있는 어린 선수들과, 터져 나갈 것 같은 팔 근육이 두드러지는 랭카스터 감독이 무표정한 얼굴로 경기장 안을 응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