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2화 (2/301)

2화

처음 빈우는 중대의 작전 목적만 보고 이번 임무는 개척 행성 시가지 내에서의 수색 섬멸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적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당연히 외계 세력일 것이다. 때문에, 적에 대한 정보가 없을 때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렇다면 전대의 목적도 외계 세력과의 전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울토르 중대와 동행하는 부대가 각자 따로 논다고 해도 그건 말 그대로 서로 간에 방해 없이 자기 할 일만 하는 것이었지 이렇게 서로 어긋나는 목적을 가지진 않았다.

“아니 잠깐만. 그렇다면 진짜로 시위하는 개척민들을 대상으로 수색 섬멸이라고? 이것들이 미쳤나? 일 제대로 안 해?”

이건 클론들이 인간을 해칠 수 있다, 없다의 문제가 아니다. 반란군도 아니고 농성하는 민간인들을 상대로 수색 섬멸이라니 애초에 정상적인 작전이 아니다.

“얘들아, 좆된 거 같다.”

빈우는 자신이 알아낸 사실과 의문점을 중대 회선에 올리며 투덜거렸다.

장갑 보병이 투입되는 상황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좆된 상황. 나머지 하나는 곧 좆될 상황.

때문에, 이제까지 아무것도 모른 상태로 냅다 전투에 꼬라박았어도, 잠에서 깨자마자 작전 같은 거 없이 바로 장갑복 입고 폭염 속으로 개돌했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뭐가 뭔지는 몰라도 대충 장갑 보병이 필요한 상황이란 것은 알 수 있었기에, 장갑 보병이 해야 할 일을 충실히 하면 문제는 잘 해결되었다.

좆같은 놈들은 보이는 족족 쳐 죽여 버리기. 그러면 세계에 평화가 찾아온다.

그러나 이런 신선한 좆같은 경우는 처음이다.

이제까지 작전 내용이 희미한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이렇게 수상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빈우는 이번 작전이 절대 순탄하지 않게 흘러갈 것이리라 예감했다.

“아니, 아니, 혹시 외계 종족이 침입한 행성에서 시위하는 개척민들 사이를 누비며 놈들만 찾아 족치란 얘기냐?”

해괴한 상상이긴 해도 그런 임무를 하는 부대가 있긴 하다. 그러나 울토르 중대는 아니다. 빈우와 형제들은 그냥 단순무식하게 부수는 게 특기지 저런 섬세한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도 빈우는 혹시나 해서 중대가 아닌 진압 전대 회선으로 마카로니의 지상 병력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았다. 그쪽도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은 없지만 적어도 마카로니 시에는 외계인의 침공은 없고, 자치정부의 개척민들이 봉기하고 있으며 연방 시민들은 모두 퇴거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웃기는 것은 그쪽도 지상에 대한 정보가 미비한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자기들 임무는 행성 궤도에만 국한되어있고 지상 임무는 파견된 울토르 중대가 할 테니 일절 간섭하지 말라고 명령받은 터라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이쪽의 실제 임무가 뭔지 알았다면 기겁했겠지.

‘적이 누군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 개척 행성으로 강하해서 수색 섬멸 하랍신다….’

비록 울토르 중대가 맡은 임무는 단순하고 내려오는 명령은 모호한 경우가 많았다. 바로 클론들의 작전 수행 능력 향상과 다양한 전투경험 수집을 위해서였다. 그래서 욕 나오는 명령을 수령 해서 투입되는 게 일상이었지만 이렇게 ‘위험한’ 경우는 없었다.

물론 장갑 보병들에게 ‘위험’이란 단어는 별 인연이 없지만 지금 중대원 발아래에서 마주칠 인간들과 위쪽에서 명령을 내린 인간들에겐 아차 하다간 바가지로 뒤집어쓸 단어다.

‘진압을 하든 섬멸을 하든 이제까지 해왔던 것처럼 현장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대처하라는 것 같던데, 인간에게 손도 발도 못 대는 우리한테 뭘 어쩌란 거야?’

빈우는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해 시나리오를 짜봤다.

‘외계 세력이 개척민을 선동하여 독립을 노린다?’

