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잠에서 깰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수면 캡슐의 천장이고 가장 먼저 머릿속에 들어오는 것은 현재의 시간과 위치 정보다.
>연방 표준시 2217년 12월 27일 오전 4시 38분
>마카로니 항성계 네 번째 행성 마카로니 4
이상의 정보를 페가수스급 강습함, 솔리드 베타의 수면실에서 알게 된 김빈우는 욕부터 뱉었다.
“이런 쌍놈들. 크리스마스 날아갔네.”
시간은 지난번 수면으로부터 고작 376시간, 15일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이건 빈우와 형제들의 평균 수면 시간에 비하면 꽤 짧은 편인데, 불행히도 얘들이 수면 부족에 시달린다는 것은 인류 사회 어딘 가에도 불행한 일이 생겼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런 불행한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빈우와 형제들이 필요하다.
빈우가 자고 있던 수면 캡슐은 본격적인 기상 과정에 들어갔다.
근육 마사지가 시작되고 주사기로 영양제와 각종 약물이 투입되자 육체가 활성화된다.
두뇌 칩으로 지금까지의 정보가 들어오고 전투 OS가 부팅되어 사고에 간섭하자 정신이 활성화된다.
일어나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라 옷도 깨어나고 있다. 캡슐 바로 앞에 있는 어벤져 장갑복도 대기 모드에서 부팅되어 둔중한 작동음이 들려온다.
일할 시간을 알리는 소리다.
드디어 수면 캡슐이 열리고 밖으로 나온 빈우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오른쪽을 보고 왼쪽을 봐도 줄줄이 늘어선 캡슐에서 나온 사람들은 모두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클론이니까.
앞을 보니 빈우의 장갑복이 대기 자세로 착용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오자마자 또 기어들어 가는구나. 바깥 공기 맡아 본 지가 언제냐.”
빈우가 툴툴거리며 불만을 내뱉었다.
잠에서 깨면 장갑복을 입고, 장갑복을 벗으면 잠을 잔다. 이런 반복된 일상 때문에 빈우는 바깥 공기를 제대로 맡아보지 못했다. 작전 중에 맡으라면 맡겠지만 그건 바깥 공기라고 할 순 없지 않나. 기분상.
같은 모습의 클론들이 같은 수면 캡슐에서 몰려나와 같은 장갑복을 착용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장관이다.
빈우도 장갑복에 몸을 밀어 넣었다. 신체 곳곳의 접속 단자를 연결하자 사용자 인증 절차와 함께 인공 근육과 장갑들이 줄줄이 달라붙는다.
이어서 시작되는 장갑복의 상태 점검.
>착용자 Ultor C-18 인증.
>동력계 정상.
>구동계 정상.
>통신계 정상.
>화기 제어 시스템 정상.
>전투 os 업데이트 점검.
>최종 업데이트 2217-12-23.
>전투 os와 장갑복간의 동기화… 에러.
>동기화 재시도. 정상.
언제나 똑같다. 빈우와 장갑복에 별다른 이상은 없다.
굳이 이상한 점을 찾자면 백 명의 중대원 중 오직 빈우만이 헬멧 전면에 해골 마크를 그려 개성을 뽐낸다는 것 정도다.
“부라~더! 잘들 잤냐.”
중대 공용 회선에 큰소리로 인사를 날려봤지만, 빈우와 똑같은 뇌를 가진 클론 형제들에게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전투 시에는 그렇게나 나불대는 놈들이 이런 자리에선-아주 잠깐의 평시에는-무슨 꿀을 빠는지 도통 입을 열지 않는다.
“자식들. 입 여는 놈이 하나도 없네.”
이어서 빈우의 잡스러운 생각을 무시하듯 장갑복의 회선을 통해서 중대원들의 두뇌 통신이 시작되었다.
>울토르 중대 두뇌 통신 회선 활성화.
>접속자 목록 갱신.
>중대원들의 두뇌 칩 동기화.
중대원들의 두뇌 통신 회선은 금방 활성화되었고 그때부터 중대원 100명은 서로의 정보와 사고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두뇌 통신에서 말은 필요 없다. 그냥 느끼기만 하면 저절로 알게 된다.
두뇌 통신은 통신자 간의 뇌와 보조 칩을 연결해 직접 정보를 전하는 방법으로써 음성과 영상을 쓰는 일반 통신 보다 훨씬 정확하고 빠르게 정보를 전달하는 장점이 있다. 물론 잘못된 정보까지도 정확하고 빠르게 전달하는 단점도 있으니 주의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그리고 빈우의 머릿속으로 감정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렴풋하고도 희미한 그 뭐랄까….
-저 새끼 또 저래?
-몰랐냐? 원래 저랬잖아.
-원래 안 저랬을 텐데?
-그럼 언제부터 저 꼴 난 거지?
“…시발놈들….”
