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마커스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패드를 책상 위에 던지고는 피곤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아직 그의 일은 끝나지 않았다.
“오, 어서 오게. 타이 소령.”
책상 위에는 고토 국장의 홀로그램이 띄워져 있었다.
마커스는 그와 일을 하는 것이 오늘만 해도 벌써 세 번째다.
먼저 빈우가 부상했을 때 라캉 중령, 응우옌 중령을 동석해서 한 번, 그다음 바로 정보국 사람들끼리 두 번, 이제 단둘이서 세 번.
“그래, 김 소령은 어떻던가?”
어떻다는 건 빈우의 상태를 묻는 것이지만 당연히 몸이나 정신의 건강 상태가 걱정되어 묻는 것은 아니다.
“세뇌나 전향의 징후는 없다고 봐도 될 겁니다. 또 우리를 굉장히 경계하고 있더군요.”
“흠, 안전하긴 한데 역시 뭔가 숨기는 게 있다?”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는 고토 국장의 모습에 마커스는 기가 찬다. 아까 당사자와 직접 대화를 해놓고도 친구를 시켜 뒤를 캐는 모습이라니. 그답게 빈틈없는 모습이다.
“무슨 헛소리입니까. 김 소령은 살기 위해 그러는 것 아닙니까.”
부하의 퉁명스러운 핀잔에 고토는 바로 시무룩해졌다.
“우리 정보국이 얼마나 요원들을 험하게 쓰는지 아십니까? 요원 손실률이 어떤지 잘 아시는 분이 무슨 그런 개소리를 하십니까.”
연방군 정보사령본부 산하의 군사정보국은 군의 첩보 활동을 실행하는 부서로써 정보전과 첩보전 그리고 온갖 비밀 작전의 최전방을 담당한다. 그만큼 위험한 부서이기도 해서 요원들의 손실률이 높은데 근래 조직을 개편하며 그 손실률이 더더욱 높아졌다.
그리고 현재의 정보국을 만든 사람이 바로 전 부국장이자 현 국장인 이노우에 고토 준장이다.
원래 연방 군사정보국은 연방에 적대적인 외계종족에 대해서만 활동할 수 있다. 같은 군사작전을 하더라도 자치정부 쪽은 보안국 관할이다. 그런데 외계종족과 내통하는 반 연방 세력은 때에 따라 정보국과 보안국 둘 다 접근할 수 있는 회색 지대가 된다.
고토 국장은 이 회색 지대를 적극적으로 확대해 정보국의 작전 범위를 늘렸다. 그 과정에서 부서의 권한과 능력은 증대되었지만, 타 부서와의 충돌이 잦아졌다. 같은 정보사령본부 소속인 보안국과 관할 영역을 놓고 아웅다웅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지금까지 소 닭 보듯 했었던 국방부 외 정보부서-연방 중앙정보국이나 연방 수사국-와의 마찰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또한, 우수한 요원들을 갈아가며 연방의 국방 안보를 확립하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방식을 주로 썼기 때문에 성과는 확실히 좋지만, 안을 보면 내부는 개판 오 분 전이다. 요원들은 상부로부터 뒤통수를 맞지 않기 위해 별의별 생존책으로 무장하고 또 상부는 요원들의 이상 징후에 민감히 반응하여 뒤를 캐고 사지로 밀어 넣는다.
아까 잠수에서 부상한 빈우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다.
오죽했으면 단둘이 있는 자리-마커스가 도청에 대비한 제 2식당-에서 조차 과거 사관학교 시절 장난삼아 만들었던 암호로 몰래 대화를 할까.
“으~음, 근데 김 소령 말이야. 메이드와 굉장히 알콩달콩하더군. 원래는 좀 쌀쌀맞지 않았나? 보는 내가 안타까울 정도였거든.”
빈우가 아나스타샤에게 단지 미안하다고 했을 뿐인데 그게 알콩달콩하단다. 그렇다고 고토 국장이 딱히 꼬투리 잡는 것은 아니다. 수상한 점이 있으면 물고 늘어지는 게 정보국 사람들의 버릇이니까.
하긴 마커스에게도 그 점이 가장 걸렸다. 빈우를 마지막으로 봤을 때만 해도 녀석은 아나스타샤를 아예 없는 존재로 취급하고 있었다. 가족과도 다름없었던 그녀를.
“둘은 원래 사이좋았습니다. 다만 그 사건 이후로 김 소령이 많이 바뀌었지요.”
