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패전처리, 회귀하다-196화 (197/204)

2018 월드시리즈 1차전 경기 결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4 vs 1 LA 다저스승리투수 : 문지혁 (7IP, 9K, 5H, 3BB, 1R)패전투수 : 류희주 (5IP, 4K, 6H, 3BB, 3R)커쇼의 저주

“이것 좀 보세요. 와우. 이건 좀 이상한 광경이에요. 메이저리그에 미친 사람들이 여기로부터 12시간 떨어진 곳에 훨씬 더 많잖아요!”

한국의 팬들이 월드시리즈 1차전을 관람하는 모습은 오히려 미국 현지에서 큰 이슈가 되었다. 한국에 모처럼 나타난 국민적인 투수 두 명이 세계 최정상의 무대에서 다투는 모습이니까 어느 정도는 당연했다. 출근도 하지 않고 TV 앞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라든지, 버스나 기차 터미널에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홀린 듯 TV를 보고 있는 모습이라든지.

미국의 매스컴이 보기에는 굉장히 이상한 일일 것이다. 물론 한국 선수들이 꽤 인상적인 활약을 남기며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던 시절이 있었다. 실패했던 메이저리거들이 KBO를 거쳐 다시 메이저리그로 복귀한 경우도 있다. 그들은 KBO의 열기를 입 모아 칭찬하곤 했다. 그래서 미국의 야구 팬들도 한국이라는 나라가 야구를 꽤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를 향한 전 국민적인 관심은 확실히 이상할 정도였다. 꽤나 많은 수의 한국 팬들은 두 선수의 맞대결을 보기 위해 직접 미국까지 날아왔다.

“그리고 그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것 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먼저 다저스의 데이브 로버츠 감독의 인터뷰를 확인하시죠.”

- 상대 투수였던 문이 류에게서 안타를 치고 나갔을 때였던가? 난 여기가 다저 스타디움이 맞는지 의아할 정도였습니다. 이건…… 뭐라고 설명하기가 힘드네요. 굉장히 낯선 경험이었고, 또 우리에게는 매우 불행한 일이었습니다. 코리안 팬들이 경기장의 분위기를 바꿔 놨어요.

“로버츠 감독은 관중석을 가득 채웠던 한국 팬들 때문에 홈구장의 어드밴티지를 잃었다고 얘기하고 있죠.”

“사실 이건 궤변에 가깝죠. 제가 경기장에서 본 한국 팬들은 다저스의 선발이었던 류에게도 똑같은 환호를 보내 줬어요.”

“음, 하지만 클리블랜드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흘렀다는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정확히는 문에게 호의적이었던 것이죠. 어쨌든 로버츠 감독이 승패의 원인 중 하나를 팬들에게 돌렸다는 건, 솔직히 제 입장에서는 조금 실망스럽네요.”

“Well,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 물론 로버츠 감독의 입장도 이해가 갑니다. 또 다른 인터뷰 영상이 있다고 하는군요. 한국의 스포츠 채널 캐스터인 민-재, 한을 만나보도록 하죠.”

- 한국의 프로야구에서는 이런 열광적인 응원이 일반적입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춥니다. 저도 현장에서 중계를 했지만, 한국에서 볼 수 있는 특유의 응원 문화를 미국에서, 그것도 월드시리즈라는 무대에서 보여 줄 수 있어서 뿌듯했습니다. 말씀드렸지만, 한국의 팬들은 언제나 열광적이니까요.

“그렇다고 하는군요. 한국의 팬들이 경기에 영향을 안 줬다고 말하기도 힘들지 않을까 싶네요. 어쩌면 ‘월드’시리즈라는 말에 가장 근접했던 경기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어쨌든 우리에겐 정말 인상적인 1차전이었습니다. 승부를 떠나서 말이죠.”

“하지만 이제는 다시 승부 이야기를 해 볼 차례인 것 같군요.”

“그렇죠. 1차전을 클리블랜드가 가져갔습니다. 원정에서 말이죠. 아주 훌륭한 스타트입니다.”

“테리 프랑코나의 인터뷰를 한 번 보시죠.”

- 기선을 제압했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주 기뻤죠. 다저스의 타선에는 좋은 선수들이 많지만, 그들은 아직 어리고 경험이 부족합니다. 단기전 승부에서는 심리적인 우위를 점하는 게 상상 이상으로 중요합니다. 특히 우리 팀은 더 그렇죠. 쫓기는 시리즈를 치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첫 경기에서 문을 낼 수 있었던 로테이션에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예스, 테리가 아주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심리적인 우위에 서는 게 중요하다는 거죠.”

“바로 그렇습니다. 테리 프랑코나는 진짜 포인트가 뭔지 알고 있어요.”

- 선수들이 자신감을 가졌다는 게 중요합니다. 경기 내내, 우리가 다저스보다 강한 팀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어요. 문의 피칭은 다저스를 압도했습니다.

