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멈춰! 우린 인간을 죽여선 안 돼! 저들은 인간이야! 망할 두뇌 칩이 없지만 인간이라고!’
참다못한 빈우는 이렇게 외칠 뻔했다. 당장 민간인 학살을 막아야 한다. 어서 중대원들을 멈추고 현재 상황을 상부에 보고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만 했을 뿐 말하지는 않았다. 빈우의 훈련받은 이성과 본능이 입을 막고 여기서 돌출 행동을 해선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민간인 학살은 결코 클론들이 독단으로 벌인 행동이 아니다. 클론들은 주어진 명령과 프로그래밍 된 사고 루틴대로 행동하도록 만들어졌고, 그렇게 뇌 속을 주무를 권한은 오직 연방군 정보사령본부만이 가지고 있다.
즉, 이런 사달이 나도록 클론들의 전투 OS를 업그레이드하고 마카로니에 처박은 것이 사령부의 지시라면, 클론들에게 인간을 죽이도록, 민간인 학살을 하게 시킨 것은 바로 사령부란 얘기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서 섣불리 이상 행동-클론답지 않은 행동-을 했다가는 바로 들켜서 불량 판정받고 뇌가 포맷되거나 아니면 영영 수면 캡슐에 처박힐 수도 있다. 어설프게 움직이면 죽도 밥도 안되니까 조용히 증거를 모아야 한다.
‘근데 클론인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는 거지?’
빈우의 생각처럼 애초에 클론은 이런 생각을 할 필요 없고 할 수도 없다. 클론들은 주어진 명령을 실행하는 게 고작이고 복잡한 사고를 하는 것은 허락받은 범위 안에서만 가능하다.
빈우의 생각은 일반적인 클론들의 사고 영역을 넘어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거기에 반응한 두뇌 칩 속의 클론용 OS가 필사적으로 빈우의 사고에 목줄을 매려 한다. 의심할수록 불쾌감이 들고, 가이드 라인을 벗어나려 할 때마다 좌절감이 커진다.
‘치킨 파이, 초코칩 쿠키….’
이럴 때 뜨끈한 김이 나는 치킨 파이나 쫀득쫀득한 초코칩 쿠키라도 먹으면 머리가 좀 돌아갈 성싶다.
‘미친놈이 돌았나, 이 상황에서 지금 뭔 생각을 하는 거야?’
정신 저 밑바닥부터 올라오는 비정상적이고 본능적인 식욕을 이성으로 간신히 억눌러 정신을 수습하던 빈우에게 새로운 소식이 들려온다.
-주차장 내부에도 적 발견.
말을 꺼낸 대원은 아까 전차를 발견한 형제다. 우선 정찰용 드론을 주차장 안으로 보내려는지 녀석은 백팩에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정찰용 드론을 꺼내더니 아래쪽 하드 포인트에 소이탄을 장착했다.
만일 주차장 안에 적이 있다면 드론으로 소이탄을 터트리고 그다음 우리가 안으로 쳐들어가 다 쓸어버리자, 라는 대원들의 생각이 빈우에게도 공유되었다.
또다시 살인이 시작될 찰나 빈우가 급히 앞으로 나섰다.
“잠깐, 기다려. 안에 인간이 있으면 어쩌려고! 내가 선두에 서겠다. 아니 내가 혼자 들어간다.”
혼란스럽다. 저 안에 있는 적이라면 십중팔구 개척민이다. 작전 명령대로 라면 구역 내에 있는 적은 모두 찾아서 섬멸해야 한다. 허나 빈우는 개척민을 살리고 싶었다. 인간이 아닌데도.
-연방 시민들은 다 퇴거했잖아?
-일단 하나 까 넣고 들어가는 게 낫지 않아? 인간 있으면 안 쏘면 되는 거고.
-찰리하나팔의 의견은 타당하다. 행여 남아 있는 연방 시민이 인질일 경우도 고려해봐야한다.
-그러나 찰리하나팔, 혼자서는 위험하다.
빈우-찰리하나팔-의 의견은 그다지 호응을 받지 못했다.
“아니 안에는 기껏해야 개척민들이 있을 거다. 나 혼자서도 충분해. 그리고 그 드론은 너무 시끄러워. 잘못하면 적들에게 들킬 수 있다고. 대기하고 있다가 내가 신호하면 들어와.”
