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장
나담은 두 손으로 턱을 괴었다.
“예왕 전하의 용모에 대해서 들은 적이 없어. 미남자 같은데, 가면을 벗으면 어떤 모습인지 보고 싶네.”
준수한 남자를 좋아하는 나담이 예왕을 바라보았다. 풍안녕은 그녀에게 찬물을 뿌렸다.
“엄청 추남일지도 모르지. 그렇지 않으면 왜 가면을 쓰겠어?”
“난 그가 세상에서 보기 드문 미남자 같아. 심묘야, 말해봐. 저 예왕 전하는 어떤 사람 같아?”
“몰라.”
심묘는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그런데도 나담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귀찮게 굴었다.
“말해봐. 저 가면을 쓴 예왕 전하와 정경성 절색이었던 사가 소후야 중 누가 더 아름다울까?”
심묘는 ‘정경성 절색’에 놀라 차를 마시다가 사레에 걸려 거칠게 두 번 기침했다. 풍안녕이 실례가 되지 않도록 얼른 그녀의 입을 가려줬지만, 움직임이 커서 사람들이 눈치채버렸다. 심묘는 뒤늦게 입을 가리면서 한 쌍의 눈을 보았다. 착각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귀빈석에서 가면을 쓴 예왕이 그녀를 바라보았다가 시선을 돌린 것 같았다. 매우 주의 깊은 시선이었다.
조공연회의 주흥이 무르익었다. 떠들썩하니 정말 태평성세의 모습이었다. 단지 세심한 사람들은 눈앞에 보이는 귀빈석의 문혜제와 진국 태자 황보호의 대화에 마음속으로 걱정했다. 진국, 대량과 명제 중 명제가 가장 약했고 대량이 가장 강했다. 영락제는 용맹스러워 진국과 명제를 모두 두렵게 만들었다. 그래서 명제 황실은 대량에서 온 예왕에게 공손하게 대했다. 황보호는 예왕과 말하며 탐색하는 기색을 보였다.
여성들은 대부분 예왕을 바라보았다. 눈과 마음이 즐거웠다. 부수의도 용모가 출중했지만, 예왕의 특별한 우아하고 고귀한 기운과 비교하면 뒤떨어지는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담은 어느새 정교한 음식에 주의가 팔려 있었다. 그녀는 이것저것 맛보며 아주 즐거워했다.
조공연회는 성별로 좌석을 구별하지 않고 일가족이 함께 앉게 했다. 그래서 나릉은 심묘 근처에 앉아 있었다. 심묘가 먹지 않는 것을 본 나릉은 설화 떡을 그녀에게 건넸다. 그는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심묘도 좀 먹어. 안 그러면 돌아갈 때 기운 없을 거야.”
심구도 심묘에게 설화 떡을 집어주려 했으나 나릉이 민첩하게 행동한 덕에 한발 늦었다. 그의 그릇은 이미 가득 찼기에 심구는 집은 설화 떡을 심묘와 가장 가까이 있는 풍안녕의 그릇에 놓았다. 풍안녕은 놀랐지만 기쁘게 받았다. 그녀는 고맙다고 감사를 표한 후 그 설화 떡을 보며 넋을 잃었다.
그때, 황보호가 입을 뗐다.
“며칠 전 위무대장군이 정경성으로 돌아왔다고 들었습니다. 위무대장군의 명성은 줄곧 들어왔는데 오늘 이 자리에서 뵐 수 있을는지요?”
떠들썩한 술자리는 순식간에 적막에 휩싸였다. 진국 태자가 심신을 보고 싶어 하다니, 이게 무슨 뜻인가 싶었다. 심신과 진국 태자는 일말의 접점도 없었다. 그러나 심신은 문혜제가 정경성으로 소환한 대장군이고 황보호는 진국의 태자니 신분이 둘 다 민감했다. 사람들은 문혜제를 쳐다보려고 하지 않았지만 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문혜제의 웃는 얼굴은 일그러지지 않았다. 그는 아주 사소한 요청을 들은 듯한 얼굴로 심신을 바라보았다.
“심 장군.”
심신이 얼른 일어나 황보호에게 예를 갖춰 인사했다.
“소신이 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황보호는 웃었다.
“심 장군은 용맹한 무적의 장수라고 들었습니다. 변경 지역의 해산된 군대도 새로 결성했다고요. 심가군이 수도로 돌아오던 날 백성들이 환호하며 길 양쪽으로 늘어섰더군요. 에효, 우리 진국에도 이런 장군이 있으면 백 년은 걱정 없을 텐데.”
그는 길게 탄식했다. 문혜제의 눈빛이 눈에 띄지 않게 흔들렸다. 연회석의 대신들도 안색이 변해 심신을 보는 시선이 대단히 복잡했다.
심신이 변경 해산된 군대를 재결성했다는 말은 심신의 재능이 출중하다고 칭찬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은근히 심신의 위험성을 내보였다. 예부터 모난 돌은 정 맞는 이치였다. 게다가 황제가 추방한 장군에게 백성들의 환호가 크다는 것은 백성이 심신의 편에 서 있다는 의미였다. 백성들의 환호를 많이 받는 수하를 용인할 황제는 없었다.
황보호는 심신을 풍랑이 가장 거센 곳으로 밀어 넣었다. 황보호는 문혜제 앞에서 심신을 무너뜨리려 했다. 명제 대신들은 아무리 꿍꿍이를 품고 있어도 외적에게는 늘 함께 뭉쳐 대처했다. 그러나 지금 심신을 보는 대신들의 시선은 나라를 배신한 장군을 보는 것과 같았다.
심묘는 눈빛을 가라앉히며 차갑게 황보호를 주시했다. 황보호는 사람의 난처한 모습을 보길 가장 좋아했다. 진국 황실의 혈통에 악랄함이 내려오는 듯했다. 심신은 진국과 대립하지 않았는데도 황보호는 그를 놔주지 않았다.
적막 속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예왕이 술잔을 내려놓으며 황보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나른한 취기를 품어 고혹의 빛을 띠었다. 그러나 뱉은 말에는 예의가 없었다.
“진국의 태자 전하께서 심 장군을 이렇게 특별히 보살피시며 폐하께 달라고 독촉하는군요. 폐하께서 대범하고 호탕하시면 그리 해주실 겁니다.”