이렇듯 중대원들의 한심해하는 말과 사고가 빈우의 머릿속에서 그대로 느껴진다. 형제들이 대답하지 않는다고 무관심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안 빈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바로 클론 부대-울토르(Ultor)중대의 장점이다.
클론들의 같은 뇌. 같은 두뇌 칩, 같은 전투 OS, 거기에다 동기화 훈련을 거치고 나면 동종 모델 간의 두뇌 통신은 일반인보다 상당히 빨리, 그리고 쉽게 이뤄진다. 일반 인간이라면 회선을 만드는 데만 수초가 걸릴 것이다.
덧붙여 클론 부대의 단점 아닌 단점이라면 방금과도 같은 감정의 공유까지 일어난다는 거다. 아마 같은 육체와 신경계를 가졌기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추측만 할 뿐, 상부에서는 별로 해결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아니면 딱히 필요가 없어서 그럴지도.
“형제들끼리 그러는 거 아니다.”
형제들에게 씹혀 구시렁거리던 빈우는 코일건을 들었다. 장갑복의 손바닥으로 돌격 소총의 손잡이를 쥐자 곧바로 점검과 연결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소총과 장갑복이 연결되면 총의 조준기와 빈우의 시야가 동조되어 빈우의 눈이 하나 더 늘어나는 셈이 된다. 그리고 이 세 번째 눈으로 봤던 피사체들은 결코 좋은 꼴을 못 봤다. 뭐 세상을 보는 데는 여러 가지 관점이 있다지만 초음속으로 날아오는 니켈강 탄환에 갈기갈기 찢기는 게 좋은 꼴이라고는 볼 수 없지 않나.
대부분은.
‘알아서 기면 그런 꼬락서니는 안될 텐데.’
빈우가 딱히 적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빈우가 든 총에 처맞고 뒈질 놈들은 인류 연방 정부가 답 없어서 손 놓을 정도로 막 나가는 놈들이니까.
그리고 이 울토르 중대가 하는 일은 연방이 손 놓은 놈들을 정신 줄마저 놓게 만드는 거다.
그때 이번 작전의 무대인 마카로니 4의 행성 지도와 작전 내용이 중대원들의 뇌 속으로 입력된다.
작전 지역은 마카로니 행성 북반구에 있는 마카로니 시와 그곳에 위치한 궤도 엘리베이터 터미널이다. 목적은 궤도 엘리베이터 및 지상 터미널의 탈환과 작전 지역 내 모든 적 세력 제거.
작전 지역 내 시가지의 모든 적 세력 제거라면 울토르 중대의 장기 중의 하나인 수색 섬멸이다. 이번에도 외계 종족이 마카로니 시를 침략했기 때문에 정의의 연방군이 출동해 해당 지역의 침략자들을 모조리 잡아 족치는 스토리 같다.
그런데 샅샅이 찾아서 제거해야 할 적에 대한 정보가 이번에도 없다. 하긴 적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없었던 때가 더 많았고 없다고 한들 큰 상관은 없었다. 작전 지역 안에선 아군 외에는 모두 적이니 찾는 족족 다 죽이면 만사 오케이다, 라는 것이 클론 대원들의 일반적인 사고방식이니까.
“어허, 이번에 꼬라박을 곳은 여기구나.”
작전 지도를 살펴보며 빈우는 심드렁하게 혀를 찼다. 언제 어디서든, 시간과 장소가 바뀌어도 빈우와 중대가 하는 일은 한결 같다. 선 그어 놓고 그 안에 있는 거 다 죽여. 심플 이즈 베스트라지만 작전 내용도 정보도 단순함을 넘어 빈약할 지경이다.
일반적인 부대라면 결코 이딴 식으로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 이런 빈약한 명령문을 받은 ‘보통’ 부대라면 내용을 좀 더 충실히 보완한 다음, 그걸 정성스레 섬유 문서로 출력해서 윗놈 뺨따귀를 날릴 거다. 아니면 아가리에 처박거나.
그러나 클론 부대에 내려오는 명령은 언제나 이런 모호하거나 단순한 것이었고 그다음 복잡한 세부 사항들은 중대원들이 메꿔야 할 일이었다. 왜냐하면, 클론 부대-울토르 중대는 그러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클론 중대원들은 전원이 중대원이며 분대장이고 소대장에다 중대장까지 될 수 있다. 모두 같은 교육을 받았기에 직책은 필요에 따라 정할 뿐, 모두가 동등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연방의 인간들이 누구나가 하원 의원으로서 의정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것처럼, 클론들은 모두가 최고 명령권자 권한으로 작전 회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빠르고 쾌적한 두뇌 통신으로.
즉 이렇게 클론들에게 대략적이고 한정적인 정보를 준 다음 스스로 작전을 짜고 해결책을 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실험 부대인 클론 중대를 만든 목적 중 하나였다.
