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권-22장 (40/71)

폐후의 귀환

5권

22장

심부의 새해는 아주 즐거웠다. 심부 안 분위기는 임완운과 심청의 일 때문에 가라앉았지만 형초초와 형관생의 등장에 심 노부인은 전처럼 활기를 찾았다. 그녀는 그 오누이가 심부 안을 마음대로 돌아다니게 했다. 심모 역시 사람과 교류하길 즐기니 오래지 않아 형초초와 잘 어울렸다. 물론 그것이 진심인지 거짓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어찌 됐든 노부인과 심모는 겉으로는 형초초와 형관생에게 매우 잘 대해주었다.

그럼에도 형가 오누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심부 서원이었다. 특히 형초초는 검술을 연습하는 사람들을 위해 떡 등의 먹을 것을 자주 챙겼다. 이전 일을 떠올려 병사들의 국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형초초의 국은 심묘가 만들었던 국에 비하면 영 맛이 좋지 못했다. 병사들은 심묘의 요리를 그리워했다. 솔직한 그들은 형초초의 세심한 마음에도 별다른 감사를 표하지 않았다. 그래도 형초초는 굴하지 않고 꿋꿋이 음식을 준비해갔다.

심구는 오늘도 형초초가 가져온 음식을 다 먹은 후 다시 검을 잡았다. 그때 형초초가 그를 붙잡았다.

“오라버니…….”

심구가 청량하게 웃었다.

“일찍 돌아가. 검술 연습은 거칠어. 칼은 눈이 없어서 자칫 널 다치게 할 수 있어. 그리고 네가 매일 이곳에 오더라도 아가씨들끼리 어울려야지, 병사들의 연습을 보는 건 적절하지 않아.”

완곡한 축객령이었다. 형초초의 안색이 단번에 붉게 변했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물이 고여 출렁거리는 눈빛으로 심구를 바라보았다. 평범한 남자라면 울먹이는 그녀를 보고 측은지심이 동했을 것이다. 하지만 심구는 미인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가만히 서 있었다. 게다가 자신의 말이 틀린 게 없으니 위로를 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그때 심묘를 발견하고 형초초의 붉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얼른 고개를 숙여 바구니를 집어 들었다.

“알겠어요.”

그녀는 치맛자락을 들고 달려갔다. 형초초가 떠난 뒤, 기둥 뒤에서 심묘가 나타났다.

“오라버니는 꽃을 아낄 줄 너무 모르네.”

심구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난 네가 화낼까 두려웠지.”

“내가 무슨 화를 내?”

심묘는 경쾌히 말했다. 심구는 갑자기 한바탕 찬바람이 불어오는 걸 느꼈다.

“너는 육촌 여동생을 싫어하잖아.”

“내가 어째서 육촌 언니를 싫어해?”

심묘가 반문했다.

“교교, 그 아이가 널 몰래 괴롭히더냐? 널 괴롭히면 때려라! 이 아비에게 말할 필요도 없다.”

심신이 막 연습을 마치고 걸어오며 심구와 심묘의 대화를 들었다. 뒤따라 걸어오던 나설안이 그런 심신에게 눈을 부라렸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요? 교교, 네 아버지의 허튼소리는 듣지 마. 아가씨가 어떻게 아무렇게 손을 써? 널 괴롭히면 바로 말해라. 이 어미가 너 대신 때려주마.”

“그건 뭐 때리는 게 아닌가요. 내가 가서 때릴게요. 내가 젊어서 힘이 세요.”

심구는 낮게 중얼거렸다.

“형초초는 날 괴롭히지 않았어요.”

“그럼 교교는 어째서 그 애를 싫어해?”

심묘의 대답에 나설안이 물었다. 심묘가 형초초를 싫어한다는 건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다 알아볼 정도였다. 심묘는 형초초가 오면 심구에게 표창 날리기를 해달라고 요청해왔다. 사실 표창 날리기는 잔인해서 부에서는 잘 하지 않는 연습이었다. 선혈이 낭자한 모습은 그다지 보기 좋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형초초가 올 때마다 그 연습을 부탁했었다.

“아버지, 오라버니, 저 표창 날리기 보고 싶어요.”

그때마다 형초초는 놀라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래도 떠나지 않고 버텼지만, 모든 것을 다 본 후에는 예외 없이 구역질을 해댔다. 그녀가 웩웩거릴 때 심묘는 오히려 마음이 편안한 듯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모두 오랜 시일이 지나지 않아 심묘가 일부러 형초초를 괴롭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심구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심묘가 성질을 부리는 건 어린 아가씨들끼리 의견이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남자가 참견하기 어려운 여자들의 일이라 여겨 여태 간섭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은 호기심을 견딜 수 없어 물어본 것이었다.

“난 그녀를 싫어하지 않아.”

그때, 심묘 옆에 있는 경칩이 입을 열었다.

“아가씨는 조용히 지내길 좋아하시는데 그 육촌 오누이 두 분은 매번 아가씨를 찾아 말을 거십니다. 특히 공자님이 아가씨께 많이 말을 거세요. 아가씨께서는 낯선 사람과 말하기 싫어하시니 성가셔서 그러시는 것 같습니다.”

심묘가 경칩을 바라보았다. 심신과 나설안의 안색은 어둡게 변하고 있었다. 경칩의 말에는 사실 뜻하는 바가 많았다. 남자가 여자를 찾아와 말을 건다는 것은 치근거린다는 의미이기 때문이었다.

나설안은 분노했다.

“당신 당질은 도대체 뭐 하는 거예요?”

“부인, 화를 가라앉히시오.”

심신은 얼른 나설안의 마음을 풀어주고 바로 심구를 꾸짖었다.

“고얀 녀석! 뜰 안에 그리 많은 호위를 안배해놓고 네 여동생에게 매일 그 어중이떠중이가 치근거리는 것을 그냥 놔둔 게냐?”

심구는 억울했다.

“아예 못 봤는데…….”

심구가 둘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심묘는 형관생을 뜰이 아닌 부 입구, 화원 안, 복도 등 어디서든 ‘우연히’ 만났기 때문이다.

“가서 뜰 입구를 잘 지켜라. 또 그 형가 오누이가 보이면 뜰 안의 문을 닫은 뒤 검술 연습을 하고, 누구도 들어오는 것을 금한다고 전해라!”

심신이 소리쳤다. 이에 심구가 곧바로 사람을 골라 보냈고, 나설안은 심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교교, 앞으로 그 사람이 또 너에게 치근거리면 예의 차리지 말고, 한 대 때려버려.”

심묘는 나설안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설안과 심신이 돌아간 후, 심묘가 경칩을 다시 바라보았다.

“네가 말이 너무 많구나.”

경칩이 고개를 숙였다.

“제 잘못을 압니다. 하지만 아가씨, 육촌 공자가 분명 좋은 생각을 품지 않은 걸 일찍이 알아보셨으면서 어째서 주인어른과 마님께 말하지 않으십니까?”

심묘는 살짝 웃었다.

“형관생은 똑똑한 사람이야. 똑똑한 사람을 이렇게 버리기 아쉽지. 상대방이 공격하는 힘을 이용해서 도리어 칠 수 있는 방법이 있단다. 처리하지 않고 남긴 것은 쓸모가 있어서야. 그러나 오늘, 네 덕분에 일의 속도가 붙겠구나. 한번 지켜보자.”

심구가 서원 입구에 호위를 세워 문을 지키게 했다. 형가 오누이가 찾아오지 못하자 서원은 다시금 조용해졌다. 심묘 역시 많이 편안해진 듯했다.

이렇게 서원이 안정되자, 송경당은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심 노부인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형초초를 주시했다. 이전의 자애로운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초초야, 너 도대체 어찌한 게야? 어째서 지금 첫째네 뜰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게야?”

형초초는 고개를 숙이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심묘가 절 아주 단단히 견제합니다. 심구 오라버니는 제게 잘해주는데 심묘가 늘 방해해요. 호위도 심묘가 세운 겁니다.”

“또 심묘!”

노부인의 안색이 분노로 검푸르게 변했다. 장 유모는 얼른 그녀의 명치를 문질러주었다.

“마님, 노여움을 푸십시오.”

“그 계집이 또. 네 오라비는 어쩔 수 없대도 너까지 이렇게나 견제하다니, 화가 나 죽겠구나!”

노부인은 형관생과 형초초가 심묘와 심구를 상대하길 희망했다. 남녀 사이에 일이 터지면 손해 보는 건 늘 여자 쪽이었다. 그러니 심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불같은 성미의 나설안과 심신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랐다. 심구의 경우, 손해 보는 사람은 형초초였다. 무엇이든 잘만 하면 이득은 있었다.

서원 사람들은 전쟁터에서 오랜 세월을 보냈기 때문에 모두가 활발하고 시원시원한 편이었다. 지금까지는 이렇게 작은 일을 시시콜콜 따지지 않았다. 무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은 바늘 크기의 자질구레한 일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법이니까.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그들은 서원의 뜰 문까지도 모두 잠가버렸다.

장 유모가 낮게 읊조렸다.

“마님, 심묘 아가씨는 이미 초초 아가씨에게 의심을 품은 듯합니다. 계획대로 진행하기에는 곤란할 것 같습니다.”

형초초는 부끄럽고 분했다. 예쁘고 똑똑한 형초초는, 소주에서 귀족 공자들을 사로잡았던 자신이 이곳에서는 심묘라는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억울할 뿐이었다.

“네 말은…….”

노부인이 눈살을 찌푸리자, 장 유모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극약처방을 해야지요.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간 어느 날 큰 주인어른이 큰공자님을 어느 높은 자리 소저와 정혼시킬지도 모릅니다.”

노부인이 놀란 기색을 보이며 바로 수긍했다.

“네 말이 맞다. 그때까지 기다리긴 늦지.”

노부인은 형초초를 보며 자애롭게 웃었다. 작위적인 웃음을 입가에 걸친 채 입을 열었다.

“초초, 넌 심구에게 시집갈 생각이 있느냐?”

형초초는 고개를 숙였다.

“있습니다.”

“심구와 혼인하기 위해 넌 무엇이든 할 수 있느냐?”

형초초는 순간 멍해졌다. 심장이 미친 듯 뛰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남자는 원하는 대로 요리할 수 있는 쉬운 상대였다. 소주에서 수월하게 부귀한 공자님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자신 있었다. 게다가 심구는 위무대장군의 적자였다. 소주의 대갓집과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 노부인의 말을 듣자 눈앞에 찬란한 금전이 나타나는 듯했고, 그녀는 놓치지 않기 위해 두 주먹을 꽉 쥐었다.

“할 수 있습니다.”

노부인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떠올랐다.

* * *

심부는 며칠 동안 무척이나 평온했다. 형가 오누이는 송경당 뒤뜰에서 나오지 않고 두문불출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심묘는 복도를 걷고 있다가 형초초를 마주쳤다. 형초초는 흰색 겹저고리와 비취색 치마를 입고 있었다. 부유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운 아주 고운 자태였다. 소주에서 온 아가씨는 정경성의 여느 여인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겼고, 이는 행인의 걸음을 멈추게 하기 충분했다.

“심묘.”

형초초가 먼저 심묘에게 인사를 건넸다.

“언니, 어디 가려고?”

심묘가 웬일로 친절히 대꾸하자 형초초는 잠시 멍해졌다가 정신을 차렸다.

“방으로 돌아가 자수를 놓으려고. 별다른 계획은 없어.”

그녀는 어색하게 고개를 숙였다.

“별일 없으면 나랑 함께 나가는 건 어때? 보석상에 가서 머리 장신구를 고를 건데, 언니도 함께 갈래?”

형초초는 얼떨떨했다. 심묘는 여태 친절하지도 냉담하지도 않은 태도를 보였으니 자신에게 거리를 두는 게 분명했다. 이쪽에서 아무리 친근하게 대해도 소용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에게 상냥하게 굴고 심지어 함께 외출하길 권하다니. 형초초는 나이는 어려도 자신의 집 후원에서 이낭, 통방과 많이 다퉈 여인의 무서움을 알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경계했으나, ‘보석’이라는 말에 눈빛이 갑자기 밝아졌다.

심묘는 학무늬가 수놓인 연자줏빛의 비단 치마와 옅은 노란빛 조끼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늘 짙은 색의 의상을 입는데도 나이 들어 보이는 일이 없었다. 오히려 짙은 색이 그녀의 희고 투명한 피부를 더욱 돋보이게 했고 고귀한 기운도 한층 발하게 해주었다. 형초초는 그런 그녀를 남몰래 질투했다. 그녀는 자신의 용모가 심묘에게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심묘와 나란히 서자 열등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차림만 따지면 큰 차이 없이 수수했는데도 심묘는 고결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 탓에 형초초는 자신의 가문이 작고 가난하다는 사실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 같았다.