명확히 추세에 따라 행동하는 말이었다. 사람들은 갖가지 생각을 했다. 황보호가 심신을 정말로 원하는 건 아닐 것이다. 그저 심신을 난처하게 만들어 심신이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려 할 뿐이었다. 만약 문혜제가 심신을 그에게 준다면 진국의 체면이 걸려 있으니 그는 어쩔 수 없이 심신을 부양해야 했다. 그러나 심신이 문혜제의 척후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 명제를 탐색하고 있는데 믿지 못하는 사람을 거둬 말썽을 일으킬 꼴은 보일 순 없었다.
기이한 표정이었던 문혜제도 웃음을 지었다.
“재능이 있으면 천하가 귀하게 여기는 법이지요. 태자 전하께서 심 장군을 원하시면 짐도 공손히 의견에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황보호가 난처한 처지에 놓였다. 심신을 원할 수 없고 그렇다고 이렇게 관두자니 체면을 잃는 것 같았다. 모두 예왕의 시시한 한마디 때문이었다. 황보호는 매섭게 예왕을 바라보았다. 눈에 새기는 것 같았다.
황보호가 난처한 것을 본 명안 공주는 그를 궁지에서 벗어나게 해주려 했다. 그러나 그녀는 곧 풍채가 좋은 예왕에게 호감을 줄 수 없다는 사실에 언짢아졌다. 게다가 그녀는 대량 사람에게 미움을 살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분노를 심가에 뿌리기로 했다. 그녀는 심신을 보며 아름답게 웃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가늘어서 평소에는 달콤했지만, 지금은 날카롭게 들렸다.
“심 장군같이 주요한 인물을 어찌 감히 데려가겠어요? 저 용맹한 위세를 저와 태자 오라버니는 감당할 수 없을 거예요. 차라리 심가 소저를 데려가는 게 좋겠어요. 심가 소저는 미인인 데다 심 장군의 보배라던데, 우리 진국에 그런 행운이 있을까요?”
나담과 풍안녕은 심묘의 손을 꼭 부여잡았다. 그녀들은 경계하는 눈빛을 빛냈다. 나릉의 안색이 변했고 심구와 나설안 역시 안색이 가라앉았다. 심신은 사납게 명안 공주를 바라보았다. 심묘만 고개를 숙인 채 담담히 찻잔을 바라보고 있었다. 명안 공주의 말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그녀는 찻잔 안 찻잎이 빙글빙글 돌다가 느리게 가라앉는 걸 보고 있었다.
일국 장군은 쉽게 데려갈 수 없으나 신하의 딸을 데려가는 일은 매우 수월했다. 타국과 친교를 맺으려 공주를 시집보내거나 신하의 딸을 보내는 건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국 타향으로 시집가길 원하는 사람은 없었다. 시집간 후 부모나 형제의 도움이 없으니 억울함을 겪어도 홀로 삼켜야 하기 때문이었다.
심신은 간신히 웃으며 말했다.
“소신의 여식은 장난이 심해 공주님의 보살핌을 받기엔 부족합니다.”
예의 없는, 단호한 거절이었다. 직설적인 심신은 심묘와 관련되면 더욱 강경해졌다. 그러나 문혜제는 심신을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주지 않고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심모는 심묘의 불행에 기뻐하는 기색을 띠었다. 그녀는 심묘가 진국으로 시집가길 바랐다. 가장 좋은 건 반늙은이의 첩이 되어 고통 속에 살다 타향에서 죽는 것이었다.
심신이 이렇게 인정사정없이 거절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지, 명안 공주의 얼굴에 불만이 떠올랐다. 황보호는 더 말하기 싫어 술만 따라 마셨다. 그러면서도 차가운 눈으로 명안 공주가 심가 사람을 난처하게 만드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렇게 할 수는 없지요. 심가 소저가 덕과 재능을 겸비한 것을 아는데, 어째서 심 소저는 저와 인사하길 원치 않는 건가요? 저를 경시하는 건가요?”
명안 공주가 무례하다는 누명을 씌우자 심묘는 숨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녀는 대범하게 일어나 명안 공주에게 예를 갖춰 인사했다.
“소녀가 명안 공주마마를 뵙습니다.”
심묘가 일어나자 사람들은 심묘를 바라보았다. 2년의 세월은 많은 것을 바꾸기 충분했다. 머저리 여인으로 사람들에게 인상 깊었던 그녀는 기억 속 사람과 전혀 딴사람 같았다. 검붉은색 치마는 그녀의 피부를 옥같이 투명하게 보이게 했다. 소춘성에서 바람에 날리는 모래도 그녀의 피부를 거칠게 만들지 못했다. 전신을 감싼 부귀한 기운은 더욱 뚜렷했다. 그녀의 수려한 눈썹은 그린 듯했고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희미하게 위엄이 드러나니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느낌이었다. 황제 곁에 있는 황후도 심묘의 기백과 도량만 못한 것 같았다.
명안 공주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심묘가 이렇게 좋은 용모와 기질을 가졌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명안 공주도 심묘의 머저리 명성을 알았기에 심묘를 언급하면 심가 사람들이 난감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이는 오히려 자기 발을 돌로 찍은 꼴이 되었다. 그러나 공주는 역시 공주였다. 그녀에게는 밑천이 있었다. 그녀는 바로 눈썹을 치켜세우고 물품을 보듯 거만하게 심묘를 관찰했다.
“과연 미인이구나. 심 장군이 소저를 보배로 여겨 숨겨둘 만하다. 장래 어느 댁이 운이 좋아 소저와 혼사를 맺을까?”
명안 공주의 말은 도를 지나쳐 심신이 눈을 부릅뜨며 범의 기운을 풍겼다. 그는 명안 공주의 신분을 의식하고는 있었으나 사람들 앞에서 딸에게 이렇게 말하는 건 용인할 수 없었다. 그가 끼어들려고 할 때 명안 공주가 화제를 돌렸다.
“심 소저, 재능도 출중할 테지?”
사람들의 표정은 이상하게 변했다. 역패란을 비롯한 몇 명은 입술을 깨물며 웃음을 참았다. 사람들은 심묘에게 재능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2년 동안 군인만 많은 변경의 소춘성에 가 있었으니 더욱 거칠어졌을 터였다.
심묘는 눈꺼풀을 드리웠다.
“소녀는 재능이 모자라고 학문에 깊이가 없으니 공주님의 칭찬은 잘못되었나이다.”
명안 공주가 웃었다.
“심 소저, 겸손할 것 없다. 내가 진국에 있을 때 몇 년 전쯤 심 소저가 명제 시험에서 활로 1등 했다고 들었다. 지금 심 소저를 보니 궁금했던 옛일이 떠오르는구나.”