“잉? 그 사건?”
홀로그램 속의 고토 국장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어느 쪽이나 얄밉기 그지없다. 빈우가 잠수에서 부상하자마자 잠그라고 한 기록 중 하나인데 말이다.
“어떤 사건을 말하는 건가? 김 소령의 성격이 바뀔 만큼 큰 충격을 준 사건이 어디 한두 개여야 말이지.“
마커스는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빈우라면 좀 유쾌하게 받아쳤겠지.
“그리고 말이야, 타이 소령. 사람이 사건 하나둘 가지고 그렇게 막 바뀌긴 힘들어요. 인격이란 건 말이지….”
“네네, 차츰차츰 쌓이고 쌓이던 걸 터뜨린 사건이 있었지요.”
마커스가 한숨을 쉬며 말허리를 자르자 고토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손뼉을 쳤다.
“터뜨린 사건? 어~ 옳거니! 그런가! 그렇다면… 아니 그래도 몇 개 되는구먼. 뭐,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화면 속의 고토 국장은 양심 따윈 장식이라는 소리를 하며 자리를 고쳐 앉았다.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 심산이다.
“타이 소령, 김빈우 소령은 본인인 게 확실한가?”
“거의요. 한 99%쯤?”
마커스가 부상한 빈우의 몸과 두뇌 칩을 직접 살펴보았을 때 빈우는 본인이 맞았다. 변심이나 조작된 흔적도 없고 깨끗하다. 다만 빈우의 성격이 조금 걸렸다. 방금 만난 빈우는 과거의, 순수했던 시절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고토 국장은 비밀리에 마커스에게 빈우와 사적인 대화를 하며 재조정을 빌미로 다시 두뇌 칩을 재조사하라고 했었다. 그 결과가 바로 99%이다.
“99%라, 좋아. 그러면 안드로이드 메이드는 뭐라던가? 주인임을 정확히 인식하던가?”
“네, 주인으로 인식했습니다.”
원래 아까와 같은 자리는 업무보조용으로 쓰던 안드로이드가 끼일 자리가 아니다. 그러나 주인과 오래 살아온 인공 지능들은 축적된 데이터와 여러 요소를 통해 자신의 주인을 판별하는 데 탁월한 성능을 발휘하기 때문에 동석시킨 것이다.
“음, 메이드는 우리가 깔끔하게 검사했으니 믿을 만하지만….”
마커스는 그때의, 검사 당시의 영상 기록을 떠올려보았다. 해체 직전의 상황에서도 울면서 자신의 주인을 살려달라고 부탁하던 아나스타샤의 모습이 생생히 보인다.
“본인은 본인이다. 그런데 우리가 알던 김 소령과는 조금 다르단 말이지? 자네 말대로라면 1% 정도?”
‘당신이 알던, 이겠죠.’
마커스는 그 말이 입 밖으로 나가는 것을 간신히 막았다. 고토가 알고 있는 빈우는 현실에 갈려 나가 피폐해진 정보국 요원이다.
“네, 현재 김빈우 소령은 정보국에 들어오고 얼마 안 되었을 때의, 그러니까 좀 과거의 밝은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만약 마커스가 알고 있는 현재의 빈우라면 아까 제 2식당에서 난리가 났을 거다. 날카롭게 깨져 흉포해진 내면을 냉철함의 주머니로 간신히 감싸고 있지만, 필요하면 그 유리 조각 날리는 주머니를 휘둘러 상대방을 피투성이로 만드는 데 주저하지 않는 놈이 무슨 반응을 보였을까.
아까는 꽤 원만하게 끝난 셈이다.
“밝다, 라…. 내가 아는 김 소령과 이미지가 좀 다른데?”
“많이 바뀌었고, 이번에 또 바뀌었죠. 아니, 돌아갔다고 해야 하나요.”
“이런 사례가 종종 있었지?”
그러면서 화면 너머의 고토 국장은 과거 정보국 요원들의 성격이 변한 사례들을 띄워보고 있었다.
기억이 없는 정보국 요원이라 해도 적게나마 기록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당시의 감정만 되새김하지 못할 뿐, 그때그때의 사건들은 본인에게 영향을 준다. 빈우도 그렇게 서서히 바뀌어 갔다.