사람은 시샘할수록 열망하는 법이었다. 형초초는 심묘가 꽂은 연꽃 진주 비녀를 바라보았다. 진주는 크고 둥글어 형초초의 시야가 흔들거릴 정도로 반짝거렸다. 그녀는 얼른 고개를 숙여 자신의 탐욕스러운 눈빛을 감추었다.

“같이 갈 사람이 없다면, 같이 갈게.”

그 순간, 뒤에 선 백로와 상강의 눈에 무시하는 기색이 스쳤다. 그들은 보석 장신구에 홀린 형초초를 보자 심묘가 왜 그녀를 겁낼 가치가 없다고 말했는지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부를 나섰다. 심구가 그들에게 한 무리 호위를 붙여주었다. 보석상에 도착한 심묘가 천천히 장신구 몇 개를 골랐다. 그동안 형초초는 이것저것 만졌다가 내려놓길 반복할 뿐 선뜻 고르지 못해 상점 주인의 눈총을 샀다. 형초초는 물처럼 부드러운 인상에 이목구비가 예쁜 편이었지만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는 걸 숨기지 못했다. 정경성은 얼굴만으로 통하는 곳이 아니었다. 형초초의 모습을 본 심묘는 그녀가 마음에 들어 한 장신구를 대신 구매해주었다. 그 뒤로, 형초초는 심묘에게 더더욱 친근하게 대했다.

정오쯤 되자 심묘는 형초초를 쾌활루로 데려갔다.

“우리 오늘 점심은 바깥에서 먹자. 장신구를 골라서 그런가? 배가 고프네. 아직 쾌활루에는 안 가봤을 것 같은데……. 보통 사람은 이곳에서 먹을 일이 없지.”

형초초는 외관이 대단히 화려한 식당을 바라보았다. 눈 속에 열망의 빛이 드러났다. 심묘는 오늘 마음에 드는 장신구와 옷감이 있으면 망설이지 않고 바로 샀다. 거침없는 씀씀이였고, 그 덕에 형초초도 장신구를 여러 개 얻을 수 있었다. 형초초는 이렇게 사치를 부려본 적이 없었다. 몸소 느낀 심부의 부귀함은 상상을 초월해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기필코 심가에 시집와 앞으로 남부럽지 않게 살겠다고 그녀는 다시 한번 굳게 다짐했다.

심묘는 2층 창가에 자리를 잡고 몇 가지 음식을 골랐다. 모두 쾌활루의 간판 요리였다. 주문을 끝낸 심묘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형초초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이곳에서 식사하는 사람은 모두 부자거나 귀인으로, 대다수가 정경성 관가의 사람이야.”

형초초는 고개를 계속 끄덕였다. 심묘는 살짝 웃으며 차를 마셨다. 그런데 조심치 않은 탓인지, 찻잔을 놓쳐 치마가 완전히 젖어버렸다.

“심묘야?”

형초초가 놀란 기색을 보이자 심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일어났다.

“괜찮아. 여기에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곳이 있어. 마차에 옷이 있으니 갈아입고 올게. 여기서 날 기다려.”

심묘는 백로와 상강을 곁으로 불렀다. 그런데 심부 호위들까지도 심묘의 뒤를 따르려 했다.

“심묘! 호위들은…….”

당황한 형초초가 외쳤다.

“염려할 필요 없어. 태평성세인데 감히 언니를 난처하게 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 게다가 이곳 손님은 모두 신분이 확실한 사람이니, 무슨 일이 생길 리 없어.”

심묘는 부드러운 표정이었으나 말투는 반박할 수 없을 만큼 단호해 형초초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정신을 차리자, 심묘는 이미 호위들을 데리고 멀리 떠난 후였다. 형초초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심묘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게 틀림없었다. 몹시 불쾌했다.

게다가 심부 사람에게 듣기를 이전 심묘는 아둔하고 무지한 머저리였다고 하는데, 어떻게 금기서화도 못 하는 사람이 심가 대방의 적녀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도 심신 부부는 그녀를 매우 아껴서 황궁에서 하사받은 물건이 생기면 두말하지 않고 심묘부터 먼저 고르게 한다고 했다. 자신과 격차가 뚜렷했다. 형초초는 질투심으로 미칠 것 같았다.

그녀는 심묘가 차를 마시는 모습을 떠올리며 천천히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들이켰다. 심묘처럼 조금이라도 고귀해 보이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때, 한 일행이 그녀의 곁을 지나 옆 탁자에 앉았다. 우두머리처럼 보이는 젊은 사람은 고상하게 생긴 데다 복장도 화려했다. 하인들도 모두 좋은 옷을 입고 있었다. 이곳에 오는 사람은 모두 부귀하다는 심묘의 말이 떠오른 형초초의 시선이 움직였다.

옆자리 젊은 사람의 시선도 그녀를 향했다. 그는 형초초를 보고 눈을 번쩍 떴다. 형초초가 오늘 입은 흰 저고리와 비취색 치마는 그녀의 눈같이 하얀 피부와 꽃 같은 용모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게다가 부드럽고 겁 많아 보이는 표정은 상대의 관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형초초는 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놀랐는지 빠르게 고개를 숙였다. 정경성 내 여자는 대다수가 성안 출신으로 성격이 대범하고 당당했다. 이렇게 유약한 모습을 보이는 아가씨는 드물었다. 남자는 그런 형초초에게 더욱더 매력을 느꼈다. 홀린 듯 멍청한 얼굴로 눈을 떼지 못했고 시선은 열렬했다. 그녀의 고개는 더욱 낮아졌다.

그렇게 시간은 유수처럼 흘러 음식이 모두 나왔지만, 심묘는 한참이 지나도록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형초초는 홀로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먼저 식사를 시작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옆자리의 남자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는지, 많은 사람이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형초초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혼자 이곳에서 오래 기다리는 것 같은데, 누굴 기다리는지요?”

형초초는 공자를 살짝 올려다본 후, 바로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전, 저는 육촌 여동생을 기다려요.”

남자는 또다시 물었다.

“동생분은 어째서 이렇게 늦도록 오지 않나요? 또 어떻게 아가씨를 혼자 둘 수 있지요?”

형초초는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언가 말하고 싶었으나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형초초가 괴롭힘을 당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남자는 결정한 듯 제안했다.

“이럽시다. 나도 마침 별일 없으니 아가씨와 함께 기다리지요.”

이에 형초초가 얼른 대꾸했다.

“번, 번거롭게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공자. 구태여…….”

“괜찮습니다. 아가씨 혼자 있는데 나쁜 마음을 품은 사람이 오면 말썽이 날 것입니다. 내가 함께 있으면 아무래도 나을 겁니다.”

남자의 말투는 부드러웠다. 고상한 얼굴에 걸린 웃음은 상대의 호감을 사고도 남음 직했다. 그에 형초초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그럼… 감사합니다, 공자.”

“아가씨는 정경성 사람이 아닌 듯 보이는군요.”

“저, 저는 소주 사람이에요.”

두 사람은 한마디씩 대화를 이어나갔다. 남자는 언변이 화려한 달변가여서 곧 형초초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올랐다. 그녀는 처음에는 부끄러운 듯했으나 눈앞의 남자를 대하는 태도에 점점 친근감이 담기기 시작했다. 남자는 쉬지 않고 자신의 재미난 이야기를 펼쳤다. 그는 적지 않은 곳을 가본 듯했고 가문의 재산도 매우 대단한 것 같았다. 형초초의 웃음은 더욱 짙어졌다.

* * *

쾌활루 다른 쪽. 작은 방 안에는 심묘와 그 여종들이 앉아 있었다. 조각문양 창문을 통해 형초초가 있는 탁자가 보이는 자리였다. 백로가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육촌 아가씨는 잘 모르는 낯선 남자와 어떻게 저리 오래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보통의 남자가 아니지.”

심묘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 담담히 말했다.

“아가씨, 어느 댁 공자인지 아시나요?”

상강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호위 무리도 의아해하는 듯했다. 마치 심묘가 형초초와 그 남자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자리를 피해준 것만 같았다. 심묘는 말을 아낀 채 살짝 미소를 지었다.

쾌활루의 또 다른 쪽 방. 계우서는 어찌나 놀랐는지 눈이 튀어나올 듯했다.

“에, 심묘는 손재남을 아는 거 아니야?”

“손재남은 손천정의 유일한 적자지만 벼슬을 하지 않고 있네. 그저 부에서 먹고 마시고 놀며 즐길 줄만 아는 방탕아야. 광문당도 간 적 없는데 심묘가 어떻게 그를 알겠나?”

고양은 힐끗 눈길을 주며 타박했다.

“말도 안 돼. 그럼 전부 다 우연이라고 믿는 거야? 이게 어디 우연이야? 바보도 알아볼 수 있겠어. 심묘가 분명 일부러 손재남과 육촌 언니를 만나게 한 게 틀림없어.”

고양은 허세를 부리듯 부채를 펼쳐 부쳤다.

“내가 언제 우연이라고 했나? 심묘는 손재남을 알뿐더러 손재남이 좋아하는 자리도 일찍부터 알고 있는 거 같은데. 아주 의아하지 않나? 심묘는 일개 규방 아가씨인데 어째서 백효생인 자네보다 대단해 보이는 걸까? 그녀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네. 우리가 모르는 것도 그녀는 알고 있는 게 아닐지 아주 의심스러워.”

고양이 턱을 매만지며 말하자 계우서는 반박했다.

“백효생을 모독하지 마. 백효생의 실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심묘가 보통 사람이 아닌 거야. 그보다 형과 내가 종일 심묘의 행방을 감시한 걸 3형이 돌아와 알게 되면 어지간히 할 일이 없다고 욕할걸?”

고양은 바깥에서 손재남과 서로 즐겁게 이야기하는 형초초를 보며 물었다.

“그녀를 감시하는 게 다른 일보다 더 재밌는 걸 어찌하나. 추측해보게. 심묘의 목적은 뭘 것 같나?”

계우서가 표정을 바꿔 진지하게 고민했다.

“손재남과 육촌 언니를 중매해주려나?”

“자넨 심묘가 그런 좋은 일을 하는 걸 봤나?”

고양은 서슴없이 그에게 찬물을 뿌렸다.

“그럼 어찌 된 일인지 말해봐.”

낙담한 계우서가 고양을 바라보았다.

“이부상서……. 최근 심부와 무슨 왕래가 있나?”

고양은 부채로 턱을 받치고 사색했다.

형초초와 손재남은 오래 말을 나눴다. 두 사람은 의견이 잘 맞아 대화에 막힘이 없었다. 남들이 보면 한 쌍의 신혼부부로 여길 정도로 친근한 분위기였다. 그때 심부 호위 몇이 형초초에게 다가왔다. 개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아가씨, 심묘 아가씨는 의복이 몸에 맞지 않아 식당에 은자를 지불하고 먼저 떠나셨습니다. 저희가 명을 받들어 아가씨를 보호하겠습니다. 식사가 끝나시면 부로 돌아가시죠.”

형초초는 의아해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심묘가 먼저 돌아갔다구요?”

호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심묘 아가씨는 어떻게 당신을 혼자 남길 수가 있나요?”

손재남은 형초초의 편을 들었다. 그는 형초초와의 대화로 그녀가 기다리는 육촌 동생이 심부 적녀 심묘임을 알게 됐다. 그러나 손재남은 벼슬도 하지 않고 광문당에도 다니지 않는 한량이니 심묘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저 부수의를 짝사랑한 머저리로 알았다. 지금 보니 심묘는 아둔할 뿐 아니라 세력을 믿고 남을 괴롭히길 좋아하는 심보가 못된 이 같았다.

“그럼 저 지금 돌아갈게요.”

손재남은 여자를 아껴 형초초를 두둔했으나 형초초는 이런 그의 마음을 몰라주었다. 그녀는 바로 고개를 숙이고 불안해했다. 손재남은 형초초를 잡았다.

“에이, 어떻게 그럽니까? 지금 돌아가면 음식을 낭비하는 게 아니겠어요? 쾌활루의 음식을 이렇게 내버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는 어찌할 바 모르는 형초초를 보며 미소를 띠었다.

“아가씨가 싫지 않으면 제가 아가씨와 함께 먹겠습니다. 다 먹고 난 후에 호위들과 함께 돌아가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게…….”

형초초는 당황했다.

“당신과 나, 두 사람은 연분이 있다고 믿습니다. 하늘이 준 이 연분을 이유 없이 헛되게 하지 맙시다. 저는 오늘 옛친구를 만난 기분입니다. 아가씨와 더 이야기하고 싶으니 아가씨께서 제 체면을 보아 받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말재주가 뛰어난 손재남의 말에 형초초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공자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젓가락을 들자 다른 방에 있던 심묘는 그들을 보며 냉소했다. 심묘는 손재남을 잘 알았다. 그녀는 손재남이 재가 되어도 알아볼 것이었다. 전생 심구에게 부인이 바람을 피웠다는 모욕을 준 사람이 바로 손재남이었다. 심구는 망가진 다리를 끌고 단숨에 그를 죽였다. 그러고 나서 그가 이부상서의 외아들임을 알게 되었다.