‘자~ 작전 회의구나. 근데… 궤도 폭격? 이거 어느 놈 생각이야?’
클론들은 서로의 뇌와 두뇌 칩을 연결해 거대한 병렬 뇌를 만들어 두뇌 통신에 의한 작전 회의를 시작했다. 회의는 음성이나 영상이 필요 없이 중대원 전원의 사고가 동조되는 두뇌 통신 덕에 빠르게 진행된다.
효과적인 아이디어도 나오지만 방금 것처럼 별의별 허튼 생각도 나온다. 그러나 괴상한 아이디어라고 마냥 무시할 수도 없었다. 종종 작전 수립 단계에서의 평가와 실제 실행 단계에서의 평가가 확 뒤바뀌는 경우가 벌어졌기에 클론들은 모든 안건을 유심히 점검했다. 두뇌 통신이 아니면 시간 좀 걸렸을 작전 회의다.
인간들도 두뇌 통신으로 작전 회의를 할 수 있지만, 클론들처럼 이렇게 대규모로 할 수는 없다. 10명 정도의 분대 규모 두뇌 통신회의는 가능해도 중대 규모쯤 되면 사고에 혼선이 일어나 진행할 수 없다.
그러나 같은 모델, 같은 규격의 클론인 울토르 중대원들은 지금처럼 100명이 동시에 작전 회의가 가능하기에 모두 열심히 작전 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한 놈만 빼고.
‘뭐, 다른 형제들이라면 그냥 시키는 대로 하겠지만 난 좀 다르단 말이지.’
빈우는 형제들이 세부 작전 계획 수립을 위해 회의를 시작했을 때 혼자 연결을 끊고 개인적으로 이번 작전을 조사해 보았다.
이건 근래에 생긴 빈우의 악취미 같은 것이었다. 다른 형제들이 주어진 명령에 충실히 복종하고 실행하는 데 반해 빈우는 그 뒤에 숨겨진 목적 같은 것에 호기심을 느끼고 조사하는 것이다.
물론 전투 OS는 이런 호기심에 의한 돌발 사고방식을 막기는 하지만 강도 높게 제재하지는 않아서 빈우는 마음껏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엔 같이 가는 손님이 있었지.’
현재 빈우가 속한 클론 중대를 태운 강습함 솔리드 베타는 ‘마카로니 독립 소요 진압 전대’에 파견된 상태였다. 울토르 중대는 대개 단독으로 투입되지만, 가끔 이번처럼 다른 부대와 함께 투입되는 예도 있었다. 이럴 경우는 백이면 백, 서로 소 닭 보듯 행동한다. 왜냐하면, 같은 장소에 투입되어도 서로의 목적은 달랐기 때문에.
그러거나 말거나 빈우는 이 둘의 작전을 비교 조사하면서 클론들에게는 감춰진-딱히 감추진 않고 그냥 알려주지 않은-사실들을 추리하는 재미를 즐겼다. 그런데.
“이거 어째 뭐가 좀 수상하시다.”
이번에는 조사하자마자 뭐가 수상한 조짐이 느껴졌다.
>개척 행성 마카로니의 독립 소요 진압.
이게 전대 회선에 접속해서 알게 된 전대의 작전 목적이었다.
마카로니는 지난주 개척이 끝난 행성인데, 개척민들 사이에서 연방으로부터 독립하겠다는 무장 세력이 봉기했고 이를 진압하는 것이 이번 작전이란 것이다. 즉 찾아 조져야 할 적이 침공한 외계 세력이 아니라 개척민, 즉 민간인들이란 얘기다.
다른 대원들이라면 별문제가 없다고 하겠지만 빈우에게는 걸고넘어질 게 한두 군데가 아니다. 아니 멱살 잡고 멈춰야 할 정도다.
“이 부대로 진압? 지랄하네.”
전대의 규모를 살펴본 빈우는 헛웃음을 지었다.
어차피 이 클론 중대는 실험적인 목적으로 만든 독립 중대라 필요에 따라 이리저리 불려 다니기 때문에, 자고 일어나면 듣지도 보지도 못한 곳에서 별 해괴한 작전을 주입 받고 곧바로 전투에 투입되는 게 일상이다. 싸워야 할 적이 누구든, 같이 싸워야 할 아군이 누구든 신경 쓸 필요 없었다.
한데 이번에는 소속된 전대가 굉장히 신경 쓰인다.
독립 소요라면 개척민들에 의한 무력 행위, 폭동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압 부대는 이를 평화적으로든 폭력적으로든 제압해서 해산시켜야 할 텐데, 전대의 함선 구성이 무려 호위 항모 한 척에 전함 한 척, 순양함 두 척, 구축함 일곱 척이다. 2선급 구형함들로 구성한 전대라지만 규모만큼은 전단 급이다.