“페르난도 멘데스도 같은 말을 하네요. 클리블랜드 선수단은 70년 동안 타이틀을 차지하지 못한 저주에 시달리고 있잖습니까? 이런 것들은 결국 심리적인 문제죠. 심리적으로 강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겁니다. 1차전에서 승리한 게 이런 부담을 조금은 덜어 줄 것 같아요.”

“하지만 전 이 부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어요. 클리블랜드는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경기를 잡은 것이거든요. 문은 클리블랜드가 가장 믿는 투수였고, 반면 다저스의 류는 네 번째 선발투수였죠. 클리블랜드가 1차전을 이긴 건 그 자체로 의미가 있긴 하지만, 만약 1차전을 졌다면? 타격은 상상 이상이었을 겁니다. 다저스는 이제야 클레이튼 커쇼와 다르빗슈 유가 마운드에 올라오니까요.”

다저스는 챔피언십시리즈에서 6차전까지 힘을 빼야만 했다. 그들의 챔피언십시리즈 상대였던 워싱턴 내셔널스 역시 지독한 강팀이었다. 맥스 슈어져, 스티븐 스트라스버그, 지오 곤잘레스 같은 투수들은 다저스의 타선을 짓이기는 듯한 위력투를 펼쳤다.

하지만 다저스에는 그들을 넘어서는 투수가 있다. 아직 최소한 6~7년은 더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보이는 상태에서, 벌써부터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는 게 확실하다고 평가받는 선수. 그냥 세계 최고의 투수. 클레이튼 커쇼. 그리고 영입된 첫해에는 조금 헤맸지만 이내 자신의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고 있는 탈삼진 머신, 다르빗슈 유.

두 선수의 위력적인 투구가 워싱턴의 강타선을 찍어 눌러 버렸다.

특히 커쇼는 가을에 약한 남자라는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던졌다. 워싱턴의 브라이스 하퍼를 맞아 두 경기에서 8타수 무안타로 막아 낸 것은 정점이었다. 그중 삼진이 일곱 개였다. 리그 최고의 타자 중 하나인 하퍼를 완벽하게 제압한 커쇼는 그야말로 절대자의 모습을 뽐냈다.

“다저스가 자신들의 진짜 원투 펀치를 내세우는 이후의 경기들이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겁니다. 이건 의심의 여지가 없죠. 만약 다저스가 커쇼를 내세우고도 진다면? 이건 진짜 큰 문제가 될 수 있어요. 다저스는 반등의 힘을 완전히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클리블랜드의 입장에서는 커쇼의 경기를 잡아낼 수 있다면 진짜로 저주를 끝낼 절호의 기회를 잡게 되겠군요.”

“물론이죠. 커쇼를 이긴다면 그 팀은 저주를 깰 자격이 있는 팀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정답이네요.”

***

2차전의 선발 로테이션은 그래도 꽤 기대감을 갖는 형태였다. 다저스에서는 당연히 커쇼가 나왔지만, 클리블랜드도 코리 클루버를 내세웠으니까 말이다.

당장 시장에 나온다고 하면 달려들지 않을 팀이 단 한 팀도 없을 만한 투수가 바로 클루버다. 그리고 지난 2년 동안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월드시리즈의 문턱을 넘지 못한 것에 강하게 책임감을 갖고 있는 투수도 클루버다.

클루버는 책임에 부응하듯 자신의 일을 해냈다. 7회까지 던지며 무려 열세 개의 탈삼진을 잡아냈다. 다저스가 자랑하는 어린 선수들, 벨린저, 시거, 버듀고를 상대로만 아홉 개의 삼진을 솎았다. 아흔여섯 개의 공을 던지면서 잘못 던진 공이 몇 개나 있었을까 손을 꼽게 하는 피칭이었다.

하지만 한 손으로 다 꼽을 수 있는 실투 중 하나가 다저 스타디움의 센터 쪽 담장을 훌쩍 넘어가고 만 것이 문제였다.

[오, 마이, 갓! 아드리안 곤잘레스가 해냈습니다! 베테랑은 아직 살아있습니다!]

5회 말 터진 아드리안 곤잘레스의 투 런 홈런. 그게 다저스가 2차전에서 기록한 유일한 득점이었고.

[데이브 로버츠 감독, 불펜을 준비시키고도 그대로 갑니다. 클레이튼 커쇼를 믿고 갑니다.]

[이 선택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 다만 확실한 건 오늘의 커쇼는 언터처블이라는 겁니다. 투구 수가 많긴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가장 믿을 만한 투수가 커쇼라는 것도 사실이에요!]

클레이튼 커쇼는 경기 내내 찾아온 모든 위기들을 다 탈출해 버렸다. 클리블랜드는 단 한 명의 주자도 홈으로 불러들이지 못했다.