손재남은 학식도 재주도 없는 소인배였다. 그래서 손재남을 아는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 평소 입담과 겉모습으로 여자와 사통하는 데만 관심을 뒀다. 행실이 그렇게 방탕하니 이부상서 손천정은 어사가 아들을 조사하면 어쩌나 걱정할 지경이었다. 그래서 그는 아들을 가능한 한 부 안에서 놀게 했지만, 사소한 외출까지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손재남은 혼인한 부녀자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만났는데, 특히 부드럽고 연약한 강남 여자를 가장 좋아했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간덩이가 부었다고 해도 심구의 부인과 잠을 자지는 않았을 것이다.

심묘는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손재남, 형초초. 내가 직접 너희의 전생 악연을 이어주니 내 수고를 헛되게 하지 말도록 해.”

* * *

형초초가 심묘와 함께 외출하고 홀로 돌아왔지만 다른 심부 사람은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 듯했다. 형초초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장신구를 가지고 놀았다. 장신구 중 옥팔찌 하나가 유달리 빛이 났다. 색깔과 광택이 거의 투명하니 품질이 아주 좋은 것이었다. 적게 잡아도 백 냥은 넘을 듯했다. 그러니 형초초가 살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심묘가 사준 장신구도 아니었다.

심묘는 웬일로 노부인의 뜰로 가 형초초를 찾았다. 그녀는 방에 들어와 옥팔찌를 주시했다. 놀란 형초초는 다급히 팔찌를 갑에 넣었다. 심묘는 미소 지었다.

“그 옥팔찌는 보통 물건이 아닌 것 같네.”

형초초가 작게 물었다.

“심묘, 이 팔찌를 아는 거야?”

“유사한 수입물을 본 적 있는데 품질은 언니 것만 못했어. 그때의 물건은 오백 냥 은자에 팔렸으니 언니의 것은 천 냥은 되어야 살 수 있을 거야.”

심묘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아무렇게나 뱉었다. 물론 진귀해 보이는 옥팔찌이긴 해도 천 냥의 가치는 없었다. 은자 천 냥이면 더 좋은 장신구를 많이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더욱 과장해도 이런 사치를 누려본 적이 없는 형초초는 믿어 의심치 않을 터였다.

“그런데 언니, 이렇게 진귀한 옥팔찌는 어디서 난 거야? 이전에는 언니가 착용한 걸 본 적 없는데?”

“친…… 친구가 준 거야.”

심묘의 물음에 형초초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즉시 심묘의 눈 속에 깨달음의 기색이 스쳤다. 손재남은 여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얼굴과 감언이설만 사용하는 게 아니었다. 그는 은자도 아까워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으면 전생 심구의 처가 돼 부귀를 누리는 형초초가 외도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조차 이렇게 씀씀이가 크니 세상 물정을 모르는 형초초는 분명 마음이 흔들렸을 것이다.

“그 친구는 언니에게 아주 잘 대해주나 봐.”

형초초는 얼굴을 붉히며 심묘를 바라보았다.

“심묘, 무슨 일로 온 거야?”

심묘가 침착하게 의복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오늘 언니를 누군가 배웅해줬다고 하던데?”

형초초는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

“나, 난 착한 공자 한 분을 만났어. 그가 호의를 베풀었고, 난 감히 거절할 수 없었을 뿐이야. 게다가 우리는 계속 예의를 철저히 지켰어.”

“긴장할 필요 없어. 언니는 그 사람이 누군지 알아?”

심묘는 살짝 웃었다.

“누군데?”

“이부상서 손천정 대인의 유일한 적자인 손재남이야.”

형초초는 심묘를 바라보았다. 더욱 놀란 기색이었다. 심묘는 속으로 냉소했다. 손천정은 손재남에게 아주 엄격해서 손재남은 사통한 여자를 첩으로 삼을 때를 제외하고 신분을 밝히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그러니 형초초에게도 자기 신분을 솔직히 밝히지 않았을 것이다. 손재남을 그저 부잣집 공자님으로만 생각했을 형초초가 그의 진짜 신분을 알게 되었으니 그를 놓치지 않을 터였다.

“언니도 알 테지만 이부상서는 아주 높은 관리야. 부는 우리보다 좋지. 가장 중요한 것은 손 대인에게 손 공자 적자 하나만 있다는 거야. 그런 신분의 사람이 언니에게 호의를 베풀다니. 혹시…… 언니를 좋아하는 걸까?”

“심묘, 허튼소리 말아.”

형초초가 얼른 반박했으나 뺨은 더욱 붉어졌고 눈빛도 요동쳤다. 그녀의 마음에 높은 파도가 치고 있는 게 명확했지만, 그녀는 아닌 척 낮은 소리로 부인했다.

“나와 손 공자는 결백해.”

심묘는 다시금 미소 지었다.

“난 두 사람 사이에 뭐가 있었다고 말하지 않았어. 요조숙녀는 군자의 좋은 배필이지. 언니는 아름다우니 귀족 공자가 좋아하는 것은 당연해. 손 공자는 좋은 사람이야. 풍채 당당하고 가세 역시 대단하니 그의 아내가 된다면 온 상서부의 안주인이 되는 거나 다름없지. 아까도 말했듯이 손 대인에게는 적자 한 명만 있으니까.”

형초초는 입술을 깨물고만 있었다. 심묘는 웃으며 일어났다.

“나는 그냥 한 소리니 언니도 마음에 두지 마. 세상일 대부분은 연분으로 이루어져. 언니와 손 공자가 연분이 있을지도 모르니 장래에 어떤 상황을 맞이할지 단언하기 어려워서 한 얘기야. 그렇지만, 그때 언니가 평생 정경성에 머무를 수 있을지 결정될 거야.”

다시 혼자가 된 형초초는 오랫동안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빛나는 옥팔찌를 다시 꺼내 어루만졌다. 차가운 옥팔찌의 무늬가 섬세했다. 그녀는 손재남이 이부상서의 아들일 거라고는 당연히 생각하지 못했다. 그가 신분을 제대로 밝히지 않은 것은 가세 때문에 서로 가까워지길 바라지 않아서일 터였다. 처음 만났는데 천 냥이나 나가는 팔찌를 줄 정도니 그가 진심인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형초초는 작고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다. 소주에서 많은 귀족 공자의 구애를 받았지만, 그들은 손재남과 비교하면 그저 촌사람들이나 다름없었다. 정경성의 번화함을 본 그녀는 소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심묘의 말은 그녀의 마음을 움직였다. 손재남과 혼인하면 평생 정경성에 남을 수 있었다.

바깥으로 나온 심묘는 형관생과 만났다. 형관생은 심묘를 보자 웃으며 입을 열었다.

“심묘야, 초초를 만나러 온 거야?”

심묘는 고개를 끄덕였다.

“초초와 갈수록 친해지는 것 같네.”

형관생은 심묘에게 다가가려고 했지만, 경칩과 곡우가 앞으로 나서서 심묘를 보호했다. 호색가를 막는 듯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형관생은 스스로 고상하다고 여기는 사람이기에 심묘에게 더 접근하기 어려웠다.

“괜찮아, 한 가족인걸.”

심묘는 미소를 지었지만 형관생을 바라보지 않은 채 뜰 바깥으로 걸어갔다.

곡우가 작은 소리로 물었다.

“아가씨는 육촌 아가씨와 손 공자를 중매해주시는 건가요?”

좀 전 형초초의 방에서 심묘는 말끝마다 손재남이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곡우와 경칩은 그 점이 이상했다. 꼭 중매를 서는 매파의 언행과 흡사하지 않은가.

“넌 내가 그런 선의를 보이는 것을 본 적 있느냐?”

심묘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했다.

“그럼 무엇 때문에…….”

곡우는 더욱 알 수 없었다. 심묘가 담담히 웃었다.

“언니의 마음을 어지럽히려는 거다. 지금 조모와 언니는 친밀하게 지내지. 그 이유는 둘의 목표가 같아서야. 그러나 그들의 목표가 달라진다면 넌 어찌 될 것 같으냐?”

“개가 개를 물겠네요! 앗, 저는 그들이 개라는 말이 아닙니다. 저, 저는 글을 잘 몰라서…….”

경칩은 놀라 허둥대며 말했다.

“네 말이 맞다. 개가 개를 문다라, 아주 좋은 표현이구나. 넌 송경당의 복아와 친해지거라.”

“복아요?”

심묘의 말에 경칩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노부인은 그녀를 집사의 외눈박이 아들에게 시집보내려 한다. 복아는 조금도 원칠 않지.”

경칩은 멍해졌다.

“세상에. 복아는 어려서부터 노부인 마님의 곁을 따랐는데, 어찌…….”

어떻게 자신을 오래 따른 멀쩡한, 그것도 좋은 나이의 아가씨를 애꾸눈에게 시집보내려는 걸까. 노부인에게 복아는 기르는 개나 고양이만도 못한 게 틀림없었다.

복아는 입은 거칠어도 일 처리가 신속하고 심 노부인에게 충심을 지니고 있었다.

“심 노부인은 집사에게 매년 밭에서 나는 이익을 얻으니 당연히 성의를 표해야 해. 은자를 주기 싫으니 사람을 주는 거지. 탓하려면 복아의 팔자가 박복한 걸 탓해야 할 거야.”

“그럼 아가씨는 복아를 도울 생각이신가요?”

곡우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심묘는 송경당 사람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다. 게다가 심묘는 보살 같은 사람도 아니었다. 복아를 도울 이유가 전혀 없을 터였다.

“당연히 도와야지. 노부인이 잘못을 범할 때마다 우리에게는 기회야.”

심묘는 차분하고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경칩은 깜짝 놀라 물었다.

“아가씨, 복아를 매수하시게요? 복아가 매수될까요? 노부인 마님께 얼마나 충성하는데요.”

“충심을 보답받지 못하면 배신하려는 힘이 더욱 커지지. 곁에 기른 개가 발광해 주인을 깨물면 가장 아픈 법.”

* * *

이후 며칠간 심부는 잔잔했다. 형초초는 서원으로 찾아오지 않았고 정경성의 번화한 모습이 보고 싶다며 심부 호위 몇 명을 데리고 외출했다. 누구도 그녀를 막지 않았고, 서원 사람은 오히려 그녀가 매일 거리 구경에 나서길 바랐다. 그래서 서원 입구의 호위도 산만해졌다.

형초초가 입고 걸치는 것들은 갈수록 고급스러워졌다. 심 노부인이 형가 오누이에게 은자를 줬으나 인색한 사람이라서 많이 주지는 않았다. 형초초가 점차 부귀하게 단장하자 심모도 기이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몇 번이나 물어봤지만, 그때마다 형초초는 집에서 가져온 은자라고 답할 뿐이었다. 형관생도 따라서 형편이 많이 핀 듯 남종들에게 주는 은자도 많아졌다. 사람들은 형가 오누이가 정경성에서 지내더니 안목도 넓어지고 작은 가문의 가난한 습관도 삼가 점점 정경성 사람처럼 변한다고 수군거렸다.

형가 오누이가 편안하게 지낼 때 송경당 심 노부인은 그렇지 않았다.

“형초초, 최근 넌 어찌 지내느냐? 정경성에 와서 익숙하지 않은 것이 있느냐?”

“노부인 덕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잘 지낸다면서 내가 준 약봉지를 무엇 때문에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았지?”

노부인은 매서운 눈빛으로 형초초를 주시했다. 말투도 꽤 무거워서 담이 작은 아가씨라면 노부인의 흉악한 모습에 놀라 울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형초초는 고개를 숙일 뿐, 조금도 변하지 않은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노부인, 저는 지금 심구 오라버니 곁에 가까이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확실한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부인은 일찍이 약봉지를 형초초에게 줬다. 기회를 봐 심구에게 약을 쓰라고 덧붙이며. 그러나 여러 날이 지나도록 심부는 평온했고 형초초는 손을 쓰지 않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손을 쓸 기미도 보이지 않자 노부인은 초조해졌다.

“네가 종일 바깥으로 돌아다니며 부로 늦게 돌아오는데 기회를 찾았다면 이상한 일이지. 혹 원치 않는 것이냐? 원치 않으면 관두거라.”

심 노부인은 차디찬 목소리로 냉소했다.

“결코 원치 않는 게 아닙니다.”

