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4화 (4/301)

4화

-찰리하나팔. 복귀한다.

찰리하나팔은 빈우의 코드로 c열 18번째 클론이란 뜻이다. 중대 회선에 재접속하자 현재 전투정보가 갱신된다.

>목표 로미오골프 알파, 브라보, 찰리 제압 완료.

빈우는 다른 동료들과 합류하려 했으나 이미 1소대는 자기 할 일을 마무리 지어버렸다. 하긴 건물 옥상에 엉망으로 건설한 대공 포대에 장갑 보병들이 강하했으니 상황은 순식간에 끝났겠지.

-찰리하나팔. 2분대 레이저건 사수 브라보둘넷이 전투 불능상태다. 가장 가까운 네가 구조를 하고 레이저건 사수를 맡아라. 이후 터미널에서 1소대와 합류하라.

1소대는 대공 포대를 쓸어버린 다음 건물 옥상에서 제트팩을 쓰면서 뛰어내려 최종 목표인 궤도 엘리베이터 터미널로 강하했고 빈우는 재설정된 목표지점으로 향했다.

원래 부상당한 동료에겐 두 명 이상이 달라붙는데 빈우 혼자만 보내는 것을 보면, 다른 중대원들이 봐도 자치정부의 무인 방어 시스템은 어지간히도 볼일 없는 것 같다.

브라보둘넷, B열 24번째 클론은 빈우와 같은 분대였지만 다른 포드를 타고 강하했는데, 녀석도 포드에서 뛰어나올 때 뒤에서 공격을 받고 그대로 실신, 추락하여 빈우가 있는 곳 바로 옆 건물에 틀어박혔다고 한다. 하긴 낙하궤도가 비슷했으니 추락지점도 비슷하겠지.

>1소대 2분대 찰리하나팔. 전투 복귀.

>1소대 2분대 브라보둘넷. 전투 불능.

현재 중대 상황을 보니 전투 손실은 전부 1소대 2분대에서 일어났다. 자치정부 상대로 둘이나 피해를 보다니 예상과는 달리 놈들도 제법 하는 듯싶다.

‘근데 레일건 포대는 어떻게 한 거지?’

동료들이 별문제 없이 대공 포대를 제압한 걸 보면 거기도 무인 시스템인 듯싶다. 하긴 무인 병기 상대로 클론을 투입한다는 생각은 꽤 인간적이긴 하다.

“브라보둘넷!”

-브라보둘넷!

쇼핑몰로 보이는 목표 건물에 도착한 빈우는 안으로 들어가며 음성과 두뇌 통신으로 동료를 불러보았지만 역시나 대답은 없었다. 전투 상황으로 봐서 브라보둘넷의 손상 부위는 등 부분과 장갑복 뒤에 장착한 레이저건 부위였고 현재 3층에서 중상을 입은 채 유도 가사상태에 빠져 있다.

일단 센서로 안을 대강 조사해 봤을 때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빈우는 엘리베이터 문을 박차고 들어간 뒤 제트팩으로 3층까지 상승했고 다시 엘리베이터 문을 부수며 나와 3층으로 들어갔다.

브라보둘넷은 10여 미터 앞쪽에 앞으로 넘어져 있었다. 사주 경계하며 조심히 다가가는 빈우의 눈에 동료의 레이저 건이 눈에 띄었다. 레이저 건은 접혀서 등에 얹혀있었고 방열판은 고열에 녹은 것처럼 휘어져 있었다.

‘녹았다고? 저게?’

어지간한 고열을 버티도록 만든 방열판이다. 휘어지고 부서지는 꼴은 종종 봤어도 저 정도로 엉망진창 녹이려면 플라스마 병기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일단 급조 대공포는 레일건이었고 스콜피온 전차는 전열화학포를 쓴다. 그리고 자치정부 기술력으론 플라즈마 병기를 개발할 수 없다.

-전 중대. 경고.

빈우는 자신이 알아챈 사실을 중대의 두뇌 통신 회선으로 공유하며 경고를 날리고 자신의 총방패를 복구했다. 방패 프레임 안에 발포수지가 차오르고 굳어서 스티로폼 같은 장갑이 다시 생성되었다. 이 발포 장갑 방패는 물리적 충격에 대한 방어력은 그냥저냥이지만, 레이저나 플라즈마 병기에 대해서는 탁월한 내열 능력을 지닌다.

빈우는 방패를 재생시킴과 동시에 어깨의 유탄발사기에 소이탄을 장전하고 사방으로 발사했다.