심묘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나설안과 심구는 초조해졌다. 명안 공주가 일부러 트집을 잡으며 심묘를 난처하게 만드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국화연회 때 시험장에서 심묘와 채임의 활쏘기 시합을 회상했다. 당시 심묘는 세 개의 활로 채임을 쏴 말문을 막히게 만들었다. 바로 그때, 머저리 심묘와 뚜렷하게 다른 지금의 심묘가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 나섰다.
이번 연회에는 채 대인과 채임도 있었기에 채임의 얼굴이 바로 붉어졌다. 지금 채임은 이전보다 많이 발전했다. 심묘와의 원한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잊혀졌다. 심모에게 더 미련을 두지 않았고 원한도 사라졌는데, 오늘 사람들이 옛일을 회상하자 난감했다.
조공연회 구석 자리에 있던 임안후 사정 역시 옛일을 떠올렸다. 지금 그는 몹시 늙어버렸다. 원기왕성하고 기개가 늠름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그는 늘 조용한 구석을 찾았다. 국화연회 시험장에는 사경행도 있었다. 그날 사경행은 사장무와 사장조를 크게 다치게 했지만, 부로 돌아온 사정은 오히려 두 형제를 나무랐고 사경행에게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심 자랑스러워했다. 사정 곁에 있던 사장무와 사장조는 옛일을 떠올려 마음이 더욱 쓰라려진 부친의 맥빠진 표정을 한눈에 다 알아보았다. 두 사람의 눈에 약속이나 한 듯 음험한 기색이 스쳤다.
“오늘 흥미가 동했다. 심 소저, 나와 활쏘기 시합을 하는 건 어떤가? 그저 놀이일 뿐이다.”
명안 공주의 말은 갑작스럽고 기이했다. 이에 문혜제가 웃으며 제지하려 했다.
“심 소저는 연약한 아가씨인데 어떻게 활쏘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명안 공주는 웃었다.
“폐하,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심 소저의 품위 있는 태도는 진국에서도 들었습니다. 호랑이 아비에 강아지 자식은 없다고 합니다. 심 장군이 이렇게 용맹스러우니 심 소저도 기예가 있을 겁니다. 게다가 저도 연약한 아가씨 아닌가요? 폐하께서는 진국이 명제와 시합하기 부족하다고 여기시나 봅니다?”
명안 공주는 예쁘고 귀엽게 보여도 말은 잔인하게 했다. 심묘와의 활쏘기가 국가 간의 문제로 탈바꿈되었으니 시합을 하지 않으면 명제가 진국을 무시한다는 뜻이 되었다. 문혜제는 진국과 원한을 만들 수 없었다. 그는 심묘를 바라보았다.
“심 소저, 어떻게 생각하는가?”
심신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는 심묘를 대신해 무례한 요구를 거절하고 싶었다. 그러나 거절하면 명안 공주가 정당한 약점을 쥐는 셈이었다. 심묘는 명안 공주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소녀는 공주님의 분부를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스스로는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담은 심묘의 말은 명안 공주가 세력을 믿고 남을 괴롭힌다고 하고 있었다. 명안 공주도 심묘의 의중을 알아들어 안색이 가라앉았다. 그러나 그녀는 곧바로 차게 웃었다.
“그 당시 심 소저와 상대는 목숨을 걸고 시합했다지. 오늘 우리도 같은 방식으로 겨루는 건 어떤가?”
“안 됩니다!”
심신은 심묘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는 문혜제의 표정을 생각하지 않고 명안 공주를 차가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공주마마, 놀이라고 말씀하셨으면 놀이로 하셔야지요. 구태여 목숨을 관련시키실 필요가 있습니까? 조공연회는 기쁜 일인데, 기쁜 연회에서 피를 보는 건 좋지 않습니다.”
나설안은 감정을 억제하지 못해 눈앞 찻잔을 꽉 쥐었다. 그들은 심묘와 채임의 목숨 건 활쏘기를 알지 못했다가 정경성에 돌아온 후에야 이를 전해 듣고 대단히 놀랐다. 시험장에 자신이 있었다면 결코 심묘가 목숨을 걸고 도박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게다가 지금 명안 공주는 나쁜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러니 마음이 타들어 갔고, 걱정에 자리에 앉아 있기도 힘들 정도였다.
심신의 말에 황보호가 입꼬리를 올렸다.
“놀이더라도 진지하게 받아들여 주셔야지요. 진국은 명제에게 정중한 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심 장군, 동생은 심 소저와 놀려고 하는데 설마 겁이 나십니까? 아니면 명제가 그렇게 능력이 있는 건가요? 명제가 패배해서 체면을 잃을까 두렵다면 오늘 명안의 흥을 깨도 무방합니다.”
황보호는 날카롭게 말하며 문혜제를 바라보았다. 국가 체면을 거론하는 상황에 문혜제가 소리 내지 않으면 대신들 앞에서 굴욕을 당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장래 군주의 위엄을 세울 수 없었다. 문혜제는 심신을 외면하고 심묘를 바라보았다.
“명안 공주마마가 흥미가 있다니, 심 소저는 명안 공주마마를 모시고 놀아보거라.”
한번 말하면 바꿀 수 없는 황제의 말이 떨어졌으니 심신이 반박해도 헛일이었다. 심구는 주먹을 세게 쥐었다. 나담과 풍안녕은 불안하게 서로를 마주 보았다.
“네.”
오직 심묘만이 낮은 소리로 답할 뿐 당황한 표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태도에 사람들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명안 공주 역시 조금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심묘를 바라보았다. 심묘와 시선이 마주쳤다. 심묘의 눈은 아주 맑고 투명해서 아이처럼 순수해 보였다. 이런 눈은 무언가 생각하면 티가 날 것이었다. 그러나 심묘의 눈은 명안 공주를 바라보며 천 년 동안 침전된 깊은 못처럼 조금의 움직임도 없었다.
명안 공주는 심묘의 생각을 파악할 수 없었다. 도무지 알아볼 수 없었다. 이유 없이 초조해진 그녀는 일부러 크게 웃고 시녀에게 활과 화살을 가져오도록 했다.
“진국의 규칙이다. 사람의 머리 위에 과일을 놓고 활로 맞히면 되는 것이다. 대신, 활을 쏠 사람의 눈을 가린다. 심 소저, 이해했는가?”
그녀는 심묘의 표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사람들은 놀라 숨을 들이마셨다. 지난번 시험에서 심묘와 채임은 머리에 사과를 놓았으나 눈은 뜨고 있었다. 눈을 가리고 활을 쏘는 건 생명을 가지고 노는 일이었다. 솜털이 일어서고 등골이 오싹해졌다.