형초초가 얼른 대답했다. 그녀는 매일 바깥에서 손재남과 비밀리에 만나고 있었다. 그녀는 손재남의 신분을 모르는 척했고, 손재남은 그녀에게 자상하게 대하며 의상과 장신구를 보내줬다. 손재남의 선물 때문에 형초초는 주저했다. 서북은 가난하고 험한 지역인데 그곳에서 지내며 1년 내내 그림자도 보이지 않을 심구보다 정경성의 대부호인 손재남과 혼인하면 훨씬 나은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었다.

형초초는 확실히 손재남에게 푹 빠졌으나 손재남이 그녀와 혼인할 생각이 있는지가 문제였다. 이 때문에 그녀는 계속 순결을 사수했다. 남자가 보게 하되 만지지 못하게 하고, 만지게 하되 먹지 못하게 하고, 먹되 배불리 먹지 못하게 해야 남자의 마음을 견고히 잡을 수 있다는 전략이었다. 더욱이 손재남의 부친 손천정이 작고 가난한 집안 출신인 그녀를 상서부의 적자 며느리로 허락하지 않을 터였다. 그렇다고 손재남의 첩으로 들어가는 건 그녀 자신이 원치 않았다.

그래서 형초초는 머뭇거렸다. 심구와 함께하면 심 노부인은 그녀를 심구의 본처로 삼을 거라고 약조했다. 그러나 손재남은 그녀에게 부드럽게 대하며 적극적이었다. 사람의 마음은 만족을 모르고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었다. 형초초는 마음을 정하지 못해 심구에게 약을 쓰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었다.

심 노부인은 엄하게 질책했다.

“원한다면서, 무엇 때문에 여태 손을 쓰지 않지?”

“저…… 저는 만에 하나를 생각해 실수가 생기지 않을 상황을 확보한 다음에 손을 쓰고 싶습니다. 서원은 호위가 철통같이 지키고 있으니 기회를 노리기가 어렵습니다. 함부로 행동했다가 괜히 상대의 의심을 사면 이후로는 다시 손쓰기 어려울 겁니다.”

심 노부인은 표정을 풀지 않고 느릿느릿 말을 이었다.

“초초, 난 네가 마음에 든다. 그러나 네가 계속 이런 모습을 보인다면 실망할 것이다. 이렇게 담력이 작다니 장래 성공하지 못할까 걱정이구나.”

형초초는 재차 고개를 숙였다. 심 노부인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더니 혐오스럽다는 듯 말했다.

“나가거라.”

형초초는 바로 물러갔다.

형초초가 떠난 후 심 노부인은 거칠게 찻잔을 내던져 부쉈다.

“상류에 오르지 못할 것!”

장 유모는 여종에게 바닥의 조각을 치우라 명령하고 작은 소리로 위로했다.

“마님, 급하실 필요 없습니다. 형초초 아가씨는 담력이 작으니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심 노부인은 그에 더욱 격분해 소리쳤다.

“어찌 급하지 않을 수 있느냐? 심원이 이미 와서 첫째가 최근 곳곳으로 아가씨를 수소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말 정혼하면 장래 손을 쓰는 것은 더 불가능하거늘. 형초초는 야심이 있어 보여 도움이 될 거라 여겼지만. 하, 누가 알았으랴? 본성부터 글러먹었구나!”

장 유모는 심 노부인의 명치를 문질러 기가 잘 통하게 했다.

“형초초 아가씨는 아직 어립니다. 게다가 아가씨의 말도 맞습니다. 지금 큰 주인어른의 방비가 철저해 잘못하면 아예 못 쓰는 패가 될 겁니다.”

심 노부인은 장 유모에게 언짢음을 표출했다.

“그럼 어찌해? 지금 시일이 급박한데. 눈을 뻔히 뜨고 심구가 높은 가문 소저와 혼인하는 걸 보라는 게야?”

장 유모가 낮게 읊조렸다.

“마님, 형초초 아가씨에게 이 일을 맡기는 건 모험일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우리 사람이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우리 사람?”

심 노부인은 눈을 빛내며 그녀를 보았다.

“네. 우리 사람이 하면 당연히 형초초 아가씨가 하는 것보다 주도면밀할 겁니다. 그때 무슨 문제가 생겨도 아가씨는 빼낼 수 있으니 여지를 남길 수 있지요. 아마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겁니다. 저희는 이런 일에 익숙하니 손바닥 뒤집듯 쉬운 일이 될 것입니다.”

심 노부인의 시선이 약간 움직였다. 그녀는 잠시 침묵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다. 그 계집이 감히 손을 못 쓰니, 우리가 도와줘야지. 복아와 희아를 불러들여라.”

* * *

송경당의 속셈을 아는 사람은 당연히 없었다. 그들의 계획은 막힘 없이 쭉쭉 진행되어갔다.

심묘가 바깥에서 서원으로 돌아왔을 때 우연히 심원과 마주쳤다. 형가 오누이가 심부에 도착한 후 심원은 무슨 일을 하는지 바빠서 통 보기 어려웠다. 그는 매일 아침 일찍 나가 밤늦게 돌아왔다. 심귀는 그에 불만을 품었다. 심귀는 심원이 임완운의 일로 앙심을 품어 일부러 자신을 피한다고 여겼다. 그는 심원과 몇 번 크게 말다툼을 했지만 한 번도 화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심귀와의 말다툼은 심원에게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은 듯했다.

심묘를 본 심원은 발걸음을 늦췄다.

“심묘.”

“둘째 오라버니.”

“최근 육촌 남동생과 여동생과 친하다며? 지금 육촌 남동생이 있는 곳에서 돌아오는 거야?”

그는 형관생 이야기를 꺼내 심묘와 형관생 사이 무언가 있는 듯 암시했다. 백로와 상강은 미간을 찡그렸다. 심묘는 잠시 심원을 바라본 후, 알아듣지 못한 척하며 화제를 돌렸다.

“둘째 오라버니는 숙모의 거처에서 돌아오나 봐요. 듣자니 최근 숙모의 병증이 많이 약해졌다던데 빠르게 좋아지고 있나요?”

임완운은 이미 오래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방의 크고 작은 일은 모두 만 이낭이 처리했다. 심부 사람은 모두 임완운이 이전처럼 주모 역할을 하게 되는 건 불가능함을 알고 있었다. 임완운의 친정은 부유한 상인이지만 권세는 없으니 이럴 때 도움을 줄 수도 없었다.

심원은 피곤한 안색으로 심묘를 한바탕 관찰한 후 웃었다.

“심묘, 최근 안색이 아주 좋아 보여. 무슨 좋은 일 있어?”

“저에게 무슨 좋은 일이 있나요. 오라버니 근래에 아주 바빠 보이던데 오히려 오라버니가 좋은 일이 있나 봐요.”

심묘의 대답에 심원의 얼굴에 기분 좋음이 드러났다.

“오? 알아본 거야? 전에는 말썽이 생기고 재수가 없었지. 그러나 최근 방법을 생각해서 그것들을 몰아내려 해. 순조로이 진행되니 곧 기쁜 일이 생길 것 같구나.”

그의 눈빛은 의미심장했다.

“너도 지나치게 자신을 낮출 필요 없어. 내가 볼 때 너의 좋은 일도 바로 코앞이거든.”

말이 없는 심묘를 잠시 바라보던 심원은 인사를 했다.

“일이 아직은 바빠 너와 더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구나. 그럼 이만.”

심원이 멀어지자 백로가 분통을 터뜨렸다. 심원의 괴상야릇한 말은 그가 심묘에게 적의를 품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둘째 공자님은 정말 예의가 없으시네요.”

심묘는 조용히 심원의 뒷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아가씨?”

상강이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오라버니가 이상하구나.”

심묘는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 그녀는 심원을 아주 잘 알았다. 그는 얕볼 수 없는 사람이었다. 부의 일에 관심을 두지 않는 듯 보여도 가장 마음이 독하고 수단이 악랄한 사람이었다. 심묘는 전생 심구가 그런 결말을 맞이한 데는 심원도 관여했다고 단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심원은 심묘의 안배로 일이 이미 어긋난 것을 몰랐다. 그러나 방금 말로 추측건대 아마도 심원이 다음 수를 남긴 것 같았다.

“모경에게 둘째 공자님을 미행하라고 할까요?”

상강이 제의했다.

“괜찮아. 모경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어. 일단은 조용히 지켜보자꾸나.”

심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부수의보다도 심원처럼 부수의의 뒤에 있는 사람을 더 조심해야 했다. 보아하니 무슨 새로운 계략을 꾸미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심묘가 서원으로 돌아와 방에 들어서니 곡우과 경칩이 초조한 안색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심묘가 돌아오자마자 곡우는 얼른 문을 닫았다. 그녀는 심묘를 침상에 앉혔다. 경칩이 목소리를 낮췄다. 목소리는 작았지만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격양돼 있었다.

“아가씨, 송경당 복아가 소식을 전했습니다.”

“어떤 거지?”

“노부인 마님이 직접 손을 쓰려 하는데, 이틀 후랍니다. 노부인 마님도 너무하십니다. 주인어른과 마님이 그렇게 잘 대해드렸는데 큰공자님을 음해하려 들다니요? 그리고 그 육촌 아가씨도 좋은 사람이 아닌 것은 알았지만 정말 염치없습니다!”

곡우는 그녀의 말을 끊었다.

“됐어. 흥분하지 마. 아가씨, 어찌할까요?”

“어째서 이틀 후지?”

“이틀 후 가족 연회가 있습니다. 마침 노부인 마님의 친한 벗이 방문하러…….”

심묘의 물음에 경칩이 입을 열었다. 그녀는 말을 끝까지 하지 않았으나, 더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심 노부인은 기회를 틈타 사람이 많은 곳에서 심구에게 형초초의 순결을 더럽혔다고 누명을 씌울 속셈이었다. 많은 사람 앞에서 심구가 아가씨에게 죄를 지었다고 하면 심구는 억울함을 참고 그녀를 책임질 터였다. 전생과 같은 수완이었다. 심 노부인의 방법은 여전히 그리 고명하지 않았다.

“너 복아에게 한마디 전달하렴.”

심묘가 손짓하자 경칩이 귀를 가까이 댔다. 그녀는 낮은 소리로 경칩의 귀에 속삭였다.

“반드시 주의를 기울이거라. 이 일은 착오가 생겨선 안 된다.”

“알겠습니다. 반드시 잘 해내겠습니다.”

경칩의 눈에 해보고 싶어 안달인 기색이 스쳤다. 심묘는 살짝 웃었다.

“아주 좋은 기회니, 다른 사람이 끼어들어 일을 망치지 않도록 해라. 인과응보가 무엇인지 알려주자꾸나.”

그녀가 두 손을 내밀어 앞의 찻잔을 가볍게 탁 쳤다. 차분하고 느긋한 심묘는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 같았다.

* * *

어두운 밤, 정경성에서 몇백 리 떨어진 마을.

대청에는 여러 사람이 모여 있었다. 중앙에 앉은 남자를 제외하고 모두 검은 옷에 검은 장화 차림이었다. 옷차림도 옷차림이지만 기세만으로 보는 이를 놀라게 하고도 남음 직했다. 우두머리가 중앙의 남자에게 두 손을 맞잡고 인사했다. 남자는 여자 비녀를 갖고 놀고 있었다.

“일 처리가 순조롭지 못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주인님, 처벌해 주십시오.”

“됐다.”

정면 자리에 앉은 사경행이 나른하게 손을 흔들었다. 그는 자줏빛 앞섶에 금실로 작게 용무늬가 수놓인 옷을 입고 있었다. 등불 아래 반짝이는 용은 자색 구름 사이로 날아다니고 있었다. 매력적인 준수한 얼굴에 사기를 품은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언뜻 명문대가의 짓궂은 귀공자처럼 보였지만 눈얼음이 가득한 눈빛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너희는 숨길 수 없다. 나도 더 이상 숨길 생각 없다. 단지 시간을 벌려고 했을 뿐. 소식이 새어 나갔으니 더욱 바빠지겠구나.”

우두머리인 남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주인님, 정경성의 일이 처리가 안 된 지금, 시간이 급박하니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사경행은 고개를 틀어 잠시 생각하곤 무심하게 말했다.

“후환을 남기지 않는 게 먼저다. 내 이복형제를 처리해야지.”

어머니는 달랐으나 사장무와 사장조의 몸속에 흐르는 피의 절반은 사경행의 것과 같았다. 그러나 사경행은 일말의 머뭇거림도 없었다. 길 가다 만난 사람을 처리하려는 듯 아무렇지 않은 냉정한 얼굴이었다.

남자는 순간 멍해져 망설이다 물었다.

“주인님?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무엇 때문에?”

“이전에는 관여하기 싫었지만, 그들이 본분을 지키지 않으니, 제거하지 않으면 불안하겠지.”