폭발음과 함께 3층 내부가 화염으로 불타오르자 일렁이는 불꽃 사이로 ‘적’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돌고래와 중세시대 갑옷을 합친 듯한 유선형 장갑복, 연방 코드명 스팸.

그것을 입은 인간형 외계인 셋.

불길한 예감이 적중한 빈우는 중대 회선에 쌍욕을 박았다.

“새끼들아! 조까튼 우주 엘프 떴다~!”

우주 엘프라고 불린 적들은 바로 샤다이.

인류 연방의 주적이다.

인간과 비슷하지만 푸른 피부에 길고 뾰족한 귀를 가져, 농담조로 우주 엘프라 불리는 종족. 이 드넓은 우주에서 인류 연방과 맞다이 깔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종족. 길쭉한 귀가 무색하게 대화는 귓등으로도 안 듣고 냅다 싸움 거는 종족. 워프 기술은 인류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나고 다른 과학 기술도 인류를 상당히 앞서지만 단 하나, 전투 기술만이 그걸 다 까먹을 정도로 젬병이어서 언제나 연방에게 밀리는 종족.

이 호구 같은 새끼들 세 놈이 빈우와 빈사의 형제를 가운데에 놓고 11시, 1시, 5시 방향으로 포위 매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온몸에 불꽃을 뒤집어쓰고 신나게 춤추고 있는 시점에서 매복은 물 건너갔겠지.

“이래서 수색 섬멸 노래를 불렀구나.“

빈우는 타겟팅된 적들을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

>샤다이와 조우. 스팸 셋으로 추정.

>경계 철저히 해. 센서 감도 최대로.

>내열 장갑 여분 챙겨.

>레이저 건은 저출력 광역조사로 해서 수상한 곳은 다 훑어.

상대가 상대인 만큼 중대 전투정보가 빠른 속도로 갱신된다. 아직 샤다이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곳뿐이지만, 파죽지세로 터미널로 몰아치던 중대는 잠시 멈춰서 상황을 파악하며 전열을 가다듬기로 했다.

샤다이의 위장 능력은 연방의 탐색 능력보다 위에 있기에 놈들의 매복에 걸리면 피해가 심각해진다.

-찰리하나팔. 2소대에서 3분대가 지원 나간다. 버텨라.

중대 회선으로 지원이 온다는 얘기가 나왔지만, 입맛이 쓰다. 만일 처음에 브라보둘넷을 구하러 왔을 때부터 메뉴얼 대로 두 명이 왔었더라면 적 세 명을 상대로 괜찮은 싸움을 했을 거다. 뒤늦게 분대 하나가 달려온다 한들 당장은 별 위로가 되진 않는다.

그때 샤다이들 중 11시 방향에 있던 놈이 불길을 이겨내고 창처럼 생긴 무기로 빈우를 겨눴다. 저거다. 시즐러. 동료의 뒤통수를 친 무기.

“지원 오기 전에 끝날 것 같다.”

1시 놈은 아직 땅바닥을 구르는 중이지만 5시 놈은 몸을 추스르고 있었다. 재수 없으면 앞뒤로 협공당할 상황이다.

결정을 내린 빈우는 11시 쪽으로 방패를 세우며 제트팩을 써서 돌진했다. 거의 동시에 샤다이가 플라스마를 쐈다. 고온의 플라스마에 맞은 방패의 발포 장갑이 열 폭발을 일으키며 증발한다. 한 번의 공격은 막았지만, 방패는 끝장났다. 두 번째 공격을 당하면 끝이다.

몰아치는 열 폭풍과 파편에 휩싸인 빈우는 코일건을 뒤로 돌려 돌진 반대 방향인 5시 방향으로 연사했다. 코일건의 조준경에도 시야가 연결되어 있으니 조준에는 전혀 무리가 없다.

간신히 무기를 잡고 일어나려던 5시의 놈에게 코일건 탄환이 쏟아지자 방어막이 반응해 푸른색 섬광이 번득인다. 그러나 쏟아지는 니켈강 탄환의 소나기는 방어막의 한계를 넘어 장갑에 쇄도해 착용자를 바닥으로 도로 넘어뜨렸다. 그와 동시에 빈우도 돌진하던 놈에게 부딪혀 그대로 벽으로 처박아 넣었다.

“헨칼라 유에네스!”

샤다이 새끼가 장갑복의 투명한 안면 보호대 너머로 욕지거리를 한다. 그러든지 말든지 빈우는 프레임만 남은 방패로 계속해서 놈을 밀어붙이며, 우그러진 방패 프레임 사이로 코일건을 밀어 넣고 연사했다.

샤다이는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발악했지만 장갑복의 출력은 어벤져 쪽이 우위다.