심신과 나설안은 노여움을 억제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심묘는 오히려 살짝 웃었다. 명안 공주의 말에 조금도 놀라지 않은 것 같았다.
“공주마마의 귀띔, 감사드립니다.”
침착한 심묘를 본 사람들은 그녀를 높게 평가하기 시작했다. 황보호는 심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기이한 빛이 스쳤다. 나담은 심묘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심묘야, 차라리 내가 대신할게. 난 무공을 익혀서 조금은 쏠 줄 알아. 안 될 때는 피하는 게 좋아.”
심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는 여전히 막으려는 심신과 나설안을 바라보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명안 공주마마가 절 맞히실 가능성은 없어요. 만약 정말로 절 쏘시면 진국에도 많은 말썽이 생길 거예요. 태자 전하와 공주마마는 모두 똑똑한 사람이니 멍청한 일을 하실 리 없어요. 그저 절 위협해서 제가 망신당하는 것을 보시려는 것일 뿐이에요.”
심구는 걱정스럽게 심묘의 어깨를 잡았다.
“교교야, 너 지금 겁나잖아. 명중하지 않는대도 어떻게 너보고 과녁이 되라고 해?”
“오라버니, 난 두렵지 않아. 내게도 한 번의 기회가 있어. 날 다치게 하면 가만있진 않을 거야.”
심묘는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은 어딘가 한기가 느껴졌다.
“조심해.”
나릉이 심묘의 어깨를 토닥였다. 고개를 끄덕인 심묘는 명안 공주의 곁에 갔다. 심묘와 명안 공주는 함께 대청 중앙으로 향했다. 명안 공주는 진국에서 금지옥엽으로 키운 귀한 공주였다. 황실에서 성장한 그녀는 예쁘고 귀여운 용모를 가지고 있었으며 자신이 극진한 대접을 받는 것을 아주 마땅하게 여겼다. 그녀 곁의 심묘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등을 똑바르게 세우고 걸었다. 정면을 똑바로 바라보며 두리번거리지 않으니 그 단정하고 점잖은 기질에 명안 공주의 가치가 한 푼도 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중앙 대청에는 탄식소리가 울렸다. 황보호의 안색도 점점 나쁘게 변했다. 명안 공주는 대담하고 침착한 심묘의 모습에 비하면 형편없어 보였다. 어려서부터 궁에서 성장한 명안 공주가 어째서 신하의 딸인 심묘만 하지 못할까 의아했다. 사람들은 심묘가 황후였다는 사실을 모르니 당연한 일이었다.
심묘는 부수의를 위해 가혹할 정도로 스스로를 완벽한 모습으로 가꾸었다. 진국에서의 불우한 경험은 그녀에게 모욕을 당해도 놀라지 않는 기질을 갖추게 했다. 전생에 미 부인과 암중에서 서로 다투지 않았거나 부수의가 그녀를 방임하지 않았다면 심묘는 천하를 아우르는 황후 역할을 잘해냈을 것이었다. 전생에서 황후의 꿈은 산산조각 났지만, 그 덕에 현재 심묘는 가리지 못할 광채를 보유하게 되었다.
명안 공주는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심묘를 바라본 후 자신의 장궁을 내려다봤다. 검고 빛나는 장궁은 좋은 나무로 만들었다. 특수한 약물을 발라 아주 단단하고 둔중했다.
“이건 내 활이다. 한 사람씩 화살 한 대를 쏘자꾸나. 가능하겠지? 내가 먼저 쏘고 네가 쏘는 것이다.”
명안 공주는 순서도 정해버렸다. 명제 사람은 불만의 표정을 드러냈다. 그러나 심묘는 담담히 동의했다. 동요하는 표정을 보이지 않았다. 심묘가 이 상황에서조차 아무런 표정을 드러내지 않으니 명안 공주는 더욱 당황했다. 그녀는 귀빈석을 바라보며 애교스럽게 말했다.
“지금 하는 시합에 누군가 불공평하다 느낄까 걱정이니 대량의 예왕 전하께서 판정하도록 하자. 이곳에서 활과 화살을 검사해 우리가 속임수를 쓰지 않은 것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다.”
명제 아가씨들은 명안 공주가 염치를 모른다고 속으로 욕했다. 분명 기회를 이용해 예왕과 친해지려는 것이었다. 예왕의 미모에 도취해서 한 행동일 터였다. 다들 버릇없는 예왕이 명안 공주의 영문 모를 요구에 동의할 리 없다고 추측했다. 그러나 예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사람들을 비롯해 문혜제와 황보호도 예왕을 바라보았다. 예왕은 게으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가 긴 그는 단 두 걸음에 심묘와 명안 공주 옆에 섰다. 뜻밖의 기쁜 일에 명안 공주는 어쩔 줄 몰라 활을 예왕에게 건넸다.
그녀는 예왕을 바라보며 웃었다.
“먼저 예왕 전하께서 무슨 문제가 있는지 활을 검사하십시오.”
황자 좌석에 앉은 부수안이 냉소했다. 경시하는 말투였다.
“저 진국 공주는 본분을 지키지 않는군. 여러 사람 앞에서 염치없이.”
부수현이 명안 공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선 심묘를 바라보았다.
“심묘는 예상 밖이야. 저렇게 침착하다니. 연기하고 있다고 해도 배포가 크네.”
“심묘의 자태는 점점 좋아지네. 부수의, 후회하지 않느냐?”
부수안이 턱을 매만지며 말 없는 부수의를 바라보았다.
“형님은 농담도.”
부수의가 담담히 답했다. 부수의의 뒤에 조용히 서 있는 배랑의 시선이 심묘에게 떨어졌다. 배랑은 그녀를 매우 평온하게 바라보았다. 처음 보는 생소한 사람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소매 안에서 주먹을 팽팽히 쥐었다. 주먹이 조금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심묘의 자태는 더욱 매력적으로 변했다. 심묘는 그녀의 말대로 황실 사람에게 ‘초청’받아 돌아왔다. 나무는 고요하게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더니 막 정경성으로 돌아온 그녀가 무언가 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늘 그녀를 찾았다. 그러나 배랑은 심묘를 걱정하지 않았다. 그녀가 결코 스스로를 난처하게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보다 흉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없을 터였다.