“그러나 사후야께서 이미 두 사람을 데리고 벼슬길에 올랐습니다. 근래 두 형제는 사후야의 곁을 조금도 떠나지 않습니다. 사후야는 이미 그들을 관장 동료에게 추천했고, 돌봐달라 부탁했다고 합니다. 손쓰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다른 사람에게 경계심을 살 겁니다.”

사경행의 안색이 일순 낮게 가라앉았다.

“사정, 이 얼간이! 일을 성공시키지는 못하고 오히려 망쳤군.”

분노한 말투였다. 임안후의 이름을 막 불러도 아랫사람들은 하나도 놀라지 않았다.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닌 듯했다. 남자는 가볍게 헛기침한 후 다시 입을 뗐다.

“주인님께서 늦도록 벼슬길에 오르지 않으시니 사후야는 후계자가 없을까 걱정했을 겁니다. 그래서 먼저 두 사람을 밀어주는 것 같습니다.”

사경행의 짓궂은 성격은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게다가 사정은 사경행에게 이래라저래라 간섭하지 못했다. 그렇지 않다면 사경행을 편애하는 사정이 그를 포기하고 사장무, 사장조 형제에게 그의 무장을 계승하게 하지 않을 것이었다.

사경행은 눈살을 찌푸렸다.

“됐다. 임안후부는 먼저 미루고, 오늘부터 공주부에 사람을 보내 송신 공주를 비밀리에 보호하거라.”

남자는 또 한번 머뭇거리다가 마침내 결심한 듯 모질게 말했다.

“주인님, 이렇게 할 바에 지금 송신 공주와 분명히 선을 긋는 게…….”

“언제부터 네가 나에게 일 처리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느냐?”

사경행이 남자를 똑바로 쳐다보자 그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등에 차가운 한기가 들었다.

“내가 하는 일은 내 일이고 그녀가 그것을 고마워하는 것은 그녀의 일이다.”

사경행이 비할 바 없이 아름다운 얼굴로 무자비한 무관심을 표하니 남자는 물론 주변의 부하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포 자락의 금빛이 물결치듯 흘렀다.

“계획에 따라 일을 처리해라.”

“정경성은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심원이 이미 대부분 증좌를 수집했다고 합니다. 연초 심원은 증좌 수집을 끝낼 테고, 그때 심가는 반드시 첫 번째로 공격을 당하게 될 겁니다.”

사경행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주 잘됐군. 심원에게 무슨 처리하기 힘든 일이 있으면 네가 몰래 도와주거라.”

“그러나 심원은 부수의의 사람입니다.”

남자가 사경행을 일깨웠으나 사경행은 무심하게 손을 휘둘렀다.

“나도 그가 부수의의 사람인 걸 안다. 그저 심가가 우리를 가려주길 바랄 뿐.”

* * *

이틀 후 심부에서는 연회가 있을 예정이었다. 이는 심 노부인이 제안한 것이었다. 매년 가족 연회는 임완운이 준비했지만 올해는 진약추에게 넘길 수밖에 없었다. 지금 심부에서 가장 큰 권력은 진약추가 쥐고 있기 때문이었다. 노부인이 직접 나서서 진약추의 체면을 세워주었다. 그러나 진약추는 이 권력을 쥐고 있는 자의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음을 몸소 깨달아가는 중이었다.

추수원. 진약추는 탁자에 앉아 장부를 보며 한 손으로 계속 주판을 두드렸다.

“마님, 오후 내내 계산하셨으니 조금 쉬시지요.”

뒤에 서 있는 두 여종이 말했다. 진약추는 괴로운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은자가 어떻게 계산해도 맞지 않아. 내일 쓸 은자는 또 내 사비로 내놔야겠구나.”

진약추의 얼굴에 분노가 드러났다. 그녀는 학자 가문 출신인 자신에게 돈의 원료인 구리 냄새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겼다. 그런 연유로 노부인이 주모의 일을 임완운에게 넘길 때 질투가 났지만 체면 때문에 싸우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주모의 자리를 차지하니 맺힌 응어리를 풀 수 있게 되었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임완운은 부유한 상인 집안 출신이라 평소 노부인이 많은 은자를 지출해도 자신의 친정을 통해 채울 수 있었다. 그러나 진약추의 본가는 문관으로 좋게 말하면 청렴결백한 관료고, 나쁘게 말하면 가난했다. 많은 은자를 가져다 보탤 수 없었다. 진약추는 심부의 주모가 되면 은자를 조금은 사적으로 쓸 수 있을 거라고 여겼지만, 오랫동안 빼돌린 공동 자금은 장부와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곧 치를 연회의 은자도 부족한 실정이었다.

이전에는 심신이 매년 받은 하사품이 매우 후해서 그럭저럭 조금씩 이익을 남길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심신과 심가 사람의 관계는 나빠졌고, 심신은 공동 자금을 내놓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이런 상황이니 후택 권력은 자칫 골칫덩이가 될지도 몰랐다. 진약추는 머리가 아팠다.

“공동 자금 은자가 부족한 걸 알면서 노부인 마님은 이때 가족 연회를 여신다니, 마님을 괴롭히시는 것 아닌가요?”

진약추의 여종 시정이 화냈다. 시정의 말에 화의도 맞장구쳤다.

“큰 주인어른도 매정하십니다. 은자가 부족한데 주인어른께 물어보실 건가요?”

“허튼소리, 대인의 녹봉은 뇌물로 주기도 부족한데 어떻게 은자를 내놓겠느냐? 어찌할지 생각해보자.”

심만은 일심으로 벼슬길에 오르려 했지만 심귀와는 달랐다. 심귀는 이상만 비현실적으로 높아 능력 없이 아첨할 줄만 알았다. 반면 심만은 한 걸음씩 스스로 올라가 걸음이 느려도 심귀보다는 착실했다.

진약추는 줄곧 아들을 낳지 못해 심부에서 의지할 수 있는 건 심만의 애정뿐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심만의 환심을 사려고 늘 부드럽게 행동했다. 그런데 지금 부 안의 일도 해결하지 못하면 심만을 성가시게 할 터. 게다가 심만의 조건을 보면 첩을 들이기 딱 좋았다. 진약추는 결코 제 발로 구렁텅이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그녀의 시선이 반짝였다.

“게다가 이 은자는 헛되이 나가는 게 아니다. 다소 수확이 있다면 가치가 있지.”

“마님의 뜻은…….”

진약추가 웃었다.

“어머님께서 지금 같은 때에 연회를 여시는 것은 조금 이상하지 않으냐? 게다가 요 며칠 가만 보니 그 소주에서 온 오누이는 서원에 달려가길 좋아하더구나……. 어머님의 수는 정말 저질이야. 하지만 나도 심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진약추의 시선 속 혐오가 드러났다. 그녀는 아들을 낳지 못했기에 다른 집안의 출중한 아들을 마주하길 꺼렸다. 그것을 떠나서도 심원과 심구를 좋아하지 않았다. 심원이 두려웠다면 심구는 불쾌했다. 게다가 진약추는 칼을 휘두르는 거친 심구가 많은 사람의 칭찬을 받는 게 의아했다.

사람은 자신이 얻을 수 없는 물건을 파괴하려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 심원은 속셈이 깊어 손쓸 수 없겠지만 심구는 쾌활하고 솔직한 데다 심부 안에서 자라지 않아 처리하기 쉬웠다. 이번에도 그녀는 자신이 나서 손쓸 필요 없이 심 노부인의 수를 즐겁게 지켜보면 되었다.

“초대장을 몇장 더 써야겠다. 넌 사람을 찾아 초대장을 각 부의 부인께 보내거라.”

즐거운 장면은 함께 보는 사람이 많을수록 좋은 법이었다.

* * *

심부의 가족 연회를 여는 날이 밝았다.

딸이 혼례 전에 임신하는 건 결코 딸은 영예로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 모친은 미쳐버리기까지 했다. 그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귀부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당장에 임완운과 왕래를 끊었다. 우두머리가 망하면 따르던 사람들도 뿔뿔이 흩어진다는 말처럼 임완운의 안부를 묻는 사람조차 없었다.

임완운과 친교를 맺은 부인들은 태도를 싹 바꿔 진약추와 친하게 지냈다. 임완운과 연을 끊었다뿐이지 심부와의 관계는 여전히 유지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평소 정경성에 없고 저속한 명성의 나설안보다 학자 가문 출신인 진약추가 더 아첨하기 좋았다.

역 부인과 강 부인은 일찍 도착했다. 강효훤과 역패란은 심모를 끌고 갔다.

“연초에나 광문당에 다시 갈 텐데, 늘 부 안에 갇혀 지내려니 심심했어.”

그들은 완전히 심청의 죽음을 잊은 듯, 심지어 얼마 전까지 심청과 가장 가까운 벗이었음을 까맣게 잊은 것처럼 즐겁게 떠들어댔다. 정경성 아가씨들의 우정은 이처럼 얄팍했다. 왕래란 상대를 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배후를 보고 하는 것이었다. 심모 역시 웃으며 그들과 대화했다. 심청의 일은 모두 잊기로 암묵적으로 약속한 듯한 모습들이었다.

그 둘보다 조금 늦게 백미가 합류했다. 그녀는 멀리 사람 그림자를 보고 말했다.

“오, 저건 누구야? 그 육촌 언니야?”

다른 아가씨들도 모두 따라서 턱을 들고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한 아가씨를 바라보았다. 옆의 여종과 이야기 중인 그녀는 살구색 치마를 입고 소박한 장신구를 착용한 차림새였다.

심모는 웃으며 답했다.

“심동릉이야. ‘이낭’의 딸인데 이전에는 몸이 불편해서 나오지 못했어. 그래서 다들 본 적이 없을 거야.”

그녀는 일부러 ‘이낭’ 두 글자를 강조했다. 아가씨들의 시선이 갑자기 경시로 변했다. 역패란이 콧방귀를 뀌며 그들의 마음을 대변했다.

“흥, 진짜로 몸이 불편할까? 이낭이 기른 자식은 꿍꿍이가 대단해. 심모야, 속지 마.”

심모는 자신의 의도한 대로 흘러가니 만족스러웠다. 그녀는 살짝 미소 지었다.

“심동릉은 그다지 뜰에서 나오지 않아. 저쪽이 내 육촌 언니야.”

형초초는 심모 일행을 보지 못한 듯 다가와 인사하지 않았다. 백미는 그녀를 예리한 눈빛으로 살핀 후 의심스러운 듯 심모에게 말했다.

“심모야, 네 육촌 언니는 소주에서 왔다고 하지 않았어? 한데 의상과 장신구는 아주 귀중해 보이는걸. 심지어 팔찌는 네 것보다도 더 좋아 보여.”

백미의 말에 심모는 안색이 창백해졌다. 심모는 간신히 웃는 안색을 유지했다.

“나도 몰라. 아마 조모께서 주셨겠지.”

강효훤은 퉁명스러운 말투로 형초초를 깎아내렸다.

“그게 뭐 대단하다고. 그래 봤자 소주에서 왔으니 우리 정경성 아가씨들과는 비교가 안 되지. 의상과 장신구는 똑같이 흉내 낼 수 있어도 안목과 자질은 어림도 없어. 저 겁먹은 모습을 봐. 어디 상류사회에 오를 수 있겠어?”

심모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너희, 육촌 언니를 그렇게 말하지 마.”

역패란은 그런 심모를 안타까워했다.

“넌 너무 착해. 어떤 사람에게든 잘해주려고 하지. 그 머저리도 보호했잖아. 그렇지만 그래 봤자 뭐 하니. 지금 와서는 머리가 커졌다고 네가 안중에도 없잖아. 그런데 어째서 그 머저리는 보이지 않는 거야?”

그녀가 말한 ‘머저리’는 당연히 심묘였다. 광문당에서 심묘와 크게 말다툼한 후 역패란은 심묘를 인생 최대의 적으로 여겼다. 그녀는 심묘를 밟아주지 못해 한이 맺혔다.

* * *

심묘는 서원의 방에서 심구와 차를 마시고 있었다.

“조모는 도대체 왜 저러시는 거람? 가족 연회에 이렇게 외부 사람을 많이 초청하신 건지. 어딜 가도 모두 재잘재잘 시끄러워 죽겠어.”

심구가 눈살을 찌푸렸다. 심묘는 심구에게 차를 건넸다.

“셋째 숙모가 아는 지인을 모두 초청한 것 같아. 아가씨들은 오라버니의 소장군 풍채를 흠모할지도 몰라.”

“교교야, 날 좀 봐봐. 이미 너 하나부터 충분히 상대하기 어려워. 그런데 이렇게 많은 여인이라니, 전쟁터도 이리 무섭지 않을 거다.”