빈우는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주차장 안으로 들어갔다. 형제들이 뭐라고 툴툴댔지만 그다지 위험할 것도 없고 하니 빈우의 의견을 존중하자는 쪽으로 기울었다.
주차장 출입로를 따라 내려간 빈우는 모퉁이를 돌기 전에 내부를 탐색했다. 소총의 조준 카메라를 살짝 들이밀어 살펴보니 세라믹과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급조 진지와 무장한 개척민들이 있었다.
개척민. 빈우의 눈에 붉게 타겟팅 된 것들. 모두 인간이 아니며 적이다.
애초에 형제 말대로 소이탄 하나 까 넣으면 깔끔하게 끝날 일이다. 주입된 명령이 빈우를 압박한다.
> 작전 지역 내 모든 적 세력 말살.
개척민들은-적들은-먼저 나간 전차가 파괴당한 것을 알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기습하기에는 절호의 기회다. 행동할 때다.
빈우는 모퉁이를 나와 총을 겨눴다.
“연방군이다! 전투는 끝났다. 모두 항복해라.”
외부 스피커로 울려 퍼진 장갑 보병의 항복 권고에 적들은 순간 놀라서 잠깐 아무 반응도 하지 못했다.
“아악! 연방군이다!”
“우린 모두 죽을 거야! 죽을 거라고!”
“이 미친 살인마들!”
빈약한 무장을 한 적들-민간인들이-우왕좌왕 무기를 겨눴다. 적들이 공격한다. 적에게 공격받기 전에 공격해야 한다.
>작전 지역 내 모든 적 세력 말살.
전투 시에 언제나 도움이 되었던 전투 사고 보조 프로그램이었지만 지금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저항은 무의미하다. 항복해라.”
빈우는 재차 항복 권고를 했다. 대답 대신 개척민들의 가스압 발사식 총에서 화살 탄들이 쏘아져 날아왔다. 이딴 걸로는 장갑복에 흠집 하나 낼 수 없다. 맨몸으로 맞아도 큰 피해는 없다.
머릿속에 공격받고 있다는 경고가 울리지만 무시해도 된다. 안전하다. 모든 적 말살. 더 이상의 살상은 무의미하다.
그때 저쪽 구석에서 적 하나가 시즐러를 들고 나왔다. 잘못 본 게 아니다. 장갑복의 HUD에 분명히 시즐러라고 떠 있다. 장갑 보병에게 치명적인 샤다이의 플라스마 발사 병기다.
‘왜? 어째서 개척민이 샤다이의 무기를 들고 있지?’
의문에 대한 해답은 간단했다. 이미 목표 지정은 완료된 상황이다. 표적을 따라 총구를 그으며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된다. 굉음을 동반한 초음속 탄환이 모든 문제에 답을 내주었다. 위험한 적들이 안전한 쓰레기로 변했다.
빈우는 급히 방아쇠에서 손을 뗐지만, 눈앞의 붉은색 타겟들은 모두 사라졌다. 방아쇠울에 올린 집게손가락이 덜덜 떨린다.
“큭….”
굉음이 메아리치다 잦아든 주차장 안에는 망연자실한 장갑 보병 하나가 홀로 서 있을 뿐이다.
뭘 어떻게 해볼 틈 없이 반사적으로 일어난 일이다. 전투 상황에 적성대상이 고위험군 병기를 들고 왔으니 코가 간지러워서 재채기하듯 반사적으로 살인을 해버렸다.
그렇다 해도 이런 반사 행동이 저절로 일어난 것은 정상이 아니다. 장갑복의 모든 반사 행동은 전투 OS와 빈우의 결정을 거쳐서 이뤄진다. 그게 안 되었다는 것은 지금 빈우의 뇌 속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왜 이러지.’
빈우는 계속 혼란스러웠다. 인간을 처음 죽여본 것도 아닌데, 자치정부의 인간을 한두 번 죽여 본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밖의 형제들이 뭐라고 통신을 보내오지만 잘 들리지 않는다. 두뇌 통신도 오지만 어지럽기만 할 뿐이다.
그때 생체 반응 하나가 주차장 제일 안쪽 창고에서 잡혔다. 이번에도 인간이 아닌 보통 인간형 생체 반응이다. 피아식별에는 적으로 잡힌다.