코일건을 막으려는 방어막 때문에 샤다이의 가슴 부분에서 푸른 섬광이 번득였다. 이어서 탄환에 맞은 장갑에서 노란색 불꽃이 튀더니, 마지막으로 스팸의 안면 보호대 안쪽으로 착용자의 검푸른 피와 살 조각들이 비산하여 들러붙는다.

‘남은 하나는?’

그 사이 1시의 놈이 빈우의 바로 뒤까지 다가와 있었다. 빈우는 몸을 돌려 대응하려고 했지만 조금 늦었다.

“다로! 유에네스!“

그놈이 고함을 지르며 대검을 내려쳤다. 고온의 플라즈마 칼날들이 일렁이는 길이 2미터의 대검이다. 놈은 빈우와 동료가 겹쳐있자 사격 무기를 쏘지 못하고 가까이 다가와 검을 휘두른 것이다.

플라즈마 칼날에 베인 총신은 대번에 달아올라 녹아 물방울 튀기듯 흩날리며 잘려나갔다. 오른쪽 어깨의 장갑은 조금 더 버텼지만 마찬가지였다. 외부 적층 장갑은 순식간에 녹아내렸고 내부 젤도 거의 증발해 버렸다. 조금만 더 있으면 오른쪽 어깨부터 구워질 기세다.

빈우는 머릿속으로 울리는 피해 경보를 느끼며 본능적으로 왼손 장저로 놈의 턱을 후려쳤다. 아니 치려고 했다. 빈우의 반응과 현재 상황을 종합한 전투 OS가 그보다 효율적인 공격을 위해 방패 프레임으로 찍는 것을 우선시했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착용자가 장갑복의 권유에 따라가거나 장갑복이 착용자의 의지에 따라가는 두 가지 경우가 있는데, 빈우의 경우에는 엇나갔다.

“크읏!”

손목이 아래로 꺾여가며 샤다이를 처갈긴 빈우는 주춤하는 놈을 발로 차 밀어냈다. 연방의 장갑 보병에 비해 엄청나게 가벼운 샤다이 장갑 보병 스팸은 뒤로 굴렀다가 다시 일어나 자세를 잡았다.

“그래, 내가 바로 유에네스다! 이 새끼야!”

빈우는 잘린 코일건을 버리고 허리 뒤쪽에서 플라스마 도끼를 꺼냈다. 분출하는 플라스마를 자기장으로 잡아 칼날로 만든 이 도끼는 원래 대원들의 기본 무장은 아니다. 본래 공병들이나 쓰는 작업 도구이나 잘만 하면 연방 주력 전차의 전면 장갑마저도 썰어낼 수 있다.

물론 서로가 인내심을 가지고 참아 주기만 하면.

도끼를 장갑복 동력에 연결하고 전원을 켜자 머리 부분에서 플라즈마가 뿜어져 나와 도끼날을 형성했다. 그러나 앞에 서 있는 샤다이의 플라스마 대검에 비하면 빈약하기 짝이 없다.

샤다이의 주력 무장은 플라스마 병기이며 그 기술력은 연방의 것을 월등히 앞선다. 또한, 장갑복의 방어도 주로 플라즈마 같은 열병기 방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때문에, 아까 코일건 탄환을 많이 막지 못한 방어막도 플라즈마 병기에 대해서는 우수한 방어력을 가진다.

그 말인즉슨 빈우의 공병용 플라스마 도끼는 놈들 상대로는 이빨도 안 먹힌다는 얘기이고 덧붙이자면 아까 이놈들이 소이탄 맞고 생쇼를 한 것은 그냥 불꽃에 놀라서 지랄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빈우가 이 도끼를 들고 설치는 이유는 현재 이 도끼가 샤다이의 플라스마 대검에 대한 유효하고도 유일한 방어책이기 때문이다.

샤다이가 엉성한 폼으로 베어오는 플라스마 소드를 빈우는 도끼로 맞받아쳤다. 그러자 도끼 머리에 형성된 자장이 샤다이의 플라즈마 칼날을 잡아 밀어냈다. 그때 아주 잠깐, 빈틈이-플라스마가 없는 샤다이의 검신이-일부 드러났다.

빈우는 왼손으로 빈 검신을 붙잡아 잡아채는 동시에 도끼를 버린 오른손으로 원래 장갑 보병의 근접무기인 초음파 나이프를 꺼내 놈의 목을 찔렀다. 저속저온의 초음파 나이프에 방어막이 반응하지 않아 곧바로 장갑을 찌를 수 있었다. 샤다이의 장갑복은 칼날을 붙잡고 손상 부위를 복구하려 했지만 빈우는 나이프를 더욱 세게 찔러 넣었다.