심구는 정색하며 손을 휘저었다. 당당한 소장군인 심구가 여자를 대단히 어려워하다니. 조금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심구의 말마따나 그 곁을 둘러싼 여인들은 속마음을 헤아리기 어려웠다. 심부의 여인도 하나하나 얕볼 수 없었다. 그는 성격이 솔직하니 이곳이 마굴(魔窟)처럼 느껴질 만도 했다. 심묘는 그를 위로했다.

“상대하기 그리 어렵지 않아. 장래 오라버니에게 사모하는 아가씨가 생기면 생각이 달라질 거야.”

심구는 심묘를 귀신 보듯 쳐다본 후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교교야, 방금 네 표정 정말 어머니를 닮았어.”

심묘는 당황했다. 순간 저도 모르게 심구를 부명으로 여긴 게 틀림없었다. 심묘가 변명하려 할 때, 바깥에서 여럿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고 서둘러 일어났다. 뜰 입구에서 누군가 크게 소리치고 있었다.

“너희 왜 이러는 거야? 난 심묘를 보러왔다니까, 들어갈 수 있게 놔줘!”

심묘가 멍해졌다.

“풍안녕?”

풍안녕은 심묘의 목소리를 듣고 호위에게 막무가내로 손짓했다.

“나야! 심묘. 빨리 이 사람들이 날 놔주게 해줘!”

“얼른 놔줘요. 풍가 아가씨입니다.”

풍안녕은 화를 내며 옷을 탈탈 털었다.

“어찌 된 거야? 무엇 때문에 뜰에 이렇게 호위가 많아? 난 너에게 사고가 났나 해서 들어오려 했지. 그런데 이렇게 막무가내로 막더라고. 어디 아파?”

풍안녕은 온 집안사람들이 떠받드는 귀한 아가씨여서 이런 대우는 처음일 터였다. 흥분한 그녀는 심묘를 한바탕 질책했다. 풍안녕의 말은 심구의 아픈 곳을 찌른 셈이었다. 심묘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심구는 눈썹을 치켜세우고 차갑게 말했다.

“당신은 누구요? 다른 사람의 부에서 큰소리를 내다니, 예를 모르는군요!”

불시에 훈계를 당한 풍안녕은 반박하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심구를 보고 당황했다. 심구의 꼬리가 날카롭게 위로 올라간 눈썹, 빛나는 눈, 준수한 얼굴은 정경성 연약한 부잣집 공자들과는 아주 달랐다. 웃을 때는 따사롭고 천진하지만 차가운 얼굴일 때는 전쟁터에서 두려움을 주는 소장군으로 철혈의 기질이 있었다. 그 위세에 겁을 집어먹은 풍안녕이 기죽은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시죠?”

“내 큰오라버니야.”

심묘가 대신 대답했다. 심묘의 큰오라버니 심구는 정경성에서 명성이 높았다. 남쪽 사가, 북쪽 심가. 사가 소후야와 심가 소장군은 늘 비교당했다. 애석하게도 사경행은 벼슬길에 오르지 않았지만. 그도 장군이 됐다면 두 사람 다 뛰어난 무장으로 이름을 떨쳤을 것이었다.

“뭐하러 온 거야?”

풍안녕의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보고 심묘가 묻자, 풍안녕은 심묘에게 슬쩍 눈을 흘겼다.

“난 너랑 이야기하러 온 거야. 그 애들이 너랑 내가 사이가 좋다는 이유로 나도 같이 배척한 거 알잖아. 일부러 널 찾아왔어.”

심구는 그제야 딱딱했던 표정을 풀었다. 그 역시 심묘가 학당에서 냉대받는 것을 알았지만, 평소 정경성에 없으니 그녀를 지켜줄 방도가 없어 안타까워하던 차였다. 거만한 성격에 예의를 모르는 친구라고 해도 없는 것보단 도움이 될 터였다. 하지만 심구는 풍안녕만 ‘친구’로 생각한다는 점은 몰랐다. 심묘가 느긋하게 친구나 사귈 때가 아니라고 여기고 있음을 알지 못하니 당연했다.

“친구가 왔으니 이야기를 나눠. 난 아버지를 찾아가 이야기할게.”

심구는 작게 기침했다. 그가 떠난 후 풍안녕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네 오라버니, 어째서 그리 흉악한 거야? 방금 놀라 죽을 뻔했네.”

흉악하다니……. 하지만 심묘는 굳이 해명하지 않고 대충 맞장구를 쳤다.

“그래, 그는 살인을 밥 먹듯 하지.”

그 소리에 더욱 놀란 풍안녕은 얼른 자기 명치를 때리며 안도했다.

“내가 빨리 잘못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여서 다행이야. 다음에는 이렇게 뛰어 들어오지 말아야지.”

* * *

연회가 시작되었다. 남자들은 심귀, 심만이 상대했다. 연회에 참석한 남자들은 수가 많지 않은 데다 그나마도 모두 심귀, 심만과 친교를 맺은 문신이라 심신은 함께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몇 없었다. 그러니 심신은 연회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일부가 아첨하러 심신 곁에 오기도 했지만, 심신이 거기에 대응해주지 않고 술만 마시자 그들은 곧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심신과 심구의 탁자만 조용하니 부자가 소외당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심구는 조금도 우울해하지 않았다. 그는 먹기 바빴다. 다만 신경 쓰이는 게 한 가지 있긴 했다. 바로 심원이었다. 심귀를 등에 업고 미움을 사지 않는 모습을 보니 심구는 비위가 상했다.

한편 여자들은 손님을 맞이하는 송경당 대청에서 그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여자 쪽에서 소외당하는 건 당연히 나설안과 심묘였다. 진약추와 친해진 부인들은 당연히 진약추의 체면을 치켜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설안 앞에서 심묘를 흉볼 수 없으나 소외시키는 건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래서 아가씨들과 부인들은 진약추와 심모에게만 이것저것 묻고 말을 걸었다. 형초초와 심동릉에게도 한두 마디 정도 말을 붙였으면서도 심묘에게는 단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

작정하고 심묘를 따돌리는 행태에 나설안은 분노했다. 만일 이전 심묘였다면 함께 울컥해 괴로워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심묘는 여자들이 떠들썩하게 이야기를 하든 말든 차분하게 밥을 먹으며 위엄을 지켰다. 분위기가 어찌나 고고한지 마치 심묘가 그들과 대화할 가치가 없다고 여겨 거리를 두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힘껏 때렸으나 맞은 쪽이 부드러운 솜이불이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사람들은 곧 나설안 모녀에게 흥미를 잃었다.

역 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좋은 환경에서 우수한 인물이 나온다는 말을 믿지 않았는데, 지금 노부인의 종손녀를 보니 정말 그렇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우리 정경성은 이렇게 생기발랄한 소저를 길러내지 못해요.”

심 노부인은 연회석에서 형초초를 아끼는 모습을 드러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몰랐지만 부인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노부인이 형초초를 밀어주려 하니 예쁘다고 말해준다고 나쁠 일은 없었다.

형초초는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노부인이 웃었다.

“역 부인의 말에 난 동의할 수 없네. 역 소저도 생기발랄해 호감 가는 소저인데.”

역패란은 웃는 얼굴로 노부인의 칭찬에 감사를 표했다. 그 직후 그녀는 형초초가 누군지 더욱 궁금해져 곁의 심모에게 작게 속삭였다.

“노부인께서 네 육촌 언니를 아주 좋아하시나 보다.”

심모는 애매하게 수긍했지만, 의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심동릉은 연회석 구석에 앉아 있었다. 만 이낭 없이 혼자였다. 모친은 이런 곳에 올 자격이 없고 노부인도 자신을 밀어주지 않으니 세상에 이름을 드러낼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도 심동릉은 조금도 달갑지 않은 기색을 드러내지 않고 태연했다. 총애받지 못하는 서녀인 게 서럽지도 않은지 구석에서 묵묵히 밥만 먹었다.

노부인은 심동릉에게는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형초초를 챙기고 있었다. 형초초에게 많이 먹으라 권하면서 주위에 그녀가 집안이 가난하긴 해도 성숙하고 총명한 고운 여식이라고 칭찬을 거듭했다. 그때, 차를 가져오던 여종이 조심하지 못해 형초초의 몸에 찻물을 튀겼다. 노부인은 실수한 여종을 책망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어찌 이런 일을 저질러? 초초가 데었으면 어찌해?"

형초초는 옷을 정리하며 미소 지었다.

“괜찮아요. 뜨겁지 않아서 괜찮습니다.”

노부인은 형초초의 옷이 물에 젖은 것을 바라보았다.

“옷이 젖었구나. 이렇게 추운 날, 젖은 옷을 입고 있으면 감기에 걸릴 게야. 희아, 초초를 데리고 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혀 주거라.”

형초초는 고개를 숙여 옷자락을 내려다보았다. 노부인의 말대로 목화솜이 찻물을 먹어 불편했다. 그녀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희아를 따라 떠났다.

강 부인이 말했다.

“노부인께서 이렇게 중시하시니 형가 소저는 복 받았네요.”

“어디 초초의 복인가? 이 늙은이의 복이지. 초초는 철이 일찍 든 데다가 영리하기까지 하다네.”

노부인이 웃자 얼굴 위 주름도 함께 찡그려졌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또 한바탕 아첨했다. 진약추는 노부인을 본 후 자기도 모르게 심묘 쪽을 힐긋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을 느낀 듯 심묘도 진약추를 바라보았다. 시선에 경계하는 기색이 보였다. 진약추는 심묘에게 웃어준 후 기쁨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숙인 순간 심묘의 눈에 짙은 웃음기가 서린 것을 보지 못했다. 심묘의 얼굴에는 모종의 흥분이 떠올라 있었다.

심동릉은 남몰래 심묘를 쳐다보다가 얼른 다시 고개를 숙이고 식사를 계속했다.

남자들 쪽에서는 주흥이 무르익었다. 소외된 심신과 심구도 동료 몇 명이 와서 술을 나눴다. 몇 잔을 마신 심구의 고개가 조금 흔들렸다.

“고얀 녀석, 고작 몇 잔 마시고 취했느냐? 밥도 안 먹었어?”

심신이 심구를 바라보았다. 심구는 미간을 문지르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르겠어요.”

군영에서 성장한 남자이니 이 정도 술은 거뜬히 마셔야 했다. 평소 그들은 정경성의 주도를 깔보았는데 우습게 여기다가 뺨을 맞은 격이었다.

“정말로 널 헛되이 가르쳤구나.”

심신이 안타까워하자 형관생은 웃으며 설명했다.

“당숙, 화내지 마십시오. 육촌 형의 주량이 약한 게 아닙니다. 이것은 부토주와 은광주를 함께 섞은 겁니다.”

형관생이 심구 앞 술잔을 가리켰다. 과연 술은 부토주처럼 붉지 않고, 은광주처럼 투명하지 않았다. 그는 계속 설명했다.

“이곳에는 은광주를 마시는 사람도, 부토주를 마시는 사람도 있습니다. 심구 형이 아마 주의치 않고 함께 마신 듯하네요. 은광주와 부토주를 함께 마시면 다른 사람은 반 잔도 못 마시고 쓰러질 텐데, 심구 형은 아직 깨어 있으니 주량이 상당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 대인이 그 말을 듣고 크게 웃었다.

“하하하. 심구의 주량이 대단한 셈이군. 심 장군, 탓하지 마시게.”

웃음소리에 심원이 심구를 쳐다보았다.

“형님, 더 마시면 안 되겠어. 방에 들어가서 좀 쉬어.”

심구가 손을 휘두르며 뭐라고 말했지만 그 소리가 분명치 않았다. 많이 취한 것 같았다.

“제가 심구 형님을 부축하지요.”

형관생이 웃으며 거들었다. 심신은 잠시 그 얼굴을 응시했다. 심신은 심묘에게 추근거렸다는 얘길 듣고 형관생에게 상당히 불만을 품었으나 호위를 시켜 출입을 막은 후부터는 불미스러운 소식은 더 들리지 않던 차였다. 게다가 웃는 얼굴을 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렇게 된 거 번거롭지만 너와 아지가 부축하거라.”

형관생이 일어나려 할 때 심구가 심원을 잡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지, 네가 날 데려가다오.”

심원은 얼떨떨했다. 심신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 녀석이 널 아지로 여기는구나. 고얀 녀석, 빨리 네 동생을 풀어주거라.”

심구는 움직이지 않았다. 심원의 시선이 조금 움직였다.

“육촌 동생, 나와 함께 가지. 내가 가야겠다.”

심원은 심구를 부축하며 심신이 말을 하기도 전에 바깥으로 걸어갔다. 심신이 말리려고 할 때 심만이 술을 들고 걸어왔다.

“형님, 제가 한잔 올리겠습니다!”

이 작은 소란을 누구도 마음에 두지 않았다. 연회 중간에 누가 나가고 누가 들어오는 건 매우 흔한 일이었다.