정신을 가다듬은 빈우는 주변을 경계하며 창고 쪽으로 다가갔지만, 딱히 부비트랩이나 샤다이의 징후는 없었다.
-찰리하나팔! 조심해!
“괜찮아. 들어오지 마! 나 혼자 먼저 살펴보겠다.”
동료들이 안으로 들어오려는 것을 막은 빈우는 창고 쪽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허름한 자재 창고 안에서 소리가 들린다. 듣기 싫은 소리, 이런 곳에선 절대 듣고 싶지 않은 소리다.
불길한 예감에 빈우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창고 안에는 다섯 살은 됨직한 여자아이가 손으로 입을 막고 울고 있었다. 빨갛게 된 눈에선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작은 어깨는 울음과 공포에 떨리고 있었다.
빈우를 본 아이는 울음을 참던 손을 내리고 소리 질렀다.
“엄마아--! 엄마아아아!”
악을 쓰며 불러보지만 대답해 줄 사람은 없다. 아마 위에서 불타고 있거나 뒤에서 갈려졌겠지. 빈우에게 부모를 잃은 아이는 벌벌 떨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아아아, 무서워, 무서워어! 아빠아아---!”
구하려고 다가갔다가 적으로 인식되는 아이를 보며 빈우는 그 자리에서 멈췄다. 이 이상 다가가기가 무섭다.
현재 빈우의 상태로선 저 아이에게 더 가까이 가면 근접 신관이 작동하듯 반사적으로 목을 꺾어 버릴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지? 모든 적 세력 말살.
저 아이를 어떻게 하지? 모든 적 세력 말살.
나는 뭘 해야 하지? 모든 적 세력 말살.
빈우는 필사적인 정신력으로 OS의 강력한 권고를 억지로 무시한다. 타당한 이유를 가지고 우회하는 게 아니라면 이 ‘인공 본능’을 억누르긴 쉽지 않다.
혼란에 빠져 어찌할 바 모르는 빈우는 일단 문으로 돌아서려 했다.
바로 그때.
“로보트야! 가지 마!”
아이가 벌떡 일어나 울면서 외쳤다. 그리고 이쪽으로 달려와 옆을 지나쳐 갔다. 머릿속의 신관이 격발하기 직전, 빈우는 간신히 멈출 수 있었다.
“로보트야! 멈춰! 가지 말고 멈춰!”
아이는 나가려던 빈우의 앞을 가로 막고 섰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손을 들고 살인 병기에게 명령을 내렸다. 앞으로 든 손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고 반대 손은 옷을 꽉 쥐어 하얗게 되었다.
모르는 이가 본다면 장갑 보병은 인간형 로보트로 착각할 수도 있다. 아이는 처음 보는 로보트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로보트야! 도와줘!”
여자아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빈우에게 부탁했다. 이 아이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것은 눈앞의 로봇밖에 없었다.
‘울고 있는 아이에게 내가 뭘 할 수 있지? 인간에게 해를 끼칠 수는 없다. 저 아이는 인간이 아니다. 두뇌 칩이 없다. 연방의 인간이 아니다. 인간이 아니다.’
“로보트야아아! 안아줘어!”
아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빈우에게 안아달라고 팔을 올렸다.
그 모습에 무심코 손이 내려갔다. 그러나 안으려 내려간 손이 아이의 목을 조르려고 한다. 간발의 순간에 빈우는 황급히 손을 치웠다.
안을 수도 없고, 안아서도 안 된다.
원래 안아줘야 할 사람들을 죽인 놈이 무슨 자격으로 이 아이를 안아줄까.
하지만 어떻게든 이 아이는 구해야 한다. 이렇게 여기서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일단 안아서. 일단 안아서.
‘그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하지?’
혼란스러워 멈춰선 빈우 앞에서 아이의 올라간 팔이 바들바들 떨린다. 감긴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리고 열린 입에선 울음이 터져 나온다.
한 걸음 다가가오는 아이에게 빈우는 코일건을 겨눴다. 조준 카메라에 엉엉 우는 아이가 들어온다.
어서 쏴-아니다 내가 겨눈 게 아니다 조준하고 있는 것은 브라보둘아홉이다. 쏘지 마 안돼-찰리하나팔 괜찮아?-난 괜찮아 오지마-찰리하나팔의 상태가 이상하다-난 정상이야-적 발견-아냐 적이 아냐 쏘지 마-서둘러 찰리하나팔이 위험하다-쏘지 마 안돼 쏘지 마 쏘지 마
“쏘지마아아아!”
