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10화 (10/301)

10화

기가 막힌다는 듯 말문을 트는 응우옌 중령에게 마커스는 대수롭잖게 설명해주었다.

“뭐, 처음엔 이상해도 곧 익숙해집니다. 중령님도 중요한 사항은 칩에 기록하지 않습니까. 우리 요원들이 기억을 못 하게 되어있는 것은 보안상의 이유가 가장 큽니다. 그리고 노출되거나 당장 필요 없는 요원들을 재배치할 때도 편리하지요. 비밀엄수 서약이나 세뇌를 할 필요 없이 기록만 빼내 버리면 되니까 말입니다.”

응우옌 중령은 납득하지 못한 눈치였지만 현 주제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 더는 말하지 않는다.

정보부에서의 삶은 뇌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칩에 기록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 등의 모든 감각 정보만 기록될 뿐 감정은 기록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열람하면 마치 제 3자의 시선으로 보는 것 같다.

감정이 없는, 무미건조한 삶이다.

동시에 필요한 경우 기록을 선택적으로 지울 수 있어 요원을 재활용할 때도 쉽다. 사용할 수 없는 요원은 기억을 지울 필요 없이 기록만 삭제하거나 두뇌 칩만 바꿔서 다른 부대원으로 보낼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그 행동을 해서 암호를 풀도록 합시다. 김 소령, 대체 어떤 행동을 해야 자네의 기록이 풀리나? 주지육림? 왕후장상? 뭐든 좋으니 어서 실행해!”

저게 보안국에서 중령이나 달고 있는 작자가 할 말인가 싶어 빈우가 뭐라고 할 때 이노우에 준장이 끼어들었다.

“중려-엉. 자네 이제까지 뭘 들었나? 트리니티 패턴은 조건에 맞지 않으면 본인과 본부조차 못 푼다고 했지? 그런데 본인이 푸는 조건을 알면 어떻게 되겠나? 응? 으~응?”

능글능글 갈구는 모습이 연방군 장성이라기보다는 흡사 양아치 같다.

“아, 아닙니다, 국장님. 그런데 그 조건 중의 하나인 ‘지정된 행동’이란 것이 애매하지 않습니까? 이후에 무슨 일이 있을 줄 어떻게 알고 설정을 한단 말입니까? 자칫 잘못하면 트리니티는 영원히 파묻혀버리지 않겠습니까?”

라캉 중령이 당황한 어투로 변명을 하는데 영 표정 관리가 안 되는 게 빈우의 눈에 보인다. 빈우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이봐, 꼬마 피에르. 너 말야. 우리 요원들을 너무 띄엄띄엄 보는 거 아냐?”

이노우에 준장의 표정이나 말투는 이제까지와 별반 다를 바 없었지만, 분위기는 확실히 바뀌었다. 빈우의 경험상 여기서 한 단계 더 나가면 바로 주먹다짐할 낌새다.

“내 부하들은 말야. 일류 중에서도 일류야. 숨겨놨던 정체나 정보가 드러나야 할 때를 계산해서 행동을 설정해 놓는 ‘머리’는 당연히 가지고 있지. 또 그게 아닐 때는 그대로 지워져 버리는 것도 각오하는 ‘배짱’ 또한 있구.”

말을 하면서 약간 풀린 듯 이노우에 준장이 의자 뒤로 기대었다.

“아니 뭐어- 그렇다고는 해도 일단 우리 쪽이 회수한 요원들의 트리니티 패턴을 풀 때 주로 잘 쓰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말이야.”

움츠러든 라캉 중령을 흘깃 보며 응우옌 중령이 질문했다.

“그건 뭡니까?”

질문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싱긋 웃으며 이노우에 준장이 앞으로 다가앉았다.

“그건 말이야~ 회사에 박아 놓고 뺑이 돌리는 거지.”