한편 부인들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 간에 고민을 털어놓았다. 연회가 거의 끝나갈 무렵, 백 부인이 무언가 생각난 듯 말을 꺼냈다.

“형가 소저는 어째서 아직 돌아오지 않나요?”

노부인은 희아에게 분부했다.

“가서 알아보거라. 초초가 어째서 오지 않는 게야?”

심모는 웃으며 말했다.

“조금 취했나 봐요. 방금 미주를 마셨어요. 초초 언니가 달콤한 걸 좋아해서 마시다 보니 좀 많이 마셨나 봐요. 숙취가 심한 술이니 어지러워서 방에서 쉬고 있을지도 몰라요.”

풍안녕은 입을 삐죽이며 심묘를 살짝 밀었다.

“너희 부에는 자매가 많아 연회가 즐거울 줄 알고 일부러 온 건데 무료하네.”

풍안녕은 광록훈부의 애지중지하는 딸로 자매가 없었다. 그러나 심묘는 자매의 수만 여럿일 뿐 서로 친하지 않았다. 게다가 심모가 작정하고 심묘를 소외시키니 풍안녕이 재미가 없을 만도 했다.

“줄곧 이랬어.”

풍안녕은 심묘의 대답을 신경 쓰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기다려.”

풍안녕이 여종을 따라간 후 희아가 노부인의 곁에 돌아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님, 초초 아가씨가 방에 없습니다.”

“방에 없어?”

노부인이 목소리를 높이자 부인들이 전부 그녀를 바라보았다. 노부인은 얼른 소리를 낮췄다.

“그럼 어디 있느냐?”

희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그 애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노부인이 초조해 보이자 부인들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때, 진약추가 웃으며 말했다.

“어머님,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방금 대인이 있는 곳에서 돌아왔는데 심구가 취해서 방으로 돌아가 휴식 중이라고 합니다. 도수가 높은 술을 내왔으니 초초도 방에서 쉬고 있을 겁니다.”

일부러 심구가 취했다고 밝힌 것인지, 순간 심묘의 시선이 예리해졌다.

“초초를 찾아보거라. 부 안에 있을 거야. 감기라도 걸릴까 걱정되는구나.”

노부인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분부한 후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제가 최근 금불도를 하나 얻었는데, 장첨산이 양면으로 정교하게 수놓은 것으로 정당에 걸어뒀답니다. 보고 싶으시면 가서 보시지요.”

장첨산은 명제의 자수 대가였다. 장첨삼의 작품은 가격이 폭등해 구할 수 없었다. 노부인은 이번 기회에 사람들은 안목을 키울 수 있길 바란다는 듯 구경을 권했다. 심묘는 입꼬리를 올려 비웃었다. 노부인이 말한 양면 자수는 하사품으로 몇 년 전 심신이 준 것이었는데 인색한 노부인은 줄곧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권하는 이유는 반드시 다른 일을 성사시키기 위함일 터였다.

사람들은 노부인을 따라 자수를 보러 갔다. 송경당 정당으로 가는 길에는 손님의 휴식을 위해 작은 다실을 마련해두었다. 노부인의 손님이 많지 않기 때문에 평소 들리는 사람이 아주 적었다. 그런데 그 앞을 지나는데 조금 이상했다. 비어 있을 터인 다실의 문이 꼭 닫혀 있었고 그 안에서는 인기척이 들렸다. 아마도 물건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 같았다.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었다.

“안에 누가 있느냐? 문지기는 어디 갔어?”

노부인이 다급히 물었다.

“방금까진 문지기가 이곳에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다실에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희아는 의아하다는 얼굴로 노부인에게 고했다.

“정말 제 일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구나! 문을 지키는 것도 못 하다니. 문을 열어라!”

노부인의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지금까지 재미난 구경에는 빠지지 않았던 부인들도 흥미진진한 눈빛을 하고 지켜보고 있었다. 진약추는 노부인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어머님, 화내지 마십시오. 손님 중 한 분이 방을 착각하고 들어간 걸 겁니다.”

그녀는 여종에게 눈짓했다. 곁에 있던 두 여종은 재빨리 문을 열었다. 문은 꽉 닫힌 듯했으나 견고하지 않아 쉬이 열렸다. 두 여종은 놀라 물러났다. 그 모습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더욱 키웠다.

“무슨 일이야?”

노부인은 답답한지 크게 소리쳤다. 그 꾸중에 여종 한 명이 중심을 살짝 잃고 두 손으로 문을 짚었다. 이에 문이 크게 열리자 방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사람들은 헉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다실은 아주 좁았다. 잠시 휴식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으로 가구라곤 작은 침상과 탁자가 전부였다. 그런데 탁자 위 찻잔은 모두 부서져 있었고, 협소한 침상 위에서 남자가 여자를 누르고 있었다. 방의 두 사람은 문이 열려 모두에게 들켰음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부인들은 혹여나 이렇게 불결한 일을 보일까 다급히 딸들의 눈을 가리기에 급급했다.

희아도 놀라 소리쳤다.

“초초 아가씨!”

진약추도 따라 외쳤다.

“초초!”

노부인은 충격에 자칫 쓰러질 뻔했다. 복아가 얼른 그녀를 부축했다.

“이게 어찌 된 일이야?”

진약추는 당황했다. 부에 추악한 일이 생겨 허둥거리는 모양새였다.

희아는 입을 가렸다. 얼굴에는 놀란 기색이 가득했다.

“세상에. 큰공자님은 취하셔서 방으로 돌아가지 않으셨나요? 어째서…….”

희아의 말에 원인과 결과가 드러났다. 술에 취한 심구가 옷을 갈아입으러 온 형초초를 우연히 만나 욕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그녀의 순결을 더럽힌 것이었다.

“신중한 심구가 어떻게 이런 일을 저질렀을까. 모두 술이 그르친 거야!”

진약추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혐오의 빛을 띤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두 사람은 이미 심구의 죄명을 확정한 게 틀림없었다. 심묘는 다만 침묵하며 눈앞의 미동도 없는 남녀를 바라보았다. 전생과 거의 같은 모습이었다. 전생의 심구는 깨어난 후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심신과 나설안은 심구를 믿었지만 일은 눈앞에서 벌어졌다. 게다가 보통 이런 일로 손해 보는 것은 아가씨였지만, 그때는 좀 달랐다. 두 사람이 혼인하지 않으면 많은 부인의 입에 오르내릴 인물은 심구였다. 심묘의 안색이 가라앉았다. 전생의 자신도 아가씨의 순결을 함부로 더럽힌 오라버니 때문에 체면을 잃었다고 생각해 심구를 증오했었다.

그때, 갑자기 심모가 입을 열었다.

“심묘야, 어째서 말이 없어?”

그 소리에 모든 사람이 심묘를 바라보았다. 심구는 심묘의 친오라버니이기에 심묘의 체면도 함께 깎인 셈이었다. 심묘가 전심전력으로 심구를 도우려 할지, 정의를 위해 형제라도 봐주지 않을지 알 수 없었다.

역패란은 심묘가 재수 없는 일을 당한 것이 말할 수 없이 기뻤다.

“심묘, 이 일은 너와 관련 없어. 네 오라버니는 오라버니고, 넌 너니까. 한 가족이지만 모두 묶어서 논할 수는 없지.”

그녀는 심묘를 위하는 척 말했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는 뜻을 품고 있었다. 형제의 덕행이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할 수 없음을 모두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심묘는 담담히 말했다.

“의아하네요. 일을 해결하지 않고 이곳에서 의논하다니, 아예 심부 입구에서 바깥의 사람을 불러다 함께 보자고 하지 그래요? 사람이 많을수록 좋잖아요.”

그녀의 풍자는 칼날과 같아 사람들 마음에 꽂혔다. 평범한 집에서 이런 일이 생겼다면 바로 방법을 생각해 숨기려 할 것이었다. 그러나 노부인과 진약추는 이 일을 아는 사람이 많을수록 좋다고 여기는 듯 방 입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분명 무슨 의도가 있는 듯했다. 심묘는 진약추와 노부인이 곤란한 표정을 짓자 한마디를 덧붙였다.

“어머니가 이곳에 안 계셔도 누군가 상황을 수습해야 하지 않나요? 설마 셋째 숙모는 둘째 숙모가 아니라서 어찌해야 하는지 모르시는 건 아니지요?”

진약추의 안색은 금세 푸르게 변했다. 심모의 안색도 좋지 않았다. 심묘가 임완운을 언급하자 사람들의 시선이 의미심장해졌다. 진약추는 몹시 분노했다. 심묘의 말은 그녀의 체면을 깎아내렸다. 한마디로 그녀가 집안을 돌보는 능력이 임완운보다 못하다는 뜻이었다.

심묘는 육궁에서 여러 해 지낸 사람이었다. 궁에서는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말다툼도 격렬해서 한마디 말로 열 가지 의미를 담을 수 있었다. 지금 심묘의 말은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듯했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깊고 멀리 생각하게 했다.

나설안이 이곳에 없다고 마음대로 심구를 괴롭히는 건가? 심구에게 추악한 일이 생겼다고 떠들어대며 모든 사람이 알도록 하다니. 부인들은 의구심이 생겼다. 게다가 부인들 역시 바보가 아니었다. 다들 처음 눈앞의 상황에 놀라 당황했지만 심묘의 평온한 태도로 침착을 되찾았다. 표면으로 추악한 일이라 하지만 이 추악한 일이 누군가의 계략이 아닌지 하는 의심이 싹텄다.

노부인은 심묘의 말에 부끄럽고 분한 나머지 화를 냈다.

“심묘야, 네 오라비가 이런 짓을 저질렀거늘 부끄러운 줄도 모르다니! 어리석고 둔하구나!”

자칫 웃음을 터트릴 뻔한 심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일은 큰일이니 아버지와 숙부들이 오시면 가부를 결정하시지요.”

노부인과 진약추는 당황했다. 부인들도 당혹스러웠다. 이 일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았다. 그런데 심묘는 사람이 더 많이 모이길 바라고 있었다.

문이 이렇게 크게 열렸는데도 침상 위 남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게다가 여종들이 문을 닫으려 할 때 심묘는 냉소하며 닫지 못하게 했다. 진약추는 불안했다. 그녀의 예상대로 일이 일어났지만, 심묘의 태도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게 있음을 암시하는 듯해 불안했다. 노부인도 이상함을 느껴 방에 사람을 들여보내려 했으나 심묘의 기세등등한 태도에 놀라 그러지 못했다. 무언가를 하거나 감추려 할수록 더 드러날 것이었다. 그녀는 불안을 억누르며 심묘가 부친과 숙부들을 모셔오라고 분부하는 걸 그저 바라보고 서 있었다.

강효훤은 눈물을 닦았다.

“형가 소저는 지금 어린 나이인데, 이런 일이 생겨서 남은 반평생을 어찌해요?”

이에 노부인이 입을 열어 대꾸했다.

“번거롭겠지만 여러분이 증인이 되어주십시오. 우리 심가의 가풍은 단정하거늘, 이렇게 가풍을 훼손하는 일이 생겨 여러분께 해명을 해야 합니다. 초초는 내 친정 종손녀로 마음 씀씀이가 고와 내 곁에 머물게 하려 했습니다. 이후 좋은 혼처를 찾아주려 했는데, 뜻밖에도…….”

노부인은 몹시 침통해했다.

“우리 심가는 세력을 믿고 남을 괴롭히지 않습니다. 앞으로 어찌 되든 초초는 심가의 손자며느리가 될 것이며 이는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반드시 초초를 책임질 겁니다.”

겉만 번지르르한 이유였다. 참으로 이치 있게 말하는 모양이었다. 속사정을 몰랐다면 심묘는 노부인이 잘 대처한다고 여겼을 것이었다. 과연 가녀 출신답게 연기할 때 가장 생동감이 있었다.

노부인은 사람들의 호감을 얻었다.

“그렇다면 형가 소저의 남은 반평생도 의지할 곳이 있네요.”

“심가의 가풍이 단정하다더니 과연 정말입니다. 노부인의 선택은 정말 총명하십니다.”

“노부인께 이런 기백과 도량이 있으실지 몰랐습니다.”

노부인이 잘못을 알고 만회한다며 칭찬하는 사람, 형초초가 이유 없이 재난을 만나 가련하다는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심구를 염치 모르는 색마로 묘사했다.

오직 심묘의 눈에만 비웃는 기색이 스쳤다.

“역시 명문세가답네요. 결과에 책임을 지시는군요.”

“초초! 초초!”

바깥에서 형초초를 크게 찾는 소리가 들렸다. 심신 일행이 도착한 듯했다. 가장 앞서 오는 사람은 형관생이었다. 그 뒤를 심신과 두 형제, 나설안이 서둘러 따라오고 있었다. 형관생이 허둥지둥 다가오자 부인들은 길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그는 막상 다실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문 앞에 서 있었다. 벼락을 맞은 듯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어찌 된 일이야?”

