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내가 왜 군인이 되려고 했더라? 그래, 연방 시민으로서 의무를 다하기 위해 지원했지.’
인류 연방의 영역은 넓고 그만큼 적도 많다. 그래서 군인은 언제나 필요했다. 비록 참정권에 제한을 받게 되지만 군인이 되는 길은 연방의 구성원으로서 연방에 기여하는 방법의 하나다.
‘응? 내가 군을 지원했다고?’
클론으로서의 자아와 상충하는 기억에 빈우가 뭔가 이상함을 느낄 때 갑자기 전투정보가 갱신되었다.
>진압 본대가 샤다이에게 공격받고 있다.
행성 궤도에 대기하고 있던 본대에 샤다이가 점프해서 나타나 공격했다는 정보다.
‘그럼 그렇지, 언제 오나 했다.’
샤다이의 지상 병력이 있으니 높은 확률로 우주 병력도 있을 것인데, 그놈들이 지금에야 튀어나와 본대를 공격한 것이다. 타이밍 참 병신 같다.
장거리 센서를 가진 중대원이 고개를 들어 본대의 위치를 바라보자 그 시각정보가 중대원들에게 공유되었다.
샤다이의 함대는 아군 함대에서 600km 떨어진 지점에 공간 도약, 점프로 들어와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
공간 도약. 이게 샤다이의 진정한 무서움이다.
연방은 먼 거리를 이동하기 위한 공간 도약을 할 때 출발 지점과 도착 지점에 게이트가 있어야 점프할 수 있다. 자체적으로 점프가 가능한 순양함조차도 좌표 고정과 게이트 생성에 반나절은 걸린다.
그러나 샤다이는 게이트 따위 없이 자유자재로 점프를 하며 거기에 걸리는 시간도 겨우 1~2초에 불과하다. 다만 하고 난 후에 15분가량은 다시 점프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정말 사소한 단점이다.
수백 광년 떨어진 거리를 징후도 없는 점프로 쳐들어오고 도망칠 때도 순식간에 점프로 달아난다. 이런 압도적 기동성 차이에서 오는 전략적 우위는 화력이나 방어력 같은 전술 차원에서 메꿔질 것이 아니다.
그러나 샤다이는 도약 기술 외의 모든 분야에서도 연방과 비교하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모조리 다 까먹을 만큼 전투에는 전혀 재능이 없었다.
그게 지금 마카로니 행성 궤도에서 벌어지는 우주 전에서 증명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보며 빈우는 확신할 수 있었다.
‘아주 작정하고 왔구나.’
마카로니 소요 진압 함대의 구성은 호위 항모 한 척, 전함 한 척, 순양함 두 척, 구축함 일곱 척, 덧붙여 울토르 중대의 강습함 한 척인데 그 중 강습함을 제외하곤 모두 2선급 구형함이다.
샤다이의 함대는 모니터함 한 척, 전열함 두 척이다. 저 함선 분류는 샤다이 스스로 밝힌 게 아니라 연방이 붙인 것으로 저런 이름을 붙인 것이 붙여진 것만 봐도 샤다이의 고리타분한 함대 전술 교리를 알 수 있다.
모니터 함은 자기 함체의 1/3은 됨직한 거대한 주포를 두 문 가지고 있었고 그 위력은 일격에 연방의 전함을 소멸-침몰이 아니고 소멸-시킨다.
전열함은 함선 좌우로 수많은 포를 빼곡히 장착하고 있으며 포 하나하나가 연방 전함의 주포를 능가한다.
게다가 방어력도 함선 한 척 한 척이 연방의 기동요새에 필적한다.
하지만 사용하는 놈들이 샤다이라서 큰 의미가 없다.
전투는 마카로니 소요 진압 함대의 선공으로 시작되었다.