턱도 없다. 만약 그랬다면 그에 대한 정보가 진압 전대나 클론 중대에 전해졌을 것이다.

다음으로 납득갈 만한 예상은 클론들은 인간을 공격할 수 없으니, 안전하게 무인 병기나 적대적 시설물 같은 것만 파괴하란 거 같은데 이것도 문제다. 아무리 프로그램으로 인간을 해칠 수 없게 막아 놔도 개판 난장판인 전쟁터에서 눈먼 총알이나 파편까지는 막을 수 없으니, 난전이 벌어지면 인간이 다치는 경우가 반드시 생길 거다.

빈우는 그럴 때 형제들의 반응이 궁금하기도 했지만-대체 어떤 논리 폭탄이 터질까 궁금했다-그보다 더 상부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클론들을 개척지에 처박는 지가 더 궁금했다. 설마하니 정보 사령본부 직속의 비밀 실험 부대인 클론 중대가 착오로 여기로 오진 않았을 거고 필시 무슨 꿍꿍이가 있을 것이다.

‘설마 작전 지역 내에서 개척민들은 다 소개했나? 아니 있잖아? 연방 시민들은 전원 퇴거. 자치정부 출신 개척민들만이 남아있음. 숫자는… 여기도 뭐 제대로 된 정보를 안 주네.’

전대 회선을 통해 지상에 있는 민간인들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니, 개척민 중에서 연방 시민들은 모두 퇴거했고 자치정부 쪽 개척민들만 남아있다고 하는데 정작 중요한 숫자와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기야 연방 시민이 되었든 자치정부 개척민이 되었든 어느 쪽이나 클론들이 상대하기엔 껄끄러운 ‘인간’이지마는.

빈우는 복잡한 생각을 그만 접었다. 물론 자의가 아니라 전투 OS가 그럴 것을 끊임없이 고집했기 때문이다. 두뇌 칩 속에 박혀 클론들의 의지와 사고영역까지 간섭하는 프로그램이 싫긴 해도 어쩔 수 없다.

‘어, 그래 시키는 대로 하면 되지 뭘.’

그제야 빈우는 거북하고 껄끄러운 감정이 사라진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었다.

클론 중대원들은 그냥 주어진 명령만 묵묵히 수행하면 아무 문제 없었다. 지금까지 아무리 복잡한 상황이 닥쳐도 할 수 있는 것과 허락된 것만 한다면 잘 해결되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줄어든 빈우는 지친 머리를 식힐 겸 마카로니 4의 위성 영상을 띄워 보았다.

행성은 검붉은 암석 지대가 대부분이었으나, 북반구 일부에 푸른 수원과 녹지가 생성되어 있고 그 위에 다시 건물들이 지어져 시가지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도시 가운데에서 궤도 엘리베이터가 대기권을 뚫고 행성 중력권 밖으로 올라와 진압 함대 뒤까지 쭉 뻗어 나가 있었다.

궤도 엘리베이터의 끝에는 다른 항성계로 통하는 점프 게이트가 있겠지만 현재 마카로니 4의 점프 게이트는 닫힌 상태였다.

그걸 알게 되자 또 새록새록 역겨운 상상이 든다.

‘아주 독하게 나가는데?’

보통 이런 식의 작전이라면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하는 게 상식이라, 점프 게이트에 함대가 주둔해서 불필요한 출입을 막는다. 그러나 지금처럼 점프 게이트를 아예 닫아버리면 통신조차 안된다. 즉 마카로니 4는 다른 인간 세상과는 완전히 단절된 상태인 것이다.

파면 팔수록 이번 작전의 수상함이 늘어만 간다.

마카로니 4 같은 따끈따끈한 개척 행성에서 독립 주장이 나오는 것은 드물지만 없는 일은 아니다. 다만 연방 주민들로만 이뤄진 개척단이라면 절대 일어나지 않고, 자치정부들이 개척 사업에 꼽사리 끼게 되면 적게나마 발생하는 사건이다.

자치정부는 과거 지구 제국이 붕괴한 이후 뿔뿔이 흩어져 살던 인류가 연방이라는 하나의 집합체로 합쳐질 때 통일을 거부하거나, 통일한 뒤에 떨어져 나간 세력들의 후손으로서 지금에 와서는 이름만 연방에 소속되어 있을 뿐 거의 독립 국가 취급을 받는다.