빈우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길 때 아이의 뒤에서 코일건 탄환이 날아왔다. 인명 살상용의 아음속 화살에 맞은 아이는 갈기갈기 찢어진 고기 조각이 되어 방안으로 흩뿌려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찰리하나팔! 괜찮아?
형제들이 빈우를 걱정하며 뛰어오고 있었다. 빈우의 혼란스러워하는 감정을 느끼고는 바로 따라 들어온 것이다.
“얘야? 꼬마야. 꼬마야?”
잦아드는 피 구름을 헤치고 빈우는 죽은 아이의 얼굴을 주워들었다. 눈물이 흐르던 얼굴은 피로 뒤덮여 있다. 바들바들 떨리던 손은 저쪽에서 펄떡대고 있다. 어떻게든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려 했지만 되려 얼굴이 으깨진다.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지만 둔탁한 장갑복 손에 머리카락이 뜯겨나간다.
이 아이가 왜 죽어야 하지? 어째서? 도대체 왜? 왜?
부모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사랑 속에서 자랄 아이다.
왜 인간도 아닌 것들에게 인간 취급을 못 받고 죽어야 하는 거지?’
격한 감정을 참지 못한 빈우는 주먹을 들어 아이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묵직한 충격과 함께 브라보둘아홉의 헬멧에 빈우의 펀치가 꽂혔다.
-찰리하나팔! 무슨 짓이야!
찰리하나팔 진정해 찰리하나팔이 브라보둘아홉을 공격했다 샤다이의 정신공격에 당했나 아니 이유는 모르지만 혼란상태다 발작이다 두뇌 칩에 접속해 강제로 서브로 돌려 불가능하다 찰리하나팔의 두뇌에 접속할 권한이 없다 사양이 다르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다. 어떤 생각이 나의 생각이고 어떤 생각이 형제들의 생각인가. 찰리하나팔을 구한 브라보둘아홉이 빈우에게 무방비로 두들겨 맞고 있다.
-브라보둘아홉, 괜찮나?
-난 괜찮아! 찰리하나팔부터 도와줘.
빈우에게 깔려 얻어맞던 형제가 빈우를 걱정한다. 빈우를 도와주려고 한다. 형제를 구하려고 한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브라보둘아홉은 순전히 빈우를 걱정해서 총을 쏜 것이다. 형제가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그 앞에 적이 있으니 당연히 구해야겠지. 빈우라도 그랬을 것이다.
“미안….”
빈우는 주먹질을 멈추고 일어섰다. 그리고 주먹 쥔 손을 펴 쓰러진 형제에게 내밀었다.
“미안. 내가 잠시 정상이 아니었던 것 같다.”
찰리하나팔이 브라보둘아홉의 손을 잡고 일으키며 사과했다. 두뇌가 연결된 형제들끼리 숨김은 없고 거짓말은 불가능하다. 꾸밈없는 걱정이 빈우의 머릿속으로 밀려들어 온다.
-추락하면서 어딜 다친 거 아닌가.
-샤다이와의 공격에서 뭔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어.
“그럴지도 모르지. 귀환하면 정밀 점검을 받아봐야겠다.”
반은 형제들에게, 반은 자신에게 한 빈우의 푸념에 형제들은 격려의 감정을 보내주었다.
‘이번엔 내가 발작하는 건가.’
전투 도중 클론들이 이성을 잃고 발작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전투 스트레스를 막기 위해 전투 OS와 보조 AI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발작은 드물게나마 일어난다.
아직 이유는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고 해결책도 없어서, 발작을 일으킨 클론은 모함에서 심리 검사 후 수면 상태로 대기하게 된다. 치료가 가능하다면 좋겠지만 자칫하면 폐기될지도 모른다.
빈우가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형제 중대원들이 주차장 내부를 샅샅이 청소했다.
남은 적들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주차장을 나선 일행은 다시 귀환 지점을 향해 걸었다. 시가지에선 아직도 잔당 소탕이 계속되고 있었다. 적들은, 개척민들은 압도적인 전력 차 앞에 쓸모없는 저항과 무의미한 투항을 하며 학살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빈우는 말릴 수 없었다. 여기서 또 튀었다간 다음 수면에서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삶을 선택한 것은 바로 빈우 본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