“카학! 커어억!“

놈의 겁에 질린 얼굴이 투명한 안면 보호대 너머로 보인다. 샤다이는 살기 위해 적을 밀어내려고 발버둥 쳤지만 빈우는 제트팩을 작동시켜 위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천장에 충돌하며 그 반동으로 칼날을 놈의 머릿속 깊숙이 박아 넣었다. 안면 보호대 안이 검푸른 피로 격렬하게 차오르고 놈의 몸이 버둥거리다 멈췄다.

다시 바닥에 착지했을 때 빈우는 놈의 시체를 방패 마냥 앞으로 내세우며 쓰러진 동료-브라보둘넷에게 다가가 코일건을 주웠다. 다행히 총에는 이상이 없었다. 총과 장갑복의 연결은 순식간에 끝나자 다시 일어나려고 허둥대는 5시의 샤다이에게 듬뿍 쏴주었다. 푸른 피를 흩뿌리며 널브러진 그놈까지 확실히 죽은 것을 확인하고 빈우는 볼일 없어진 ‘방패’를 버렸다.

빈우는 주변을 경계하면서 다시 브라보둘넷의 상태를 확인했다. 운 좋게 등의 방열판부터 맞은 덕분에 레이저포는 박살 났음에도 착용자는 죽지 않았다. 하지만 중상을 입고 가사상태에 빠진 터라 빨리 응급조치를 해야 했다.

-지원조 도착 시각은?

-2분 34초.

대답하는 형제의 목소리에도 약간의 다급함이 배어난다. 아무리 서두른다 해도 샤다이 매복을 경계하면서 와야 하기에 늦을 수밖에 없다.

-이놈들 3인 1조로 움직이긴 하던데….

중대 회선으로 봐도 이곳 외에는 샤다이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안 보인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어딘가 숨어있다가 빈우가 응급처치를 할 때 얼마든지 뒤통수를 칠 수 있다.

>경고. 경고. 브라보둘넷이 위험.

망설이는 사이 동료의 생체신호는 점차 약해져 가서 장갑복이 경고를 띄우기 시작한다. 장갑복의 자체 치료기능으로는 더는 사망을 막을 수 없다는 뜻이다.

“좋아. 한번 해보자.”

빈우는 즉시 수류탄을 꺼내 장전했다. 그리고 신관을 동작 감지로 설정해서 샤다이의 진입 루트로 예상되는 곳마다 하나씩 던져놨다. 만약 불청객들이 온다면 폭풍 같은 환영을 해주겠지. 별 피해는 못 주겠지만 시간 끌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다음 응급 키트를 꺼내 부상 당한 동료의 옆에 앉았다. 다른 대원들의 보호도 없이 전투지역 내에서 하는 응급처치는 아차 하면 동반 자살이다. 중대 회선으로 빈우의 행동에 대해 찬반이 오갔지만, 적극적으로 막는 이는 없었다.

빈우는 형제의 장갑복 회로에 접속해 수동으로 장갑복을 해제하려 했지만 녹아서 들러붙은 장갑들 때문에 잘 열리지 않았다. 결국, 초음파 나이프를 써서 붙은 부위를 자르며 장갑복을 억지로 비틀어 열었다. 이미 유동 상태로 바뀌어 있는 안쪽의 젤을 걷어내자 환부가 드러났다.

‘상태가 좀 심한데.’

드러난 브라보둘넷의 부상은 심각했다. 여기서 응급치료를 하고 원대 복귀를 한다 해도 재수 없으면 치료보다는 폐기하고 재생산할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치료를 멈출 수는 없었다.

먼저 브라보둘넷의 두뇌 칩에 유선으로 접속해서 관리자 모드로 들어가 환자의 신체 상태를 가사상태에서 수면 치료 상태로 바꿨다.

이어 브라보둘넷의 비어버린 응급치료 마이크로 머신 팩을 빈우 자신의 것으로 대신 채워 넣었다. 걸쭉한 겔 안에 든 마이크로 머신들이 금세 몸속으로 주사되어 손상된 체내 조직들을 응급 치료하기 시작했다.

외부는 빈우의 몫이다. 심한 화상으로 군데군데 피가 나는 상처 부위에 지혈 스프레이를 분사하자 피가 멈춘다. 다음 박살 난 견갑골 쪽에 주사기를 꽂고 접착제를 주입해 뼈들을 고정했다. 그리고 찢어진 상처에 스테이플러를 박아 꿰맨 뒤, 의료용 마이크로 머신이 든 캡슐을 추가로 신체 말단 곳곳에 박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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