예왕이 명인 공주에게 활을 넘겼다. 명안 공주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받았다. 그러고는 쟁반 위 사과를 들어 심묘에게 넘겼다.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심 소저, 저쪽에 서거라. 그리고 이것을 머리 위에 놓고.”
심구가 쥐고 있던 주먹에 다시 한번 힘을 주었다. 긴 속눈썹을 아래로 드리우고 답한 심묘가 사과를 가지고 명안 공주가 가리킨 방향으로 걸어갔다. 명안 공주는 이미 검은 천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고 있었다.
예왕은 심묘의 곁으로 갔다. 그는 심묘에게서 사과를 빼앗았다. 심묘가 멍하니 그를 바라보자 예왕은 사과를 조용히 그녀 머리 위에 놓으려고 했다. 머리에 사과를 올려놓으려면 사과가 떨어지지 않도록 동작이 세심해야 했다. 심묘는 꼼짝하지 않고 그를 보았다. 예왕은 키가 컸다. 2년간 심묘는 자랐으나 그의 가슴 정도밖에 미치지 못했다. 예왕의 옷에 달린 화려한 금색 단추를 보고 있으니 예왕이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심묘를 바라보았다.
예왕의 멋진 턱과 붉은 입술이 보였다. 입꼬리는 조금 올라가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가면 아래 그가 웃고 있다고 상상하게 했다. 그의 검은 눈은 별처럼 반짝였다. 눈빛은 부드러운 듯하면서도 놀리는…… 듯도 했다.
사과를 머리에 올려놓을 때, 그는 심묘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키우는 어린 짐승을 어루만지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주 짧은 시간이었고 예왕은 손을 거둬들였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가 그저 심묘의 머리에 사과를 놓는 것처럼만 보였을 것이었다. 심묘와 떨어진 그는 웃음거리를 보는 듯 팔짱을 끼고 심묘를 보았다.
하지만 심묘는 명안 공주에게 집중하느라 그 시선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명안 공주는 천천히 활시위를 당겼다. 장궁은 단단해 당기기 힘든 듯 명안 공주는 힘들어했다. 그녀가 힘을 쓸수록 시위가 더 늘어나면서 사람들의 마음도 무거워졌다. 심신 일가의 안색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시위가 늘어날수록 화살이 받는 힘이 커서 심묘가 더 위험해지기 때문이었다.
이 시합은 명안 공주의 말처럼 단순한 놀이가 아니었다. 나라의 체면이 관련되어 있으니 큰일이었다. 화살을 피하면 체면을 잃고, 겁을 내도 체면을 잃는 상황이었다. 사람들은 심묘와 명안 공주의 시합에서 명안 공주가 우세하다고 여겨, 심묘가 너무 꼴사납게 패배하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심묘는 두 눈을 가린 명안 공주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명안 공주가 일부러 심묘에게 겁을 주려고 하는 건지 알 수 없으나 그녀는 매우 느리게 활시위를 당겼다. 장궁에서 미세한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사람들의 심장은 쿵쿵거렸다.
심묘의 눈앞이 희미해졌다. 이곳이 떠들썩한 조공연회의 술자리 대청이 아니라 진국 같았다. 진국의 황자, 공주 및 대신가의 아가씨들이 웃음거리인 심묘를 보러 중앙을 에워쌌다. 심묘는 무수히 깁고 꿰맨 낡은 옷을 입고 머리에 사과를 올린 채 활을 든 사람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활을 든 사람은 횡포했다. 화려하고 세밀한 옷차림에 눈을 흰 띠로 가린 그 사람은 주변 사람에게 떠벌렸다.
“봐! 오늘 내가 명제 황후의 머리에 사과를 놓았어. 저 장군 가문 출신의 명제 황후가 놀라 소피를 지리지 않을지 분명히 잘 보라구! 제대로 보고 내게 알려다오!”
그녀는 오만방자하게 활을 당겼다. 화살이 조금 치우쳐 날아왔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온 화살은 심묘의 옷자락을 맞혔다. 심묘는 허둥대며 비명을 질렀다. 그녀가 의상을 단단히 싸매자 주위에서 비웃음 소리가 더욱 커졌다. 그 치욕적인 기억이 눈앞의 장면과 겹쳐졌다.
심묘는 느리게 입술을 물었다. 마음이 쓰린지 그녀를 증오하는지 알 수 없었다. 맑고 투명한 눈은 한층 검은 안개에 덮인 듯 깊이를 헤아릴 수 없었다. 심묘는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을 만큼 아주 조금, 고개를 기울였다.
예왕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손가락을 구부렸다가 조용히 폈다.
명안 공주가 화살을 쏘자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담이 작은 여자들은 차마 보지 못하고 두 눈을 가렸다. 대신들은 진국 명안 공주가 아무리 성격이 거만하고 잔인하다 해도 명제에서 명제의 장군의 딸을 쏴 죽일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 그러나 마음으로는 알고 있어도 눈으로 보는 것은 또 달랐다. 관중인 그들조차 심장이 빠르게 뛰는데 심묘는 어떨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심묘는 조용히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심지어 눈도 감지 않았다. 그녀는 진지하게 날아오는 화살을 정확히 보려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심상치 않은 상황에도 태연자약하며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는 심묘를 바라보았다. 화살이 휙 소리를 내며 교묘하게 심묘의 머리 위를 스치고 날아갔다. 붉은 사과를 피해 간 것이었다.
심구가 한숨을 쉬며 안도했다. 심신과 나설안은 단단히 잡은 손을 조금 풀었다. 풍안녕과 나담이 명치를 쓰다듬었다.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 나릉은 걱정하는 표정을 숨겼다. 사람들은 모두 침묵했다. 웃고 있던 황보호의 입가가 굳었다.
오랜 시간 환호성이나 심묘를 조롱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자 명안 공주는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그녀가 검은 천을 풀어 심묘를 바라보았다. 심묘의 머리 위 사과는 온전했고, 그녀의 화살은 멀지 않은 곳에 떨어져 있었다. 심묘의 머리카락은 흐트러지지 않았고 의상도 완전했다. 당황한 흔적도 없는 심묘가 담담히 말했다.
“공주마마, 손이 미끄러지신 듯합니다. 화살이 명중하지 않았나이다.”
명중하지 않았다. 심묘의 말은 아주 가볍고 담담했지만, 득의와 냉소를 품은 것 같았다. 명안 공주는 누구에게 맞은 듯 뺨이 얼얼하고 아팠다. 멍하니 있던 그녀가 심묘를 바라보며 분노했다.