의외로 무식한 방법에 정보국이 아닌 사람들은 긴가민가한 반응이었지만 사실이다. 정보국에서는 유령 회사 몇 개를 운영하고 있는데 요원들이 트리니티 패턴의 조건으로 즐겨 설정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유령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회수된 요원들이 정보국에서 직접 일하는 것은 그들의 ‘잠수 상태’에 따라 보안상의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유령 회사에서 일한다면 그런 문제는 없을 것이고, 오히려 요원을 감시하고 보호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즉, 잠수했거나 기록을 잠갔거나 일단 트리티니 패턴이 달려있다면 그 요원은 제법 높은 확률로 유령 회사에 처박히게 되고, 거기서 고강도 업무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그 뇌파를 받아 트리니티 패턴을 풀게 된다. 물론 작전상의 이유로 다른 생활을 하는 경우도 없잖아 있지만.

“만약에 안 풀린다면 어떡합니까?”

“어쩌긴, 풀릴 때까지 처 돌려야지.”

저것도 사실이다.

‘호랑이 기운은 안 솟습니다. 피자 타이거!’

썰렁한 CF 멘트가 지금까지도 무의식중에 떠오를 정도로 빈우는 정보국 소속 유령 회사인 ‘피자 타이거’에 파견되어 구른 적이 있다.

거기서 피자라면 치가 떨릴 지경이 되었을 때 빈우는 머릿속에서 트리니티 패턴이 하나 풀렸고 그 대가로 도망치듯 휴가를 나간 기록을 가지고 있다.

뭔가 막무가내 적이고 정보국답지 않은 대답을 들은 두 중령이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빈우가 나섰다.

“국장님, 제가 잠수한 다음에 울토르 중대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으흠, 하긴 자네도 모르겠지.”

빈우의 질문에 이노우에 준장은 기록을 공유해 보여주는 대신 자신의 말로 설명을 시작했다.

“일단 회수한 울토르 중대는 전체 점검을 했고 별다른 이상은 없었기에 다시 프로젝트를 재개했지. 원본이자 관리자인 자네가 없어졌지만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어. 프로젝트는 중반기를 지났던 터라 조만간 자네는 그 부대를 떠날 계획이었고 이미 그 당시에도 자네 없이 작전은 잘 진행되었으니 말이야.”

예상한 대로다. 빈우는 울토르 중대의 원본이며 또한 관리자로서 파견 나가 있었고 프로젝트가 궤도에 오르면 복귀할 예정이었다. 어차피 사라질 사람이 사라진 거였으니-방법이 좀 잘못되었지만-부대의 운영에는 문제가 없었다.

“자네가 위장한 클론 C-18은 2216년 7월 20일까지는 대기 모드로 있었네. 그러다가 그날 오후 4시 30분부터 작전에 참여하기 시작했지.”

클론으로 일어나 지금까지 한 행동은 빈우 본인이 잘 알고 있다. 기록도 있고 기억도 한다.

그러나 빈우가 알고 싶어 했던, 대기 중에 있었던 일은 알려주지 않았다. 빈우가 클론으로서 자고 있었던 6월 8일부터 7월 20일까지의 일이 두리뭉실하게 넘어갔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징조가 보이더군. 부대의 전투 기록을 보던 중 이상한 클론이 하나 있었네.”

이노우에 준장은 정확한 날짜보다는 ‘언제’라고 막연하게 말했다.

“혹시나 발작을 일으키는 클론인가 싶어서 예의 주시했었지만 설마 그게 자네였을 줄이야. 이상 행동을 했다고 폐기해 버렸으면 큰일 날 뻔했지 뭐야.”

이노우에 고토 준장은 늘 짓는 희미한 미소와 함께 무서운 말을 했다. 이 느물거리는 국장은 아직 빈우를 정보국 요원이자 부하로 보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불안하다. 좋지 않은 경우다. 이대로 흐름에 쓸려가면 결코 좋은 꼴을 못 볼 것 같다는 게 빈우의 예상이었다.

“왜 그때 미리 조사하지 않았습니까? 이상 행동을 하는 클론을 발견했을 때 정밀 조사를 했으면 좀 더 빨리 저를 찾을 수 있었을 텐데요.”

호랑이를 잡기 위해서는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

“자네에게 이 이상 자세한 것은 말해 줄 수 없네.”

예상은 했지만 산 채로 호랑이에게 뜯기는 기분이다.

외부인이 있어서 말해줄 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나 장소가 적적하지 않아 말할 수 없다는 것도 아니다.