먼저 정찰기나 요격기를 탑재해야 할 호위 항모에서 할버드 폭격기들이 발진한다. 16기의 폭격기들은 저마다 기체 좌우에 자기보다 큰 질량 가속 어뢰를 달고 있는데 이 싸이클론 어뢰는 오직 샤다이 함선을 공격하기 위해 만들어진 특제품이다.
구축함들은 전진해 진형을 짜고 함수의 중력 충각을 가동해 대 플라스마 방어진을 만든다. 최전선의 구축함이 날아오는 플라스마를 척력장으로 휘어서 흘려보냈지만, 그 대가로 실드는 소멸, 충각 쪽의 동력도 바닥나 뒤로 물러선다. 그리고 후 열의 구축함들이 앞으로 나서 그 틈을 메꾼다.
순양함과 전함은 주포인 플라스마 캐논을 발사하는 대신 부포인 레일건을 적함에 퍼붓기 시작했다. 샤다이의 실드에 모두 막히긴 하지만 어찌 되었건 통하는 무기다. 그리고 실드가 모두 마모되면 핵미사일과 폭격기들의 어뢰가 쏟아질 차례다.
전형적인 대 샤다이 함대 전술이다. 사령부는 샤다이가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작정을 하고 마카로니로 쳐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위아래에서 샤다이와 개척민들을 동시에 쓸어버리고 있다.
‘개척민과 샤다이 사이에 뭔가 관계가 있는 걸까?’
아까 개척민이 시즐러를 들고 있는 것도 그랬고 샤다이가 개척민을 공격하지 않았던 거로 봐서는 뭔가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 같다. 그 때문에 연방이 마카로니의 자치정부 주민들을 공격했을지도 모른다.
더욱 자세한 것은 좀 더 자료를 수집한 다음 알 수 있을 것이다. 빈우 자신이 제거되지만 않는다면.
-작전 종료, 전 중대원 귀환.
작전 목표인 궤도 엘리베이터의 탈환과 모든 적의 수색 섬멸이 끝나자 울토르 중대는 철수에 들어갔다. 시가지 곳곳에 소이탄을 뿌리며 마무리를 짓던 대원들은 귀환지점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전투는 싱겁게 끝났다. 지상전이든 우주전이든.
지상의 적들은 클론 중대가 완전히 소탕-소각했고 우주의 적들은 도약으로 도망가지도 못하고 전멸했다. 샤다이의 함선이 재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약 15분의 지연 시간 안에 아군이 밀어붙인 것이다.
전투는 승리로 끝났지만, 귀환 셔틀에 탄 빈우의 마음은 심란했다. 이번 마카로니에서 벌어진 클론의 민간인 학살 때문이다.
클론이 인간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지만, 전투 중에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일이라면 어쩔 수 없을 것이고 변명의 여지도 있을 터였다. 그러나 클론 중대원들은 항복하는 개척민들까지 모조리 죽였다. 그것도 인간으로 보지 않고.
설령 클론이 아니라 인간이 했다고 해도 민간인 학살은 심각한 문제다.
아무리 따로 노는 자치정부라 해도 엄연히 연방의 일원이기에 마카로니의 개척민들이 연방군에 의해 학살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군 상층부는 모가지로 도미노를 할 것이고 심하면 연방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 허나 아까 개척민이 들고나온 시즐러가 걸린다. 연방의 주적인 샤다이의 함선이 궤도상에 있고, 그 무기가 지상의 개척민들에게 있었다면 이들에게 내통혐의가 있다. 그리고 내통자에 대한 연방의 대처는 매우 가혹하다.
‘하지만 이 사건이 세상에 밝혀질 일은 없겠지.’
일단 클론 부대는 그 존재 자체가 극비다. 연방에서 완전한 클론은 한정된 경우에만 제조하도록 제약이 걸려 있기에 군부와 의회가 밀약을 맺고 비밀리에 만든 것이 빈우가 소속된 울토르 중대다.
때문에 울토르 중대가 한 작전은 모두가 비밀 작전이며 세간에는 알려지지 않는다. 고로 이번 작전도 아무도 모른 채 묻힐 것이다.