이들 각 자치정부는 연방과 대개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만, 적대적인 곳도 적지 않다. 그렇다고 그것이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자치정부를 끌어모아 합친다 해도 기술력, 국력 모든 면에서 연방과 비교조차 안 되기 때문에.

연방이 개척하려는 행성은 당연히 연방 세력권 외곽에 있고 이런 곳은 대개 자치정부에서 가까운 곳이다. 그래서 연방이 개척을 시작하면 종종 자치정부 측에서 같이 일하자고 러브콜을 보낸다. 이때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연방은 자치정부의 협력을 받아들여 개척작업을 진행한다. 물론 개척 행성은 연방의 영토가 될 것을 명시하고서.

기술력이 떨어지는 자치정부는 협력한다 해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굳이 거절할 이유도 없다. 개척 공사가 끝나면 연방이 얻는 것은 새로운 행성이고 자치정부가 얻는 것은 임금과 남은 자재다.

대부분은 이렇게 서로 웃으며 윈윈으로 끝나지만, 이번 같은 경우도 간혹 나온다. 자치정부 쪽에서 무단으로 행성에 이주해와서 소유권을 주장하거나 개척민들을 구슬려 자치정부 쪽으로 편입시키려는 시도가 그런 것들인데, 이때는 대기하고 있던 연방 법무팀이 출동하여 영혼까지 털어버린다.

우선 계약 위반에 대한 위약금부터 청구하고 연방 측이 투자한 자재와 노동력을 수치화하여 대금으로 지급할 것을 요구한다. 수틀리면 개척 행성에 설치한 점프 게이트마저 철수시키는데 여기까지 오면 어지간한 자치정부들은 꼬리를 말고 물러나게 된다. 원래는 이 정도 선에서 말로 해서 끝이 나야 정상이다.

‘뭐 결국 교섭 쫑나서 이 지랄 하는 거네.’

전쟁이란 폭력적인 방향으로 연장된 정치다. 고상하게 말하면 혀로 핥아 풀지 못하는 매듭을 이빨로 물어서 뜯는 것이고 쉽게 말하면 말로 해서 안 되니까 주먹이 나간다는 거다.

그렇다고 연방 정부가 호전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류는 다른 우주 종족 중에서 상당히 평화적인 축에 속하며 인류의 연방 정부도 당연히 평화적이고 유화적인 정책을 편다. 어떤 상황에서도 무력충돌은 최대한 피하고 대화를 시도하며 화합을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군사조직인 연방군이 호전적이냐면 그것도 아니다. 자치정부의 방위군이 목줄 풀린 개라면 연방군은 겨울잠 자는 곰이다. 자고 있으면 아무런 문제 없다, 자고만 있으면.

그러나 우주는 넓고 병신은 많은 법. 곰과 싸우고 싶어 발악하는 놈들이 꼭 있다. 심지어 곰이 일어나 제대로 깽판 치는 것을 똑똑히 보고도 정신을 못 차리는 미친놈들도 있다. 같이 살 수 없으면 이 넓은 우주에서 그냥 남남으로 살면 좋으련만 기를 쓰고 시비를 거는 외계 종족들이.

이쯤 되면 평화적인 연방 정부도 선전포고를 하고-드디어 혀로 핥고 빨다 지쳐 버려서-군대가 출동해서 제대로 갈아버린다. 같은 인류인 자치정부 같은 경우는 최대한 인명피해를 줄이면서 외 우주 행동이 불가능할 정도로 박살을 낸 다음 모성에 처박아 버리는 선에서 끝나지만, 외계 종족의 경우에는 대량 학살은 기본 옵션이고 풀 옵션은 모성 파괴에 서비스로 멸종까지 간다.

목타하라고 불리던 곤충 종족은 멸종당해 모성은 채굴 행성이 되었고 위은쓸납학 이라 불러 달라던 하마 새끼들은 모성과 식민행성 모두가 박살 나 소행성대가 되어 버렸다.