“너! 방금 움직였지?! 움직였어! 지금까지 나는 실수한 적 없다! 네가 움직이지 않았다면 명중했을 거라고!”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명안 공주에 문혜제도 불만을 드러냈다.
“공주마마의 말씀은 연회에 있는 사람들이 심 소저를 비호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심묘는 똑바르게 서 있었다. 사람들 눈에 그녀가 피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연기인지 진짜인지 몰라도, 이 모습이 정말이라면 심묘의 담력과 식견은 대단했다. 문혜제가 심가를 두려워하든 핍박하든 심가는 명제 사람이었다. 명제의 황제인 그는 진국 공주가 함부로 심묘를 모독하는 일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명안 공주의 제멋대로인 행동을 방임하면 그의 위신이 크게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명안 공주는 억울하단 눈빛으로 황보호를 보았다. 황보호는 음험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 놀란 명안 공주는 고개를 돌려 예왕을 쳐다보았다.
“예왕 전하, 방금 분명히 보셨을 겁니다. 심 소저가 피했지요?”
명안 공주는 애교스러운 목소리로 예왕을 주시했다. 사람들은 억지를 부리는 명안 공주의 모습에 조금 난감해했다. 예왕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아닙니다.”
명안 공주는 당황했다.
“예왕 전하의 말씀은 심묘가 피하지 않았다는 건가요?”
“제 눈을 의심하는 겁니까?”
예왕이 반문했다. 대단히 품위 있어 보이는 그는 한마디로 사람을 탄복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차가운 목소리는 한기를 품어 사람을 핍박하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그를 감히 바라보지 못하고 눈을 내리깔았다.
심묘는 놀란 명안 공주를 보며 살짝 웃었다.
“공주마마, 도박에서는 좋지 않은 결과일지라도 승복해야 합니다. 설마 공주마마께서 이를 모르시진 않을 거라 믿습니다.”
“무엄하다!”
명안 공주가 소리쳤다. 그녀는 분기탱천한 시선으로 주위를 사납게 바라보다가 이곳이 명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심묘에게 날카롭게 소리치는 바람에 심신 일가뿐 아니라 군중의 분노를 사버린 듯했다. 그녀는 이를 갈며 심묘를 바라보았다.
“내가 무엇을 모른다는 것이냐! 너도 의기양양하긴 이르다. 내가 맞히지 못한 것을 네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명안 공주는 속으로 분노했다. 자신의 활쏘기 솜씨는 이미 최고 경지에 올랐다. 활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사용한 것이었다. 눈을 가리고 화살을 쏘는 일 역시 진국에서 여러 번 한 놀이로 지금까지 실수한 적이 없었다. 오늘 이 시합은 심묘를 곤란하게 만들고 심가 사람의 무례를 훈계하기 위함이었다. 과일을 명중시켜 심묘의 체면을 잃게 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명중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심묘는 피한 적이 없다 하니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알 수 없었다.
득의양양하게 제안한 시합에서 심묘의 체면이 아니라 자신의 체면을 잃게 되었다. 명중시키지 못한 것을 진국의 형제들이 알면 비웃을 것이었다. 심묘를 향한 증오심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명안 공주의 움직임을 보는 심묘의 마음은 차가웠다. 전생 진국에서 5년을 보냈고, 그 5년 동안 명안 공주와 지냈다. 그래서 심묘는 명안 공주가 어떤 성격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심묘를 놀리기 위해 많은 사람 앞에서 활쏘기 시합을 하곤 했다. 화살은 심묘의 머리 쪽을 풀거나 옷깃을 스쳐 심묘에게 창피를 주었다. 종종 ‘실수’를 해 심묘의 몸에 찰과상을 입히기도 했다.
그래서 오늘, 심묘는 명안 공주의 활이 어디로 날아올지 알고 있었다. 전생 무수히 겪은 일이니 그녀가 모를 수 없었다. 심묘는 고개를 살짝 치우쳐 화살이 ‘알맞게’ 스치고 날아가게 한 것이었다. 명안 공주의 말을 믿는 사람이 없다는 건 당시 심묘의 말을 믿는 사람이 없는 것과 같았다. 억울한 오해를 받고 체면을 잃으며 망신을 당하는 것. 금지옥엽으로 자란 공주에게 그 일을 겪게 해줄 터였다. 오늘은 그 서막에 불과하니 앞날을 기대해도 좋을 거라고, 그 말을 해줄 수 없어 심묘는 안타까웠다.
심묘는 붉은 사과를 들어 보이며 웃었다.
“제 차례네요. 공주마마, 소녀는 마마께서 이 사과를 입에 물어주시길 청합니다.”
심묘의 말에 대청은 적막에 휩싸였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명안 공주가 눈을 크게 뜨며 심묘를 보았다.
“뭐라고?”
그녀의 목소리는 황급한 나머지 날카로웠고, 듣기 거북한 쉰 목소리였다. 심묘는 천진하게 웃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맑았다.
“공주마마께서 이것은 진국의 놀이법으로 활 쏘는 사람이 사과를 놓을 곳을 정한다고 말씀하셨지요. 소녀는 공주마마께서 머리 위에 사과를 두라고 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심묘는 대범하게 웃었다.
“공주마마, 혹여 두려우시다면 사람을 바꾸셔도 됩니다.”
명안 공주는 분노가 치미는 걸 느꼈다. 사람을 바꾸라는 말은 명안 공주가 담력이 작고 능력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명제를 비롯해 예왕 앞에서 진국의 체면을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셈이었다.
역패란이 놀라 숨을 들이마셨다. 그녀는 심모를 바라보았다.
“쟤 미친 거 아니야? 감히 명안 공주마마와 맞서?”
국화연회 시험장에서 채임과 대치했을 때, 심신의 관직은 채 대인보다 높았다. 그러나 지금 상대는 진국의 공주였다. 감히 심묘가 이런 도발을 하다니 사람들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채임과 채 대인은 서로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전에 심묘가 그를 상대로 여긴다고 했는데 지금 심묘는 진국의 공주도 안중에 없으니 그들은 더욱 상대가 아니란 소리였기 때문이었다.
황자들이 있는 곳에서 탄식 소리가 들렸다. 리왕이 깊은 뜻이 담긴 웃음을 지었다.
“저 심가 소녀, 아주 원한을 제대로 만드는데.”
명안 공주는 심묘를 단단히 노려보았다. 그녀의 날카로운 시선과 마주한 심묘는 작게 웃었다. 어쩔 도리가 없는 명안 공주는 도움을 청하는 시선으로 황보호를 바라보았다. 황보호는 가볍게 기침했다. 그는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심묘에게 분노했다. 지금 명안 공주는 진국의 체면을 짊어지고 있기에 명안 공주가 불만을 품게 할 수 없었다. 문혜제를 한 번 바라본 황보호는 심묘를 훑어보았다.