빈우와 클론 중대는 지금까지 이보다 더한 대부대에도 숱하게 파견된 적이 있다. 문제는 이번 ‘진압 전대’가 가진 화력은 개척 행성의 독립 소요 따위에 투입되기에는 엄청난 과잉 화력이란 점이다.
까놓고 말해서 전함 한 척이 궤도 폭격만 갈겨도 마카로니 시는 테라포밍 이전으로 돌아가고 전대가 줄지어 행성을 한 바퀴 돌면 반짝반짝 빛나는 방사선 유리구슬이 탄생한다.
빈우는 일단 이런 점만 살펴봐도 이번 작전 마카로니 진압 작전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는 애를 달래랬더니 대가리 깰 도끼를 주네? 혹시 행성 궤도에 함대 처박아 놓고 알아서 기게 만들려고? 아니, 잠깐 문제는 이게 아니지 않나? 더 중요한 문제가 있는….’
그때 두뇌 칩에 있던 전투 OS가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빈우는 호기심을 가지고 작전 목적을 파헤치는 것이 싫증 나기 시작했다. 복잡한 생각 할 필요 없이 단순하게 임무 수행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모순점을 찾고 의문스러운 것을 밝히는 일이 혐오스럽다.
상부에 충성하고 명령에 복종하면 금방 행복해질 것 같다.
평범한 클론이라면 여기에서 납득하고 돌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빈우는 달랐다. 그는 자신의 전투 OS가 제한하고 있는 사고 권한을 조금 더 확장하려 했다.
‘임무 수행… 충성… 복종. 다 중요한 것이다. 명령에는 의문을 가지지 않고 실행해야 한다. 하지만 이 모순점을 밝히지 않는다면 자칫 인간을 적대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그 경우 중대의 임무 수행에는 중대한 차질이 온다.’
그러자 빈우의 머릿속에는 새로운 의무감이 솟아나 나태함과 불쾌감을 이기고 생각을 계속할 수 있었다.
문제는 부대의 규모가 아니었다. 부대의 성질이 더 큰 문제다.
무력시위를 해서 기를 죽이려는 거라면 몰라도 개척민들을 진압하려면 일단 지상 병력이 행성에 투입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상 병력이랍시고 온 것이 울토르 중대의 강습함 달랑 한 척에다 병력은 장갑 보병 일개 중대뿐이고 받은 명령은 아까 본 대로 수색 섬멸이다.
이게 함대의 화력이나 규모보다 더 큰 문제다.
바로 직접 강하할 진압 부대가 클론이란 것과 작전 목적이 수색 섬멸인 것. 그리고 그 대상이 민간인이 될 확률이 높다는 점.
이건 빈우와 클론 중대원들에게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울토르 중대의 클론들은 인간에게 어떠한 위해도 가할 수 없게끔 전투 OS의 제어를 받기 때문이다.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고 명령자가 최고위급 명령을 내려도 실행되지 않는다. 즉 인간을 해칠 수 없는 군인이란 얘기다.
그 제어의 강도는 방금 빈우가 겪었던 OS의 사고 유도와는 차원이 다르다. 아예 신체 행동을 강제로 구속해 버린다.
해서 살인을 할 수 없는 빈우의 부대는 주로 인류 거주권 밖에서 외계 종족을 상대로 싸워 왔다. 원래 그런 목적으로 만들었으니까.
간혹 이번처럼 인간의 거주 지역에 투입된 적도 있었지만, 그때는 작전 지역에 인간이 없었기 때문에 마음 놓고 싸울 수 있었다. 물론 마음을 놓는다는 것은 정신 상태가 해이해진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 놓고 대량 파괴 병기를 날린다는 뜻이다.
이런 클론 부대를 인간을 상대해야 하는 개척 행성의 진압 작전에 투입하다니. 도대체 상부에선 뭘 생각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개척민이 공격한다면 클론 부대는 아무것도 못 하고 멍하니 처맞기만 할 거다. 평화적으로 체포하는 것조차 할 수 없다. 위해를 가할 수 없게 프로그래밍 되어 있으니 신변을 구속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이다.
“응? 나 지금 뭐로 고민하는 거야? 이게 아냐, 이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잖아.”
아직도 남은 위화감을 느낀 빈우는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잠시 생각을 되짚어 보았다. 클론용 전투 OS는 계속해서 사고의 확장을 막았지만, 빈우는 그때마다 새로운 방식으로 우회해 가며 모순된 점을 찾아냈다.
작전 지역은 개척 행성 마카로니.
진압 함대의 작전 목적은 행성의 독립 소요 진압.
클론 중대의 작전 목적은 시가지의 수색 섬멸. 덧붙여 적에 대한 정보 없음.
이게 모순된다.
마카로니 소요 진압 함대에 따라온 울토르 중대의 목적은 진압이 아니었다. 수색 섬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