울토르 프로젝트 참가자이자 현장 관리자인 빈우에게 알려줄 수 없다는 것은 빈우가 프로젝트에서 제외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높은 확률로 정보부에서도 방출될 것이다.

빈우에게 이 정도는 예상 범위 안이다. 이제는 호랑이의 수염을 잡아챌 차례다.

“그러면 저 밑에서, 마카로니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도 말해줄 수 없습니까?”

호랑이들의 표정이 제각각이다.

응우옌 중령은 영문도 모르겠다는 듯 멀뚱멀뚱하고, 라캉 중령은 눈알만 돌려 고토 준장의 눈치를 살핀다. 마커스는 별 표정 변화가 없었지만 책망하는 눈치라는 것을 오랜 동료이기에 알 수 있었다.

빈우와 눈이 마주친 호랑이의 얼굴은, 이노우에 고토의 얼굴은 마치 장난꾸러기 같았다. 자기가 쌓아놓은 블록을 무너뜨리기 직전의 악동의 표정이다.

“당사자가 무슨 소린가? 샤다이에 습격당한 마카로니 시를 자네가 탈환하지 않았나. 비록 도착이 늦어 샤다이의 침략으로부터 단 한 사람도 구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 나는 그렇게 알고 있네. 보다, 자세한 것은 중대의 책임자인 자네가 알고 있겠지.”

이노우에 준장은 마음껏 블록을 짓밟았다. 빈우는 호랑이 꼬리를 잡고 매달려가는 도중 호랑이에게도 꼬리 자르기가 있다는 것을 안 기분이었다.

여차하면 상부는 모든 책임을 현장 지휘관인 빈우에게 넘길 의향이 있고, 그 경우 빈우는 손도 발도 못 쓰고 처리될 것이다. 빈우가 클론으로 잠수했다니 뭐니 그런 것은 문제 되지 않는다. 늘 하던 대로 정보조작만 하면 만사 오케이. 머릿속의 정보는 정보국에서 한 번 더 잠근 다음 형기를 치르고 나온 빈우에게서 추출하면 된다.

잘린 꼬리를 든 사나이는 별다른 내색 없이 다시 질문했다.

“그럼 전 이제 ‘세탁’되는 겁니까?”

일부러 세탁이란 단어를 꺼냈을 때 외부인 중령 두 사람은 역시나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정보국의 두 사람-이노우에 고토 준장이나 마커스 타이 소령-은 조금이나마 반응을 했다.

정보국 요원들에게 세탁이란 몇 가지 의미가 있는데 가벼운 것은 모든 내, 외부 기록을 말소당하고 다른 부서로 발령받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인간으로서. 그리고 무거운 의미의 세탁은 문자 그대로 연방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그럴 리가. 자네는 프로젝트에서 제외되었을 뿐 여전히 믿음직스러운 내 부하 요원일세.”

즉 협조만 잘하면 외부 파견 요원으로 재활용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안심하기엔 이르다.

‘과연 그럴까?’

잠수에서 부상했던 빈우는 슬슬 결정적인 행동을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를테면 호신을 위한 반격이다. 다행히 빈우가 지금부터 할 행동에 필요한 정보들은 이미 수집했고 떡밥도 뿌려놨다.

빈우는 식당 구석에서 초조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는 자신의 안드로이드 메이드를 불렀다.

“아나스타샤.”

“예, 주인님.”

빈우의 말에 메이드는 기쁘게 반응한다. 이쪽을 바라보는 눈에는 기대와 기쁨이 가득한데 그 기대를 외면하는 게 미안하다.

“팬티 보여줘.”

순간 식당 안에는 정적이 흐른다.

“음? 네? 주인님?”

우물쭈물하는 메이드에게 주인은 다시 명령한다.

“나는 연방 군인으로서 원활한 임무 수행을 위해 너에게 수행 불가능한 명령을 강요한다. 네가 이해할 수 없는 이 명령은 사실 군 사령부에서 내려온 군사 작전을 실행하기 위한 필수 조건 중 하나이다. 상기 이유에 의거해 명령한다. 팬-티-보-여-줘.”