[헛스윙!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나는 멘데스! 클레이튼 커쇼가 완봉승을 거둡니다! 혼자서 경기를 끝까지 책임졌습니다! 2 대 0, 다저스의 승리! 시리즈 스코어는 1 대 1이 됩니다!]

1회, 5회, 그리고 9회. 주자를 스코어링 포지션에 보냈던 이닝이다. 하지만 커쇼는 그때마다 더욱 괴물 같은 투구로 클리블랜드의 기세를 꺾어 버렸다.

투아웃 주자 2, 3루 상황에서 멘데스를 삼진으로 돌려세운 순간 커쇼의 투구 수는 125개. 다저스의 로버츠 감독은 홈에서 반드시 1승을 거두고 클리블랜드로 가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방한 셈이었다. 커쇼는 그 의지를 마운드에서 실현해 낸 투수였고.

“괜찮아! 아직 1 대 1이라고. 홈으로 돌아가서 제대로 혼내 주면 돼!”

코칭스태프들의 공허한 위로가 선수들 사이사이를 맴돌았다. 라커룸에 내려앉은 침묵의 공기가 오늘의 패배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침울하다고까지 표현할 수는 없지만 단순히 한 경기를 진 것이라고도 표현할 수 없는 분위기.

지혁은 알아챘다. 클리블랜드의 선수들은 작년을 떠올리고 있었다. 작년 월드시리즈에서도 커쇼에게 당했으니까.

커쇼 특유의 타이밍을 빼앗는 투구 폼과, 거기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패스트볼, 그리고 도저히 칠 수 없을 것만 같은 커브. 허를 찌르는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에 변형 커터라고 불러야 할 무빙 패스트볼까지.

지혁이 승리를 거뒀던 1차전과 커쇼가 완벽한 경기를 펼친 2차전 모두 ‘고작 한 경기’에 불과했지만, 양 팀 야수들에게는 모두 꽤 심각한 내상을 안긴 경기들이었다. 다저스의 타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클리블랜드의 타자들만큼은 작년의 악몽을 떠올리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커쇼는 작년 1차전, 4차전, 7차전에서 승리를 가져갔다. 물론 1차전은 5이닝만 던지며 2실점하고 내려가 승리투수로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4차전과 7차전에서는 7이닝 이상을 던지며 승리를 낚아채 갔다. 클리블랜드는 커쇼를 넘어서지 못했다. 단 한 번도.

그 악몽이 오늘도 재현됐으니 선수단의 분위기가 약간 가라앉은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다시 한 번 같은 벽에 가로막혀 주저앉고 만 기분을.

***

“뭐 하는 거야! 집중해야 돼!”

커쇼를 넘지 못한 것을 단순한 1패라고 생각했어야 한다. 모든 선수들이 그랬어야만 한다. 프랑코나 감독도 그렇게 하라고 말했고, 안토네티 단장도 그렇게 하라고 말했다. 클리블랜드를 응원하는 모든 사람들, 클리블랜드의 옛 전설들, 클리블랜드 지역지, 방송사, 팬들…….

모두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건 인간의 뜻대로 되는 게 아니다. 모든 선수들의 정신력이 그렇게까지 뛰어난 게 아니니까 말이다.

실수가 나오기 시작했다. 나비효과다. 커쇼에게 또다시 가로막힌 것은 선수들에게 좌절을 가져다주었고, 판단에 실금을 냈다. 게다가 시리즈 중간 또다시 커쇼를 만나야 한다는 것도 엄청난 프레셔를 가한다.

좌중간에 뜬 공, 애매한 지역. 좌익수 브랜틀리가 잡았어야 할 공에 중견수 짐머가 갑자기 달려들었다. 그는 브랜틀리의 콜을 제대로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맹렬하게 뛰어들던 짐머가 난데없이 시야에 나타나는 바람에 부상을 우려한 브랜틀리는 공에 다가가지 못했다. 그렇다고 멀리서 슬라이딩을 한 짐머의 글러브에도 공이 들어가지 않았다.

[뒤로 빠집니다! 수비가 겹칩니다! 오, 이런. 이 타구 펜스까지 굴러갑니다! 2루 주자 버듀고가 홈으로, 1루 주자 코리 시거도 홈으로! 그리고! 타자 주자 쟉 피더슨도 3루를 돕니다! 린도어가 커트한 공 홈으로! 홈으로!]

린도어의 송구가 멘데스의 머리 쪽으로 향하면서 쟉 피더슨의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이 먼저 홈 플레이트를 쓸고 지나간다.

[인사이드 더 파크! 쟉 피더슨!]

그라운드 홈런. 다혈질인 카라스코의 얼굴이 울긋불긋해진다. 프로그레시브 필드의 분위기가 싸해지는 순간이었다.

[Curse is coming.]

해설자가 한마디로 정리한 것이, 곧장 다음 날 기사의 헤드라인이 되고 말았다. 상상하기 싫은 전개였다.

저주가 도래했다. 단순히 와후 추장의 저주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건, 커쇼의 저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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