쓸모없는 행성이라면 궤도 폭격으로 방사선 쑥과 대나무를 심지만 가치 있는 행성이면 좀 수고를 들여서라도 쓴 물 단물 다 빨아 먹는다. 그리고 수고를 들일 때 쓰는 수단 중 하나가 빈우 같은 장갑 보병들이다.

‘어, 회의가 끝났나?’

마침 작전 회의가 끝나고 빈우도 두뇌 통신 회선에 접속해서 세부 내용을 공유했다. 이때 몇몇은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빈우에게 핀잔 섞인 감정을 비쳤지만 다른 몇몇은 오히려 이해한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회의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멤버의 간접적이며 객관적인 시선이 필요하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미안, 너희들이 뺑이 칠 동안 난 그냥 땡땡이쳤다.’

빈우는 잠깐 공유를 끊고 혼잣말, 혼자 생각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미안한 감정조차 품어서는 안 된다. 그래선 형제들이 눈치챌 테니 그냥 철판 깔고 쌩까는 거다.

클론들의 회의 내용을 보니 빈우가 알아채고 골머리 썩은 것들을 형제들도 겪은 모양이다. 그러나 누가 클론 아니랄까 봐 결론도 똑같은 거로 냈다.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하고 할 수 없는 것은 안 한다.

즉 보이는 적은 모두 제거하지만, 인명 수색 모드를 켜서 인간이 있으면 최대한 거리를 벌이며 전투를 회피한다는 것이다. 클론이라는 입장 상 이것이 최선일 거다.

모든 준비가 다 끝났지만, 작전 시작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다. 빈우는 수면기 속에서 영양을 공급받았으나 갑자기 입이 심심했다.

“춥고 배고프고. 도로 잘까 그냥.”

빈우는 턱도 없는 헛소리를 구시렁거리며 수면기에 달린 개인 사물함을 뒤적였다.

이유는 모르지만 뭔가 먹을 게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예를 들자면 치킨 파이나 초코 쿠키 같은 것. 엄연히 말하자면 ‘닭고기 맛 탄수화물 바’와 ‘초코 향 단백질 칩’이지만.

그러나 사물함을 뒤지던 빈우의 손이 멈칫했다.

“없어? 어디 간 거야? 내 치킨 파이! 내 초코 쿠키!”

사물함 속에는 어떤 먹을거리도 없었다. 하다못해 혼합 에너지 바도 없다. 장갑복을 입은 채로 물건을 만지다가 부수거나 못 느끼는 일이 있다지만 그거는 초짜들 얘기고 빈우 같은 베테랑들은 장갑의 압력 센서를 자기 손처럼 느낀다. 그런데 지금 손에 만져지는 건 하늘하늘한 천 조각이다.

‘뭐지 이거? 이런 게 사물함에….’

뭔가 싶어 꺼내 보니까 팬티다. 그것도 군용 남성 팬티가 아니라 검정 레이스가 화려한 여성 팬티다. 그리고 그 팬티에는 기능성 마커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거 믿지 마라.

빈우는 또다시 중대원 간의 회선을 닫고 잠시 혼자만의 고독한 시간을 가졌다.

‘어떤 미친놈이 이랬을까? 수면실은 관리용 로봇이나 경비 교대하는 대원들만 출입하는데 설마 로봇들이 이랬을 리는 없고 설마 중대원 중에서 나 같은 또라이가 또 있는 걸까?’

빈우는 이리저리 둘러 봤지만 모두 같은 장갑복을 입은 클론 형제들이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헬멧에 해골 모양 도색을 한 빈우만이 개중 다른 모습이다.

빈우는 마커를 쓴 작성자를 조회해 봤다. 기능성 마커는 실제로 뭘 쓰는 건 아니고 정보를 담은 잉크를 뿌리거나 바르는 건데 이 팬티에 쓰인 마커는 빈우와 중대원들이 입고 있는 장갑복의 것이다. 그러니 범인은 중대원 중에 하나다.

마커 ID 조회 결과, 해답은 가장 이상하면서도 가장 이해할만한 것이 나왔다.

“내가 썼네?”

마커의 ID는 빈우의 장갑복 ID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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