다른 사례로는 과거의 기록을 잠그거나 푸는 바람에 성격이 바뀌는 예도 있다. 뇌에 저장되는 기억과는 달리 기록은 두뇌 칩에 저장되지만, 칩에 과도한 조작을 가했을 경우 그 영향이 뇌에까지 미치는 사례는 드물어도 분명히 존재했다.
아마 지금 빈우의 경우는 그것과 유사한 경우일 것이다.
“네, 아마도 김 소령이 부상하자마자 별다른 조치 없이 중요 기록을 잠가 버렸기 때문이라 추측됩니다. 아니면 혼자 했던 잠수의 영향일 수도 있고요.“
본인 스스로가 자신 기록과 기억을 조작하면서 자아가 뒤틀리는 경우도 보고된 바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여러 종류의 부작용들은 과학기술국의 협조하에, 천천히 자아 재정립 과정을 거쳐 치료되거나 완화된다. 100%는 아니지만.
“으음, 성격이 바뀐 거야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그걸 고친답시고 트리니티 패턴의 존재를 알릴 만한 가치는 없어 보인단 말야.”
고토 국장의 말은 크게 틀린 것은 아니다. 과학기술국에 보인다면 차근차근 빈우를 원상복구 할 수 있겠지만 트리니티 패턴으로 잠긴 부분이 뜨거운 감자다. 피에르 라캉이나 응우옌 티 빈 같은 안전한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아직 외부에 알리기엔 이르고 위험한 정보다.
그리고 마커스가 아까 살펴본 바로는 정보국 요원으로서의 활동에 관련된 기록들에는 별 이상이 없기에 외부파견 요원으로 보내도 문제 될 것은 없었다.
“타이 소령, 자네 생각은 어떤가? 동기이자 친구인 자네의 의견도 듣고 싶네만.”
마커스는 빈우의 성격이 바뀐 것이 조금은 걱정이 되긴 했지만 동시에 약간 안심이 되기도 했다. 언제나 고통스러워했던 빈우가 잠시나마 밝았던 때의 성격을 되찾았다는 점이 마음의 위로가 되었다.
허나 신경 쓰이는 것은 또 있었다.
“성격이 바뀐 거야 시간이 걸릴 뿐이지 지속적인 멘탈 케어를 해준다면 원래대로 돌아올 겁니다. 정 안 되면 사태가 조금 진정된 다음 과학기술국에 협조를 요청해야겠죠. 그러나 중요한 점은 김 소령의 성격이 과거로 돌아갔다곤 해도, 정보국에 대한 불신은 그대로란 겁니다. 이 점을 해결하지 않는 한 김 소령은 우리의 시선 밖에서 행동하려 할 겁니다.”
“그렇게 불신이 심한가?”
고토 국장의 말에 마커스는 잠시나마 할 말을 잃었다. 이때까지 빈우에게 수없이 당해놓고서는 무슨 개소리를 하나 싶다.
“과거의 김 소령은 정보국에 충성심 강하고 헌신적인 요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거듭 자신을 사지로 내몰고 팽하는 상부에 대비해 자기방어수단을 강구하였죠. 뭐 근본적인 원인은 국장님에게 있는 것 아닙니까? 부하를 희생양으로 몰아세우니 성격이 더러워지고 불신감이 생기는 거지요.”
그 말에 고토는 사뭇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변명을 했다.
“너무해, 소령. 나는 나름 그때는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생각이었는데….”
“소탐대실이죠. 인적 자원은 대체 불가능한 자원입니다.”
고토가 또 뭐라고 변명을 하려 할 때 밖에서 누군가가 벨을 눌렀다.
-임마, 마커스. 지금 시간 괜찮냐?
문밖에는 빈우가 와 있었다.
“으음, 그러면 여기까지. 타이 소령, 성격 건은 김 소령에겐 되도록 비밀을 유지하게. 그의 실력으론 아주 작은 흔적만으로도 잠긴 기록을 유추할 수 있어. 또,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캐도록.”
고토 국장의 홀로그램이 꺼지자 마커스가 문을 열었다. 방안으로 들어온 빈우가 침대에 털썩 주저앉으며 물었다.
“뭐 하고 있었냐?”
“국장님이 네 뒤를 캐란다.”
마커스가 히죽 웃으며 한 대답에 빈우의 얼굴이 팍 일그러진다.
“아오, 시발 영감탱이.”
방금까지 식당에서 취조해 놓고선 또다시 친구를 시켜 호박씨를 까려는 고토 국장에게 빈우는 질려버렸다.