나설안이 다급히 물었다. 진약추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

“형님. 큰일이 생기긴 했지만, 심구를 탓할 수는 없습니다. 술이 모든 일을 그르친 거예요.”

심귀와 심만은 이미 이 일을 알고 있었다. 심귀는 안타까운 척하며 입을 열었다.

“심구를 탓할 수 없지. 술을 마실 때 내가 말렸어야 했어. 취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저지르지 않았을 거야.”

“둘째 형님, 자책하지 마십시오. 이 일을 누구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할지 생각해야지요.”

심만이 따라 탄식했다.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린 듯 형관생의 두 눈이 붉어졌다.

“멀쩡한 내 누이가 계략에 의해 순결을 잃었으니, 당연히 합당한 답을 주셔야 합니다!”

심신은 분노했다.

“말조심해! 심구는 내 곁에서 자란 녀석이야. 이런 일을 벌일 애가 아니야!”

그 말에 나설안이 동조하며 냉소했다.

“맞아. 심구가 변경의 관문에 있을 때 많은 대인이 딸을 시집보내려 했다. 누구를 골라도 형초초보다 더 예쁜 아가씨들이야. 그런 심구가 형초초를 얻기 위해 미래를 망치다니, 심구가 바보인 줄 알아?”

심신은 전쟁터를 헤쳐온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이런 얄팍한 수단과 방법은 통하지 않았다. 나설안 역시 거세게 나왔다. 형관생은 그녀의 직설적인 말에 안색이 창백해졌고 노부인은 분노해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심신 부부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형초초가 예쁘긴 해도 형관생의 ‘계략’이라는 말은 확실히 선을 넘었다.

심묘는 또다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괴로운 지경이었다. 전생에도 심신과 나설안은 심구를 보호했으나 당시 사람들은 아무도 심구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억울하게 심구를 혼인시킬 수밖에 없었다. 노부인이 이렇게 많은 정경성 귀부인을 불러 ‘증인’으로 삼았으니, 심구에게 퇴로는 없었다.

심신과 나설안의 태도에 형관생이 더더욱 격노했다.

“증인과 물증 모두 있는데 어떻게 당숙은 교활하게 궤변을 말씀하십니까! 설마 연약한 내 누이가 심구 형님에게 강요라도 했단 말입니까? 전 심구 형님을 군자라 여겼는데, 사람은 겉만 보고 모른다고 관아에 보고하겠습니다!”

집안일을 관아에 보고한다니. 모두 형관생이 일을 크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노부인은 그를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달랬다.

“근래에 내가 너희를 어찌 대했는지 알 것이다. 내가 초초를 얼마나 아끼는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게야. 그녀가 억울함을 당하면 풀어줄 것이다. 걱정하지 마라. 반드시 타당한 답을 주마!”

노부인은 심신에게 분노를 돌렸다.

“첫째야! 술을 마셨든 마시지 않았든 간에 이 일은 심구가 잘못했다. 아버지로서 어찌 가르친 게야? 심가 사람은 영웅의 기개를 가졌으니 아가씨의 순결을 더럽혔으면 책임을 져야 해! 심구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반드시 초초와 혼인해 평생을 잘 대해줘야 한다!”

“심가 사람은 영웅의 기개를 가졌다.” 심 노장군이 생전에 심신에게 한 말이었다. 이전이었다면 심신은 노장군과 노부인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남에게 말 못 할 손해도 받아들였을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둘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 심신은 노부인의 가증스러운 허위와 가식이 몹시 밉살스러웠다. 그는 참지 못하고 불같이 화를 냈다.

“제가 말했잖습니까? 심구는 이런 일을 못 합니다!”

그때, 뒤에 숨어 아무도 주의하지 않던 심동릉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저…… 어째서 들어가 보지 않나요? 안의 남자를 큰오라버니라고 말하지만 정말로 큰오라버니가 맞나요?”

사람들은 멍해졌다. 심동릉의 말이 맞았다. 안의 사람이 정말 심구인지 들어가서 확인해본 사람은 없었다. 두 남녀가 포개져 있는 것만 보았다. 사실 부인 중 몇 명은 이미 이 일이 깊은 계략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이렇게 음해당한 심구도 안됐다고 속으로 동정하는 중이었다.

진약추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며 물었다.

”동릉아, 무슨 말이야? 심구만 술에 취해 자리를 떠났다. 그렇지 않으면 또 누가 있다고?"

심묘는 가볍게 말했다.

“둘째 오라버니도 있지요. 무엇 때문에 둘째 오라버니도 보이지 않을까요? 무엇 때문에 큰오라버니만 책임을 져야 하지요?”

“교교야, 내가 무슨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진약추는 머리가 멍해졌다. 멀지 않은 곳에 제대로 의복을 갖춘 심구가 의아한 얼굴로 서 있었다. 곁에 있는 풍안녕도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풍 부인은 크게 놀라 얼른 그녀를 잡아끌어다가 질책했다.

“안녕아! 너 어찌 마음대로 돌아다닌 게야!”

풍안녕은 어리둥절했다.

“저 화장실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길을 잃었어요. 오래 헤매도 길을 못 찾고 있었는데 심가 첫째 공자를 만나 같이 왔어요. 무슨 일이 생겼나요?”

심신과 나설안은 잠시 멍해졌지만, 심신은 곧 크게 웃었다. 웃음소리가 득의만만했다. 심구는 멀쩡히 이곳에 있다. 그럼 안의 사람은 누구일까. 심묘는 살짝 웃었다.

“충분히 보셨나요? 얘들아, 들어가서 분명히 보거라. 책임져야 할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지.”

노부인과 진약추가 막으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나설안 곁의 하인은 무공을 익혀 동작이 잽쌌다. 그들은 당장 안으로 들어가 남자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마님, 둘째 공자님입니다!”

여자를 누르고 있던 남자는 심원이었다. 심원은 의복이 단정하지 않았고, 온 얼굴이 붉었다. 심구의 이름만 외치며 안으로 들어가 보지 않은 것과 달리 이렇게 증좌가 있으니 논박의 여지가 없었다. 사람들은 심귀와 노부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심묘의 비꼬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역시 오해에 불과했네요. 자칫 큰오라버니가 억울한 죄를 뒤집어쓸 뻔했어요. 다음번에는 눈을 똑바로 뜨는 게 좋을 듯하네요. 명예를 훼손하기 위해 이런 일을 퍼뜨린다면 감옥에 갇힐 테니까요!”

“교교야, 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내가 무슨 억울한 죄를 뒤집어쓴다고?”

심구는 머리를 긁적였다.

“심구야, 누군가 네 부인을 마음대로 정하려고 했단다.”

나설안도 모든 상황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노부인과 진약추가 심구를 핍박한 게 거짓이자 연기임을 알고서 분노를 금치 못했다.

“내가 말했지요. 우리 심구의 혼사는 내가 직접 정할 겁니다. 심구는 철저히 본분을 지키는 아이인데 어디서 아무렇게나 며느리를 데려올 수 있나요?”

대충 상황을 파악한 풍안녕도 심구를 두둔했다.

“심가 첫째 공자는 나와 계속 함께 있었어요. 술도 깬 상태였고요. 부인을 마음대로 정하다니, 혹시 지금 혼례를 강요하시는 건가요?”

풍안녕도 인재였다. 그녀가 일부러 상황을 과장해 얘기하자 풍 부인은 안색이 변해 다시금 그녀를 질책했다. 풍안녕은 혀를 살짝 내밀고는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할 말은 다 한 터였다.

“조모, 상황이 이러한데 어떻게 하실 건가요?”

심묘는 난처한 듯 말했으나 표정은 유유자적했다.

노부인은 초조했다. 오늘 일은 그녀가 직접 분부한 것이라 만전을 기해 준비했다. 그러나 심구가 왜 심원으로 바뀐 것인지, 도대체 어떤 변고가 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노부인은 눈을 가늘게 뜬 심묘를 보고서야 이 일이 그녀와 관계있다는 걸 깨달았다.

심귀 역시 멍한 표정이었다. 그는 심구가 잘못을 범했다는 얘기를 듣고 즐겁게 구경하러 온 것이었다. 평판은 조정 벼슬길에 영향을 주는 법이었다. 심원은 막 수도로 부임했는데 잘못을 한 사람이 심구가 아니라 심원이라니. 이 일이 앞으로 그의 미래를 망쳐놓을 게 분명했다.

소저들은 잘 알지 못했으나 부인들은 분명히 보았다. 오늘 일은 분명 심부가 벌인 연극이었다. 누군가 형초초와 함께 심구를 함정에 빠뜨리려 한 것이다. 그러나 함정에 빠진 건 심구가 아니라 심원이었다. 변한 국면에 당황한 부인들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심묘의 태도를 떠올리며 이 일이 심묘와 관계있다고 느꼈다.

사람들은 심묘를 머저리라고 했다. 바보에다가 사랑에 눈이 먼 염치를 모르는 아가씨라고. 그러나 지금 누구도 그녀를 그렇게 욕할 수 없었다. 그녀는 오늘 일을 도모한 사람을 도리어 궁지에 몰아넣었다. 게다가 ‘증인’으로 초청된 부인들과 소저들이 심묘의 승부수가 되었다. 노부인은 중도에 그만둘 수 없는 상황에 빠졌다. 그녀는 눈을 뒤집으며 혼절한 척을 해서 이 일을 넘기려고 했다. 그 순간 심묘가 입을 열었다.

“관생 오라버니, 초초 언니에게 이런 일이 생겨 오라버니로서 아주 괴로울 텐데 안심하세요. 조모께서 본인이 말씀하신 대로 반드시 언니를 책임져 주실 거예요.”

노부인이 다시 눈을 뜨고 심묘를 노려보았다.

“심원은 아직 의식이 없다. 분명 누군가 음해한 것이다. 심묘, 넌 허튼소리 말거라!”

그러자 나설안이 심묘보다 먼저 나섰다.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방금 안의 사람이 심구라고 할 때는 그의 편을 조금도 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심원은 어머님의 손자고 심구는 손자가 아닙니까? 참 공평하시네요!”

나설안은 노부인과의 다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에 노부인이 분노했다.

“너 감히 반기를 드는 게야!”

“조모, 우리 먼저 둘째 오라버니를 어떻게 해야 할지 이야기해야지요.”

심묘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난감해하는 노부인과 달리 그녀의 말투는 온화했고 시종일관 화도 내지 않아 처지가 더욱 대비되었다.

“방금 조모께서 뭐라고 하셨나요? 조부께서 이전에 하셨던 말씀을 그대로 가져오셨죠. 심가 사람은 모두 영웅의 기개가 있으니 사람의 순결을 더럽혔으면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고 했지요. 그렇다면 둘째 오라버니는 반드시 초초 언니와 혼인해야 하겠네요! 모두 보셨지요. 조모님은 약조를 지키시는 분이니 잊지 않으셨을 겁니다.”

심묘는 일부러 노부인의 말투를 따라 했다. 나설안은 비웃었다. 부인들도 그녀가 자신들을 무기로 삼는 것을 알아 억지로 웃음 지었다. 노부인의 안색만 붉었다가 창백해지길 반복했다.

“이 일은 이상해, 이상하다고!”

“저도 이 일이 이상합니다. 그러니 관아에 보고하지요. 아버지, 지금 경조윤에 가시지요.”

심묘는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때 심귀가 큰 소리로 제지했다.

“안 된다!”

“어째서 안 되나요?”

심묘는 짐짓 놀란 척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꾸했다. 심귀는 그런 심묘를 흉악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관아에 보고하면 이 일은 어떻게 해도 감출 수 없었다. 어사는 매우 엄격했다. 이 일을 알면 그들은 보고서를 쓸 게 분명했다.

심묘는 조금 머리가 아픈 듯 손을 휘둘렀다. 그녀는 부드러운 시선으로 침울한 안색의 형관생을 살폈다.

“이 일은 관생 오라버니의 뜻도 들어야 합니다. 관생 오라버니가 가장 상심했을 거예요.”

형관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노부인은 더욱 분노했다.

“먼저 의원을 데려오너라!”

여태 아무 반응이 없는 형초초와 심원은 필시 모해를 당한 것일 터. 노부인의 계획에 따르면 이 일은 심구가 당했어야 했는데, 지금은 달리 일의 진상을 밝힐 방법이 없었다. 진약추는 여러 부인에게 입을 다물어달라는 부탁을 해야 했다. 부인들은 심묘와 심부 사람들의 암투와 심묘의 승리라는 재미난 구경을 했다. 그녀들은 소문을 내지 않겠다고 약조하고 자리를 떠났다. 풍안녕은 심묘에게 눈짓한 후 풍 부인을 따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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