“놀이일 뿐인데, 명제의 소저는 어째서 이렇게 트집을 잡는 것인지요?”
문혜제가 심가 사람을 바라보았다. 안심한 심신과 나설안은 황보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느긋하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 심구와 나릉 역시 여유롭게 바라볼 뿐 어떤 태도도 표명하지 않았다. 풍안녕과 나담은 명안 공주를 팽팽히 주시했다. 그녀들의 눈빛은 불공평하다고 매우 화를 내는 눈빛이었다.
심가의 태도를 보니 관둘 생각 없이 명안 공주와 맞서겠다는 게 분명했다. 심신은 속으로 분노했다. 명안 공주의 기세등등한 태도에 심묘가 조금의 물러설 자리도 없었으니 명안 공주도 그 기분을 맛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기도 싫은 것은 남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했다. 명안 공주는 다른 사람을 음해할 때 그 사람의 기분이 어떤지 생각해봐야 했다. 심가는 이미 바람과 풍랑이 센 곳으로 몰린 셈이었다. 진국 사람이 먼저 심가를 겨눴으니 용서할 마음이 없었다. 심신은 성질이 폭발했다. 오늘 심묘가 명안 공주를 쏴 죽인대도 그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문혜제는 심신의 태도를 보고 그의 마음을 깨달았다. 심신은 심묘를 총애했다. 총애하는 심묘과 관련된 일이니 그는 물러서지 않을 게 분명했다. 심신이 표적이 됐으니 문혜제는 즐겁게 지켜보기로 했다. 게다가 그도 명제가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명안 공주의 거만한 성격이 싫었다. 문혜제는 명안 공주의 위풍을 없애려 황보호를 웃으며 바라보았다.
“젊은 사람의 놀이인데 이렇게 걱정하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들이 즐겁게 노니 막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황보호는 심가가 냉담하게 모른 척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더욱이 어부지리를 넘보려는 늙은 여우 같은 문혜제의 반응도 예상하지 못했다.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명제의 대신들도 점점 대담하게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지금 와서 이 시합을 멈춘게 한다면 진국의 체면은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었다. 그는 경고하듯 명안 공주를 쳐다보았다.
“명안, 네가 제안했으니 심 소저와 끝까지 놀려무나. 심 소저, 놀이이니 공주를 다치게 하지 말아라.”
황보호는 심묘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보았다. 명안 공주에게 사고가 생기면 심묘에게 대가를 지급하게 할 거라는 뜻이었다. 위협의 말을 듣고도 심묘는 웃었다.
“안심하십시오. 놀이에 목숨을 걸진 않으니 소녀는 공주마마를 다치게 하지 않을 겁니다.”
명안 공주는 불안에 휩싸였지만 중도에 관둘 수는 없었다. 그녀는 심묘의 말에 따라 맞은편으로 걸어갔다. 명안 공주는 심묘의 몸을 찌를 듯 칼 같은 눈빛을 보냈다. 무언가 생각난 듯 그녀의 눈이 밝아졌다.
“심 소저, 내 활은 누구나 당길 수 있는 게 아니니 너는…….”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심묘가 수월하게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있는 힘을 다 써서 당긴 명안 공주와 달리 수월하게 활시위를 당기는 심묘의 모습은 아주 우아해 보였다. 활은 심묘와 수십 년을 함께한 듯 그 손에 아주 익숙해 보였다. 심묘가 웃는 낯으로 믿을 수 없다는 명안 공주의 시선과 마주했다.
“좋은 활이네요. 공주마마의 활은 제가 쓰기에도 알맞군요. 고맙습니다.”
검은 천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기 위해 심묘가 시녀에게 손짓했다. 시녀가 막 움직이려 할 때, 예왕이 검은 천을 손가락 끝으로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의아해하며 예왕을 보았다. 그는 심묘에게 걸어가 한 손으로 그녀의 턱을 잡고, 머리를 조금 들어 올려 검은 천으로 그녀의 눈을 가렸다.
나담이 눈을 크게 떴다. 그녀는 풍안녕을 끌어당겼다.
“저…… 저게 뭐 하는 거지?”
예왕의 동작에 나담은 호기심을 느꼈다. 문혜제는 미간을 조금 찡그렸다. 명안 공주는 질투를 담아 심묘를 바라보았다. 살의가 가득했다.
검은 천에 가로막혀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심묘는 예왕의 동작이 온화하고 부드럽다는 것만 알았다. 그의 손가락 끝은 차가웠다. 손가락이 심묘의 뺨을 만질 때 눈송이가 옷자락에 입을 맞추는 듯한 희미한 한기가 느껴졌다. 그러나 닿은 곳은 곧 뜨거워졌다.
예왕이 옆으로 물러난 듯하자 심묘는 명안 공주가 서 있던 방향으로 활시위를 당겼다. 사람들은 숨죽여 심묘를 바라보았다. 모두 긴장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까지 하는 심묘를 몰래 원망했다. 사과를 입에 무는 것부터 명안 공주에게 큰 치욕이었다. 게다가 사과를 입에 물었으니 심묘가 조금이라도 부주의할 경우 명안 공주를 다치게 하거나 목숨을 잃게 할 수 있었다.
진국 공주가 명제에서 목숨을 잃는다면 진국은 이를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었다. 심묘가 목숨으로 배상한다고 해도 부족할 것이며 온 명제를 연루시킬 것이었다. 그렇다고 일부러 다른 곳으로 쏜다면 명제의 체면이 땅에 떨어질 것이었다. 오직 심묘가 명안 공주가 문 사과를 맞혀야만 했다. 그러나 이는 불가능한 일 같았다.
황보호는 심묘를 팽팽히 주시했다. 명안 공주는 그의 여동생이니 그는 저 활이 얼마나 둔중한지 알고 있었다. 평범한 여자는 쉽게 당길 수 없었다. 무예를 익힌 남자라도 좀 길들이고 나서야 가능했다. 그러나 심묘는 숙련된 태도로 활을 들었다. 익숙한 손짓과 수월한 표정은 심묘가 이전 저 활을 여러 번 만져본 것 같았다는 의혹이 들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저렇게 자유자재로 다룰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번에 명안 공주가 처음으로 명제에 온 것이니 심묘는 저 활을 처음 만지는 것이었다. 황보호는 갑자기 흥미가 생겼다. 그는 심묘를 새로운 장난감을 보는 것처럼 집중해서 쳐다보았다.