게다가 연방이 자치정부에 이런저런 삽질을 한 적은 하루 이틀 일은 아니다. 오늘처럼 거하게 저지른 적이 없다 뿐.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이런 작전이 과연 마카로니에만 국한된 것일까 하는 것이다.
빈우가 아는 클론 부대는 울토르 중대 하나뿐이다. 다른 클론 부대는 얼마나 있는지 모르며, 있다 한들 어떤 작전을 하는지 모른다.
빈우 자신은 손을 더럽힐 각오를 했지만 이런 일을 직접 겪자 심란하다. 거기다 자신은 클론으로서 전투 중에 발작을 일으키기까지 했던 터라 머리가 더욱 복잡하다.
셔틀이 대기권을 돌파하고 정지 궤도에 올라가 모함인 솔리드 베타에 다가간다. 그런데 함선 옆에 연락선 하나가 도킹하고 있었다. 서로 못 본 척하는 진압함대 쪽에서 올 일은 없으니 아마 상부에서 파견 온 것 같다.
부대 특성상 외부에서는 이런 접촉을 잘 안 하는데 꽤 급한 일이 생겼는지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하고 있다.
셔틀이 모함에 착륙하자 대원들은 수리와 치료를 위해 정비창으로 향했다. 그게 끝난 다음에는 잠시 짧은 휴식을 취하고 다시 잠을 잘 것이다. 그리고 필요할 때가 오면 또 깨어나서 전투에 투입되겠지.
빈우가 셔틀에서 내려 모함에 첫발을 내디딜 때였다.
>찰리하나팔은 즉시 -----로 출두하라.
통신 하나가 빈우에게 도착했다. 무선이 아닌 유선으로-장갑복과 함선의 접촉 통신으로-오직 빈우에게만 온 명령이다. 더구나 장소의 표기는 암호문으로 되어 있어서 다시 한번 더 해석해야 했다.
>찰리하나팔은 즉시 제 2식당으로 출두하라.
클론들에게 식당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시설이다. 영양분은 주로 수면기나 장갑복으로 투입받기 때문에 중대원들은 인간성과 소화기관 유지를 위해 오늘 같이 깨어있는 날만 가끔 먹는 흉내만 낼 뿐 식당은 그리 자주 사용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 작은 강습함에 제 2식당이라니 처음 듣는 곳이다.
빈우는 격납고에 이미 대기하고 있던 거치대로 걸어가 장갑복을 벗었다. 임시로 복구된 장갑복이 차례차례 벗겨져 수납되었고 이후 완전 수리를 거친 후 다시 빈우의 수면기 앞에서 대기할 것이다.
이너 슈트만 입은 빈우가 대열을 이탈해서 엉뚱한 곳으로 걸어가자 형제들이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낸다. 지금 빈우가 명령대로 행동하는 것을 아는지라 녀석들도 무슨 딴지를 걸진 않지만 만약 빈우에게 무슨 해가 되는 일이 일어나면 결코, 가만있지는 않을 것이다.
‘치료도 없이 바로 출두하란 건가. 뭐 이리 서둘러.’
머리와 어깨의 부상은 이미 자가 치료되긴 했으나 귀환한 다음 신체와 장비의 점검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필수 사항이다. 그걸 건너뛰고 한 호출이니 부르는 쪽에서 꽤 서두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2 식당… 2 식당. 내가 이곳을 간 적이 있던가?’
초행이지만 자주 다니던 길 같다. 이전에도 자주 오던 곳이 바로 2식당이었다. 뜬금없이 데자뷔를 느끼던 빈우는 마침내 제2 식당에 도착했다.
빈우가 가까이 다가서자 문이 열리고 안에서 익숙한 고토 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왜 익숙한지는 모른다.
“왔구먼. 들어오게, 소령.”
안으로 들어간 빈우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긴 식탁들이 ㄷ자 형태로 빈우를 둘러싸도록 배치되어 있었고 거기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그중에서 빈우를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사관학교 동기인 마커스 타이 소령이었다.