“아앗, 네, 네에-”

그러자 안드로이드 메이드는 울상을 짓고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긴 치마를 주섬주섬 걷어 올렸다. 치맛단은 검은색 단화와 갈색 팬티스타킹을 스치고 올라가 마침내 하얀색 팬티를 아슬아슬 비춰 보였다. 이제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아샤는 팬티스타킹에 엄지손가락을 걸었고 마지막으로 내리기만 하면 주인의 명령을 완벽하게 수행하게 된다.

“오케이, 거기까지.”

빈우의 말에 아샤는 허겁지겁 치마를 내려 다리를 감췄다. 굉장히 미안하지만 할 필요가 있는 일이었다.

“지금 도대체 뭐 하는 짓인가!”

응우옌 중령이 빈우의 행동에 일갈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결정적이다. 화난 사람의 말과 행동이 너무 다르다.

빈우는 그녀에게 성큼성큼 걸어가 식탁을 뛰어넘어 그녀를 의자에서 일으켜 세웠다. 이어 오른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밀어 넘어트렸다, 아니 넘어트리려 했다.

“어? 소령? 자네 지금!”

응우옌 티 빈은 한발 뒤로 물러나서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러나 거기까지만이었다. 표정도, 다른 행동도 없다.

한 발 더 나가 빈우는 그녀의 치마를 잡고 확 잡아 내렸다.

“이, 이 미친!”

응우옌 중령의 말에는 분노와 당황이 섞여 있지만, 표정은 약간 짜증 난 표정이고 목 아래는 균형만 잡을 뿐 별다른 행동을 하고 있지 않았다.

모습을 본뜬 안드로이드를 내세우고 동기화도 않은 채 단순 원격조작을 하는 사람에게 미쳤다는 말을 듣고 싶진 않다. 응우옌 티 빈 중령은 본인이 오지 않고 본인 모습의 안드로이드를 대신해서 보냈는데 그것도 직접 조종하지 않고 대략적인 조작만 할 뿐, 세부적인 것은 인공지능에 맡긴 상태였다.

“김빈우! 너 이 새끼!”

이제 빈우는 팔팔 뛰는 피에르 라캉 중령에게 화살을 돌렸다. 그는 자신이 알던 보안국 차장, 피에르 라캉의 사뭇 다른 모습에 피식 웃고는 통신 패널에 삿대질했다.

“거기 너. 연방군 정보 사령부 군용 AI 추가 모듈 3b3을 실행해. 그리고 바지 벗고 팬티 보여.”

“무슨 개소리야!”

그러나 말과는 다르게 피에르 라캉의 모습을 한 안드로이드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띠를 풀고 바지를 벗으려고 했다. 그때 패널 너머에서 사람들이 우당탕 달려들어 안드로이드를 잡아 앉히고 화면을 껐다.

그 모습을 본 빈우는 시큰둥하게 내뱉었다.

“저쪽도 안드로이드를 썼네요. 그러고도 통신으로 보내다니 아주 티를 냅니다.”

이 모든 광경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던 이노우에 준장이 잔뜩 기대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나한텐 안 물어보나?”

“물어본다 한들 그게 무슨 의미 있습니까?”

“의미라… 팬티를 보여 달라는 게 무슨 의미라도 있는감?”

지금 국장이 짓고 있는 표정은 음흉함 그 자체다. 누가 봐도 내 등 뒤에 칼 있소, 하는 표정이다. 이렇게 표정 관리를 못 한다면 정보요원으로 실격이랄 수도 있겠지만 상황에 따라 필요한 표정을 사용하는 것도 요원의 실력이다.

어쨌든 빈우는 자신의 예상이 맞은 것에 안도했다. 이제 관계자들끼리 얘기할 시간이 왔다.

응우옌 티 빈 중령의 모습을 한 안드로이드는 작동이 중지되었고, 피에르 라캉 중령 쪽의 통신 패널도 꺼진 상태다. 마커스는 사무실 책상을 정리하듯 나직한 콧노래를 부르며 정지된 안드로이드와 통신 패널을 챙겨 옮기기 시작했다.

이제 제2 식당 안에는 정보국 사람과 메이드 안드로이드만 있으니 마음껏 얘기해도 된다.

“일반적인 인공지능이라면 주인이 벗으라고 홀딱 벗지는 않죠. 특별한 추가 프로그램을 깔지 않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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