심묘는 황보호의 깊은 시선을 알지 못했다.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리고 있는 그녀는 화살 위 무늬를 어루만졌다. 무거운 활 위에는 미세하게 긁힌 자국이 있었다. 전생과 똑같았다. 전생의 그녀는 이 활을 무수히 만졌다. 명안 공주는 그녀를 쏘고 난처할 때마다 대담하게 활을 심묘에게 건넸다.
“자네 차례야.”
암암리에 무수하게 연습했던 심묘는 사실 명중시킬 수 있었지만, 매번 일부러 멀리 떨어진 곳을 쏘았다. 그녀의 모습에 진국의 공주와 황자는 웃느라 고개를 들지 못했었다. 그녀는 인질이었기 때문에 아쉬워도 참고 견디며 살아야 했다. 남에게 의존하며 사는 처지에 제멋대로 행동할 수 없어서 이길 수 있어도 패배하고 또 패배했다. 명안 공주를 즐겁게 해야 돌아가 부명과 완유를 만날 기회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곤란했던 세월 동안 그녀는 활의 소박하고 예스러운 무늬를 마음속에 새겼다. 전생에는 참았지만, 지금은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명제의 황후가 아니니 명안 공주가 한 것처럼, 자유롭고 뻔뻔하게 굴 수 있었다.
“공주마마, 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심묘는 바로 손을 놓았다. 가득 당겨진 활이 경쾌한 소리를 냈다. 화살은 유성처럼 사납게 명안 공주를 향했다. 그 순간 명안 공주의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화살은 대단히 빨라서 피할 수 없었다. 화살은 단숨에 눈앞으로 날아왔다. 명안 공주는 소리를 지르려 했으나 사과를 물고 있어 그럴 수 없었다. 몸에 힘이 풀린 명안 공주는 기절하고 말았다.
시녀가 얼른 그녀를 부축했다. 놀란 황보호가 단숨에 일어났다. 안색은 음험했다. 곳곳에서 탄성이 들렸다. 심묘는 천천히 눈을 가린 검은 천을 풀었다. 그녀는 쓰러진 명안 공주에게 다가가 명안 공주 입에서 사과를 꺼냈다. 화살은 붉은 사과에 반 정도 박혀 있었다. 화살 꼬리가 길게 밖으로 나와 명안 공주의 목구멍을 뚫지 않은 것을 증명했다. 명중이었다!
“소녀가 운이 좋은가 봅니다. 명중이네요.”
심묘가 미소 지었다. 곧 환호성이 들렸다. 명제 신하들이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후 기뻐했다. 얼굴이 붉어진 그들은 손뼉을 쳤다.
“역시 호랑이 아비 밑에 강아지 자식은 없구나!”
명안 공주가 제안한 활쏘기 시합을 심묘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명안 공주는 명중시키지 못했지만, 심묘는 명중시켰다. 심지어 명안 공주는 놀라 기절했으니 승패가 명명히 드러났다. 심가에 의심을 품었던 문혜제 역시 아주 기뻤다. 심묘가 그의 체면을 살려주었을 뿐 아니라 진국을 숨 막히게 했기 때문이었다.
“심 장군, 딸을 잘 키웠네!”
문혜제의 칭찬에 심신이 고개를 숙였다.
바람이 불어 대청 중앙에 선 심묘의 치맛자락을 높이 날렸다. 꽃이 피어난 것 같았다. 그녀는 시녀의 부축을 받는 명안 공주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솟아나는 온갖 감정을 아래로 누르며 심묘는 고개를 돌렸다. 예왕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다. 가면에 숨긴 표정을 알아볼 수 없었으나 그 시선은 차가우면서도 따뜻해 조금 미혹되었다. 웃는 듯, 마는 듯 알 수 없는 시선으로 심묘를 바라본 예왕은 귀빈석 자리로 돌아갔다.
체면을 잃었다고 자각한 황보호는 어떻게 만회할지 궁리했으나 방도가 없었다. 오늘 일은 갑작스러운 데다 명안 공주가 먼저 꺼낸 일이었다. 그러나 이 결과는 심묘가 만들었다. 황보호는 심묘를 차갑게 바라보았다.
“심 소저에게 이런 재간이 있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소.”
심묘는 황보호에게 고개를 숙인 뒤 자리로 돌아갔다. 온화하고 선량하며 무해해 보이는 그녀는 활을 쏠 때 조금도 무르지 않았다. 오히려 엄중한 기운을 띠었다. 그러나 지금은 활을 쏜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는 듯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화풀이를 하려 해도 그녀의 고귀하고 위엄 있는 태도에 할 수 없었다.
풍안녕은 심묘의 손을 끌어당겼다.
“심묘야, 너 방금 정말……. 네가 남자였다면 난 너에게 시집갈 거야!”
“원한이 있으면 복수하고, 한이 있으면 푼다더니. 심묘야, 나는 네가 사람을 괴롭히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
심묘와 함께 소춘성에서 생활한 나담은 그녀가 어떤 성격인지 알고 있었다. 연약해 보인다고 깔봐서는 안 된다. 눈이 먼 사람이면 그럴 수 있겠지만, 그래도 대가는 똑같이 치러야 할 것이었다.
심묘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사람들은 명안 공주가 그녀를 핍박하자 원한이 생겨 이렇게 보복한 거라고 여겼다. 그들은 그녀가 이 화살로 전생의 한을 푼 것임을 몰랐다. 심계 깊은 부수의와 마주하려면 한 걸음씩 계획해야 했다. 그러나 명안 공주에게 전생의 굴욕을 돌려주지 않으면 회귀한 지금의 인생에게 미안한 일이었다.
어떤 사람의 악행은 잠시 참을 필요가 있으나, 그렇지 않다면 복수해야 한다. 심묘는 조심스럽게 일을 처리하면서도 한결같은 성격을 드러냈다. 가족의 보호가 있고 패를 쥐고 있으니 명안 공주와 맞서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나릉이 심묘에게 뜨거운 차를 건넸다.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심묘야, 괜찮아?”
“괜찮아.”
심묘가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때, 심묘는 누군가가 바라보는 것 같아 곳곳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단순히 착각이라고 여겼다. 귀빈석에 있는 가면을 쓴 예왕이 술잔 위를 가볍게 튕겼다. 손가락에 낀 백옥 반지가 반짝였다.
<7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