“자식, 안 죽고 살아 있었나.”
복잡한 미소를 띠며 다가와 자신의 어깨를 치는 그에게 빈우는 친숙하면서도 안쓰러운 감정을 느낀다.
‘마커스 타이 소령? 사관학교 동기인데 내가 아는 사람인가?’
정신이 오락가락하지만, 옷매무새를 보아 식당 안의 준비는 녀석이 한 것 같다. 그리고 마커스 뒤로는 쟁쟁한 인물들이 삼각형으로 포진해 있었다. 그들에 대한 정보가, 이미 알고 있던 기록들이 하나둘씩 되새겨지고 있다.
가운데 식탁의 통신 패널 너머에 있는 인물은 연방군 정보 사령본부 산하 연방 군사 정보국 국장인 이노우에 고토 준장이다.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를 띤 이 중년의 남자는 빈우가 속한 정보국 톱이자 직속 상관이다.
왼쪽에는 과학기술국의 응우옌 티 빈 중령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통통한 체구에 푸근한 인상을 주는 이 중년 여성은 클론 생산에 관련된 핵심 인물로서 클론들의 관리 감독을 총괄하는 사람이다.
오른쪽에는 보안국의 피에르 라캉 중령이 통신 패널 너머로도 느껴지는 불쾌한 인상을 짓고 있었다. 클론 부대의 감사역이라 할 수 있는 이 자는 정보부에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지 마치 사적 감정으로 움직이듯 사사건건 훼방을 놓던 놈이었다.
마지막으로 식당 맨 왼쪽 구석에는 빈우의 안드로이드 메이드인 아나스타샤가 불안하게 서 있었는데 고개를 숙인 채 치맛자락을 꽉 쥐고 있었다.
빈우가 안을 한번 둘러볼 만큼의 짧은 시간이 흐르고 통신 패널에서 이노우에 준장이 특유의 능글능글한 얼굴로 말을 했다.
“바로 본론부터 시작할까? 김빈우 소령. 자네는 인간일세.”
이건 무슨 미친 말씀입니까? 난 클론인데? 이름은 김빈우. 코드는 C-18. 도대체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는 빈우를 보며 다시 고토 준장이 말했다.
“먼저 자네의 두뇌 칩부터 확인해야겠지. 타이 소령.”
“네.”
마커스가 자신의 사무용 패드를 만지자 바로 앞에 빈우의 두뇌 칩 정보가 홀로그램으로 떠올랐고 그 옆에 ‘Ultor. C18’ 이란 제목이 붙었다.
“역시 대단해. 아직도 클론의 두뇌 칩으로 뜬단 말인가.”
이노우에 준장의 감탄에 마커스가 말을 이었다.
“헤더를 정말 정교하게 조작해 놨습니다. 본부의 코더로도 이렇게 뜨지만 역시 흔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피에르 라캉 중령이 끼어들어 툭 내뱉었다.
“흥, 애먼 클론 불러 놓고 착각하는 건 아닌가?”
이어서 응우옌 중령도 조심스레 질문했다.
“정말 클론이 아니고 본인인 게 확실한가? 그렇다면 신체 정보를 조회해 보면 될 텐데. 유전자 정보는 같다 해도 클론과 인간은 세부적인 곳에서 다르잖아.”
맞는 말이다. 클론은 기본적으로 급속 성장을 하며 필요에 따라 이런저런 조작을 하기에 원본이 되는 인간과는 육체의 세부 정보가 다르다.
“원래대로라면 그렇겠죠. 하지만 보십시오.”
그러면서 마커스가 다시 새로운 정보창을 띄웠다. 이것은 빈우의 현재 육체 정보인데 뼈와 근육조직에 새겨진 클론의 제조 코드를 보여준다. 그리고 부상과 치료 경력도 뜨는데 이것 역시 급속 성장 도중 일어난 클론의 부상 건으로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