그리고 툴툴대는 빈우에게 마커스는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었다.
“마침 잘됐다. 시간이 나면 말하려고 했던 건데, 아까 빈우 너한테 말 못 한 게 하나 있어.”
“뭔데?”
“빈우 너… 잠수 전과 비교해서 성격이 조금 바뀌었어.”
그 말에 빈우의 눈매가 약간 날카로워졌다. 마치 베테랑 정보국 요원 김빈우처럼.
“내가? 어떻게?”
“정보부 들어오고 초임 시절의 성격 같아.”
그 말에 빈우는 팔짱을 끼더니 오른손으로 턱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기록을 되새길 때 하는 버릇은 여전하다. 그러더니 표정이 험상궂게 변했다.
“세상에….”
“기록을 살펴보는 중이냐?”
“그래, 이제까진 그럴 시간도 없었는데…. 맙소사.”
자신의 기록을 살펴본 빈우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내가, 아나스타샤를… 이렇게 대했다고?”
빈우는 자신의 기록을 믿을 수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아나스타샤는 가족이나 다름없다. 아니 가족 그 자체다. 어릴 때부터 자신을 돌봐줬던 누나이자 보모였고, 모든 것을 가르쳐 준 부모이자 선생이었으며, 지금까지 고락을 같이 한 동료이자 전우였다.
그런데 빈우의 기억 속에서 언제부턴가 아나스타샤는 철저한 무시의 대상이 되었다. 마치 일반 안드로이드를 대하듯, 아니 안드로이드나 로봇이라도 그렇게까지 엄하게 대하진 않았다. 빈우 주변의 인물, 사물 중에서 오직 아나스타샤만이 차갑고, 건조하게 배척당했다.
아나스타샤가 이유를 물어봐도 빈우는 일절 대답해 주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주인이 바뀐 원인을 알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지만 모두 허사로 돌아갔다.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그녀의 모습에 기록을 보는 빈우도 안타까웠다. 허나 빈우에게 그보다 더 답답한 것은 자신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모른다는 점이다.
만약 기억이 있다면 그렇게 행동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보국 요원은 기억할 수 없다.
만일 기록이 있다 한들 왜 그렇게 행동을 했는지는 당시의 기록만 봐서는 모른다. 그렇게 행동하게 된 원인이 되는 기록을 봐야 한다. 하지만 그 원인이 되는 기록이 잠기고, 그 외의 기록들도 군데군데 잘려나간 상태라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빈우는 침울한 표정으로 마커스에게 질문을 했다.
“마커스, 내 성격이 이렇게 바뀐 건 언제부터지?”
물어보는 빈우는 이미 돌아올 대답을 알고 있었다. 자신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기에. 그리고 그 원인이 된 기록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미안해. 말할 수 없어.”
마커스가 백업을 한다고 했지만, 그것도 일정 선을 지키면서다. 무작정 무한대로 도움을 줄 순 없는 노릇이다.
차갑게 질문을 끊은 마커스에게 빈우는 다시 질문했다.
“고토 국장이 눈치챘나?”
“그래,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너한테서 정보를 캐내라고 하더라.”
이번엔 빈우도 별 반응하지 않았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자신을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성격이 바뀐 것은 몇몇 선례가 있으니 그렇다고 쳐도 아나스타샤를 그렇게 대한 것은 도저히 용납이 안 되었다.
“내 성격이 원래대로 돌아온 건 아마 부상하면서 잠긴 기록의 그 영향이겠지?”
마커스는 ‘아니’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빈우에게 그걸로 충분했다.
빈우는 마른세수하며 몸을 숙였다. 산 넘어 산이다. 하나를 해결했다 싶으니 또 다른 문제가 새끼 치는 격이다. 자신이 맡은 프로젝트는 엎어졌고, 그 결과물이 대형 사고를 쳤고, 머릿속엔 정체를 알 수 없는-그러나 대단히 중요할 거라 추정되는-정보가 트리니티 패턴으로 묶여있고, 자신의 중요한 기록들은 잠겨있고, 성격은 정보부 초임 시절로 바뀌었다. 그리고 자신의 소중한 가족에게 크나큰 상처를 입혀버렸다.
‘혼란하군.’
그렇게 몸을 숙이고 생각에 잠긴 빈우에게 마커스가 뭐라고 말하려 할 때 빈우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너 이거 아냐?”
그러면서 빈우는 아까 수면실에서 구한 팬티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